My Melody w. 킵 * * * 4집 발매 기념으로 첫 팬사인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홀가분하게 금주 1위를 주거니 넙죽 받고 나와 곧바로 좆 빠지게 달려온 용산 아이파크몰은 그야말로 떼거지 그 자체였다. 들어서자마자 고막을 찢는 하이톤 함성 소리가 얕은 짜증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 막 시작한 프로모였지만, 그보다 예상했던 내 황금 주말 오프가 사라진 마당에 모든 게 반가울리가 없었다. 선글라스속 눈은 사정없이 뒤틀렸고 미간에는 자잘한 주름이 자리 잡았지만, 입꼬리만은 사정없이 V로 올려주는 센스를 발휘해야만 했다. 옆을 보고 있자니 재중, 창민은 이미 황금 오프를 잊고 꽃보다 아이돌을 연상케 하는 개간지 웃음을 선보이고 있었다. 참으로 개 같은 프로정신이다. 미리 당첨된 500명 보다 구경하러 모인 팬들이 더 많아 순식간에 야외 이벤트홀이 자연스럽게 개판 5분 전으로 질서 없지만 아름답게 꾸며졌고, 당첨된 자와 구경꾼의 경계선이 애매모호해지기 시작하자, 위대한 경호 업체들의 주둥이, 손, 발들이 그에 비례하게 과격해지기 시작했다. 저 꼴을 보고 있자니 곧 팬사인회가 시작이라도 하나 보다. 대부분 당첨자들 95%이상은 10대 학생과 20대들이었고, 그들의 다른 점은 10대에서 20대 초까지는 자기 존재를 어필하느라 득음을 목표로 한 목청과 서포팅 굿즈들을 흔들어댔고, 간간히 일코 흉내를 내는 얌전해 보이는 20대 후반들은 그런 그들을 향해 얼굴을 붉히며 나는 아니에요 라며 정색을 했다. 반응 좋은 MIROTIC 앨범에 대해 곧바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자, 시간지체 없이 팬사인회가 시작되었다. 한정된 팬사인회 였기 때문에 스피드가 생명이거늘, 하나하나 상냥하게 대답해주느라 느려터진 영웅재중을 보고 있자니, 속이 터지고, 하나하나 팬들이 전하는 말들을 버릇없이 대꾸 하고 있는 최강창민을 보니 열불이 났다. 내가 아무리 일찍 끝내도 저 두 화상을 기다려야하는 샴쌍둥이 흉내를 선보여야 하는 개 같은 팀이기에 정신없이 빨랐던 광랜급 템포를 따라서 늦춰야만 했다. 중간에 작은 틈을 이용한 곁눈질 레이저를 재중에게 손수 날려주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헤실헤실 잘도 방긋 쳐 웃으면서 팬들과 대화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교육은 같이 쳐 받은 주제에 쟤는 왜 저 모양인지 모르겠고, 난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고, 곁눈질조차 눈치 못 채는 저 놈은 왜 저러는지 모르겠고, 우리가 왜 같은 그룹인지 모르겠고, 우리가 왜 인기가 많은지 모르겠고, 남들이 왜 우리에게 열광하지도 모르겠다. 85명. 살짝 손목 스냅이 느려질 때쯤 경호업체 한명이 다급하게 누군가를 제지했다. 안 봐도 포르노다. 달려들었거나, 대놓고 전자기계 자랑을 했거나, 육두문자를 날렸거나. 사례는 매우 다양하나 결과는 거기서 거기다. 끌려가거나 울거나, 그런데 어찌나 두님들 다 목청이 청량한지 대화 소리가 라디오처럼 손쉽게도 내 귓바퀴에 걸쳐졌다. " 애완견과 함께 출입할 수 없습니다. " " 아저씨, 우리 샤키는 애완견이 아니라, 내 가족 이예요. 혹시 얘 뚱뚱한 거 안보이세요? " 무슨 의도인지도 모를 질문에 당황한 등치만 산만한 경호업체 신참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상대방을 쳐다봤다. 그러자 이 무슨 답답한 양반이 다 있냐는 듯한 표정으로 다시 주둥이를 고맙게도 열어주는 척 도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콧날은 하늘을 찔렀고 붉은 입술은 상대방 배려 없이도 술~술 나왔다. " 우리 샤키가 집에만 짱박혀 있어서 개 관절이 위험해요. 그래서 이렇게 목에 줄이라도 걸어서 질질 데리고 다니지 않으면 다 늙어가는 노인네마냥 집에서 눈만 치켜뜨고 먹기만 할거예요. 우리 샤키 아저씨처럼 살쪄서 죽어버리면, 아저씨가 책임 질 거예요? " 사람을 설득하려는 의지는 없어 보였다. 다만 자기가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내고 싶었던 것 같았는데 자신이 뱉은 말에 굉장한 설득력이라도 있는 것처럼 표정은 뻔뻔했고 어이가 없어 사인하다 말고 그곳을 주시했는데 나뿐만 아니라 이벤트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떠들썩하던 장내는 조금씩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대단한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몇 초도 되지 않아서 모든 사람의 이목을 주목시키고 귀를 기울이게 하고 궁금증을 자아내니 말이다. 쪼그만 게. " 어떤 사정이 계시든, 이곳에는 애완견을 데리고 오실 수가 없습니다. 오늘 팬사인회에 당첨되신 팬분들만 싸인 받으실 수 있으니까요, 좀 나가주시겠습니까? " 등치 산만한 경호원의 모습이 꽤나 답답했는지 한 손으로는 붉은색 개 줄을 단디 다시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넓지도 않은 가슴 주변을 탁 탁 치기까지 한다. 답답하다는 표시인데 그게 그냥 서툴러 보였다. 학예회처럼.. 겉모습만 따지면 중학생까지는 아니고 어려보이기는 한데, 머리스타일을 보면 대학생 같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좀 조그맣고 빨갛다. 빨갛다는 건 어디까지나 작은 등 뒤에 억지로 매어져있는 기타인지 첼로인지 바이올린인지 모를 광택 나는 소재의 케이스 때문이었다. 저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순간 궁금증이 앞섰다. 머리는 약간 짙은 밤색으로 비춰 보였고, 많이 짧지도 않은 길이에 앞머리를 많이 해본 모양새로 잘 올렸다. 좀 세련된 검정색 뿔테 안경을 썼고, 조금 자신의 몸 보다는 큰 다채로운 문양이 박힌 회색 후드티에 손목 부분에는 손의 반 이상을 가린 검은색 별이 박힌 토시를 하고 있었다. 추위를 잘 타는 타입으로 간주되었다. 단순한 추측이었다. 안경 때문에 눈매는 멀어서 잘 안보였고 그냥 그냥 작게 생긴 사내임은 분명했다. 저 꼴로 보아선 사인을 받으러온 팬은 아니고 분명 용산에 볼일 보다 우연히 마주친 연예인 구경하러 나온 일반 시민 같은데 또 그렇다고 하기엔 당당한 시선과 쇳소리 나는 목소리가 거슬렸다. 감기가 걸린 목소리 같기도 하고. " 아저씨, 내가 이거 당첨되려고 CD를 몇 개나 샀는지 알아요? 대학생이 얼마나 가난한데 몇 개씩 사게 만들고 말이야. 그리고. 개새끼 끌고 오면 안 된다고 당첨된 사람들한테 문자로 쏴줘야 알거 아니에요? 나는 그냥 다 죽어가는 우리 샤키 불쌍하고 또 불쌍해서 힘들게 꾸역꾸역! 데리고 억지로 나왔더니만! 개새끼 데리고 저만치 꺼져있으라니 이게 앨범을 여러장 산 팬을 대하는 태도가 정녕 맞나요? 아저씨 등짝에 박혀있는 강한친구들은 전부 이런식 인거예요? 친구들 빼고 강한 한나라당이라고 박던지! 어쨌든 난 종이컵 사장 아들 아니거든요? 우리 샤키도 촛불사장 애완견 아니거든요? " " 아, 당첨돼서 오신 팬이십니까? " " 응.. 네 " 순간 웃음이 터졌다. 응, 네는 뭐란 말인가. 추리 소설급 반전으로 팬사인회에 당첨된 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어버버 거리는 신참에게 뒤에서 최종태 과장은 빨리 수습하라는 뒤늦은 손동작을 선보였다. " 표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어느 멤버에게 응모하셨습니까? "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들으나 마나 영웅재중이겠지만, 재중은 병약한 미소년 이미지로 많은 2, 30대 팬들도 많았지만, 남팬들이 죽을 치고 자주 기다리곤 했다. 처음에야 손발이 오그라들고 소름이 돋아 육두문자를 창조해서 재중이 아닌 제 3자가 내뱉기에 충분한 나날들이 있기도 했는데, 이제는 얼굴 하나하나 기억하며 대신에 아는 척하기 바빴다. 남팬들은 의외로 순종적이고 꽤나 신사적인 매너들을 가지고 있었고 의외로 다들 멀쩡하게 생긴 놈들이었다. 규칙대로 행동했고 절대로 누가 되는 일들, 사생이라던가. 스토커라던가 그런 짓들은 하지 않았다. 오로지 공방이나 팬사인회를 가끔씩 방문할 뿐, 그런데 저 녀석은 경호원의 질문에 정적을 세우며 자신의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표를 찾는 건지 정말 뜸들이기 예술이다. 슬며시 지루해 지기 시작했는데……. " 동방신기에서 이마 넓은 애 " " 예? " " 이마 넓은 애 있잖아요, 콧구멍 크고. 아저씨는 그런 것도 모르고 경호해요? " " 아.. 이름은 모르시나요? " " 네. 표는 여깄어요- " 조용했던 야외가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고, 옆에서 입술을 깨물고 있는 재중과 대놓고 한쪽 눈을 찡그리고 웃고 자빠져있는 창민과 그 녀석에게 옆에서 소곤소곤 내 이름을 말해주는 존나 착한 내 팬들과 표를 가져간 경호원의 입꼬리까지. 나만 빼고 모두가 한통속으로 웃음을 참거나 참지 못해 울거나 같은 시추에이션으로 나를 희롱하고 있었다. 저런 쥐방울만한 새끼가 첫 팬사인회에 제 발로 걸어 들어와서는 나의 비굴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그 비싼 CD 몇 개씩 사서 당첨되었으면, 번호 들고 곱게 튀어오면 될 것을 내 이름도 모르는 새끼가 당당히 나타나서는! 순간에 올라오는 욱스런 뜨거움이 억지로 올린 입꼬리 경련으로 이어졌고, 거 참 재밌는 팬이라며 억지로 웃는 내가 씨발스러워서 고개를 접시에 쳐 박고 죽는 시늉이라도 하고 싶어졌다. 개친절해진 경호원은 내 라인 앞으로 녀석을 상냥히 세워주었고, 덩달아 샤키인지 씨발키인지 개새끼도 옆에 두고 당당히 그곳에 서 있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나와 녀석의 눈이 마주쳤지만 저 새끼는 분명 내가 믹키유천인지 모르는 게 분명하다 는걸 알았다.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내게 오는 시선은 단 1초도 머물지 못한 채 금방 지 개새끼한테 갔다. 그래 내가 저 뚱뚱한 개만도 못하다 이거지? 난생 처음 별의 별 팬은 다 만나 어이없어 봤지만 저런 럭비공 같은 사내새끼는 또 처음이라 감춰진 핏줄이 사정없이 튀어나왔다. 다시 주머니를 뒤적거린 녀석은 빨간 츄팝춥스를 그 경호원에게 넘겨주며 거대한 팁을 준거마냥 얄밉지 않게 웃어주는 완벽한 마무리까지 선보였다. 브라보! 시간을 끌기위한 팬들의 테크닉은 날이 지날수록 태연해지고 뻔뻔해지고 대단한 상황극을 연출시켰다. 다 PD해도 될 지경이다. 어려운 발음의 이름을 말해서 여러 번 대화를 시도 하거나, 정말 나지도 않는 기억력을 저 밑에서 부터 억지로 끌어 올리며 저 기억나죠? 라며 되새김질해주는 끈질긴 유형, 다짜고짜 눈물부터 쏟아내고 달래주느라 시간을 잡아먹는 뛰어난 연기력 유형까지. 나날이 팬사인회 문화가 다양해지고 있는 건 맞는데 이 자식은 내가 개 알레르기가 있는 아주 최하급 기본상식도 모른 체 말 그대로 몸뚱아리 산만한 개새끼를 끝까지 끌고 올라와서는 나를 뚜렷이 쳐다보고만 있다. 하? 덩달아 지지 않을 기세로 그 시선을 당당히 주시하고 있는데 코끝에서부터 야금야금 기어 올라오는 간지러움에 우려했던 재채기가 시작되었다. 한번 시작되면 눈물이 쏙 빠지도록 멈춰지지가 않아서 급하게 코와 입을 손으로 막았고 눈싸움은 둘째 치고 빨리 내려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이름부터 잽싸게 물어봤다. " 이름? " " 얘 샤키. 못 들었어요? 샤.키.요. 우리 집 강아지 " 몹쓸 고막을 가지고 태어난 모양인지 몹쓸 지능과 함께 개새끼 이름을 대답을 해주는 테크닉을 선보입니다. 네~ 네~ 이 선수 세.개.올림픽 금메달감 입니다.~ 못 들었냐며 나를 병신 취급한 뒤 두 번이나 또박 또박 상냥하게 발음하는 놈의 목소리에 울컥 쌓인 짜증이 치밀었고 동시에 다시 한 번 제어 안 되는 재채기가 나왔다. 에엣취! " 그쪽 이름이 뭐냐구요. 그래야 내가 사인을 하던가 하죠. " " 아 내 이름이요? 이름도 적어주나요? " 질문을 싹 잘라 다시 물었고, 이를 물고 혀를 깨물어서 또 다시 기어 나오려는 재채기를 참아냈다. " 이. 름. ? " " 앙리 콧구멍 " 에엣..취!! 엣에...취!!!!! 2단 콤보 재채기였다. " 뭐라고???????????? " " 귀 덮은 머리 좀 잘라요. 앙.리. 콧.구.멍.이.라.고. " " 너 왜 반말이야? " " 언제요? " " 방금. " " 응? 언제요? " " 너 몇 살이야? " " 넌 몇 살인데? " 어쭈 또 반말? " 너 이름이 뭐야? " " 넌 이름 뭐야? " " 너 진짜 내 이름도 모르고 여기 왔냐? " " 내가 왜 니 이름을 알아야 해? " " 여기 왜 왔어? " " 당첨돼서 " " 앨범은 왜 샀어? " " 내기해서. " " 내기? " " 응. " " 무슨 내기? " " 내가 왜 이걸 너한테 설명해야 해? " " 해. " " 난 모르는 사람하고 대화 길게 안 해. " 다시 한 번, 4단 콤보 재채기가 나와서 어쩔줄 몰라하는 제스처와 함께 우스운 꼴이 되었다. 엣취!! 에엣취!! 엣취!! 에.......취!!!!!!!! " 에이.. 찌지! 앨범에 네 침 튀었어.. " 정말 불그죽죽한 토사물마냥 인상을 찌푸리며 한발자국 물러섰다. 쪽팔리게 자존심 상했다. " 나 개새끼 알레르기 있는 사람이거든요? 꼬마야. " " 내가 왜 꼬마야? 키도 그냥 저냥 이면서 쟤처럼 크거든 말해. " 옆에서 킥킥 거리느라 시뻘게진 창민을 가리키며 말한다. 이때 조금 위안이 되었던 것은 최강창민 이름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왜 이런 걸로 내가 이 순간 위로를 받는 거지? 그런데 이 쥐방울만한 새끼는 끝까지 한마디도 안지고 대들었다. 사람 속 뒤집는데 에 일가견이 분명 재수 없게도 있었다. 그런데 말할 때마다 코끝이 간질거리다 못해 아파오기 시작했고, 이대로 가다가는 재채기 하는 면상이 고화질로 모든 블로그에 도배되는 엿 같은 불상사가 일어날 테니, 그 동안 쌓아온 이미지 다 날아가기 전에 참을 忍자를 아랫입술로 깨물어 그리며 참았다. 나는 대인배다.. 나는 대인배다.. 나는 대인배다.. 라고 외치며 말이다.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쟈켓에 정확히 갈겨써줬다. 난 분명 앙리 콧구멍이라고 써줬다. 다만 존나 갈겨써서 모르는 이들은 이 글자를 해석하려면 100분 토론을 통해서만이 가능할 정도였을 뿐이었다. 딱 그 정도뿐이었다. ' to. 앙.리. 콧.구.멍. ' 멍이 끝남과 그와 동시에 소매치기처럼 쟈켓을 낚아채듯이 뺏어갔고 미련 없이 등 돌아 계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속이 뒤틀려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정말 미련 없는 동작이었고 1초의 고민 없이 야외 이벤트 홀을 빠져나갔다. 뒤 한번 안돌아 보고. 고맙다는 인사커녕 하지 않고 말이다. 녀석이 내게 주고 간 건 비참한 비굴 시리즈와 찌질 해 보이는 멈추지 않은 재채기뿐이었다. 10분이었는데 10일처럼 온 몸이 노곤해지고 피곤함이 급쌓였다. 그렇게 끝나지 않은 재채기로 클로우징 멘트는 창민과 재중이 대신 해주었고, 재빠르게 이곳을 빠져나갔다. 첫 팬사인회 치고는 너무 과격했다. § " 유천아 - 이거 봐바 " " 뭔데. " " 아 귀여워.. " " 뭔데. " " 이거 보라니까? " 핸드폰에서 두더지를 중독성 있게 족치고 있는데 이리 와서 보라며 자꾸만 나를 재중이 채근한다. 이제 마지막 단계만 남았다고. 뭔데. 좀 기다리라고. 다시 얍삽하게 대가리를 숨기는 두더지를 찾아 정신을 놔버리고 있는데 가만히 옆에 앉아 있던 최강창민의 짜증스런 웃음소리가 결국엔 신경을 기어이 거슬리게 해 집중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천하에 도움도 안 되는 씨발새끼. " 크흐흐크흐으크학하하으학 존나 귀엽게 나왔다. " " 얘 너무 귀엽지? 생긴 것도 귀여운데 나 저 토시 너무 귀여워. 손도 조그맣구.. " " 나 아랫배 꼴려 존나 웃겨요 크흐으크학하하으하.. " 창민의 얼굴은 안 봐도 화산처럼 들끓고 있는 상태였을 거다. 마지막 단계의 중독성 터치감을 끌어올려야하는 중요한 시점에 저 새끼들 낚시성 유혹 말투 때문에 순식간에 집중력이 흔들렸고, 초고속으로 시간 투자한 것 치고는 점수가 높지 않았다. 니미. 만족스럽지 않은 점수에 폰을 미련 없이 소파에 집어던지고 노트북을 향해 앉아있는 둘에게 다가가 모니터를 보았다. " 야 뭐냐 이 새끼 ? " 어제 만난 앙리 면상이 동네한바퀴 사이트에 하나둘씩 올라와 있었고, 그 어떤 방대한 자료보다 많은 코멘트가 도배가 되어있었고, 다들 먹잇감을 노리는 하이에나처럼 하악 하악 거리며 애기야.. 누나야.. 를 외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심술과 동시에 짜증이 났다. " 유천아, 직캠도 올라왔다 볼래? 나 멀어서 잘 못 봤는데 얘 되게 귀엽게 생겼다. " " 앙리 사진이 왜 여기에 뜨냐고. " 이제야 웃음을 멈춘 최강창민은 급정색까지 하며 숨을 쉬지 않고 곧바로 듣기도 싫은 변론을 비꼬아대며 읊는다. 하여튼 촌철살인 대놓고 덤빈다. 너무 얄미워서 콰악! 대가리를 갈기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 오늘 아침에 네이버 검색어 1위는 믹키유천 콧구멍, 2위는 믹키유천 남팬, 3위는 믹키유천 용산, 4위는 믹키유천 재채기 각종 포털 사이트에 믹키유천님 재채기 고화질 사진들로 도배가 되고 각종 UCC에는 남팬 직캠들이 돌고 돌아 지금은 인터넷 감시단들이 남팬 싸이를 파헤치고 있으나, 흔적도 증거도 없음. 믹키유천의 이름도 모르는 모군은 과연 팬인지 고도의 안티인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 많은 네티즌들은 그를 옹호하고 귀엽다. 오냐 오냐 예쁘다. 오냐오냐 우쭈쭈쭈 하며 모든 내새끼. 내새끼. 모든 엄마로 나서고 있음. 그래서 유명해진 면상이 사이트까지 점령당함. " " 너 지금 재미 좋아 죽겠지. 아주 그냥 아랫배가 싸하게 맛 들였지? " " 크흐흐크흐으크학하하 웃음이 안 멈춰요. " " 창민아 너 너무 대놓고 웃지 마. 유천이 재채기 고화질 사진 돈거 보면 너 웃으면 안 돼. 불쌍해. " " 야 김재중. 넌 입꼬리 내리고 말해 새꺄. " " 티났어? 미안.. " " 개새끼들 이게 무슨 그룹이야! 우린 하나라며? 씨발 저 앙리 고도의 안티인 게 분명해. " " 형.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초딩도 포르노를 손쉽게 퀵으로 받는 이 바람직한 공유문화 나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손쉽게 듣는 음반을 왜? 도대체 왜? 돈을 주고 삽니까? " " 씨발, 내기했대잖아. 무슨 내기지? " " 제가 그걸 알면 이렇게 웃겠어요? 크흐흐크흐으크학하하 " 얄미운 새끼. 저 새끼는 야금야금 긁어 긁어다가 내 남은 모든 짜증의 근본을 끌어내는 능력을 가졌다. 사람을 이리저리 쥐 흔들어 희롱한다. 나쁜새끼. 씨발새끼. 개노무새끼. 새끼 새끼 하니까 그 개새끼 생각나네. 씨발. § 잘 버틴다 싶더니만, 결국엔 봇물이 예고 있게 터졌다. 4집 앨범이 기대 이상으로 대박 났고, 예상했던 스케줄의 몇 배로 프로모들이 잡혀 들어왔다. 이곳이 서울인지 부산인지 제주도인지 실미도인지 내가 누군지 내가 무엇을 하는지 조차 가늠할 수 없는 나약한 정신상태 속에서도 스케줄은 강행되었다. 정실장이 아시아쪽 출장을 간지도 벌써 열흘이 지났다. 하루에 2시간 내지는 길게는 4시간을 그것마저도 벤 안에서 쪽잠을 자야했던 상황인 만큼 입은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졌고 식욕은 공복감이 편할 만큼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매니저가 챙겨주는 자양강장제, 영양드링크등 각종 비타민 약들을 복용하며 견뎌내고있는 창민과 나와는 다르게 재중의 식욕은 나날이 부진했고 잦은 두통과 복통까지 호소하고 있었다. 그래도 정실장 없이 꼴랑 열흘 잘 버틴다 싶더니만, 아니 그건 둘째 치고 정실장 없다고 기획사에서 아주그냥 살판들이 난 모양이다. 동전 넣고 돌아가는 기계도 아니고 적어도 집에서 잠은 자게 둬야할거 아니냐고. 이딴 식으로 빡세게 돌려놓고는 카메라 보고 개쳐웃으라니. 이런 씨발스런 직업이 또 어디에 있을까 싶은 상실감에 의욕마저 떨어졌다. " 재중이는요? " " 안먹는댄다. " 설득해도 소용없었는지 담배만 쪽쪽 빨아댄다. " 머리채 잡아서라도 끌고 오죠? " " 아까 먹은 음료수도 토했는데, 저번에도 자꾸 못먹길래 억지로 먹이고 토하고 먹였는데 병원에서 이런 게 더 위험하다고 하더라고. 의사가 그냥 두라잖냐. " " 저 새끼는 꼭 잘한다 잘한다 예뻐 해주면 뒤통수 깐단 말이야. 정실장은 언제 온대요? 우리 이렇게 빡세게 돌림당하는거 알고나 계신 거예요? " " 아침에 들었을 때는 지금 일본이라고 했는데, 성과가 좋았나봐 덩달아 일정도 길어지고, 곧 금방 오겠지. " " 씨발 애는 피죽도 못 먹고 버티고 있는데. 확 짜증나네. " " 정실장이 니들 이러고 있는 거 알면 이렇게 조용하겠냐? " " 그건 저도 알아요. 그니까 정실장 오기 전에 쟤 좀 어떻게 해봐요. 볼 때마다 해줄게 없어서 기분이 엿 같아요. " " 나도 그러고 싶다. 병원에 가서 링거 3시간 맞고 나오면 뭘 해. 뭘 먹어야지 버티고 정신 차리지. 지도 답답한 모양인지 먹은 거 토하면서 눈물 뚝뚝뚝 잘도 흘리더라고. 옆에서 보는데 진짜 욕 나오더라. " " 저 새끼는 버릇이나 빨리 고쳐야 해요. " " 무슨 버릇? " " 정실장 손 타는 거요. " " 어릴 때부터 졸졸 강아지 새끼마냥 정실장만 따라다녔는데 그게 매정하게 끊어지겠냐? " " 지금 매정하게 끊으려고 하니까 쟤가 자꾸만 아픈 거잖아요. 독한새끼. " 높고 살이 없는 날카로운 코는 어딘지 먹이를 찾고 있는 사나운 독수리를 연상케 했고 실제로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연습생들을 독설로 잔인하게 단련시켰다. 그의 말에는 부풀린 포장도 거짓된 수식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본 정석 그대로 딱 그 정도만 내뱉었지만 그의 말로 인해 나눠지는 건 딱 두 종류의 인간들이었다. 살아남거나, 연습실을 뛰쳐나가거나. 그가 뱉은 독설의 유형은 여러 가지였지만, 그의 말에 흔들리는 내 눈동자에 반면 꿈을 믿으라는 그의 진실 되고 정확한 표정에서 나는 실낱같은 희망을 다시 잡아 보기도 했었다. 27살. 어린 나이에 어느새 기획사의 주식을 뒤 흔드는 실질적 중요 인물이 된 정실장은 그러한 높은 위치 속에서도 우리들만큼은 끝까지 옆에 끼고 애워샀다. 그가 이룬 첫 꿈이자, 그의 성공의 발판이 된 희생자이자 그림이자 평생 깨질 수 없는 그의 꿈이었다고 인터뷰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그는 늘 정확하고 현명했으며, 난 언제나 거리낌 없는 그의 눈길이 늘 부러웠다. 그는 절대 어중간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더불어 그의 독한 입술에서 뱉어지는 달콤한 칭찬은 공교롭게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무것도 안한 채 걸어가는 뒷모습만 봐도 당당해 보이는 그는 우리에게 낙원같이 멀리서만 보이는 환상과도 같았다. 가끔은 비현실속 인물처럼 차갑게 여겨지는 일도 일쑤였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하나의 약점은 존재했다. 미주알고주알 하루가 다르게 1분 1초의 타이밍이 중요하게 까발려지는 이 험난한 세계에서도 김재중 만큼은 도시의 야생화로 키우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야생화가 그 차가운 도시 속 아닌 곳에서는 앙상하게 말라 비틀어져 금방이라도 죽을 기세로 덤벼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건넨 따사로운 햇살이 그에게 독을 심어다 주었다. " 야 김재중. 매니져형이 죽 사왔어. 이거라도 먹어봐. " 벤 맨 뒷좌석에서 앉아있는 재중의 두 팔은 있는 대로 축 아래로 늘어져 있었고, 손 하나 까딱하기 힘든 모양인지 고개 하나 젓지도 못해서는 끙끙 앓는 소리만 내고 자빠졌다. " .. 안 먹을래 미안. " 후... 미간에 주름이 잡히기 시작했다. 신경질적으로 욱하고 나올 뻔한 음성을 뒤로했다. 성질 죽이자. 죽이자. 죽이자. " 야. 한 수저라도 입에 넣어보고 말해. 따뜻할 때 바로 먹어야 해. 이거 금방 불어. " 픽 쓰러져있는 고개를 돌려 똑바로 세워주자 납덩이처럼 무거운 눈 커플을 겨우 뜬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금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금방이라도 떨어질 기세로 나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은 협박을 해본다. 그것은 재중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 .. 먹으면 토할 것 같아서 그래.. " " 주둥이 열어. 먹.으.라.고. " 재중을 노려보며 이를 바득 갈아대며 말을 했더니만 다시 자리를 잡고 눈꼬리에 겨우 매달려있는 눈물을 닦아냈다. 소량의 죽을 수저 위에 올리고 꽉 다문 입 앞으로 죽을 올려주자 조개처럼 꾹 닫힌 입을 마지못해 열었다. 금방이라도 닫힐 것 같은 입술 때문에 잽싸게 수저를 입 속으로 넣어주자 다시 앓는 소리를 내며 한입 받아먹는다. 씹을 것도 없는 죽이건만 몇 십번씩 입을 움직이고 나서야 목울대가 움직였다. 드디어 한번 넘어간 모양이었다. 그래도 먹어준게 기특해져 다시 소량의 죽을 떠 수저를 들이 내밀자 인중의 주름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한 번도 했는데 두 번은 왜 못해? " 오늘 마지막 스케줄 라디오 였으면, 내가 억지로 안 먹이는데. 무대야. 춤 춰야한다고. 그러니까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해. 쓰러져도 저 위에서 쓰러져. 이런걸 직업이라고 좆빠지게 달리는 거 억울하기라도 하면 당장 주둥이 열어. 콱 쑤셔 박기 전에. " 재중의 원망스런 눈빛을 무시했다. 적어도 나 한 놈이라도 이 녀석 버릇을 고칠 수만 있다면 흔쾌히 이런 역할쯤은 거뜬하다 이거다. 힘겹게 넘기는 즉시 죽을 그 후로 여러 번 넘겨주었고, 마무리로 깔끔하게 영양제와 비타민 드링크를 먹이고 1시간 정도 재울 수 있었다. 하지만 하란다고 진짜로 무대 위에서 쓰러진 녀석을 보자마자 제대로 헛웃음이 나왔고 재빠르게 업혀가는 녀석의 야윈 등은 아기처럼 조그마했다. 그 등을 보자 울컥 화가 치밀어 올라왔다. 혼자서는 밥도 못 먹는 병신새끼. 면상만 화려하지 뼈가 있는지 근육이 붙어 있는지 식도가 달려있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결국 김재중을 이기지도 못하는 제 분노에 짜증이 솟구쳐 풀어야할 상대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연락 한번 안하더니 다행히 전화는 받아준다. " 씨발 우리가 신용카드야!!!!!? 돈 없으면 좆빠지게 굴려놓고 적자 땜빵 하고!! 다시 배부르면 지하실에 처박아서 훈련시키고! 다시 돈 궁핍하면 개줄 목에 걸로 개처럼 굴려대고. 적어도 신용카드는 한도금액이라도 있거든요?????? " " 앞 뒤 다 말하고 설명해. " " 아니 무슨 해외출장을 열흘이 넘도록 싸돌아 다녀요? 우리 꼴랑 녹음 시키고 뮤비는 돈 존나 찍어 발라서 꿀리지 않게 화려하게 내보내고. 좋아! 준비 땅 달려! 하면 실장님 역할은 끝인 거예요? 이젠 뭐 다른 히든카드라도 생겼나봐요?? 왜 우린 엿같이 굴려놓고! 지조 없이 재수 없게 도망가요? 우리 스케줄 다 알고 있었죠? 그래서 미리 선수 친거야? 그런 거야? 그래서 한국 안오는거야? " " 지금 인천공항이다. 일정 길어진 거 전부 캔슬하고 귀국했다. 박유천. 너 얼마나 밤에 못놀았길래. 꼴사납게 징징거려? " " 혀엉. 제발 우리 집에서 잠 좀 자~자? " " 너 물고 늘어질 때마다 형 소리는 집어치워. 그리고 말 끝 늘리지 마. 못 들어줘. " " 아 씨발, 나 여기가 실미도인지 감옥인지 한국인지 아프가니스탄인지 모르겠다고요! 형이 우리 여기로 파병 보냈어?? 그런 거야??? " " 거기. 한국이야. " " 장난해??? 나랑 지금?????? " " 그래서 뭐가 불만인데. 서두가 길어. 자장가 불러 달라는 거야? 아니면 오프를 잡아달라는거야? 아니면 일 때려치우고 싶다는 거야? 아니면 스케줄 늘린 매니저 죽여버리라는거야? 뭐야 대체. " " 지금 재중이 많이 아파. " " 또 반말하지. " " 재중이 아프다고. 요.. " " 알아. " " 씨발, 알아 알아???????????!! " " 다시 반말하면 끊는다. " " 됐어. 내가 끊어!!!!!!! " 휴대폰을 집어 던지자 쾅 소리와 함께 배터리가 분리 되었다. 옆에서 머리를 젖히고 꾸벅 꾸벅 졸고 있던 창민이 벌떡 일어나 주위를 돌아보았고 씩씩 거리는 나를 향해 저거 웬 미친놈이냐? 라는 표정을 짓곤 다시 고개를 처박고 쪽잠에 빠졌다. 먼저 들어가라는 매니저의 말을 싹둑 잘라내고 링거를 맞고 있는 창백한 재중의 얼굴을 천천히 뜯어보고 있었다. 뼈마디만 앙상한 손목은 마치 어린아이의 손마디처럼 가늘었지만, 그 위에 여러 번 쑤셔진 바늘은 참으로 어른처럼 처참하게 냉혹했다. 병원의 숨 막히는 분위기가 짜증이 났지만, 지금 정이사가 한국이라는 사실에서 받는 위안감은 그 어떤 것 보다 강하게 나를 안정시켰다. 꼿꼿했던 고개가 점점 힘없이 아래로 추락했고 곧바로 수면제를 여러 번 투여한 사람마냥 깊은 잠에 비로소 빠질 수 있었다. § 물에 젖은 티슈처럼 온 몸이 축 늘어졌고 어딘가 들리는 목소리 때문에 눈을 떠야하는데 머리에 비해 몸이 따라주질 않아 인상을 구겼다.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고 이번엔 툭툭 볼을 때리는 손에 의해 천근만근 무거운 눈커플을 올리자 무표정한 얼굴로 정직하게 서 있는 정실장이 눈에 들어왔다. 잘생긴 얼굴이 정 떨어지게 재수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 차~암 빠르시네요? " " 정신 차리고 눈 똑바로 뜨고 벤으로 가. " " 지금 눈이 똑바로 떠지겠습니까? 입 아프게 다시 설명을 해줘야 합니까? 정실장님? " " 입 닥치고 벤으로 가. 창민이 기다리고 있어. 이제 집에 가자. " " 와! 우리도 집이란 게 있습니까? " " 지금 이죽거리지 마. 너 투정 받아줄 시간 없어. 빨리 안 나가? " " 눈물 나게 황송도 해라. 이리 귀하신 몸이 친히 우리 떨거지들 잠을 챙겨주시고.. " " 박유천. 너 혼자서만 건성건성 프로모 돌았던 모양이다? 내일부턴 저 둘은 쉬게 하고 혼자 어디 한번 실미도인지 부산인지 제주도인지 전국투어 돌아볼 참이야? 그러고 싶어 안달나서 지금 그걸 시위라고 하고 있어? " " 특기 나오셨네. 툭하면 협박질이지. " " 또 반말. " " 지금 뭐해? 재중이나 안아요. 집에나 가게. " 링거를 다 맞았는지 어느새 긴 주사바늘은 없어졌고 작은 대일밴드가 손목에 달랑 붙혀져있었다. 영양제와 동시에 수면제가 투여되고 있어서 재중은 정신없이 깊은 잠 나락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링거가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했다. 변한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이 보자 소름이 다 돋을 지경이었다. 검정색 슈트에 노타이 차림이었던 정실장이 슈트를 벗어 침대위에 내려놓고는 눈 주위에 다크서클이 선명한 재중의 얼굴을 쓰다듬고 이마의 열을 체크한다. 몸 체크하는 습관 나왔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재중의 이름을 버릇처럼 불러 깨워보려했다. " 재중아.. 김재중.. 이제 집에 가자. " 어느새 불편하게 주름진 미간이 평평해지고 재중의 얼굴이 조금은 편안한 모양새로 갖춰졌다. 마치 이 얼굴 표정이면 재중이 편하게 잠들었다 싶은지 꽤나 만족스런 얼굴을 한 정실장이 조심스럽게 재중을 앞으로 안아 올렸다. 가느다란 목을 한 손으로 받쳐 천천히 자신의 어깨위로 올려주고 조각 조각난 것처럼 자잘한 두 팔 근육으로 재중의 엉덩이를 받쳐 편안한 자세로 고정시켜주자 정실장 품에 딱 안성맞춤으로 말 그대로 한치의 틈없이 편안하게 안겨졌다. 그곳이 재중의 집이었다. 개버릇 정실장이 알려줬다. 개새끼. " 너 뭐해? 쟈켓 얹어. " " 응? 네. " 두 팔을 모두 사용한 정실장은 가만히 서서 뭐하냐? 라는 듯 나의 다음 행동을 채근했고, 정실장 시선 끝에 달린 쟈켓을 주어 재중에게 덮어주었다. " 집에 가자. " " 후.. 이제야 속이 시원하네. " " 너만 꽤 부렸지. 너만 살아있네? " " 무슨 꽤야! 내가 얼마나 대한민국을 날리고 다녔는데!! " " 응 봤어. " 새벽 4시. 병원복도는 잘 닦여 있어서 정실장의 구두 소리가 높이 울려 퍼졌다.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들의 어수선한 시선을 나는 뒤로했지만, 정실장은 조용한 침묵으로 간호사들에게 냉랭한 묵례를 하며 지나갔다. 그의 예의는 언제나 사람을 나누는 확실한 선이 존재했다. 조용히 닥치고 따라오라는 말을 무시한 채 터진 주둥이를 놀려댔다. 갑자기 잘생긴 얼굴 보니까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 정실장! 우리 프로모 다 봤어?? " " 또 반말. " " 정실장님. 보셨습니까? 우리~꺼? " " 말투 늘리지 말랬지. 너 이제 얼굴에 수염 나는 아이돌이야. 거울보고 말해. 난 못 들어 줘. " " 재중이한테는 안 그러면서 나만 보면 망언하더라? 요. 요! 요!!? " " 김재중 수염 없어. " " 이건 또 무슨 고집이야. 봤으면 봤다고 말하고, 못 봤으면 못 봤다고 말하지. 정실장도 독설할 사람 없어서 입이 아주 근질근질 거렸지? 나 보니까 왜 입이 꼴려?? 그렇게 나 놀리고 싶었어!? " " 반응하지 마. 자꾸 하게 되잖아. " " 그래서 봤냐고 우리 영상. " " 보긴 했지. " " 뭐? 1위한 거? 나 라이브 존나 잘하지? " " 아니 그거 말고. " " 그럼 뭐? " 한쪽 눈썹이 씰룩 씰룩 올라갔다. 옆얼굴을 덮은 구렛나루도 씰룩 씰룩 움직였고, 잔잔했던 입가가 살짝 올라가기도 했다. 이것은 조롱당하기 1초전이라는 긴급한 상황이라 여겨져 빠른 눈치에 두 팔을 올려 귀를 막아 세우기전 들리는 정실장의 말은 나의 모든 잠을 앗아가기에 전혀 부족하지 않은 발언임이 분명했다. " 재채기 고화질 사진. 이젠 영상으로 돌더라? " " 제 모니터 사양이거든요? 됐거든요? 빨리 좀 타실래요? 저 졸립거든요? " 마지막은 썩소로 마무리한 채 벤으로 올라타는 뒷모습을 보자 잊고 지낸 앙리 콧구멍의 괴담이 되살아나며 온 신경이 자극됐다. 잊을만하면 나타나고 잊을만하면 인기 검색어에 다시 보였다. 벤에 올라서자마자 재중을 안은 채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은 정실장은 천천히 의자를 뒤로 젖혔고 재중이 놀라지 않게 등을 천천히 두들겨 줬다. 중간 중간 누구의 품인지 머리가 인식했던 모양인지 나쁜 버릇처럼 칭얼거렸고 그럴 때마다 자세를 바로 잡아주며 머리를 쓸어주고 등을 토닥여주는 정실장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탁 막힌 숨통이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이제 정실장도 왔으니 집에 좀 가자. 발 뻗고 잠 좀 자자! § 건강상태가 너무 쇠진해진 재중은 결국 모든 스케줄을 취소한 채 병원과 숙소를 드나들며 휴식을 취해야만 했고, 병약스런 미소년 이미지였기 때문에 프로모 일정에 큰 타격은 없었다. 열흘간의 미친 스케줄을 훑어본 정실장은 기어이 관리 매니저를 갈아치웠고, 멀쩡히 배틀로얄에서 살아남은 나와 창민을 팬사인회 덩굴 속으로 쳐 밀어 넣었다. 어쩐지! 며칠 밤새 놀아도 눈감아주더니만! 이렇게 배 채워주고 바로 내보낸다. 개같은 타이밍 센스를 가졌고 대들지도 못하게 사전 방어 센스는 아주그냥 세계토픽감이 분명했다. 목동 핫트랙스에서 갖는 두 번째 팬사인회 역시 앨범발매를 기념하여 CD를 구입한 500명을 추첨하여 이루어졌다. 중복 구매가 가능했던 만큼 많은 팬분들이 팬사인회를 위해 여러장 사야만 하는 분노의 구매의욕을 선보였고 역시나 좋은 판매기록에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가볍게 검정색 뿔테 안경을 쓰고, 하늘색 남방위에 진회색 가디건을 걸쳤다. 편안한 복장 차림으로 와서 그런지 몸도 마음도 제법 가벼웠다. 사실 정확한 이유로는 전날까지 오랜만에 퍼부은 알콜능력이겠지만은.. 많은 인파들로 북적거리는 핫트랙스 안을 정리하는 경호업체들의 발걸음이 빨라졌고 곧바로 팬사인회가 시작되었다. 재중이 없어서 오늘은 손목스냅이 더 필요했다. 힐끗 옆을 돌아 창민에게 무언의 압박을 손을 가리고 복화술을 품위있게 날렸다! ' 스피드. 야 스피드? ' ' 너 나 잘 하 세 요 ? ' 말도 필요 없다. 진짜 개새끼다. 형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난 대체 누구에게 무엇을 바란 것일까. 차라리 눈 속에 파묻힌 앙드레김을 찾는 게 빠르겠다. 어느새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는 실내에 이상한 기온이 감돌았고 찰칵 찰칵 터지는 플래시와 캠코더의 움직임이 다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곧바로 한명의 팬을 내려 보내고 그 시선 끝으로 눈을 돌리자 마법과도 같은 귀신과도 같은 앙리 콧구멍 그 개새끼가 핫트랙스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내 어이 상실한 눈깔은 그곳에서 멈췄고 덩달아 그 시선 끝에 꽂힌 창민은 또다시 새록새록 정확하게 기억나는 용산일을 기억하며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본격적으로 내고 있었다. 다행히도 쥐방울만한 새끼 옆에는 개새끼가 없었다. 이거 울어? 웃어? | 멈추지 못한 재채기처럼 그렇게 너를 만났다. | My Melody w. 킵 * * * 우리 집은 아무나 못하는 패가망신의 난을 일으키고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미국으로 내쫓기다시피 이민을 갔었다. 우리 엄마는 자장면에 밥까지 말아 드시는 분이었다. 비유가 무식하기 짝이 없지만, 언제나 당신의 인생이 먼저였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이민을 가서 내가 이뤄낸 업적은 몇 년 동안은 새아버지 밑에서 담배 살 푼돈이 없어서 술심부름을 담당했고, 나머지 몇 년 동안은 하루마다 상대가 바뀌어가는 엄마 곁에서 여럿 남자들의 신음소리를 구별할 줄 아는 보이스 해석에 매우 능한 아들이 되어있었다. 이때쯤 말하고 싶은 건, 결혼이란 존나 미친 짓이다. 아무리 이 시대의 최고의 어머니로 길을 닦아 놓은 신사임당일지라도, 한 여자의 인생을 소유할 수 있다는 법적인 형식이 깔린 결혼이란 건 적절한 보수조차도 없는 미친 예속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며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우는 거라고? 다들 좆까라 그래. 모든 사내새끼들은 기간이 하루든 몇 년이든 갖고 놀았든 진심이었든 그 여자를 한번 갖아 보면 자신도 모르게 횡포해지고 전부 내 것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쓸데없이 잔인한 소유욕에 불타오르게 되어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 잡은 고기에게 더 이상의 먹이는 필요 없다는 말이다. 물이 없어 헐떡이는 고기의 운명은 운 좋게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거나 죽거나. 별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만큼 소유란 굉장히 도발적이고 위험한 도박심리다. 그래서 난 자신의 인생뿐이었던 엄마의 인생을 쉽게 이해하고 존경했지만 용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나에겐 넉넉한 마음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말도, 대화도, 친구도 모든 게 통하지 않은 이민생활은 나를 더욱더 폐쇄적으로 소극적으로 변화시켰고, 나아지려는 의지가 전혀 없던 내게 시비를 걸어오는 백돼지, 흑돼지 녀석들은 충분히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투우사 놀이였다. 상대방을 어떤식으로 조롱하면 흥분한 주먹이 날아올지 분석했고 그럴 때마다 신기하게도 언어는 빠르게 늘어갔다. 이민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건 언어가 아니라 양육강식을 제대로 이해하면 됐다. 어디든 생존하는 이 따로 있고 죽어가는 이는 따로 있었다. 한대 맞으면 이빨을 부셔놨고 여러 명한테 집중적으로 터지는 날이면, 칼이든 쇠파이프 구별하지 않고 하루에 한 놈씩 잡아다 족쳤다. 어느 날에는 역겨운 냄새가 풍기는 음습한 거리를 우연히 지나가다 만난 마약상들과 총으로 무장한 갱들이 있었는데 이유 없이 동양인이라고 짓밟히다가 경찰서에 끌려간 적이 있었다. 얻어터진 건 나인데 억울한 표정을 짓는 갱들 얼굴에 토기가 쏠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도 엄마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원하던 방향대로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기다렸단 듯이 엄마는 내게서 손을 놨고 나는 짐을 쌌다. 별다른 짐은 없었다. 여건과 비행기 티켓, 바지 한 벌, 티셔츠 두벌, 운동화 한 켤레, 그리고 한국 돈 80만원이 전부였다. 엄마는 눈물겹게도 공항으로 마지막 길을 배웅해주었고 나는 엄마의 마른 등을 쓰다듬고 볼에다 키스를 하며 말했다. ' 지금처럼만 살아. 결혼 같은 거 하지 말고 자식 같은 거 낳지 말고 예쁜 옷 입고 예쁜 구두 신고 멋진 남자 만나. 그런데 나보다 행복하겐 살진 마. '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미련 없이 엄마 곁을 떠나는 길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도 그 일만큼은 후회하지 않는다. 다만, 나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의 가식스런 시선에 토기가 올라올 뿐이었다. § 핫트랙스 안으로 들어서는 앙리 녀석을 보자마자 오랜만에 심장을 도려내어 지우고 산 엄마 생각이 났다. 그리고 녀석의 엄마가 궁금했다. 안경을 쓰지 않은 녀석의 눈은 신기하게도 물방울을 연상케 했고 순하게 보이는 푸르도록 맑은 흰자위 까만 눈은 다정하게 반짝 거렸다. 그 아래 가녀린 선을 따라 둥글지만, 오뚝한 콧날은 녀석의 고결함을 뽐내고 있었고 침에 젖은 앙증맞은 입술 사이에는 앵두빛 혀가 내보였다. 고귀한 만큼 정직한 얼굴이었다. " 형 앙리 왔다. " 창민이 낮은 목소리로 복화술을 하듯 말했다. 개새끼 무슨 경매 하냐? 소근 거리지 마. " 씹새야 나도 눈깔 달렸거든? " " 형 오늘은 애완견이 없네? " 창민과 나는 일종의 육체이탈의 상태에서 손과 눈은 팬들을 향해 사인해주고 전하는 말들을 전부 다 알아들었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정신 놔버린 다른 인격으로는 녀석의 모습과 행동을 레이더망에 가뒀다. 유심히 분석하고 있는 내게 창민의 보이스가 다시 들려왔다. 저 개새끼가 자꾸만 재밌다고 옆에서 발작한다. 콧구멍 고화질 사진 전국에 돌아봐야 제정신 차릴 기세였다. " 형 밖에 많이 춥나봐. 코 봐, 존나 빨게 " 그래, 낮술 처먹었나. 루돌프 사슴 코같네. 저거 알코올 중독자 아냐? " 형 신발 봐 바, 존나 귀엽다. 남자 새끼가 어그 크흐하아학.. 재중이 형 봤으면 까무러쳤겠다. " " 억지로 형 소리 하지 마. 안 그래도 나 지금 스팀 받을 대로 받았거든? " 누구는 고추가 꽉 낑겨서 입기도 싫은 타이트한 스키니 블루진을 계집애처럼 잘도 입었는데도 바싹 마른 허벅지 때문인지 그마저 헐렁해 보였다. 길이가 약간 긴 검정색의 클래식한 어그부츠는 창민의 말처럼 녀석에게 잘 어울려 위화감 없이 매치되고 있었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앙상하게 드러나는 마른 상체에는 쇄골이 파인 블랙&화이트 단가라 스웨터를 입고 그 위로 길게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짙은 갈색의 후드야상점퍼를 걸쳤다. 비록 개새끼는 옆에 없었지만, 빨간 케이스 대신에 검정색 악기 케이스를 등 뒤에 매고 있었다. 훔쳐다가 그것을 볼모삼아 녀석의 정체를 파헤치고 싶은 충동이 다이렉트 스파이크처럼 일어 난 그때였다. " 아저씨이~ 안녕하세요~ " 친근한 옆집 아저씨를 해외 배낭여행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처럼, 아주 반갑게 인사를 했다. 얼굴을 보니 저번에 사탕을 건넨 경호원이었다. 막대 사탕을 빨기엔 강호동 헤어스타일이 눈에 거슬렸고 산만한 덩치에 비해 수줍어하는 얼굴의 조화가 제대로 쇼타콤같았다. 경호원의 슈트를 잡아당기면서 까지 아는 척을 하는 저 고도의 심리와 기술이 뭔지 의아했고 앙리 새끼가 귀여운지 허허허 웃어버리는 경호원을 보자 있던 어이도 달아났다. " 오늘도 싸인 받으러 오셨습니까? " 양쪽 귀에 꽂혀있는 하얀색 이어폰 한쪽을 빼내며 고개를 끄덕거리며 헤프게도 방싯 웃었다. " 아저씨이 장동건 닮았어요. " 강호동 보고 장동건 닮았단다. 눈빛도 예사롭지 않다. 놀리는 말투도 아니다. 저 새끼 뭐야? 진짜 무서워졌다. " .. 예?? 하하하 " 꼴에 희희낙락. 꿈같은 헛소리에 당황한 만큼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쇼타콤 이 개새끼야! 초딩한테 그런 소리 들으니까 좋냐? 저렇게 순진하게 웃는 새끼들이 더 무서운 법이라고 이 꼬맹아. " 아저씨는 동방신기만 경호하세요? " " 아니요.. 다른 연예인들도 맡고 있습니다. " " 아 그렇구나, 그런데 믹키유천은 경호할 필요 없지 않아요? " 가만히 기울인 내 귀가 헛되지 않게 내 이름이 튀어나온 순간이었고, 어느새 녀석 주변에는 눈 아플 만큼 많은 시선들이 다단계처럼 꽂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저 새끼는 모든 눈과 귀를 자기중심으로 돌릴 수 있다는 통제감의 매력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저런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디서부터 흘러나오는 것일까? 바로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 ..예? .. 왜요? " " 원래 이마 넓고 콧구멍 넓은 애들이 패거리 짓고 몰려다니면서 쌈질해요. 특히 쟤같은 몽타주는 웃으면서 때릴걸요? 쟤는 밖에서 맞고 다닐 만큼 성격이 좋지 못하다고 그랬어요. " 씨발, 어떤 새끼가! " 하하하 누가요? " " 제 친구 철수가 동방신기 3년 오덕후 인데요. 걔가 어제 말해줬니까 진짜일거예요. 아저씨만 알고 있으세요? 누설 금지예요. " 뭐?? 철수?? 초딩 교과서 씨나락까먹는소리하고 자빠졌네. 이 씨발놈들아, 여기가 단 둘만 있는 신성한 고해성사 장소냐? 다 들린다고 이 눈 뜬 장님들아! 같이 집중하던 창민이 우려했던 대로 매우 듣기 거북한 참지 못한 웃음을 자지러지게 웃다가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도망갈 자세로 조개처럼 주둥이를 꾹 닫고 내 시선을 피해 다시 숨넘어가도록 웃기 시작했다. 난 이상하게 저 새끼가 웃으면 고환이 땡길만큼 창피하게 기분이 나쁘다. 마치 내 귀중한 정력의 혼을 앗아가는 귀곡성 같단 말이지. 씨발새끼야 내 씨앗 내 놔! 농사는 내 몫이야! 그 이후로도 몇몇 사람들은 손주가 너무 귀여워서 죽고 못 사는 표정으로 녀석을 지켜보았고 그 경호원은 다른 업무로 급하게 핫트랙스를 빠져나갔다. 그와 동시에 심심해 졌는지 몸을 좌우로 까딱까딱 혼들어대던 녀석이 주머니에서 분홍색 닌텐도를 꺼내더니 초고속 집중력으로 게임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몇 분간 녀석의 행동을 주시하고 지켜본 결과 특이한 구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리가 아픈지 줄을 서다가 갑자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게임을 하다가도 뒷사람이 ' 앞으로 조금만 가주세요 ' 라고 부탁을 하면 다시 벌떡 일어나 야금야금 자리를 이동했고, 다시 앞사람과 사이가 멀어지면 뒷사람이 ' 저기..요.. 앞으로 가주세요.. ' 라고 다시 부탁 하자마자 다시 야금야금 앞으로 자리를 이동하다가 앞사람과 등이 부딪히면 그 자리에 멈춰서는 넋 나간 행동을 선보였다. 한 번도 게임 화면 밖으로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 집중력 쇼를 선보였고 계단으로 올라서는 그 순간에서도 현란한 양쪽 손가락을 이용해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눈이 살짝 풀려있었고 불그스레한 입술은 삐죽 앞으로 나와 있었다. 그리고 본인의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 이름? " 이것이야말로 육체이탈의 정석이 아닌가? 녀석의 얼굴을 보고 이름을 물었더니만, 여러 번 뒷사람에게 들은 ' 앞으로 가주세요 ' 라는 말로 제멋대로 재해석 하더니만, 찔끔 찔끔 다시 앞으로 이동하는 녀석을 보자마자 이런 개새끼가 다 있나 싶었다. 아직도 앙증맞은 두 손에는 닌텐도가 쥐어져있었고 한쪽 귀에는 이어폰이 끼워져있었다. 게임 소리가 밖으로까지 튀어 올랐다. 자꾸만 초딩에게 조롱당하는 느낌이라 점점 참기가 어려웠다. " 야 앙리. 사인 안 받을 거면 당장 내려가. " 시선은 여전히 게임기를 향해 있는데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고, 미간의 주름이 서서히 잡혀 들어갔다. 고개를 도리도리 꺾어질듯 흔들어대며 부정의 메시지를 보냈다. 저 개새끼가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 쫌만 기다려. 끝나. 끝나. 끝나. " 미쳤냐? 나보고 기다리라고? 나 믹키유천이야? 왜이래 아마추어 같이?? " 싫어. 너 내려가. " " 막판. 막판. 막판! 끝나. 끝나! 끝나가고 있어. "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못하는 서툰 초딩 같은 모습이었다. 게임은 끝내야 하고 사인은 받아야하고 동작을 멈출 순 없고 입으로라도 설득을 해야 하는데 ' 끝나 ' 만 떠오르고 이런 상황이 무진장 짜증났는지 신경질적인 손가락으로 자판을 누르고 있었다. 사실 이대로 내려 보내고 싶지 않은 심리는 저 녀석 보다 내가 더 강하면 강했지 덜하진 않았을 거였다. 녀석의 자극적인 모든 행동이 녀석을 궁금하게 만들었고, 잊고 지낸 내 엄마를 떠오르게 했고, 꾹꾹 자제하고 눌러 담았던 투우사 놀이가 간절하기도 했다. 어쩐지 그 어떤 것도 부족함 없이 소박한 기쁨마저 잃지 않는 사람처럼 평온한 얼굴이 잠재되어있는 과거의 나쁜 기질을 자극했고 나의 직업을 한순간에 천대받는 직업처럼 딴따라들 무대 뒤 속내를 다 안단 듯이 무시하는 도도한 얼굴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는 함께 있을 때는 심심할 틈이 없겠다는 호기심이 먼저인 게 분명했다. " 야. 여기 서 있어. " " 아씨! 끝나, 끝나, 끝나! " 우두커니 서 있는 녀석의 갈색 점퍼를 내 옆으로 잡아당겨 벌세우듯 끌어놓고 한참 기다린 다음 팬을 맞이하였다. 이상하게 슬며시 천장으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출 길이 없었는데 그 순간 창민과 눈이 마주쳤다. 씨발. 찹쌀떡 몰래 훔쳐 먹다 목에 걸려 죽다 살아난 사람처럼 헛기침을 여러 번 했다. 꼭 쟤한테 걸린다. " 야 뒷사람 기다리니까 넌 맨 마지막에 받아가. " 그제야 엉킨 뇌회로가 풀려졌는지 고분고분하게 순종적인 양이 되었다. 나름 사인을 많이 갈겼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만큼 줄 서 있는 팬의 수가 줄어들지 않았고, 가만히 벌서는 자세로 한참을 서 있던 녀석이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몸이 베베 꼬이는지 꿈틀 꿈틀 거렸고 꽤나 자신의 한계에 다다랐는지 오줌 마려운 표정을 하고 급하게 내 몸을 밀치면서 가까이 다가와 나를 밀어냈다. " 나 다리아파. 비켜봐. 비켜. 비켜. " 순식간에 반 이상 의자에서 밀려났고 반만 걸터앉아도 꽤나 다리가 풀어지는 모양인지 주름진 미간이 곱게도 펴졌다. 이 밑도 끝도 없는 우월감과 무개념이 절묘하게 결합된 이 생물의 뇌가 궁금했다. 이 새끼 혹시 정신지체아 그런 거 아냐? 아니야. 그러기엔 너무 멀쩡히 돌아다녀. 녀석이 넋 나간 순간의 틈을 이용해 정신없이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무의식중에 하는 대답치고는 만족스러워서 계속 입이 열렸다. " 너 왜 자꾸 내사인 받으러 와? " " 나 세장 받아야 해. 세장. 세장! " " 왜 ? " " 철수 줘야 해. " " 왜 ? " " 철수는 동방신기 오덕후니까. 3년. 3년. " 개새야. 너 한 번씩만 말할래? " 근데 왜 네가 받으러 와? 그 새끼가 받지? " " 내기했어. 내기. 내기. " " 그게 무슨 내기인데 ? " " 아 시끄러워~ 좀 조용히 해. " 개새끼가 얌전하다 싶더니만, 아직 갈 길이 멀었는데.. 쫌 만 더 말해줘 바. 대한민국의 철수를 다 뒤져볼까? 그게 더 빠를까? " 그럼, 너 이름 뭐야? 그것만 말하면 닥칠게. " 듣고 싶어 안달 난 얼간이처럼 녀석을 재촉했다. 오늘은 그냥 안 보낸다. 이미 너도 면상 팔릴 대로 팔렸고 너 정보 아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클래식한 건데 내가 그냥 알고 싶어서 묻는 거다? 이거 왜이래. 나도 아쉬울 거 없는 사람이야! 초조하게 대답을 기다리는 내게 너무나도 쉽게 입을 여는 앙리였다. 순간 당황해 딸꾹질이 자꾸 나오려고 했다. 안 돼! 오늘만큼은 딸꾹질 고화질 사양하겠어! " 김준수 " 자기 면상처럼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 생각했다. 김.준.수. 이름을 듣고 보니 그 이상의 신세계가 궁금해졌고 욕심이 생겨났다. 이대로는 못 보내지. " 야 끝나고 우리 숙소 가자. " " 내가 왜? " 개새끼. 교도소에 끌려 가냐? 미간 주름 곱게 안 필래?! 저걸 어떻게 곱게 데리고 가서 고문할지 1분 1초가 아깝게 유유히 흘러갔고 육체 이탈한 내 다른 몸들은 많은 방법들을 떠올려보았지만 이름 말고는 아는 게 없으니 나올만한 변명의 설득력이 없었다. 그런데 옆에서 여호와같은 신의 목소리가 나를 일깨워 주셨다! 오 주여- " 준수형, 우리 숙소에 예쁜 사람도 있고, 멋진 사람도 있고, 맛있는 것도 많고, 무엇보다 게임팩이 널려있어요- 게임 좋아하시죠? " 참 개같이 빠르다. 형이란다. 마음속으로 믿고 따르는 원칙이 없는 창민은 곧잘 줏대 없는 사람으로 쉽게 변신하곤 했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인가 보다. 그런데 게임이란 단어에 녀석의 눈썹이 꿈틀거렸고 베베꼬인 몸을 내 쪽으로 편안하게 기대며 잠시 고민하는 상태로 빠져들었다. 지름길은 의외로 단순한 거였는데 나는 생각지도 못한걸 창민이가 했다. 그래. 심창민. 지금 웃는 건 예쁘다. 이제부터라도 꽃으로도 창민을 때리지 말아야 겠다. 사랑이 넘실넘실 거렸다. " 숙소에 게임 많아? " " 응 존나 많아. 쌓였어. 너 갖고 싶은 것도 줄게. " 꽤나 유혹적인 제안이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입술을 연다. " 양념치킨은 ? " 뭐라는 거야 이 새끼. 갑자기 닭타령이다. " 뭐라고? " " 숙소에 양념치킨도 있냐고. " 옆에서 창민이 재촉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새꺄 고개 끊어지겠다. 그만 흔들어. 그런데 넌 왜 눈빛이 반짝 반짝 거리는데? 안 그래도 대답하려던 참이거든? " 어 많아. 치킨 많아. " " 사인도 해줄거지? " " 뭐?? " " 나 세장 오늘 퉁치게. 숙소 가면 나머지 한 장도 해 줘. 또 오기도 귀찮아. " 다시 창민의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였다. 해줘. 해줘. 해줘. 해줘. 말해. 말해. 말해. 말해. 어떤 새끼가 저 줏대 없는 새끼 꽃으로도 때리지 말래??? 선인장 어디 있어! 콱 쑤셔 박아 때리게! 가시 깊은 걸로 가져와 매니저! " 알았어. " " 그리고 집에도 데려다 줘. " 농사도 안 지었는데 이게 웬 수확?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도랑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고 수표 줍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집 알았으니 게임종료. " 알았어. " 내 대답과 동시에 게임이 끝났는지 한쪽에 꽂아둔 이어폰을 빼고 닌텐도를 접어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고는 다시 얼마 남지 않은 줄 맨 뒤로가서 선다. 꼴에 정직하다 이거지? 곧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녀석의 차례가 돌아왔고, 아무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사인을 하기 시작했고 이름을 한 번 더 물어봐주었다. " 김준수로 쓰면 되지? " " 아니? " 고개를 들어 녀석을 봤더니만 날 미친놈 취급하는 얼굴이라 그럼 뭘 쓰냐고 얼굴로 되물었다. 그러자, " 김철수 사랑해 라고 써 줘. " .. 아 씨발... 얼굴로 펜 던질 뻔 했다. 이를 갈았다.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눈을 억지로 치켜뜨고 웃었다. 침을 모아 뱉어지기 전에 얼른 삼켜버렸다. to. 김철수 사랑해. 역시나 빠른 손놀림으로 쟈켓을 앗아가곤 자기 품안에 쏙 넣는다. 마치 직인 찍힌 보증서를 숨기려는 눈빛과도 같았다. 건들면 미친개처럼 물어버릴 기세였다. 멍!멍! 존나 아프기도 하겠다? § 자고 일어나자마자 새벽 다섯 시부터 숨죽여 울어 재끼던 재중이 8시가 조금 못 되어서 결국 침대 시트에 구토를 했다. 어젯밤에 조금 먹고 잔 우유가 전부였고, 심한 열과 함께 탈수증상도 함께 일어났다. 하루하루가 위태롭고 안쓰러워 보여 인상을 구긴 매니저가 한참을 고민한 뒤 최선의 방법으로 정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버틸 만큼 버티려했던 이유는 열흘간의 공백의 타격으로 지금 정실장은 잠을 안자도 끼니를 걸러도 아무런 차질이 없는 로봇처럼 바쁜 일정들을 하루에 수십 개씩 소화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재중의 건강 체크를 안했다는 건 아닌데, 재중이 잠이 든 시간이거나 병원을 간 시간이 매번 엇갈려서 귀국한 이후로 재중은 정실장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 정실장님 상철입니다. " " 무슨 일이야 ? " 서류 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고, 중간 중간 여비서의 음성도 함께 들려왔다. 사무실 인가 보다. " 재중이가 또 구토하고 열이 심해서요, 지금 병원에 데려가는 길입니다. 시간되시면... " 중간에 정실장이 말을 가로막았다. 괜히 전화를 걸었나 싶어 빠른 후회감이 밀려왔다. " 어제 우유 먹은 게 전부일거야. 아침에 울어서 탈수증상 일어난 거고. 열 오르면 자꾸 잠만 자려고 하니까 자꾸 재우지 마. 회의 끝나면 9시 넘으니까, 40분이면 병원에 도착할거야. 그리고 간호사한테 혈관 찾기 어려운 애니까 잘 찾는 사람한테 맡기라고 꼭 전하고, 링거에 수면제는 빼라고 전해. " " 아, 네. " 구구단처럼 재중의 상태를 파악해서 조언하는 정실장은 그 어떤 의사의 치료보다 정확했고 단호했다. 급하게 끊겨지는 통화 종료음과 함께 벤 뒷좌석을 돌아보자, 역시나 몸을 축 늘어트리고 잠들어버린 재중을 깨워보기 시작했다. 재중아 눈 좀 떠라. 이번에도 잠들다가 정실장 얼굴 못보고 또 아플래? 차라리 지랄 맞은 박유천을 데리고 봉사려니 생각하고 데리고 다니는 게 낫겠다. 라고 한 번 더 생각되는 상철이었다. 소리 없이 울고 있기에 차라리 소리 내서 울라고 하면 눈에서 눈물이 더 쏟아지곤 했다. 병원을 가도 짙은 소독약 냄새나 풍기면서 의학 용어란 용어는 죄다 꺼내면서 결론은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스트레스와 정서불안이었다. 환자들에게 병원냄새를 풍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뿐이지, 어느 누구도 재중의 치료법을 가늠하지 못했다. § " 실장님 오셨습니까? " 무겁게 드리워진 커튼사이가 예고 없이 열리자 그 사이로 정실장의 모습이 들어났다. 시간을 보니 9시 30분이었다. 예상 보다 10분 먼저 도착한 윤호에게선 미약하지만 일정하지 않은 호흡이 느껴졌다. 달려온 모양이었다. " 왜 그런 표정이야? 아팠다고 지금 위세 떨어? " 정실장이 너 잠재우지 말랬어 재중아, 지금 오시는 길이니까 졸려도 눈 감지 마. 오늘도 못 보면 몇 일째야? 너랑 시간이 자꾸 엇갈려서 못본건데 오늘은 니가 좀 참아봐. 매니저 말에 온 몸이 아래로 꺼지는 무게감에 자꾸만 흔들리는 재중에게 상철은 계속 말을 걸었고, 정실장이 들어서자마자 핏기 없이 하얗게 질린 재중의 얼굴이 점점 홍조로 물들기 시작했다. 재중에게 정실장은 뛰어난 메커니즘이었다. " 아.. 저 그게 간호사한테 혈관 찾기 어렵다고 말씀 드렸는데도, 혈관을 계속 못 찾아서요. 고생 좀 했어요. " " 수면제는 뺐고? " " 네. " 붉게 달아오르는 반가운 홍조에 비해 재중의 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아무 말도 못하고 정실장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고, 마른나무같이 앙상한 재중의 손목에 여러 번 새겨진 주사바늘 자국에 정실장의 눈살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그 어떤 위로의 달콤한 말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 뭘 잘했다고. 글썽거려? " 작정하고 재중의 속을 긁는 듯 한 어투였고, 기어이 양쪽 눈꼬리 사이로 가득 찼던 눈물이 또르르 굴러 떨어져 내렸다. " 차 빼서 1층 정문에 대기시켜. 내가 데리고 내려갈게. " " 네. " 곧바로 얼마 남지 않은 링거를 체크한 정실장은 간호사를 불러 주사바늘을 빼게 했다. 주사 바늘을 빼고 상처 난 손목에 대일밴드를 붙였고 눈물이 왈칵 쏟아지려는 것을 막기 위해 재중이 입술을 잘근 잘근 물기 시작했다. 공허한 적막감이 병실을 빈틈없이 뒤덮고 있었고 심통이 난 듯 으르렁대는 재중은 입술을 삐쭉 내밀고 정실장의 일방적인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눈물이 창피해지는 순간이었다. " 아프다고 전화도 못하는 주제에 참긴 왜 참아? " 곧바로 연이어 터져 나오는 눈물을 재중은 가누지 못하고 정실장의 옷자락으로 창피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뜨거워진 눈가를 부드럽게 쓸어주며 재중의 눈물을 정리해주자 금세 눈물이 멈추었다. 상체를 아래로 숙여 신발을 신기고 목을 조심스레 받치고 몸을 앞으로 안아 올리자 빈틈없이 안겨왔다. 옷걸이에 걸쳐있는 재중의 긴 스웨터로 얼굴을 한가득 가리고는 다시 한 번 편한 자세로 고쳐 안아 올렸다. " 재중이 시집가서도 이렇게 형 자꾸 부를 거야? " 빈틈없이 안은 나약한 두 팔로 정실장의 등을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 시집 안가. 장가 갈 거야. " " 너네는 아파도 주둥이는 살아있더라. 팀웍 좋네. " " 우리가 언제. " " 저번에 박유천 기절해서 실려 가는 구급차 안에서도 자길 어디로 끌고 가냐고 욕은 잘도 하더라. " " 우리 창민이는 쓰러졌는데 큰소리로 입은 웃고 있었어. " " 거 봐. " 아직 내리지 못한 열 때문인지 재중이 입을 힙겹게 열 때마다 윤호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인마, 왜 자꾸 아프고 그래. " 형이랑 말하기 싫어, 자연스럽게 넘어가지 마. " " 뜨거워 죽겠다. " " 말 시키지 마. " " 뼈가 부딪혀서 골반도 아프다. " " 억울하면 살 찌워라.. " " 재해석 하네? 병약소년 이미지 말고, 구릿빛 건강한 근육 이미지로 살 좀 찌워서 후속곡에서 변신할까? " " 웃기지 마. 형때문에 웃기 싫어. 기운 없어. " " 닥치고 집에나 모셔라 이거군. " 다시 등이 꼬집혔다. 이번엔 살짝 힘을 주었다. 스웨터로 얼굴을 다 가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실장을 알아보는 사람들에게 나오는 추측은 단순하고 정확했다. 미로처럼 이리 저리 구부러진 병원복도에는 월요일이라 더욱더 많은 사람들로 넘쳐났고, 재중을 알아본 사람들은 자연스러운 일처럼 놀라지도 당황해 하지도 않고 유심히 재중의 마른 몸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 재중의 몸은 자연스레 바짝 긴장하여 딱딱해졌고 다시 편안하게 안아 올린 정실장은 재중의 머리를 감싸고 등을 쓸어주며 토닥여주었다. 그러자 다시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편안하게 늘어져 안겨왔다. " 형, 나 배고파. " 이렇게 빈틈없이 꽉 안아도 재중의 배는 단호하게 닿아지질 않았다. 얼마나 홀쭉한지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 상철이한테 미안은 하지? " " 내가 왜.. " " 꽤 미안 할텐데? " " .. ㅇ.. 왜.. " 점점 자신이 없어지는 목소리를 듣자 윤호의 웃음이 꽃잎처럼 흩어졌다. " 몰라서 묻는 거야? " " 자꾸만 토하는데 어떻게 먹어.. 침대에서 토하면 얼마나 찝찝한지 알아? " " 사무실로 찾아오면 좋았을 거 아냐. 형 바쁜 거 잘 알면서. " " 아니까 못 갔지. 형 바보야? " " 내가 시간 내서 가면 잠만 잔 주제에. " " 안 깨운 주제에. " " 아픈 주제에. " " 말 진짜 안 해. 말 시키지 마. " 더 이상 파고들 틈이 없는데도 더 깊이 안겨 들어온다. 내려간 스웨터를 다시 올려주며 찬바람을 막아 주었다. 왜 자꾸 파고들어. 추운가. " 이따가 상철이한테 고맙다고 해. " " 응. 나도 그런 거 안다 모.. " " 그래. " § 배달된 양념치킨의 값을 내고 있는데 배달 온 새끼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았고, 내 눈초리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소리냐며 얼굴로 묻는 오지라퍼 배달원에게 어색한 연예인 미소를 날리며 궁금증을 해소 시켜줬다. 씨발 나도 당황스러워. 이것이 세상에 진리다 색꺄. " 아, 투니버스 틀어놨거든요~ 하!하!하! " 그렇다. 지금 거실에서는 앙리 개새끼의 과학적인 애니메이션 웃음소리로 한가득 매워져 있었다. 들리는 대로 텍스트 번역을 하자면 ' 으하캉하항하항하학 ' 같은 일정한 기계소리였다. 특이하지만 정확했고 우렁찬 목소리에 놀란 배달원은 그제야 궁금증이 풀렸는지 ' 아~ 애니메이션 즐겨 보시나 봐요~ ' 라며 너스레를 떨고 나갔다. 개새야! 다신 안 시킨다! 튀겨먹어도 시원치 않을 오지라퍼 개자식아! 아비규환.. 벌써 3시간째였다. 깨끗하게 정돈된 거실은 아가 놀이방처럼 무질서하게 여러 가지 게임팩들과 과자 봉지로 어수선했고 이대로 두다간 머지않아 노다메 방으로 둔갑되는 건 1 더하기 1 보다 쉬운 일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등을 바닥에 눕고 실신하듯 웃고 있는 심창민의 사상이 궁금해졌다. 단순히 게임을 하고 있는 모습을 그 어떤 개그프로 보다 더 재밌게 감상하고 있다. 같은 그룹인데 씨발 소름 돋았다. " 으하캉하항하항하학! 주거! 주거! 다 주거!!! 으하캉하항하항하학! " 누워있던 심창민 환자는 바로 발작합니다. 네- 네 - 곧바로 상태가 아주 심각해집니다. 으하학으하하학으학하하! 창민아, 나 네 목청 이렇게 뛰어난 보물인지 이제 알았다? 그 목청 우쥬플리즈 라이브에 써먹어줄래? 널브러져있는 게임팩을 발로 뻥 치며 주변을 정리했다. 테이블 위에 치킨을 올려놓고 포크와 물티슈를 가지러 주방으로 갔다. 이제 목에 기름 좀 칠해주고 본격적으로 취조해봐야겠다. " 야. 치킨 머ㄱ.... " 홍길동도 땅을 치고 대성통곡하겠다. 형.. 우리 숙소에 정신지체아 두 놈 있어.. 어서 좀 잡아가. 잠시 주방으로 아 진짜 몇 걸음 가지도 않았거든? 끽해야 몇 걸음이겠냐고. 그런데 니미 등을 돌아서서 입을 연 순간 최강창민 양 손에 닭다리 1개 목 1개, 앙리 개새끼 양 손에 닭다리 1개 날개 1개, 양념을 질질 뭍혀가며 웃고 자빠졌고 가운데 무를 두고 엄청난 딜을 했다. " 참미나- 나.. 무 업시 닭 멋머거 " " 네. 네. 준수형 다 드세여~ 전 원래 무 안먹는 사람입니다. " 입에 침이나 바르고 구라 깔래? 저 개새끼 무 조금 오면 승질부터 낸 녀석이 내 머릿속 지우개를 연기하며 세계적인 선수 앙리의 비유를 맞춘다. 줏대 없이 잘도 웃기도 한다. 오늘 하루 동안 주특기가 아주 팡팡 터지네 그려. 먹잇감을 사냥하는 행위는 짜릿한 아드레날린을 유발하는 불확실성 하지만 아랫배가 싸한 긴장감을 맛보게 해준다. 기분이 최고조로 달성되는 이 순간이 바로 타이밍의 진리라고 여겨졌다. " 김준수. 그 철수랑 내기는 왜 했어? " " 맞교환 개념이지 " 분명 심창민 앞에서는 유독 새어 나가는 짧은 발음들이 내 앞에선 국어 듣기 평가마냥 또박 또박 정확해졌다. 사람 차별 하냐? " 그러니까, 내 사인하고 다른 물건하고 맞교환 한다는 거지? " " 응. 그런 셈이지. " " 그게 뭔데? " " 내가 정말 잘 아는데. " " 응. 잘 아는데? " 긴장되는 순간에 맥 풀리는 소리를 하고 자빠졌다. " 이 집 싸구려 기름 쓴다. " " 뭐? " " 내가 먹어보면 알아. 이 집 싸구려 기름 써! " " 니 주둥이가 더 싸구려거든? " " 뭐라고 ? " 아이들은 정말 귀가 밝다. 저만치서 치킨에 열중하는 새끼가 뭘 들을까 싶었는데 놓치지 않고 들었다. " 그러니까 철수랑 내 사인 3장이랑 뭐랑 바꿔치기 하려고 했어? " 가급적 다정하게 길게 풀이해서 설명했다. " 아 맞다! 우리 사인 퉁치기로 했지? 해줘 빨리. " " 귀 두 쪽 뒀다 뭐해? 내 질문은 안 들려? " " 들려. 사인 해주면 말할게. " 상황은 진화되고 바뀌어 가야 정상인데, 딜을 해야 하는 순간에는 과감하게 덤볐다. 똑똑한 자식. 펜을 가져와 또 다른 쟈켓에 사인을 하기 시작했고, 도대체 얘는 당첨운이 얼마나 좋기에 두 번씩이나 사인회에 등장했는지 궁금해졌고 혹은 얼마나 많이 쳐 샀기에 넘쳐나는지 또한 궁금하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건 내 팬이 존심 상하게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자식은 연예인을 그냥 옆 동네 백구로 대하는 센스를 발휘했고 내 앞에서 긴장을 타거나 설레어 한다거나 신기해야 한다거나 그런 눈빛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냥 저와 같은 또래의 미친놈으로 바라봤으면 바라봤지 걸러내지도 의심하지도 신기해하지도 않았다. 그 점이 조금은 나를 만족스럽게 했다. " 이번엔 뭐라고 써? 철수야 사랑해 까지 나왔으면 다음은 뭐 내 아를 낳아도? " " 미친놈. 뇌가 썩었어. "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나를 미친놈 취급하고는 꼭 꼭 숨어있는 화장실을 잘도 찾아간다. 손을 씻으려는 모양이었다. 떨어지는 물기를 아무렇지 않게 바지로 쓱쓱 문지르더니 다시 게임기를 잡았다. 씨발놈아 사인 퉁치자매! " 철수야 양념치킨 사줄게 라고 적어줘. " 예상을 하면 안 된다. 하는 족족 당하고 나만 상처받는다. 내가 돌았지 니가 뭐라고 다음 말을 예상하고 지랄이야? 꽤나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재촉한 녀석에게 쉽게 수긍하며 적었다. to. 철수야 양념치킨 사줄게. 종합하면 앙리콧구멍, 철수야 사랑해, 철수야 양념치킨 사줄게. 놀리는 건 아닐 거다. 그냥 그냥 저런 미친놈일거야. 튀고 싶어서 환장한 발상이 그래. 발상이 남들 보다 존나 뛰어난 4차원이라고 생각하자. 그러자. 그러자. 그런데 씨발 왜 이렇게 존심 상하지. 본격적으로 녀석에게 들은 이야기에는... 김철수는 김준수와 같은 동갑이었으며, 닭사모를 통해 사귄 나름 베스트프렌드라고 그 부분을 유독 강조하며 내게 말했다. 처음에는 닭사모가 뭔지 몰라서 ' 그게 뭐냐? ' 라고 물었더니만, 이런 레어템 모임도 모르냐며 나를 하찮게 구박했고 나는 그것이 ' 닭을 사랑하는 모임 ' 이라는 뜻이라는 걸 알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고 옆에서 김준수의 보이스에만 집중하던 창민도 입을 쩍 벌린 채 본격적으로 실실 쪼개기 시작했다. 별로 궁금하지 않았던 김철수의 기본 인적사항이 하나씩 들어나기 시작했다. 그 김철수 개새끼는 서울대 통계학과의 수재라서 나중에 자기 재산을 전부 김철수에게 맡기기로 약속했다며 보장 없는 재산에 미리부터 너스레를 떨어댔고, 닭사모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 양념치킨과 무에 환장하는 모습이 본인과 다를 게 없어서 급격하게 친해진 케이스라고 말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각종 온라인 게임에도 능해 세계 베스트에 올라가 있는 구하기 힘든 레어 아이템을 아이템 베어 사이트에서 경매로 붙여가며 학비와 치킨비를 담당한다고 했고, 이런 험난한 사회생활 속에서도 빌게이츠 경제력을 갖고 있는 철수가 자랑스럽다고 말함과 동시에 이런 믿음 가는 친구가 3년씩이나 동방신기의 오덕후라는 사실도 빼놓지 않고 말했다. " 아 씨발. 왜 이렇게 길어. 김철수인지 박철수인지 됐고, 그래서 뭐야 결론이? " " 뭐긴 뭐야, 철수는 내가 갖고싶은 아이템이 넘치고, 철수는 내가 갖고 싶은 앙리 사인 축구공이 집에 고이고이 처박혀 있다는 말씀이지! " " 그래서 그 아이템하고 축구공하고 내 사인하고 맞교환 한다는 거야? " 다시 게임 스틱을 잡은 녀석은 귀찮은 듯이 다른 게임팩을 꽂았고, 나는 어이가 없어진 만큼 그런 물건과 맞교환 되는 내 사인이 짜증났고 그런 김준수를 레어 아이템 취급하는 심창민의 면상 또한 마음에 안 들었다. " 야 씨발, 그 새끼는 내가 어디가 좋대!!! 뭐 어떤 점에서 꼴려서 3년씩이나 오덕질했대??!! " 돌려진 등을 바로 세우며 삿대질 했다. 내가 유치한건 아는데. 그래 아는데. 그냥 넘어가면 나만 짜증나잖아. 앞 뒤 안 맞아도 소리 좀 질러보자. 내 목소리야! 좀 지른다고! 냅둬! " 그게 나도 의문이야. " " 뭐?? " " 철수가 보여준 사진에서는 굉장히 병약한 소년의 이미지라고 여러 번 강조 했었거든. 마음도 여리고 노래도 잘하고 춤추는 선도 예쁘고.. 또 뭐래더라.. 아! 되게 상냥하게 인사 해준다고 그랬어. 그런데 철수가 실망할까봐 나 너 실체 알고 나서도 말 안했다? 나 입 보이는 대로 무겁다? " 야 입 존나 싸 보이거든? 아주 훨훨 날고있거든요? 그런데 이건 무슨 냉수 먹고 갈비 트림하는 소리래? 3년씩이나 된 팬이라면 적어도 내 성질이 미친개만도 못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을텐데 녀석에게서 나온 내용들은 역시나 나의 예상을 보란 듯이 빗나갔고 심창민 역시 저게 뭔소리냐나는 듯 고개를 갸웃 거렸다. 내가 상냥해??????? 김철수 이 씨발새끼 반어법으로 날 희롱한 거지????? 3년동안이나????? " 준수형! 철수형이 어떤 사진보고 말해줬는데요? " 줏대 없는 심창민은 철수도 형으로 만들었다. 네 - 네 - 제 동생입니다. 네 - 네 - 아까 그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당부했던... 씨발. 창민의 말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녀석은 텔레비전 위에 걸려있는 액자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 저깃다! 저기서 가운데 사진! " ????? 뭥미???? 이건 또 무슨 방법이래???? " 예?? 가운데 사람이요??? " " 응. 응. 응. " 게임이 시작되었는지 다시 여러 번씩 대답한다. 야 근데 저거 나 아니야. 얘 뭔소리 하고 자빠졌대. 저거 영웅재중이잖아?? 얘 지금 뭐라는 거야. " 야. 김준수 게임 정지해봐. " " 싫어. " " 해. " " 싫어. " " 야 저거 나 아니야. " " 싫어. 싫어. 싫어. " 금방 게임 속으로 집중해버리는 녀석을 뒤로한 채 게임팩을 확 뺏자 야멸치게 쏘아붙이더니 입술을 삐쭉 내밀고 소리 지른다. 아 귀청. " 왜 꺼!!!!!!!!!!!!!!!!!!!!!!!!!!!!!!!!! " " 아 씨발아, 저거 나 아니라고!!!!!!!!!!!!!!!!!!!!!!! " " 저거 뭐! 뭐! 뭐!!!!!!!! " " 아 이 병신새끼가 진짜. 저 사진 나 아니라고!!!!!!!!!!!!!!!!!! " 그제야 상황이 파악되는지 녀석의 눈이 더 커질 수 없듯이 동그랗게 떠졌고 그 사진과 내 면상을 여러 번 비교하면서 녀석이 처음으로 당황한 듯 말했다. " ㅈ..저거! 가운데! 너... 너 맞잖아!!!!!!!!!!!!!! " 김준수가 본 사진은 그러니까, 2집 TriAngle 시절 사진인데 저때 나 홀로 가을 병에 빠져서 살이 하루가 다르게 쪽쪽 빠지기 일쑤였고 각종 불면증과 영양실조에 까마득한 날을 보낼 때였다. 그런데 의상과 메이크업 컨셉이 그야말로 안티계의 아직까지도 레전드로 남아있는 유능한 레어템 사진이었다. 긴 머리로 얼굴을 감싼 재중과 뼈만 남은 내 얼굴이 어떻게 보면 헷갈릴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팬들에게는 쎄쎄쎄만큼 쉬운 구별이었다. " 나 아니야, 저거 김재중이라고. 왼쪽이 나거든요? " " 거짓말 치..지망.. " 혀가 짧아졌다. 기가 죽는 소리를 했다. 눈꼬리가 내려갔다. 입꼬리도 내려갔다. 꽉 쥐고 있던 게임 스틱도 슬쩍 내려놓았다. 넋이 나갔다. 눈가가 촉촉해졌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걸고 있다. 떨리는 듯 단축 번호를 누르고 눈 하나 깜짝 안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터지는 음성에 애처로운 구걸을 하기 시작했다. " 철수야.. 니가 원하는 사인이 믹키유천 맞지.. 너 믹키유천 좋아하지.. 그렇지.. ? " 난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고 그제야 쪼그라든 어깨가 펴지고 그동안 맘고생 했던 심장이 다시 일정하게 편안한 템포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훗 이제야 보람이 생기군. 에라이 쌤통이다. 궁금했던 상대방의 목소리는 들릴 리가 없었고 대신에 녀석의 얼굴이 사포로 문댄 것처럼 구겨지자 철수의 대답을 예상할 수 있었다. 개 같은 나이스! " .. 어쩐지 믹키유천은 싸가지가... " 뭐라고?? 휴대폰이 툭 떨어졌고, 이솝우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당황스러워졌다. 같이 당황한 창민을 보자 두 손을 번쩍 들며 자긴 아니라며 도리질 치며 이런 상황을 회피했다. 왜... 왜 저래.. 마치 엄마와 아기를 이어주는 고귀한 탯줄이 지금 막 끊어진 갓난아기처럼 물방울 같은 눈꼬리에 쉴 새 없이 수도꼭지 같은 눈물이 흘러 내려왔고 5초 동안 아무소리도 안내고 꾹 닫혀있던 입술이 벌어지더니 결국은 참지 못한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는데 순간 내가 앙리를 성폭행하고 도주해서 딱 걸린 양아치처럼 느껴졌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울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이 새끼는 1시간 마다 세 번 울어야할 기세로 기차화통 삶아 먹는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당황스럽다. 존나. " 흡.흐앙.하항흡..흐아앙..흐..앙..... 흡....으하앙...!!!!! 엉..흡..앙흐앙...!! " " .. 깜짝이야!! 야.. 왜 울어?????? " " 엄마아... 흡.흐앙.하항흡..흐아앙..흐..앙..... 흡으하앙...!!!!! " " 아 씨발 왜 우냐니까!!! " 왈칵 우는 목소리에 덩달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짜증을 냈다. 주둥이 잘도 나불거렸던 심창민은 이런 상황 속에서는 벙어리처럼 꽉 다물고 바디랭귀지를 애용한다. 씨발새끼야 여기가 미쿡이냐!?? 우는 목소리 때문에 녀석의 발음은 더욱더 듣기 힘들어졌고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 뭐라고??? 뚝 그치고 말해봐! "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야멸치게 내 팔을 낚아채고 내 엉덩이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야 뭐해? 왜 때려? 이 동작은 뭐야? 네가 내 엄마라도 돼? 이거 안 놔?!!!!!! 나 한 번도 누구한테 맞은 적 없거든????? 그리고 팔은 왜 잡고 유치하게 하나도 안 아픈 엉덩이는 왜 때려 새꺄!!!!! " 미친 새끼!! 너 뭐야! 왜 때려! " " 흡.흐앙.하항흡..흐아앙..개시키미끼유촌...성질도.. 개떡이었는데 흡..흐앙으엉엉.. 나느은.. 왜에.. 으심도.. 흡.흐앙아앙아...하지안코... 그랫을까아.. 내가..미친놈..흐엉엉..흡... " 들리는 건 미친놈 뿐이었다. 뭐래는 거야 저 새끼? " 그래. 너 미친놈이야. 이제 알았어? " 나를 원망하듯 쳐다보는 눈빛에 순간 기가 죽어 눈빛을 아주 살짝 아주~ 살짝 15도 딱 그만큼만 비틀어서 피했다. 울어서 핏기 가득한 눈빛은 마치 바람난 남편을 족치는 아내의 기술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아 씨발 내가 왜! 기죽어! 잠시 딴 나라로 빠져든 그 순간이었다. 내 머리채를 우악스럽게 움켜쥐고는 더욱더 우렁찬 울음소리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 으하앙...!!!!! 너는 왜 미끼유촌이야!!!!!! 엉..흡..앙흐앙...!! 개새끼야!!! 사인 영훙재듕으로 바꺼와아!!!!!!! 으핳앙앙 엄마아.. 으흡.흐엉엉엉엉흐엉엉 영훙재듕 사인 가져와아아... 흡흐앙... " 난 보았다. 심창민이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뛰쳐나가는 것을. 그리고 감출 수 없이 울려퍼지는 녀석의 짜증나는 웃음소리.. 우린 하나. 우린 하나. 우린 하나. 형.. 윤호형.. 형은 대체 뭘 보고 우릴 팀으로 엮은거야? 제발 닥치고 말 좀 해줄래? 갑자기 어이없게도 허무해진 나는 그래 다 잡아 뜯어라 라는 기세로 털썩 앉았고 조금 느슨해졌지만 내 머리채는 그대로 잡고 놓지 않는 녀석은 눈물 콧물 침까지 흘려 내보내며 부모가 죽은 마냥 서럽게도 잘 울었다. 그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앉아있자니 이상하게 웃음이 비실비실 나왔고 너무 울어서 딸꾹질하는 녀석은 나의 볼 위로 그리 강하지 않은 싸대기를 날렸다. 찰싹~! 이 새끼는 30초마다 레벨업 하는 능력자였다. " 내가 영웅재중이 아니라서 때리는 거야? " " 응 " " 때리니까 속이 시원하냐? " " 응 " " 더 때릴래? " " 그래도 돼? " 씨발새끼. 때마침 구원의 보이스가 들려왔고 화장실에서 개쳐웃던 창민이 다시 입을 틀어막고 나오더니 현관 앞으로 가서 상대방을 확인하고는 문을 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습을 드러낸 인물을 보자마자 진심으로 난 눈물이 나오려 했고 등장한 인물을 한번 보고 사진을 한번 보고 다시 인물을 한번 본 김준수가 내 머리채를 잡은 채로 벌떡 일어나 덩달아 악!!! 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아 씨발 존나 아파!!!!!!!!!!!!!!!!!!!!!!!!!!! 내 존재는 이미 안드로메다. 질질 끌려오는 나의 모습을 보고 경악하는 재중의 모습과 눈물 콧물 범벅인 준수의 얼굴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정실장에 틀어막은 입을 얼음땡에서 정실장이 땡 해준 것처럼 풀더니만 이젠 대놓고 웃기 시작하는 창민이까지.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 ... 딸꾹.. 혹시.. 저기 저.. 딸꾹.. 영웅재중님 이신가혀.. ? " 님이란다. 씨발 보자마자 영웅재중은 님이란다. 동그랗게 눈을 뜨고 서 있는 재중은 나에게 이 아이를 왜 울렸냐는 표정을 지었고 정실장은 혀를 찼고 심창민은 정신병자처럼 웃었다. 그리고 재중이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자 축 늘어졌던 눈가가 확 올라가고 축 기가 죽었던 입술이 하늘위로 높이 올라가고 힘없이 다운되었던 몸에 다시 건강한 긴장감이 생겨났고 마지막으로 투니버스가 재생되는 순간이었다. " 으하캉하항하항하학! 으하캉하항하항하학! " 씨발 채널 안돌려???????????????????? | 네가 처음으로 내 앞에서 울고, 웃었던 그 날을 기억해. | My Melody w. 킵 * * * 아침에 일어나면 창문을 열고 태양을 바라보는,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난 아이에게 느껴지는 태생적인 건강함과 천진함이 그를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럽게 만든다. 사랑스럽고 부드러운 표정 뒤에 설핏 비치는 냉담한 표정과 귀여운 애교와 서늘함이 함께 공존하는 믹키유천, 우리는 마치 나쁜 남자 콤플렉스 덫에 걸린 듯 그에게서 헤어 나오기 어렵지만, 그게 바로 그의 미래임은 분명하다. 이 정도면 너무나 밝은 가능성이 아닌가? 믹키유천군은 가족 중에서 누구와 닮았나요? 아버지의 절도 있는 사업실패와 뒤를 잇는 매정하지만 스피드한 도주능력? 이라고 말하면 아무도 안 믿겠죠? (웃음) 이건 농담이구요,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는 건.. 어머니요. 뭐랄까.. 마이페이스를 가장 중요시하는?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는 절대 냉혹하신 분이셨어요. 그만큼 자신의 인생을 존중하고 사랑하신 분이시죠. 이시대의 어머니상과는 거리가 좀 멀긴 하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저에겐 가장 필요했던 존재셨고 동시에 가장 잔인한 분이기도 해요. 믹키유천군은 어떤 성격인가요? 이렇게 인터뷰하고 있으면 굉장히 부드러운 이미지인데 말이죠? 부드러움이라는 건, 사실 기획사에서 정해준 이미지인건 아시죠? 부드럽게 안 웃으면 그날 저녁 실장님에게 전화가 걸려오거든요. ' 야 인마! 인상 안 필래!? ' 하고 말이죠~(웃음) 성격은.. 저도 아직 잘 모르겠는데 기분의 높낮이가 너무 변덕스러워서 스스로 괴로워하는 타입인 것 같아요. 웃다가도 울고, 울다가도 웃고, 창민의 말로는 스스로도 제어가 안 되는 지랄 맞은 다중아래요. 주변에는 어떤 친구들이 많은가요? 연예계 친구들? 기본적으로 새벽 질주를 즐기는 타입이라, 만나는 친구들은 종류불문하고 여럿 있어요. 그런데 그 친구들도 저를 친구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네요. 믹키유천군에게 있어서 친구들의 존재는 어떤가요? 자기위안? 저렇게 살지 말자라던가, 저렇게 당하지 말자라던가, 이 세계에서 나는 살아남으리라 이런 스스로 위안이요. 믹키유천군에게 있어서 연애는 중요한가요? 연애할 때는 어떻게 변해요? 착실해 진다거나 그런 거요. 연애가 중요하다고 느낀 적은 작곡할 때 빼고는 없었어요. 단시간에 쉽게 사랑은 해요. 쉽게 빠지기도 한데 착실하진 않아요. 제가 그래서 쉽게 차이나 봐요...(웃음) 저 의외로 쉬운 놈입니다. 바람이라는 건 어느 선부터가 바람이라고 생각하세요? 바람은 혼자 불어요. 제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놔줄 거예요. 저에게도 부는 바람 상대방에게 없을 리가 없잖아요? 연애=결혼이라는 사고방식을 공감하나요? 그거야말로 미련한 사고방식은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연애 따로, 결혼 따로 방식도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결혼에 대한 불신이 많아요. 그 나쁜걸 왜들 제 나이되면 하지 못해서 안달 나는지 모르겠어요. 마지막으로 싱글즈 10대 , 20대 독자에게 경험하면 좋은 것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지독하게 외로워 보시고, 참을 수 없을 만큼 굶주려 보시고, 평생 잊지 못할 치욕을 가슴에 품으세요. 마지막으로 더 이상 얻을게 없다고 느껴질 만큼 훌륭한 TOP이 되세요. 그럼.. 적어도 부모 없이도 잘 살 수 있거든요. (2009년 1월 Singles 인터뷰中) § 데뷔를 하기 전 우리 셋을 호화로운 호텔에 가둬두고 각종 인성교육과 더불어 주입식 세뇌교육을 강요했다. 말 그대로 18년 동안 내 성격이려니 내 버릇이려니 여겨져 왔던 모든 말투와 행동들을 쓰레기통에 분기수거도 필요 없단 듯이 미련 없이 버리고는 마인드컨트롤이란 단어를 무참히 없애고 마음이 아닌 오로지 뇌에 영향을 주는 능력개발비법을 받기 시작했다. 세뇌프로그램에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었지만, 가장 혐오스럽기까지 한 게 우리들의 아이돌 이미지였다. 재중에게는 혼자서는 잘도 불렀던 구성진 트로트의 욕구를 과감히 막고 허밍어반스테레오의 살랑살랑 간지러운 노래와 샤이니의 누난 너무 예뻐를 흥얼거리라고 강요했고, 충청남도의 나여~ 겨? 겨~ 와 같은 사투리를 막기 위해 방송에서 말을 많이 하지 말라고 강요했다. 그리고 가장 하이라이트는 젖살이 포동포동한 새침하지만 귀엽기만 했던 재중을 보고 병약한 소년의 느낌으로 살을 빼라고 했다. 이유인즉 모든 연상녀들이 앨범을 여러 장 사서라도 저 동생만은 내 기필코! 살을 찌우리라! 라는 용맹한 구매의지를 높이기 위함이라고 했다. 무식하기 그지없던 창민에게는 정직하고 반듯한 의리 남으로, 어린 시절에 누구나 남몰래 짝사랑하고 갈망했던 로망의 대상이자 아직도 깨지지 않는 수식어인 잘생긴 전교회장 이미지를 세뇌시켰다. 보기만 해도 탄성을 일으키는 반듯한 외모와 사내다움. 아무런 잡음 없이 모든 일들을 잘 이끌어 나가는 리더십과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실천해야만 하는 의지력. 기상 시간은 칼 같이 지키고, 한결같이 반듯하며, 속 깊고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이, PC방에서 게임하는 것보다 더 즐겁다고 생각하라 압박했다. 이러한 완벽함 속에서도 절대 위품 있어 보이는 지적인 뇌를 강요해서 손 위에서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잘생긴 아이돌도 개념찬 뇌가 있다는 공식을 바로 세우자고 손을 잡곤 했었다. 마지막으로, 미친개처럼 이리저리 사고치고 뺑소니처럼 내빼고 달아나기 일쑤였던 내겐 순정만화책을 그대로 오려낸 듯 한 얼굴과 몸을 가진 채로 아무렇지 않게 썰렁할지라도,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억지스런 유머감각과 사랑스러운 옴므파탈을 꿈꾸게 강요했다. 작은 일에도 울고 웃으라고 했으며, 예민한 만큼 자기표현에 솔직하라는 이미지도 포함되었다. 여러 여자 연예인과의 스캔들은 노이즈 마케팅으로써 대환영이지만, 모텔이나 차안 키스씬등 팬들 라인 갈아타는 계기의 단서가 될법한 효과 직방 유력한 협박성 사진들은 절대 기자들에게 물려줘서는 안 된다는 당부와 함께,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언제나 사랑 받고 있다는 것처럼, 한 번도 가족 없인 살 수 없다는 사람처럼, 맑고 건강한 웃음을 지키라고 세뇌시켰다. 웃기지도 않은 개그프로그램들을 하루 종일 감상한 뒤 가장 재밌는 코너를 해보라고 시키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래서? 뭐가 그래서야 씨발. 정실장이 원하던 대로 지금 김재중은 맛있는 음식을 봐도 왜 저걸 먹는지 모르겠다는 하찮은 입맛과 이슬만 먹고 사는 몸탱이고 원하던 방향대로 병약한 이미지 되었다 이거지. 창민? 나 좀 웃어도 될까? 뭐? 허심탄회한 일상 속 소소한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했던가? 무슨~ 지 방에 PC방 차린 놈이야. 방에 들어가면 오줌통 꽉 차기 전까진 기어 나오지도 않을뿐더러, 방음장치는 얼마나 뛰어나고 인터넷 속도는 어찌나 광랜이지 자기 서버를 깔아서 컴퓨터 돌리는 놈이라고. 그리고 나! 그래 내 기분 제어 안돼서 울고 웃는 미친놈 됐다!!!!!!!!!!!!!!!!!!!! 스캔들은 잊을만하면 터지고 남들 웃기지 않은 일에도 비행기 날리듯이 웃고 있다고. 난 내가 웃는지도 몰랐는데 집에 와서 모니터하는데 남들 다 무표정인데 나만 존나게 해맑게도 웃더라? 얼마나 교육을 잘 받았던지 진짜 웃기단듯 웃는 거야. 만화책만 보던 창민이가 외국소설 까지 읽게 된거랑, 김재중이 픽 쓰러지면 판매량 두 배로 뛰는 거랑 내가 스캔들 터지면 프로모 대박나는거랑 그래. 다 정실장 원하던 방향대로 흘렀다 이거지. 아 씨발 근데 쓰다보니까 열 뻗치네. 지금 우릴 이렇게 만든 저 장본인이 콧물, 눈물범벅인 준수를 이상한 잡상인처럼 험상 꽃게 노려보고 원하던 대답을 듣기 위해 입을 열었다. " 이 떨거지는 뭐야? 어느 기획사 소속이야? " 정실장 눈깔 뒀다 뭐해? 얘가 어딜 봐서 소속사 돈줄 먹잇감이야? " 뭔소리야. 무슨 소속? " " 연습생인가? 너 누구야? " 내 머리채를 잡고 있던 녀석의 손가락이 점점 느슨해지더니 갑자기 김준수가 엄마 치마폭처럼 내 등 뒤로 숨었다. 얘 왜이래?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렸고 눈꼬리가 내려간 모양새를 보니 겁을 좀 먹은 것 같은데? 하긴 정실장 얼굴이 좀 야쿠자 같긴 하지? 녀석은 아기 돼지 삼형제에 나오는 늑대를 발견한 아기 돼지처럼 주춤 주춤 고개를 내 등 뒤로 숙이더니 기가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저는.. 김즌수.. 입니다. " " 그래서. " " .. ㄴ.. 네? " " 그래서 너는 김준수인데, 왜 여기에 있냐고. " 정실장의 질문에 작은 손 한가득 내 머리채를 잡고 있던 녀석이 슬며시 내 머리채를 잡아다가 조금 자기 곁으로 숙이게 한 뒤, 내 귀 부분으로 가져가더니 나름 목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소근 소근 질문을 하는데, 공교롭게도 그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잘도 울려 퍼져 숙소 안을 메웠다. " 저.. 아저씨.. 조폭이야.. ? " 동시에 인상이 더 구겨진 윤호와, 놀래서 동그래진 눈이 반달로 휘어지며 웃기 시작한 재중과, 실신하다 못해 바닥에 드러누워 눈물을 쏟고 있는 창민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브이텍이 절실해진 순간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 조폭은 아닌데, 조폭처럼 우리를 협박하고는 있지. " " .. 그럼, 나쁜 사람이야? " " 아니, 나름 좋은 사람. " 이제야 늑대의 탈을 쓴 양이라도 본 마냥, 내 머리채를 놓아줌과 동시에 앙증맞은 두 손가락을 배꼽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는 시대지난 폴더마냥 요가동작을 선보였다. " 앙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스물한 살 김준수 입니다. " " 거기 너. 박유천한테 몹쓸 일이라도 당한건가? " 저기요. 정실장? 저 원산지 따지는 사람이거든요? 저는 합의아래 농사짓지, 일방적으로 씨 안 뿌리거든요? 어딜 봐서 저런 떨거지를 내 밑에 갖다붙혀! " 네. 당했습니다. " ??? 저 새끼가 돌았나 뭐래는 거야? 동시에 울려 퍼지는 소리는 용문사 아침 햇살에 비쳐지는 천년의 조각처럼 맑고 청량했다. 나무아미씨발 관세음보살~ " 믹키유천 나쁜 새끼!!!!!!!!!!!! " " 개새야 뭘 당해!!!!!!!!!!!! " 쟤는 원래 나쁜 새끼라며, 마음고생 심했다며, 그동안 어떻게 잘 참고 견뎠냐며 김준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정실장의 손길에 비 맞은 강아지처럼 처량하게 눈꼬리를 내리고는 ' 사는 게 다 이렇게 힘든 걸까요? ' 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김준수가 보였다. 1분도 되지 않아 조폭도 자기편으로 이끌어냈다. 저 얄미운 입술을 쥐어뜯지 못하는 내 능력이 초라해지는 순간이었다. § 내 마음 속 열려라 참깨가 디지털 자물쇠로 열어지는 순간이었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새끼들도 이 시대에 태어났다면, 주문 없이 잘 살았을 텐데 말이다. 참깨가 뭐니 참깨가. 적어도 ' 널 가졌어, under my skin ' 정도는 돼야지 가오가 살지 안 그래? 똥줄 타던 김준수의 엄마 아빠 놀이마냥, 볼 때마다 앙상한 어깨에 걸쳐져있던 악기 케이스가 열어지는 순간이었다. 이 전에 개그시리즈처럼 어이없이 헛웃음만 나오는 김준수의 명랑소년 성공기 스토리를 듣고 있던 재중은 눈물까지 흘리며 김준수의 배꼽 빠지는 하소연에 흔쾌히 사인 3장을 해주겠다며 녀석을 위로했고, 그와 동시에 아무도 열지 못하게 숨겨놨던 자신의 악기 케이스를 가져오더니 잠겨 놓았던 자물쇠를 열기 시작했다. 바이올린? 첼로? 플룻? 클라리넷? " 어딨지이.. 많이 갖구 다니는데에.. 야 믹키유천 좀 찾아봐. 분명 여기 있단 말이야. " 정실장. 잡상인 맞는 것 같은데? 여기 ' 없는 것 빼고 다 있어요 ' 라는 허세작렬 문구처럼 현란한 광택소재가 민망하게도 케이스 안에는 별의 별 물건들이 가득 했다. 바이올린? 첼로는 개나 줘. 멜로디언이 뭐냐?? 아 저거 씨발. 진짜 정신지체아 맞는 것 같은데. 너 특수반 출신 맞지? 멜로디언, 한양대 앞 치킨집 전화번호 미니책자, CD플레이어, 헤드셋, 털장갑, 분홍색 마스크, 하얀색 목도리, 낡은 악보들 수십장, 지우개, 연필, 각종 CD들, 이것이 진짜 축구다 책, 게임 아이템의 법적 고찰 책, 애완견과 행복하게 사는 법 책, 양말, PSP, 게임보이어드밴스, 웨딩피치 릴리 텀블러. " 준수야. 이 텀블러는 뭐야? " 피죽도 못 먹은 병든 병아리 소년의 이미지 아이돌 재중사마께서 물어보셨습니다. 치킨 열 마리 튀겨 먹은 듯 특수반 잡상인은 대답해주었습니다. " 학과 선배 누나가 줬어요. 아 어딨지이 묶어놨는데.. " 정신없이 가방을 뒤지던 자그맣고 앙증맞은 손에 기어이 걸린 4집 앨범 쟈켓 대략 20장이 하찮은 노란색 고무줄로 바짝 묶여져있었다. 배달된 치킨 포장의 고무줄을 저리 치우듯 고무줄을 뺀 녀석이 쟈켓 3장을 기어이 재중 앞으로 탁! 넘기고는 잠시 잊혀진 투니버스 채널을 제멋대로 재생시키는 순간이었다. ' 으하캉하항하항하학♡ ' " 사인에 이름은 뭐라고 적어줄까? " 쇼파 위에는 테이블에 쟈켓을 올려놓고 사인펜을 들고 있는 김재중이 고귀한 학처럼 앉아 있었고, 방바닥에는 심창민이 이제야 안정된 듯 차분하게 숨을 고르고 있었고, 김준수 가방 앞에는 넋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땅을 내려다보는 내가 있었고, 내 옆에서 저 꼬맹이는 때릴 구석 없이 메말랐다며 저런 힘없는 애들 양아치처럼 때리고 다니지 말라고 짐짓 엄포를 명령한 정실장이 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나에게 훈계를 날리고 있었고, 테이블 밑에는 마치 미사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려는 용서를 구하려는 김준수가 두 무릎을 꿇고 가지런한 두 손을 무릎위에 올리고는 주저앉아 김재중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그림 감상 중이었다. " 하나는 앙리 콧구멍이고, 또 하나는 철수야 사랑해. 마지막은 철수야 양념치킨 사줄게. " 한국어가 외계어로 들리는 우울한 상황에 빠지게 된 재중은 TO.를 쓰다말고 다소곳이 앉아있는 준수에게 맞냐고 얼굴로 되물었다. 맞다니까 인마! 나 그렇게 적었다니까! " 영웅이형 미안해요. 철수가 매일 콧구멍 하면서 욕한 애가 영웅이 형인줄 알았거든요. 이름을 몰랐던 제 불찰이긴 한데요. 하필 쟤같은 애랑 바꿔서 이름 알고 있어서 미안했어요. 철수가 콧구멍은 쓰지도 말라고 치를 떨어서요. 그냥 철수 닉네임 써주세요. " 씨발, 김철수가 서울대라고 누가 그래!? 저 새끼도 특수반 출신이야. 내 안티들은 전부 지능이 낮아서 나 같은 탑스타를 못 알아보는 거라고. 이거 왜이래? 나 동방신기 멤버야. " 괜찮아.. 살다보면 마주치기 싫은 사람도 자주 부딪히게 되거든.. " " 네.. 영웅이형은 늘 힘들어서 어떡해요. " " 괜찮아.. 그래도 안티는 저 녀석이 데려가주니까. " " 그건 안티의 정석이구요. " " 철수형은 유천이형 안티예요?? " 네- 네- 불난 집에 에어컨을 리모컨으로 쉽게도 틀어버리는 우리 막내이자, 리더인 심창민 선수께서 드디어 주둥이를 열으셨습니다. 안 봐도 짜증납니다~ " 음.. 안티라기보다, 그냥 다 싫대. " " 이상하게 남자들은 유천이형을 싫어해요~ 왜 그럴까요? " " 음.. 대충.. 이마 넓고, 콧구멍도 큰 게.. 철수보다 인기도 많고, 돈도 더 잘 버니까.. 그런데 내가 봤을 땐, 영희누나가 지능이 조금 낮은 누나인데.. 안타깝게도 믹키유천 오덕후인데.. 매일 철수랑 자료 나누다가 엄청 싸우거든. 그래서 싫어하나 봐. " 뭐야, 내 팬이 왜 지능이 낮아????????? 너 자꾸 실시간 소설 쓸래? " 영희누나요?? 누군데요? " " 아, 철수 누나. 영희 누나. " " 크큭.. 철수와 영희.. 기가 막힌 남매군요~ " " 걔네 아빠 이름은 김자 철자 이자셔, 엄마는 오자 미자 애자 쓰시구.. " " 크큭... 철이와 미애.. " " 응 DJ 하다가 만나셨다고 들었어. " 그들은 그렇다 백설공주. 백방으로 세계를 설치고 다니는 공포의 주둥아리들이었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자 발달의 이유인 서울대 특수반 김철수 어린이가 활동하는 닉네임은 무려 세 가지나 존재하였으며, ' 실버틱 제제, 우월한 철수, 재중치킨 ' 으로 밝혀졌다. 골드 친구 실버가 저런 식으로 응용된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은 물론 그런 팬을 두게 한 재중이 원망스러워졌다. 새끼야 그러니까, 털 좀 심고, 시커멓게 태닝하고, 돼지처럼 살찌우라니까!! 그래야 저런 박테리아가 김준수 같은 알을 안까지. 안 그래? 그런데 심창민 저 개새끼! 전염된다니까 왜 김준수 전화번호는 따고 지랄이야!? 현관 앞에 주저앉아서 어그를 꼬깃 꼬깃 신고 있는 녀석의 종아리를 툭 툭 발로 건들며 빨리 신으라고 재촉하고 있었고, 3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같은 반 친구를 저 멀리 지방으로 전학 보내야하는 상황이 연출되기 시작했고,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하는 현실이 견디기 힘든 안타까운 눈빛으로 준수를 바라보고 있는 창민과 재중 뒤에는 슈트 양쪽 주머니에 손을 꽂은 자세로 녀석의 행동을 지루하지 않단 듯이 주시하고 있는 정실장이 있었다. 연예인 친구나, 사귀고 있던 여자애들 데리고 숙소에 오면 사정없이 발로 걷어찼던 정실장이 아들 유치원 보내는 표정으로 얌전히 서 있는 모습이 마냥 신기할 뿐이었다. 왜들 다 저 녀석 예뻐하는 건데??? " 야 빨리 신어. 나 내일 스케줄 있어. " " 윤호형.. 여기서 고생하지 마시구, 이 새끼 가수말고 매니저나 시켜요. " 씨발새끼, 언제 또 아저씨가 윤호형이 되었어? 주둥이만 홍길동이야. 이러한 난세엔 영웅이 필요하거늘 저 새끼는.. " 쟤한텐 매니저도 버거운 것 같은데? " " 주둥이 꿰매고 넓은 이마만 있음 매니저도 거뜬할 텐데, 살벌한 주둥이 때문에 안 되겠네요. " 재중이 웃으며 녀석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어 주며 인사를 했다. 이제 보니 저 백설공주들 웃는 모습을 1년 치 몰아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왠지 이상하게도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녀석의 입에서 나온 다음 말들은 꽤나 진지한 모습이라, 총 맞은 것처럼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 아 맞다, 영웅이형. 이번에 작곡하신 곡 너무 잘 들었어요. 그런데 작업 스타일이 작곡하시면서 동시에 녹음도 같이 하시나 봐요? 대부분 피아노 이용하신 것 같은데.. 원래 피아노 치면서 동시에 녹음을 하면 피아노가 부각되는 파트가 예민하게 바뀔 수가 있거든요. " 우연인지 신기하게도, 재중은 녹음과 동시에 작곡을 하는 버릇이 있었다. 흥얼거리다 생각나면 피아노를 치면서 동시에 녹음을 했고, 녹음된 곡을 다시 들으면서 수정하는 단계를 거치는 버릇이 있었다. 이건 아무리 김철수라도 모를법한 재중의 버릇인데 이게 김준수 입에서 나오다니 조금 놀란 심정을 억지로 감추었다. " 음표도 중요하지만, 쉼표가 더 필요한 느낌이었어요~ 음.. 아마도 많이 바쁠 때 작곡 하신 것 같은데.. 쫓기듯 작곡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쉼표의 힘이 잘 안 산다는 느낌이 좀 들었거든요. " 3집 활동 마무리와 동시에 4집 앨범이 녹음되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간은 2주였고, 그 안에 재중은 곡을 완성해야지만 앨범에 실릴 수가 있었다. 스케줄에 쫓기면서도 녹음실은 자주 들락거린 재중이었다. 넋을 놓고 말을 하던 녀석이 순간 재중에게 미안한 듯 약간 주춤했지만, 그래도 꽤나 하고 싶었던 내용이었는지 머리를 긁적이며 마무리했다. " 리듬은 정말 굉장히 좋았는데, 침묵 템포가 좀 많이 아쉬웠어요~ 다음에는 하릴없이 빈둥거리시고 나서 피아노 한번 쳐 보세요~ 분명 그 시간만큼, 리듬에도 쉼표에도 힘이 들어가 있을 거예요. " 녀석의 말처럼, 다양한 종류의 스타일들을 결합해야하는 작곡에게서 쉼표의 힘은 많은 것을 요구해왔다. 늘 조언을 해주는 오래 알고지낸 작곡가 형들도 우리들에게 이런 조언을 매번 아끼지 않으셨다. ' 훌륭한 연설가들의 말이 왜 그렇게 나라가 흔들릴 만큼 위력한줄 아냐? 그게 다 몇 초간의 침묵을 잘 응용해서야. 그만큼 침묵은 소리만큼 중요해. 너희들이 갖는 휴식이 더욱더 올곧은 음악을 만들고, 더 강한 효과를 줄 거야. 그냥~ 하릴없이 멍 때리고 집에서 뒹굴고 놀아봐. 그럼 목소리에 더 귀가 기울어져. 늘 여유 갖는 거 잊지 말고. ' 녀석의 조언에 당황한 우리들을 보며 덩달아 어색해진 공기에 녀석은 억지웃음을 보이며 ' 아, 제가 실수.. 한거죠? 으하캉하항~ 학과 형들이 재수 없게 교수처럼 노래 평가짓 하고 다니지 말랬는데 영웅이형 기분 별로였음 미안해요~ ' ' 응? 아니! 아니. 아니야. 내 노래 들어줘서 고마워.. ' 틀린 부분이 있었음 바로 반격했을 텐데 그 누구도 녀석의 말에 반대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오히려 노래 세심히 들어줘서 고맙다며 고마워했다. § 일당백, 만부부당지용, 일기당천. 100명의 주둥이가 저 입술 하나로 재탄생된 격. 내가 녀석을 몇년 동안 지켜본 사람은 아니지만, 두 번만 만나도 녀석은 굉장히 파악하기 쉬운 타입은 분명했다. 어찌나 정신 산만하고 아찔한 럭비공 같은지 1분만 같이 있어도 같이 다리를 떨게 만드는 위인이었다. 다리 떨면 복 나간다는 말이 떠올라 덜덜 거리던 녀석의 허벅지를 아프지 않게 찰싹 때렸다. 그러자, " 씨발, 정신없다고! 너 집 어디야? " " 너 나 때렸어? 왜 때려? " 곧바로 다리를 멈추고는, 입술을 쌀죽이며 재밌는 장난감이 생겨난 듯 눈빛을 반짝였다. 신나 보였다. 개새끼. " 내가 집에 데려다 준댔잖아? 니가 데려 달랬잖아. 그러니까 집 주소 말하라고. " " 넌 눈 뒀다 어디다가 써? 내가 아까 타자마자 내비에다가 주소 찍어놨잖아! " " 새끼야. 그럼 말을 하던가. 내가 몇 번을 물었어? 집 어디냐고. " " 이렇게 큰 새끼 봤어? 봤어? 봤냐고! " " 이걸 확! 너 택시타고 갈래? " " 싫어. 새벽 택시 위험해. " " 그럼 좀 닥칠래? " 간지럽단 듯이 귓속을 파며 어느새 궁금증 가득한 눈빛은 내가 애지중지하는 내 애마에게 돌아섰다. 씨발새끼 흠칫 하나라도 내기만 해봐? 내가 이 차 사려고 쪽팔리지만 집까지 줄여서 옮긴 사람이거든? 여자 빼고 남자새끼는 너가 처음 타는 거야. 그러니까 그 점으로도 황송해 하며 얌전히 좀 집에 가자. 제발. " 도곡동 타워펠리스 3차.. " 씨발새끼. 우리 집보다 더 좋은 곳에 사네. 주둥이는 유치원도 검정고시처럼 생겨서는, 꼴에 태생씨앗은 운이 있었네. " 포르쉐 파나메라 갖고 있는 애. 한국에서 처음 봤다. " 불안했던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이제야 내 능력을 알아보네. 꼴에 새끼라고 자동차에 관심은 많은 모양이지? 포르쉐는 금년 2008년 남들이 다 경제위기, 침체 등을 외칠 때에 전 세계 경제상황을 비웃기라도 하듯 신규모델을 선보였고, 11월 달에 출시 예정이 공개되자마자 바로 예약해서 힘들게 수입한 차였다. 87억 유러의 이윤을 남겼는데, 매출이 단 75억유러. 어떻게 매출보다 이윤이 더 크냐고? 타 보면 알거야. 그림책에서 보았던 주인공이 마치 내 옆에 있다는 착각이 새어나오는지 이리저리 차 내부를 보며 감탄하고 있는 녀석을 보자 그 누구에게도 부러움을 샀던 마음 그 몇 배의 행복감으로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눈가는 줏대 없이 휘어졌다. 그래 난 신났다. 하지만, 5분 뒤... " 씨발아!!! 신발 안 벗어!!!!!!!!? 야!!!!! 야!!!!!! 거기 잡아당기지 마!!!!!!!!!! " " 으하캉하항하항하학!! 차 짱 좋아!! " " 야 누르지 마!!! 누르지 마!! 빼지마!! 아 씨발 앉아! 제발 앉아있어!!!!!!!!! " 늦은 시각이라 인지 다행히도 강남구 도로는 한산했다. 저 개새끼는 더러운 신발로 내 금같은 시트를 밟고 메고 있던 안전벨트의 길이를 체크하려는 듯 다 뽑혀질 기세로 끝까지 잡아당기며 ' 우와 짱 길다! ' 라는 당연한 말을 속 터지게 뱉어댔고, 더러운 어그 부츠로 앞좌석 TV 채널을 아무렇게나 눌러댈 때마다 미세한 흙이 떨어졌다. 때마침 신호대기가 떨어지자마자 다시 녀석의 허벅지를 이번엔 아프게 찰싹! 때렸고 죽을 듯 노려보았지만, 한편으로는 애원의 눈길도 포함되었다. 제발.. 그르지마라... " 야 이거슨 뭐야 ? " 열 받아서 때린 손가락을 민망하게 제자리로 갖다 두고, 벙어리처럼 가만히 고개를 돌려 사고 나면 큰일 난다며 너 보험 들었냐며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으며 안하던 안전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씨발새끼가 앞에 있는 서랍 뒤지다가 발견한 콘돔을 비웃으며 본격적으로 나를 놀려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다. " 야광콘돔이네? 이거 정액은 야광이고, 나머지는 형광되는거 맞지?? 형광 노래방처럼 말이야! " " 여기서 어디로 가야 해? " " 안들리냐? 내비 누나가 상냥히 설명하잖아. 전방 15m에서 우회전이라고. " " 도로가 뭐가 이렇게 복잡해. " " 하긴 카섹스 할 땐 조명이 필요하겠구나. 나 이거 예전에 MT에서 귀신의 집 놀이하는데, 선배가 어둡다고 저거 후레쉬처럼 들고 다닌 거 봤어! 진짜 밝던데.. 생각보다 오래가고~ " " 이제야 입구가 보이네. " " 그렇게 차 애지중지 하면서, 시트에 정액 묻히는 건 좋은가봐. " " 막말로. " " 왜 나한테 말을 막 해? " 이걸 진짜! " 막말로 산골을 가도 면상이 팔렸는데, 우리 같은 애들이 펜션을 가겠니. 호텔을 가겠니. 그렇다고 여관을 가겠니. 아니면 집으로 초대하리? 그냥 계집애 위해서라도 카섹스 명소 찾아가는 게 더 현명해. 돈 아무리 좆빠지게 벌어도 섹스는 비좁은 차 안에서 해결해야한다고. 그래서 왜! 그래서! 좋은 차 샀다! 그게 뭐! 내 정액이 니꺼야? 왜 비꼬아 대! " " 누가 뭐래? 여기서 세워. " 남들은 나를 백마 탄 기사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쳐다보는데, 저 새끼는 나를 진짜 제 집 기사마냥 말하는 명령조가 심히 거슬렸다.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에 매번 속아 넘어가는 나에게도 화가 났다. 인사 없이 들어가려는 녀석을 황급히 세웠다. " 김준수! 고맙다는 인사도 안하냐? " 갑자기 휙 돌아 성큼 성큼 다가온다. 눈이 휘어졌고 입 꼬리가 하늘높이 올라가고 있었다. 순간 안 좋은 예감이 몰아왔고 불안 증세까지 일어났다. 안되겠다 싶어서 내려진 창문을 올리려던 찰나에 바람 보다 빠른 녀석의 앙증맞지만 작은 두 손이 내 볼따구니를 확 움켜쥐더니 귀여운 애완견 대하듯 이리저리 흔들었다. 손을 들어 내려야하는데 내 고개만 쭉 빼서 잡아 당겨서 차 안에 있던 손은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 아ㄱ..! ㅅㅣ발ㄴ.놈아ㅏㅏㅏㅏㅏㅏㅏ!!!!!!!!! ㄴ.ㄴ..ㅏ!놔!!!! " 재밌다는 듯 내 볼을 주물럭거리던 녀석이 샤키인지 씨발키인지 지 개새끼한테 하던 버릇처럼 내 코에 쪽, 하고 뽀뽀를 했다. 볼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씨발 코였다. 내가 니 개새끼냐! 개 코냐고! 씨발 어디 이 신성한 내 조각 같은 코에다가 네 아밀라제를 묻혀! 너 특수반 당장 그만 둬!!! 철수랑도 놀지마!!! " 너 화난 거 재밌어. 데려다줘서 고마웠어. 안녕~ ' 고개가 밖으로 튀어나간 상태로 멍하니 미련 없이 돌아서는 녀석의 뒷모습을 보며 그저 멍하니 있었다. 화나는 모습이 재밌었어 라며 해맑게 웃는 얼굴의 힘은 작아도 커다란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진심으로 웃는 얼굴이 이런 것이라고 나를 다그쳤다. 그렇게 녀석은 내일 또 볼 것처럼 내게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들며 안녕을 말했다. 뭔가 대단한 것에 홀린 듯 한 기분이었다. § 얼떨결에 벌어진 다급한 상황에 상철은 앞 뒤 이어지지 않은 해명을 늘어놓았다. 하루라도 문을 열고 들여다보지 않으면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나를 재촉하듯 피 말리게 나에게 여우비를 보냈다. 새벽 첫 비행기로 저번에 마무리 못한 일본 출장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오후 4시. 인천 공항 게이트를 지나자마자, 상철에게 전화가 봇물처럼 터졌고 받자마자 상철은 재중이가 안 보인다는 결론만 말했다. 조급해진 마음을 뒤로한 채 일단, 상철을 안정시켰다. 많이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 그럼 병원 다녀와서 없어진 거야? " " 네. " " 휴대폰 두고 없어진 거면, 멀리 간거 아닐 거야. 일단 난 사무실로 가볼 테니까, 연락 닿으면 전화해. " " 네. 죄송합니다. " 잦은 사고도 없던 재중이 2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던 적이 있었다. 그날도 휴대폰을 두고 반나절 동안 사라졌었는데 우습게도 내 사무실 쇼파에서 편안 차림으로 늘어지게 잠을 자고 있던 적이 있었다. 비서도 모르게 몰래 들어와서는 내가 올 때까지 날이 어두워졌는데도 불도 켜지 않은 상태로 쌕쌕 거리며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지치고 힘들 때나 혹은 고민이 생길 때나 재중은 종종 사무실로 불쑥 몰래 찾아와 일하는 내 모습을 잠깐이라도 보고 금세 다른 스케줄을 하러 나가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 피곤하게 왜 자꾸 들러? 어디 있는지만 말해. 형이 시간 내서 들릴게 ' 라고 말하면 재중은 매번 같은 대답을 했었다. ' 도망가고 싶은 장소, 나 혼자서만 아는 비밀장소, 몰래 혼자서만 오고 싶은 장소, 누구에게도 알려주기 싫은 장소가 여기야. 앞으로도 계속 여기는 혼자서만 올 거야. 그러니까.. 오늘처럼 매일 놀란 듯이 형이 나 반갑게 찾아줘야 해. ' 사무실을 가던 도중에 스치는 여러 가지 상황들은 윤호를 더욱 조급하게 만들었지만, 재중이 휴대폰을 두고 매니저에게 말 한마디 없이 갈 곳이 오로지 한곳이라 불안한 만큼 단호한 안정된 마음이 있었다. 시동이 꺼지기도 전에 급하게 차 문을 열고 사무실 엘리베이터에 탔다. 층을 더해가는 만큼 심장소리가 뛰기 시작했고 땡 소리와 함께 들어간 사무실에는 생각 보다 빠른 귀국 시간에 당황한 여비서가 벌떡 일어나 정실장을 반겼다. " 정실장님 오셨습니까? " " 그래. 사무실은 별 일 없었고? " " 네. " " 그래. 그럼 일 봐. " " 밖이 많이 춥죠? 차라도 드릴까요? " 왠지 모르게 당황해 하며 얼른 아니라고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 어? 아니. 아니 됐어. " " 네. " " 아, 저기 내 사무실에 온도 좀 높여줄래요? " 사무실 들어가기 전에 이렇게 대화를 길게 해본 적이 처음인 여비서는 당황해 했지만 기쁜 듯 대답했다. " 네? 아 네~ "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확 열려있는 커튼에 일단 얕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평소에 책상 모니터에 햇볕 노출이 적잖게 싫은 윤호는 가급적 커튼을 젖히지 않았고, 그 점을 여비서도 잘 숙지하고 있어 커튼은 쉽사리 열려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사무실 주위를 돌아보아도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텅 빈 소파를 보자 순간 마음이 요동쳤다. 그때. ' 히…….크..큭.. ' 순간 저편에서 미세하게 웃음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그것이 재중이라는 사실을 확신한 듯 허무해진 몸이 느슨해지며 허리위에 손을 얹은 윤호가 당했다는 뉘앙스로 숨어있는 녀석을 재촉했다. 재중아- 오늘은 책상 밑이구나. " 잡히고 싶어서 안달 난 술래는 너밖에 없을걸? " 재밌단듯 다시 한 번 웃음 터지는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녀석이 어디에 숨었는지 이리저리 뒤져야할 만큼 사무실에는 많은 물건들이 놓여져있지 않은 심하게 심플한 공간이었다. 책상 밑 아니면 옷장. 때마침 책상 밑에 희미하게 보이는 재중의 맨 발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찾았다. 그런데 인마.. 지금 겨울인데 양말도 안 신고 책상 밑에서 뭐가 그리도 재미지게 웃고 있어? " 남들은 옷 하나라도 더 껴입는 계절에, 너 인마 양말도 안 신고 말이야. 이리 안 나올래? " 책상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자 고요한 사무실의 선선한 공기를 울리는 구두소리가 점점 커졌고, 동시에 책상 밖으로 사과 꼭지처럼 묶은 머리카락이 삐쭉 나와 있었고 차가운 바닥에 넙죽 주저 앉아있는 재중은 등을 미세하게 들썩이며 멈추지 못한 웃음에 힘들어 하고 있었다. 온도가 점차 높여지고 있는 사무실이었지만, 자리를 비운 내내 서늘했을 공기에 녀석의 차가운 몸이 걱정되었다. 짙은 빈티지 청바지에 위에 색감이 곱게도 나온 주황빛 후드 티셔츠를 입고는 맨발에다가 손에는 맥스봉이 쥐어져 있었다. 배가 고플 시간이었다. 녀석은 내 사무실을 놀이공원처럼 그저 단순한 작은 행동에도 까르르 개구지게 웃었고 신이난듯 사무실을 숨차게 폴짝 폴짝 잘도 뛰어다녔다. 그러다가도 인터폰 소리에 놀라 벗겨진 신발을 황급히 들고는 가까운 옷장이나, 책상 밑으로 숨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정실장은 산타할아버지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믿음을 심어주듯 재중의 소중한 공간을 지켜주려 애를 쓰기도 했다. 일전에는 급한 회의가 열리는 바람에 1시간 이상을 책상 밑에서 쭈그리고 잠이 든 녀석 때문에 회의 내내 서류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 다음날 회의 내용을 다시 들어야만 했었다. " 이번에도 찾았으니까, 어서 일어나. 사무실 바닥 차가워. " 두 팔을 내게 벌리는 버릇된 손을 당연하게 잡아 올려 일으켜 세웠다. 따라서 올라오는 팔 때문에 덩달아 후드티가 배꼽위로 올라갔고, 골반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청바지 위에 캘빈클라인 속옷 로고가 눈에 들어와 저절로 인상을 구겼다. " 이 옷은 유난히 허리가 큰 것 같은데? " 곧바로 올라간 후드티를 내리며 고개를 저었다. 도리도리 다시 한 번 도리도리 인마 고개 떨어지겠다. " 이거 급하게 입고 나와서 큰 청바지인지 몰랐어. " " 그런 거나 입에 물고 다니니까, 살이 자꾸 빠지잖아. " " 형 나 발 시려. " 자기가 불리할 때면 꺼내 쓰는 마법의 만병통치약처럼 내게 약한 말들을 바로 내뱉었다. 주로 배고픈 거, 아픈 거, 추운게 전부이지만 말이다. 손목을 끌어 쇼파에 앉히고 하얀 두 발목을 나란히 손으로 잡아 올리자, 쇼파턱에 걸쳐진 상체가 스르륵 미끄러져 내려왔다. 그게 또 그리도 재밌었는지 까르르 웃었다. 동시에 바지 속으로 살며시 들어간 와이셔츠를 쉽게 꺼내면서 재중의 앞 테이블 위에 엉덩이를 걸터앉았다. 많이 차가워진 발을 내 아랫배 속으로 바로 넣자, 예상한대로 얼음장처럼 싸늘한 발이 간지러운 듯 꿈틀 거렸다. 동시에 차가운 발등을 손으로 녹여주자 재중이 말했다. " 형, 배는 안 시려? " " 너 양말 벗고 다니는 버릇 고치랬지? " " 여기서만 벗을게. " " 안 돼. 이것 봐 지금 발 엄청 간지럽지? 이렇게 차가우니까 그렇지 인마. 이러다 발에 동상 걸려. " " 내가 무슨 형아 애기야? 형한테만 내 동상은 왜 그렇게 막 쉬워? 그게 그렇게 걸리기 쉬운 병이야? " " 애기 같은 행동만 하고 다니니까 그렇지. 매니저랑 형 훈련시키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 " " 형. 혹시 말했어? 말한 거야? " 갑자기 뭔가 확인을 원하는, 진지한 눈빛이었다. " 뭘 말해? " " 나 말이야, 사무실에 혼자 온 거 말했냐구.. " 이번엔 참을성 있게 대답을 재촉하는 듯 한 눈빛이었지만, 대답하기 전부터 재중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꼭 알면서 확인차 되물어 보는 질문을 좋아했다. 단순하게 알고 있는 대답만 물어봤다. " 아니. 말 안했어. 내가 데리고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랬어. " " 응. 잘했어. " " 그런데 너 설마 그렇게만 입고 나온 거 아니지? " " .. 맞는데.. 왜.. ? " " 인마. 아무리 속옷도 패션이라지만 너무 내려갔잖아 골반 밑으로. " 치골근이 보일정도로 아슬아슬한 라인이었다. " 나도 몰랐는데. 아까 여비서 꾸벅 졸 때 테이블 밑으로 기어가는데.. 자꾸 바지가 내려가서 혼났어. " " 춥지도 않았어? " " 택시 탔어. " " 숙소 앞에 팬들은 없었고? " " 있었는데, 총알처럼 빠르게 먼저 탔어. " " 참 예쁜 짓 했네. " " 그치? " 서늘했던 사무실의 공기가 훈훈해질 때쯤 녀석의 발을 꺼냈고 늘어져있던 상체를 들어 똑바로 앉게 했다. 얼마 먹지도 않은 소시지를 입가에 넣어주자 잊고있었마냥 다시 야금야금 물기 시작했고 동시에 흐트러진 내 와이셔츠를 다시 정장 바지 속으로 정리하려는 손길이 눈에 들어왔다. " 이런 건 내가 해. " 소시지를 입에 물고 부정의 고개를 젓는다. 꼼꼼하게 옷매무새를 정리한 재중은 단정해진 모습이 기분이 좋았는지 치아를 드러내며 벌쭉 웃었다. 오랜만에 들린 보물장소때문에 기분이 좋아 보여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웃으면 녀석이 웃었고, 녀석이 웃으면 세상이 웃는 것만 같은 착각 속에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오후 5시 30분, 여비서에게 오늘은 퇴근을 먼저 해도 좋다는 말과함께 사무실 밖으로 나가서 따뜻한 음료수와 녀석이 먹을 간식거리를 여러 종류 골라서 다시 사무실로 올라왔다. 아까 전에 신어준 신발을 다시 벗어놓고는 내 책상위에 앉아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는 손길이 눈에 들어왔다. 몇 시간 동안 달콤한 휴식은 소소한 상념 속에서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병원 다녀온 이후 달랑 소시지만 먹었을 생각에 김밥거리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녀석을 불렀다. " 나가서 먹고 오면 좋은데 미안하다. 결제할 서류가 보다시피 쌓여있다. " " 응. 난 여기가 좋아. 괜찮아~ " " 사무실 앞에 편의점 밖에 없어서 김밥 사왔다. 이리와. " 내려오란 소리를 듣고도 책상에 걸터앉아 발을 휘휘 흔들며 딴청을 부렸다. " 먹기 싫단 소리 안 통하니까, 고집 부리지 말고 내려와 어서. " " 형.. " " 안 통한다니까? " " 나 업어줘. " 뭐라고? " 얼~른~ " 발을 아직까지도 휘휘 흔들며, 양 팔을 쫙 벌리더니 어서 업으라고 재촉하는 재중의 얼굴이 환하게 꽃을 피웠다. 들고 있던 김밥을 내려놓고 녀석에게 등을 보이며 상체를 약간 숙여주자, 기다렸단 듯이 등 뒤에 쉽게 매달려 편안하게 안착했다. 곧바로 두 팔이 목에 둘러졌고, 앙상한 두 발목이 허리를 감싸 안았다. 목 주변에 닿은 재중의 해맑은 숨결이 서늘한 공기와 함께 뒤섞였다. 아직도 추운가. " 너 지금 밥 먹기 싫어서 꽤 부리는 거지? " " 아닌데? " " 그럼, 왜 안내려? 밥 안 먹을 거야? " " 먹어. " " 그럼 내려. 밥 편안히 먹어야지. 안 그럼 체 해. " " 안내려. 잘 먹으면 돼. " " 이건 또 무슨 고집이야? 뉴아이템? 이건 누구 꺼야? 심창민이야? 박유천이야? " " 크큭.. 그냥 내리기 싫어. 나 많이 기다렸단 말이야. " " 그러니까 전화하면 형이 간.." " 싫단 말이야.. 말하고 오는 거. 알면서 왜 자꾸 물어봐. 이젠 외울 때도 되었잖아. " " 알았어. 그런데 밥은 먹어야 해. " " 응. 먹어. 먹을 거야. 지금. " 김밥을 테이블 위에 두고 녀석과 작은 실랑이가 일어났다. 내리지 않겠다는 녀석과 밥은 먹어야한다는 정실장과. 결국엔 김밥을 하나씩 뒤로 넣어주자, 아기 새처럼 입으로 넙죽넙죽 잘 받아먹었다. 새로 만든 둥지놀이인지 혼자서 마냥 신이 났다. 호흡이 일정하지 않고 자꾸만 먹으면서도 입은 웃었다. 그렇게 김밥 한 줄을 30분 동안이나 먹었다. 중간 중간 탈이라도 날까봐 따뜻한 베지밀에 빨대를 꽂아 여러 번 나뉘어 먹였다. 재중의 주변 지인들은 곧잘 정실장에게 너무 버릇이 들어졌다며 나무라는 목소리로 녀석에게 자주 말을 했지만, 정작 녀석이 다른 사람의 손을 타지 못하게 버릇을 들인 건 정실장이었다. 누구에게는 작고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일임에도 재중에게 일어나면, 신경을 곤두서야만 했고, 잦은 병원신세때문에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품에 안은 자기애처럼 감싸 안아주고 다독여주는데 몸과 마음이 어느새 익숙해질 때로 익숙해졌다. 모르는 이들은 재중을 나무랐지만, 유일하게 정실장을 잘 알고 있는 유천과 창민은 매번 삿대질을 하며 정실장의 버릇을 크게 훈계했다. ' 형이 이 꼴이니까 애가 자꾸 형 없인 약해빠지는거잖아!! ' 업혀진 상태로 김밥을 먹고 그 상태로 서류를 테이블로 가져와 하지 못한 결제를 체크하기 시작했고, 뒤에서 사각사각 과자를 먹고, 그러다가 다시 사탕을 먹고, 또 다시 껌을 씹고, 다시 우유를 마시고. 평소에는 입에도 대지 않던 군것질들은 1년 치 몰아서 하고 있으니 윤호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서류를 점검하고 마무리가 다 되었을 때쯤 목 언저리에 올려진 팔이 느슨해진 사실을 깨달았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아니나 다를까, 사탕을 손에 든 채로 잠이 들어버린 재중이 눈에 들어왔고 어이없이 웃음이 번진 윤호는 조심스레 사탕을 내려주고는 편안한 자세로 깊게 잠 들 수 있게 쇼파 위에 눕혀주고는 옷장에서 작은 담요를 꺼내 행여나 춥지 않게 온도를 높여주었다. " 우리 애기 언제 다 클래..? " § 아침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창민을 숙소에 버리고 혼자서 미용실로 이동했다. 여기서 뭐 같은 그룹은 함께 이동하는 게 맞지 않냐 는 그런 앙드레김이 다른 옷 입는 좆같은 말은 하지 않았음 했다. 머리를 말리는 동안 희미하게 남아있는 졸음을 물리치고 원장님이 건네준 커피를 들고 노트북을 펼쳤다. 어떤 스캔들이 좀 터졌는지 사태파악을 한 뒤에 동네 한 바퀴에 내 면상이 얼마나 올라왔는지 체크하기 위해 접속했다. 김재중, 심창민과는 다르게 안티가 득실거리는 내게는 정확한 면상이나 자료 보다는 팬들의 뒷담화들이 가장 예민했다. 그들은 내가 ' 박유천 ' 으로 입금하고 등업한 사실을 알까나 모르겠다? 등업할때 예시에 적힌 입금정보: 박유천 / 090604 / 6,400원 /을 보고 흠칫 놀란 사실을 알까나 모르겠다? 어김없이 접속을 하자마자 정보를 집어치우고 ' 쪽방 ' 을 접속했다. 천천히 스크롤바를 내리던 라식도 한 내 눈깔에 보이는 낚시성 제목은 무려 ' 독점공개! 김준수가 말하는 믹키유천! (음성이요) ' 라는 게시물이었다. 녀석의 이름을 알게 된지 겨우 4일이 지났을 뿐이었는데, 어느새 김준수의 이름이 쪽방에 거론되자 새삼스레 검사 보다 두려운 사이버 수사대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일깨워야만 했다. 에이 설마 김준수겠어 라는 생각이 80%였지만 어느새 손가락에는 이어폰을 끼고 있었다. 자동반사 시스템과도 같았다. 이들은 내가 모르는 녀석의 정보를 갖고 있었다. 한양대학교 작곡과 2학년. B형. 형제 없음. 12월 15일 생일이 전부였지만, 내가 녀석의 이름을 알기위해 겪어야만 했던 온갖 수난이 허무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검색어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녀석의 행방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는 반면 하나씩 정보가 표출되기 시작했고, 한양대를 찾아 나선 용감한 세포는 녀석의 음성을 녹음해오는 물질적 근거에 능한 우수한 팬질의 능력자였다. 이상하게 처음으로 야동사이트 프리퀵을 결제하던 순간만큼 몸에 긴장이 흐르기 시작했고, 조심스레 재생버튼을 누르자 정말로 개새끼의 음성이 들렸다. 세상 참 좋아졌다. 대한민국 만만세다 씨발. ' 아 그럼 준수오빠는 믹키유천 팬이 아니셨던 거 맞네요?? ' 라는 질문이 들려왔고 길거리를 걸어가면서 녹음을 한 모양인지 자동차 클락션과 옆에서 떠들어대는 사람들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녀석의 목소리는 보컬을 추출한 음성마냥 아주그냥 또렷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 미치셔써요?? 줘어는 그러케 생긴 놈 실커든여!? " 발음이 풀리고 목소리가 많이 쉬었고, 코가 맹맹한걸 보아하니 지독한 감기에 걸린 모양이었다. 쌤통이다 색꺄! ' 아 그럼 저번에 믹키유천 오빠가 차에 직접 태워주셨던데~ 벌써 친해지신 거예요?? ' 라는 질문에 녀석은 콧방귀를 끼더니 이렇게 라이브 소설을 주둥이로 갈겨썼다. " 아 새키가 줘어한테 잘못한 게 있었커든여~!? 그래서 제가 너무나 화가 나갓코! 이야기 하자면 너~무 길구여~ 그래서 미안해서 저 집까지 데려다준거예여. 걔 성질 팬이면 아시겠네요. 근데요. 이거 왜 녹음하세요? " 질문을 던지는 목소리가 싸했다. 당황한 팬은 잠시 침묵을 했고 " 뭐 뿌려져도 갠차나여~ 전 악플 주는 싸이는 안하거든여~ 으하캉하항하항하학!! 그리고 이거슨 비밀인데여~ 믹키유처니여 차 안에 후레쉬가 한 가득이예여~ 으하캉하항하항하학!!!! " 이 가는 소리가 미용실을 메우고 있었고 내 눈치를 보던 코디들이 하나둘씩 1층으로 내려가고 있었고, 이런 개새끼의 보이스를 듣고 너무 귀엽다고 코멘트 단 팬들의 닉네임을 하나씩 곱게 외우고 있었고, 도대체 후레쉬를 왜 들고 다니냐며 역시 특이하신 믹키유천님이라며 웃는 소리에 다행히 야광콘돔이 4차원 발상으로 포장되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건 내가 쪽팔려서 말 안하려던 일인데, 검색어에 믹키유천 남팬 싸이가 보이길래 지식엔에 접속하니 ' 그 용산 팬사인회 남팬 싸이입니다 (진짜 내공있음) ' 내가 내공만 안 걸렸어도 낚시 안 당했을 거다. 그런데 싸이 클릭하자마자 성인용 사이트로 이동했다. 이 씨발새끼들 그런 식으로 낚아서 투데이 올리면 좋냐??!!!!!!!!!!!! 저 새끼 싸이에 혹해서 클릭한 난 또 뭐고?! 이대로 두다가는 없던 일도 저 주둥아리에서 제조될 것 같은 불안함에 창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미용실로 이동하던 중이었는지 목소리는 지하수급으로 잠겨져있었고 그 잠을 한방에 깨워준 이의 보이스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 창민아!!!!!!!!!!!!!!!!!!!!!!!!!!!!!!!!!!!!!!!!!!!!!!!!!!!!!!!! 김즌수 개자식!!!!!!!!!!!!!!!!!!!!!!!!!!!!!!!!!!!!! " " 아 씨발!!!!!!!..이요... 깜짝 놀래라!!!!!!!!!!! " " 그 새끼 번호 내 놔!!!!!!!!!!!!!!!!!!!!!!!!!!!!!! " 왜 끝내 화병으로 죽고야 마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했는지 이제야 그 정확한 이유를 알게 된 어린 믹키유천이었다. | 처음으로 바래다 주는 길, 근데 그거 뽀뽀 맞아? | My Melody w. 킵 * * * 우리들이 동방신기로 데뷔하자마자 말 많은 각종 언론매체에서는 ' 대중문화에게 미래는 있는가? ' 를 두둔하며 언제까지 실력 없는 일본 아이돌 문화를 표절해서 이미 퇴색해진 10대들의 문화를 제멋대로 로테이션 할 텐가? 라는 방학숙제의 밀린 일기마냥 우리들을 물고 늘어지기 좋은 대상처럼 사설에 싣곤 했었다. 고대하던 첫 무대를 서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미디어 매체 속에 어느 탑스타 못지않은 관심을 받고 있었다. 연습시절 파파라치들이 큰 포털 사이트를 쉽게 점령하기도 했으며, 하루 동안의 행방들이 쉽게도 블로거들에게 포착되어 사생활이 인기 검색어에 공개되기도 했었다. 아직 데뷔 무대를 갖기도 전에 보송보송한 애송이들에게 주어진 관심 치고는 많은 상처를 동반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기도 했었다. 나는 아직도 그날의 뜨거웠던 겨울을 생생히 기억한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사람들의 찌라시성 가십거리에 놀아나지 않겠다는 투쟁처럼 어느 누구도 상처가 될법한 악플과 밖에서 논란이 되는 우리들의 기사거리에 대해서 함부로 입 밖에 내놓지 않았다. 누가 정해 준 것도 아닌데 우리들은 침묵으로 일관하며, 그런 주제의 고민을 쉽게 털어 놓지 못했었다. 그러던 중 데뷔무대 첫 방송이 정해졌고, 그 바로 당일까지도 새벽 4시까지 난방이 되지 않은 연습실에서 그동안의 혹독한 연습량을 똑같이 해내고 있었다. 악플만큼이나 참혹하고 혹독하게 자기 자신을 몰아 붙였던 맹연습에는 완벽에의 충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미 지칠 데로 지친 재중은 결국 쇼파 위에서 잠이 들어버렸고, 몇 번 더 연습을 마친 창민과 나는 차가운 바닥에 몸을 맞대며 헐떡이는 숨을 진정시키고 있었을 때였다.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천근만근 무겁기만 하던 상체를 올리고같이 일정하지 않은 호흡에 힘들어하던 창민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창민은 주체하지 못한 눈물을 양쪽 볼로 흘려보내며 입을 꽉 다문 채 끅끅거리며 울고 있었다. 그때의 충격이란 아직도 그날을 떠올리면 온몸이 사시나무 떨 듯 경련이 일어날 정도였다. 나와 재중이 쉽사리 흘리지 못한 눈물을 막내가 대신해주고 있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려왔고, 그동안의 독기어린 비난들을 반드시 되갚아주겠다는 강한 의지력도 포함되게 한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었다. 한참을 울던 창민의 눈에 눈물이 멈추었고 우리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쓰러져있는 재중을 깨워서 숙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창민의 눈물은 볼 수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울고 웃고싶어하는 대중들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우리들의 감정선 자유욕을 과감히 밀살 시켜야만 했다. § 입을 비죽이며 웃고 있는 창민이 2층으로 올라오며 말했다. 갑자기 울던 얼굴이 생각나 닭살 돋은 팔을 문질러야만 했다. 씨발 갑자기 안아주고 싶네. " 창민아.. " " 아침 댓바람부터 고막 터지는 줄 알았네. 그래서 통화는 하셨슈? " " 창민아.. " " 아, 왜요~ " " 창민아.. " " 지금 심심하슈? " " 창민아.. 사랑해. " 생기 없이 축 쳐진 눈과 더 없이 창백해진 얼굴로 쇼파에서 벌떡 일어나 양팔을 최대한 안락하게 벌리며 솟구치는 애정의 욕구를 창민에게 해소하려 하자, 아무 탈 없이 계단을 올라오고 있던 모든 동작이 쉽게 멈췄다. 오줌 마려운 똥개마냥 급유턴으로 올라온 계단을 다시 내려가고 있는 창민의 뒷모습을 보았다. 명백한 신호위반임은 분명하였으나, 센치해진 기분탓에 그마저 사랑스러웠다. 그에 반면 자다 일어난 머리를 사정없이 쥐어뜯으며 비명 아닌 짜증스러움을 과격하게 표출하고 있는 창민이 오크로 변신된 순간이기도 했다. ' 아악!!!!!!!!!!!!! 원장 선생님. 저 머리 말고 귀 좀 잘라주세요. ' § 김준수의 통화연결음은 빌어먹게도 학교종이 땡땡땡 이었다. 분명 저 녀석이 다니는 학교는 배틀로얄 대상자가 분명하다고 다시금 의심이 일어났고 몇 번의 통화 연결음 끝에 녀석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다. 금방 수업이 끝났는지 목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주변에 잡음이 엄청 시끄러웠다. 하지만 그러한 조건 속에서도 녀석의 목소리에는 몸에 베인 애교가 넘쳐흘렀다. " 여보째~요? " " 나야. " " 나? 누구우?? " 옆에서 ' 준수야 빨리 가자 가자~~ ' 라는 남자 목소리와 좀 더 멀리서는 ' 준수야 이번엔 빠지면 안~대에~ ' 라며 억지스런 아양을 떠는 여자들 목소리가 다발로 겹쳐서 들려왔다. 엄청 앵앵대는구먼. " 나. 박유천이라고. " " 바규촌이 먼데에??? " 정말로 믹키유천은 이제서 알았고, 박유천은 다른 사람으로 알고 있는 듯 했다. 이게 전국민이 아는 내 본명도 모르고 말이야. TV에 수신기 달아뒀다 뭐하냐? " 병신아, 믹키유천이라고. " " 응 그래. 너 믹키유천이다. 근데. 내가 너한테 돈이라도 꿨어? " 방금 전의 여보째요한 사람은 어딜 가고. 터치도 안했는데 이건 완전 햅틱도 울고 갈 초고속 정색 반응이다. " 왜 바로 정색하는 건데? " " 왜 전화한 건데? " " 몰라서 물어? " " 모르니까 묻지? 알고선 입 아프게 물어? " " 어디야. 학교야? " " 내 행선지를 간지럽게 네가 왜 체크해? " " 난 미용실이야. 창민이 기다려. " " 미용실 아줌마 보고 네 주둥이 좀 다듬어 달라고 전해줄래? " " 죽을래? " " 내가 왜? " " 너 혓바닥 너무 지조 없이 가벼워. 알고 있어? " " 네가 내 혀 빨아봤어? 내 혀 가벼운걸 니가 어떻게 아는데?? " 순진하게 생겨서는 야한농담도 태연하게 했다.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 나 상담원 아니거든? 나도 바쁜 사람이거든? 끊어! " " ㅇ..야!!! " 정말로 중간에 뚝 끊긴 핸드폰의 액정을 바라보자 통화 종료 시간이 깜빡거렸다. 오기가 생겨서 다시 핸드폰을 들어 걸었고 역시나 학교종이땡땡땡은 나에게 어서 모이자라고 했지만, 정작 핸드폰 주인의 선생님은 나를 기다리지 않았다. 씨발새끼. 누구는 내 전화에 인생이 펴지는데 이 새끼는 나를 신용카드 하나 만들라는 스팸전화쯤으로 생각했다. 그 후로 오랫동안 끈질기게 나는 어서 모이자고 학교 가겠다며 덤볐지만, 끝내 선생님은 씨발 학생 차별로 나를 기다려주지도 환영해주지도 알아보지도 않았다 이거다!!!!! 교육청 지금 일 똑바로 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 아 정말요? 으하하학하하! 네.. 아뇨 지금 절 미친놈처럼 쳐다보고 있는데요? 네? 으하하하학하학! 네 그럼요~ " 머리를 손질한 창민이 말끔해진 모습으로 새사람처럼 나타나 계단을 밟고 있었고, 나는 기가 막힌 눈치껏 지금 통화하고 있는 상대가 김준수라는 사실을 아주 쉽게도 알 수가 있었다. 사람 속 박박 긁고 싶어서 안달난 사람처럼 창민의 눈빛은 비웃음으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고, 올라갈 데로 올라간 입꼬리는 나를 조롱하고 있었다. 니들이 날 가지고 놀아 아주그냥? 죽일 듯 노려보자 물도 안줬는데 웃음꽃은 더욱 활짝 피었다. 우쥬플리즈닥쳐줄래? " 형~ 준수형이 나보고 최창민인줄 알았대 으하학학 웃기지 웃기지? " " 그게 뭐가 웃기냐? 니가 최창민이면 우린 믹유천, 영재중이냐? " 소리 없이 배를 움켜잡더니 녀석에게 그대로 전달하며 몸을 가누지 못한 동작으로 억지로 걸었다. ' 준수형 흐하항하하학 지금 유천이형이 그게 뭐가 웃기냥? 니가 최창민이면 우린 믹유천, 영재중이냐? 래요 으하하하학 아 배 아파요 ' 나 들으라고 녀석은 핸드폰에 스피커폰 기능을 켰고, 키자마자 어느새 익숙해진 투니버스 채널이 재생되고 있었다. 뭐가 웃겨서 울면서 웃는 건지 이해가 안갔다. 우려했던 일이 내 예상대로 일어났다. 드디어 내 동생 창민이가 박테리아에게 전염되어 미친놈이 되었다. 웃기지도 않은 농담으로 세상을 다 가진 듯 웃고 자빠졌다. 한참동안을 창민은 맛있는 음식을 낼름낼름 여러 번 나눠먹는 사람처럼 나를 지긋이 쳐다보며 통화를 했고 짜증이 솟구치는 난 얄미운 창민의 대가리를 아프지 않게 갈겼다. 그런데 소리가 엄청 커서 민망했다. 퍽! 야 안 아프게 때렸어~ 나 감정 실어서 때린 거 아니다? 한 번 더 생각해봐 안 아파. 너 지금 안아픈거 맞아! " 참미나~ 너 지금 마자써?? 퍽! 소리 났어. 참아! 차마! 잘생긴 니가 참아. 바규촌 같은 애. 아픈사~람 이려니 생각하고 니가 이해해! " " 준수형 저는 왜 믹키유천 동생으로 태어났을까요? " " 그게 네 인생에 큰 오점이라고 생각하고 살아~ " " 네. 저도 그러려구요~ " 계단을 내려가면서 들리는 웃음소리에 골이 다 울렸다. 저 둘이 합체하면 당해낼 수가 없다. 덤비면 그 두 배로 올킬이었다. 근데 나도 심창민이 내 동생으로 태어난걸 내 인생에 큰 행운으로 생각하고 살고 있었다. 니미. 갑자기 슬프다. 흑흑 재중이 덕분에 한번 쉬어간 템포에 쉴틈없는 프로모도 일정들도 별 불만 없이 재밌게 해소하고 있었다. 첫 출연 하게 된 네 바퀴 퀴즈 프로그램은 새벽 내내 녹화가 길게도 이루어졌다. 대부분 출연진들이 연령대가 높으신 선배분들이라, 새벽녹화가 버거우실 법도 한데 지친 기색 없이 프로답게 웃음을 주는 모습에 힘든 줄 모르고 이에 보답하듯이 비행기를 주구장창 타고 제대로 웃고 있었다. 중간 중간마다 우리들이 먹은 생수병을 성수라며 챙겨다가 먹는 모습에 너무 웃겨 눈물을 훔쳤고, 듣기만 해도 좋은 말장난에 텐션이 내려갈 틈이 없었다. 그러던 중 ' 배우자에게 문자 보내기 ' 라는 코너가 시작되었고, 보낼 문자는 무려 「 나 요즘 가을 타나봐 어떡하지? 」 였다. 때마침 스치는 얼굴 하나가 빌어먹게도 김준수였다. 그새 전염되었나? 나 주사 맞을까..? 아는 지인 중에서 아무에게라도 좋으니까, 보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보내라는 MC의 말에 고민 없이 김준수를 선택하고 똥줄 타게 답문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어디서 흘러나온 확신인지 여러 사람에게 안보내고 김준수에게만 보냈다. 왠지 모르게 문자에는 답이 올 거라고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그 확신은 하지 않았던 게 좋았을 만큼 강한 후회를 보란 듯이 가져다주었다. 드르륵~ 하는 진동음과 함께 확인도 하지 않고 손을 들었고, 내 핸드폰을 가져간 MC분은 액정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고 웃고 계셨다. 순간 막심한 후회감이 밀려왔고, 확인하고 보낼걸. 혹은 설마 이상한 말이나 욕 그대로 방송 타겠어? 씨발 편집하겠지~ 따위의 위로를 하고 있을 때였다. " 오! 믹키유천씨도 문자가 왔습니다~ 나 요즘 가을 타나봐 어떡하지? 라고 보내니까, 상대방에게서 이렇게 답문자가 왔네요~ 아 이분 누구신지 너~무 궁금한데요? " 「 미친새끼야!!!!  잠도 없냐!???  술 곱게 처먹고  집에나 가라?? 」 모든 MC와 출연자들이 테이블 위로 쓰러지며 심하게 웃고 있는데 정작 나는 얼굴이 구겨졌다. 울고싶어졌다. 옆에 앉은 창민도 예외는 아니란 듯이 혀를 깨물어 웃으며 나에게 구겨진 인상 피라고 내 옆구리를 찌르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곱씹어봐도 어이없는 문자에 내가 미쳤다고 결과 뻔 한 자살골을 넣었지? 한탄해봤자 이미 흐르는 물은 잡을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 그런데 이분은 누구세요? " 그나마 좀 웃음이 멈춘 상황에서 MC가 상대방에 대해 물어봤고, 난 어이없게도 활짝 웃음꽃을 억지로 피우며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 아, 친한 친구인데요.. 원래 좀 웃긴 친구예요~ 하하하! " " 네~ 정말로 보이스 메일처럼 억양이 생생한 친구네요~ " 그리고 곧 이어 창민의 핸드폰이 드르륵~ 진동이 왔고, 회심의 미소가 담긴 창민의 문자가 공개된 순간, 나는 고개를 테이블에 처박고 남들처럼 참을 수 없단 듯이 대폭소로 함께 웃는 척 열심히 애드리브를 쳐야만 했다. 저 개새끼는 나한테 상의도 없이.. 그렇다고 나도 상의를 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의 없이 김준수한테 똑같은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녀석에게 온 문자로 녹화장이 일순간 폭소의 도가니로 마비가 되었고, 그 순간 이 부분은 절대 편집이 될 수 없겠다는 장담에 뼈아픈 눈물이 나올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들 쓰러져 웃었던 이 부분이 예고편으로 써먹혔더랬지? " 와~아 크흐흐큭.. 이분이 누구라고 말씀 안 드려도 저희들이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나 요즘 가을 타나봐 어떡하지? 라고 보내니까~! 창민군에게 온 문자가! " 「 야!! 박유천!!!  창민이 폰으로  보내면 내가 모를 줄  알았냐!!?? 술 곱게  처먹고!! 집에 좀!!!  가라니까!!!!!! 」 그래, 첫출연에 큰 웃음 나대신 터트려줘서 좋은데, 너 내 전화는 꼭 받아라???!!! 학교 종만 땡땡땡 얄밉게 치지 말고, 나를 좀 기다려주라고 개자식아!!!!!!!!! § 정실장은 방송국 본부장과의 짧은 점심 미팅을 갖자마자 걸려온 전화 한통에 기획사 사무실이 2002년 월드컵을 재현하듯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이유인즉, 매 해 신년 1월 달이면, 누구나 주목하고 있는 세계적인 패션잡지 AN2에서 1년에 1번씩 선보이는 특집 코너의 대상자가 공개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AN2은 아시아뿐 아니라, 각종 해외에서 재편집되어 매 달 250만부씩 출판되는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은 기록을 갖고 있는 유일한 패션잡지사였다. 그중에서 가장 뛰어난 이목을 집중시키는 부분은 당연. 신년마다 한 번씩 나오는 ' 여자들이 뽑은 안기고 싶은 남자, 혹은 애인삼고 싶은 남자 ' 의 랭킹이었다. 그 랭킹의 대상자 1위가 결국 그 코너를 맡게 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는 특별기획이었다. 2008년 말에 미리 예고한바와 같이 2009년에는 아시아에서 뽑은 여자들의 랭킹이 주제였고, 그 랭킹의 발표는 2009년 1월 달 잡지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 랭킹 결과를 알기위해 수많은 AN2 구독자들은 다른 달 보다, 3배 이상 훌쩍 넘는 판매량을 높이 선보일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인 부분을 증명하기도 했다. 그리고 당일, 특별기획 2009 안아주고 싶은 남자 랭킹 1위에 영웅재중이 올라왔고, 이 소식 하나로 엄청난 속도로 1분에 몇 십 개씩 기사들이 속출되고 있었다. 예외 없는 사무실은 모든 연락망이 마비가 될 정도로 많은 양의 문의전화가 쇄도하고 있었다. 정확한 랭킹을 잡지를 통해 읽고 있던 정실장의 표정은 분명 놀라워해야지 마땅한 일임에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표정은 미묘했다. 단 한 번의 사진으로 무명에서 스타덤에 오름은 물론이거니와, 어떤 개망나니라도 이 랭킹의 대상자에게는 정확한 미래가 뒤따른다는 건 어린 꼬마아이도 알 정도로 그 잡지의 파워는 대단했다. 하지만 그 코너가 실리는 3월 달 잡지만큼은 19세 등급을 끼워 팔아야 할 정도로 그 수위는 가히 대단하고 유명하게 알려져 있었다. 기본적으로 내비친 세미누드의 패션잡지 개념이 아니라, 패션 아이템을 노린 전신 누드 컷이 이 코너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했다. 대부분 여성 모델과의 농도 짙은 섹스자세와 욕조씬, 키스씬등 관능력을 주제로 이루어진 작업들이 대부분이라, 그 수위는 놀랄 만큼 상당했다. 하지만 다른 년도와는 다른 주제로 잡지가 출판되자마자, 이슈로 내걸린 기사 타이틀은 전부「 2009년 AN2 영웅재중! 시대를 이어가는 주제는 동성! 」,「 22살 영웅재중! 동성 누드씬 타당한가!? 」,「 역대 AN2 최대랭킹 영웅재중! 사랑과 집착, 질투와 분노의 파노라마! 동성으로 해소할 수 있을까?! 」 라는 타이틀이었다. 재중이 뽑힌 랭킹의 주제는 무려 「소년의 사랑과 집착, 질투와 눈물의 파노라마」였다. 출판된 AN2 잡지를 내려놓자 눈의 피로함과 동시에 두개골에 구멍을 내고 싶을 만큼의 두통이 빠르게 몰려왔다. 곧바로 눈을 감고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러보았지만, 역시나 마찬가지였다. 곧바로 책상 서랍에서 아스피린 한 알을 꺼내서 물과 함께 삼키자 때마침 전화벨이 울렸다. 정실장은 아직도 얼얼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지친기색으로 전화를 받았다. " 네. 정윤호입니다. " " 정실장님이시죠? 안녕하세요~ 2009년 운수대통 하하하~ 사진작가 선희입니다. " " 네. 내용은 잡지를 통해서 전달 받았습니다. 두 분 이서 공동작업 하신다는 내용도 빠짐없이 들었습니다. " " 예~ 사무실을 통해 관련 팩스를 넣어드렸는데, 이미 받아보신 모양이네요. " " 네. 일단은 읽어보았습니다만.. " " 예~ 혹시 읽으시면서 다른 문제라도 있으셨나요? " " 다름이 아니라.. " " 예 말씀하세요~ " " .. 혹시 거절한 사례도 있었습니까? " " 예??? 무엇을요?? " " 아, 그러니까. 랭킹 1위 대상자가, 코너를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도 있었냐는 겁니다. " 질문을 이제야 이해한 사진작가는 무슨 그런 시시콜콜한 농담을 하냐며 가벼운 코웃음을 쳤고 마지막으로 쇄기를 박는 멘트도 서슴지 않았다. " 어느 미친놈이 정해진 로또를 마다하겠어요?? 뒤에서 몇 십억씩 돈 찌르고 랭킹 올려달라는 거물급들이 얼마나 전 세계에 쌓였는데요? " " 예. 그렇죠. " " 다름이 아니라, 제가 전화 드린 사항은 1차적으로 종만선배님과 상대모델 상의는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미팅날짜를 좀 앞당겼으면 해서요. 정실장님도 아시다시피 그쪽 기획사도 마찬가지겠지만, 저희 측에서도 보통 좋은 기회가 아니라서 제대로 잘 찍어보려고 여러 가지 모티브를 각색중이거든요. 회의도 벌써 들어갔구요. " " 네. " " 일정 잡히시면 빠른 시일 내로 한번 뵙죠? 아, 바쁘시니까 저희가 움직이는 것도 좋구요. " " 네. 일단 제가 그럼. 일정 잡히면 바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 " 네~ 하하 그나저나 정실장님도 올해 매출은 걱정도 없으시겠어요? 그쪽 사무실도 난리 났죠? 저희 식구들도 아주 난리가 났는데 거긴 여기보다 더 심하겠네요~ 하하 " " 네. 그럼 연락드리죠. " " 네~ 알겠습니다. "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전혀 나아질 기색이 없는 두통으로 신경은 많이 날카로워졌고, 양쪽 관자놀이에 팔딱팔딱 뛰는 심장박동이 불규칙하게 전해졌다. 그리고 연달아 부탁한 역대 AN2 특집코너 잡지들이 도착했다. ' 수고했습니다. ' 라는 말과 함께 비서를 내보내고, 처음 시도된 기획부터 2008년까지 천천히 그 코너를 둘러보고 있는 정실장 얼굴에 미묘하게 고민하는 눈빛이었다. 아주 아름다운 소유욕이란 어느 선에서 정당한 것인가를 가늠하고 싶은 순간이기도 했다. 바닷물처럼 갈증만 일으키는 해결책 없는 고민에 머리를 지끈 감싸며 곧바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 지금 난 박테리아가 득실거리는 김준수 집 앞이었다. 이질적인 높이를 자랑하는 아파트는 야밤에도 멋들어지게 고운 돈지랄 자태를 뽑내고있었고, 1시간째 차안에서 시동을 걸고 움직이지 않은 차를 미묘하게 조금씩 확인하는 세심한 경비원이 눈에 들어왔고, 지랄 맞게도 하늘에선 더럽게도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완벽한 눈이라기엔 맞으면 찝찝한. 비도 아닌 것이 눈도 아닌 것이 폭우처럼 촘촘히 떨어지고 있었다. 문자사건 이후로도 몇 번이나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내 전화는 받질 않았고 창민의 전화로 하면 겨우 통화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번번이 문전박대를 당했다. 여기서 질문은 내가 왜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녀석에게 지지리 궁상맞게 전화를 걸고 내 전화를 받으라 강요 하냐고 묻는다면, 사실 나에게 타당한 이유는 존재 하지 않았다. 그냥 남들에게는 껌~뻑! 죽는 내 얼굴이 저 새끼한테는 왜 안 먹히고, 남들에게는 녹아드는 내 감미로운 목소리가 왜 저 새끼한테는 스팸 목소리인지 이해가 안가고, 왜 창민이 재중이는 비현실 속 연예인처럼 신기하게 생각하며, 일반인들이 궁금해 하던 유치한 질문들은 물어보면서 왜 나는 일반인 취급 당해야하는지 몰랐다. 난 단순하게 그 이유가 알고 싶은 거였다. 내가 왜 싫어? 내 전화 왜 쌩까? 너! 왜 나 무시해!!!!!!!!!!!!!!!!!!!! 갑자기 이유를 정리하다 보니 열이 솟구쳐 담배가 간절히 말렸다. 갑갑했던 차에서 내려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하늘을 향해 길게 연기를 내뿜었다. 그런데 얼마나 눈이 펑펑 잘도 떨어지는지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 우산을 쓰고 있었다. 이런 내 신세가 처량해져 고개를 떨어뜨리자 나를 알아보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너 혹시 박유천? 유천이니.. ? " 아련하게 가까워지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고, 빈 속 때문에 그런지 강한 담배 맛이 폐로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개를 들어 상대방을 보니, 수빈누나였다. 씨발 여기 살았었나? 인상을 피고 최대한 웃으며 반갑게 대답했다. 반가운 마음만큼, 마주치기 싫은 얼굴이기도 했다. " 아~ 안녕하세요 누나. 오랜만 이예요. 여기 사시나 봐요? " " 응 그래 반갑다~ 이사 온 지는 좀 됐어. 정말 우리 오랜만이네? " " 아.. 네, 잘 지내시죠? " 재벌집 가문의 며느리가 되었다는 소식은 뉴스를 통해 들었는데 결혼생활이 수월하지 않은 모양인지 얼굴빛이 많이 어두웠다. 그래도 가장 길게 연애했던 누나였는데, 세월은 참 잔혹하고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어.. 나야 잘 지내지~ 그런데 여긴 무슨 일이야? " " 아.. 아, 친구가 여기 살거든요~ 친구 기다려요~ " 이 정도 거리가 딱 좋다고 느껴지는데 자꾸만 가까이 다가오는 시선이 부담스럽다고 느껴졌다. 그래도 한동안 많이 울며불며 사랑한다고 매달리고 찌질하게 따라다녔던 사람인데, 우습게도 남의 여자가 되니까, 이런 우연한 만남마저 껄끄러운 게 사실이었다. 내 머리위로 쏟아지는 빗물스런 눈이 신경 쓰였던 모양인지 쓰고 있던 우산을 내 머리 위로 받쳐주었다. 그래 시집가면 가끔 생각나는 옛 남자들 때문에 가슴이 싸하기도 하겠지. 지금은 후회라는 걸 하겠지. 그러게 자기 분수대로 살지. 쓸데없는 허세는 왜 부려서 인생 망 쳐. 그런 얼굴로 태어났으면, 평생 누릴 거 다 누리고. 즐길 거 다 즐기고 살지. 이 미련한 여자야. " 친구? 여자친구? " 점점 가까워진 거리에 그냥 오늘은 포기하고 집에 갈까? 라는 생각이 밀려올 때쯤 갑자기 나를 발견한 김준수가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는 내 얼굴 한번, 내 옆에 있는 수빈누나 얼굴 한번을 반복적으로 여러 번 보았다. 녀석도 얄밉게 비처럼 내리는 눈이 감당이 안되었던 모양이었는지 우습게도 하얀색 땡땡이가 들어간 비닐우산을 들고 있었다. 역시나 등 뒤에는 검정색 악기 케이스가 있었고, 한 손에는 하얀 봉지가 달랑 달랑 움직이고 있었다. 하얀색 바지에 검정색 스니커즈, 낮에 나갔다가 이제 들어오는 모양인지 밤 날씨 치고는 꽤나 얇은 체크 쟈켓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녀석이 꽤나 놀란 듯 들고 있던 우산을 바닥으로 내팽개치더니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순간 당황한 나는 저 새끼가 지금 무슨짓을 하고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았고 옆에서 같이 당황한 수빈누나는 ' 유천아 피하자. 저리로 가자. 빨리~! ' 라며 내 팔을 잡아 세우며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 했다. 그런데 김준수의 표정은 마치 동물원 사파리에서 건빵을 먹기 위해 한 바퀴 뱅그르르 도는 곰이 아닌 호랑이를 발견한 사람처럼 놀라있었다. 새끼야 뭘 그리 놀래? 김수빈 처음 봐? " 어?! 니네두리 모하는거야! 지금 여기 왜잇어! 와~ 너 진짜 아주 그냥 셋트로 그냥 어우씨 내가 진짜! 연인이야!? 아주 그냥 손도 올렷어! 조아아! 팔짱 껴엇써어~ 유노형한테 이를꼬야 기다려!!!! " 중간에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다발총처럼 자기 말만 한 녀석이 땅에 처박힌 우산을 들고 아파트 입구로 뛰어 들어갔다. 그런 녀석의 돌방행동에 당황해 하고 있었고 옆에 있던 수빈누나는 찍고 간 사진이 많이 신경 쓰였는지 ' 유천아.. 어떡해 저 사람 잡아야하는거 아니야.. ? ' 라며 이제야 자신이 처한 상황이 이해갔는지 걱정스런 말투를 늘어놨다. 그러게 야심한 밤에 왜 싸돌아 다녀? " 아, 걱정하지마세요~ 제가 아는 친구예요. " " 그..럼 만나러 온 친구가 저 친구였어? " " 네. 이번일은 걱정 마세요. 쟤가 좀 많이 아픈 애거든요. " 하.하.하. 수빈누나를 안정시켜 보내고 이를 갈며 아파트 입구로 다시 갔지만, 나를 눈여겨보았던 경비원은 보안을 내세우며 출입이 되지않는다며 나를 막아 세웠다. ' 아저씨 나 김준수 친구라니까? ' 라는 말을 해도 이상한 눈빛으로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며 ' 준수군 한 번도 친구 집으로 데리고 온 적 없다네. 밤늦게 이러지 말고 집에나 가게! ' 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헛소리래? 친구가 왜 없어. 매일 사랑받아 마땅한 말투로 주변에 예뻐하는 사람들이 널려있구먼. 덩달아 경비원을 이상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50평이면 관리비 80만원돈 받는 사람들은 말도 많네?? " 아저씨 뭐 잘못 알고 계신거 아니세요? 김준수 친구 존나게 많거든요? " " 밖에서 친구가 많은 건 내가 모르지만, 친구를 집에 데려온 적은 한 번도 없었네. " " 아저씨 여기 몇 년 경비 스셨어요? " " 나 말하는 거요? 2002년 첫 입주 때부터 인데 왜 그러시오? " " 그럼 김준수가 언제 입주했는지 아시겠네요? " " 3차니까 2004년에 봄 정도에 입주했었지 아마? " " 그럼 5년 동안 지켜보셨겠네요? " " 그야, 그렇지.. 그런데 자넨 누군데 여기서 어슬렁거리나? 바로 가지 않으면 신고를 해야 한다네. " " 아저씨 저 모르세요? " " 허~참.. 내가 그쪽을 무슨 수로 아는가? " 씨발, 오늘은 안 되겠군. 여기 공기가 안 좋아. 아주 안 좋아. 여기 더 있다간 뭐라도 홀리겠어. 그래. 간다. 가!!!!!!!!!!!!!!!!!!! § 찝찝하게 내린 눈 때문에 상당히 젖은 코트를 벗으며 숙소로 들어갔고, 늦은 시간까지 환하게 켜져있는 거실에는 정실장과 창민, 재중이 꽤나 심각한 고민에 빠진 사람들처럼 개우울하고 진지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씨발 나 이런 분위기 싫은데. " 왜 다들 껌 씹은 표정들이야? " 코트를 집어 던지고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생수병을 꺼내 여러 번 나누어 마셨다. 시원해진 가슴속을 만족해하며 거실로 나가자 테이블 위에 여러 권의 패션잡지들이 무질서하게 올려져있었다. 그중에 한권은 재중의 무릎위에 올려진 채로 오랫동안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았고, 창민은 정실장 표정을 야금야금 봐가며 눈치를 보고 있었고, 재밌지도 않은 TV를 브라운관을 주시하며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정실장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AN2 때문에 그런 거야? " 아 왜~ 또. 무슨 일인데 그렇게들 심각해? 랭킹 1위 뽑혔다면서, 남들은 대한민국 아이돌 만세를 외치고 있는데 왜 여긴 초상집이야? 뭐 화투판이라도 놔줄까? 신나게 놀아 볼텨?? " 옆에서 신나게 짖어대는데도 어느 누구 하나 눈 깜짝 안하고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곧바로 테이블 위에 올려진 잡지 한 권을 들어 펼쳤고, 적나라케 찍힌 모델들 몸매를 감상하며 저절로 감탄사가 내뱉어졌다. 그게 누군가의 속을 긁는 건지도 모른 채 말이다. " 우와 씨발, 이 새끼 완전 로또구먼? 야 야~ 이 여자 봤어? 가슴 죽이는데? 역시 가슴은 일본 애들이 탁월해. 이 새끼들은 복들도 많지. 인생 한방! 한번 벗고 존나 돈벼락. 전생에 나라를 얼마나 구했기에. 이런 축복을. 정실장! 내가 왜 이 랭킹 순위에서 코빼기도 안 비췄는지 분석좀 해줄 순 없어?? " 씨발, 다들 귀 막았지? 자꾸 내 소리는 한 쪽으로 고민도 없이 흘려보내지?! " 아씨!!! 왜 다들 죽을상들인데! 말을 해! 말을 해야지 알 거 아니야. 답답하게 왜들 그러시나? 그렇게 멍 때리고 앉아있으면 뭐! 일이 해결이 되??? 되냐고! " 그 순간, 갑자기 리모컨으로 TV 전원을 끈 정실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니미, 순간 쫄았다. " 김재중이 이 잡지 죽어도 안 찍겠대. " 정말 놀랐다. " 뭐???????????????? 왜??????? " 벌떡 일어난 정실장이 슈트를 집어 쥐더니 곧바로 현관을 박차고 나갔고, 여전히 같은 페이지만 바라보고 있는 재중의 손을 낚아채서 재중이 보고 있는 잡지를 들여다봤다. 역대 가장 수위가 높다는 재작년에 출판된 잡지였다. 고도의 기술로 교묘하고 얍삽하게도 엉켜지는 두 나체의 하체는 빈틈없이 조여져있었고,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유명한 에로물 영상이 초라해질 만큼 사진 한 장이 가져다주는 임팩은 그 이상이었다. 움직이지 않는 사진이 실제로 움직이는 영상처럼 교활하고 적나라케 찍혀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가 통제할 수 없는 상상이란 엄청난 욕구를 표출시키기에 더 없이 충분한 공략이었다. " 야. 김재중. 이건 일개 누드사진들 하고는 차원이 다른 작업이라고. 너 뿐만 아니라, 세계 그 어떤 사람도 이런 걸로 너 손가락질 안 해. 오히려 더 부러워하면 했지! 그래. 솔직히 처음 시도되는 동성컷. 그거. 그거 하나가 나도 심하게 걸리기는 한데. 야 인생 한방이야? 저거 하나면 너도 살고, 우리도 살고, 대한민국도 살고, 정실장도 살아. 잘 아는 새끼가 왜 그런 망언을 했어? 어? 뭔데 대체 이유가 뭐냐고. 뭐냐니까? " 창민도, 정실장도 4시간 내내 꺼내지 못한 말들을 상대가 누구든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고, 그 모든 말은 그 잡지를 기다리고 있는 전 세계의 구독자들을 대변하는 말처럼 들려왔다. " 또. 또 버릇 나왔다? 너 그렇게 입만 다물면, 또 정실장이 말없이 뒤에서 해결해줄거라고 생각했다면, 이번엔 그냥 접어라. 어? 아무리 정실장이 너 뒤에서 받쳐줘도 이건 정실장 손에 쥐어진 게 아니야. 정실장이 아무리 안하겠다고 너 막아줘도 넌 반드시 찍게 되어있다고. 아니 누구는 못 찍어서 안달이 났는데. 도대체 이유가 뭐야? 어디한번 속 시원하게 이유라도 말해 봐. 들어나 보자. " " ..싫어.. 싫어! 찍기 싫어 이런 거. " " 그러니까, 왜 ? " " 몇 억을 준다고 해도, 찍기 싫어. 싫어. 생각하기도 싫어. 싫어. 싫어.. " 푹 숙여진 고개가 정말로 하기 싫단 듯이 고개를 저어댔다. 답답했다. 웬만한 설득력으로는 넘어오지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너 자꾸 애 같이 굴 거야? 네가 그러면 그럴수록 누가 힘들어져? 너도 아니고 우리도 아니고 정실장이야. 너 그거 알아 몰라? " " .. 알아. " " 씨발, 아는 새끼가 자꾸 고집 피울래? 정실장은 솔직히 뭐 좋겠냐? 니 나체가 여기저기서 돈으로 팔리는데 좋겠냐고? " " .. 그것도 알아. " " 그래. 알아. 그런데 왜? 단순히 벗기 싫어서야? " " 아니. " " 그럼? " " 이렇게 갑작스러운 게 싫어. 아직.. 아직 못한 게 나 너무 많아. " " 뭘? " " 나 혼자 찍는 거면 그냥 눈 감고 할 수 있겠는데.. " " 그런데? " " .. 싫어. 남자랑 침대에서 저러고 찍는 거. 그래. 사람들이 원하는 게 어떤 건지 내가 왜 그 랭킹에 뽑혔는지 니네들이 설명 안 해줘도 나도 그쯤은 잘 알아. 그런데 그 주제가 싫어. 그런 걸로 다른 남자랑 살 닿는 거조차 끔찍해. 싫어. 그냥 싫어. 싫단 말이야. " 두 눈에 눈물을 매단 채 끅끅 대던 재중이 결국 울음을 터트렸고, 옆에서 가만히 재중의 등을 토닥이는 창민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 그래서 정실장은 뭐래? " " .. 나 보고 결정하래. " " 김재중. " " 응. " " 내가 윤호형 대신에 너한테 지금 말하는 거야. 그러니까 잘 들어. 나 한번만 말한다? 다시 네가 물어봐도 대답 안한다. " 긍정의 눈빛을 보인 재중이 고개를 들었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억지로 닦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눈물은 멈출 기색이 안보였다. " 정실장. 여태까지 너 대신에 새벽마다 호텔로 서포터들 안돌 수 있게. 이번엔 네가 도와줘. " 눈물이 신기하게도 멈췄다. " 이거 하면, 이거 내가 하면 윤호형 두통.. 없어져? " 거짓말이었다. " 어. " 다시 재중이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흔들리는 눈동자는 재중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고, 발을 뻗고 비비적거리며 아이처럼 우는 모습에 가슴이 많이 아파왔다. 연달아 재중은 고개를 끄덕이며 촬영 하겠다고 여러 번 반복해서 말했고, 그럴 때마다 괴로워할 윤호형의 마음이 느껴져서 많이도 눈물이 났었다. 지금 나이엔, 누구나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었다. 자기 방식대로 살기위해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트렁크 가방을 들고 아주 멀리 다른 곳으로 떠나기만 하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린 이미 너무 어린 나이임에도 그 아주먼 곳에도 이와 다를 게 없는 세상이 똑같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깨달았다. 세상에 자기를 걸어볼 만큼 가치가 있지 않다 는걸 알았고, 세상에 대한 과대망상도 없다 는걸 알았다. 이런 괴롭고 가슴 아픈 순간도 끊임없이 세상의 시간은 흘러가고 어느 누군가의 손에도 장소에도 보관되지 않은 무의미한 필름처럼 쌓여진다는 것을 잘 알았다. 알려고 하면 더 위태로워진다 해도 굳이 속지 않으려고 애쓸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서로 사랑하기도 바쁜 시간. 이제 그만 아프라고 알려주고 싶었다. § 한 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 분위기가 한동안 조용해 심심한 주둥이가 저릴 정도로 참기 힘든 정숙한 분위기를 참아 내느라 죽을 뻔했었다. 어찌되었든 김재중은 다음날 정실장한테 찍겠다고 고집 피워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고, 이유를 알 턱이 없는 정실장은 뭐 당황해 하며 알았다고 했을 테고, 아니 그런데 씨발 저 새끼는 훌륭한 잡지에 찍히기 그렇게~ 그렇게~ 싫다고~ 싫다고~ 울면서~ 징징 거리는데, 가만히 스케줄 잘 하고 있는 나한테는 시트콤을 왜 시키냐고!!!!!!!!!!!!!!!!!! 씨발. 만만한 게 나야, 누구는 아파서 안 돼, 누구는 이미지에 큰 타격으로 안 돼, 나는 뭐야? 응? 나는 동방신기 아니야? 내 이미지는! 내 이미지는! 하기도 싫은 연기 해가면서 재밌지도 않은 대본이나 읽어야 쓰겄냐구! 쉽게 외워지지 않은 대본을 째려보며 상념에 빠질 때쯤 진동이 울려왔다. 짜증스럽게 바라본 액정에는 ' 특수반 ' 이란 이름이 깜빡거리고 있었고, 끊어질세라! 급하게 통화 버튼을 눌렀지만, 느긋한 목소리로 괜찮은 척 목소리 톤을 주의했다. " 여보세요? " " 야 오늘 저녁에 뭐해? " 얼레? 이건 무슨 일이지? 오늘 내 생일인가? 아닌데. 뭐지. 무슨 개수작인가. 함정인가. 왜 그러지? 왜? 갑자기 왜?? 대본 연습을 자연스럽게 치우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 저녁에 뭐하긴, 잠자야지. " " 그럼, 오늘은 스케줄 없어? " 있어. " 없어. 그런데 웬일이냐? 니가 손수 전화를 다 해주시고. " " 비꼬지 마. " 어어어 안 꼬아 안 꼬아. 그니까 끊지만 마. " 어. " " 말 잘 듣네. " 씨발새끼. " 어. " " 박유천 착하네. " " 어. " " 오늘 저녁에 우리 집에 와. " 어?? 집에? 진짜???? 드디어 내 얼굴이 먹히는 날이 오는구나!!!!!!!!!!! " 어. 어? 집에? 몇 시에? " " 음 대략 9시나 10시 정도에. " 그때 김준수 옆으로 여러 사람들의 음성이 들려왔다. 밖인가 본데. 학교인가? 뭐가 이리 시끄러워. ' 준수야~ 나가자! ' , ' 빨 리와~ 김준수!! ' , ' 다들 기다려 어서 가자!!! ' " 야 너 어디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 " 밖이니까, 시끄럽지. " 어 그래. " 9시쯤 가서 전화할게. " " 어 경비 아저씨한테 미리 말해뒀으니까, 1201호야 도착하면, 전화해. " " 어. " " 끊는다. " " 야..야! " " 왜? " 왜 불렀지? " 어? 아니야. 알았어. " " 응. " 갑자기 시트콤이 존나 신나졌다. 빨리 외우고 김준수 집에 가봐야겠다. 경비 아저씨 말대로 5년 동안 한 번도 친구를 데려온 적 없는 거 맞냐고도 물어보고 또.. 집 구경도 하고 또.. 음식도 시켜먹고 또.. 히히히 9시 10분. 사실 대본연습 끝낸 거는 8시정도였는데, 존심 상하게 일찍 가기 싫어서 김준수 동네를 어슬렁어슬렁 거렸다. 처음에는 복잡해서 짜증났는데 비싼 동네만큼이나 이것저것 세삼하게 정돈된 부분들이 많이 보였다. 그래도 처음 들어가는 건데 빈손은 좀 꼴에 예의에 어긋나는 것 같아서 근처 마트에 들러, 개새끼 장난감 좀 샀다. 아무리 개새끼 알레르기가 있어도, 뭐 김준수가 좋아하는 개새끼니까 이런 거쯤은 살줄 아는 놈이라고. 그리고 김준수가 좋아하는 양념통닭까지 완벽하게 사고는 12층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아니나 다를까 현관에서 나를 다시 마주친 경비 아저씨는 신기한 일이라며 ' 자네 정말 준수군 친구였네 그려 ' 라며 민망한 너스레를 떨었고, 나는 당당하게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현관을 통과했다. 나 이런 사람이야! 마음은 가볍게 양손은 무겁게! ' 12층 도착했습니다. ' 라는 안내 소리와 함께 김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아직도 시끄러운 잡음소리가 역력했다. 뭐야? 너 집 아니야??? 심한 바람소리와 함께 녀석의 목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 지금 도착했어?? " " 어. 문 열어. " " 0000 눌러. " " 뭐?????? " " 현관 비번 0000이라고. " " 넌 새끼가 겁도 없이 초기화 비번을 안 바꾸고 쓰냐????? " 미친새끼. 생각 좀 하고 살아 제발. ' 누나 잠깐만요~ 저 통화 좀 하고 갈게여~~ 먼저 가세여~ ' 라는 친절한 보이스 소리와 함께 조용한 곳으로 이동을 한 모양인지 금세 주변이 조용해졌다. " 나 내일 10시에 도착할거야. " " 뭐?????????? 너 지금 어딘데??? " " 나 지금 동해바다. MT왔어. " " 너 지금 나갖고 장난 하냐? 씨발 너 뭐야! " " 우리 샤키가 좀 아파. " " 그 씨발샤키가 아픈 거랑 나랑 무슨 상관인데??! " 순간 맥이 풀려 쥐고 있던 봉투 손잡이를 풀었고, 동시에 봉투가 떨어지며 안에 들어있던 물건들이 하나씩 밖으로 튀어나왔다. 내가 병신이지. 여기가 어디라고 좋다고 들어와? " 처음으로 MT왔어, 그동안 샤키 혼자두게 하는 거 미안해서 못 왔거든. " 집에 다른 사람 있을 거 아냐! " 그래서 넌 MT가서 즐길 테니까, 나는 니네 집에 들어가서 니 개새끼 좀 돌봐주라 이거야? 너 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니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들어줄 거라는 확신은 도대체 왜 하는 건데?!!!! " 순간 조용해졌다. 뭐야 또 끊었어?? 그런데, " 샤키 누구한테 부탁하는 거 네가 처음이야. 우리 집에 다른 사람 부른 것도 네가 처음이야. 나대신 집에 와줬으면 하는 마음도 네가 처음이야. 다 네가 처음이야. " ㄱ..그래서.ㅁ...뭐! " 그래서. " " 샤키가 요 며칠 아팠어. 그래서 MT 안가려고 했는데, 선배들 눈치가 너무 심해서 끌려서 왔어. 원래 오늘 바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빠져나가면 죽일 분위기라서 그래. 오늘 스케줄 없었으니까 하루만 샤키랑 있어줘. " 온통 진심뿐인 목소리였다. 괜히 몸이 위축되었다. 그냥 뻔뻔하게 소리를 지르지, 이건 또 무슨 수법이야? 감당이 안 되네. " 알았어. " " 설명 안하고 무턱대고 불러서 미안해. 그런데 정말 부를 사람이 없었어. " " 아, 됐어. 됐어. 그럼 가족들은 언제 오는데? " " 안 와.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있어. 집에 있을 거는 다 있어. 더 필요한 거 있으면 경비실 아저씨한테 말해도 좋아. " " 어. " " 내가 다음에 양념치킨 사줄게. " " 됐거든요? " " 끊을게. " " ㅇ..야. 김준수. " 멀어지던 목소리가 다시 가까워졌다. " ㄱ.걱정하지 말라고 개새끼는. " " 응. 내일 일찍 갈게. " " 어. " 이상하게 축 늘어진 목소리를 들으니까 마음이 안 좋아졌다. 진실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모든 게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처럼 늘 예측이 안 되는 녀석이었지만, 그래도 혼자 아파하고 있는 샤키가 많이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전에 아팠던 것 같기도 했고, 애완견을 키워보지 않은 나 같은 인간은 평생을 가도 이해 못할 마음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밤이었다. " 에....엣취!!!! 에에에취!!!!! 엣취!!!!!!! " 네- 네 3단 콤보 콧물 발사입니다요! 1시간째 티슈곽을 앞에 두고 연신 휴지를 뽑아 신경질적으로 콧물을 마셨다가 뱉었다가 마셨다가 뱉었다가 반복 학습의 능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김준수의 집은 그야말로 메가톤스펙타클울트라캡숑지대웨이브판타지 그 이상의 신세계였다. 대체로 보기완 다르게 차분한 톤으로 꾸며진 내부에는 각 방마다 주어진 특이한 분위기가 다채롭게도 눈이 즐거웠다. 긴 통로를 지나는 벽에는 샤키와 나란히 찍은 사진들로 장식이 되어있었고, 긴 통로를 지나 보이는 큰 거실에는 호화로운 쇼파와 테이블과 걸맞게 시원시원하게 큼지막한 전자제품들로 화려하게 채워져있었다. 특이한건 어디를 가든 샤키와의 모습이 가득인 사진들이었다. 아주 어릴 때의 모습부터 지금의 덩치산만 늙은이 포스까지 샤키의 비만 진화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사진들이었다. 더욱더 놀라운 사실은 방 한 칸은 그야말로 VIP수준의 개새끼 집이었다. 열자마자 보이는 호화로운 개집부터, 각종 간식 세트들, 한편에 잘 정리되어있는 현란한 의상들에다가! 강아지 물티슈까지 그야말로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샘플과도 같은 풍경이었다. 느릿느릿 하지만 경계하지 않고 짓지도 않고 나만 졸졸 따라다니는 샤키의 얼굴을 보자 허허허 하고 웃음마저 나왔다. " 엣취!! 엣......취!!!!!!!! 엣취엣취!!!!!!!! " 아싸 4단콤보. 레벨업! 개새끼 집을 나와 다른 방의 문을 열려고 방문을 잡았는데, 현관에 붙어있는 도어락이 붙어져있었다. 이건 또 무슨 희귀한 현상인지 의아해 했지만 어느새 손은 에이 설마를 외치며 0000을 눌렀다. 그러자 어김없이 열리는 방에 허무해진 가슴이 헛웃음을 불러왔다. 으하하학하하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방 안에 펼쳐지는 모습은 그야말로 세상에 이런 일이나 다름이 없었다. 내 작업실의 3배는 되어 보이는 방에는 우리가 그렇게도 갖고 싶어 하던 시스템을 시작으로 없는 거 없이 모든 시설이 겸비된 완벽한 작곡 공간이었다. 우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방음은 또 어찌나 뛰어나게 제작했는지 한번 두들겨 본 손마디가 저려왔다. 어딘가 김준수와 매치가 안 되는 방은 분명했으나 이런 기계만으로도 김준수가 어떤 영역까지 작곡에 능한 사람인지 감이 잡힐 정도였다. 뭐지 이새끼. 침실에는 정신 사나울 정도로 게임기가 놓여져있었고, 오락실에서만 가능한 게임기가 침실 방에 떡하니 자리 잡고 버티고 있었다. 내가졌다. 졌어. " 엣취!! 엣......취!!!!!엣취! 취!!엣취!!!!! 엣취엣취!!!!!!!! " 재채기도 제멋대로 작곡을 할 때쯤 졸졸 따라다니던 샤키가 안보였고, 거실로 나가자 힘없이 축 늘어져 카펫트 위에 누워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김준수 말대로 상태가 좀 안좋아보였다. 그렇다고 가까이 가긴 싫고 그렇다고 저대로 두기엔 양심에 찔리고 조심스레 다가가 갔다. 사람에 대한 경계선이 별로 없는 개새끼인지 다가가도 시선 한번 주지 않고 얌전히 누워있었다. 살며시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그제야 한번 바라봐준다. 하는 꼬락서니가 딱 김준수였다. 도도한 개새끼.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방에도 김준수와 샤키 사진이외에 다른 사람의 물건이라던 지 흔적이라던 지 사진은 단 한 장도 볼 수 없었다. 그냥 딱 봐도 김준수 혼자 사는 집이라고 판정 지을 정도로 김준수만의 공간으로 가득했다. 잠시 가족들이 자리를 비운 것 치고는 그 흔적이 너무나도 없어 의아해졌다. 천천히 둘러본 사진 속 샤키와 준수는 정말로 형제처럼 서로가 닮아있었다. 얼마나 이 개새끼를 애지중지하고 이 세월을 살아온 건지 여실히 구석구석 들어나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달려든 샤키가 내 배위로 올라탔고 순간 당황한 나는 헉 소리를 내야만 했다! " ㅁ.뭐야! 내려가! ㄴ...내려가!!! 이 개새끼!! " 덩치 산만한 게 김준수처럼 돌변해서 얼굴을 물어 뜯을까봐 팔로 확! 치지는 못한 채로 벌벌 떨며 내려가! 내려가! 소리만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개가 무섭다. 무섭다고. 이렇게 올라타서 나 물면.. 나 물면! 내 얼굴! 내 몸! 어떡하지 어떡하지! 니미 씨발 나 좆됐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긴급출동 보다 간편한 김준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로 받는다. " 야..야!!! 개새끼가 내 배 위에서 안 내려와!!! " " 으하캉하항하항하학! 우리 샤키가 너 냄새 좋은가보다. " " 뭐라고???? " " 샤키가 냄새에 많이 민감해서 다른 사람 절대 핥지 않거든. 혹시 목 주변 핥아대? " " 목?? 어어.. 목!! 목 빨아!! 이 개새끼!!!! " " 으하캉하항하항하학! 그거 냄새 좋다는 표현이야. 놀라지 마. 샤키 절대 사람 안 물어. " " 그..그럼 나 언제까지 이 자세로 빨리고 있어야 해?!!! " " 으하캉하항하항하학! 샤키 아무나 안좋아 해. 둘이 잘 놀고 있어! 끊는다~ " 창민아 보고 싶다. 흙흙.. 그렇게 거실바닥에 눕혀진 채로 재채기를 연달아 하기 시작했고, 그런 험악한 소리에도 불구하고 개새끼는 내려올 생각 안하고 엄마 젖 마냥 내 목을 열심히도 핥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서서히 재채기가 멈추기 시작했고, 배 위를 올려다보자 내 목 부근에 코를 묻힌 채로 잠든 샤키가 눈에 들어왔다. 순간 확 풀리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었는지 그 자세로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이상하게 나른할 정도로 몸이 축 늘어져있었지만, 좋은 향처럼 포근히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다. 오랜만이었다. 다시 겪을 수 없을 만큼 죽음보다 더 깊고 달콤한 잠이었다. 12시에 시트콤 녹화가 있었고, 10시가 되어도 김준수는 돌아오지 않았다. 늦게 와서 아쉬운 게 아니라 못보고 나갈 생각이 조금 아쉽기도 했다. 샤키랑 시키는 대로 잘.. 뭐 나름 잘 돌봐줬으니까 도도한 입술에 칭찬 좀 흘러나오겠거니 하고 내심 기대를 했는데 순식간에 날아갔다. 급하게 욕실로 들어가 아무렇지 않게 샤워를 하고 있는데 도중에 문 열린 틈으로 개새끼가 나에게 달려들었고 어제처럼 놀란 나는 욕조 안으로 들어갔고 덩달아 껑충 뛰어서 들어온 개새끼 때문에 아침 댓바람부터 재채기 거품 속 샤워를 개새끼와 동반해야만 했다. 난생 처음 물을 이렇게나 좋아하는 개새끼는 또 처음봤다. 나오기 싫다는 거 감기 걸려서 안된다고 억지로 끌고와서는 드라이기로 털을 말려주자 기분 좋은 듯이 킁킁 거렸다. 여전히 재채기는 콤보방식으로 콧물과 침을 재생산했지만, 어느새 손은 샤키가 좋아하는 부위를 쓰다듬고 있었다.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간단하게 스케줄 있어서 먼저 돌아간다는 메시지와 함께 현관을 나섰고, 나서기 전에 낑낑 거리며 정말로 헤어지기 싫은 사람처럼 내 눈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샤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정말로 다른 사람들이 강아지 두고 어디 놀러 못 간다는 말을 이제야 새삼스레 알게 된 순간이기도 했고, 개새끼 눈빛 따위에 흔들리며 현관문 닫기가 그렇게 힘든 줄 처음 안 내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개새끼가 뭐라고. 마지막으로 떨어지지 않은 발길을 돌아서 다시 한 번 콧등과 머리를 쓰다듬고 현관을 닫고 내려왔다. 깊게 잔만큼 발걸음이 매우 가벼웠다. § 야외촬영을 모두 끝맞치고 피로한 몸을 벤에 실었다. 새벽 3시 반이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수월한 촬영이라 다행으로 여겼다. 무거워진 눈이 감기려는 순간 휴대폰이 울렸고, 눈을 비비며 바라본 액정에는 ' 특수반 ' 김준수가 떴다. 설마 이 새벽에 어제 일 고맙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바로 통화음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 여보세요? " 말이 없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시, " 여보세요? 야 김준수? " 또 말이 없다. " 뭐야? 너 전화를 걸었음 말을 해야 할 거 아니야? 야. 김준수 안 들려?? 여보세요? 김준수! " 이번에도 말은 없었지만, 대신에 서러운 흐느낌이 고스란히 수화기를 넘어 내 고막을 울렸다. 막연한 불안감과 절절한 외로움 같은 그런 것들이 내 가슴 밑바닥에서 예고 없이 스며 올라와 가슴이 턱 하니 막혀져왔다. " 야 너 울어? 야 너 우냐고. 야 김준수! " 녀석의 끅끅 거리는 흐느낌에 가슴이 아파서 숨이 막힐 만큼 심장이 아릿했다. 울지말라고 달래 주다가 나도 모르게 울컥 치미는 가슴 때문에 창문 밖을 쳐다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 말 못하면 응이라고만 해. 일단, 울지 말고 지금 갈 테니까. 지금 가고 있으니까 울지 마. " 계속 울기만 했다. " 끅..흡흐흐흐하앙..으응..흡..끅...흑윽흐흐아앙... " 정작 김준수는 단 한 번도 내게 아프다는 소리를 해 본적이 없었을 뿐이었는데, 언제나 활기찬 모습의 녀석이라 아프지도 않을 것 같은 사람처럼 생각했었다 는걸 깨달았다. 격렬한 감정을 이기지 못해 녀석의 우는 목소리는 심하게 떨려왔고, 말할 수 없는 그리움이 뺏속깊이 사무쳤다. 그리고 난 김준수가 무서워졌다. " 준수야 조금만 기다려. 내가 금방 갈게. " | 전부 내가 처음이라고 말해줬던 날, 나 굉장히 기뻤던거 혹시 알고있어? | My Melody w. 킵 * * * 그날은 솜사탕처럼 부풀은 햇빛마다 새로이 태어나는 봄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운동장을 지나 걸어오는 길에 불어오는 재채기 같은 바람과 온 몸을 감싸 안듯 나른하고도 따사로운 햇살로 등 뒤는 미세한 땀방울로 가득했다. 걷는 와중에도 단숨에 몰려오는 졸음에 어서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앞섰었다. 그런데 교문을 지나 돌아선 그 모퉁이에 서커스단이 묘기를 부리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한곳에 몰려있었다. 잠은 쏟아질듯 오고 등은 땀으로 인해 찝찝하고 하지만 기분 좋은 봄바람은 불어오고 뭔가 미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몽롱하기까지 했었다. 이상하게도 그 모퉁이를 쉽게 떠나지 못했었다. 무언가 아주 보드라운 것들이 서로를 스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었다. 결국엔 몰려져 있는 인파 속에 고개를 내밀어 보니 노랑색 병아리들이 삐악 삐악 요란하게도 입을 뻥긋 거리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다 멋대로 쓰다듬어 지기도 하고 툭- 툭- 사람들의 힘에 밀려 모서리로 밀쳐지기도 하고 거세게 사람들 손에 움켜쥐기도 했었다. 사람들은 즐거워하며 웃어대는 삐악 삐악 소리가 나에겐 낑낑 거리는 울먹임으로 들려왔을 때였다. 엄마에게 크게 혼이 날게 뻔했지만 바지앞 주머니에서 500원을 꺼내 아저씨에게 내밀었고 곧바로 아저씨는 흰색 봉지 안에 모이와 함께 병아리 한 마리를 넣어주었다. 정말 아주 아주 예쁜 병아리였다. 나는 그 병아리를 다른 사람들처럼, 쓰다듬지도 툭 밀치지도 거세게 움켜쥐지 않았다. 이상하게 병이 든 것 같은 병아리가 이렇게 내가 잘 키워주면 아주 건강한 닭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등 뒤로 흐르는 땀도 잊은 채 길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병아리를 한참동안이나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와 동시에 어떤 방법으로 엄마를 설득할지와 어떤 방법으로 이 병아리를 들키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했었다. 일단 병아리를 들고 집으로 향했고, 행여나 내 발걸음에 어지럽지는 않을까 염려스러운 마음에 15분이면 도착하는 집을 40분 만에 도착했었다. 도착하자마자, 신발을 소리 나지 않게 벗고는 뒤꿈치를 살짝 들고 천천히 2층 내 방으로 올라갈 때였다. 1층 안방에서 쾅! 소리가 나면서 거실로 나온 엄마가 나를 발견했는지 조금 화나고 짜증스런 말투로 말했다. " 유천아, 니 방에 트렁크 갖다 놨으니까, 너 필요한 물건만 빨리 담아놔!" " 왜? 엄마 우리 어디 여행 가? " " 아니. 도망가. " " 어디로!? 왜? 아빠는? " " 이제부터 아빠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 알았어?! 어서 빨리 짐이나 챙기고 있어! " 그땐 도망을 가야한다는 엄마의 말 보다 뒤로 숨긴 병아리를 눈치 못 챈 엄마가 다행스러워서 더욱더 놀란 척 아빠의 행방을 물었었다. 고맙게도 울음소리가 멈춘 병아리 덕분에 엄마 몰래 병아리를 내 방까지 데려올 수 있었다. 방문을 열고 조심스레 병아리가 들어있는 봉지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고, 오는 길에 목이 말랐을 것 같은 생각에 서랍을 뒤져 발견한 종이컵을 병아리가 먹기 좋게 가위로 조그맣게 오려서 2층 욕실에서 물을 받았다. 물이 바닥에 흘리지 않게 천천히 방으로 돌아와 봉지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병아리가 죽어있었다. 그때의 충격은 엄청났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낑낑 울었던 병아리가, 내 바람대로 건강한 닭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던 병아리가 아주 편안하게 눈을 감고 죽어있자, 단 돈 500원으로 이 병아리를 내게 판 어른들의 상술이 무섭게도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이상하게 그때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깟 몇 시간 본 병아리가 대체 뭐 길래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처음으로 닿을까, 아플까, 상처받을까, 죽을까, 애지중지하던 병아리가 너무 쉽게도 죽어버리자 모든 게 너무 무서워졌었다. 하지만, 그 병아리를 그냥 쓰레기통에 버릴 수는 없었다. 엄마의 목소리만큼 마음이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쏜살같이 집 밖으로 뛰쳐나가는 나를 보며 다급하게 소리치는 엄마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 유천아!!! 너 지금 어디 가니!! 우리 빨리 나가야한다니까!!! 유천아!! 이리 오지 못해!!!!??!! " " 엄마! 5분만!! 엄마!! 딱 5분이면 돼!!! " 잘게 쪼개진 햇살을 입에 물고 내 노랑병아리가 종종걸음 치는 모습을 상상했었다. 내 품에서 새로이 태어난 병아리처럼 예쁜 이름을 하나 지어주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뒤로 이어지는 엄마의 호랑이와도 같은 무서운 호통에도 불구하고 집 뒤에 있는 조그만 동산으로 쉬지도 않고 뛰어 올라갔다. 숨이 차오르고 머리가 어지럽고 다리는 풀려갔지만, 이상하게 가슴 속이 멀미를 한 것처럼 마냥 울컥 울컥 거렸었다. 어느 정도 올라간 햇볕이 한가득 따뜻한 곳에 자리를 잡고 주변에 널브러져있는 이름 모를 나뭇가지들을 주워 땅을 파고 넓은 풀 잎사귀들을 모아 그 바닥에 깔았다. 그리고 주머니 속에 잠든 병아리를 조심스레 꺼내서 그 위로 살며시 올려주었다. 이상하게 병아리에게 너무 미안해져 다시 눈물이 나왔지만, 5분이 이미 훌쩍 넘었겠다. 는 생각에 급하게 주변의 흙을 모아 덮어주었다. 이상하게도 정말로 5분이 지나가면 엄마가 나를 버리고 도망갈 것 같은 불안함이 내장되어 나의 행동을 재촉했었다. 꼼꼼히 흙을 눌러주고, 나뭇가지를 주워 반 토막을 냈다. 그리고 십자가 모양을 만들어 그 위에 올려주고 마지막 인사를 했었다. ' 병아리야.. 이젠 이곳에서 울지 마.. 미안해.. ' 온몸은 흙투성이였지만 털어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집으로 넘어지듯 뛰어 내려왔다. 다행히 엄마는 집에서 나를 기다려주었지만, 크게 소리를 치며 내 팔목을 붙잡고 집을 급하게 나서야만 했었다. 다시 솜사탕처럼 부풀은 햇빛마다 새로이 태어나는 그때의 봄이 되돌아온다면, 그때 내 왼쪽 가슴에 매달린 이름표처럼 예쁜 이름을 먼저 지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엄마보다 오랫동안 그 곁을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녀석의 집으로 향하는 이 추운 겨울날, 그 날의 봄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샤키는 이미 얼음처럼 싸늘하게 식은 채 눈을 뜨고 죽어있었다. 샤키를 한가득 품에 안고 있던 녀석의 어깨 위로는 아주 두꺼운 담요가 둘러져있었고, 카펫 대신에 전기장판이 깔려져있었고 그 온도의 스위치는 상당한 고온으로 설정되어있었다. 숨을 헐떡이는 소리조차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눈앞이 온통 캄캄했다. 엉켜있는 뇌회로를 억지로 풀어내며 지금의 상황에 대해 천천히 생각했다. 녀석의 몸이 부들부들 심하게 떨고 있었고, 눈물에 젖은 동공은 믿을 수 없다는 의혹만 남겨져있었다. 작디작은 두 손은 샤키를 꽉 껴안은 채 하얗게 질려있었고 주변에는 장롱 속 모든 이불이란 이불을 다 꺼낸 듯 여러 이불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안정되어가는 숨을 가다듬으며 녀석에게 다가갔고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떨어지는 녀석은 소리 내어 울지 못하는 사람처럼 안에서 끅끅 거리는 희미한 울음소리만이 그 정적을 매우고 있었다. 심장이 멈추고 피가 거꾸로 도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숨을 내뱉는 게 미안할 정도로 감당하기 힘든 침묵이었고 어떤 말조차 입에 꺼낼 수 없는 아릿한 순간이기도 했다. 천천히 녀석 곁으로 다가가 마지막 샤키의 모습을 보았고 천천히 손을 내밀어 샤키가 좋아하는 부분을 쓰다듬어 주었다.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 내 목 주변을 핥을 것만 같은 생생한 기억에 사뭇 가슴이 울컥 치밀어 올라와 입술을 깨물었다. 내 가슴도 이렇게 무너지는데 녀석의 마음을 예상할 수 없을 만큼 잔혹하다는 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순간 두 손 한가득 샤키를 안고 있던 녀석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 학이 한 다리로 서서 잠을 자는 것처럼.. 우리 샤키도 두 눈은 꼭 감고 자야하는데.. 많이 추운건지 미처 눈 감는걸 까먹었나봐. 왜 이렇게 눈을 못 감을까.. 우리 샤키. " 다시 한 번 눈망울에 한 가득 고여 있던 눈물이 녀석의 볼을 타고 툭 흘러내렸다. 인간의 체온이 서서히 식는 것과는 다르게 동물들의 체온은 굉장히 빠르게 식는다. 그런 까닭에 강아지들은 죽을 때 미처 눈을 감지 못하는 것이었는데 그게 마지막까지 너무 안타까웠는지 얼음장처럼 싸늘하게 죽어있는 샤키를 품에 안고 방 안의 온도를 높이고 이불을 다 꺼내어 덮어주고 전기장판을 틀어 조금이라도 온도가 천천히 식도록 애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 가슴이 메어 왔다. " 인마, 왜 또 혼자 이러고 있어. 가족들은? 응? 가족들은 어딨어. 연락을 해야지. 이러고 있으면 혼자서 대체 어쩌려고 그랬어 너.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던 거야? 어? " " 니가.. 나 대신에 우리 샤키 눈 좀 감겨주면 안 돼? 나 정말로 이건 못하겠어.. " 흐느껴 나오는 소리를 참느라 입술은 심하게 떨려왔고, 나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녀석은 그 눈물만큼이나 샤키의 죽음을 단호하게 억지로 인정하려 하고 있었다. 곧바로 난 이미 붉어질 대로 붉어진 샤키의 두 눈을 손으로 내려주었고, 편안하게 감겨진 눈을 이제야 확인하는 녀석에게서 참았던 눈물이 터지는 순간이었다. " 끅..흡흐흐흐하앙...흡..우리 샤키랑 많이 놀아줄걸.. 끅...흑윽흐흐아앙... 맨날 집에 혼자 두게 하고 나만 보게 했는데 흡흐흐하앙...흐아하앙흡흑흐아앙... 물 좋아하는데 목욕도 더 많이 시켜줄걸...흐흡하앙..흑흑..끅.. 어떡하지..흡흑흑흐아아앙.. 나.. 이제.. 어떡하지..끅..흑흑흐아하아앙.. " 금세 눈이 빠질 듯 빨개지고 낯선 거리에서 엄마의 손을 놓쳐 버린 아이처럼 목 놓아 서럽게도 울었다. 울음은 끊길 생각이 없어 보였고, 이대로 두다간 쓰러질 것 같아 거실을 둘러 녀석의 핸드폰을 찾았다. 일단은 녀석의 마음을 위로해줄 가족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었다. 핸드폰은 거실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었고 곧바로 고민 없이 단축키 1번을 길게 눌렀다. 그러자 연결신호가 떨어졌고 얼마 되지 않아 아릿한 가슴이 쉴 새 없이 내 심장을 재촉하고 있었다. 어이없게도 내 품안에서 당연하듯 울리고 있는 내 핸드폰 덕분에 놀란 가슴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녀석의 핸드폰 액정에 깜빡 거리고 있는 내 번호는「오늘도 맑음」이라는 이름이 깜빡 거리고 있었다. 당황한 마음만큼 말이 잘 나오지 않아 더듬었다. " 야. 김..준수. 가족 아무나.. 아 그러니까 지금 연락할 수 있는 사람 누구 있어? 응? 누구 있는지 말 좀 해봐. 연락을 해서 알리든 어떻게 해야할 거 아니야!? 나 같은 애가 1번이면 도대체 뭐야 대체. 너 뭐야 대체.. 나를.. "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처럼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감겨진 샤키의 두 눈을 보고 다시 한 번 크게 눈물을 쏟아내는 모습에 억장이 무너지는 듯 했다. 일단 지금 녀석 곁엔 내가 전부였다. 뭔가 나의 무너지는 가슴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다. 곧바로 녀석 곁으로 다가가 뜨거운 눈물을 닦아주며 안정될 수 있도록 말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행여나 닿아질까.. 닿아지면 덜 아플까.. 그럼 정말 좋겠다..라는 마음이 간절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 내가 며칠 전에 죽어도 좋을 만큼 굉장히 달콤한 잠을 잔적이 있었는데.. 그때 샤키가 내 목에 코를 파묻고 코까지 대릉대릉 골면서 잠을 잤었거든. 처음에는 냄새도 싫고. 털 느낌도 생소하고. 뭔가 위에서 나를 기분 나쁘게 누르는 것 같아서 기분이 되게 찝찝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되게 편한 거야. 몸은 아니었는데 마음이.. " 눈물과 함께 흐르는 콧물을 손으로 닦아주자 코를 훌쩍이며 나를 본다. 녀석의 작은 머리를 손으로 감싸 내 목 언저리 부근에 편하게 기댈 수 있게 자리를 잡아주자 신기하게도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 아침에는 모르고 문을 열고 샤워를 하는데.. 갑자기 이놈이 확 달려드는 거야. 그때 아.. 이대로 내 예쁜 몸은 물어 뜯겨지겠구나. 아찔해져서 욕조 안으로 후다닥 들어가서 녀석을 경계했는데. 뭐가 그리도 좋은지 꼬리를 쉴 새 없이 흔들흔들 거리더니 껑충 욕조 안으로 들어오는 거야.. 으악! 하고 나는 놀래있는 상태인데 물이 좋은 건지 놀란 내가 재밌는지 첨벙첨벙 잘도 뛰어다녔어. 그 좁은 곳에서 둘이 말이야. " 슬픔으로 미어지는 작은 가슴을 부여안고 녀석은 힘겹게 숨을 나뉘어 쉬고 있었다. 중간 중간 울음을 참느라 잠시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숨을 멈추고 무너지는 내 가슴을 진정시켰다. " 아주 어릴 적에 그날 산 병아리가 3시간도 못 버텨서 죽은 적이 있었어. 이상하게 가슴이 울컥울컥 거려서 춥지 않도록 햇볕이 잘 드는 뒷동산에 무덤을 만들어 주고.. 마지막 인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돌아서서 넘어지도록 빠르게 뛰어 내려오는데. 눈물은 나는데 웃음도 나는 거야.. 그냥 마지막 배웅을 해줄 수 있어서 좋았었던 것 같아. 왠지 모르게 나 때문에 조금은 잠시라도 행복했을 것 같았거든. 병아리가.. " 부드럽게 등을 토닥여주자 힘껏 샤키를 움켜쥔 손이 맥없이 풀려졌다. 천천히 녀석의 품에 안긴 샤키를 꺼냈고 좀 더 편한 자세로 잘 수 있도록 자리를 잡고 그 위에 담요를 덮어주었다. 이제야 안정이 된 듯한 녀석은 곧바로 근처에 놓여있는 핸드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목소리는 아직도 슬픔의 여운이 깊어 심하게 떨려왔지만 발음은 정확했다. " 안녕하세요. 아저씨. 저 준수예요. 네.. 오늘 우리 샤키가 죽었어요. 네.. 저는 괜찮아요.. 네.. 그럼 지금 바로 차량 방문 해주세요. 네. 준비하고 있을게요. " 통화를 마친 녀석은 꼼꼼히 덮여있는 담요를 잘 여며주며 고통스러운 얼굴을 한 채 샤키의 얼굴에 마지막 입을 맞추었다. 소리 없는 눈물은 다시 쉴 새 없이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녀석의 목소리는 안정된 사람처럼 평온하기까지 했다. 그게 더 마음이 아파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어야만 했다. " 나 없으면 간식도 안 먹고 이렇게 누워있었는데 그거 알면서도 친구들하고 노는 게 좋아서 늦게 들어왔었어. 그거 미안해.. 목욕시켜주면 하루 종일 꼬리 흔들고 좋아했는데, 네가 점점 커지면서 목욕 시키는 게 힘들어서 그거 알면서도 자주 미뤘었어. 그것도 미안해.. 작업 할 때만큼은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문 걸어 잠그고 작업했는데 문이 열리기 전까지 밖에서 낑낑 거리는 소리 방음 때문에 듣지 못했어. 잘 알면서 말이야. 샤키야.. 그것도 미안해.. " 샤키의 얼굴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눈물을 훔치는 녀석의 여린 손이 가여웠다. " 난 필요할 때마다 너 찾고 허전할 때마다 너 찾는데 늘.. 내 눈 앞에.. 늘 내 곁에 한결같이 나와 함께 있어줘서 정말 많이많이 고마웠어.. 앞으로도.. 죽어서도 잊지 못할 너 이지만 오늘은 조금 조금만 미워할게.. 조금만 참아주지.. 조금만 더 힘내주지.. 아빠가 해준 게 많아서 덜 미안해지게 조금만 버텨주지 그랬어. 그래도 우리 샤키 마지막 날 혼자 두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하고 달콤하게 잠도 자고.. 우리 샤키 좋아하는 목욕도 같이 해서 참 다행이다..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그치? 우리샤키.. 이다음에도.. 아빠랑 꼭.. 꼭 다시 만나자..? 그때는 더 많이 놀아주고.. 더 많이 좋은 노래 들려주고.. 더 많이 사랑할게. 미안해.. 그런데 많이많이 사랑해.. " 다시 한 번 샤키의 얼굴위로 입을 맞추었고 마지막 눈물을 훔친 녀석이 일어나 간단한 짐을 챙겼다. 지갑과 핸드폰 그리고 샤키의 물건들이었다. " 오늘 놀라게 해서 미안해. " 내가 놀라 되물었다. " 어? 어.. 아니야. " " 원래는 샤키 마지막 목욕 시켜줘서 고마웠다고 말하려고 전화한 거였는데. " " 어? 어.. 아니야.. 넌 괜찮고? " 녀석의 동공이 미세하게 떨렸다. " 응. 내까짓께 괜찮지 않으면 어떡할 거야. " " 어..그래.. 지금은 어떤 말도 안 들리겠지만, 분명 좋은 곳에 갔을 거야. " " 응. 오늘 고마웠다. 바쁠 텐데 이제 가 봐. " " 어? 어.. " 대답은 했지만 녀석을 혼자 두고 발걸음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 뭐해? 안가고? " " 어? 어.. " 짐을 챙기는 녀석의 손이 분주했고, 내 목소리가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신발을 신으면서 녀석에게 말했다. " 아무 때나 오늘처럼 전화해. 금방 또 올게. " 부스럭 거리던 동작이 금세 멈추었고 현관문을 잡은 내게 녀석이 말했다. " 나한테 정같은거 애써서 주지 않아도 돼. 노력하지 마. 난 혼자가 편해. 잘 가. "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문이 닫혔고, 한참 동안을 멍하니 현관문을 바라본 채 서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애틋한 그리움은 나를 예고 없이 당황하게 만들었지만 다시 문을 열지 않고 돌아섰다. 숙소로 돌아가는 내내 들썩이는 마른등과 끅끅 울음을 억지로 참아내는 녀석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여러 번 머리를 감싸 안아야 했었다. 정말로 지옥 같은 밤이었다. § 겁나 매출이 뛰어난 잡지사만큼이나 이윤도 존나게 많은지 모델에게 주어진 특혜는 날이 갈수록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AN2 잡지사에서 대거 수용된 화보전용 바디케어 전문사의 관리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재중의 몸은 변해 가고 있었다. 상처 없이 하얗기만 하던 몸에 보기 좋게 탄력이 붙기 시작했고, 백옥같이 흰 피부와 걸맞지 않은 다크서클은 하루가 다르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좀처럼 운동을 하지 않았던 재중에게 윤호는 적지 않은 웨이트 트레이닝 일정을 짜주었고 군소리 없이 운동을 시작한 재중은 점점 빠른 속도로 밤마다 지친 듯 깊은 수면에 빠지기 일쑤였다. 그렇게 길지 않은 시간동안 최대한의 바디케어를 끝마쳤고 하루가 다르게 야들야들해지는 재중의 몸을 보며 ' 어이! 정실장! 당장 AN2에 전화해서 내 몸매 사진 좀 넣어줘! 그리고 면상 팔려도 좋으니까! 내 몸 고급형으로 존나 비싸게 케어 받아서 BEFORE, AFTER 비교해서 올려주면 안되냐고 씨발 어필 좀 해봐! 재중이는 왜 되고 나 빡믹키는 왜 안 되냐고!!! 내가 쟤 보다 못한 게 어디 있어!! ' 라고 예쁘게 자리 잡힌 몸을 시샘하기 바쁜 나날을 보냈었다. 나도 힙업... 쫌... 씨발 엉덩이에 살 좀 붙여줘. 평소 재중의 근육은 재수 없게도 노력한 만큼의 2배 이상의 근육량을 가져다주는 편이었고, 창민의 근육은 노력한 만큼 딱 고 만큼 정직한 근육량을 가져다주는 편이었고, 내 근육량은 존나 소심하게도 잘 안 붙었다. 트레이너의 일정에 짜맞춰진 운동이 싫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바디관리에 대해서 신경을 아예 안쓰는 편도 아니었다. 코디 누나들 말로는 근육양에 비해 뼈대가 커서 반드시 근육이 필요한 몸은 아니라고 그렇게 생겨먹은대로 다 처먹으면서 즐기라는 말을 자주 듣는 편이었다. 그런데 좆빠지게 같은 트레이닝을 받아도 재중이 만큼 근육이 자리 잡히지 않아 매번 땅을 치고 금방 때려치우기를 반복했고 그럴 때마다 옆에서 점점 헐크로 변해가는 창민의 근육은 나를 조롱하기 바빴다. 난 그래 다 참을 수 있다. 그런데 저 새끼가 비웃으면 진짜 못 참겠다. 어느 날 숙소에서 아령을 들고 영화를 보고 있는 창민에게 물었다. 「 창민아 왜 자꾸 근육을 징그럽게 늘려대? 아이돌 몸매는 그래선 안 돼. 나같이 적당해야지~ 좀 줄일 생각 없어? 왜 자꾸 키워대? 응? 응? 」 미리 예정된 답안지처럼 창민은 말했다. 「 믹키유천 유형과도 같은 깐죽거리는 사람들 행여나 마주치게 되면, 존나 패주려고요. 왜요? 불만 있습니까? 」 난.. 그냥 동방신기 멤버일 뿐이고, 너는 나 보다 어린 동생일 뿐이고, 난 다행히 못 맞을 뿐이고, 쟨 다행히 나를 못 때릴 뿐이고, 이런 우리를 남들은 하나라고 팀웍 좋다고 부러워할 뿐이고, 난 눈물만 나올 뿐이고.. 니미. 점점 남자로 변해가는 우리 막내 창민이는 나 같은 유형의 사람을 만나기 위한 방안 대책겸 운동을 하러 갔고, 점점 여자보다 예쁘게 변해가는 우리 멤버 재중이는 아주그냥 미끄럼틀 쭉쭉 탈 기세로 바디케어를 받으러 갔고, 점점 풀이 죽어가는 나 빡믹키는 욕를 찾아 산기슭을 노리는 쥐새끼처럼 정실장을 찾았다. 그런데 며칠 못 본 사이에 더욱더 살이 빠져 날카로워진 정실장의 얼굴을 보자 쯧쯧 절로 혀가 차지는걸 막을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무언가 뜯어먹을 것 같은 포스였다. 나 이제 돌아갈래. " 애 운동시키랴. 일 하느랴. 우리 감시 하느랴. 아주그냥 피골상접한 얼굴로 잘도 버티고 있구려! 몸은 그래도 잘 불어나고 있는데 얼굴 그것 좀 어떻게 좀 할래요?? 내가 보기 흉해서 그래. " " 그렇게 걱정되면 닥치고 있어. " 그래 걱정되었다. 재중이 하기 싫은 거 억지로 하게 두고 자기 혼자 편하게 지내고 싶지 않은 어린 아이의 투쟁처럼 가엽게 느껴졌다. 난 니미 감성이 너무 풍부해. 아주그냥 마음이 너무 넓어! " 내가 재중이한테 거짓말 했어. " " 알아. " " 뭘 아는데? " 서류를 넘기는 긴 손가락에 핏줄이 튀어 올라왔다. 나.. 지금이라도 도망갈까? " 재중이 마음을 하루아침에 변하게 할 이유를 즉석에서 만들었겠지. " " 응. 아주 쉬워. 재중이 움직이는 거. 하나면 되거든. " " 이죽거리고 싶어서 왔어? " " 아니. " " 그럼? " " 그냥 형 화났으면 풀어주려고 " 이제야 서류에서 눈을 떼고 나를 바라본다. 뭔가 파헤치려는 눈빛이었다. 위험하다 싶어서 먼저 눈을 피했다. " 신이 내려준 뛰어난 점술가처럼 그렇게 분석하듯 쳐다보지 마. 그거 짜증나! " 괜히 쓸데없이 가만히 있는 옷장을 열어 여기저기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였다. 서류를 덮는 소리가 들려왔고 머리가 아픈지 서랍에서 익숙한 아스피린 한 알을 꺼낸 정실장이 입에 약을 넣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 넌 꼭 힘든 연애. 굳이 찾아서 잘도 하더라? " 휙 돌아보니 물을 넣은 목울대가 움직이고 있었다. 연애란 말에서는 봄바람에 실려 오는 햇풀 냄새가 났다. 뭔가 간지러운 단어는 분명했다. " 연애가 아니라 연민을 하고 있지. " " 상대방을 그렇게 불쌍하게 여겨서 갖는 우월감이 퍽이나 기분 좋겠다? " 정말로 점술가를 찾아와 앞날을 물어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페이스에 휘말리기 전에 어서 구렁텅이에서 기어 나와야겠다. 내가 여길 왜 온 거지? 아 맞다 속 긁으러 왔지. 내 명분을 절대 잊어선 안 되지! 암 그렇고말고. " 요즘 우리 밤마다 큰 스크린으로 뭐 보는 줄 알아요? " " 뭘 말하고 싶은 건데? " " 재중이가 이론은 보통 남자애들처럼 건너 건너서 잘 알고 있는데, 영상엔 무지 약하더라고. " " 무슨 말이야. " " 일단 퀴어무비를 쭉 감상시켰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자세들을 주입 시켰어. " 그제야 이해한듯한 정실장이 지압하듯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댔다. 반은 농담이었지만, 반은 진담이었다. 이런 쪽에 전혀 관심이 없는 재중은 그저 남자끼리도 성관계를 맺는다는 가장 기초적인 이론만 이해하고 인식했지 그 이상의 신세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일개의 관심 밖 세계와도 같았다. 어느 날 이럴 때면 장난기가 발동하는 창민과 기나긴 작전 끝에 퀴어무비를 틀어 보게 했고, 촬영할 포즈를 함께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오만가지 인상을 찌푸리며 TV를 주시한 재중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떨궜고. 꽤 재밌는 장난처럼 창민과 여러 번 퀴어무비를 틀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보기 힘든 정사씬이었는지 도중에 쿠션을 집어 던진 재중이 난데없이 소리를 지르는 통에 우리는 몇 년 만에 무릎을 꿇고 사정을 해야만 했던 상황이 벌어졌었다. 재중의 붉은 입술에서 튀어나온 욕이란 하? 상상을 초월한다고!!!!!!!!!!!!!!!!!!!!!! 정실장이 그 소리를 진짜 들어봐야지 아는데 무릎을 꿇고 미안하다고 싹싹 비는 우리에게 그동안 욕을 못한 게 한이 된 사람처럼 쉬지 않고! 이 씨발새끼들아!!!! 하고 내뱉는데 우린 진짜 여태까지 고도의 다중아랑 한 멤버였구나. 처음 알았다니까? 아주 그냥 손바닥에서 닭똥냄새 날 정도로 싹싹 빌고선 다신 이런 영화 안보겠다고 약속까지 했었지? 그렇게 씩씩 거리고 나서 자신의 행동이 조금은 미안했는지 방으로 들어가면서 기죽은 목소리로 말하더라. 그것도 조그맣게 ' 애들아.. 미..안 해. ' 그리고 방문이 닫히자마자 창민과 함께 소리 내지 못하는 웃음을 허공으로 싸날리며, 거실 바닥을 뒹굴었어. 난 무슨 운동회 날인줄 알았다니까? 어찌나 서로 잘 굴던지. 우린 데굴데굴 구르면서 이구동성으로 내뱉은 말이 있었어.「 씨발 욕이 섹시해!!!!!!!!! 」우리는 그렇게 한참동안을 퀴어 오덕후처럼 영웅재중을 찬양했었지. 침까지 흘리면서 말이야. " 정실장님. " " 야 너 좀 나가. " 소리칠 단계가 지났는데 꾹 참는다. 이 사람아 그러다 병 생긴다니까? " 재중이가 욕하는 거 들어보셨어요? " 이건 또 무슨 헛소리냐고 나를 째려보는 눈에 살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내 주둥이를 막을 길은 없었다. " 걘 욕같은 거 안 해. " 나 좀 크게 웃어도 돼? 끄악악! 웃고 싶어 씨발. " 크..큭.. 네 안하죠. 안해요. 재중이가 무슨 욕을~ 안하고말고요~ 절대 안하죠! 네~ 암요~ " 정실장이 드디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이 바로 도망칠 단계였다. 그런데 내가 쉽게 도망가지 못하도록 덫을 놓는 사람이 있었으니.. " 너 중국가고 싶지? " 돌아선 등이 다시 돌려지는 순간이었다. " 어????? 아 씨발 중국은 또 왜요!!!!!!! " " 왜 이번에 기사도 났잖아. 중국에 슈퍼스타는 믹키유천. 못 봤어? " " 그래서!! 그게 뭐!!!! " " 중국엔 아직도 황비홍을 실제 인물로 착각하는 종속들이 가득 찼거든. " " 형도 그렇게 나 놀리면 어?? 재밌어? 어어..!? 얼굴 펴지는 것 좀 봐. 니미 입꼬리 안내려?! 웃지 마! 웃지 마! 기분 나빠. 웃지 말라고. 짱꼴라 개그 치지 마!!!!!!!!!!!! " " 자꾸 반응하지 말라니까. 너가 그 성질머리니까, 언론이 자꾸 너한테만 시비 걸잖아. 재밌어서. " " 내가 형 동생인걸 다행으로 여겨. 안 그랬음 진짜. " " 창민이 모창은 그만 둬. 네 꼴이 더 우습잖아. " " 그래! 난 짱꼴라로 보내고!! 재중은 일본 보내고!! 창민은 인도로 보내고!! 정실장님 혼자 한국에서 잘 살아라? " 여전히 입꼬리를 올린 채 다른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는지 시간을 체크하고 상의 쟈켓을 입기 시작했고, 덫에 일부러 걸린 쥐새끼 치고는 난 꽤나 흡족스런 얼굴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나 도M 인가봐.. § 성공한 사람들이 숨기고 있는 기질을 「조증」으로 알고 있는 나는 즉, 재밌어서 약간 흥분이 된 상태의 지속을 21세기의 새로운 성공요인으로 자발적으로 묵인했고, 성공한 기업가들은 약간의 하이포마니아 광기를 가지고 있다는 주관적인 설을 진실처럼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었다. 그렇다. 난 지금 조증 상태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이런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창민과 재중은 당연하게도 나를 멀리 기피했다. 녀석의 소식을 접하지 못한지 벌써 1주일이 넘어가고 있었다. 중간에 생긴 일을 알리가 없는 창민과 재중은 연락이 닿지 않은 준수를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었고, 무언가 달빛 아래 맺은 약속처럼 난 그 날의 이야기를 쉽게 꺼낼 수 없었다. 은연중 녀석이 다시 1번을 눌러 나를 찾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습관처럼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하는 버릇이 생겼고, 녹화하는 도중이라도 진동이 울리면 액정을 꺼내 확인하기도 했었지만, 녀석은 힘든 시간을 잘 버티고 있는 모양인지 내게 더 이상 손을 내밀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마음만큼 야속하기도 했었다. 겨울비가 그치나 했더니만, 하늘에서 새하얀 눈꽃송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시작된 스케줄에 이제 오후 2시였는데 몸이 축 늘어져 마치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며 존재하지 않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식욕도 없고, 성욕도 없고, 돈 쓸 데도 없고, 깐죽거리기도 귀찮고 넋 놓고 떨어지는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때마침 바짓주머니에서 드르륵 진동이 느껴졌고, 느릿한 귀찮은 동작으로 애써 핸드폰을 꺼내 액정을 바라보았다. 간간히 우리들이 모르는 소식통을 알려주는 팬으로 기억하는데 이상하게 문자가 아닌 포토메일이 도착했다. 그리고 곧바로 연결된 포토메일 속에는 김준수가 있었다. 늘어진 자세를 바로 잡으며 다시 한 번 액정을 바라보았다. 분명 녀석이었다. 눈이 내리는 도로 한 복판에서 양 손을 올리고 울고 있었다. 분명 울고 있었다. 양쪽으로는 차가 달리고 있는 위험한 중앙 도로였고, 녀석의 앞발치에는 죽은 흰색 강아지 한마리가 차에 치였는지 누워있었다. 낙인처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나 휴대폰은 죽은 듯이 꺼져있었다. 곧바로 포토메일을 보낸 팬에게 전화를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들리는 목소리는 많이 놀란 듯 흥분되어 있었다. 상대방 배려 없이 궁금했던 모든 질문들이 한꺼번에 쏟아졌고, 당황한 팬은 자신이 본 모습 그대로 설명해주었다. 그러니까 1시간 전에 청담 사거리에 있는 탐앤탐스 커피점 앞 중앙 도로에서 김준수를 보았다고 설명했다. 하얀색 강아지가 죽었는지 발밑에 축 늘어져 있었고, 눈이 내려 위험한 도로임에도 불구하고 강아지 곁을 떠나지 못한 채 계속 울고 있는 모습이었다고 설명했다. 일단 통화를 종료하고 매니저를 붙잡고 사정을 했다. 다행히 내일 있을 음악프로 리허설을 하러가는 길이었다. 고민하던 눈치인 매니저에게 통화를 엿들은 창민은 둘이 하겠다고 매니저를 재촉했고 곧바로 흔쾌히 허락한 매니저는 핸드폰은 끄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 곧바로 벤에서 내려 택시를 잡아탔고, 청담동 사거리로 향겠지만 그곳엔 죽은 강아지도 녀석의 흔적도 없이 깔끔했다. 마음처럼 내 눈앞에 김준수가 없자 온몸의 털이 곤두설 정도로 바짝바짝 애가 탔다. 내가 녀석에 대해 아는 거라곤 핸드폰 번호와, 집, 그리고 학교가 전부였다. 일단 녀석의 집으로 택시를 다시 잡아 향했고, 들어가면 안된다는 경비아저씨의 말에 준수에게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고 부탁 좀 드리겠다고 하자, 주저하지 않고 문을 열어주셨다. 하지만 집에도 녀석은 없었다. 다만 1주일 전과 같은 온 이불들은 거실에 널브러져있었고 전기장판의 온도는 여전히 고온으로 설정되었다. 순간 눈앞이 어지러웠다. 너무나 불안한 나머지 호흡이 점점 빨라지더니 급기야 진땀이 다 났다. 주저하지 않고 마지막 장소인 녀석의 학교로 향하기 시작했다. 복잡하게 얽힌 캠퍼스에는 평일이라 많은 학생들로 붐볐다. 택시가 진입할 수 있는 도로까지 도착했고 주저하지 않고 복잡한 인파 속으로 발걸음을 내딛었다. 갑작스런 등장에 순식간에 많은 학생들로 둘러싸이기 시작했고, 아무런 대책 없이 모자도 선글라스도 착용하지 않는 유천을 발견하는 건 식은 죽 먹기와도 다름이 없었다. 많은 시선만큼이나 각자 주머니 속에서 나오는 휴대폰의 카메라들은 분주해지기 시작했고, 노천극장을 지나 내려오는 학생 한명에게 물었다. 내려오는 모습이 마치 장날 장터로 꾸역꾸역 모여드는 인파와 같았다. " 죄송하지만, 여기 음악관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합니까? " 무리 지어 내려오는 여학생들은 갑작스런 등장에 터져 나오는 소리를 입으로 막으며 떨리듯 찾아가기 쉽게 상냥하게 설명해주었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발걸음이 빨라졌고, 그 만큼 뒤를 따라오는 학생들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여학생의 설명대로 노천극장을 지나 대학 출판부가 있었고 그 옆 건물에 음악관이 있었다. 현재 알고 있는 정보라고는 작곡과 2학년 김준수라는 점이었다. 음악관을 들어서자, 수업을 끝마치고 나오는 학생들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나를 스치다 놀란 학생들은 다시 내 뒤를 쫓기에만 열중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싶은 마음에 2층에서 내려오는 남학생에게 급한 듯 물어봤다. " 죄송하지만, 혹시 작곡과 김준수 아시나요? " 그는 어안이 벙벙했는지 어리둥절해 하며 어깨에 멘 악기를 다시 고쳐 잡으며 말했다. " 아 2학년 김준수요? " " 네. 2학년 맞아요. " 긴장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이제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겠다고 생각되었다. " 지금 건반화성 실습 때문에 5층 레슨실에 있을 거예요. " 감사하다는 표시와 함께 곧바로 층계를 이용해 5층 레슨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내 등장에 평소처럼 떽떽거려도 좋으니까, 그 자리 그대로 있어주길 바랬다. 506호 앞 레슨실 팻말이 눈에 보였고, 뒤에서 사인을 요청하는 팬들과 앞에서 나를 보고 모세의 기적처럼 인파가 좌우로 갈라지고 있는 학생들로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똑똑 문을 두드린 다음에 레슨실 안으로 들어섰고, 레슨실에 있던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유천에게로 향했다. 악보를 보고 있던 학생도 건반을 두드리고 있던 학생도 책상 위에 무리지어 앉아있던 학생들도 차마 입을 열지 못한 채 놀라며 지금의 상황에 대해 인식을 못하고 있었다. 다행히 수업시간은 끝났는지 교수님은 그 자리에 없었다. " 실례합니다. 죄송하지만 김준수 여기.." 순간 녀석의 작은 손가락이 보였다. 레슨실에는 여러대의 피아노와, 20개 남짓한 책상과 의자 그리고 창가 옆 왼쪽 모퉁이 부분에 긴 베이지색 쇼파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얼굴로 내리쬐는 햇볕이 무관하단 표정으로 곤히 잠들어 있는 녀석의 얼굴이 보였다. 흐트러진 머리가 얼굴에 흘러내렸는데 언뜻 보기에도 몹시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새삼 무언가가 울컥 치미는 배심감과도 같은 화가 일어났다. 꾸역꾸역 올라오는 서운함을 뒤로한 채 녀석 곁으로 다가가 먼저 이마에 손을 얹어 열을 확인했다. 살짝 미열이 나는 이마에는 땀이 맺혀있었다. 뒤를 돌자 창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사람들과 유천과 준수의 관계를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유천의 입을 재촉하고 있었다. " 아, 이 녀석 친구입니다. " 다들 놀란 눈치가 역력했다. " 죄송하지만,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어요? " 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한 여학생이 입을 열었고, 그 사람이 선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 들어온 지는 3시간정도 지난 것 같은데, 밖에서 눈을 많이 맞고 와서 옷이 많이 젖었어요. 요즘 몸이 계속 안 좋아 보여서 학교는 꼬박 꼬박 잘 나오는데 매번 책상 위에 누워있거나 저렇게 자고 있어서요.. " " 실례지만 학교에서 준수랑 가장 친한 친구가 누군지 아시나요? " 서로 눈치를 보며 대답을 머뭇거리는 모습에 다들 모르는 질문을 했다고 쉽게 판단 내렸다. 곧바로 주위를 둘러 녀석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일단 녀석을 집으로 데려가야겠다는 생각만 앞섰다. " 저.. 혹시 요즘 준수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시나요? 2년 동안 준수가 이런 적이 없었던 애라.. 안그래도 선배들이 계속 옆에서 챙겨주고는 있었거든요. 그런데 힘없이 웃기만 하고 도통 입을 열지 않아요. " 1주일동안 비실거리는 녀석이 신경 쓰였는지 모두들 궁금하단 눈빛으로 내게 답을 원했다. " 약해 빠진 주제에 고집만 쌔서 그래요. 곧 괜찮아질 거예요. 저기 죄송하지만, 제가 노천극장 앞에 택시를 세워뒀거든요. 짐이 좀 많아서 그런데 악기 좀 대신 들어주실 수 있나요? " 옆에 서 있던 한 남학생에게 말을 했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악기를 대신 챙겨주었다. " 그리고 준수 좀 제 등에 업혀주세요. " 그제야 주변 학생들은 준수의 안색이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챘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잠든 것처럼 굉장히 위태로워 보였다. 가만히 보고만 있던 친구가 다가와 업는걸 도와주었고, 얇은 롱 가디건을 얼굴 위로 덮어달라는 부탁을 끝으로 레슨실을 나왔다. 나올 때 이미 구겨질 대로 구겨진 미간 때문인지 학생들이 쉽사리 달려들지 않았고 좀 더 떨어진 곳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옆 친구의 도움을 받아 대기하고 있던 택시에 녀석을 태우고 악기를 실었다. 눈을 정말 많이 맞았는지 온 몸이 순식간에 불덩어리로 빠르게 열이 오르기 시작했고, 작은 진동에도 온 몸이 찌르듯 아파오는지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담배가 너무나 간절한 순간이었다. § 녀석의 열은 정말로 대단했다. 집으로 데려오자마자 어쩔 수 없이 팬티 한 장만 남긴 채 옷을 전부 벗기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팔이며 다리며 온 몸에 소름이 돋는지 춥다는 듯 칭얼거리기 시작했고, 녀석은 몸을 뒤치락거리면서 열에 들떠 미친 듯이 이로 베개를 물어뜯더니 급기야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경험에 의하면 일단 열을 내리는 게 급선무였다. 이불 시트를 모두 끌어안지 못하도록 단호하게 내려놓자, 마른 가지처럼 앙상한 몸을 뱃속의 태아처럼 구부리고는 앓는 소리를 본격적으로 내기 시작했다. 약해지는 마음을 다시 잡았다. 서랍을 뒤져 해열제를 발견했고, 정수기에 물을 떠와 움츠린 몸을 손으로 만지자 내 손길이 굉장히 차가웠는지 흠칫 놀라 손으로 저항을 하기 시작했다. 억지로 입 안에 알약을 넣고 물을 나누어서 입에 넣어주자 목은 말랐는지 여러 번 나누어 물을 마셨다. 너무 추운 나머지 내 체온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몸을 억지로 냉정하게 떼어내어 일단 급하게 욕실에서 젖은 물수건을 챙겨서 들어왔다. 눈도 뜨지 못한 상태로 입술이 퍼렇게 질린 채 벌벌 떨렸고 온 몸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진짜 씨발새끼다. 욕이 저절로 달라붙어왔다. 천천히 이마부터 팔, 다리까지 열에 들뜬 몸을 닦아주기 시작하자, 처음에는 너무 차가워 힘없이 손을 저으며 하지 말라고 그것마저 미세한 저항을 했고, 여러번 물수건을 갈아서 닦아주자, 그 온도가 익숙해졌는지 몸이 금세 얌전해졌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과 눈꼬리 끝에서 꾸역꾸역 흘러나오는 눈물을 보자 절로 주먹이 쥐어졌다. 그렇게 수십 번을 수건을 갈아서 닦아주었고 어느 정도 열이 내렸는지 조금 편안한 얼굴이 되자 그제야 긴 한숨을 쉴 수가 있었다. § 이와 같은 포근한 느낌을 얼마 전에 느꼈었다. 뭔가 누르는 느낌에 살짝 기분이 나쁜데 좋은 향이 나고 몸에 비해 마음은 편안한.. 뭉클한 감촉과도 같은 그런 느낌. 새벽 내내 욕실을 수십 번 돌아다니다 지쳐 녀석의 곁에 누워 잠이 들었다. 이상하게 가슴이 뜨겁고 아프고, 그리고 눈앞이 온통 캄캄했다. 어느새 어두운 저녁 구름이 나타나 밤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 목 언저리에 얼굴을 곤히 박고 내 몸 위에서 편안하게 엎드려 누워있는 게 샤키가 아니라, 녀석이란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숨을 쉬는 소리는 안정을 되찾았지만, 자고 있는 깊은 숨소리는 아니었다. 다만, 샤키처럼 내 냄새가 좋은지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행동을 장난처럼 반복하고 있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녀석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주자, 간지럽게 목 위에 올려진 입술이 예고 없이 움직였다. " 밤새 우리의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나봐. " 너 아파. 무슨 헛소리야 또. " 무슨 역사. " " 난 홀딱 벗겨져있고, 넌 갑갑하게 옷이 입혀져 있고. 우리 신파야? " 야야. 입술 움직이지 마. 간지러워. " 기억 안나? 너가 무턱대고 나한테 달려들었잖아. 난 피해자야. 너 그렇게 쉬운 놈이었어?? 왜 자꾸 벗어대? " 야야. 코도 킁킁 거리지마. 간지러워. " 킁.. 그럼 너가 나한테 당한거야? " 이 새끼는 명당을 찾았나. 거기 안 불편해? 난 조금 자세가 불편해지고 있거든? " 자세를 봐. 니가 TOP이잖아. 아주 우월한 위치야. 그런데 그곳은 편하니? 내려올 생각은 없어? " 미세하게 웃는지 가슴이 들썩 들썩 거렸다. 그것마저 힘겨워 보였지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 이 냄새였구나. 샤키 마음을 이제야 알겠다. " 녀석은 아직도 그날의 미어지는 가슴을 방금 전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듯 했다. 이 여운이 오랫동안 문신처럼 지워지지 않을 생각에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 내가 예쁜 강아지 한 마리 사줄까? " 고민 없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어댔다. " 죽지 않고 평생 내가 기를 수 있는 강아지 있으면 사 줘. " 저기.. 아주 없는 건 아닌데. 말하면 비웃을까봐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밑져야 본전. 인생은 한방이야. 에라이 올킬이다. " 나 키워. 샤키랑 믹키 뭐 나름 의미를 부여하면 비슷한 게 많다? " 예상한대로 녀석이 내 목에 코를 콱 박고는 큭큭 숨넘어가도록 웃기 시작했다. 야 이 개새야 웃는 거 좋은데 입술 좀 치워봐. 간지러워 죽겠다니까. 목이 가려운데 가슴을 박박 긁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뭥미. " 넌 잡종이잖아. 우리 샤키는 전통 있는 교배의 자손이야. 왜이래? " 니미. 내가 어딜 봐서 잡종이야??????? 이게 내 신성한 씨앗을 제멋대로 까고 있어. " 난 돈도 벌어. 대화도 가능해. 게임도 같이 할 수 있어. 목욕도 혼자 해. 밥도 잘 차려먹어. 두 발로도 걷는다? " 졸음이 점점 몰려오는지 대답이 느려지고 숨소리가 색색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나지막이 녀석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아련하게 내 마음속에 남겨졌다. " 그럼 넌.. 나 보다 먼저 죽지 마.. " 녀석과 함께 잠이 들었고 그날 꿈속에 어릴 적 솜사탕처럼 부풀은 햇빛마다 새로이 태어나는 봄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운동장을 지나 걸어오는 길에 불어오는 재채기 같은 바람과 온 몸을 감싸 안듯 나른하고도 따사로운 햇살이 마냥 상쾌했었다. 빠른 걸음으로 집에 도착하니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엄마는 주방에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계셨고, 아빠는 거실 쇼파에 앉아 신문을 정독하고 계셨다. 그리고 우리 집 마당 한편에는 건강한 노랑 병아리가 봄나들이 나온 개나리처럼 예쁜 행렬로 뛰어놀고 있었다. 풍요로운 마음이 주체가 되지 않았던 따스한 봄날이었다. § 아침 이슬은 사라지고 뜨거운 햇살이 침대시트를 찜질방처럼 내리쬐고 있었다. 환하게 비추는 태양이 존나 싫어! 난 태양을 피하고 싶어! 씨발아 왜 넌 계속 내 위에 있는 거냐. 나 아침만큼은 제대로 살고 싶다고. 이리 저리 고개를 숨어도 피할 길 없는 햇볕에 자리를 벅차고 일어났다. 눈은 안 떠지고 이곳이 어딘지 내 존재는 무엇인지 난 왜 이러고 있는지 한참 뒤에 깨달았다. 정신을 조금씩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안방에도 거실에도 욕실에도 녀석의 팬티가 보이질 않았다. 진한 하늘색 맞는데. 어지러운 사람처럼 넓은 거실 한가운데에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곧바로 작업실 도어락이 열려있는 틈이 보였고 어슬렁어슬렁 방문을 열었다. 창문 밖으로 아까 피하고 싶어서 뛰쳐나온 태양이 어느새 지조 없게 저 창문에 진드기처럼 달라 붙어있었고 샤워를 하고 나왔는지 아직 마르지 않은 머리를 그 태양열의 기운을 받으려는지 아무렇지 않게 의자에 앉아있는 녀석의 차림은 여전히 팬티바람이었다. 너 아침부터 거기에 앉아서 뭐하고 있냐. 졸린 눈을 비비며 녀석에게 말했다. 내 갑작스런 등장도 놀랍지 않은지 태연하게 대답했다. " 야 너 팬티 입고 뭐해? " " 닥쳐 " 나 닥치란 소리 진짜 많이 듣거든? 그럼 내 주둥아리에 문제가 있다는 거야? 왜 나만 보면 닥치래? 내 주둥이는 무슨 소품이라도 돼?? 하지만 이 말은 속으로만 내뱉었다. 뭔가 열심히 적고 있는 녀석은 무리 있어 보이게 큰 헤드셋을 끼고 있었다. 내 목소리가 들리는 걸로 보아선 MR이라도 듣고 있었나? 연습장처럼 빼곡히 적힌 글은 여러 번 수정을 한 모양인지 돼지꼬리부터 밑줄쫙~ 별표부터 정신없어 보였지만, 무엇을 적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어떤 곡을 만들었는지 꽤나 아련한 가사였다. - 네가 없어도 - 혼자 있어도 내내 마음이 아프고 소란스럽게 니가 들려와 너의 모습이 내 눈에 사는것 처럼 눈을 감아도 너무나 잘 보여 니가 없어도 항상 단장을 하고 너의 이름도 수없이 불러 잠이 들어도 자꾸 맘이 울어서 잠든 눈가에 눈물이 고여 한 숨 소리에 걸린 오래된 그리움이 꿈이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사진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듯 아픈 이별도 지울수있을까 매일 이렇게 지내 하루도 다르지 않아.. 추억속에 니가 사는걸 믿지 못해서 너를 어떻게 잊어.. 내 숨소리보다 더 많이 더 깊이 사랑한 우리가 있는데.. § 방해하기 싫어서 작업실 문을 조용히 닫았고 까치로 뻗은 머리와 부은 얼굴, 까칠한 입술, 새벽내내 시달린 게 피곤했는지 쉽사리 아침잠에서 깨어 나오지 못했고 결국 태양을 피할 수 있는 거실 쇼파에 누워 다시 단잠에 빠지려고 하는데.. 진심으로 뱃심에서 우러나오는 타령처럼 우렁찬 소리가 고막을 짜증나게 울렸다. " 야 믹키!!! 일어나!!!!!!!!!! " 등을 돌리고 손을 올려 귀를 막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 손목을 단단히 붙잡은 녀석은 쇼파 밑으로 나를 앉히더니 눈을 어서 뜨고 정신을 차리라고 재촉했다. 기차통을 삶아 먹었나 왜 이렇게 아침부터 생기가 돌고 지랄이야? 네 맘대로 스위치 on, off 하지말아줄래? 나 적응 안 되거든? " 야 빨리 눌러! 눌러!! 눌르라고!!!!! " 역도처럼 무거운 눈커플은 떠질 생각이 없었고, 내 손에 이상한 막대를 억지로 움켜쥐게 한 녀석은 나의 느려터진 행동이 답답한지 가슴을 치며 빨리 눌르라고 했다. 그래서 눌렀다. 그러자 옆에서 계속 조잘 거리며 내 손가락을 조종시키기 시작했다. 야! 거기 아니라고! 왼쪽버튼! 오른쪽! 오른쪽! 왼쪽! 왼쪽! 난 눈을 감은 채 청기 올려! 백기 올려! 게임처럼 녀석의 목소리에 최대한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팍!! 소리와 함께 천근만근 무거웠던 눈 커플이 순식간에 떠졌고 눈앞에 펼쳐진 월드사커 위닝일레븐은 나를 굉장히 당황하게 만들었다. 뭐야.. 뭐야.. 아침부터 이게 뭐하는 짓이냐. 이 미친 새끼야!!!!!!!! 그런데 갑자기 게임을 일시 정지한 녀석이 초인종 소리와 함께 현관 앞으로 나갔고 몽롱해진 시선 끝에 배달된 양념치킨을 보자 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기 시작해 결국엔 배를 움켜잡고 끄악악 웃기 시작했다. 창민아 여기 미친놈 있어! " 넌 아침부터 닭이 넘어가냐? " " 안 넘어가면 내가 시켰겠냐? " 정말 단골집인지 양념통닭 1마리에 무가 3팩이나 따라서 왔다. 그래 인 to the 심이다! 손을 씻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쪽쪽 소리를 내며 치킨을 물어뜯지 못해 안달 난 귀신처럼 현란한 사운드를 내며 먹기 시작했다. 어찌나 맛있게도 먹는지 보고만 있어도 침이 꿀꺽 꿀꺽 넘어갔고, 그제야 잠에서 깬 나는 스멀스멀 날개 부위로 손을 올리는데 순간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손이 빗겨 쳐졌다. 아우 씨발 아파!!!!!! " 치사하게 뭐야!!!! " " 넌 먹으면 안 되잖아. " " 내가 왜 안 돼!!!! " " 키워 달라매. " 먹는 동작을 멈추지 않고 주둥이는 원하는 방향대로 잘도 나불댄다. 콱 때려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 뭘 키워? " " 샤키 대신에 믹키 키우라매. " 생각났다. 몹쓸 발언. " 그게 뭐!? " 양 손에 두 닭다리를 쥐고 있는 손이 무섭기까지 했다. 며칠을 굶은 거야 대체? 살을 다 발라 먹은 닭다리 하나를 냉큼 내 앞으로 내려놓더니 뻔뻔하게 말했다. 개자식. " 난 맛없는 살 먹었으니까, 믹키 넌 맛있는 뼈 먹어. 어서! " " 야. 너 아파. 누워. 일단 누워. 씨발 누우라니까?!! " " 내가 아프면, 넌 뭐야 곧 죽어? 우리 역시 신파였어? 흑흑 " 이 개새끼. 웃으면서 우는 척 하지 말라고. 소름 끼친다고. § 리허설을 끝마친 재중은 은밀하게 진행되는 압구정동 AN2 촬영지로 향했다. 100평 남짓한 촬영지 실내 인테리어는 컨셉 미팅과 동시에 제작단계에 들어섰고 굉장히 단시간에 놀라울 정도로 여러 가지 모티브가 형성되는 분위기를 감각적으로 조성하고 있었다. 어느 곳 하나 빈틈없이 세심한 소품부터 분위기 연출및 조명들이 하나의 그림처럼 아름답게 잘 어우러져 있었다.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사람들과의 작업 앞에 낯부터 가리는 재중은 굳은 입을 어쩌지 못한 채 촬영장 안으로 들어섰다. 기다렸단 듯이 예상 보다 훨씬 더 많은 스텝들이 재중을 반겨왔고 얼떨결에 덩달아 인사를 한 재중은 곧바로 사진작가들과 짧은 컨셉 이야기가 이루어졌다. 일전에 몇 번을 통해 서로의 컨셉을 여러 번 이야기했고 전반적으로 연출은 촬영 팀에게 맡겨졌다. 실질적으로 오늘 촬영될 스토리텔링을 처음 보게 된 재중의 동공은 이미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굉장한 작업만큼이나 들떠있는 사진작가들은 스토리텔링을 함께 넘겨가며 포즈와 분위기에 대해 들뜬 듯 신나게 설명했고, 머릿속이 아득해지는 재중의 마음을 눈치 챈 사람은 그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곧바로 조명팀과 촬영팀이 소품과 컨셉연출로 분주해지기 시작했고 재중은 그동안 바디케어를 담당해주었던 관리사를 따라 의상실로 들어갔다. 사방이 하얗기만 하던 의상실에는 기존의 여자 코디 없이 생소한 남자 코디 3명이 대기하고 있었고, 첫 번째 컨셉에 맞게 의상을 골라 주었다. 곧바로 걸친 옷을 전부 벗자 고요해진 의상실에는 미세한 긴장된 숨소리만이 그 정적을 메우고 있었다. 순간 뚫어지게 감상한 시선이 민망했는지 모두들 헛기침을 일부러 내가며 바디 메이크업이 본격적으로 들어갔다. 의표를 찔린 듯한 유연하고 아득한 감성과 너무 솔직할 정도의 순수한 분위기에 알맞게 인테리어가 꾸며져있었고, 준비를 끝마치고 등장한 재중으로 인해 부산스러웠던 주변의 소음이 금세 조용해졌다. 골격은 단단히 잡혀있어 강하지만, 몸은 경쾌한 만큼 부드러움도 지녔다. 머리스타일은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내츄럴한 머릿결을 강조하고 있었고, 얼굴 메이크업 또한 아기 피부처럼 반들반들해져 있었다. 상의는 두툼한 보드라운 소재의 목까지 올라오는 하얀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굉장히 큰 사이즈라 재중이에게는 버거워 보일 정도였고 손끝까지 팔 부분은 내려가 있었다. 그리고 하의는 아슬아슬해 보이는 캘빈클라인 검정색 속옷만 달랑 입고 있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아슬아슬한 분위기에 모두들 애써 침묵으로 일관했다. 곧바로 플래시가 곳곳에 터지기 시작했고 여자모델 보다 탄탄한 허벅지 핏에 모두들 숨을 죽이며 재중에게 시선을 모았고, 긴장된 표정이 도움이라도 되는 듯 사진작가는 같은 표정을 계속 주문했고 굳은 듯 무표정한 재중은 컨셉에 맞게 여러 가지 포즈를 시도했다. 중간마다 축 아래로 내려간 스웨터를 가슴 위까지 한 손으로 올린 재중의 몸은 상상력이 가져다주는 그 이상의 예쁜 몸매를 선보이고 있었다. 여자의 골반 라인 못지않게 주목받고 있는 치골근 위로는 정말 아찔한 선까지 보일듯말듯 속옷이 올라가 있었고, 매혹적인 치골근 라인이 보일 때마다 플래시는 사정없이 터지기 시작했다. 저항할 수 없는 관능미와 신비하고 아름다운 몸매가 여러 시선을 순식간에 사로잡았다. 기대했던 그 이상으로 몸이 예쁘게 자리 잡힌 모델의 모습이 꽤나 흡족스러웠는지 연신 좋아. 좋습니다. 좋아요~ 라고 말하는 사진작가들의 음성은 꽤나 들떠 있었다. 그렇게 첫 컨셉이 예정된 대로 잘 진행되고 있었다. 촬영이 끝남과 동시에 세트장은 다시 분주해졌고 의상실로 돌아온 재중은 많이 긴장한 탓에 몸이 위축이 되었는지 쇼파에 바로 털썩 주저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고 액정을 바라본 재중의 얼굴에 금세 웃음꽃이 화사하게 피어올랐다. " 혀엉.. 어디야? 왜 안 와. " " 광고 때문에 미팅이 좀 있어. " 잔뜩 주눅 든 목소리로 변했다. " 그래서 오늘 못 봐? 여기 안올거야? " " 끝나는 대로 갈 거야. 촬영은 어때? " " 아직은 괜찮아. " " 아는 사람들 없어서 많이 굳어있겠네. " " 스텝들이 너무 많아. " " 그래. " " 일부러 미팅 잡은 거 그런거 아니지? " " 시간이 그렇게 한가해? 촬영에 집중해. 형 바빠. 끊는다. " " 이따가 늦어도 꼭 와야 해?! " " 그래. " § 어릴 적 기억으로는 운동회가 이렇게 힘들지 않았던 것 같았다. 아침에 태양을 피해 일어나 봉변을 당했고, 곧바로 대가리통이 뽑아질듯 맞아가면서 재미도 감동도 없는 축구 게임을 했고, 아침 10시 반에 양념통닭을 신들린 사람처럼 먹는 녀석을 지켜보기만 했고, 녀석이 먹다 남긴 쓸데없이 살이 없는 목 부위를 씹어야만 했고, 샤워하러 욕실에 들어갔더니만, 목욕을 시켜주겠다고 팔을 걷고, 진심으로 다가오는 녀석을 피해 도망가다 다른 욕실로 겨우 들어가 목욕을 했고, 나오자마자 머리를 말려주겠다며 쇼파밑에 나를 앉히고는 뜨거운 드라이기를 고막이 녹아내리게 들이 내밀기 시작했고, 다 말린 머리는 이미 까치집이 전세를 놨고. 씨발. 내가 욕이 안나오겠냐고. 목에 줄을 묶으려는 녀석을 피해 온 집안을 뛰어 다녀 샤워를 왜 했는지 이해가 안갈 정도로 다시 땀이 났고, 맛있는 밥을 주겠다며 넓적한 그릇에 갖가지 과자들을 쏟아 붓고 먹으라고 강요해서 다시 도망쳐 뛰어다녔다. 어찌나 날쌘돌이인지 혼자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헉헉 거리며 내 몸 위를 타고 턱을 만지며 나를 희롱했다. 우쭈쭈쭈 우리 강아지라고. 씨발. 왜 개새끼들이 주인 곁을 떠나 거리를 방황하는지 그 심정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어느새 날은 저물었고 슬쩍 재중의 촬영이 걱정되고 있는데 핸드폰이 처량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아직도 헉헉 거리는 숨을 고르며 통화 버튼을 누르자 다급한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다발로 들려왔다. 뭐야. 한사람씩 말하라고. 나 보컬추출 못하거든? " 형!!!!! 큰일 났어!! 큰일 났어!!!!!! 씨발!!! " 막내 창민이었다. " 야! 박유천 너 지금 어디냐! 빨리 여기로 와!!!!!! " 평소 차분한 매니저였다. " 왜이래? 무슨 일이야?? " 다시 창민이 말했다. " 지금 정윤호 야마 돌았어!!!!!!!!!!!!!!!!!!!!!! 다 때려 부수고 난리 났어!!!!!! 씨발 이러다 기획사 좆되겠어 빨리 와!!!!!!!!!!!!!!!! " 뭐야?????? 거기도 운동회 하고 있었어???? 씨발아 빨리 말했어야지!!!!!!!!!!!!!!!! | 아직도 목 언저리가 간지러운데 가슴을 긁어대, 나 왜이래? | My Melody w. 킵 * * * 새벽 2시, 짐이 좀 있으니 지하 주차장으로 바로 내려오라는 정실장의 전화가 걸려왔다. 상철은 곧바로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분주하게 움직였고, 내려가자 양손에 음료수와 야참거리를 가득 들고 있는 정실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동하는 일정이 많았는지 쟈켓은 뒷좌석 옷걸이에 걸려있었고, 검정색 정장바지 위에 매치한 노타이에 고급스러운 화이트 셔츠는 그 어떤 남자들 보다 슈트의 정석처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가 있는 남자는 분명 매력적이었다. 두어 개 단추가 풀린 셔츠 사이에는 근육으로 다져진 몸이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이 강하고 다부지게 자리 잡고 있었다. 정실장에게 가벼운 묵례를 한 상철이 말했다. " 미팅이 좀 늦으셨네요. 곧바로 오시는 길이십니까? " " 뒷좌석에 음료수랑 음식 더 있으니까 들고 올라와. " " 네. " 강한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강렬함 속에 보이는 순수한 배려는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흐트러짐 없이 완벽했지만, 그 완벽함 속에 보이는 표현의 서투름은 또 하나의 매력이기도 했다. 나머지 음식들을 양손 가득히 챙겨서 스튜디오실로 올라갔고, 정실장이 들어서자마자 많은 스텝들이 그를 알아보고 실물은 처음인 듯 신기하게 쳐다봤다. 들었던 소문 그 이상으로 출중한 외모와 완벽한 모델포스에 분주했던 실내가 살짝 엄숙한 분위기로 연출되기까지 했다. 상철은 덩달아 자신의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스텝분들!! 야참 드시고 촬영하세요!!!! " 상철은 곧바로 주변 스텝분들의 야참을 챙겨주기 시작했고, 촬영 담당자로부터 오늘 촬영의 스토리텔링을 처음 받은 윤호는 문서에 눈을 떼지 않고 촬영순서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옆에서 순서와 컨셉을 간략하게 설명해준 담당자로 인해, 곧바로 마지막 촬영컷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분주한 장소를 이동해 재중이 촬영준비를 하고 있는 스튜디오로 발을 옮겼고, 가던 중간에 야참을 전달하고 있는 상철을 불러 다른 스텝들이 듣지 못하게 귓속말로 뭔가를 지시했다. 정실장의 말을 들은 상철은 잘못 들었는지 예?? 라고 되물어 보았고, 정실장은 두 번 대답하지 않고 곧바로 상철을 지나 B스튜디오 장소로 이동했다. 교묘한 전신 누드씬을 촬영해야하는 수위 높은 촬영으로 인해, 가장 필요한 스텝들로만 숨을 죽인 채 촬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심플하게 꾸며진 내부는 눈이 부실정도로 하얗기만 한 가구들과 커튼 그리고 침실까지 전부 청결함이 돋보이는 공간과도 같았다. 상대 모델의 메이크업이 덜 되었는지 재중은 침대 위에 연한 베이지색의 커다란 욕실 타월로 하반신을 가린 채 힘없이 앉아있었다. 아직 정실장을 발견 못했는지 시무룩한 얼굴로 보드라운 타월 부분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정실장을 발견한 사진작가들은 반가운 듯 활기찬 웃음의 묵례를 했고, 그 웃음의 의미는 이번 촬영이 굉장히 자신 있다는 강한 의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곧바로 마지막 조명체크가 이어졌고, 최종적으로 카메라 앵글을 조절하고 있는 도중 상대 남자 배우가 의상실에서 나왔다. 2009년 유망주로 뽑힌 차세대 모델로 최근에 얼굴이 많이 알려진 케이스였다. 첫 만남이 어색한지 모델이 나오자마자, 숙여진 고개를 든 재중은 스텝들로 가득한 스튜디오를 둘러보았고, 그 중앙에 서 있는 정실장을 발견하자, 엄마를 애타게 기다린 아이처럼 자동으로 울상을 짓기 시작했다. 가만히 재중의 얼굴을 살펴본 윤호는 여러 개의 작은 반점들이 몸통과 팔 부분에 미세하게 새겨진걸 보고, 재중에게로 다가오는 모델의 동선을 냉혈하게 무시하고, 재중 몸 가까이 다가갔다. 숨을 죽인 스텝들과 스팟측광을 조절하던 종만작가는 앵글 속에 잡힌 투샷을 직업병처럼 조절하고 있을 때였다. " 너 몸이 왜이래? " 잔뜩 위축했던 몸의 긴장이 맥없이 풀리는지 팔을 축 늘어트린 재중은 정실장의 말에 현재 자신의 몸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 차렸다. 촬영이 지속될수록 술에 취한 듯 몽롱한 기분과 감기몸살이라도 걸린 듯 열에 들뜬 기분 때문에 동작이 점점 느슨해지고 동공이 맥없이 풀려진 대다가 머리까지 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 혀엉.. 나 머리가 너무 아파. " 재중은 작업할 때만큼은 절대 형이라는 호칭을 부르지 않은 고집이 있었다. 그는 늘 직업에 충실한 완전한 프로였다. 형 소리에 놀란 윤호는 먼저 자연스럽게 이마를 만져 열을 체크했고, 몸에서 피어오른 붉은 반점들을 자세히 팔을 들어 살펴보았다. 본격적으로 머리가 아프다며 칭얼거리기 시작한 재중은 윤호의 하얀색 와이셔츠 소매를 붙잡았고, 순식간에 정실장의 표정이 다른 사람처럼 싸늘하게 변했다. 곧이어 날카로운 후각으로 미세하게 풍겨오는 뜨거운 알콜 기운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 입 벌려봐. " " 응? " 자꾸 몸이 늘어지고 뜨거워지고 울렁거리는 자신의 몸을 버티기가 힘들었는지 금세 눈물이 그렁 고였다. 점점 숨이 달아오르기 시작한 재중의 턱과 볼을 양손으로 부드럽게 잡은 윤호는 재중에게 음식을 잘못 섭취해서 지금 몸에 이상이 생긴 거라고 안심시키며 다시 한 번 말했다. " 빨리 눈 감고, 혀 내밀어봐. " 어지러운 머리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동공 끝에 우두커니 서 있는 윤호의 검은 눈동자가 보였고, 재중은 고민 없는 동작으로 곧바로 스르륵 눈이 감겼고, 침에 젖은 관능적인 입술 사이로 핑크빛 혀가 살짝 내밀어졌다. 윤호는 주저하지 않고 곧바로 자신의 혀를 재중의 혀로 옭아매어 혀의 표면에 있는 돌기의 맛을 감지함과 동시에 한가득 그렁했던 물기 어린 눈이 파르르 떨리며, 눈물이 떨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모든 동작이 멈춰진 스튜디오에는 츕- 츕- 음란한 소리만이 그 정적을 매우고 있었다. 곧바로 빠르게 입술을 뗀 정실장은 본격적으로 머리가 지끈거려 눈물을 쏟기 시작하는 재중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고, 울음이 터진 재중은 아무것도 안 보이는지 하얀 두 팔을 애처롭게 벌리고 윤호를 애타게 찾기 시작했다. " 흐앙.. 혀엉.. 나 머리 너무 아파.. 흐흡하앙.. " 침대 시트위에 앉아있던 재중의 하얀 팔을 잡아당겨 앞으로 가볍게 안아 올리자, 하반신을 가렸던 타월이 툭- 시트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성을 잃은 눈빛의 윤호는 자세를 조금 틀어 놀란 표정으로 앉아있는 두 사진작가들을 싸늘한 웃음으로 바라보았고, 동시에 독하게 이를 악문 채 한 글자씩 또박또박 정확히 입을 열었다. 실내의 적막은 소름끼치도록 고요했다. " 모델을 항거불능 상태에 빠트린다는 조항이 혹시 계약서에 기재되어있었습니까? " 웃으며 말하는 정실장의 싸늘한 음성은 모든 사람들의 등골을 오싹하기에 더 없이 충분했고, 들썩거리는 재중의 등을 괜찮다고 토닥이며, 떨어진 타월을 주워 노출된 하반신을 가렸다. 오랫동안 당황스러워한 선희작가는 일이 심각하게 커질 것 같자, 자리에서 일어나 정실장에게 어색한 웃음을 선보였고, 이에 안중에도 없단 듯이 정실장은 비이성적으로 분노에 찬 목소리로 큰 고함을 내질렀다. " 야! 이상철!!!!! 이리 들어와. " 정실장의 보기 드문 고함소리에 놀란 상철은 뛰다시피 B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왔고, 모두의 시선이 주목된 그 순간 두개골이 쪼개지듯 쫘-악!!!! 뺨을 내리치는 소리와 그 힘을 곧바로 증명하듯 상철은 몸을 크게 비틀거렸지만, 바로 자세를 잡아 고개를 숙였다. 순식간에 상철의 볼은 붉은 핏줄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라 붉게 변하고 있었다. 어떤 일인지는 몰라도 이대로 조용하게 넘어갈 것 같지 않은 느낌에 고개가 점점 아래로 숙여졌다. " 내가 누누이 경고했지? 알콜 해독장애 있으니까, 술 같은 거 입에 대게 하지 말라고. " " 죄송합니다. " " 저번에 피부열독 올라서 입원한 거 봤어, 못 봤어?!!!!! " 다시 한 번 쫘-악!!!!!! 소리가 스튜디오에 울렸고, 옆에서 이대로는 안되겠는지, 스텝들과 사진작가들이 그를 말리기 시작했다. 의상실과 스튜디오 실에 출입자재가 내려진 상철은 재중의 몸 상태를 쉽게 파악할 수 없는 노릇이었고, 빠르게 부어 올라가는 제 뺨 보다, 눈앞에 보이는 재중의 종아리 부분의 붉은 반점에 어쩔 줄 몰라 하며 한번 숙여진 고개가 쉽게 올라오지 않아 눈을 질끈 감았다. " 거참, 까칠하게 나오시네. 양주가 가져다주는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나 지껄이십니까!!? "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저장된 사진들을 하나하나씩 버튼을 돌려가며, 섬세하게 체크하던 종만작가가 말했다. 거리가 조금 떨어져있어도 덥수룩하고 지저분한 수염 사이 안쪽에서 풍겨져 나오는 고약한 술 냄새는 정실장의 불쾌한 심정을 배로 부풀어 만들기에 충분한 소재였다. 부드럽게 재중의 등을 토닥이던 손이 멈추었고, 재중을 다시 침대위에 앉혀놓고는 큰 타월을 어깨에 잘 여며주자, 스튜디오가 조금 추웠는지 금세 타월을 빈틈없이 끌어안았다. 여전히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큰 눈망울엔 눈물이 가득 차있었다. " 재중아, 잠깐만 눈 감고 귀 막고 있어. " § 그 큰 집에 녀석을 또다시 혼자 두고 나올 수가 없어서 못 볼 일이라도 일단 데리고 나왔다.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지 못하는 녀석은 내 뒤를 졸졸 따라오면서도 호기심 가득한 표정뿐이지.. 불안하다거나 무섭다거나 그런 심각한 표정은 짓지 않았다. 둔한건지 단순한 건지 관심이 전혀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무관심이 정답인 듯 했다. 스튜디오는 다행히 준수집에서 10분도 채 되지 않은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도착하자마자 발견한 창민과 매니저 형이 보였다. 안절부절 똥줄을 타고 있는 상철형의 볼때기는 어디다가 내리 지졌는지 아주 빨갛게 익어 있었고, 그런 매니저와 상반된 모습으로 운동을 하던 도중에 급하게 나왔는지 검정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창민은 옆에서 삐딱~하니 선 채, 입가를 올리며 씨익 웃고 있었다. 씨발 이건 또 무슨 꿍꿍이야. 창민을 발견한 준수는 잃어버린 똥개를 찾은 마냥 투니버스 웃음소리를 내며 좋아했고, 그런 와중에 스튜디오 안을 크게 울리는 여러 사람의 악악 소리와 물건 부셔지는 소리, 그리고 분명한 재중의 울음소리가 난데없이 어우러져 머리가 복잡해오기 시작했다. " 야. 뭐야 무슨 일이야?? " 주머니에 손을 꽂고 삐딱하게 서 있던 창민이 자세를 바로 잡았고 내 귓가를 더럽히며 간지럽게 속삭였다. 또 경매 하냐? 개새야 그냥 말해. 다 들리거든? " A. 버전 실시. " 창민의 말과 동시에 스튜디오 안을 울리는 거대하고 무식한 음성이 있었으니.. 에이.. 에이.. 설마. A. 버전이라면……. " 아, 근디요??!!!! 이런 개세이가 대가리에 독 들었나!!!!!!!! 좆만치도 없는 새끼가 지금 뒤져블라고 용쓰냐!!!!!!!!!!!!!!!!!!!? 콱!!!! 척추를 접어블랑께!!!!!!!!! " 얘들아, 뭐하고 있어? 우리 다함께 기도하자. 하늘에 맨날 계시는 지겨우신 우리 아부지. 이 화상들을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제발 욕에서 구하소서. 아흑흑맨. 회사 단결에 지장이 있는 이른바, 화병을 숨기며 살고 있는 정실장은 화병이 다른 사람의 정신건강에도 심각하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아주 잘 납득하고 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는 전라도의 절대군주였다. 씨발 내가 이런 말까지 안하려고 그랬는데.. 특히 조선왕조실록에는 전라도 욕이 기가 막히게 도배가 되어있는데, 원래 사전적인 정의로 따지자면, 욕은 욕설을 뜻하고, 치욕스럽고 부끄러운 일, 수고를 속되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욕은 그와 반대로 유머나 칭찬이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꾸정물들을 부드럽게 약수물로 순환시켜주고, 상대방을 즐겁게 만드는 윤활제 역할도 담당하고 있다. 욕은 정반대 위치에 놓여있는 도구이며, 잘만 요령껏 사용하면 유머와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쌓인 스트레스를 발산시켜주는 치유계 역할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뭐 이것저것 혼자하는 자웅동체다 이 말씀. 하지만, 정실장에게서 대놓고 표현되는 전라도 욕은, 스트레스 해소도 유머도 아니다. 그냥 진짜 그렇게 만들어 버리겠다는 직설적인 뜻이 포함된 아주 살벌한 말이었다. 이례적으로 전라도 사투리가 나온 적은 이번일로 두 번째였다. 잠재된 성질을 내리 누르고 살던 그가 분노를 하게 되면, 후지산도 울고 갈 신의 용광로가 터져 나왔고, 그 열기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정실장 입에서 욕이 튀어나온 그 순간, 야마가 도는 마초증후군이 어떤 것이 샘플처럼 보여주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처음 봤던 그날은 아직도 잊히지 않을 레젼드로 여러 사람들 기억 속에 남아있다. 한번 본 경험이 있는 창민은 슬슬 웃음을 쪼개기 시작했고, 같이 일한 이례 처음 겪는 일이라.. 오줌 지릴 정도로 놀란 매니저는 안절부절 순수한 동공이 심각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옆에서 창민에게 ' 참미나.. 근디가 무슨 말이야? ' 라고 참으로 순진하게 묻는 준수의 말에 여유로운 창민은 친절하게 설명을 하고 자빠져 있었고, 골치가 아파진 나는 악의 구렁텅이로 자진해서 용감하게 들어갔다. 내가 지금 누구 밑에 소속된 가수인지, 실장을 키우는 사장인지 혼동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 정실장! 정실장! 릴렉스!! 릴렉스!! 일단 저희측이 잘못한 거니까, 흥분! 흥분! 좀 제발!! 가라앉히고 우리 다시 천~천히 이야기 합시다! 예?? " 와우! 그야말로 숨겨진 인테리어 본능을 제대로 살린 정실장의 예술적 표현은 대단했다. 여기가 스튜디오인지 저 소품이 원래 무엇이었는지, 발 딛을 틈도 없이 이리저리 부셔진 조각들로 바닥은 정신이 없었고, 도박하기 좋게 최고조로 얼굴이 흥분되어있는 정실장은 투우사를 기다리는 미친소처럼 주체 못하는 숨을 씩씩 거리며 종만 작가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행여나 다시 주먹이 뻗어질까 정실장 양팔을 에워싼 사내 녀석들 4명이 곁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낑낑 거리고 있었다. 사내새끼들이 곧 울 기세다. " 씨발노무 이 어린 쉐에키가!!! 어른도 못 알아보고 주먹질이야?!!!!!!!!! 술 좀 먹여서 서로 기분 좋게 찍겠다는데!!!!!! 니 새끼가 뭔데 참견이야 참견을!!! 이 개좌식이!!!!!! 그래!!!! 또 쳐! 또 쳐보라고 개쉐키야!!!!!!!!! " 어우 씨발, 누가 노숙자를 데려왔나. 이 찌질한 술 냄새는 뭐야? B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서자, 풍기는 고약한 냄새에 절로 인상이 구겨졌고, 침대위에서 타월을 끌어안고 앉아있는 재중과 아 이제 됐다며 흥분 가라앉았으니 잡은 팔을 어서 치우라는 제스처를 정실장이 취하고 있었다. 정실장의 단단한 양쪽 팔을 잡고 서로 눈치를 보고 있던 스텝들에게 선희작가는 눈짓으로 팔을 놓으라고 지시했다. 정실장의 팔이 놓아짐과 동시에 나는 귀찮게 두 손을 올려 귓구멍을 막았고, 곧바로 엄청난 소음과 함께 다시 미친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워~워~ 씨발놈들아 줄 갖고 와! 확 묶어버리게. 욕을 어찌나 창조하시는지, 3초마다 레벨업하신다. 도대체 몇단 콤보야? " 개새야!! 아가리 닥치고 조용히 짜져 있어라앙? 눈꾸녕을 확 쑤새가꼬 먹물을 쪽 뽑아묵어불랑께!!!!!!!!!!!!! " 미친소처럼 달려드는 정실장의 질주를 막을 길이 없었던 종만작가는 결국 바닥으로 다시 복날 개 패듯, 패대기쳐지며 정말로 눈깔에 먹물이 나올 기세로 그야말로 좆터지게 맞고 있었다. 때마침 적신호 소리가 들려왔고 곧바로 정실장에게 달려갔고 뒤를 이어 들어온 창민이 함께 달려왔다. 먼저 복부를 향해 피스톤처럼 빠른 주먹을 연이어 꽂고 있는 흥분된 양 팔을 잡아 올리기 시작했고, 눈에 보이는 게 없는지 우리도 못 알아 본 채, 씨발 소리를 내며 뒤로 끌려져 나왔고, 그 와중에도 구둣발로 사진작가의 다리를 내려찍는 질기고도 잔인한 기술을 선보이고 있었다. 으악!!!!!!!!!!!! 소리가 메아리처럼 스튜디오 안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씨발, 도대체 전치 몇 주냐고. " 아, 형 이제 그만해!!! 법원 가고 싶어서 아주 안달 났지!!!???? " 창민의 뒤를 따라 들어온 매니저와 준수는 울고 있는 재중의 곁으로 갔고, 무슨 영화처럼 난장판인 스튜디오를 보고 역시 액션은 여러 사람의 부상을 일으킨다며 실내 인테리어를 신기하게 둘러보고 있는 준수와 안절부절 재중에게 괜찮냐고 수십 번을 되새김질 하듯 지겹게 물어보는 상철이 상반된 표정으로 달라붙어 있었다. 그리고 피떡으로 숨을 힘들게 나누어 쉬고 있던 사진작가는 입에 고인 피를 콰-악! 퉷! 내뱉으며 일어났고, 알콜의 기운이 엄청 나는지 아픈데 참는 척 하는 건지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자신의 카메라를 들더니 정실장 앞으로 다리를 절며 다가왔다. 순간 카메라로 정실장 얼굴을 내리 찍을 것만 같은 엄청난 살기에 정실장 앞으로 몸을 막는 네 사람과 동시에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크게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먼저 가장 이성적인 유천 어린이가 말씀하셨습니다. " 저..저기 작가님! 지금 끝내시는 게 인생에 좋을 것 같습니다만!!!!!!???? " 좀 더 침착한 창민 어린이가 말씀하셨습니다~ " 이 씨발놈이 더 맞아야겠구만!!!!!!! 카메라 안 치워!!!!!!??????? " 오줌통이 꽉 찬 아주~ 소심한 매니저 형이 말씀하셨습니다! " 작..작가님 참아주세요!! 제발!!!!!! " 그리고, 착하고.. 여리고.. 순수한.. 우유빛깔 재중 어린이가 말씀하셨습니다~ " 흐아아앙 이 씨발호로자식아!!!!!!!!!!!!!!!!!!!!!!!!!!!!!!!!!! 우리 엉아 때리지망!!!!!!!!!!!!!!!!!!!!!!!!!!!!!!!!!!!!!!!!!!!!!!!!!!!!!!!!!!!!!!!!!!!흐어어엉엉엉 이 씨발새끼양!!!!!!!!!!!!!!!!!!!!!! " 옆에서 믿을 수 없다는 듯 얼굴 표정의 변화가 일어난 정실장이 재중을 보고 있었고, 이 와중에도 섹시한 재중의 욕이 만족스러운지 낄낄 웃기 시작한 무서운 창민이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그렇다. 우리는 동방의 조증이 분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을 유쾌하게 장식하신 해맑은 준수 어린이가 말씀하셨습니다. " 으하캉하항하항하학! 호로자식이래 으하캉하항하항하학! 씨발새끼래 으하캉하항하항하학! 영웅이도 욕한다 으하캉하항하항하학! " 씨발, 쟤를 내가 왜 데려왔지? 조놈의 주댕이를 우째부까? 실시간 우뢰맨이라도 시청하는 듯 한 착각이 언습 했고, 4명이 뛰어들며 윤호의 앞을 막아서자, 허무하게도 삑사리 웃음을 날린 작가는 어이가 없단 듯이 삐져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않고 뿜어대며, 대~단~히 잘 키웠다는 듯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했다. " 아주그냥 충성심에 눈물이 다 납디다? 애새끼들을 인큐베이터에만 가두셨나. 왜들 그렇게 감싸대? 피 터지고 좆터지게 맞은 사람은 난데? 어찌되었든 간에 술 먹인 건 죄송하게 되었쑤다. 그래도 덕분에 촬영은 잘 마무리 했으니 이쯤 합시다. " 저 새끼가 술독에 빠져서 드디어 눈에 뵈는 게 없나! 뭐가 잘되었다고 마무리야 마무리는? 그리고 씨발놈아 우리 같은 애들이 인큐베이터면 다른 새끼들은 아직도 엄마 뱃속이다 인마!!! 니 새끼가 정실장 세뇌교육 현장을 봤으면, 주둥이 나불대지도 못해 알아 인마?!!!!! 아까 미친 사람처럼 대들던 작가는 어디로 갔는지, 싸울 때 어지간히 맞아도 그보다 덜 아픈 게 극도의 흥분에 의해 근육경직에 온갖 흥분물질이 분비되기 때문에 일종의 마취효과가 생긴다고 하더니만, 진짜인건지 아니면, 참 빠르게도 술이 깬 모양인지 그 말을 뒤로한 채 카메라를 들고 스튜디오 안을 애자처럼 다리를 질질 끌며 빠져나갔고, 그제야 안심이 되기 시작한 스텝들은 털썩 주저앉거나 이번 프로젝트가 존나 망한 듯 망연자실하며 널브러진 인테리어 조각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그래도 마지막 촬영은 마무리 해야 하지 않냐면서 정실장을 설득하는 선희 작가가 있었고, 그런 말은 안중에도 없단 듯이 이제야 정신이 돌아온 정실장은 4개나 풀어진 하얀색 와이셔츠 단추를 여유롭게 잠그며 말했다. " 집에 가자. " 만족스런 결과를 얻은 사람과도 같았다. 남들이 보기엔 분명한 무표정이었지만, 정실장만의 특유한 표정이 저 밑바닥에서 부터 표현되고 있었다. 어리둥절한 매니저는 재중의 물건들을 급하게 챙겼고, 의상실로 들어간 재중 또한 무슨 일이 또 벌어질까 급하게 옷을 갈아입었고, 팔짱을 낀 창민은 난장판이 된 스튜디오를 돌아보며 적자를 예상했다. 그리고 정장바지 밑단에 미세하게 묻은 파편들을 아무렇지 않게 털어내는 정실장이 있었고, 그 옆에서 ' 윤호형아 이거 언제 개봉해? ' 라고 천진난만 살벌하게 묻고 있는 녀석이 보였다.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과 이 험난한 세상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하늘에만 계시는 우리 아부지. 우쥬플리즈 땅으로 솟아줄래? § 이제야 술이 해독되는지 조금씩 붉은 반점들이 흐려지기 시작했고, 술에 취해 깊이 잠든 재중을 벤 안으로 눕히고 나온 정실장은 밖에서 아직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는 상철형의 어깨를 토닥이며 서툴지만 진심으로 미안했다는 어조로 말했다. 이건 정말 진심이었다. " 아까 때린 거 미안했다.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 오히려 자신의 잘못이 크다는 듯 급하게 손사래를 쳤고, 물고 있던 담배를 버릇없이 정실장에게 넘겨주자, 담배가 꽤나 말렸던지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정실장에게 본격적으로 물었다. " 그니까 뭐야, 이번 A버전의 사태는? " 세차를 했는지 깨끗한 벤에 기댄 채 삐딱하게 서 있는 창민은 비아냥거리듯 낄낄 거리듯 말했지만, 틀린 구석 하나 없이 정확한 말들뿐이었다. 눈치도 존나게 빠른 새끼. " 정실장님이 언제 우리가 싫다는 거 억지로 시키는 거 봤어?? 왜이래 아마추어 같이. " 그제야 멍청한 두뇌에 둔한 피가 흐르기 시작했고, 허무해진 지하 주차장이 크게 울리도록 나는 기립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와우! 브라보!!!!!! 아직까지도 레전드로 남고 있는 그 날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데뷔를 하자마자, 스타덤에 오르기 시작한 우리들에게는 인기와 비례하듯 더러운 스폰서들이 원하지 않아도 붙기 시작했고, 주식을 뒤흔드는 세력으로 인해 정실장은 밤마다 곤욕을 치러야만했다. 그러다가 정실장 모르게 국회의원인지 존나 까마귀같이 생긴 부인이 있었는데, 기분 더럽게 까마귀한테 불려가서 여러 가지 훈계를 듣고 있는 도중에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한 나는 그 호텔을 나가려했고, 회사의 이름을 거론하며 협박하는 까마귀 부인 앞에 허망해진 나는 좆됐다며 씨발 씨발 거리고 있는 그때 호텔문이 쾅! 열리면서 난데없이 나를 밟기 시작한 정실장은 이미 야마를 잃은 뒤였다. 그런데 존나 교묘하게도 얼굴은 안패는거 있지??????????? 두더지처럼 잘도 짓밟더라고. 왜 맞는지 조차 이유를 몰라서 존나 악을 쓰고 소리쳤는데. 옆에서 멍하니 서 있던 그 부인한테 이렇게 말하더라. 「 어디서 겁대가리 없이 정신을 놔브럿냐? 호랭이 씨버갈련아!!!? 내가 웃겨브냐!!? 네년이 뭐라고 내새끼들 왜 건드려!!!!!!!!? 」라고. 눈물 나게 아픈데 눈물 나게 고마워서 낄낄 거리면서 바닥에서 웃고 있는데 정실장을 말리러온 사람들이 그제서 올라왔고, 나를 발견한 창민이 혀를 차고 있었고, 까마귀 부인을 경호하는 새끼가 인정사정없이 정실장한테 덤벼대는 통해 제 2차 대전이 일어났었다. 존나 피떡 칠한 경호원을 끝까지 발로차면서 살벌하게도 이렇게 말하더라. 「 씹어갈 놈아, 뉴스에 나오고 싶으면 고소해라 새꺄!!!!!!! 척추를 콱!!!!! 접어블랑께!!! 」 " 어우 소름 돋아. 내가 진짜. " 옆에서 이제야 내용을 파악한 매니저는 머리를 긁적이며 정실장을 위대하게 바라보았고, 정실장은 마지막 필터를 깊게 빨며 담배를 툭 버렸다. 이미 꺼진 불씨인데 준수가 한 번 더 정확하게 밟아주는 센스를 선보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오늘의 일이 꽤나 만족스러운가 보다. 에라이 AN2 망한 건 당신이 역대 최고일거다?!!! 닭살 돋게도, 정실장은 사전에 종만 사진작가의 촬영 버릇 습관을 미리 파악했고, 더러운 플레이와 종종 모델들에게 억지로 술을 먹이고 촬영하는 악취미를 이미 알고 있었다. 분명히 재중에게 술을 먹이고 촬영을 하게 될 것이, 예상 적중했고, 재중이 마지막까지 찍기 꺼려했던 상대방과의 피날레씬만 피떡으로 마무리하는 철저한 계산까지 포함되어있었다. 어차피 캔슬할 수 없는 잡지, 재중의 단독 컷으로 딜을 하려고 크게 작정했고, 정실장이 원하던 그 방향대로 일은 그렇게 일단락 됐다. 옆에 서 있던 준수는 담배 냄새가 꽤나 지독했던지 가득한 연기를 흩어지게 여러 번 손짓하며 정실장과 내게 아무도 훈계하지 않은 건강을 내세우며 먹히지도 않은 잔소리를 새침하게 내뱉었다. 안 먹히거든요? 꼴초되서 죽어도 좋거든요? " 담배 많이 피면, 나중에 발기 못한다? 너 조루되면 어떡할래? " 정실장과 창민은 어이없단 듯이 웃고 있었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일관하는 준수를 보자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페이스에 휘말리는 저능아가 있었으니……. " 야야 진짜?? 발기부전 금방 온대?? " " 응. 고추도 쪼그라들어서 빨리 작아진대. " " 진짜아???!! 조루짓 하다 발기가 안 되는 것도 짜증나는데.. 거기다 쪼그라들어??? " " 응. 그렇다니까? " 옆에서 낄낄 웃는 창민과 어이없다는 듯이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날리는 정실장과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울상이 된 김준수의 듬직한 PET. 나 믹키유천은 의외로 겉만 멀쩡하지 속은 순진하다 이거다. " 그런데 영웅이 술버릇은 왜 그래? " " 무슨 술버릇? " " 아니, 아까 전에 내가 계속 눈물연기 좋았다고 이것저것 칭찬해주니까, 아…….겨? 이러고 뭐라고 계속 중얼 거리고... 또 입술이 왜 이렇게 빨갰냐고 혀 좀 깨물지 말라고 하니까, .... 말이여.. 가슴이 말이여..... 이것이.. 거시기항게..... 아~모르것어~ 라고 말하는데 난 영웅이를 정말 모르겠어. 한국말이야? " 으하하하.. 갑자기 정실장이 소리 내어 웃었다. 아 씨발 내 심장아.. 정실장이 소리를 내고 웃었다고. 아무리 웃긴 거 보여줘도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살벌하게 째려보는 정실장이 웃었어. 씨발. 정실장이 웃었으니 심창민은 지가 뭘 하겠어!? 기분 나쁘게 한쪽 눈 찡그리고 울고 있지......... 다들 예쁘진 않지만, 그래 웃는 건 좋은데, 우리 좀 같이 웃을 순 없어? 왜들 그렇게 제멋대로야? § 2009년 2월 영웅재중 표지 AN2 잡지가 우리들의 예상을 뒤엎고 역대 매출 1위를 달성시켰다. 20분 만에 완판도 어이없어 죽겠는데 재판이 10차까지 이루 졌다는 사실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여전히 고공행진을 선보이고 있는 2월호는 역대 사상 가장 수위가 낮은 컨셉이었지만, 매출은 줄어들 생각이 없었고, 잡지의 파동으로 그룹의 몸값과 기획사의 주식이 심하게 폭등하는 등 AN2효과를 두둑이 받고 있었다. 2월 달 잡지가 발매 되자마자, 잡지로 몰려든 우리들은 표지와 함께 실린 사진들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고, 없던 두통도 생긴 모양인지 정실장은 관자놀이를 지끈 누르며 그 문제의 종만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쩐지 새끼가 다리를 질질 절면서도 씨익 웃고 가더라? 나는 처음에 그냥 좆병신인줄 알았지. 술에 찌든 허수아비 노인네인줄 알았는데, 찍힌 사진 보자마자 그냥 냅다 기립박수를 쳤다니까? 정실장과 스튜디오에서 그 난동을 부릴 때, 한번 미쳐본 사람은 정말로 다른 건지 똘아이 직업정신처럼 찍어댄 둘의 투샷이 표지가 되고 내용을 채웠다 이말이다. AN2 표지를 장식한 사진은, 정실장에게 팔을 벌려 안기고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나체로 매달린 사진이었고, 하체는 아슬아슬하게 정실장의 몸으로 인해 가려져서 교묘하게도 안보였다. 접사의 초점이 재중에게로 향해 있어서 다행인지 불행인지 정실장의 얼굴은 공개가 되지 않았으며, 그 둘 투샷 뒤로 아주 희미하게 찍힌 예정된 남자 모델은 마치 삼각관계의 컨셉처럼 잘 어울려 찍혀있었다. 마치 정실장이 입고 온 노타이 흰 티셔츠는 남자와 소년의 사랑을 일컫는 자극적인 충동 피사체 역할로 더 없이 충분했다. 특별 코너에 장식된 사진들은, 일전에 재중이 단독으로 찍은 순수하지만 강렬한, 섹시하지만 청순한, 아직 덜 자란 소년의 성장통을 보여주는 컨셉들로 채워져있었고, 마지막 장에는 기가 막히게도 재중의 턱을 잡고 혀를 옭아매는 정실장의 아찔한 뒷모습과 약간의 옆턱선에 눈을 감은 채 양쪽에 눈물이 흐르고 있는 절묘한 컷이 실려 있었다. 애틋한 상대를 기다린 소년의 애절한 표정과 더불어 아슬아슬하게 초점이 흐려져 정확하게 보이지 않은 정실장의 옆얼굴은 많은 이로 하여금 모델에 대한 궁금증으로 유발 시켰고, 점점 미스터리한 모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집중적으로 관심을 쏟아 붓기도 했었다. 더불어 재중의 나체를 교묘히 안아들어 방향을 카메라 앵글 쪽으로 돌린 정실장의 얼굴은 누군지 모르게 코부터 시작이 되었고, 정실장 품 안에 눈물을 흘리며 안긴 재중의 아름답지만 관능적인 몸은 아주 교묘한 각도로 아슬아슬하게 가려져있었다. 그야말로 상상력이 가져다주는 보일 듯 말듯 교묘한 컷들은 많은 사람들의 애를 타게 만들었고, 주제 그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었다. 종만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던 정실장에게 되돌아 온 말은 단순하지만 정확했다. 「 고소를 하면 했지, 제가 왜 거기서 맞았겠습니까? 전치 8주. 모델 값이라고 생각하죠. 」어안이 벙벙했지만, 어떤 것도 제시할 수 없었던 정실장은 절대 모델의 정보를 유출하지 말라는 중요한 당부와 함께 화려하고도 무식했던 AN2 촬영 에피소드가 너도 나도 좋게 끝났다. 한 가지 의심스러운 점을 굳이 적어보자면, 과연 그 모델이 믹키유천이나 최강창민이었으면 과연 정실장은 레전드 2탄 사투리 투혼을 벌였을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심창민의 말을 빗대어 말하자면, 「 뭐해? 당장 벗어. 넌 프로야. 라고 말했었겠지. 」멤버 차별하는 기획사는 왜 망하지않는걸까? 의문이었다. § AN2 효과로 조금 줄어들었던 스케줄이 대박으로 늘어났고, 하루에 수면시간 3시간을 채워가며 이리저리 전국 노래자랑처럼 싸돌아다니는 이 상황에서 몸은 지치고 바쁘고 힘든데.. 마음은 심심해 죽겠고 입은 근질근질 거리고, 누가 등 좀 효자손이라도 빡빡 시원하게 긁어줬으면 좋겠고 그렇다. 그 이후 스케줄이 없을 때마다 녀석의 집으로 가서 종종 뒹굴다가 나온다거나, 집이 비어있어도 뒹굴다가 나온다거나, 무언가 숨겨놓은 나만의 비밀장소처럼 굉장히 편안한 장소로 변해가고 있었다. 낯선 곳에 누워있으면 초인종이 울릴까 전화가 울릴까 초조해서 잠도 안 오는데 이상하게 녀석의 집만 들어가면 나른해지고 머리가 무거워지고 눈 커플이 어찌나 역도스러운지 놀랄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어떤 것 보다 이 집을 찾게 되는 이유는 부정하지 않겠다. 김준수 때문이었다. 1시간 마다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하고 녀석의 습관들 버릇들까지 이제는 술술 입으로 말할 경지에 다다랐다. 기본적으로 녀석은 TV를 안 봤다. 그리고 녀석이 유일하게 보는 프로는 공중파 방송 3사에서 나오는 개그프로그램 3개가 전부였다. 어느 날 KBS 개그 프로그램에 빠진 녀석은 투니버스를 1시간 내내 재생하면서 즐거워했고, 그러다가 반가운 인물이 나왔는지 TV를 가리키며 내게 말했었다. 「 장동건이다!! 진짜 웃겨! 」난 내 귀를 의심했고, 무슨 장동건이 개그프로그램에 나와? 하면서 TV를 보았는데 아니 글쎄, 장동민이 고등학생으로 나와서 고막을 찢어 놓을 듯한 괴성을 지르는 모습이었다. 난 어이가 없었지만, 스멀스멀 떠오른 기억 중에 하나가, 녀석을 알게 된 계기였던 팬사인회에서도 그런 적이 있었다. 강호동같은 경호원에게 장동건이라고 말했었지. 그때의 생각이 나자, 갑자기 존나 웃겨지는 거다. 이미 프로그램은 종료되었는데 그제야 내가 펄펄 날뛰며 웃기 시작하자 녀석이 TV를 리모컨으로 시크하게 확! 끄더니 이렇게 말했다. 「 넌 웃긴 것도 되새김질 하냐? 작작 좀 해라? 우리 샤키는 똑똑했거든? 」씨발. 장동건을 장동민으로 아는 주제에 콧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내가 못 올라갈 나무인양 나를 하찮게 여겼다. 나 사다리 살 돈 있거든요? 그리고 녀석은 좀처럼 밥을 잘 챙겨먹지 않았다. 내가 챙겨주면 귀찮은 척 하면서도 밥은 다 비웠고, 오전에 통닭을 시켜먹는 개념상실 모험을 즐기는듯했다. 어느 날인가는 실기시험으로 학교에서 밤을 샌다고 전화하지 말라던 녀석이 대뜸 전화를 하더니 신나게 이렇게 말했다. 「 야! 니 팬클럽 누나들이 나한테 피자랑! 통닭이랑! 빵이랑 야식거리 학교로 배달시켜줬다?? 」어이가 없지만, 어깨가 으쓱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제 알았냐? 나 씨발 팬 존나 많다고. 나 슈퍼스타라니까? 하지만, 「 근데 쪽지 보니까, 준수야 누나 통장 많다? 그런데 돈 쓸데가 없어.. 우리 친해질까? 이런 거랑, 준수야 우리 유천이랑 셋이 좀 볼까? 이런 것도 적혀있어 」 누님들.. 제발 좀.. 통장 시리즈는 이제 그만 넣어주세요... 그래도 녀석이 밤새는 동안 배고플 걱정은 없겠다 싶은 마음에 준수까지 챙겨주는 팬들의 마음이 고마운 순간이었다. 역시 그 스타의 그 팬이라는 말씀이다! " 야 나 바빠, 끊는다. 전화 하지 마. " 지금과 같은 상황은 어이가 상실해서 헛웃음이 나온다고 설명하련다. 녀석은 나쁜 남자의 모든 기질을 갖고 태어난 게 분명했다. 나를 PET으로 주입시키며, 예쁘다. 착하다. 장하다. 라고 칭찬을 자신의 믹키로 돌아갈 때면 자주 해주면서, 헤어지면 연락이 전혀 없다. 술 마시자고 하면 안 나오고, 통닭 사준다고 하면 나온다. 왜? 솔직히 나는 정이 금세 들어서 하루종일 같이 뒹굴다가 스케줄 하러 가면 괜히 뒤 돌아보게 되고, 준수집에 놀러가고 싶어지고, 유치하지만 같이 뛰어다니고 싶고, 오늘 뭐 하고 지냈는지 하나하나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솔직히 있다. 그것도 많이. 그런데 녀석은 매번 바빠 아니면 내 연락을 무시했다. 3일 내내 내 전화를 무시하던 녀석이 방금 오랜만에 전화를 지가 먼저 해놓고는 야 나 바빠, 끊는다. 전화 하지 마 라니? 나만 친구되어서 안달난것 같은 기분에 금세 풀이 죽었다. 그리고 나 다 봤다고. 창민이한테는 말 늘어지는 소리하면서 힘들다고 칭얼 거린 거. 이 씨발새끼 너도 사람 차별하지 마!!!!!!!!!!!!!!!!!!!!!!!!!!!!!!!!!!! 아무리 재수 없는 똥개도 집 나가면 다들 걱정해주고 그런 거거든??? 나도 찾으면 친구 많아 새끼야. 어? 그런데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뭐야 쥐었다가 놨다가 너 뭐야?? " 야 믹키! 너! " " 어.. 어?? 왜!!! 내가 뭐!!! " 생각해보니 승질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난 이상하게 얘만 만나고 돌아오면 목이 쉰다. " 나도 네 소식통 전해주는 누나들 널려있거든!!? 듣기 싫어도 너 소식 다 알거든!!? " 인마, 나도 네 소식통 전해주는 누나들 널려있거든? 나 너 뭐하고 돌아다니는지 다 알거든? 학교 → PC방 → 치킨 집 → PC방 → 학교 → 치킨 집 " 난 헤프게 씨 뿌리는 강아지 싫어! " 제발 주어 동사 좀 제대로 써줄순 없어? 너 초등학교도 검정고시 출신이지? " 알아듣게 말해!! " 뭔가 삑삑 소리가 들려왔고, 핸드폰으로 무언가 확인하는 것 같았다. " 누나들이 말해줬어! 나랑 친해지고 나서 유흥을 안 즐긴다고 망가지는 애 인생 하나 구제해줘서 고맙다고, 스캔들 안 나게 옆에서 잘 보호해달라고! " 누나들... 아직 거기에 있어요...? 그런 말들은 제발.. 마음 속.. 마음속에.. " 나 요즘 착하게 돈 벌고 있거든요?? " 진짜다. 나를 잘 아는 팬처럼, 술은 먹어도 유흥 즐긴지 오래고, 성욕 분출한지도 오래고, 나야말로 통장 여러 개에 돈이 쌓여있다고. 제발 쓰고 싶다고. " 한번만 더 소문 이상하게 나면, 중성화 수술 시켜버릴거야 믹키!!!!!! " " 개새끼야 니가 뭔데 내 고추를 잘라!!!!!!!!!!!!!!!!!!!!!!!!!!!!! " 툭, 띠띠띠 씨발새끼 또 먼저 끊었어. 그런데 여기 대기실이었다. 하.하.하. 진짜 오줌통 비우러 나가야겠다. 하.하.하. " 하.하.하. 날씨가 참 좋지요? " 백댄서가 무표정으로 말했다. " 밖에 비와요. " 씨발새끼는 안내리다가 오늘 내리고 지랄이야!! § " 당신이 믹키유천이면, 저는 티에리 앙리씨가 되겠습니다. " 잘못 전화했나 싶어서 핸드폰 액정을 바라보았고, 번호도 이름도 김준수 맞았다. 아 달라진 점은 어느새 특수반 이름이 타의로 인해 「주인님」으로 나 몰래 바뀐 사실을 빼고 말이다. 분명 맞는데 이 새끼는 뭐야? " 넌 누군데? " " 저 말입니까? " 그럼 너 말고 누가 있냐고. " 그러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 아 진짜 짜증나! " 아 씨발, 믹키유천이라고. 김준수 바꿔. " 옆에서 김준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대방이 어이없단 말투로 말했다. ' 야 미친놈이 자기가 믹키유천이래? ' 그러자, 준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철수야 그냥 끊어. ' 뭐야, 잊고 지낸 개철수 목소리였다니. 얼굴은 준수 핸드폰 속에서 보았지만, 몽타주가 아주그냥 전형적인 찌질남 유형이더만, 마르고 안경 쓰고! 재중이 팬들은 그래도 나름 얼굴이 괜찮은데 쟤만 예외였다. 내가 사심으로 뒤에서 까는 거 아니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고. 진짜래도? 그런데 나 솔직히 지금 개철수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진심으로 상처받았다. 잡상인처럼 그냥 끊어 라는 시크한 억양이 계속 짜증나게 귓바퀴에서 맴돌았고, 이게 보자보자 하니까 날 진짜 요강취급도 안 해줬다. 내가 이렇게 생겨먹어도 정도 많고 마음도 약하고 그런 사람인데. 이젠 안녕이다. 니 뿡이라고 새끼야. 내가 다시는 너한테 전화하면 씨발 황비홍 코스하고 짱꼴라 입문한다 새끼야!!!!!!!!!!!!!!!! 그런데 더 존심이 상하는 건 미안하지도 않는지 전화가 없었다. 그래 철수한테 말하고 싶지 않은, 동방신기의 믹키유천이랑 친하다는 소리를 보물처럼 숨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거야. 그래 그럴 수 있어. 근데 전화가 없었다. 안 해! 씨발 너랑 친구고 뭐고 간에 이젠 안한다고! 껒어!!!!!!!!! 대기실에서 씩씩 거리자 창민이 툭- 치면서 이죽거렸고, 진지하게 오늘 건들이면 막내고 뭐고 간에 네 입술 물어 뜯을 거라고 윽박질렀더니 입술을 가리며 도망쳤다. 개새끼 이럴 땐 존나 빨라요. 반나절 이상을 녹화를 해야 하는 프로그램에 나왔다. 스타의 친구를 소개하란다. 니미. 어떤 이가 정말 친한 친구를 이 프로에 내보낼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냥 옆에 붙어있는 잘생긴 애 부르기도 그냥 싫고, 그냥 저냥 알고지낸 예쁜 누나 부르기도 싫고, 그냥 상철형을 불렀다. 형이 알고 보면 정말 진국이다. 생김새와 다르게 정말 순수하고, 또 무엇보다 진실한 사람이었다. 녹화가 이루어졌고 주머니 속에서 울리지 않은 핸드폰을 노리고 있을 때였다. 옆에서 녹화가 재밌는지 의외로 하루 종일 싱글벙글인 창민을 툭 치자, 쳐다봐주지도 않는다. 그래 니 친구 많아서 좋겠다 새꺄! 여자 출연진의 친구들은 대충 분야를 나누자면, 3종류가 정확했다. 애교가 몸에 밴 짜증나는 여자, 피죽도 못 먹은 몸매로 찌질한 사연이 굉장히 많아 보이는 귀찮은 여자, 마지막으로 나이가 많아 위로해주고 싶은 너무 쿨한 여자. 골고루 섭취하려는 모양인지 짜고 친 고스톱처럼 각기 달랐다. 수줍음이 많은 상철형은 예상외로 유머감각이 뛰어났고, 말끝마다 내 이름을 불러가며 꼭 미션 해야 하냐고 투정을 부리기 일쑤였다. 안 좋았던 기분이 형 덕분에 좋아지는 순간이었다. 미션을 통과한 형이 올라왔고, 마지막으로 창민의 친구가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친한 친구를 데려오면 솔직히 자기 얼굴에 먹칠하는 거 뻔히 알 테니까 뭐 대충 친한 연예인 되고 싶어라 하는 지인정도 오겠구나 싶었다. 녹화되는 프로그램을 잘 알고 있는 시민들은 그날따라 더욱더 많이 몰려있었고, 인파가 가득한 광장 그 가운데에 창민의 친구가 도착했다. 모니터를 보며 급반가워하는 창민의 입꼬리는 내려올 생각을 안했고, 이상하게 적신호가 느껴지는 촉이 느껴지기도 했었다. 에이 설마. 저 새끼가 미치지 않고서야. 에이 설마. 곧바로 창민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래.. 걸었단 말이지.. 그런데.. 아 뒷골.. 아 내 뒷골.. 학생 존나 차별하는 그 악덕 선생의 목소리!!!!!!!!!!!!!!!!!!!!! 공포의 학교종이 땡땡땡이 어서모이자고 슨생님이 기다리신다고 청량하게 울려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야. 그래 김준수 같은 종속들이 어디 뭐 한명이겠어? 여러 명이 저런 취향 다운로드 하니까 올려지고 뭐 그런 거 아니겠어? 그런데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들리는 음성에 창민을 사정없이 노려보기 시작했고, 내 눈을 피해 눈을 찡그리며 대폭소 하는 창민이 내 위로 날아다니는 순간이었다. " 여보째요~~ 으하캉하항하항하학! 참미나 너 어딧써!!! " 준수야.. 나도 있다? 신난 듯 택배 온 표정 저리 치워줄래? 누구는 열불이 터지는데 여기가 어디라고 거기 사람들 많은 곳에서 헤프게 웃고 있어? 너 방송 타면 안 돼. 너 웃는 거 방송 타는 거 안된다고. 나 그거 존나 싫다고. | 나를 쥐었다, 놓았다, 그때 왜 나한테만 그렇게 냉정했어? | My Melody w. 킵 * * * 「 당신 나이가 몇 살입니까? 」우습게도 창민을 처음만난 날 내게 뱉은 첫 대사였다. 눈빛은 자기보다 어리면 때려죽일 상이었고, 솔직하게 내 나이를 묻기도 전에 나보다 형 인줄 알았다. 남보다 앞서가는 뛰어난 노화발육상태는 녀석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창민은 한국 남자들의 전형적인 ' 민증 먼저 까세요 ' 유형인 반면에 나와 재중은 기획사의 족보를 한순간에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릴 만큼 나이서열에 있어서는 심각하게 둔한 타입이었다. 창민은 늘 첫 만남 앞에서 상대방의 나이를 묻고 나서 인연이 시작되었다. 가급적 선후배들과의 자리는 미꾸라지처럼 잘도 피해갔고, 대부분은 동급생들과 무리지어 어울리곤 했었다. 그런 계산적인 통계에 비해 재중과 나는 왜 저 녀석의 예외 값으로 처리가 되었는지에 대해선 아직까지도 의문이었다. 데뷔 초 당시에 호기심 많은 대중들은 야금야금 얄밉게 쏟아지는 우리들의 과거 사진만큼이나, 막내가 왜 리더냐는 질문들을 자주 하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들이 소심하게 뱉을 수 있는 대답은 이것뿐이었다.「 창민은 저희를 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일적으로 만난 사이? 」흔히 말해서, 우리에겐 찬물에도 위아래가 없었고, 똥물에도 파도는 역시 없었으며, 소똥에도 계단은 지랄 맞게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 사약에는 위아래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 형님이 먼저 죽으세요. ' 그렇다고 그런 부분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귀찮은 일을 맡아준 막내에게 씨발스럽게도 고마움을 느끼는 둔한 형들임은 분명했다. 가수라는 직업이 나에겐 처절한 밥줄이었다면, 창민에는 일개 취미생활에 불과했다. 처음에는 자세한 사항을 듣고서 ' 아.. 이 좆같은 세상에는 진짜. 이런 엄친아도 존재하구나.. ' 새삼 하늘에만 계시는 우리 아부지께 죄송스럽지만, 쌍욕을 날리기도 했었다. 이상하게 하느님께 욕하면 안 믿어도 듣고 있을 것 같아서, 말을 가리게 된다. 진짜 웃긴 심리다. 다른걸 다 떠나서 불과 데뷔하고도 1년 후에 알게 된 엄청난 사실이었다. 그것도 정실장의 입으로 들었지 녀석에게 들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언젠가 한번은 존나 짱꼴라 같이 생긴 원래 기획사 사장이 있었는데, 그 개새끼가 정실장을 배신하고 가오 없이 마카오로 새벽도주를 한 적이 있었다. 그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한 순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린 이미 그때 데뷔가 결정된 후였고, 많은 사람들의 기대 속에 알을 까기 전이란 말이다. 그런 상황에 사장 새끼가 돈을 갖고 튀었으니 어느 누가 헤실헤실 지하 바닥에서 연습을 하고 있겠냐고. 그리고 다른걸 다 떠나서, 그렇게 망연자실한 정실장의 얼굴은 이례적으로 본적이 없었다. 그만큼 회사의 상황은 다음날 통째로 사라질 만큼 끔찍했었다. 그런데 아니 웬걸? 다음날 어디서 혜성같이 나타났는지, 이름 없는 수호천사가 나타나서 문제의 지분을 아무런 조건 없이 전부 매입을 했다.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없어진 회사가 다시 생겨난 격이었다. 그 매입의 당사자가 창민인줄도 모르고, 우리들은 기죽은 어깨를 다시 활짝 피고 더욱더 연습에 매달릴 수 있었다. 언제가 인터뷰에서 재중에게 이런 질문을 했었다. 최근에 들었던 악성 루머 중에 가장 믿을 수 없는 소문은 무엇이었나요? 라는 질문에 재중은 한치의 고민 없이 정말로 어이가 없는 루머인 마냥 비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었다. 「 창민이가 감기에 걸렸다는 소문이요. 이거 정말 웃기지 않나요? 」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일반인들에게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대답이었지만, 우리들은 백발백중으로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야말로 대단한 악성루머가 분명했다. 창민은 정말로 가수를 취미로 삼고, 본래의 직업이 따로 있는 투잡에 능한 무서운 다중아였다. 창민의 아버지는 국내 최대의 제약그룹의 사장이었고, 그 밑에서 창민은 국내 최초로 준공된 제약 연구소에서 가장 총명 받는 연구원이었다. 언제나 감기에 시달려 골골대는 우리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 입 닫아요. 감기에는 약도 없거든요? 」누가 제약 연구원 아니랄까봐, 일하던 도중 스텝들이 아프거나, 주변 지인들이 아프면 007 가방처럼 껴안고선, 험난한 스케줄을 함께 동행하고 있는 소중한 약들을 꺼내서 즉석 제조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벌써부터 약에 의존하는 어린청년의 시선으로 녀석을 안타깝게 바라보았지, 녀석이 이 약을 연구하는 연구원인줄은 아무도 몰랐다. 이 사실은 아직까지도 셋만 아는 고급 비밀정보이기도 했다. 이 사실을 알자마자, 나는 신기하고 세상에 이런 일이.. 라는 것을 다 떠나서 존나 어이가 없는 거였다. 그 더운 날에도 에어컨 없이 하루에 10시간씩 연습했었고, 그 추운 날에도 난방기구 하나 없이 두꺼운 파카 입어가며 연습을 빠트리지 않았었고, 무엇보다도 존나 배고파도 물 먹어가며 연습을 했었다. 그 무리 속에서 창민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이렇게 평생 쓰고도 남아도는 기업의 아들로 그것도 외동아들로 자라고 있으면서 그때는 왜 같이 굶고 다녔냐고 기가차서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창민의 말은 간단하지만 정확했다. 「 나한테 돈 꿀까봐. 돈 갖고 마음 사는거 형들한테는 하기 싫었어요. 」개같이 흥분된 내 아가리를 너무나도 쉽게 채워주는 말이었다. 창민은 자신도 모르게 제약 연구원 직업병처럼 사람들의 반응을 분석하는 버릇이 있었다. 연구원들이 개발한 약을 투여하면 세 가지의 분류로 나누어진다고 했다. 이를테면, 반응하는 사람과 반응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강하게 반응하는 사람들로 묘사가 되었다. 오늘날까지도 이 분야의 딜레마는 약을 시도해보기 전까지는 의사들도 환자들의 반응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이제는 약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분석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를테면 김준수 같이 반응이 재밌는 분류의 인간들을 말이다. § 나는 좀처럼 창민이 이렇게 호기심 가득 반짝 거리는 눈을 본 이례가 없었다. 이 얼어붙은 땅에서도 물 만난 물고기마냥 반은 미친 새끼처럼 보였지만, 그 반짝이는 눈빛 속에 김준수를 분석하는 일이 마치 신기한 약을 새로 개발한 것처럼 굉장히 들떠 보였다. 사람들과의 인맥 혹은 인연에 대해 아주 까칠하게 자신만의 선이 분명한 창민에게 녀석은 굉장히 빠른 시간을 타임머신처럼 건너뛰어서 정확하게 창민의 내 사람들 안 영역을 쉽게도 침범했다. 아무리 밖에서 나오라고 불러도 숙소에서 발걸음을 떼지도 않은 창민이 준수가 부르면 나오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창민에게 쌓은 신용이 좆같아서 허무지기 일쑤였지만, 그런 창민의 까칠한 인맥관리의 경계를 모르는 준수는 아무렇지 않게 나와준 창민과 통닭을 뜯어먹었고, 유치한 대화 하나에도 잘 받아주는 창민을 굉장히 좋아했다. 그래서 그게 싫은 건 아니었는데 녀석을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다 저렇게 복잡한 것도 느슨하게~ 어려운 것도 쉬운 문제로 풀어 나가는 녀석의 마력이 생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뭔지 모를 어색한 마음이 안에서 자꾸만 꿈틀 거렸다. 많은 인파 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녀석의 옷차림은 굉장히 나른한 봄을 불러오기에 적당했다. 의상으로 보아선 프로그램을 나오기 위해 차려입은 것도 아니었음은 물론이거니와 갑자기 추워진 날씨도 전혀 몰랐는지 그저 집안에서 간편하게 입을 수 있는 캐주얼한 복장이었다. 마른 허벅지 라인이 고스란히 보이는 자신의 체형에 딱 맞는 베이지색 면바지 위에 아이보리색의 길지 않은 스웨터를 입었고 그 속안에는 달랑 흰티셔츠만 받쳐 입고 있었다. 거기다가 신발은 스니커즈에 맨발이었다. 무슨 생각으로 이 추운 날 저렇게 입고 나왔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지만, 그냥 동네 마실 나온 꼬꼬마나 다름없었다. " 이야~ 대박. 그야말로 오늘은 전쟁인데요? 누나 팬들 난리 나겠는걸요~?? " 녀석의 모습이 한가득 보이는 모니터 앞으로 진드기처럼 몰려든 MC및 게스트들은 녀석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좀처럼 굉장히 특이한 게스트가 나온 마냥 녀석의 행동 하나 하나, 말투 하나하나에 박장대소를 하며 녀석의 귀여운 행동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예뻐하느라 분주해 보이기 까지 했다. 그런 사람들 뒤에서 팔짱을 낀 채 대단한 스타를 발굴한 매니저처럼 모니터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창민을 보자 저절로 욕이 나왔다. 내가 쟤한테 키워봐서 아는데 넌 쟤 키울 그릇도 안 되거든 새꺄?!!! 눈 좀 치워줄래?!!! 김준수 같은 유형은 스타킹과도 같은 프로그램에서 꼬마들이 나오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고 없는 돌발행동들을 아무렇지 않게 일삼았고, 편집을 꼭 해야만 하는 말들을 순식간에 내뱉기도 했었다. 그야말로 녹화하는 내내 긴장을 늦추지 않은 AD들에게는 가장 난해한 녹화가 아닐 수 없었다. 쟤 정말 놀러왔다. 녀석의 미션은 상대방을 골라서 축구공을 뺏기지 않기였고, 녹화를 하는 중간 중간 준수를 알아보는 오빠라고 부르기엔 차마 양심에 찔려 스스로 누나임을 먼저 밝히고 다가오는 팬들에게 둘러싸이기도 했었고, 그 팬들에게 받은 간식을 그 자리에서 뜯어먹는 방송을 개떡으로 취급하는 여유로움까지 선보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런걸 다 떠나서 축구대결의 상대를 7살 꼬마로 정한 녀석의 정신상태가 상당히 의심스러웠고, 처음에는 준수를 낯설던 꼬마도 어느새 축구공 하나로 친구가 될 기세로 땀까지 흘려가며 준수 발치에 굴러다니는 축구공을 뺏기 위해 사방을 뛰어다녔다. 어느새 광장안은 두 꼬마 녀석의 기차 화통 삶아먹을 기세로 소리를 꺄아아아학학!!! 질러가며 축구공에 집중했고, 미션이 통과되었다는 말도 무시한 채 열정적인 축구는 계속 이어졌다. 급기야 나중에는 AD가 광장으로 달려가서 준수를 잡아 세우려고 했고, 그런 AD도 미션 상대방으로 착각한 녀석은 그 이후로 오랫동안 축구 삼매경에 빠지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짱구도 울고 갈 못 말리는 깡이었다. 훌라! 훌라!다 씨발. " 어? 야. 너는 여기 왜 있냐? " 너야말로 왜 여기에 있는 건데??? 씨발. 침착한 표정관리가 녀석이 등장 이후로 계속 안됐다. 억지로 웃으려고 노력은 하고 있는데 이미 심신은 크게 뒤틀릴 대로 뒤틀려졌고, 여태까지 나에게만 무심했던 녀석의 모든 행동들이 하나하나 아주 오래된 필름처럼 지나가면서 괜스레 치밀어 올라와 화가 감당이 안 되는 순간이었다. 다시 꾸역꾸역 좋은 생각들로 머릿속을 채워가면서 힘들겠지만, 억지로 녹화를 참여 하려고 하는데 이 새끼가 도와주질 않았다. 창민의 친구라고 소개한 MC가 민망할 정도로 등장을 하다가 중간에 앉아있는 나를 발견한 녀석이 태연하게 우연히 동창생 만난 말투로 내게 인사를 건넸고, 이런 특이한 행동들도 굉장히 재밌게 연출이 되었는지, 크게 웃음이 터진 MC가 녀석을 직접 손으로 끌고가서 본격적으로 소개를 시켰다. 금세 치매 걸린 노인네마냥 내 존재에 대해 무감각해진 녀석은 아무런 문제없이 녹화를 이어가기 시작했고, 아까부터 어두워진 표정관리가 힘들어진 나를 발견한 상철형은 걱정스럽게 몸이 안좋냐고 물어봤고 그럴 때마다 대답도 하기 싫어져서 입을 꾹 닫고 고개만 저어댔다. 씨발 나 왜 이러지? 그때 갑자기 내 옆구리를 찌른 창민이 복화술로 말했다. " 말도 없이 준수형 불러서 화났어요? " 뭔가 받아칠 마음마저 동났다. 그냥 고개만 저었다. 아니. 그런 거 아니야. " 뭐야? 상태가 왜 이래요? 적응 안 되니까, 이쯤에서 상스런 욕 좀 날려줘. "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여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옆에서 당황해 하는 창민의 안절부절못한 모습이 느껴졌다. 아 그냥 녹화고 뭐고 간에 집에 가고 싶다. " 유천형~ 나 욕 듣고 싶다니까? "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가득담긴 녀석이 오뚝이처럼 다시 복화술로 내 신경을 건드렸고, 마지못해 귓속말로 녀석에게 아름답고 상스러운 내 보이스를 선물했다. " 이 씨발개새끼야 좀 닥쳐줄래? " 정말 빠른 반응이었다. 대량으로 보약을 처먹은 사람처럼 만족스러운 모양이었다. 기운이 아주그냥 펄펄 솟아오르나 보다. 한쪽 눈을 찡그리며 웃는다. 그리고 그 순간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아서려던 찰나에 내 눈을 뚜렷이 쳐다보고 있는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굉장히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고, 이상하게 그 몇 초가 견딜 수가 없어서 고개를 내가 먼저 돌렸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정말 모르겠다. 복잡한 기운을 굉장히 싫어하고 꺼려하는 편이었다. 아무리 심각한 일들도 주로 시시한 농담으로 순환시키려 했고, 내 사전에 심각한 일은 죽을병이 걸리기 전까지는 힘든 유형에 불과했다. 녀석은 여전히 밝고 어디를 가든 이목이 집중되고, 언제나 받는 사랑에 익숙한 여유로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 상대배우가 아무리 대단할 사람일지라도 녀석을 여태까지 지켜보았때에 어느 누구도 녀석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 했고, 쓰다듬어 주었고, 귀여운 볼을 만지작거렸고, 작은 손을 꼭 잡아 주었고, 진실된 웃음을 쉽게도 내어 주었다. 이런 모든 상황들이 녀석에게는 굉장히 쉬운 일처럼 느껴졌다. 나뿐만 아니라, 나 이외에 모든 사람들도 녀석을 보면 마냥 즐거워지고 재밌어지고 무료했던 일상도 갑자기 신나지고 이러한 감정들이 모두에게 다 똑같이 평등하게 포함된다는 생각을 하니까 물 먹은 티슈처럼 갑자기 온몸에 맥이 빠져버렸다. 그런 사람들 속에 나 역시도 마찬가지겠구나, 나 또한 그들과 다름없는 상대겠구나. 그냥 좀 성질이 특이한 사람으로 자기에게 관심이 많은 TV에도 잠깐씩 보이는 그저 그런 친구겠구나. 라고 내 존재가 어느 한 구석에 쌓여있을 생각을 하니까 조금 억울한 거였다. 서운한 감정과는 별개였다. 난 그냥 그 모든 게 억울했다. " 야. 이거 먹어. " 시무룩이 고개를 떨군채 발끝만 바라보고 있는 내게 녀석이 말을 걸어왔다. 자그만 손 한가득 들어있는 건 다름 아닌 광장에서 누나 팬들이 건네준 간식들이었다. 녀석의 고사리 같은 손 안에 모두 들어있기 벅찰 정도로 여러 개의 간식들을 움켜쥐고 있었고, 이상하게 녀석의 눈을 올려다보기가 지금은 자신이 없어졌다. 유치하게 따질 것 같은 주둥이가 불안불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씨발 오늘만 이럴 거야! 오늘만 유치한 거야. 나 원래 안 그래. 진짜야. 오늘만 이상한거야. 그리고 너 아니어도 나 좋아해주고 관심 많고 챙겨주고 싶어서 안달난 사람 많거든요? 진짜야. 나도 너 아니어도 된다고. 그래. 그렇다고. " 안 먹어. 매니저형 줘. " 한참동안 내게 내밀어진 작은 손이 쉽사리 내려가지 않았고, 어느 정도 지나서야 손을 내린 녀석은 내 말대로 상철형에게도 달려가 손안에 가득한 간식들을 전했다. 곧바로 두 사람의 웃는 소리가 겹쳐서 들려왔다. 다시 속이 뒤틀렸다. 씨발 왜이래 진짜. 이날 녹화는 새벽까지 이루어졌고, 본격적인 녹화장소는 가평 인근에 위치한 대나무 산장이었다. 조금만 시내에서 벗어나도 시골은 시골인 모양인지 날이 어두워지자, 날씨는 어깨에 담이 올 정도로 추워지기 시작했고, 산장에 도착하자마자 주인집 개를 발견한 녀석은 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아지를 쓰다듬고 안아대며 아이처럼 좋아했다. 다른 게스트들은 떡칠된 화장을 덧칠하느라 차안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어 보였고, 진행 순서를 외우느라 정신없는 MC들은 분주하게 산장을 둘러보기 시작했고, 그 외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추운 날씨에 하나밖에 없는 모닥불에 모여 시답지 않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준수야! 감기 걸린다. 어서 이리 와!! " 누가 매니저 아니랄까봐 녀석의 드러나 있는 앙상한 발목이 눈에 들어왔는지 상철형은 강아지 삼매경에 빠진 준수를 부르기 시작했고, 어느새 손이며 발목이며 화상 입은 것처럼 빨갛게 추위에 떨고 있던 녀석이 마지막으로 강아지의 얼굴을 쓰다듬고는 모닥불 근처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곳 산장을 오는 길 내내 이상하게 피로함과 더불어 마주치기 싫은 얼굴에 벤에 올라타자마자 일부러 잠을 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말로 잠이 들었다. 어느새 눈을 뜨니 나를 깨우고 있는 상철형이 있었고, 밖으로 나갔을 때부터 녀석은 이미 산장 주인을 자기 아파트 경비 아저씨 정도로 인식하며 금세 친해진 모습이었다. 정말 어디를 가든 녀석 곁에는 녀석을 예뻐하는 사람들의 진실된 시선들로 가득차 있었다. 모닥불들이 서로 엉켜 춤을 추는 듯 한 현상이 보였고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모닥불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사이에 이쪽으로 가까이 다가온 녀석이 이제야 체감온도가 실감나는지 자신의 몸 하나도 감당 못할 정도로 이가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벌벌 떨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녀석과 오늘 나눈 대화가 아까 그 한마디가 전부였다. 추위를 잘 못 견디는 나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정색의 두꺼운 파카를 내 몸짓 보다 훨씬 큰 사이즈로 입고 있었다. 옆에서 벌벌 떨어대는 녀석을 보자 벗어서 줄까 하다가도 뭐 누가 갖다 주겠지 라는 생각에 다시 생각을 접다가도 PD의 부름으로 상철형과 창민이 그 자리를 비웠고, 어느새 둘만 남은 이 상황이 왠지 모르게 갑갑해지기 시작할 때였다. 갑자기 몸을 벌벌 떨어대던 녀석이 내 등 뒤로 몸을 숨기더니 긴 파카의 밑자락을 손쉽게 들춰 그 안으로 몸을 넣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갑자기 밑에서 찬바람이 훅 들어와 파카 벗어달라는 제스처인가 싶어서 고개만 뒤로 살짝 돌아보았더니, 역시나 전혀 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으로 바닥에서 쭈그린 자세를 시작으로 아주 손쉽게도 넉넉한 파카의 뒷 틈새로 녀석의 나뭇가지처럼 마른 몸을 집어넣고 있었다. 두 사람이 들어가기엔 조금은 부족한 공간이기도 했지만, 부피가 일반 남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녀석이 들어오자, 아주 손쉽게도 무리 없이 몸이 파카 안으로 들어왔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 야..야! 너 뭐야. 왜 거기로 들어가?!!!! 야야! 나와! 이거 벗어 줄 테니까 나오라고! " 뒤에서 꿈틀 꿈틀 거리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나 씨발 지금 기분 좆같다고 나 건들지 말라고. 너랑 오늘은 놀기 싫다고. 근데 왜 이렇게 몸은 차갑고 지랄이야 진짜! 몸이 그야말로 꽝꽝 얼었는지 파카 속으로 들어온 녀석의 가슴이 내 등에 닿자마자 으악 소리가 절로 나올 정로도 얼음장이었다. 그 이후로도 편안하게 자세를 잡으려던 녀석은 여러 번 꿈틀거리며 내 등 뒤에서 미세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제야 자세가 편안해 졌는지 두 팔을 아무렇지 않게 내 허리에 감싸 안고는 내게 말했다. " 으..으으으으 나 추워.. 추어. 추엉! " 벌벌 떨어대는 통에 발음마저 이상해졌고, 내 몸도 녀석을 따라서 떨려지기 시작했다. 그냥 속 편하게 파카를 벗어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파카 자크를 내리려고 하자 나를 저지한 녀석이 내게 말했다. " 너어~ 왜 오늘 하루 종일 입 삐쭉- 얄밉게 내밀고 잇써어? " 묻지 마, 말하기 싫어. 진짜 싫어. 씨발 물어도 너랑 말 안 할 거야. 오늘은 그럴 거야.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자, 팔을 더 꽉 잡아 크지도 않은 자신의 품으로 내 허리를 순식간에 가두었다. " 뭔지 모르겠는데, 너 조용하니까 나 당황스러워. 너 오늘 왜 그래? 나랑 말하기도 싫어? " 어. 말하기 싫다고. 싫어. 그냥 싫어. 묻지 마, 이유도 유치하고 나도 유치하니까 그냥 말하기 싫어. 하루만 지나면 괜찮을 거야. 나 오래 안가. 내일이면 괜찮아. 갑자기 녀석의 한쪽 손이 파카 입구 쪽으로 툭 내밀더니 울화통 터지게 이를 덜덜 부딪치며 PET 취급을 했다. " 으으으..으으... 자~ 손! 믹키! 어서 주인님에게 손 내밀어봐! 자~! " 이씨. 이게 진짜!!!!!!!!!!!!!!!! " 이 개새야! 그만 떨어대!!!!!!!!!!!!!!!!!!! " 곧바로 뒤에서 어깨가 들썩거렸다. 창민이처럼 녀석에게도 내 욕은 만병통치약인 모양이었다. 현대판 욕장수, 애들도 와라~ 애들도 오라고!!!!!! " 너 왜 입술만 쭉 내밀고 삐져있어?? " " 나 삐지고 그런 속 좁은 사람 아니거든요? " " 근데 왜 찐따처럼 하루 종일 니 발끝만 노려봐? 발끝에 뭐 재미난 거라도 붙어있어? " 왜 내가 좀 조용하니까, 불쌍해서 나 계속 쳐다봐주고 있었냐? 그런 친절이라면 됐거든요? " 나 원래가 주둥아리 좀 튀어나온 사람이거든요? " 다시 뒤에서 큭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좀 추위에 떠는 몸짓이 잦아들었다. " 우리 믹키가. 오늘 기분이 안 좋은가 보다. 나중에 이 엉아가 빗질도 해주고 목욕도 시켜줄께!? " " 씨발, 나 이제 믹키 안 해!!!!!!!!!! 박유천으로 돌아갈 거야!!!!!!!! " " 주인을 먼저 버리는 강아지는 이 세상에 없어. " " 있어. 여기. " " 네가 먼저 키워 달랬잖아. " 주눅 든 목소리 연기하지 마. 넘어가니까. 씨발, 할 말이 없네. " 나 보다 오래 살 거잖아 너. 아니야? " 맞아. 너 보다 오래 살 거야. 그건 맞아. " 그거 거짓말이야? " " 아니. " " 근데 왜 자꾸 주인을 못 알아봐? " 이게 진짜! 누가 누구를 못 알아봤다고 지랄이야???????? 제대로 내 신경을 자극한 녀석의 눈치 없는 말에 녀석이 내 등 뒤에 있는 것도 잊은 채 몸을 확 뒤로 돌아섰고, 기가 막히게도 넓은 품새 사이로 나의 몸과 함께 돌려진 녀석의 입은 이미 투니버스 채널로 돌려진 상태였다. 화가 나서 휙 돌아선 몸 앞으로 녀석이 내 허리를 바짝 끌어 안은 채 팔이 둘러져 있었고 가슴 부분에 정착한 얼굴은 큭큭 거리느라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때마침 창민과 매니저가 모닥불 곁으로 돌아왔고, 네발달린 인간을 실제로 본 미친 사람들처럼 웃어젖히기 시작했다. 동시에 고막이 더러워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씨발 결국 김준수가 내 주둥이 열리게 만들었다. " 으하하학하학 유천형 준수형 못 봤어요?? 으하학학학 다리 4개 존나 웃겨요. 크하학. " 너 웃지 마. 넌 웃지 마. 특히 넌 제발 웃지 말라고!!!! " 어떤 몸이면 저 안에 두명이나 들어갈 수 있어요? 으하학하학 " 술래잡기 놀이에 심취한 녀석은 능청스럽게 준수를 찾는 스태프들 목소리에 재밌는 개그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사람마냥 숨넘어가도록 웃으면서 파카 안에서 깔깔 거렸고, 그럴 때마다 가슴 부근에 닿은 녀석의 입술에서 뜨거운 입김이 느껴지기도 했었다. 아주 좋아서 죽을 기세였다. 야. 그만 웃어. 그러다가 숨넘어가겠다. 녹화를 하는 도중마다 특이한 구석이 대놓고 여러개인 녀석을 사람들은 신기하게 쳐다보았고 MC형은 아주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여러 번 녀석의 볼을 아프지 않게 꼬집고 지나가거나 머리를 쓰다듬고 지나갔다. 닳겠다. 아주그냥 닳아서 얼굴이고 몸이고 전부 없어지겠어? 녹화가 다시 시작되자마자 파카에서 드디어 나오게 된 녀석은 정말로 우습게도 머리가 이리저리 삐쭉삐쭉 솟아올라 있었고, 이를 지켜본 모습 스태프들이 너도나도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코디를 불러 녀석의 머리를 손질하게 하고 내가 입고 있던 파카를 벗어 녀석에게 걸쳐주었다. 어찌나 녀석에게 크던지 작은 머리통만 달랑 위로 솟은 모양새가 인정하기 존나 싫지만, 꽤나 귀여운 모습이었다. 녹화의 목적을 상실한 녀석의 주된 관심은 산장 아저씨와, 강아지뿐이었지 누군가와 맺어지기 위한 노력은 눈곱만큼도 보이지가 않았다. 가장 심각하게는 새벽까지 이루어진 촬영이 처음이라 꽤나 졸려웠던 모양인지 창민의 무릎에 대놓고 기대서 잠이 들어버린 통해 당황한 AD가 빨리 가서 깨우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모두들 녀석을 귀여워하면 귀여워했지 눈살을 찌푸리거나 예의가 없다며 혀를 차지 않았다. 이런 익숙하지 않은 따뜻한 녹화 분위기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곧이어 이 프로그램의 가장 하이라이트 코너중에 각자의 매력을 발산하는 시간이 다가왔고, 모두의 장기를 보지 못하고 잠든 준수를 깨운 건, 어느새 녀석의 차례가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비몽사몽으로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준수에게 AD는 이것저것 진행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고, 잠에서 깨어난 녀석은 일단 녹화를 위해 파카를 벗어 옆에 고스란히 올려 논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 이상하게 방향을 틀어 내게 다가와 말했다. " 야. 너 피아노 칠 줄 알아? " 어? 피아노???? " 어?? 어.. 어어 칠 줄아는데, 악보는 못 봐. " 앞뒤가 전혀 맞지 않은 대답에 녀석은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았고, 일단 무엇을 할지 먼저 물어보았다. " 뭐 하려고? " " 나 손이 얼어서 부들부들 거려. 피아노 못 치겠어. " " 무슨 곡인데? " " 디그리스의 My everything 가능해? " 다행히 너무나도 좋아하고 있는 가수의 곡이었지만, 녀석과 이 곡을 매치하자 굉장히 어색한 곡처럼 느껴졌다. 너 그걸로 뭐하게?? " 응. 그건 악보 없어도 가능해. " " 그럼, 네가 쳐 줘. " " 알았어. " 곧바로 AD가 준수의 느린 행동을 재촉하기 시작했고, 모닥불 옆에 무대가 세팅된 그 한가운데에 언제 옮겨놨는지 몸짓이 큰 검정색 피아노가 놓여있었고, 일단 자리에 앉아 녀석의 동태를 주시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녀석의 자그만 손 사이에 마이크가 쥐어졌고, 그제야 난 녀석이 노래를 부를 거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이상하게 녀석이 부르는 노래가 아니 정확히는 목소리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전혀 매치가 안 되는 곡이라 더욱더 앞 상황을 예상할 수가 없었다. 많은 생각들로 정신이 몽롱했을 때 녀석과 내가 눈이 마주쳤고, 그때 녀석은 나만 알 수 있는 잔잔한 미소를 내게 아주 잠깐이지만 선보였다. 심장이 놀랐다. 함께 호흡할 파트너에 대한 작은 배려 같기도 했고, 굉장히 설레는 얼굴표정처럼 보이기도 했다. 곧바로 건반위에 손을 올렸고, 내가 움직이는 손을 따라 녀석의 몸이 리듬을 찾듯 상체가 좌우로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맑고 그윽한 음악이 꽃처럼 피어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녀석의 목소리가 산장에 울려 퍼졌다. 녀석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나의 뇌수로 예고 없이 파고 들어와 나의 귀를 마취 시켰다. 나는 넋을 잃고 그 목소리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부터 나오는 피아노의 선을 따라 기가 막히게도 녀석은 정확하게도 그 음을 따라 오기 시작했다. 선율은 깊고, 그윽했으며 탄력이 있었다. 그리고 녀석의 목소리는 절대 계산적이지 않았으며, 이론적이지도 않았다. 그냥 이 분위기에 맞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듯 음을 맞춘 거였지만, 타고난 목소리에서 나오는 호소력 짙은 진심은 모두에게 쉽게도 닿았다. 내 귀를 의심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너.. 대체.. 뭐야? The loneliness of nights alone 혼자서 보내야만 했던 밤들의 외로움.. the search for strength to carry on 계속 살아갈 힘을 찾기 위한 힘겨운 몸부림.. my every hope has seemed to die 내게 있던 희망들이라곤 모두 다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았죠. my eyes had no more tears to cry 더 이상 흘릴 눈물조차 남아있지 않았어요. then like the sun shining up above 그때, 위에서 비추는 햇살처럼.. you surrounded me with your endless love 그대가 다가와 당신의 무한한 사랑으로 날 감싸주었죠. Coz all the things I couldn't see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are now so clear to me 이제는 너무나 명확하게 보이네요. You're the breath of life in me 당신은 마치 우리들의 호흡 같은 존재죠. the only one that sets me free 나를 자유롭게 해주는 유일한 사람이구요. and you have made my soul complete 당신은 항상.. for all time 내 영혼을 완벽하게 만들어주었죠. You are my everything 그대는 나의 전부랍니다. Nothing your love won't bring 당신의 사랑으로 이루지 못할 일이란 없죠. My life is yours alone 내 삶은 온전히 당신 것이랍니다. The only love I've ever known 내가 알아온 유일한 사랑. Your spirit pulls me through 당신의 영혼은 내가 그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게 해준답니다. When nothing else will do 다른 것들이 그렇게 해줄 수 없을 때도요. Every night I pray 매일 밤마다 내 무릎을 꿇고.. On bended knee 난 기도드려요. That you will always be 그대가 언제까지나.. be my everything 나의 전부가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이에요.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 시킬만한 녀석만의 임팩트가 녹화장을 일순간 소름 끼치는 콘서트 장소로 둔갑시켰고, 녀석은 음에 있어서 피치가 절대 떨어지지 않을 뿐더러, 그 음이나 박자를 정확하게 그 위치에 놓고 있었다. 다소 쇳소리가 나는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노래는 아무런 어색함 없이 잘 연결되었고, 미성과 허스키 보이스의 미묘한 경계를 자유자재로 조율할 줄도 알았다. 그냥 곡을 제멋대로 갖고 놀았다. 저런 순수한 얼굴 표정을 하고선 말이다. 노래를 끝마치고 꽤나 쑥스러운지 순박한 시골 청년처럼 머리를 긁적이며 제자리로 돌아갔고, 그제야 여기저기서 소름이 끼쳤다며 팔을 문지른 게스트들로 한껏 분위기가 달아오르기도 했다. 노래가 한참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멍한 상태로 녀석의 뒤를 따라 들어온 나는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정신을 쉽게 차리지 못했고, 나뿐만 아니라, 준수의 노래를 듣게 된 창민 또한 부쩍 말 수가 줄어들었단 사실이 확 와 닿기도 했었다. § 8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던 정실장의 오프 날이었다. 다행히도 재중 또한 창민과 유천이 새벽까지 녹화가 있어서 혼자서 지루하게 숙소에 있어야만 했었다. 때마침 오프가 겹친 정실장의 일정을 여비서에게 듣자마자 자신에게만 주어진 특혜처럼 편안한 차림으로 정실장 집으로 향했다. 정실장의 집은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보로 5분도 채 되지 않은 가까운 오피스텔이었고, 대부분은 숙소에서 지내는 일들이 많아 오피스텔의 사용용도는 욕실과 드레스룸 뿐이었다. 추운 날씨임에도 밖에서 저를 기다리는 팬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 재중은 일일이 한명에게 인사를 나누었고, 마치 자신의 오프 날처럼 1분마저도 금세 아까워져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곧바로 정실장의 오피스텔로 뛰다시피 걸어갔고, 익숙하게 현관 도어락의 번호를 눌러 안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오피스텔은 그야말로 아무도 살지 않는 새 집처럼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고,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물건들처럼 곳곳에 새 장식품이라는 흔적들이 난무했다. 혼자살기엔 넓은 집이었고 그런 집마저 익숙하지 않아 잘 드나들지 않은 정실장은 주로 깊은 숙면을 취할 때 습관처럼 호텔용으로 사용하기도 했었다. 거실을 지나 곧바로 방문이 열려져 있는 침실이 눈에 들어왔고, 조심조심 들키지 않을 기세로 뒷 발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침실로 들어갔다. 커튼도 닫히지 않은 창문 사이로는 거대한 햇볕이 침대 전체를 내리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햇볕을 피해 엎드려 깊게 잠들어 있는 정실장을 발견하자 재중은 그 모습이 재밌는지 숨죽여 웃어댔다. 오랜만에 보는 흐트러진 모습이 고작 자는 모습이었다. 편안한 회색 추리닝 바지 위에 흰 나시티를 입은 모습이 어찌나 편해 보이는지 저절로 막혀있던 숨통이 트여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날씨가 꽤 추웠음에도 불구하고 5분 거리를 무시한 재중의 맨발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검정색 블랙진에 가슴팍이 훤히 보일정도로 크게 파인 회색 니트 속으로 보이는 가슴 또한 빨갛게 얼려 있었다. 8개월 만에 곤히 잠든 사람을 억지로 깨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방은 냉랭하기 그지없고, 재중은 안방 문턱에 꺼져있는 보일러 스위치를 돌려놓았다. 분명 이곳에 이런 스위치조차 있는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이 스치자, 참 기본적인 생활방식도 모르는 어린애라는 간지러운 생각이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곧바로 닭살이 돋기 시작하는 팔을 문지르며 침대 위로 올라갔고, 곧바로 푹신한 베개 위로 얼굴을 받쳐 엎드려 자고 있는 정실장 옆으로 가 살짝 덥혀있던 침대 시트를 들어 그 속으로 들어갔다. " 으으.. 따뜻하다아.. " 옆에서 꼼지락 꼼지락 뒤척거리는 대도 전혀 미동 없이 수면제를 삼킨 사람처럼 깊은 잠에 빠진 정실장은 전혀 깨어날 조짐이 없어 보였고, 이렇게 깊게 잠든 모습을 오랜만에 본 재중은 옮겨지는 하품처럼 졸음이 몰려와 버릇처럼 정실장의 돌려진 얼굴을 마주한 채 단잠에 빠져들었다. 침대 한가득 내리쬐어주는 햇볕의 역할이 고마워지는 순간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단잠에 빠진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목 밑을 받쳐주는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고, 엄마의 품을 막 찾은 아기 고양이 마냥 더 이상 파고들 빈틈이 없을 정도로 한가득에 안긴 재중은 그제야 편안한 얼굴을 하고 정실장 가슴에 얼굴을 묻었고. 재중의 잠버릇을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윤호는 제 허벅지 사이로 재중의 한쪽 허벅지를 끼어 맞춰 주자, 꿈틀 꿈틀 더 바짝 안겨오는 재중이 고양이 앓는 소리를 나른하게 냈다. " 흐응... " " 잘 자 " 자연스럽게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과 함께 다시 나른한 단잠에 빠지는 두 사람의 모습이 찬란한 햇빛을 등지고 아름답게 눈부셨다. § 정실장은 누군가 자신의 몸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 느껴졌다. 좀처럼 깨어나지 않은 단잠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고, 이에 질세라 상대방 역시 포기하지 않고 정실장의 몸을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 혀어엉.. 이제 그만 일어나아.. 이러다가 해 그냥 저물겠다. " 재중이었다. 말끝이 늘어지는 상태를 보아하니, 꽤 오랜 시간 동안 깨운 모양이었다. " 혀엉.. 대청소도 하고.. 밥도 차려먹고.. 그러자아~ " 나시티가 늘어날 기세로 본격적으로 허리를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고, 몸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땅으로 푹 꺼지는 느낌이 들자 금세 다시 귀찮아진 정실장이 앉아있는 재중의 팔을 다시 잡아당겨 눕혔다. 힘없이 툭 따라서 쓰러진 몸을 다시 눕혀 자세가 편하도록 목에 팔을 받쳐주고, 다리를 다시 올려 그 사이에 허벅지를 끼워주자, 이번에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정실장의 고요한 얼굴을 아프지 않게 괴롭히기 시작했다. " 히히.. " 마치 찰흙처럼 정실장의 얼굴을 혼자 주물럭거리더니 모양새가 꽤나 웃겼는지 금세 거기에 심취해 깨우는 걸 잊기도 했다. 얼굴을 이리저리 흔들어 쥐어뜯어도 눈 커플이 무겁기 만한 나른함에 정실장은 재중의 손을 자유롭게 놔주었고, 그것마저도 금방 지루해진 재중이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눈치였다. 한참 동안을 조신하게 정실장 품안에서 누워있던 재중이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보이는 부위마다 선명한 이빨 자국을 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재중의 몸을 감싸 안은 팔뚝 부분에 잇자국이 나게 깨물었지만 전혀 미동조차 하지 않은 반응에 부위를 옮겨 수염이 살짝 자리 잡은 턱을 살짝 깨물었다. 그런데도 고요한 표정이 억울했는지 자리를 위로 이동해 귓불을 살짝 깨물었다. 그러자 아주 잠깐 미세하게 뒤척이기 시작했고, 다시 밑으로 내려와 엄지손가락을 들어 깨물었다. 그러자 그 부분이 간지러운 것처럼 추리닝 바지춤에 손을 슥슥 문질렀다. 오기가 생긴 재중은 멀뚱멀뚱 허리를 감싸고 있는 정실장의 팔을 치우고는 얼굴을 하나하나씩 쳐다보았고, 쉽사리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정실장에게 심통이 난 듯 삐죽이면서도 다음에 무엇을 할지 머리를 굴리는 듯 한 표정이 역력했다. 귓불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뒤로한 채 고개를 다시 조금 더 위로 올려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마지막 히든카드처럼 정실장의 꾹 닫힌 입술 사이에 잇새를 넣어 아랫입술을 콱! 깨물었다. 그런데 이 상황 속에서도 터져 나오는 웃음 때문에 눈은 휘어질 대로 휘어져 해맑게 웃고 있었고, 때마침 아랫입술에 통증을 느껴 놀라 눈을 확! 뜬 정실장은 바로 코앞에 보이는 재중의 휘어진 눈에 어리둥절해 하며 자리에서 그야말로 벌떡! 일어났다. " 뭐야. 너 언제 왔어? " 혀엉 뭐야 아까는 잠꼬대였어? " 지금 해가 중천에 떴거든영? " 나시티 밑단은 재중이 흔들어 깨운 동작 그 방향으로 크게 늘어져 있었고, 벌떡 일어난 통해 회색 추리닝 바지가 살짝 아래로 내려가 아슬아슬하게 치골근이 보였고, 거기다가 머리는 까치집이 여간 장난스럽게도 둥지를 틀어놔서 머리 모양이 꽤나 웃겼다. 비몽사몽 머리를 긁적이던 정실장은 그제야 시간을 확인하고 재중에게 말했다. " 뭐야. 너 그렇게 입고 왔어? " " 5분 거리니까 봐 줘. " 잘 안 떠지는 한쪽 눈을 찡그려가며 잠을 깨우고 있는 정실장의 모습이 여간 재밌는지 한번 올라간 재중의 입꼬리는 내려올 생각을 안했고 그제야 자신의 꼴이 거울을 통해 비춰지자, 정실장이 욕실로 자동문처럼 돌아섰다. " 씻고 나올게. " § 오늘따라 오피스텔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다던 재중은 가구 위치를 바꾸자고 졸졸 따라다니며 칭얼거렸고, 가구 다 쓰지도 않아서 괜찮다고 아무리 설득해도 먹히지 않자, 바로 포기한 정실장은 재중의 지시 아래 가구의 위치를 낑낑 거리며 옮기고 있었다. 어찌나 참새처럼 옆에서 짹짹 거리는지 오랫동안 쓰지 않은 물품과, 텅 비어있는 냉장고 거기다가 제대로 제자리에 올려져있지 않은 물건들과, 저번에 잃어버린 물건들이 쇼파 밑에서 하나씩 나오자 쪼그만한게 혀를 츳츳 차가며 정실장의 허술한 점들을 지적하며 본격적으로 신나했다. 8개월 만에 갖는 오프 치고는 꽤나 곤욕스러운 정실장이었지만, 옆에서 귀엽게 짹짹 거리는 통에 그 마저 잊은 채 열심히 분부대로 방의 구조를 여러 번 바꾸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가구의 위치를 바꾸고 편안하게 쇼파에 눕듯 기대앉은 윤호는 밀린 신문을 정독하기 시작했고, 중간 중간마다 재중은 뭘 그리도 열심히 정리를 하는지 재중도 손을 뻗으면 손쉽게 꺼낼 수 있는 물건들도 일일이 정실장에게 다가가 내려달라고 졸라댔고, 조금만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으면 그새를 못 참고 청소기 밀꺼니까. 발을 들어라, 쇼파를 닦을 거니까. 엉덩이 좀 들어라, 커튼도 갈아야겠다. 침대 시트도 갈아야겠다. 거의 8개월 치의 방송에서 내뱉는 말들을 한꺼번에 떠리하듯 몰아서 하는 것 같은 착각이 언습 했다. 재중의 흔적이 지나친 자리는 정말로 보기 좋게 깨끗해졌고, 물건하나 제자리에 놓지 못해 늘 찾다가도 결국엔 못 찾아서 새롭게 물건을 샀던 정실장과는 다르게 그 찾지 못한 물건들을 다시 구석구석에서 찾아 제자리에 놓는 행동이 굉장히 익숙해보였다. 어느새 날이 저물기 시작했고 출출해진 배를 움켜잡으며, 숙소에서 가져온 찌개거리를 꺼내 분주하게 늦은 점심을 차리기 시작했고, 어느새 매거진에 빠진 정실장은 잡지에서 눈을 쉽사리 떼지 않았고, 잠시 세탁기를 돌리러간 재중이 윤호를 향해 말했다. " 혀엉~ 찌개 불 꺼줘어! " 자동으로 눈은 잡지를 향한 채 느낌으로 주방을 향해 걸어 들어간 윤호는 가스 불을 끄고, 그 옆에 놓여있는 수저를 들어 간을 보기 시작했다. 요리솜씨는 꽤나 알아줬다. 역시나 얼큰하게 잘 끓여진 부대찌개에 침이 꿀꺽 넘어갔다. 갑자기 배고파졌다. 다시 방향을 틀어 쇼파에 앉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온 재중이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자신이 끓인 찌개가 이 찌개가 맞냐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 혀엉!!!!!!!!!!! 수저로 휘휘~ 저어서 간 보지 말랬지!!!!!!!!!!!! 또 짬뽕 국물 댓짜나!!!!!!!!!!!!!!! " " 어 그래. " 이런 괴성에도 이미 매거진에 집중한 정실장의 귀에는 아쉽게도 재중의 발악이 들리지 않았지만, 자동처럼 입은 ' 어 그래. ' 로 대답하고 있었다. § 우습게도 한 커플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편으로 프로그램 녹화가 종료되었다. 끝나자마자 금세 정이 들었는지 산장 아저씨하며, 강아지며, 스태프들이며 MC들이며 인사를 나눈 뒤에서야 출발을 할 수 있었다. 벤을 타고 숙소로 향하는 내내 각자의 닌텐도 게임 삼매경에 빠진 창민과 준수는 지친기색도 없이 쉴 새 없이 떠들어 대기 시작했고, 이상하게 몸이 뜨끈뜨끈해지고, 목이 칼날을 삼킨 것처럼 아파오는 게 조만간 감기에 걸린 것 같은 안 좋은 기운이 느껴졌다. 둘의 화려한 수다를 자장가 삼아 숙소로 향했고, 대결한 게임에서 창민에게 진 준수는 억울하단 듯이 계속 한판 더! 한판 더! 외치며 굵직한 창민의 팔에 매달려 졸라댔고, 때마침 정실장과 숙소로 들어오는 길에 마주친 재중이 보였다. 오랜만에 만난 준수가 굉장히 보고싶었던듯 아직도 명백하게 진 승부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씩씩 거리며 재중이 잡은 팔을 놓지 않고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뜨거워지기 시작하는 이마는 얼마나 몸이 상했는지 보여주고 있는 초기 경고와도 같았다. 곧바로 숙소로 들어가자마자 간단하게 샤워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 시트에 얼른 몸을 숨겨 몸을 떨었다. 으.. 씨발 존나 떨리네. 이제 눈을 감고 잠을 자려던 찰나에 어두운 방안을 아무렇지 않게 불을 키고 들어온 건 다름 아닌 녀석이었다. 강아지랑 이리저리 뒹굴었던 흔적들이 준수가 입고 있는 옷에서 확연히 들어났고, 지저분해진 옷을 내 방으로 들어와서 훌떡훌떡 벗기 시작하는 녀석을 보자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결국 또 입을 열었다. " 야. 너 거기서 뭐하냐? " " 보면 몰라? 옷 벗고 있잖아. " 훌떡 훌떡 잘도 벗는다. " 왜 벗는데? " 집에서도 팬티만 달랑 입고 있더니만, 너 그러다 나처럼 골골댄다. " 씻고 게임하려는데, 영웅이가 옷 빨아준다고 벗으래. " 뱀이 허물을 벗듯 고스란히 몸만 빠져나갔다. 능력자다. " 근데 왜 여기서 벗는데? " " 너 보라고. " 또 뭐라는 거야? " 내가 왜 봐야하는데? " 돌려진 고개를 내 쪽으로 휙 돌리더니 새침하게 입술을 움직였다. 침에 젖은 입술이 반들거렸다. " 주인 얼굴도 못 알아보는 개새끼니까. 몸이라도 보여줄라고. 그런다! 왜! " 기가 막혀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나 씨발 아프다고. 내가 너 파카 주자마자 냉큼 채가고 너 나한테 고맙다는 소리도! 추워서 어떡해?? 라는 소리! 한 번도 안한 거 알아 몰라?! 하긴 니가 뭘 알겠냐만!! " 나뭇가지처럼 삐적 꼴아갖고는 뭐 그리 자랑스럽다고 그리 훌러덩 벗어대? " 인상을 쓴다. 재밌는 얼굴이 되었다.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 야 나 S라인이거든? " 다시 웃음이 나왔다. 아 대가리 울려. " 웃지 마. 너 비웃지마. " 씨발 웃긴 거 어쩌라고. 갑자기 옆라인이 잘 보이도록 선 녀석이 내게 자신의 S라인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 잘 봐. 분명 S라인이야. 가슴은 없어도. 이거 봐라? 허리! 엉덩이! 맞지? 맞지!!? " 그래 뭐.. 허리 엉덩이는 인정한다. 그거다. 아니 근데 진짜 엉덩이가 이상하네? " 너 엉덩이에 지방 삽입 했지? 아니면 엉덩이에 브라 찼냐? " 내 말에 고개를 휙 돌리더니 다시 인상을 쓴다. 아 골 땡긴다고 웃긴 표정 짓지 말라고. 만화처럼 녀석의 몸 주변이 목욕탕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현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씨발. 나 진짜 아픈가봐. " 그러는 넌 이마 까고!!!!!! 얼굴에 달분화구 문신했냐?!!!!!!!!!! " 저 씨발새끼가 진짜! 벌떡 일어나 녀석이 서 있는 곳을 째려보았지만, 이미 팬티바람으로 방문을 열어놓고 나간 지 오래였다. 분명 어릴 적부터 여기저기서 아무렇지 않게 훌러덩 벗고 온 동네를 싸돌아 다녔을 거다. 저 버릇은 꼭 고쳐주고싶었다. 그런데 어딜 봐서 내 얼굴이 달분화구야?!!!!!!! § 재중과 창민은 숙소에서 함께 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방 분류의 이유는 아주 간단했지만, 명확하기도 했다. 담배 골초와 비흡연자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담배의 늪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는 나는 언제나 해외를 나가도 혼자 방을 써야만 했었다. 재중과 창민의 방에는 침대가 나란히 놓여있었고, 그 침대 사이에 그.. 그리 넓지도 않은 공간에 서로 얼굴을 마주앉은 채 등을 침대에 기댄 체 팔짱을 낀 창민과 준수는 새벽 3시가 되도록 불꽃 튀는 초딩 열전이 살벌하게도 매우 초딩스럽게 형성되고 있었다. 이대로 질 수 없다는 듯, 창민을 이를 악 물고 팔짱을 낀 채, 준수에게 말했다. " 한판 더 하시죠? " " 싫어. 너 사나이답지 못하게 왜 그렇게 찌질 하게 굴어? " " 처음에 저는 한판 더 하자고 협상하지 않았습니까? " " 그니까, 니가 바보지. " 눈썹을 꿈틀거리며 창민이 말했다. " 그럼, 이대로 주무실 작정이십니까? "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준수가 말했다. " 넌 아직 멀었어. 더 많이 연습해서 엉아한테 와락!!! 으하캉하항하항하학! " 부들부들 몸을 떨며 창민은 지그시 눈을 감았고, 다시 눈을 확 뜨며 부탁 아닌 구걸을 하기 시작했다. " 아~ 그러지 말고~ 한판만 더 해요! 딱 한판만! 더!!!! 아 진짜! 진짜! 치사하게!!!!!!!!!! " 창민과 함께 같이 팔짱을 낀 준수가 진지하게 선심 쓰는 척 한 번 더 생각하는 듯 하더니만, 이내 고개를 돌리고 얄밉게 말했고, 창민은 저 얄미운 입술을 쥐어뜯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 나 원래 치사해. 으하캉하항하항하학! " 곧바로 씩씩거리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창민이 준수를 노려보며 「아아아악!!!!!!!!!ㅆ벌!!!!!ㅇ아ㅏㅇ!!!!!! 」와도 같은 오크 소리와 함께 얼굴을 침대 시트에 파묻었다. 준수는 샤워 후에 재중이 새롭게 챙겨준 사각 팬티차림이었고, 창민은 녹화 내내 입고 있던 옷차림 그대로였다. 히힛- 웃으면서 일어난 준수는 벌떡 일어나서 창민의 방 불을 매너 있게 꺼줬고, 그런데 귀신같이도 곧바로 잠이든 창민은 드렁드렁 작게 코마저 골고 있었다. 대략 10초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체면과도 같은 뜨거운 반응에 놀란 준수는 춥지 않게 시트를 잘 여며주고, 창민의 책상 위에 다시 앉았다. 이상하게 낯선 집때문인지 쉽게 잠이 오지도 않았고, 정신이 이상하게도 또렷해서 이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창민의 노트북에 설치된 처음 보는 게임들의 신기록을 하나씩 깨가면서 희열을 느끼고 있는데 순간 귀신의 귀곡성인줄 알고 엄마야! 소리가 절로 나온 준수가 뒤를 돌아 창민을 보았다. 처음 자세 그대로 이불에 코를 박고 분명 잠이 들어있었는데 분명 창민의 목소리였다. 발음이 너무 정확해서 소름이 돋은 준수는 자신의 허벅지를 문질렀다. 그런데 그때. " .. 혀엉... " 뭐지? 잠꼬대야? 눈 뜬 건가?? " 어? 어.. 왜에...?? " 한참을 뜸들인 창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잠에 취한 목소리가 분명했다. " 혀엉.. 그거.. 알아요? " 응? 뭐?? " 뭐...뭐를..?? " 창민은 준수를 하찮다는 듯 한 뉘앙스로 다시 입을 열었다. " 밥 먹을 때 쓰는 게 뭔지 알아요? " 응? 밥 먹을 때 쓰는 거?? 뭘 써???? 어안이 벙벙한 준수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 ... 뭔데에...? " 분명 자는 것 같은데 이제는 피식 웃기까지 하면서 창민이 말했다. " ...형.... 숟가락 말고 뭔지 아냐고요... " 으악.. 믹키야.. 나 무서워. 몸이 굳어진 준수는 마지못해 다시 입을 열었다. " 뭐.. 뭔데에.. ? " 이번에는 자세가 불편한지 고개를 뒤척이며 잠에 취해 다시 말했다. " 아.. 형은.. 그런 것도 몰라.. " 잠꼬대가 맞는지 진짜로 정신이 있는 건지 놀리는 건지 의심이 간 준수는 잠들어 있는 창민의 곁으로 다가가자, 깊게 잠든 숨소리가 들려져왔고, 그제야 잠꼬대로 눈치 챈 준수는 다시 책상으로 자리를 옮기는데 다시 창민의 소름 돋는 입이 열렸다. " .... 젓가락이잖아요.. " 믹키야.. 여기 미친놈 있어.. 책상에 앉으려했던 엉덩이를 번쩍 들어서 노트북을 서둘러 종료한 뒤에 준수는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뛰다시피 창민의 방에서 뛰쳐나갔고, 어느새 새벽 4시가 된 거실에는 잊혀질만하면 다시 재방송으로 등장하는 영화 ' 엽기적인 그녀 ' 의 마지막 부분이 재생이 되어있었고, 영화를 보다가 잠들었는지 정실장의 무릎위에 잠든 재중과 고개가 쇼파 뒤로 꺽어진채 입을 섹시하게 벌리고 누워있는 정실장을 발견하자 준수는 다시 뒷걸음을 치며 놀라했다. 흐악!! " 엄마야.. 동방신기 다 왜이래.. " 조촐한 팬티바람이라 온 몸에 소름이 돋았는지 연신 팔뚝에 솟은 닭살을 문질러대던 준수가 쇼파 옆에 가지런히 접혀있는 흰 수건 하나를 펼쳐서 대통령 귀가 당나귀라도 되는 마냥 못볼것을 본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정실장의 얼굴 위로 수건을 살짝 덮어주었다. 그리고 나서 한숨을 깊게 내리쉬며 재중을 내려 보았는데. 흐악!!!!!! 엄마야!!!!!!!!!!!!!!!!!!!!!!!!!! 샤키야!!!!!!!!!!!!!!!!! 믹키야!!!!!!!!!!!!!!!!!!! 자면서 온 힘을 다해서 안면근육을 풀어주면서 고통을 느끼는 인상을 한 채 곤히 누워있는 재중의 표정이 자세히 눈에 들어왔고, 정말로 끔찍한 악몽을 꾸는 사람처럼 굉장히 괴로워하듯 잠든 표정이었다. 지금 깨어서 악몽에서 구해줘야 하나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너무 놀라 우뚝 몸이 멈춘 준수는 어쩌지도 못하고 결국 다시 뛰다시피 결국 유천의 방으로 들어와 방문까지 잠갔다. 믹키야!!!!!! 너만 정상이야!!!!!!!!!!!!!!!!!!!!!!!!!!! 나 동방신기가 무서워 흑흑.. § 제대로 감기몸살이라도 걸린 듯 열에 들뜬 기분으로 잠이 순식간에 들었는데 어느 순간 너무 차가운 살갗의 감촉 때문에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쾅쾅 짓눌리는 두통에 눈살을 찌푸리며 결국 눈을 떠야만했고, 어느새 내 침대시트 안으로 자기 집처럼 들어와 누워있는 녀석의 마른 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여전히 팬티차림이었다. 내 몸이 뜨거운지 녀석의 몸이 차가운 건지 구분이 안가기 시작했고 언제부터 여기로 들어와서 잠을 자고 있었는지 자세가 꽤나 불편해 보였다. 구부린 채 움츠리고 있는 마른 몸을 편안하게 펴주면서 녀석 목 밑으로 베개를 넣어주자 잠시 뒤척거리더니 제대로 편안하게 누웠다. 어느새 날이 밝아오기 시작해 녀석의 얼굴이 정확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고스란히 하루 동안의 힘든 일들이 하나씩 지나갔다. 난 생각 보다, 녀석을 친구로서 많이 좋아하고 있었고, 녀석에게도 내 존재가 특별했으면 좋겠다는 유치하지만, 솔직한 심정이 분명 내장되어있었다. 하지만, 내가 안달나면 날수록 녀석은 더욱더 냉랭해졌을 뿐이지. 좀처럼 나에게 다정한 표현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게 섭섭한 게 아니라, 억울했다. 나는 쉽게 누구에게 마음 주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가수라서 또 내 마음만 특별해서 어떤 사람이든 내 마음을 전부 받아줘야한다는 무식한 생각을 지니고 있는 타입도 아니었지만, 적어도 내가 보낸 마음만큼을 돌아오는 게 당연하다고 살아와서 그런지 이런 희귀한 녀석을 만나고 나서 많은 인간관계에 대해서 혼동되는 부분들이 많아졌다. 연예인이라는 직업아래에 어릴 적부터 같은 동네에 혹은 같은 학교를 다닌 오래된 친구가 아닌 이상, 진정한 친구를 다 커서 만든다는 건 만리장성을 쌓는 것만큼이나 내게는 힘든 일이었다. 무언가 상대방에게 나중에라도 얻어갈 수 있게 뭔가 도움을 받기 위해 친구하려는 사람들로만 가득했지. 정말로 순수한 마음으로 나와 친구를 하려던 사람들은 정말로 없었다. 그런 사람들과는 아주 다르게 녀석은 내게 정말 특별하게 다가왔고, 또 그런 특별한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도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 새겨주는 것처럼 나의 비틀어진 마음을 혼내는 것도 같았다. 아무것도 상대방에게 바라지 않고 그냥 순수하게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마음은 나에겐 너무 너무 큰일이고.. 또 너무 너무 큰마음을 상대방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주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녀석은 나처럼 안달나지도, 자주 못 봐서 속상하지도, 더 놀고 싶어서 화가 나지도 않아보였다. 언제나 내가 먼저였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 한편이 싸한 게 너무 억울한 거였다. 나는 이만큼의 마음을 너에게 보여주고.. 표현했는데.. 넌 고작 이 정도라는 듯 나를 대하는 그 마음이 너무 억울하고 속상하고 분했다. 그리고 내가 왜 이런 일로 하루에도 수십 번씩 혼자서 싸웠다. 화해했다. 웃었다. 화냈다. 불안했다. 다시 기뻤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녀석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를 지옥에도 빠트렸다가 다시 천국으로 보내기도 했었다. 이런 저런 생각에 다시 머리가 지끈 거리기 시작했고, 이상하게 자세가 불편했는지 뒤척이기 시작한 녀석이 버릇처럼 내 몸위로 올라왔고 자연스럽게 코를 내 목 언저리에 올려놓고는 익숙한 향을 찾은 것처럼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씨발, 이렇게 다시 천국으로 데려가지 말라고. 나에게 넌 특별하다는 것처럼 나 데려가지 말라고. 아니잖아. 나 너한테 아직은 아닌 거잖아. 쿵, 쿵, 쿵 심장은 왜 뛰고 지랄이야. 정말로 어디로 튈지 모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어떤 과거가 있는지도 모르고.. 모든 게 다 비밀투성뿐인 녀석에게 순식간에 나도 모르게 온 마음을 다 줘버린것 같아 가슴이 아리기 시작했다. 나 왜 이렇게 억울해서 미치겠지?? 자꾸만 뛰는 심장이 신경질이 나서 눈을 질끈 감았고, 좀처럼 돌아오지 않은 심장소리는 더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뭔가 홀린 사람처럼 목 언저리에 닿아있는 녀석의 고개를 두 손으로 들었고, 깊게도 잠들었는지 아기처럼 새근새근 잠든 녀석의 얼굴이 한 눈에 보였다. 이상하게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이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은 확인하고 싶어졌다. 천천히 내 위에 잠이든 녀석의 고개 밑으로 팔을 넣어 편안하게 눕혀주었고, 몸을 옆으로 틀어 녀석의 붉은 입술만 화난 사람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이 씨발새끼가 돌았나. 무슨 생각이야 너?????????? 안 돼. 안 돼. 하지 마. 하지 마. 야야야 그건 아니다? 그건 아니라고 씨발아!!!!!!!!!!!!!!!!!!!! 하지만 이런 내 마음과는 달리 어느새 조급해진 입술은 녀석의 입술과 맞닿았고, 보드랍고 따뜻한 감촉에 제 스스로 놀라 입술을 확 떼었다. 나. 이런 취향 아니거든??? 나. 그냥 정상적인 남자거든??? 난 여자가 좋은 사람이거든??? 아 씨발 난 여자가 존나 좋은 사람이거든??????????!!!!!!!!!!!!!!!!!!!! 이상하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나약해진 몸탓인지 나약해진 마음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한번 닿고나자 그게 더 없이도 억울하고 서럽게 느껴져서 쿵, 쿵, 쿵.. 크게 뛰던 가슴이 아리기 시작했다. 나 아파서 그래. 나 존나 아픈가봐. 윤호형 병원 좀 가자. 나 병원 좀 데려가줘. 나 왜이러는거야. 나 죽을병 걸린 거 아니야? 이런 속마음과는 다르게 제 맘대로 움직이는 입술은 녀석의 보드라운 아랫입술을 물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녀석의 아랫입술을 물고 있었고, 조금 더 욕심이 생긴 입술은 어느새 녀석의 윗입술까지 삼키고 있었다. 방안을 가득 매우는 츕- 츕- 소리가 나의 행동을 더욱더 재촉하기 시작했고, 이미 되돌릴 수 없단 듯이 눈을 질끈 감은 유천은 녀석의 가지런한 치아를 부드럽게 살짝 툭-툭 쳐가며 애원하고 있었다. 씨발, 이거 왜 이렇게 달아. 이거 뭐야. 나 왜이래. 심장에서 적신호가 울리기 시작했다. 아니야. 난 여자가 존나 좋다고!!!!!! 때마침 부스럭 거리던 녀석의 다물어진 치아가 열렸고, 뜨거운 입술 사이로 녀석의 달콤한 혀가 닿아졌다. 순간에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고, 이상하게 잠잠했던 심장이 다시 크게 쿵,쿵,쿵, 간헐적으로 울리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안 돼. 여기까지만. 안 된다 고를 외치는 두뇌와는 다르게 빠른 혀는 이미 녀석의 말랑하고 보드라운 혀를 게걸스럽게 핥아대고 있었다. 츕- 츕- 녀석의 혀끝이 조금씩 내게 닿을 때마다 녀석의 입술은 더욱더 촉촉히 젖어 들고 있었고, 일정한 속도로 밀려왔다 밀려가는 혀는 녀석의 달달함을 뿌리치지 못한 채 더 깊은 곳으로 인도했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아기가 되어도 좋을 만큼 엄마의 젖을 빠는 아이처럼 녀석의 혀를 옭아매고 있었고, 혼각의 감각과 살갗에 흐르는 미세한 전율이 나를 미치게 만들어 그것들이 발끝까지 퍼져나가면서 심장이 더 빨리 뛰고 허리가 비틀거리고 체온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와서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눈을 뜨자, 아주 많이 놀란 눈을 한 채 나와 눈이 마주친 녀석의 흔들리는 눈동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혼란스러운 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갑자기 외로움이 이보다 더 절절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밀려왔다. 준수야.. 나 이제 너랑 친구 못하겠다. 나 이제 어떡하지? | 처음으로 너 때문에 울었던 날, 너 왜 그때 내 눈물 그냥 내버려뒀어? | My Melody w. 킵 * * * 모든 동물에게는 눈물을 만들어내는 기관들이 신체에 존재하지만, 사람들과는 다르게 단순하게 눈에 수분을 주기위한 청결유지 용도로 사용되는 게 보통이다. 흔히 감정 표현으로써, 눈물을 흘려보내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사람밖에 없다고 알고 있었다. 말 그대로 녀석이 지금 내 눈물을 개 취급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다 나는. 미묘하지만 정확하게 흔들리고 있는 녀석의 불안한 눈동자를 난 보았고, 또 이상하게 몸이 제대로 감기에 걸린 건지, 마음이 불안한 건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난 줏대 없이 양쪽 볼을 타고 흐르는 엄청난 눈물을 막을 힘조차 없었다. 꺼이꺼이 울고 싶을 정도로 몸도 이상했고 그만큼 마음도 크게 일렁거렸다. 녀석의 감정을 읽어야할 눈에 예고 없는 가뭄도 비웃고갈 홍수사태가 벌여졌고, 그로인해 녀석의 동공 크기가 새끼 강아지처럼 꽉 차게 보여 녀석의 감정을 쉽사리 읽어 내릴 수가 없었다. 순간 나는 막 태어난 강아지처럼 곁에서 숨 쉬고 있는 어미의 냄새와 촉각만을 의지한 채 하루하루를 버텨가고 있는 나약한 동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개 같은 상황이 정말 나에게 일어났다. " 믹키양.. 엉아가.. 하-암.. 내일 너라주우울게에.. " 어느덧 동쪽 하늘이 훤하게 밝아 오며 동이 트고 있었고, 나는 눈물의 의미가 뭔지 몰라 당황해 하고 있었고, 이 와중에 주인노릇하기 바쁜 녀석은 내 눈물을 청결함을 위한 수분취급을 했고, 내 머리카락을 한번 쓸어주더니, 마치 내 목 언저리에 자신의 학번이 적혀있는 학생처럼 자리를 다시 잡아 위로 기어 올라왔고 익숙한 체향이 가져다주는 안락함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내 코끝에 녀석의 입술이 닿음과 동시에 희미한 ' 쪽 - ' 소리와 함께 녀석이 다시 잠들었다. 곧바로 내 가슴과 녀석의 가슴이 맞닿아지자, 급격이 빨라진 내 심장박동수와는 다르게 녀석의 심장은 고요하다 못해 평화롭기까지 했었다. 이 모든 게 당황스럽고 서럽기까지 해서 자고 있는 녀석의 마른 등을 두 팔로 꽉 안았다. 그리고 떨어지는 눈물을 손으로 훔쳐가며 한참을 그렇게 녀석의 마른 등을 쓸어내며 아침을 맞이했다. 불안하게 닿은 마음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설레면서도 그런데도 자꾸만 눈물이 나는 그런 이상한 날이었다. § 현장에서 느꼈던 소름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귀 역시 예외는 아니었는지, 녀석이 방송에서 보여준 노래의 파급효과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방송이후 각종 포털 사이트 인기검색어에서 늘 상위권에 1주일 내내 맴돌았고, 녀석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로 정확하지 않고, 소문만 무성한 정보들이 인터넷에 진짜처럼 판을 치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방송국에서 녹화를 하는 날이면 방송을 봤는지 녀석에 대해 물어보는 연예인들과 PD들부터 각종 예능프로의 작가들이 바쁘게 지나가던 내 팔을 잡고 개인정보를 구하기 바빴고, 예외 없단 듯이 유명한 기획사부터 듣보잡 기획사까지 모두 녀석에게 달려드는 통에 며칠 동안 상관없는 우리 기획사의 연락망이 바쁘기도 했었다. 식상하게 말하자면, 숨겨놓은 연습생 아니냐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난 지독한 열병처럼 1주일을 꼬박 감기와 고군분투했고, 제 발 저린 도둑새끼처럼 녀석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의 소식들은 꼭 내가 먼저 전화 통화를 하지 않아도 창민이나 재중의 입에서 쉽게 들을 수가 있었고, 그날 내가 옮겨놓은 감기인지 모르지만, 제법 죄책감을 느낄법한 감기를 녀석도 동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난 존나 변태같이 감기 걸렸단 소리 들으니까 그게 그렇게 짜릿하고 좋더라? 감기가 걸린 내내 접근금지령을 내린 창민에게 난 물어볼게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에이즈 환자처럼 취급하는 녀석 때문에 3일 정도는 멀리 떨어져 있어야만 했고, 어느 정도 기침이 사그라지자 그제야 조금 거리를 좁힌 창민에게 난 은밀한 대화가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좌석의 N극과 S극처럼 자꾸만 나를 피해 달아나는 녀석 때문에 대기실 안에서 바로 코앞에 앉아있는 창민을 째려보며 손수 전화를 걸었다. 이산가족이 우릴 보면 존나 아가리 채우고 싶었을 거다. 그런데 우쯔케? 궁금해서 돌아버리겠는걸. " 아~따. 여보쇼? " 씨발놈아, 전라도의 절대군주는 정실장이랬지? 너 그거 하지 마. 얼라야 소름 돋은 내 팔 보여주비까? " 씨발새끼. 너 감기 걸리는 날이 내 생일이다! 새꺄 " 의자에 몸을 추욱 기대더니 팔짱을 끼고 내 눈을 지그시 쳐다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리기 시작한다. 발정난 개새끼도 저렇게 흥분하진 않을 거다. " 주둥이가 간질~ 간질~, 이마는 헌칠~ 헌칠~, 눈빛엔 독이 한가득하시네요? " " 일단 닥치고. 내 질문에 절대 소리 내서 웃기 없기. 약속해. "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 별똥별처럼 크게 반짝였다가 금세 사라졌고, 흥미진진한 게임을 보는 마니아처럼 자세를 고쳐 잡아 제대로 앉았다. " 절대 소리 내서 안 웃을게요. " 창민이 곧바로 웃지 않기 위해.. 정확히 말하면 비웃지 않기 위해 표정관리를 하기 시작했고 큼- , 큼- 소리를 내더니 진지하게 듣는 척 꼴값을 떨기 시작했다. 잘생기면 얼굴값 한다던데, 저 새끼는 암만 잘생겨도 꼴값만 떤다. " 엄청난 자폭행위지만, 널 믿고 말하겠어. "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내 보이스에 토끼 귀처럼 활짝 열어 집중했고, 최대한 복화술을 이용해 목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작게 말했다. " .. 나 자꾸 안 서. " " .. 말이 너무 짧잖아요. " " 씨발새끼야. 알아들었으면서 되새김질 할래? " 곧바로 창민이 내 눈동자를 피했다. 자세히 보니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소리 내지 말라니까 아주 기를 쓰고 발악한다. 니가 그러면 그렇지. 개새끼. 차라리 지나가는 소나기를 믿지 내가!! " 그래서 저한테 궁금한 게 왜 혈기왕성했던 물건이 갑자기 안 설까 이거예요? " " 어. 설마 나 벌써부터 약에 의존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 눈물 나게 가오 안서는 질문이지만, 정말 궁금해서 물어봤다. 그날은 정말로 그랬다. 눈에 홍수가 내린 이후로 이틀 동안은 지독한 감기 때문에 이불 속에서 아예 나오지를 못했고, 좀 정신이 되돌아오면서 부터는 내 성정체성에 대한 공황상태에 빠져 머리를 쥐어뜯으며 혼동되는 며칠을 패닉상태에 빠져서 허우적거렸고, 그리고 어제는 그제야 진정된 마음을 다시 잡고 오랜만에 알콜섭취로 한껏 기분을 내고 쓰지 못해 안달 난 돈도 써가며, 돈만큼이나 활용하지 못한 내 성욕을 분출하기 위해, 술자리에 함께했던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튼 모델이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나랑 개그코드가 맞아서 대화가 잘 통했는데 결국 그날 밤 그 여자 집에 갔었고, 일단 손 안에 들어온 그날의 손쉬운 이벤트임은 분명한데 이상하게 당당하게 집에 들어섰던 자신감과는 다르게 일단 벗기고 보니까, 흥분된 게 촤-악 가라앉더니 발기조차 되지 않는 거였다. 이미 기집애는 존나 흥분돼서 자꾸만 내 목을 안아대고 몸을 사정없이 비벼대는데. 순간 그게 확! 정떨어지게 짜증으로 몰려왔다. 팔에 소름까지 돋고, 몸도 싸해지고 왜 그러냐는 퉁명스런 말을 뒤로한 채 다시 잊고 지낸 성정체성이 혼란스러워 머리를 쥐어뜯으며 집을 뛰다시피 나왔었다. " 일단 인간의 몸은 산소와 ATP가 없으면, 피로해지는데. 이는 종말단추에서 신경전달물질 생산속도 보다 흥분성 유입속도가 빨라지게 되면, 종말단추에서 과흥분성전압이 남아돌아서 신경에 흥분을 전달하기 못하게 되는 거예요. " 뭐. 뭐? 씨발 종말된 단추는 또 뭐야! " 야. 인간, 산소, 흥분 빼고 다 한국말이냐? " " 그러니까요. 1차적인 문제는 감기로 인해 교감신경이 자극이 안 될 수도 있는 거고. 그것도 아니라면, 아무데나 꽂아서 안 서는 거죠. 아무리 낡은 물레방앗간도 상대가 누군지는 알고선 들어가거든요? " 그래서. 뭐! " 형 어제 그 사람. 이름도 모르죠? 뭐 당연히 나이도 몰랐을 테고. 적당히 몸만 잘 알겠네. " 어? 어.. 엄격한 훈장의 지시에 따라 정좌를 하고 앉아 동생님에게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이 되어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동생님. 회초리는 들지 마.. 나 아직 감기 때문에 많이 아프다? 콜록. 콜록. " 그리고, 저 발기부전 성인캡슐 같은 거 연구하는 사람 아니거든요? 복용 후 30분이면, 그 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성의 환희를 경험하게 해줄 능력은 저 없거든요? " 개새끼.. 주둥이 트였다. 박유천! 이대로 저 새끼한테 주눅들 필요 없어. 싸우자. 이기자. 나가자!! " 너 그런 전문용어 정실장한테 세뇌 당해서 연구원 된 거지? 번지르르한 말 그만 팔아. 이 돌팔이 새끼야. " 창민의 눈을 째려보며 전화를 탁 끊었는데 바로 귀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몸을 흠칫 떨었다. 아 씨발 깜짝이야!!!! " 야! 김영웅재중이!!! 내가 소리 나게 걸어 다니랬지??? 귀신처럼 스윽 옆으로 오지 말랬지 내가?!! 삑삑 소리 나오는 베이비 슈즈라도 하나 사줘????!!! " 누구는 심장을 움켜주고 흠칫 놀라고 있는데, 내가 뭐라고 지껄이든 떨고있던간에 저 새끼는 눈가만 휘어지게 웃고는 아무 말도 안한다. 쟤야 말로 진짜 무서운 새끼다. 곧바로 ' 리허설 들어가겠습니다~ ' 스텝 목소리가 대기실에 울렸고 두 녀석을 째려보며 무대 위로 이동하는데 뒤에서 내 등을 미세하게 툭 친 김영웅재중이가 말씀하셨다. 문제는 내 하체를 안타깝게 바라보더니 새침하게 말했다는 것이었다. " 우리 유천이 파이팅!!!! " 주먹 불끈 쥐지 말아줄래? 내 물건 아직 레어템에 속하거든? 곧 레벨업 될거거든? 뒤에서 웃음 참느라 혀를 여전히 깨물고 있었던 창민이 푸푸풉.. 소리를 내며 아름다운 침의 분수대를 형성했고 옆에서 반달의 원초적 본능을 선보이고 있던 재중의 눈가가 다시 한 번 크게 휘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 그냥 솔로 할까봐, 나 진짜 그냥 확 짱꼴라 입성해버려? 츼팔! 미으키유춴이이 줜놔 츼어고야! § 오랜만에 꾸며진 특집으로 많은 가수들이 출연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리허설은 길어졌고, 안무를 맞출 때마다 자꾸만 덩달아 움직이는 마스크 때문에 짜증도 한몫해서 그런지 금방 몸이 지쳤다. 먼저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간 창민과 재중의 아가리에서 보기 흉한 반가움의 괴성이 쏟아져 나왔고, 난 문을 열기도 전에 들리는 투니버스 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려오는걸 알 수 있었다. 피할 수 없어도 난 피한다! 얼굴이 보고 싶기도 한데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와 똑같은 색깔은 아니지만, 푸우가 그려있는 분홍색 마스크를 아직까지 하고 있는 녀석이 눈에 들어왔고, 두꺼운 패딩이 꽤나 답답했는지 아무 의자위에 너저분하게 널브러져있었고, 연한 퍼플라인의 후드 반오픈 티셔츠를 입고 아래는 짙은 네이비색의 스키니진에 그레이 캔버스를 신고 있었다. 볼 때마다 앙상한 허벅지 또한 여전했다. 대기실에는 이미 많은 댄서팀 형들이 대기하고 있던 상태였고, 이곳에 도착한지 꽤나 시간이 흘렀던 모양인지 어느새 댄서형들 사이에 껴서는 총을 겨누는 흉내를 내고 있었다. 「 땅! 따! 따! 따! 땅! 땅! 푸~쓔! 땅! 땅! 특~슈가! 파~앙!!!!! 」흉내 낼 수도 없는 괴상한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척 바닥으로 엎어지는 모션의 춤동작을 보여주는 형들을 보며 재밌다고 깔깔깔 거리는 꽤나 맑은 웃음소리가 대기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재중과 창민이 도착해서 인사를 나눠도 이미 댄서형들과 TV속에 나오는 가수에게 정신이 팔렸는지 안무가 아닌 율동을 TV를 바라보며 따라 하기 시작했다. 「 빰빰빠암~♪ 빰빰빰~~♬ 우뚜뚜~~♩ 빰빰빰~~♪ 」순식간에 소녀시대 노래가 태아시대 동요로 둔갑되기 시작했고, 이런 녀석의 안무가 꽤나 귀여웠는지 너도나도 이런 손주가 실제로 있는 할아버지 마냥 녀석을 지그시 바라보며 잔잔한 미소배틀을 하고 있었다. 노망은 들어도 마음은 살아있다는 무개념적인 이론이 가득한 노인네들이 분명했다. " 쟤 취한 거 아니야? " 마스크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자마자 옆에 앉아있던 댄서형이 내게 물었고 그 말이 순간 크게 와 닿아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순간 저 모습이 재정신인데 술 먹으면 어떻게 변할지 상상을 해보자, 존나 무서운 거였다. 상상력은 언제나 나를 비겁하게 만든다. 이딴거 개나 줘야지. 리허설에 취해 너도나도 쓰러져있던 대기실에는 정신지체아급 생기발랄한 기운이 샘솟았고, 여전히 춤 삼매경에 빠진 녀석은 옆에서 창민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 모습을 보고 따라 웃으며 말했다. " 참미나.. 나 왜 불렀어? 빰빰빰~~♬ " " 어제는 저보고 9번방에 들어오라고 했으면서, 형 왜 8번방에서 게임 하셨어요? " 부른 이유가 너무 고급스러워서 눈물이 나려했다. 씨발 줏대 없는 내 눈물. 녀석은 금세 지쳤는지 동작을 멈추고 자기보다 눈높이가 한참 위인 창민을 애처롭게 올려다보며 앙상한 팔을 들어 창민의 어깨를 툭- 툭- 가볍게 치더니 장례식 때 조문 온 사람처럼 안타깝게 창민을 위로하며 말했다. " 내가 9번방 가면.. 네가 지잖아. " "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흘러나옵니까? " " 나는 엉덩이, 참미니는 입술, 영웅이는 어색한 입꼬리?, 그리고 쟤는.. " 방향을 틀어 조그만 손가락으로 나를 가르쳤고 앙증맞은 입술과는 다르게 재수 없는 말만 쏙 분리수거 해서 말했다. 저걸 그냥 확! " 이마!!! " 혼자서 헤실헤실 웃으며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꼴이 사뭇 귀엽다고 느껴져 얼른 시선을 피했고, 주머니에 제대로 들어있는 라이터를 확인하고 답답해진 대기실을 나와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스텝들을 뚫고 비상계단 표시가 있는 문을 열었다. 담배생각이 간절했다. 코끝으로 알싸한 담배향이 흘러 나갔고, 빈 속 때문인지 오늘따라 독한 담배 맛이 폐로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꽤나 만족스럽다고 느끼고 있던 찰나에 비상구 문이 열렸고, 그 틈으로 분홍색 마스크를 한 김준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넌 왜 따라와. " 야. 너 왜 저번부터 나 쌩까? " 맞다, 너 다 참아도 궁금한 건 못 참지. 녀석의 말을 무시한 채 빠르게도 줄어드는 담배 필터를 다시 깊게 빨아들였고 입에서 느껴지는 씁쓰레한 맛이 혀의 돌기 하나하나 단단하게 스며들었다. 으.. 속 쓰려. " 나랑 보기도. 말하기도. 싫은 거면 지금 말해. " " 말하면? " 싸한 음성이 비상구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자, 녀석이 당황해했다. " 뭐.. 뭐긴 뭐야. 내가 너 안보는 걸로 하면 되지. " 순하고 여리게 생긴 얼굴과는 다르게 녀석은 언제나 상처 되는 말을 동반해서 아찔하다는 생각을 곧잘 했었다. " 안보면 그만이다? " " 아..아니 그러니까, 내말은 그거슨 니가 기분 나쁘게 내 눈 피하고.. 이렇게 자리도 피하고. 내가 말 걸면 무섭게 째려보고.. 처음에는 내가 너 자꾸 놀려서 삐졌나 했는데 삐진 사람치고 너무 밴댕이 속이고 또.. 또 사람 헷갈리게 스토커처럼 문자하고 전화했으면서 저번부터는 안하 길래.. " " 그래서? " 이쪽저쪽으로 흔들리는 눈동자 때문에 녀석의 산만한 감정이 그대로 비춰졌고, 정말로 도대체 이유가 무엇인지 꽤나 고민 좀 했던 모양인지 답답하단 듯이 허술하게 주절거리며 내게 이유를 설명하라고 재촉했다. 그래. 나도 몰랐는데 니가 어떻게 알겠냐. 같이 삽질이라도 했으면 내가 속이라도 후련했지. " 또. 또! 째려본다. 뭐야 대체? 그렇게 노려보면 니가 어쩔껀데! 어쩔 거야!! 눈으로 시비 걸면 내가 알아쳐먹냐?? 니가 왜 그러는지 내가 알아먹어야 하냐구!!! 왜 계속 사람 신경 쓰이게 눈으로 말해!!!!!!!!!!!!! 너 주둥이 나불나불 잘하잖아 그거! 잘난 주둥이 확 열어!!!! " 녀석 답지 않은 흥분된 모습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고, 꽁꽁 싸매놓았던 삽질의 억울한 감정들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래! 내가 원하는 게 이거라고! 나만 너때문에 고민한 거 그거. 그거! 그게 제일 못 견디게 짜증났는데, 너도 나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뭐 조금이라도 해줬다고 생각되니까 이제 좀 웃음이 나온다. 나 이제 좀 살겠다! 슬슬 고집은 그만 피우고 놀리는 척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럽게 원래 상태로 복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귀청 떨어져. 입 좀 다물어. " " 나는 너 같은 애. 제일 싫어. " 으..응?? 왜! " 나 같은 애가 어떤 애야? " ㅇ..야.. 째려보지 마.. 존나 무서워. " 조증. 자폐증. 실어증. 다 제멋대로!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이유 없이 나 무시하면 다신 너 안 봐. 난 너 하나도 안 아쉬워! 됐어!!!! 이제 철수랑만 놀 거야! 우리 집에 철수 데리고 올 거야!! 너 다신 우리 집에도 오지 마!! " 녀석의 흥분된 말에 정말로 내가 흥분돼서 기분이 나아진 건 사실인데, 정말로 도대체 내가 왜 자기를 무시하고, 극과극 행동을 선보였는지 알 길이 없었던 녀석은 꽤나 며칠 동안 심각했던 모양인지 어울리지도 않은 심각성 플러스 진지함을 무기로 삼아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고, 점점 얼굴이 빨개지고 씩씩 거리는 숨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빨라지고 부들거리는 몸이 보이고 눈가에 그렁그렁 차오르기 시작한 눈물에 모든 털이 위로 솟아 오른 것처럼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어..어..?? 내가 원하던 스토리가 이 방향이 아닌데.. 너가 진지해지면 내가 곤란해지는데.. 아..닌데 이거.. 당황한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흔들리는 녀석의 동공을 바라보았고, 정말로 화가 단단히 났는지 이내 미련 없이 돌아서는 등이 너무 무서워 얼른 팔을 잡아 돌려세웠고, 진심으로 미안해져 녀석을 꽉 안아버렸다. 쿵, 쿵, 쿵, 씨발 기계 또 돌아가네. " 야..야! 아니야. 그런 거. 씨발 왜 화를 내고 그래. 아니 나는.. 그냥 너가 하도 재수 없게 나 놀려대길래.. 그냥. 그냥. 나도 그게 어떤 희열이 있는지 테스트도 해볼 겸.. " 거짓말. " 그냥 너 코스한거야. 너도 당해봐야지 내 속을 알거 아니야. " 아무런 미동 없이 내 품안에 한가득 안긴 녀석이 놀랍게도 내 허리를 꼬옥 안아왔고, 순간 당황한 나는 맨발의 기봉이처럼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효자 납셨다. " 지..지겨워져...서.. 그..그런 거 아니야. 그렇게 오해했다면 내가 미안해. 안 그래도 오늘 너네집 놀러 가려고 했어. 진짜야. 진짜 그러려고 했었어. 통닭도 시켜주려고 그랬어. 정말로. 진짜. " 가슴에 맞닿은 녀석의 이마는 여전히 미열상태였고, 아직까지 온 몸이 뜨끈뜨끈한걸 보아하니 나보다 심한 감기를 혼자 앓았던 모양이었다. 순간 그 큰 집에서 혼자 누워있을 모습이 그려지자 정말로 미안한 마음이 한순간에 나를 몰아쳐서 가득 안은 팔을 더 세게 안으며 진심으로 미안하단 말을 전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녀석이 내 등을 천천히 힘없이 탁- 탁 치며 말했다. " 내가 저번에 말했었잖아.. 발기부전 담배때문이라구.. 나한테 상담하지 그랬어. " 심최강창민이, 이 개자식!!!! 아니나 다를까 가슴팍에서 킥킥 거리며 웃고 있는 녀석의 등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안고 있던 거대한 팔을 확 풀으며 녀석을 노려보자, 눈물까지 닦아대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여우같은 놈. " 이거 웃겨서 운거 아니야! 아까 슬퍼서 운거야! 진짜야! " " 입에 침이나 바르고 구라까 색꺄! " 메마른 입술에 순식간에 붉은 혓망울이 나와 침을 발랐고, 금새 침으로 반들거리는 입술이 새침하게 말했다. " 이제 됐지? " 이걸 진짜 주먹으로 콱!! 뽀얀 얼굴로 방실방실 헤프게도 웃으면서 내게 말했고, 이내 졸린지 눈을 비비며 내게 말했다. " 나 1주일동안 잠 한숨도 못 잤어. 업어줘. " 뭐. 뭐? " 내가 왜. " " 너 등판 넓잖아. " 난 참 단순했다. 으쓱거리는 어깨를 뒤로한 채 녀석에게 등을 내보였고, 껑충 뛰어서 내게 업힌 녀석이 졸린 음성을 흘리며 말했다. " 오늘 우리 집에 와. " " 알았어. 자 빨리. " 1분도 지나지 않아서 정말로 마술처럼 곧바로 내 등 뒤에서 잠이 들었고, 쾌쾌한 비상구를 빠져나와 대기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녀석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아는 척하며 볼을 만지고 얼굴을 만지고 지나갔다. 이 씨발 쇼타콤 변태새끼들이. 돈 내고 만져!!!!!!!!!! § AN2잡지의 수많은 효과 중에서도 가장 달갑지 않은 부작용은 세상의 풍문, 즉 바람처럼 떠도는 동성애자 소문들이 무성했고 이는 즉, 견물생심처럼 언제 어디서나 재중을 탐하고 싶어 안달 난 더러운 시선들 또한 늘어났다는 점이었다.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걸어가며 딜을 거는 스폰서들이 늘어남에 따라 민감해질 대로 민감해진 정실장은 재중의 일거수 일투 속을 한동안 보고받기도 했었다. 대부분은 대기업 간부급 사원들의 출세경쟁에 이용하려던 파렴치한 이유도 있었고, 유명한 재벌가 회장을 시작으로 모델계에도 알아주는 대목들이 주로 더러운 뒷거래를 하려 했다. 대부분 스폰서를 맺으려 했던 사람들 중에 80% 이상은 모두 남자였고, 거절되면 거절될수록 애가 타는지 딜의 가격을 상상 초월할 만큼 늘리기도 했다. 이런 밝혀지지 않은 내부 사정을 전혀 모르는 재중은 심하게는 화장실까지 따라붙는 매니저에 심통이 나 한동안은 단식투쟁을 하기도 했었다. 명성이 자자한 클럽을 과시하듯 넓은 주차장에는 희귀한 수입차들로 빽빽하게 빈자리 없이 채워져있었고, 긴 모퉁이를 지나 폭발할 듯 시끄러운 클럽 안으로 들어선 재중은 고막을 울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저절로 인상을 구겼다. 모든 게 심통이 난 표정이었다. 두 달 만에 만난 종만 작가의 모습은 처음과 다르게 많이 깔끔해진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지저분하게 자리 잡은 수염은 없던 냄새도 고약하게 풍겨져오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이번 잡지의 발행을 기념하는 파티가 마련되었고, 원래 스케줄대로라면 이곳에 함께 동행하기로 했던 정실장이 2시간 전, 아버지의 긴급한 호출로 본가로 급하게 내려간 상태였고, 윤호대신에 상철과 함께 파티에 동행한 재중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삐쭉 내밀고는 지루하게 파티에 억지로 참석해 울상을 짓고 있었다. 재중은 허벅지 라인이 그대로 보이는 흰색 면바지 위에 라인이 예쁘게 자리 잡힌 목덜미와 앙상한 쇄골이 들어나는 V넥 검정색의 큰 스웨터를 입었다. 그리고 하얀 목을 타고 내려온 목걸이에는 십자가 모양의 펜던트가 반짝 거렸다. 긴 테이블 의자 위로는 그동안 유명한 잡지 매체를 통해 얼굴이 익숙한 모델들과 이름 좀 꽤나 알렸다하는 내놓라 하는 유명한 인사들로 채워져있었고, 꽤나 그럴싸하게 격식들을 차린 모습들이었다. 시끄러운 클럽 안에서도 창백할 정도로 초연하고 차분한 모습으로 나타난 재중의 등장으로 여러 사람의 눈들이 교묘하게 반짝거리는 시선을 아주 쉽게도 느낄 수 있었다. 상철과 나란히 자리를 잡은 재중은 아직도 심통난 입술이 들어갈 기미가 없었고, 애꿎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이런 파티에는 관심도 없단 듯이 정실장에게 문자 보내기 바빴다. 「 혀엉. 언제와? 나 발 시려. 여기 추워. 」정실장이 가장 민감한 소재를 귀신같이 잘 알고 있는 재중은 답문자를 재촉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진동이 울린 핸드폰을 바라보며 내 이럴 줄 알았어.. 라는 표정으로 희미하게 웃기 시작한 재중이 손을 가려 목소리를 최대한 작게 말하기 시작했다. " 혀엉.. 언제와? " 실내였던 모양인지 시끄러운 클럽과는 다르게 아주 조용했다. " 또 맨발로 갔지. 아버지랑 이야기가 좀 길어졌어. 많이 늦을 것 같은데. 일단 아무대서나 졸립다고 잠들지 말고. 음식 주는 대로 아무거나 먹지 말고. 화장실도 혼자 가지 말고. 상철이랑 꼭 붙어있어. " " 응. 빨리 와서 나 좀 데려가. " " 어. 그래. " 클럽 안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가 되었다. 위세에 어깨가 펴진 자와 위세가 한껏 꺾여 술만 퍼붓는 자들. 재중은 슬슬 지겨워진 파티 분위기에 저절로 한숨이 늘어갔고 중간마다 잡지 이야기를 꺼내며 이것저것 사는 곳이 어디냐, 무엇을 좋아하냐를 시작으로 몸매 관리에서 트레이너 담당자, 애인이 있는 질문까지 뭐가 그리도 궁금한 게 많은지 너도 나도 자리를 옮겨가며 재중에게 질문세례를 퍼부었고, 한쪽켠에서는 이미 취할 대로 취한 남녀들이 서로 엉켜 뒹굴다 싶이 눈살 찌푸려지는 행위들을 펼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격식 꽤나 차린 파티처럼 신사답게 굴었던 사람들이 본색을 드러내듯 아무렇지 않게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의 부끄러운 행위들을 장소 가리지 않고 하기 시작했고 첫 만남부터 훌러덩 옷을 벗어젖히는 남녀들을 바라보며 크게 놀란 재중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눈동자를 어색하게 굴리고 있었다. 때마침 낮에 먹은 음식이 제대로 체했던 모양인지 상철은 룸에 붙어있는 화장실을 들락거리기 바빴고, 정말로 식은땀까지 흘려대며 고생하는 매니저에게 귓속말로 근처 약국에서 약이라도 사먹고 오라며 상철을 걱정했다. 안절부절 하던 상철도 몰려오는 토기와 어지러운 머리가 감당이 안되었는지 금방 다녀오겠다고 클럽을 뛰다시피 달려 나갔고. 여전히 어색하기만 한 자리가 너무 생소하고 기분이 나빠져서 몇 시인지 정실장이 도착할 시간을 체크하던 재중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오렌지 쥬스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때마침 도착한 문자에는 유일한 구원자처럼 반가운 창민이 「 어딨어요? 나 클럽 왔는데, 형 여기 있다면서요. 룸이예요? 」 금세 밝아진 얼굴을 한 재중은 꽤나 이곳이 거북했던 모양인지 메마른 목을 축이며 큰 잔에 가득 담겨진 쥬스를 목울대를 움직여가며 쉬지 않고 마셨고, 핸드폰을 들어 창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 형!! 어디예요?? " 창민을 날을 잡아서 곡을 쓰다가도 작업이 진행되지 않은 오늘 같은 날이면, 혼자 오토바이를 끌고 인근 클럽에 혜성처럼 등장하곤 했다. 어느 날인가는 춤도 안 추고 클럽 안에서 혼자 콜라를 양주처럼 쓰게 마셔가며 진지한 표정으로 심각한 고뇌에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있는 창민을 발견한 유천이 소름이 돋는다며 그런 창민을 피해 클럽에서 도망친 적이 있었다. 알콜없이 클럽에서 5시간을 족히 버티는 인간은 저 새끼가 최고라며 자주 언급하곤 했었다. 좀 특이한 정도가 아니고, 가끔씩은 모두들 창민의 뇌구조를 의심하기도 했었다. " 으응.. 창민아. 나 여기? VIP룸. 빨리 와아! " " 정실장님은요? " " 일이 생겨서 늦는대에.. " " 말끝 늘리는 거 보니까, 뿔난 게 눈에 훤하네요. "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재중이 짜증이 나는 듯 볼멘소리로 말했다. " 나.. 집에 갈래. 여기 이상해. " 축 늘어진 재중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는지 창민은 알았다고 전하고 통화를 끝냈다. 이제야 안심이 된 재중은 핸드폰과 상철이 두고 간 지갑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순간 크게 휘청거리는 몸을 감당하지 못한 채 다리가 부러진 새처럼 픽- 원래 제자리로 쓰러졌다. 순간 진정되지 않은 놀란 가슴에 손을 얹었고, 커질 대로 커진 두 눈에는 당황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던 중 옆 사람과 한참 대화중이었던 패션 디자이너 박선생이 테이블 위에 비워진 쥬스잔을 보며 재중을 바라보았고, 동시에 눈이 크게 떠지며 당황해 하기 시작했다. 곧바로 금방 시끌했던 룸안에 싸한 정적이 맴돌기 시작했고 너도나도 분주하게 움직이던 몸을 멈춘 채 재중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나쁜 기운이 몸에서 맴돌기 시작한 재중은 뭔가 큰 사단이 생긴 것처럼 몸을 떨어대기 시작했고, 이제야 상황파악이 된 박선생이 재중의 어깨를 크게 흔들며 다급하게 물어봤다. " 재중씨 여기에 있던 쥬스 혹시 다 마..마신 건 아니죠???? " 반짝이는 눈빛과 불안한 눈빛들이 재중의 머리위로 서로 얽혀있었고, 이유도 모른 채 대답을 닦달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무서움을 느낀 재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목.. 말라서.. " 때마침 룸문을 열고 들어온 창민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빠르게 감지했고, 하얗게 질려있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오르기 시작한 재중과 창백하기만 했던 앙상한 몸들이 작은 진동을 느끼며 서서히 떨기 시작했다. 그런 재중의 모습이 포착된 창민은 눈을 크게 키우며 불안한 듯 입을 열었다. " 뭐야, 왜 그래요? 무슨 일이예요?? " 점점 벌벌 떠는 행동이 심해지기 시작한 재중은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고, 서서히 가빠지는 숨소리에 스스로 놀라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히끅.. 히끅.. 옆에서 아연 질색한 박선생이 그제야 입을 열었고 저 발밑에서 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짜증에 정리정돈 잘 된 머리를 험하게 헝클어뜨린 창민이 덩달아 아연 질색해졌다. " 아 저기 그러니까, 아까 백작가가 쥬스에 백터샷을 탔었는데.. 아.. 그게 나눠 마신다고.. " 일순간 표정이 싸하게 굳은 창민이 어이없단 듯이 웃으며 말했다. 서늘한 공기가 밀물처럼 밀려들어오는 순간이기도 했다. " 용량은 몇 미리 입니까? " " 한 병에 30ml 정도..로 알고 있는데.. 그게.. " 재중이 비운 쥬스컵의 용량을 가늠해본 창민의 얼굴이 순식간에 구겨지기 시작했고, 이를 악물며 살펴보던 잔을 노려보며 말했다. " 이 잔에, 그럼 몇 병을 넣으신 거죠? "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는지 한참동안 머뭇거리던 작가의 행동에 매우 화가 더 치밀어 올라왔는지 손에 꽉 쥔 쥬스잔을 테이블 위로 곤두박질치듯 세게 던진 창민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아 씨발!!!! 그러니까 몇 병 쑤셔 넣었냐고!!!!!!!!!!!!!!!!! " " 아.. 그러니까.. 족히 8병은 될 것 같은데요.. " 다시 한 번 머리를 쥐뜯은 창민이 터져버린 화가 감당이 안 되는지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지 못한 채 그 주변을 빙빙 돌아가며 성분과 용량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 그러니까, 백터샷 240ml를 한꺼번에 복용한 셈이네요. " 입에서 달라붙은 씨발 소리가 떠나지 않은 창민은 사색이 된 얼굴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당황해 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참기 힘들다는 듯 테이블 위에 놓여져있는 양주병들을 이리저리 집어 던지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 이 씹새끼들아!! 최음제 대량으로 먹이면 씨발. 다 홍콩가는줄 아냐? 얘처럼 폐기능 약한 사람들은 그냥 저 세상 가거든? 이것 때문에 무슨 일 생기면, 여기 룸안에 있는 당신들 내가 가만 안 둬. 불법 최음제를 사용하면 어떤 식으로 법 안에 판결 받는지 내가 두고 보겠어. 내가 다 쳐 넣을 거라고!!!!!!!!!!!!!!! " 창민의 말에 이제야 자신이 먹은 쥬스에 최음제가 대량으로 섞여져 있었다는 사실을 안 재중이 이상해진 몸의 이유가 꽤나 치욕스러워져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창민은 일단 핸드폰을 들어 정실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통화가 연결되자 다짜고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긴급한 상황을 알렸다. " 실장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곧바로 오셔야할 것 같습니다. " § 재중은 너무 빠른 조산으로 25주 만에 850g으로 태어난 엄청난 미숙아였다. 체중이 2.5kg이 못 된 채 태어난 아기들은 대부분 젖을 빠는 힘이 약하고 감염에 대한 저항력도 약해서 사망률이 높았다. 아직 제대로 된 폐기능과 흑인처럼 새까맣기만 덜 자란 피부는 아이의 심각성을 알려주기도 했었다. 재중의 어머니는 세계에서 유명한 대량의 속옷브랜드를 창시한 디자이너 김재희씨였다. 1년 6개월 만에 파혼을 당한 그녀는 아이에 대한 각별한 모성애가 강한 여성이었고, 아이에게는 평생 상처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기증된 정자은행의 시험관 아기시술을 통해 재중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임신된 상태에서도 많은 업무들을 무리해서까지 소화하고 있었고, 임산부로써는 무리한 일정 때문이었는지 아이는 너무나도 빠르게 엄마 곁으로 어느 날 찾아왔다. 꿈에 그리던 소중한 아이가 미숙아로 태어나자, 모든 걸 잃은 사람처럼 큰 상실감에 빠진 그녀는 중요한 모든 업무를 뒤로 미룬 채 1년 동안을 아이에게 모든 시간을 지극정성 쏟아 부었다. 아이 곁에는 24시간 동안 아이의 호흡기를 체크해줄 간호사들을 무리해서 여럿 채용했고, 입원해 있는 동안 병원에는 보다 좋은 시설들을 손수 기증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낸 아이에게 잔인하게도 꽂아져 있던 수많은 주사바늘과 호흡기가 떨어지는 날이 다가왔고, 그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그녀는 건강해진 아이를 처음으로 인큐베이터에서 꺼내 품안에 가득 끌어안고는 한참을 울어야만 했었다. 수유연습을 통해 아무 이상 없는 아이의 모습에 엄마는 소소한 행복을 알게 되었고, 외롭게 혼자 병원에 들어와 둘이 돌아가니 생에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이 보다 없을 거라고 확신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태어난 재중에게 엄마는 각별한 애정만큼이나 다칠까, 깨질까, 아플까, 애지중지 귀한 아들로 키워지기 시작했고,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 한 번도 집밖을 나간 적이 없었던 재중 곁에는 도우미 아주머니와 24시간 자신을 지키고 있는 경호원이 전부였다. 그러던 중 재중이 어느 정도 학교생활에 적응해 나가자 안심이된 엄마는 몇 년 동안 미루었던 해외일정들을 하나씩 처리하기 시작했고, 어떤 해에는 1년에 2번 정도 아들의 얼굴을 볼 정도로 엄청난 스케줄에 치여 있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든 아들과의 대화를 미루지 않는 애정 표현에 있어서는 누구에게 뒤지지 않은 엄마임은 분명했다. 서로 얼굴을 못 보게 되는 시간만큼 그들은 엄마와 아들간의 존재에 대해 연애를 하는 사람처럼 새삼 더 애틋해질 정도였다. 그렇게 늘 엄마를 그리워하며 지내게 된 재중은 명문 고등학교를 들어가자마자 남들이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환경 속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들을 그제야 하나씩 깨닫게 되고, 언제나 아픈 사람 취급하는 엄마의 극심한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채 한 장의 편지와 함께 17년 만에 홀로 집 밖을 나서게 되었다. 편지는 간결했지만, 정확한 내용들뿐이었다. 「 맘. 나 지금 가출해요. 나 지금 너무 건강하니까, 걱정하지마세요.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요. 저 빨리 돌아올게요. 맘. 보고 싶은 만큼 사랑해요. 아주 많이. 」 §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당신이 고스란히 걸어온 길을 윤호에게 강요한 아버지는 윤호가 원하지 않았던 법학대학교에 원서를 냈고, 뜻하지 않게 합격통보가 되자마자 집을 뛰쳐나온 윤호는 곧바로 군 입대를 결심했다. 그렇게 2년을 한 번의 휴가 없이 군생활을 마무리했고, 제대를 하자마자 그 당시에는 상당한 반열에 오른 검사집안 이력 때문에 그런지 절대 당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은 윤호의 아버지는 또다시 윤호에게 검사의 길을 강요했고, 보다 못한 윤호는 23살 나이에 집을 나서게 되었다. " 혀엉.. 이 껌 좀 사주 세요. " 윤호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형 소리가 저절로 붙어서 나오는 녀석을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 그게 얼마야? " 무언가 골똘히 생각을 하는 모양인지 눈동자가 미묘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이내 생각이 났는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 27만원이요. " 껌 하나에 27만원이라고 아무 무리 없이 대답하는 녀석을 어이없게 바라보며 윤호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고, 이와 같은 가격측정에 궁금함을 느낀 윤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 그 돈으로 뭐하게? " " 여기서 자려구요. " 여의도에서 20분 거리인 남산에 위치한 그랜드 하얏트 호텔의 스탠다드 싱글룸 값은 27만원 정도였다. 서울로 올라와 이 호텔에 묵고 있었던 윤호는 오랜만에 서울로 올라오신 어머니를 레스토랑에서 뵙고 언짢은 기분으로 다시 룸으로 올라가려던 찰나에, 아주 곱상하게 생긴 아이가 레스토랑 입구에서 쭈그려 앉고는 무턱대고 윤호에게 풍선껌 한통을 내밀었고, 차림새를 보아하면 분명 VIP손님으로 이 호텔에 자주 투숙하는 손님으로 보였지만, 그런 겉모습과는 다르게 얼굴은 며칠 굶은 사람처럼 피골이 상접해서는 가뜩이나 뽀얀 피부가 하얗게 질려있기까지했다. 배가 고픈 모양인지, 어디가 아픈 건지 쭈그리고 앉아 있던 아이의 시선을 따라 같이 몸을 낮춘 윤호가 아이의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쳐다보며 말했다. " 내가 그 껌. 사줄 것 같아?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천진난만하게 아이가 웃어버렸고, 활짝 휘어진 반달눈을 보자마자 저절로 손이 올라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은 윤호는 아이의 손을 잡으며 아이를 천천히 일으켰다. " 따라와. " 재중은 여러 번 하얏트 호텔 레스토랑에서 도우미 아주머니와 경호원과 자주 이곳의 음식을 먹으러 온 적이 많았고, 이 장소 외에 다른 곳을 가본 이례가 없는 재중은 집을 나와서도 이곳을 당연스럽게 먼저 찾아왔고, 무작정 집을 나선 재중의 주머니는 4만원이 전부였다. 나오자마자 택시를 잡아타서 뱉을 수 있는 말은 고작 ' 하얏트 호텔로 가주세요 ' 라는 말뿐이었다. 그렇게 돈을 택시비로 써버리고 남은 주머니에는 고작 풍선껌 한통이었다. 재중에게는 낯설지 않은 유일한 장소였고, 잠을 잘 곳도 이곳밖에 없다고 생각한 재중은 무턱대로 껌 한통을 27만원에 팔기 시작했고, 이런 겉모습이 멀쩡한 재중을 어이가 없단 듯이 지나치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눈을 마주치고 자신의 손을 잡아준 윤호가 처음부터 무섭지 않았던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재중은 윤호가 투숙하고 있던 호텔방을 빌려 쓰게 되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음식을 주고 잠을 재워주는 윤호의 등만 졸졸 따라다니던 재중이 급기야는 윤호가 연습하러가는 안무실까지 따라나서기 시작했다. 너무 어릴 적에는 처음 만나는 세상이 온통 같은 모습들이라 신기한 마음도 두려운 마음도 재중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홀로 집 밖을 나서고, 처음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처음으로 타인과 대화를 하고 밥을 먹게 된 재중에게 그 시간들은 묘한 설렘으로 크게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마치 동화 속 이야기처럼 아직까지도 존재하고 있었다. 동화는 많은 시간들이 지나도 절대 녹슬지 않은 진리처럼 담겨져있었다. 평생 절대로 놓지 말아야하는 소중한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재중은 자연스럽게 체육시간을 참여하지 못한 채 텅 빈 교실에서 운동장을 뛰어노는 친구들을 부럽게 지켜보는 게 일이었고, 이런 재중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일부의 친구들은 재중에게 ' 넌 왕자병도 아니고 황제병이야 알고 있어? ' 라는 비꼬는 말들을 서슴지 않게 말하기도 했었다. 운동장을 신나게 뛰지도 못했고, 방과 후에 친구들과 놀지도 못했고, 소소하게 청소시간까지 구애받은 재중에게는 언제나 집안의 생활이 전부였었다. 그런 재중에게 윤호는 춤을 알려주고, 연습실의 쾌쾌하지만 열정적인 공기를 선사해주고, 보장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여러 사람들의 설레는 눈동자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런 사람들 속에서 함께 동요되기 시작한 재중은 저 멀리서 윤호의 안무를 따라 하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가빠지는 숨소리에 크게 놀라 움츠리기 바빴던 몸이 어느새 땀을 배출해내며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자신의 몸에 대해 자신감이 생기자, 그제야 떠오르는 얼굴은 엄마였다. 재중이 가출하자마자, 집안이 도둑이 든 것처럼 발칵 뒤집혀졌고, 이 소식을 듣자마자 한국으로 귀국한 재희씨는 갓난아이가 유괴당한 엄마처럼 온갖 시설과 연락망을 동원해 재중을 애타게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 24시간을 악몽처럼 지내던 그녀에게 보란 듯이 나타난 재중은 자신의 잘못이 얼마나 컸는지 엄마의 흔들리는 동공과 마른 입술을 통해서 알았고 보자마자 자신을 꽉 안은 채 처음으로 엉엉 소리 내어 우는 엄마의 마른 등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 맘. 나 이제 정말 많이 건강해. 나 숨이 헉헉 차올라도 이젠 무섭지도 않고, 막 뛰어다녀도 무리 없을 정도로 정말로 괜찮아. 나 밖에서 춤도 추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새로운 음식들도 먹고 그랬는데.. 이것 봐. 나 정말 괜찮아. 맘이 날 너무나 건강하게 낳아줬는데.. 내가 그동안 마음이 너무 약했었나봐. 이렇게 훌륭하게 나 키워줬는데 미안해. 내가 너무 많이 미안해. " 처음으로 끝까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 아들의 모습을 본 엄마는 아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윤호를 집으로 초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고, 재중에게 이런 병역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던 윤호였지만 표정은 고요하다 못해 평온하기까지 했었다. 그렇게 재중은 엄마의 손에서 벗어나 윤호의 보호아래 설레는 꿈을 갖게 되었다. 재중은 남들과는 다르게 아주 느린 동화책을 이제야 읽게 되었지만, 진부한 인생이 되었을법한 자신의 인생을 걷어찰 수 있는 용기를 준 윤호에게 언제나 깨지지 않고 영원한 인연을 마음속으로 약속하기도 했었다. §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재중에게 최음제와 같은 백터샷 약들은 치명적인 독성으로 매우 위험했다. 1회 15ml이 적당량인 약을 15배 이상 대량으로 복용한 게 결정적인 이유기도 했다. 그 정도의 양이면, 일반사람들에게 까지도 굉장히 위험한 부작용이 생기는 일인데, 폐기능이 약한 재중에게는 그야말로 쾌감을 떠나서 호흡하기 힘든 고통을 동반해야만 했다. 창민의 말 그대로, 홍콩 가려다 저세상 가게 되는 격이나 다름이 없었다. 백터샷의 성분은 대부분 요힘빈으로 교감 신경의 흥분 효과를 차단하는 성분으로 대량 투여하면 피부나 점막의 혈관을 확장시키므로 보통 최음제로 쓰였다. 하지만 흥분 작용이 너무 강하면 신장장애를 일으킬 만큼 위험성이 있었다. 백터샷의 성분을 알아본 창민은 대처할 방안이 없는 약물에 화를 억누르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재중을 급하게 업어 정실장 오피스텔로 향했다. 오피스텔을 향하는 도중 사색이 된 재중은 입술을 잘근 잘근 깨물거나 길지도 않은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고, 주체할 수 없이 빨라지는 호흡에 크게 놀랐는지 덩달아 크게 뛰는 심장박동수 때문에 정신까지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모범택시를 잡아타 오피스텔을 향하면서 정실장에게 전화를 건 창민은 그제야 자초지종 설명하기 바빴다. 흥분을 예상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싸하게 내려앉은 음성은 창민과 다르게 침착함이 묻어 나왔다. " 정실장님, 그럼 재중이형 바꿔드릴까요? " 옆에서 안절부절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재중을 조금이라도 안심 시켜주기 위해 말을 했지만, 윤호는 냉정하게 이를 저지했다. " 됐어. 울기 시작하면 더 위험해. " 답답한 듯 머리를 긁적이던 창민이 씩씩 분노에 찬 숨소리를 내쉬고 있었고, 정실장도 급하게 이동하고 있던 도중이었는지 여기저기서 클락션 소리가 핸드폰을 통해 전해져왔다. " 일단, 오피스텔 들어가면 침실 왼쪽 선반밑 서랍 열어보면, 휴대용 산소기 들어있거든? 그거 숙소에서 쓰는 거랑 동일한 제품이야. 그거 작동시키고 애 일단 호흡하기 편하게 가슴 두들겨줘. " " 제가 봤을 땐, 경련도 예상되는데요. " " 지금 분명 입술 깨물고 있을 거야. 혹시라도 경련 일어나면 입술 뜯으니까 입에 수건같은거 물려주고 벨트 하고 있으면 풀어놔. " 예전에 한번 콘서트 준비로 무리한 연습을 한 재중에게 처음으로 호흡곤란과 함께 경련이 일어났고, 당황한 멤버들과 옆에서 간단하게 조치를 취하는 창민을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윤호는 꽤나 많이 놀란 눈치였다. 그 이후로 재중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하나도 빠짐없이 공부했고, 언제 어디서나 이런 긴급한 상황이 예고 없이 터지면, 곧잘 대응하기도 했었다. " 빨리 갈 테니 재중이 잘 부탁한다. " 고요했던 정실장의 목소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떨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창민이 누구와 통화를 하고 있는지 알기 시작한 재중이 기어이 꾹 참고 있던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통화가 끝나자마자 울기 시작한 재중의 모습에 크게 당황한 창민은 등을 토닥이며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지금 재중에 필요한 건, 엄마도.. 호흡기도 안정제도 아니었다. 오로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손을 잡아준, 정윤호만큼 고통에 무방비한 상태는 재중에겐 없었다. | 집에 오라는 말, 진짜 간떨리게 좋았던 거, 너 알고 있었어? | My Melody w. 킵 * * * 모든 동물에게는 눈물을 만들어내는 기관들이 신체에 존재하지만, 사람들과는 다르게 단순하게 눈에 수분을 주기위한 청결유지 용도로 사용되는 게 보통이다. 흔히 감정 표현으로써, 눈물을 흘려보내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사람밖에 없다고 알고 있었다. 말 그대로 녀석이 지금 내 눈물을 개 취급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다 나는. 미묘하지만 정확하게 흔들리고 있는 녀석의 불안한 눈동자를 난 보았고, 또 이상하게 몸이 제대로 감기에 걸린 건지, 마음이 불안한 건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난 줏대 없이 양쪽 볼을 타고 흐르는 엄청난 눈물을 막을 힘조차 없었다. 꺼이꺼이 울고 싶을 정도로 몸도 이상했고 그만큼 마음도 크게 일렁거렸다. 녀석의 감정을 읽어야할 눈에 예고 없는 가뭄도 비웃고갈 홍수사태가 벌여졌고, 그로인해 녀석의 동공 크기가 새끼 강아지처럼 꽉 차게 보여 녀석의 감정을 쉽사리 읽어 내릴 수가 없었다. 순간 나는 막 태어난 강아지처럼 곁에서 숨 쉬고 있는 어미의 냄새와 촉각만을 의지한 채 하루하루를 버텨가고 있는 나약한 동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런 개 같은 상황이 정말 나에게 일어났다. " 믹키양.. 엉아가.. 하-암.. 내일 너라주우울게에.. " 어느덧 동쪽 하늘이 훤하게 밝아 오며 동이 트고 있었고, 나는 눈물의 의미가 뭔지 몰라 당황해 하고 있었고, 이 와중에 주인노릇하기 바쁜 녀석은 내 눈물을 청결함을 위한 수분취급을 했고, 내 머리카락을 한번 쓸어주더니, 마치 내 목 언저리에 자신의 학번이 적혀있는 학생처럼 자리를 다시 잡아 위로 기어 올라왔고 익숙한 체향이 가져다주는 안락함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내 코끝에 녀석의 입술이 닿음과 동시에 희미한 ' 쪽 - ' 소리와 함께 녀석이 다시 잠들었다. 곧바로 내 가슴과 녀석의 가슴이 맞닿아지자, 급격이 빨라진 내 심장박동수와는 다르게 녀석의 심장은 고요하다 못해 평화롭기까지 했었다. 이 모든 게 당황스럽고 서럽기까지 해서 자고 있는 녀석의 마른 등을 두 팔로 꽉 안았다. 그리고 떨어지는 눈물을 손으로 훔쳐가며 한참을 그렇게 녀석의 마른 등을 쓸어내며 아침을 맞이했다. 불안하게 닿은 마음이 당황스러우면서도 설레면서도 그런데도 자꾸만 눈물이 나는 그런 이상한 날이었다. § 현장에서 느꼈던 소름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던 수많은 사람들의 귀 역시 예외는 아니었는지, 녀석이 방송에서 보여준 노래의 파급효과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방송이후 각종 포털 사이트 인기검색어에서 늘 상위권에 1주일 내내 맴돌았고, 녀석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로 정확하지 않고, 소문만 무성한 정보들이 인터넷에 진짜처럼 판을 치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방송국에서 녹화를 하는 날이면 방송을 봤는지 녀석에 대해 물어보는 연예인들과 PD들부터 각종 예능프로의 작가들이 바쁘게 지나가던 내 팔을 잡고 개인정보를 구하기 바빴고, 예외 없단 듯이 유명한 기획사부터 듣보잡 기획사까지 모두 녀석에게 달려드는 통에 며칠 동안 상관없는 우리 기획사의 연락망이 바쁘기도 했었다. 식상하게 말하자면, 숨겨놓은 연습생 아니냐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난 지독한 열병처럼 1주일을 꼬박 감기와 고군분투했고, 제 발 저린 도둑새끼처럼 녀석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의 소식들은 꼭 내가 먼저 전화 통화를 하지 않아도 창민이나 재중의 입에서 쉽게 들을 수가 있었고, 그날 내가 옮겨놓은 감기인지 모르지만, 제법 죄책감을 느낄법한 감기를 녀석도 동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난 존나 변태같이 감기 걸렸단 소리 들으니까 그게 그렇게 짜릿하고 좋더라? 감기가 걸린 내내 접근금지령을 내린 창민에게 난 물어볼게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에이즈 환자처럼 취급하는 녀석 때문에 3일 정도는 멀리 떨어져 있어야만 했고, 어느 정도 기침이 사그라지자 그제야 조금 거리를 좁힌 창민에게 난 은밀한 대화가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좌석의 N극과 S극처럼 자꾸만 나를 피해 달아나는 녀석 때문에 대기실 안에서 바로 코앞에 앉아있는 창민을 째려보며 손수 전화를 걸었다. 이산가족이 우릴 보면 존나 아가리 채우고 싶었을 거다. 그런데 우쯔케? 궁금해서 돌아버리겠는걸. " 아~따. 여보쇼? " 씨발놈아, 전라도의 절대군주는 정실장이랬지? 너 그거 하지 마. 얼라야 소름 돋은 내 팔 보여주비까? " 씨발새끼. 너 감기 걸리는 날이 내 생일이다! 새꺄 " 의자에 몸을 추욱 기대더니 팔짱을 끼고 내 눈을 지그시 쳐다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리기 시작한다. 발정난 개새끼도 저렇게 흥분하진 않을 거다. " 주둥이가 간질~ 간질~, 이마는 헌칠~ 헌칠~, 눈빛엔 독이 한가득하시네요? " " 일단 닥치고. 내 질문에 절대 소리 내서 웃기 없기. 약속해. " 호기심 가득한 눈빛이 별똥별처럼 크게 반짝였다가 금세 사라졌고, 흥미진진한 게임을 보는 마니아처럼 자세를 고쳐 잡아 제대로 앉았다. " 절대 소리 내서 안 웃을게요. " 창민이 곧바로 웃지 않기 위해.. 정확히 말하면 비웃지 않기 위해 표정관리를 하기 시작했고 큼- , 큼- 소리를 내더니 진지하게 듣는 척 꼴값을 떨기 시작했다. 잘생기면 얼굴값 한다던데, 저 새끼는 암만 잘생겨도 꼴값만 떤다. " 엄청난 자폭행위지만, 널 믿고 말하겠어. "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내 보이스에 토끼 귀처럼 활짝 열어 집중했고, 최대한 복화술을 이용해 목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작게 말했다. " .. 나 자꾸 안 서. " " .. 말이 너무 짧잖아요. " " 씨발새끼야. 알아들었으면서 되새김질 할래? " 곧바로 창민이 내 눈동자를 피했다. 자세히 보니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소리 내지 말라니까 아주 기를 쓰고 발악한다. 니가 그러면 그렇지. 개새끼. 차라리 지나가는 소나기를 믿지 내가!! " 그래서 저한테 궁금한 게 왜 혈기왕성했던 물건이 갑자기 안 설까 이거예요? " " 어. 설마 나 벌써부터 약에 의존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 눈물 나게 가오 안서는 질문이지만, 정말 궁금해서 물어봤다. 그날은 정말로 그랬다. 눈에 홍수가 내린 이후로 이틀 동안은 지독한 감기 때문에 이불 속에서 아예 나오지를 못했고, 좀 정신이 되돌아오면서 부터는 내 성정체성에 대한 공황상태에 빠져 머리를 쥐어뜯으며 혼동되는 며칠을 패닉상태에 빠져서 허우적거렸고, 그리고 어제는 그제야 진정된 마음을 다시 잡고 오랜만에 알콜섭취로 한껏 기분을 내고 쓰지 못해 안달 난 돈도 써가며, 돈만큼이나 활용하지 못한 내 성욕을 분출하기 위해, 술자리에 함께했던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튼 모델이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나랑 개그코드가 맞아서 대화가 잘 통했는데 결국 그날 밤 그 여자 집에 갔었고, 일단 손 안에 들어온 그날의 손쉬운 이벤트임은 분명한데 이상하게 당당하게 집에 들어섰던 자신감과는 다르게 일단 벗기고 보니까, 흥분된 게 촤-악 가라앉더니 발기조차 되지 않는 거였다. 이미 기집애는 존나 흥분돼서 자꾸만 내 목을 안아대고 몸을 사정없이 비벼대는데. 순간 그게 확! 정떨어지게 짜증으로 몰려왔다. 팔에 소름까지 돋고, 몸도 싸해지고 왜 그러냐는 퉁명스런 말을 뒤로한 채 다시 잊고 지낸 성정체성이 혼란스러워 머리를 쥐어뜯으며 집을 뛰다시피 나왔었다. " 일단 인간의 몸은 산소와 ATP가 없으면, 피로해지는데. 이는 종말단추에서 신경전달물질 생산속도 보다 흥분성 유입속도가 빨라지게 되면, 종말단추에서 과흥분성전압이 남아돌아서 신경에 흥분을 전달하기 못하게 되는 거예요. " 뭐. 뭐? 씨발 종말된 단추는 또 뭐야! " 야. 인간, 산소, 흥분 빼고 다 한국말이냐? " " 그러니까요. 1차적인 문제는 감기로 인해 교감신경이 자극이 안 될 수도 있는 거고. 그것도 아니라면, 아무데나 꽂아서 안 서는 거죠. 아무리 낡은 물레방앗간도 상대가 누군지는 알고선 들어가거든요? " 그래서. 뭐! " 형 어제 그 사람. 이름도 모르죠? 뭐 당연히 나이도 몰랐을 테고. 적당히 몸만 잘 알겠네. " 어? 어.. 엄격한 훈장의 지시에 따라 정좌를 하고 앉아 동생님에게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이 되어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동생님. 회초리는 들지 마.. 나 아직 감기 때문에 많이 아프다? 콜록. 콜록. " 그리고, 저 발기부전 성인캡슐 같은 거 연구하는 사람 아니거든요? 복용 후 30분이면, 그 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성의 환희를 경험하게 해줄 능력은 저 없거든요? " 개새끼.. 주둥이 트였다. 박유천! 이대로 저 새끼한테 주눅들 필요 없어. 싸우자. 이기자. 나가자!! " 너 그런 전문용어 정실장한테 세뇌 당해서 연구원 된 거지? 번지르르한 말 그만 팔아. 이 돌팔이 새끼야. " 창민의 눈을 째려보며 전화를 탁 끊었는데 바로 귀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몸을 흠칫 떨었다. 아 씨발 깜짝이야!!!! " 야! 김영웅재중이!!! 내가 소리 나게 걸어 다니랬지??? 귀신처럼 스윽 옆으로 오지 말랬지 내가?!! 삑삑 소리 나오는 베이비 슈즈라도 하나 사줘????!!! " 누구는 심장을 움켜주고 흠칫 놀라고 있는데, 내가 뭐라고 지껄이든 떨고있던간에 저 새끼는 눈가만 휘어지게 웃고는 아무 말도 안한다. 쟤야 말로 진짜 무서운 새끼다. 곧바로 ' 리허설 들어가겠습니다~ ' 스텝 목소리가 대기실에 울렸고 두 녀석을 째려보며 무대 위로 이동하는데 뒤에서 내 등을 미세하게 툭 친 김영웅재중이가 말씀하셨다. 문제는 내 하체를 안타깝게 바라보더니 새침하게 말했다는 것이었다. " 우리 유천이 파이팅!!!! " 주먹 불끈 쥐지 말아줄래? 내 물건 아직 레어템에 속하거든? 곧 레벨업 될거거든? 뒤에서 웃음 참느라 혀를 여전히 깨물고 있었던 창민이 푸푸풉.. 소리를 내며 아름다운 침의 분수대를 형성했고 옆에서 반달의 원초적 본능을 선보이고 있던 재중의 눈가가 다시 한 번 크게 휘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 그냥 솔로 할까봐, 나 진짜 그냥 확 짱꼴라 입성해버려? 츼팔! 미으키유춴이이 줜놔 츼어고야! § 오랜만에 꾸며진 특집으로 많은 가수들이 출연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리허설은 길어졌고, 안무를 맞출 때마다 자꾸만 덩달아 움직이는 마스크 때문에 짜증도 한몫해서 그런지 금방 몸이 지쳤다. 먼저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간 창민과 재중의 아가리에서 보기 흉한 반가움의 괴성이 쏟아져 나왔고, 난 문을 열기도 전에 들리는 투니버스 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려오는걸 알 수 있었다. 피할 수 없어도 난 피한다! 얼굴이 보고 싶기도 한데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와 똑같은 색깔은 아니지만, 푸우가 그려있는 분홍색 마스크를 아직까지 하고 있는 녀석이 눈에 들어왔고, 두꺼운 패딩이 꽤나 답답했는지 아무 의자위에 너저분하게 널브러져있었고, 연한 퍼플라인의 후드 반오픈 티셔츠를 입고 아래는 짙은 네이비색의 스키니진에 그레이 캔버스를 신고 있었다. 볼 때마다 앙상한 허벅지 또한 여전했다. 대기실에는 이미 많은 댄서팀 형들이 대기하고 있던 상태였고, 이곳에 도착한지 꽤나 시간이 흘렀던 모양인지 어느새 댄서형들 사이에 껴서는 총을 겨누는 흉내를 내고 있었다. 「 땅! 따! 따! 따! 땅! 땅! 푸~쓔! 땅! 땅! 특~슈가! 파~앙!!!!! 」흉내 낼 수도 없는 괴상한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척 바닥으로 엎어지는 모션의 춤동작을 보여주는 형들을 보며 재밌다고 깔깔깔 거리는 꽤나 맑은 웃음소리가 대기실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재중과 창민이 도착해서 인사를 나눠도 이미 댄서형들과 TV속에 나오는 가수에게 정신이 팔렸는지 안무가 아닌 율동을 TV를 바라보며 따라 하기 시작했다. 「 빰빰빠암~♪ 빰빰빰~~♬ 우뚜뚜~~♩ 빰빰빰~~♪ 」순식간에 소녀시대 노래가 태아시대 동요로 둔갑되기 시작했고, 이런 녀석의 안무가 꽤나 귀여웠는지 너도나도 이런 손주가 실제로 있는 할아버지 마냥 녀석을 지그시 바라보며 잔잔한 미소배틀을 하고 있었다. 노망은 들어도 마음은 살아있다는 무개념적인 이론이 가득한 노인네들이 분명했다. " 쟤 취한 거 아니야? " 마스크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자마자 옆에 앉아있던 댄서형이 내게 물었고 그 말이 순간 크게 와 닿아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순간 저 모습이 재정신인데 술 먹으면 어떻게 변할지 상상을 해보자, 존나 무서운 거였다. 상상력은 언제나 나를 비겁하게 만든다. 이딴거 개나 줘야지. 리허설에 취해 너도나도 쓰러져있던 대기실에는 정신지체아급 생기발랄한 기운이 샘솟았고, 여전히 춤 삼매경에 빠진 녀석은 옆에서 창민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 모습을 보고 따라 웃으며 말했다. " 참미나.. 나 왜 불렀어? 빰빰빰~~♬ " " 어제는 저보고 9번방에 들어오라고 했으면서, 형 왜 8번방에서 게임 하셨어요? " 부른 이유가 너무 고급스러워서 눈물이 나려했다. 씨발 줏대 없는 내 눈물. 녀석은 금세 지쳤는지 동작을 멈추고 자기보다 눈높이가 한참 위인 창민을 애처롭게 올려다보며 앙상한 팔을 들어 창민의 어깨를 툭- 툭- 가볍게 치더니 장례식 때 조문 온 사람처럼 안타깝게 창민을 위로하며 말했다. " 내가 9번방 가면.. 네가 지잖아. " " 그런 근거 없는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흘러나옵니까? " " 나는 엉덩이, 참미니는 입술, 영웅이는 어색한 입꼬리?, 그리고 쟤는.. " 방향을 틀어 조그만 손가락으로 나를 가르쳤고 앙증맞은 입술과는 다르게 재수 없는 말만 쏙 분리수거 해서 말했다. 저걸 그냥 확! " 이마!!! " 혼자서 헤실헤실 웃으며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꼴이 사뭇 귀엽다고 느껴져 얼른 시선을 피했고, 주머니에 제대로 들어있는 라이터를 확인하고 답답해진 대기실을 나와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스텝들을 뚫고 비상계단 표시가 있는 문을 열었다. 담배생각이 간절했다. 코끝으로 알싸한 담배향이 흘러 나갔고, 빈 속 때문인지 오늘따라 독한 담배 맛이 폐로 스며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꽤나 만족스럽다고 느끼고 있던 찰나에 비상구 문이 열렸고, 그 틈으로 분홍색 마스크를 한 김준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넌 왜 따라와. " 야. 너 왜 저번부터 나 쌩까? " 맞다, 너 다 참아도 궁금한 건 못 참지. 녀석의 말을 무시한 채 빠르게도 줄어드는 담배 필터를 다시 깊게 빨아들였고 입에서 느껴지는 씁쓰레한 맛이 혀의 돌기 하나하나 단단하게 스며들었다. 으.. 속 쓰려. " 나랑 보기도. 말하기도. 싫은 거면 지금 말해. " " 말하면? " 싸한 음성이 비상구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자, 녀석이 당황해했다. " 뭐.. 뭐긴 뭐야. 내가 너 안보는 걸로 하면 되지. " 순하고 여리게 생긴 얼굴과는 다르게 녀석은 언제나 상처 되는 말을 동반해서 아찔하다는 생각을 곧잘 했었다. " 안보면 그만이다? " " 아..아니 그러니까, 내말은 그거슨 니가 기분 나쁘게 내 눈 피하고.. 이렇게 자리도 피하고. 내가 말 걸면 무섭게 째려보고.. 처음에는 내가 너 자꾸 놀려서 삐졌나 했는데 삐진 사람치고 너무 밴댕이 속이고 또.. 또 사람 헷갈리게 스토커처럼 문자하고 전화했으면서 저번부터는 안하 길래.. " " 그래서? " 이쪽저쪽으로 흔들리는 눈동자 때문에 녀석의 산만한 감정이 그대로 비춰졌고, 정말로 도대체 이유가 무엇인지 꽤나 고민 좀 했던 모양인지 답답하단 듯이 허술하게 주절거리며 내게 이유를 설명하라고 재촉했다. 그래. 나도 몰랐는데 니가 어떻게 알겠냐. 같이 삽질이라도 했으면 내가 속이라도 후련했지. " 또. 또! 째려본다. 뭐야 대체? 그렇게 노려보면 니가 어쩔껀데! 어쩔 거야!! 눈으로 시비 걸면 내가 알아쳐먹냐?? 니가 왜 그러는지 내가 알아먹어야 하냐구!!! 왜 계속 사람 신경 쓰이게 눈으로 말해!!!!!!!!!!!!! 너 주둥이 나불나불 잘하잖아 그거! 잘난 주둥이 확 열어!!!! " 녀석 답지 않은 흥분된 모습에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고, 꽁꽁 싸매놓았던 삽질의 억울한 감정들이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래! 내가 원하는 게 이거라고! 나만 너때문에 고민한 거 그거. 그거! 그게 제일 못 견디게 짜증났는데, 너도 나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뭐 조금이라도 해줬다고 생각되니까 이제 좀 웃음이 나온다. 나 이제 좀 살겠다! 슬슬 고집은 그만 피우고 놀리는 척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럽게 원래 상태로 복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귀청 떨어져. 입 좀 다물어. " " 나는 너 같은 애. 제일 싫어. " 으..응?? 왜! " 나 같은 애가 어떤 애야? " ㅇ..야.. 째려보지 마.. 존나 무서워. " 조증. 자폐증. 실어증. 다 제멋대로!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이유 없이 나 무시하면 다신 너 안 봐. 난 너 하나도 안 아쉬워! 됐어!!!! 이제 철수랑만 놀 거야! 우리 집에 철수 데리고 올 거야!! 너 다신 우리 집에도 오지 마!! " 녀석의 흥분된 말에 정말로 내가 흥분돼서 기분이 나아진 건 사실인데, 정말로 도대체 내가 왜 자기를 무시하고, 극과극 행동을 선보였는지 알 길이 없었던 녀석은 꽤나 며칠 동안 심각했던 모양인지 어울리지도 않은 심각성 플러스 진지함을 무기로 삼아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고, 점점 얼굴이 빨개지고 씩씩 거리는 숨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빨라지고 부들거리는 몸이 보이고 눈가에 그렁그렁 차오르기 시작한 눈물에 모든 털이 위로 솟아 오른 것처럼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어..어..?? 내가 원하던 스토리가 이 방향이 아닌데.. 너가 진지해지면 내가 곤란해지는데.. 아..닌데 이거.. 당황한 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흔들리는 녀석의 동공을 바라보았고, 정말로 화가 단단히 났는지 이내 미련 없이 돌아서는 등이 너무 무서워 얼른 팔을 잡아 돌려세웠고, 진심으로 미안해져 녀석을 꽉 안아버렸다. 쿵, 쿵, 쿵, 씨발 기계 또 돌아가네. " 야..야! 아니야. 그런 거. 씨발 왜 화를 내고 그래. 아니 나는.. 그냥 너가 하도 재수 없게 나 놀려대길래.. 그냥. 그냥. 나도 그게 어떤 희열이 있는지 테스트도 해볼 겸.. " 거짓말. " 그냥 너 코스한거야. 너도 당해봐야지 내 속을 알거 아니야. " 아무런 미동 없이 내 품안에 한가득 안긴 녀석이 놀랍게도 내 허리를 꼬옥 안아왔고, 순간 당황한 나는 맨발의 기봉이처럼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효자 납셨다. " 지..지겨워져...서.. 그..그런 거 아니야. 그렇게 오해했다면 내가 미안해. 안 그래도 오늘 너네집 놀러 가려고 했어. 진짜야. 진짜 그러려고 했었어. 통닭도 시켜주려고 그랬어. 정말로. 진짜. " 가슴에 맞닿은 녀석의 이마는 여전히 미열상태였고, 아직까지 온 몸이 뜨끈뜨끈한걸 보아하니 나보다 심한 감기를 혼자 앓았던 모양이었다. 순간 그 큰 집에서 혼자 누워있을 모습이 그려지자 정말로 미안한 마음이 한순간에 나를 몰아쳐서 가득 안은 팔을 더 세게 안으며 진심으로 미안하단 말을 전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녀석이 내 등을 천천히 힘없이 탁- 탁 치며 말했다. " 내가 저번에 말했었잖아.. 발기부전 담배때문이라구.. 나한테 상담하지 그랬어. " 심최강창민이, 이 개자식!!!! 아니나 다를까 가슴팍에서 킥킥 거리며 웃고 있는 녀석의 등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안고 있던 거대한 팔을 확 풀으며 녀석을 노려보자, 눈물까지 닦아대며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여우같은 놈. " 이거 웃겨서 운거 아니야! 아까 슬퍼서 운거야! 진짜야! " " 입에 침이나 바르고 구라까 색꺄! " 메마른 입술에 순식간에 붉은 혓망울이 나와 침을 발랐고, 금새 침으로 반들거리는 입술이 새침하게 말했다. " 이제 됐지? " 이걸 진짜 주먹으로 콱!! 뽀얀 얼굴로 방실방실 헤프게도 웃으면서 내게 말했고, 이내 졸린지 눈을 비비며 내게 말했다. " 나 1주일동안 잠 한숨도 못 잤어. 업어줘. " 뭐. 뭐? " 내가 왜. " " 너 등판 넓잖아. " 난 참 단순했다. 으쓱거리는 어깨를 뒤로한 채 녀석에게 등을 내보였고, 껑충 뛰어서 내게 업힌 녀석이 졸린 음성을 흘리며 말했다. " 오늘 우리 집에 와. " " 알았어. 자 빨리. " 1분도 지나지 않아서 정말로 마술처럼 곧바로 내 등 뒤에서 잠이 들었고, 쾌쾌한 비상구를 빠져나와 대기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녀석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아는 척하며 볼을 만지고 얼굴을 만지고 지나갔다. 이 씨발 쇼타콤 변태새끼들이. 돈 내고 만져!!!!!!!!!! § AN2잡지의 수많은 효과 중에서도 가장 달갑지 않은 부작용은 세상의 풍문, 즉 바람처럼 떠도는 동성애자 소문들이 무성했고 이는 즉, 견물생심처럼 언제 어디서나 재중을 탐하고 싶어 안달 난 더러운 시선들 또한 늘어났다는 점이었다.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걸어가며 딜을 거는 스폰서들이 늘어남에 따라 민감해질 대로 민감해진 정실장은 재중의 일거수 일투 속을 한동안 보고받기도 했었다. 대부분은 대기업 간부급 사원들의 출세경쟁에 이용하려던 파렴치한 이유도 있었고, 유명한 재벌가 회장을 시작으로 모델계에도 알아주는 대목들이 주로 더러운 뒷거래를 하려 했다. 대부분 스폰서를 맺으려 했던 사람들 중에 80% 이상은 모두 남자였고, 거절되면 거절될수록 애가 타는지 딜의 가격을 상상 초월할 만큼 늘리기도 했다. 이런 밝혀지지 않은 내부 사정을 전혀 모르는 재중은 심하게는 화장실까지 따라붙는 매니저에 심통이 나 한동안은 단식투쟁을 하기도 했었다. 명성이 자자한 클럽을 과시하듯 넓은 주차장에는 희귀한 수입차들로 빽빽하게 빈자리 없이 채워져있었고, 긴 모퉁이를 지나 폭발할 듯 시끄러운 클럽 안으로 들어선 재중은 고막을 울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저절로 인상을 구겼다. 모든 게 심통이 난 표정이었다. 두 달 만에 만난 종만 작가의 모습은 처음과 다르게 많이 깔끔해진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지저분하게 자리 잡은 수염은 없던 냄새도 고약하게 풍겨져오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이번 잡지의 발행을 기념하는 파티가 마련되었고, 원래 스케줄대로라면 이곳에 함께 동행하기로 했던 정실장이 2시간 전, 아버지의 긴급한 호출로 본가로 급하게 내려간 상태였고, 윤호대신에 상철과 함께 파티에 동행한 재중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삐쭉 내밀고는 지루하게 파티에 억지로 참석해 울상을 짓고 있었다. 재중은 허벅지 라인이 그대로 보이는 흰색 면바지 위에 라인이 예쁘게 자리 잡힌 목덜미와 앙상한 쇄골이 들어나는 V넥 검정색의 큰 스웨터를 입었다. 그리고 하얀 목을 타고 내려온 목걸이에는 십자가 모양의 펜던트가 반짝 거렸다. 긴 테이블 의자 위로는 그동안 유명한 잡지 매체를 통해 얼굴이 익숙한 모델들과 이름 좀 꽤나 알렸다하는 내놓라 하는 유명한 인사들로 채워져있었고, 꽤나 그럴싸하게 격식들을 차린 모습들이었다. 시끄러운 클럽 안에서도 창백할 정도로 초연하고 차분한 모습으로 나타난 재중의 등장으로 여러 사람의 눈들이 교묘하게 반짝거리는 시선을 아주 쉽게도 느낄 수 있었다. 상철과 나란히 자리를 잡은 재중은 아직도 심통난 입술이 들어갈 기미가 없었고, 애꿎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이런 파티에는 관심도 없단 듯이 정실장에게 문자 보내기 바빴다. 「 혀엉. 언제와? 나 발 시려. 여기 추워. 」정실장이 가장 민감한 소재를 귀신같이 잘 알고 있는 재중은 답문자를 재촉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진동이 울린 핸드폰을 바라보며 내 이럴 줄 알았어.. 라는 표정으로 희미하게 웃기 시작한 재중이 손을 가려 목소리를 최대한 작게 말하기 시작했다. " 혀엉.. 언제와? " 실내였던 모양인지 시끄러운 클럽과는 다르게 아주 조용했다. " 또 맨발로 갔지. 아버지랑 이야기가 좀 길어졌어. 많이 늦을 것 같은데. 일단 아무대서나 졸립다고 잠들지 말고. 음식 주는 대로 아무거나 먹지 말고. 화장실도 혼자 가지 말고. 상철이랑 꼭 붙어있어. " " 응. 빨리 와서 나 좀 데려가. " " 어. 그래. " 클럽 안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가 되었다. 위세에 어깨가 펴진 자와 위세가 한껏 꺾여 술만 퍼붓는 자들. 재중은 슬슬 지겨워진 파티 분위기에 저절로 한숨이 늘어갔고 중간마다 잡지 이야기를 꺼내며 이것저것 사는 곳이 어디냐, 무엇을 좋아하냐를 시작으로 몸매 관리에서 트레이너 담당자, 애인이 있는 질문까지 뭐가 그리도 궁금한 게 많은지 너도 나도 자리를 옮겨가며 재중에게 질문세례를 퍼부었고, 한쪽켠에서는 이미 취할 대로 취한 남녀들이 서로 엉켜 뒹굴다 싶이 눈살 찌푸려지는 행위들을 펼치고 있었다. 처음에는 격식 꽤나 차린 파티처럼 신사답게 굴었던 사람들이 본색을 드러내듯 아무렇지 않게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의 부끄러운 행위들을 장소 가리지 않고 하기 시작했고 첫 만남부터 훌러덩 옷을 벗어젖히는 남녀들을 바라보며 크게 놀란 재중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눈동자를 어색하게 굴리고 있었다. 때마침 낮에 먹은 음식이 제대로 체했던 모양인지 상철은 룸에 붙어있는 화장실을 들락거리기 바빴고, 정말로 식은땀까지 흘려대며 고생하는 매니저에게 귓속말로 근처 약국에서 약이라도 사먹고 오라며 상철을 걱정했다. 안절부절 하던 상철도 몰려오는 토기와 어지러운 머리가 감당이 안되었는지 금방 다녀오겠다고 클럽을 뛰다시피 달려 나갔고. 여전히 어색하기만 한 자리가 너무 생소하고 기분이 나빠져서 몇 시인지 정실장이 도착할 시간을 체크하던 재중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오렌지 쥬스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때마침 도착한 문자에는 유일한 구원자처럼 반가운 창민이 「 어딨어요? 나 클럽 왔는데, 형 여기 있다면서요. 룸이예요? 」 금세 밝아진 얼굴을 한 재중은 꽤나 이곳이 거북했던 모양인지 메마른 목을 축이며 큰 잔에 가득 담겨진 쥬스를 목울대를 움직여가며 쉬지 않고 마셨고, 핸드폰을 들어 창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 형!! 어디예요?? " 창민을 날을 잡아서 곡을 쓰다가도 작업이 진행되지 않은 오늘 같은 날이면, 혼자 오토바이를 끌고 인근 클럽에 혜성처럼 등장하곤 했다. 어느 날인가는 춤도 안 추고 클럽 안에서 혼자 콜라를 양주처럼 쓰게 마셔가며 진지한 표정으로 심각한 고뇌에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있는 창민을 발견한 유천이 소름이 돋는다며 그런 창민을 피해 클럽에서 도망친 적이 있었다. 알콜없이 클럽에서 5시간을 족히 버티는 인간은 저 새끼가 최고라며 자주 언급하곤 했었다. 좀 특이한 정도가 아니고, 가끔씩은 모두들 창민의 뇌구조를 의심하기도 했었다. " 으응.. 창민아. 나 여기? VIP룸. 빨리 와아! " " 정실장님은요? " " 일이 생겨서 늦는대에.. " " 말끝 늘리는 거 보니까, 뿔난 게 눈에 훤하네요. "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재중이 짜증이 나는 듯 볼멘소리로 말했다. " 나.. 집에 갈래. 여기 이상해. " 축 늘어진 재중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는지 창민은 알았다고 전하고 통화를 끝냈다. 이제야 안심이 된 재중은 핸드폰과 상철이 두고 간 지갑을 챙기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순간 크게 휘청거리는 몸을 감당하지 못한 채 다리가 부러진 새처럼 픽- 원래 제자리로 쓰러졌다. 순간 진정되지 않은 놀란 가슴에 손을 얹었고, 커질 대로 커진 두 눈에는 당황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던 중 옆 사람과 한참 대화중이었던 패션 디자이너 박선생이 테이블 위에 비워진 쥬스잔을 보며 재중을 바라보았고, 동시에 눈이 크게 떠지며 당황해 하기 시작했다. 곧바로 금방 시끌했던 룸안에 싸한 정적이 맴돌기 시작했고 너도나도 분주하게 움직이던 몸을 멈춘 채 재중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나쁜 기운이 몸에서 맴돌기 시작한 재중은 뭔가 큰 사단이 생긴 것처럼 몸을 떨어대기 시작했고, 이제야 상황파악이 된 박선생이 재중의 어깨를 크게 흔들며 다급하게 물어봤다. " 재중씨 여기에 있던 쥬스 혹시 다 마..마신 건 아니죠???? " 반짝이는 눈빛과 불안한 눈빛들이 재중의 머리위로 서로 얽혀있었고, 이유도 모른 채 대답을 닦달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무서움을 느낀 재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목.. 말라서.. " 때마침 룸문을 열고 들어온 창민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빠르게 감지했고, 하얗게 질려있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오르기 시작한 재중과 창백하기만 했던 앙상한 몸들이 작은 진동을 느끼며 서서히 떨기 시작했다. 그런 재중의 모습이 포착된 창민은 눈을 크게 키우며 불안한 듯 입을 열었다. " 뭐야, 왜 그래요? 무슨 일이예요?? " 점점 벌벌 떠는 행동이 심해지기 시작한 재중은 자신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고, 서서히 가빠지는 숨소리에 스스로 놀라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히끅.. 히끅.. 옆에서 아연 질색한 박선생이 그제야 입을 열었고 저 발밑에서 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짜증에 정리정돈 잘 된 머리를 험하게 헝클어뜨린 창민이 덩달아 아연 질색해졌다. " 아 저기 그러니까, 아까 백작가가 쥬스에 백터샷을 탔었는데.. 아.. 그게 나눠 마신다고.. " 일순간 표정이 싸하게 굳은 창민이 어이없단 듯이 웃으며 말했다. 서늘한 공기가 밀물처럼 밀려들어오는 순간이기도 했다. " 용량은 몇 미리 입니까? " " 한 병에 30ml 정도..로 알고 있는데.. 그게.. " 재중이 비운 쥬스컵의 용량을 가늠해본 창민의 얼굴이 순식간에 구겨지기 시작했고, 이를 악물며 살펴보던 잔을 노려보며 말했다. " 이 잔에, 그럼 몇 병을 넣으신 거죠? "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는지 한참동안 머뭇거리던 작가의 행동에 매우 화가 더 치밀어 올라왔는지 손에 꽉 쥔 쥬스잔을 테이블 위로 곤두박질치듯 세게 던진 창민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아 씨발!!!! 그러니까 몇 병 쑤셔 넣었냐고!!!!!!!!!!!!!!!!! " " 아.. 그러니까.. 족히 8병은 될 것 같은데요.. " 다시 한 번 머리를 쥐뜯은 창민이 터져버린 화가 감당이 안 되는지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지 못한 채 그 주변을 빙빙 돌아가며 성분과 용량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 그러니까, 백터샷 240ml를 한꺼번에 복용한 셈이네요. " 입에서 달라붙은 씨발 소리가 떠나지 않은 창민은 사색이 된 얼굴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당황해 하기 시작했고, 더 이상 참기 힘들다는 듯 테이블 위에 놓여져있는 양주병들을 이리저리 집어 던지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 이 씹새끼들아!! 최음제 대량으로 먹이면 씨발. 다 홍콩가는줄 아냐? 얘처럼 폐기능 약한 사람들은 그냥 저 세상 가거든? 이것 때문에 무슨 일 생기면, 여기 룸안에 있는 당신들 내가 가만 안 둬. 불법 최음제를 사용하면 어떤 식으로 법 안에 판결 받는지 내가 두고 보겠어. 내가 다 쳐 넣을 거라고!!!!!!!!!!!!!!! " 창민의 말에 이제야 자신이 먹은 쥬스에 최음제가 대량으로 섞여져 있었다는 사실을 안 재중이 이상해진 몸의 이유가 꽤나 치욕스러워져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창민은 일단 핸드폰을 들어 정실장에게 전화를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통화가 연결되자 다짜고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긴급한 상황을 알렸다. " 실장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곧바로 오셔야할 것 같습니다. " § 재중은 너무 빠른 조산으로 25주 만에 850g으로 태어난 엄청난 미숙아였다. 체중이 2.5kg이 못 된 채 태어난 아기들은 대부분 젖을 빠는 힘이 약하고 감염에 대한 저항력도 약해서 사망률이 높았다. 아직 제대로 된 폐기능과 흑인처럼 새까맣기만 덜 자란 피부는 아이의 심각성을 알려주기도 했었다. 재중의 어머니는 세계에서 유명한 대량의 속옷브랜드를 창시한 디자이너 김재희씨였다. 1년 6개월 만에 파혼을 당한 그녀는 아이에 대한 각별한 모성애가 강한 여성이었고, 아이에게는 평생 상처가 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기증된 정자은행의 시험관 아기시술을 통해 재중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임신된 상태에서도 많은 업무들을 무리해서까지 소화하고 있었고, 임산부로써는 무리한 일정 때문이었는지 아이는 너무나도 빠르게 엄마 곁으로 어느 날 찾아왔다. 꿈에 그리던 소중한 아이가 미숙아로 태어나자, 모든 걸 잃은 사람처럼 큰 상실감에 빠진 그녀는 중요한 모든 업무를 뒤로 미룬 채 1년 동안을 아이에게 모든 시간을 지극정성 쏟아 부었다. 아이 곁에는 24시간 동안 아이의 호흡기를 체크해줄 간호사들을 무리해서 여럿 채용했고, 입원해 있는 동안 병원에는 보다 좋은 시설들을 손수 기증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신생아 집중치료실에서 하루하루를 견뎌낸 아이에게 잔인하게도 꽂아져 있던 수많은 주사바늘과 호흡기가 떨어지는 날이 다가왔고, 그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그녀는 건강해진 아이를 처음으로 인큐베이터에서 꺼내 품안에 가득 끌어안고는 한참을 울어야만 했었다. 수유연습을 통해 아무 이상 없는 아이의 모습에 엄마는 소소한 행복을 알게 되었고, 외롭게 혼자 병원에 들어와 둘이 돌아가니 생에 가장 아름다운 만남은 이 보다 없을 거라고 확신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태어난 재중에게 엄마는 각별한 애정만큼이나 다칠까, 깨질까, 아플까, 애지중지 귀한 아들로 키워지기 시작했고,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 한 번도 집밖을 나간 적이 없었던 재중 곁에는 도우미 아주머니와 24시간 자신을 지키고 있는 경호원이 전부였다. 그러던 중 재중이 어느 정도 학교생활에 적응해 나가자 안심이된 엄마는 몇 년 동안 미루었던 해외일정들을 하나씩 처리하기 시작했고, 어떤 해에는 1년에 2번 정도 아들의 얼굴을 볼 정도로 엄청난 스케줄에 치여 있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든 아들과의 대화를 미루지 않는 애정 표현에 있어서는 누구에게 뒤지지 않은 엄마임은 분명했다. 서로 얼굴을 못 보게 되는 시간만큼 그들은 엄마와 아들간의 존재에 대해 연애를 하는 사람처럼 새삼 더 애틋해질 정도였다. 그렇게 늘 엄마를 그리워하며 지내게 된 재중은 명문 고등학교를 들어가자마자 남들이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른 환경 속에서 지내고 있다는 사실들을 그제야 하나씩 깨닫게 되고, 언제나 아픈 사람 취급하는 엄마의 극심한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채 한 장의 편지와 함께 17년 만에 홀로 집 밖을 나서게 되었다. 편지는 간결했지만, 정확한 내용들뿐이었다. 「 맘. 나 지금 가출해요. 나 지금 너무 건강하니까, 걱정하지마세요.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요. 저 빨리 돌아올게요. 맘. 보고 싶은 만큼 사랑해요. 아주 많이. 」 §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당신이 고스란히 걸어온 길을 윤호에게 강요한 아버지는 윤호가 원하지 않았던 법학대학교에 원서를 냈고, 뜻하지 않게 합격통보가 되자마자 집을 뛰쳐나온 윤호는 곧바로 군 입대를 결심했다. 그렇게 2년을 한 번의 휴가 없이 군생활을 마무리했고, 제대를 하자마자 그 당시에는 상당한 반열에 오른 검사집안 이력 때문에 그런지 절대 당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은 윤호의 아버지는 또다시 윤호에게 검사의 길을 강요했고, 보다 못한 윤호는 23살 나이에 집을 나서게 되었다. " 혀엉.. 이 껌 좀 사주 세요. " 윤호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형 소리가 저절로 붙어서 나오는 녀석을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 그게 얼마야? " 무언가 골똘히 생각을 하는 모양인지 눈동자가 미묘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이내 생각이 났는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 27만원이요. " 껌 하나에 27만원이라고 아무 무리 없이 대답하는 녀석을 어이없게 바라보며 윤호는 입가에 미소를 띠었고, 이와 같은 가격측정에 궁금함을 느낀 윤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 그 돈으로 뭐하게? " " 여기서 자려구요. " 여의도에서 20분 거리인 남산에 위치한 그랜드 하얏트 호텔의 스탠다드 싱글룸 값은 27만원 정도였다. 서울로 올라와 이 호텔에 묵고 있었던 윤호는 오랜만에 서울로 올라오신 어머니를 레스토랑에서 뵙고 언짢은 기분으로 다시 룸으로 올라가려던 찰나에, 아주 곱상하게 생긴 아이가 레스토랑 입구에서 쭈그려 앉고는 무턱대고 윤호에게 풍선껌 한통을 내밀었고, 차림새를 보아하면 분명 VIP손님으로 이 호텔에 자주 투숙하는 손님으로 보였지만, 그런 겉모습과는 다르게 얼굴은 며칠 굶은 사람처럼 피골이 상접해서는 가뜩이나 뽀얀 피부가 하얗게 질려있기까지했다. 배가 고픈 모양인지, 어디가 아픈 건지 쭈그리고 앉아 있던 아이의 시선을 따라 같이 몸을 낮춘 윤호가 아이의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쳐다보며 말했다. " 내가 그 껌. 사줄 것 같아?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천진난만하게 아이가 웃어버렸고, 활짝 휘어진 반달눈을 보자마자 저절로 손이 올라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은 윤호는 아이의 손을 잡으며 아이를 천천히 일으켰다. " 따라와. " 재중은 여러 번 하얏트 호텔 레스토랑에서 도우미 아주머니와 경호원과 자주 이곳의 음식을 먹으러 온 적이 많았고, 이 장소 외에 다른 곳을 가본 이례가 없는 재중은 집을 나와서도 이곳을 당연스럽게 먼저 찾아왔고, 무작정 집을 나선 재중의 주머니는 4만원이 전부였다. 나오자마자 택시를 잡아타서 뱉을 수 있는 말은 고작 ' 하얏트 호텔로 가주세요 ' 라는 말뿐이었다. 그렇게 돈을 택시비로 써버리고 남은 주머니에는 고작 풍선껌 한통이었다. 재중에게는 낯설지 않은 유일한 장소였고, 잠을 잘 곳도 이곳밖에 없다고 생각한 재중은 무턱대로 껌 한통을 27만원에 팔기 시작했고, 이런 겉모습이 멀쩡한 재중을 어이가 없단 듯이 지나치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눈을 마주치고 자신의 손을 잡아준 윤호가 처음부터 무섭지 않았던 순간이기도 했다. 그렇게 재중은 윤호가 투숙하고 있던 호텔방을 빌려 쓰게 되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음식을 주고 잠을 재워주는 윤호의 등만 졸졸 따라다니던 재중이 급기야는 윤호가 연습하러가는 안무실까지 따라나서기 시작했다. 너무 어릴 적에는 처음 만나는 세상이 온통 같은 모습들이라 신기한 마음도 두려운 마음도 재중에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홀로 집 밖을 나서고, 처음으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처음으로 타인과 대화를 하고 밥을 먹게 된 재중에게 그 시간들은 묘한 설렘으로 크게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마치 동화 속 이야기처럼 아직까지도 존재하고 있었다. 동화는 많은 시간들이 지나도 절대 녹슬지 않은 진리처럼 담겨져있었다. 평생 절대로 놓지 말아야하는 소중한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재중은 자연스럽게 체육시간을 참여하지 못한 채 텅 빈 교실에서 운동장을 뛰어노는 친구들을 부럽게 지켜보는 게 일이었고, 이런 재중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일부의 친구들은 재중에게 ' 넌 왕자병도 아니고 황제병이야 알고 있어? ' 라는 비꼬는 말들을 서슴지 않게 말하기도 했었다. 운동장을 신나게 뛰지도 못했고, 방과 후에 친구들과 놀지도 못했고, 소소하게 청소시간까지 구애받은 재중에게는 언제나 집안의 생활이 전부였었다. 그런 재중에게 윤호는 춤을 알려주고, 연습실의 쾌쾌하지만 열정적인 공기를 선사해주고, 보장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미래에 대한 꿈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여러 사람들의 설레는 눈동자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천천히 그런 사람들 속에서 함께 동요되기 시작한 재중은 저 멀리서 윤호의 안무를 따라 하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가빠지는 숨소리에 크게 놀라 움츠리기 바빴던 몸이 어느새 땀을 배출해내며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자신의 몸에 대해 자신감이 생기자, 그제야 떠오르는 얼굴은 엄마였다. 재중이 가출하자마자, 집안이 도둑이 든 것처럼 발칵 뒤집혀졌고, 이 소식을 듣자마자 한국으로 귀국한 재희씨는 갓난아이가 유괴당한 엄마처럼 온갖 시설과 연락망을 동원해 재중을 애타게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 24시간을 악몽처럼 지내던 그녀에게 보란 듯이 나타난 재중은 자신의 잘못이 얼마나 컸는지 엄마의 흔들리는 동공과 마른 입술을 통해서 알았고 보자마자 자신을 꽉 안은 채 처음으로 엉엉 소리 내어 우는 엄마의 마른 등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 맘. 나 이제 정말 많이 건강해. 나 숨이 헉헉 차올라도 이젠 무섭지도 않고, 막 뛰어다녀도 무리 없을 정도로 정말로 괜찮아. 나 밖에서 춤도 추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고.. 새로운 음식들도 먹고 그랬는데.. 이것 봐. 나 정말 괜찮아. 맘이 날 너무나 건강하게 낳아줬는데.. 내가 그동안 마음이 너무 약했었나봐. 이렇게 훌륭하게 나 키워줬는데 미안해. 내가 너무 많이 미안해. " 처음으로 끝까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 아들의 모습을 본 엄마는 아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윤호를 집으로 초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고, 재중에게 이런 병역이 있었는지 전혀 몰랐던 윤호였지만 표정은 고요하다 못해 평온하기까지 했었다. 그렇게 재중은 엄마의 손에서 벗어나 윤호의 보호아래 설레는 꿈을 갖게 되었다. 재중은 남들과는 다르게 아주 느린 동화책을 이제야 읽게 되었지만, 진부한 인생이 되었을법한 자신의 인생을 걷어찰 수 있는 용기를 준 윤호에게 언제나 깨지지 않고 영원한 인연을 마음속으로 약속하기도 했었다. §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재중에게 최음제와 같은 백터샷 약들은 치명적인 독성으로 매우 위험했다. 1회 15ml이 적당량인 약을 15배 이상 대량으로 복용한 게 결정적인 이유기도 했다. 그 정도의 양이면, 일반사람들에게 까지도 굉장히 위험한 부작용이 생기는 일인데, 폐기능이 약한 재중에게는 그야말로 쾌감을 떠나서 호흡하기 힘든 고통을 동반해야만 했다. 창민의 말 그대로, 홍콩 가려다 저세상 가게 되는 격이나 다름이 없었다. 백터샷의 성분은 대부분 요힘빈으로 교감 신경의 흥분 효과를 차단하는 성분으로 대량 투여하면 피부나 점막의 혈관을 확장시키므로 보통 최음제로 쓰였다. 하지만 흥분 작용이 너무 강하면 신장장애를 일으킬 만큼 위험성이 있었다. 백터샷의 성분을 알아본 창민은 대처할 방안이 없는 약물에 화를 억누르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재중을 급하게 업어 정실장 오피스텔로 향했다. 오피스텔을 향하는 도중 사색이 된 재중은 입술을 잘근 잘근 깨물거나 길지도 않은 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고, 주체할 수 없이 빨라지는 호흡에 크게 놀랐는지 덩달아 크게 뛰는 심장박동수 때문에 정신까지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모범택시를 잡아타 오피스텔을 향하면서 정실장에게 전화를 건 창민은 그제야 자초지종 설명하기 바빴다. 흥분을 예상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싸하게 내려앉은 음성은 창민과 다르게 침착함이 묻어 나왔다. " 정실장님, 그럼 재중이형 바꿔드릴까요? " 옆에서 안절부절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재중을 조금이라도 안심 시켜주기 위해 말을 했지만, 윤호는 냉정하게 이를 저지했다. " 됐어. 울기 시작하면 더 위험해. " 답답한 듯 머리를 긁적이던 창민이 씩씩 분노에 찬 숨소리를 내쉬고 있었고, 정실장도 급하게 이동하고 있던 도중이었는지 여기저기서 클락션 소리가 핸드폰을 통해 전해져왔다. " 일단, 오피스텔 들어가면 침실 왼쪽 선반밑 서랍 열어보면, 휴대용 산소기 들어있거든? 그거 숙소에서 쓰는 거랑 동일한 제품이야. 그거 작동시키고 애 일단 호흡하기 편하게 가슴 두들겨줘. " " 제가 봤을 땐, 경련도 예상되는데요. " " 지금 분명 입술 깨물고 있을 거야. 혹시라도 경련 일어나면 입술 뜯으니까 입에 수건같은거 물려주고 벨트 하고 있으면 풀어놔. " 예전에 한번 콘서트 준비로 무리한 연습을 한 재중에게 처음으로 호흡곤란과 함께 경련이 일어났고, 당황한 멤버들과 옆에서 간단하게 조치를 취하는 창민을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윤호는 꽤나 많이 놀란 눈치였다. 그 이후로 재중에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하나도 빠짐없이 공부했고, 언제 어디서나 이런 긴급한 상황이 예고 없이 터지면, 곧잘 대응하기도 했었다. " 빨리 갈 테니 재중이 잘 부탁한다. " 고요했던 정실장의 목소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떨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창민이 누구와 통화를 하고 있는지 알기 시작한 재중이 기어이 꾹 참고 있던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통화가 끝나자마자 울기 시작한 재중의 모습에 크게 당황한 창민은 등을 토닥이며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지금 재중에 필요한 건, 엄마도.. 호흡기도 안정제도 아니었다. 오로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손을 잡아준, 정윤호만큼 고통에 무방비한 상태는 재중에겐 없었다. | 집에 오라는 말, 진짜 간떨리게 좋았던 거, 너 알고 있었어? | My Melody w. 킵 * * * 오디션을 통해 연습생이된 사람들 중에는 대개 예기치 못한 철새 떼처럼 난해한 연습생들 또한 포함되기도 했었다. 대부분 여기저기 기획사들을 돌아다니며 그곳에 마련된 숙소에 안주하려는 속셈이 뚜렷한 연습생들이었다. 연습연차로 따지면 데뷔를 해도 모자랄 판이었지만, 그런 연습기간들에 비해 크게 달라진 성과는 좀처럼 엿볼 수 없었다. 재중은 이리저리 떠도는 철새떼 연습생이든, 죽치고 이를 악물고 연습에 매진하는 연습생이든, 나이연령 상관없이 모두들 예뻐했다. 언제 어디서나 묻는 질문에 배시시 눈이 반달로 휘어지며 웃는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는지 너도나도 낭창거리지만 부드럽고 말캉말캉한 재중의 볼을 만지며 연습으로 지친 울적한 기분에서 쉽게 벗어나기도 했었다. 어느 뜨거운 여름날이었다. 숨이 막히도록 땅과 하늘 양쪽으로부터 거세게 몰아치는 더위에도 불구하고 숙소의 모든 창문들은 공기가 통하지 않을 만큼 단단히도 잠겨져있었다. 한 방에 4명의 연습생들이 함께 생활을 하고 있는 방에는 양쪽으로 사다리가 있는 2층 침대가 있었고, 반드시 필요한 물건들이 몇 개 놓여있었다. 그리고 다른 방과는 다르게 연습차가 높은 선배들이라 그런지 각자 필요한 물건들을 가져와서 몰래 설치를 해놓기도 했었다. 이를테면 다른 방에는 없는 DVD나, 게임기, 미니냉장고 등등이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싶은 연습생들은 선배에게 허락을 맡고 이 방을 자주 이용하기도 했었다. 그날은 재중을 포함한 연습생들 5명이 그 방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었고,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지는 상황 속에서 모두들 웃통을 벗고 반바지나 청바지 등을 입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에 단가라 나시 티셔츠에 베이지색 반바지를 입은 재중은 땀 한 방울도 없이, 하얗게 질려있던 볼 부위만 분홍빛으로 살짝 물들어 있었다.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던 길에 재중의 팔을 붙잡은 성열선배가 숙소에서 재밌는 걸 보자면서 재중을 데려갔고, 도착하자 재중과 성열을 기다리던 연습생들은 밉지 않은 핀잔을 늘어놓으며 기다리기 힘들다는 듯이 DVD를 재생했다. 비좁은 숙소 방 한 칸에서 여럿이 붙어 앉아 온 몸이 마비될 정도로 뜨거운 이 여름 날, 뭐가 그리도 재미난 영화를 보는 건지 의아해진 재중은 아무도 앉지 않은 1층 침대에 걸터앉아 모든 선배들이 주시한 TV로 시선을 돌렸다. 쉽게 말해서 내용도 감동도 재미도 없는 난해한 수위 높은 포르노 영상이었다. 남자들은 대부분 비는 시간에는 야한농담으로 낄낄 거리거나, 새로 나온 게임, 컴퓨터 부품들, 그리고 섹스이야기가 전부였다. 그런 대화에 껴있는 재중은 언제나 새로운 신세계처럼 공감이 되지 않은 주제에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었고, 중간 중간 첫 키스와 섹스, 자위에 대해 농담으로 재중에게 난감한 질문들을 장난스럽게 던지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대답 없이 웃기만 하는 재중에게 ' 너 그렇게 웃고 다니면 당한다. ' 라는 웃기지도 않은 농담들을 진지하게 자주 하곤 했었다. 10분도 채 되지 않은 방안에는 목울대가 꿀꺽 꿀꺽 움직이는 간헐적인 소리들로 채워졌고, 점점 낯 뜨거워지는 정사씬들에 흥분된 선배들은 살이 부대낄 정도로 바짝 붙어서 앉은 그 좁은 공간에서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볕으로 더욱더 더워진 날씨가 짜증난다. 라는 듯이 욕을 내뱉고 있었다. 점점 바짝 서기 시작한 페니스에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선배들이 쉽게도 팔딱팔딱 뜨거운 숨에 조여져있던 자신의 페니스를 꺼내 주무르기 시작했다. 재중은 흔히 말해서 그 나이에 누구나 경험하는 자위를 해본적은 없었지만, 어느 날 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가위에 눌린 듯 어떤 상대방으로 부터 느낀 쾌감을 얻으며 처음으로 정액을 내보낸 적이 있었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머리끝까지 차오른 물과 그 물 속에서 자신의 몸을 안은 상대방으로 인해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한 재중이 짧은 신음을 토하며 몸을 뒤집자마자, 온 몸을 가득 채웠던 물들이 일시에 몸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것은 처음 겪어본 생생한 몽정이었다. 축축해진 팬티와 기분 좋게 가빠진 숨소리에 놀란 재중은 한참동안을 잦은 숨을 낮게 내쉬며 멀건 액체를 멍하니 바라보았었다. 그리고 꿈속에서 자신을 짓누르듯 올라탄 상대의 얼굴이 윤호형이란 사실에 쉽사리 가라앉지 않은 심장을 메마른 손으로 쓸어내리고 있었다. 묘한 기분에 휩싸여 속마저 울렁거렸지만, 나쁘지만은 않은 그런 기분이었다. 바지버클을 풀고 고민 없이 페니스를 쥐고 있던 선배들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빳빳하게 서 있는 페니스를 잡아 쥐고는 강약을 조절해 가며 민감한 부분을 찾아 쾌감을 느끼고 있었고, 실제로 처음 보는 자위에 가슴이 놀란 재중은 눈이 동그랗게 떠진 채로 시선을 어디로 두지 못한 채 당황해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재중 앞에 앉아있던 성열이 한차례 쏟아 낸 정액을 티슈로 느릿한 동작으로 닦아내며 인형처럼 가만히 앉아있는 재중에게 말했다. " 넌 왜 안 해? 저거 안 꼴려? " 흠칫한 표정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 재중이 말했다. " 안 해봤는데요... " 재중의 말에 쏟아진 정액을 닦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던 선배들이 모두 재중을 향해 몸을 돌아섰고, 희귀한 게임을 발견한 사람들처럼 재중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웃음 섞인 농담이 사뭇 서늘해지는 순간이었다. 성열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 해볼래? 재밌어. 이거. " 그러자 재중을 지켜보던 선배들이 너도나도 한몫 잡아보겠다고 눈에 불을 키고 재중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 너 진짜 자위 안 해봤어? " " 곱상하게 생긴 새끼가 성욕마저 없으면 그 물건 왜 달고 태어났냐? " " 이런 건 원래 형들한테 배우는 거야, 해보자. " " 사내새끼가 휴지를 자주 써줘야지 크기도 더 커지지 인마! " 순간, 두려움에 떨면서 어릴 적에 받았던 포경수술이 떠올랐다. 선배들은 안 무섭다고 자신을 설득한 엄마처럼 재중에게 이 좋은걸 왜 안하고 살았냐며 금세 타박하기 시작했고 어리둥절 머뭇거리는 눈동자가 역력한 재중이 말캉한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 어떻게 하는 거예요? " " 내가 해 줄게. " 재중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대답한 성열은 1층 침대에 단아하게 앉아있는 재중의 반바지의 버클을 풀기 시작했고, 허벅지위로 떨어지는 성열의 땀방울과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선배들의 불규칙한 호흡소리만이 방 안의 정적을 에워싸고 있었다. 머리로는 이게 아닌 것 같은데 라고 느껴지면서 잘못된 행동을 훈계하듯 재중을 지적해주는 아량이 넓은 선배들처럼 ' 이런 건 재중이 너니까, 내 손 써주는거야 ' 라는 등의 입에 발린 소리들을 하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 낄낄 거리는 웃음소리도 들려왔지만, 그런 소리에 집중할 정신이 없었던 재중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몸이 바짝 긴장되기 시작했다. 재중의 살에서 나는 달콤한 향기가 아릿하게 성열의 코를 자극했고, 재중의 연하고 말캉한 허벅지가 손에 닿자마자 목울대가 뜨거워져 마른침을 연신 삼켜대며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버클을 풀자마자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것은 아닌지 아주 살짝 위로 솟아있는 재중의 페니스를 조급하게 꺼낸 상열이 신기하단 듯이 재중의 페니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둥그렇게 모인 선배들 또한 꿀떡 꿀떡 침을 삼키는 목울대들이 경련하듯 움직이고 있었고, 자신의 페니스에 처음으로 닿은 타인의 손길에 흠칫 놀란 재중이 성열의 어깨를 밀어보았지만, 쉽게 떨어지려하지 않은 몸에 당황해 하기 시작했다. 온통 하얗고, 빨갛고, 말캉말캉하고, 낭창낭창 아슬아슬한 재중의 페니스는 적당한 크기에 포피가 잘 벗겨져 예쁘게 자리 잡은 귀두부분에 모두 시선을 집중하게 만들었다. 성열은 곧바로 재중이 예민할 곳을 찾아 페니스를 잡아 빠르게 손짓으로 자극을 하기 시작했고, 성열의 어깨를 잡고 밀기 시작한 재중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아랫부분에 놀라 숨을 고루 내쉬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기분이 안좋아지기 시작하는데 쉽사리 물러설 것 같지 않은 선배들 모습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정신없이 같은 부분을 기계처럼 자극하기 시작한 손짓에 아래에 묘한 통증과 함께 발가락이 자꾸만 움츠러들자 재중이 놀라 말했다. " 선..선배.. 읏,...그..그만해요. 하..하지 마요. " 나약하게 성열의 어깨를 밀치는 재중의 손이 우습다는 듯이 손짓의 힘을 더 주기 시작한 성열은 ' 인마, 재중이 너니까 형들이 이런 것도 경험하게 해주는 거라고. 해준다고 할 때 곱게 받아라. ' 라고 낄낄 거렸다. 점점 달아오르는 숨에 얼굴이 난생 처음으로 발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재중의 얼굴을 본 선배들은 아래가 요동치는 뜨거움이 감당이 안 되기 시작했는지 영상을 보던 흥분과 와는 차원이 다른 쾌감에 마약을 먹은 사람들처럼 커다랗게 솟은 팬티에서 너도나도 페니스를 꺼내기 시작했다. 마치 뜯어먹기라도 할 것처럼 거친 짐승마냥 쉽게도 발기된 물건에 숨을 헐떡이며 빠른 손짓을 했고, 모두 재중의 달아오른 얼굴을 보며 겪어보지 못한 쾌감에 표정들이 하나같이 참을 수 없단 듯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 흣... 싫..어.. 안 할래요... 나 이거 읏, ....안..안..할래요.. " 연습실때 호흡곤란으로 내뱉은 가빠른 숨과는 다른 느낌에 다시 한 번 크게 놀란 재중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쏟기 시작했고, 그런 재중을 바라보며 손짓이 더 빨라진 선배들은 구석구석 방안을 매우는 거친 숨소리를 퍼붓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예고 없이 방문이 열렸고, 그 문 사이로 트레이너 윤호형이 무표정하게 굳어지기 시작한 서늘한 얼굴로 서 있었다. 모두들 귀신을 본 듯한 얼굴로 사색이 되어 모든 동작을 멈추고 풀어진 버클을 바쁘게 채우기 시작했다. 이 뜨거운 여름날 비좁은 방 안에서 비 오듯 쏟아지는 땀을 동반한 채 숨을 고르게 쉬고 있는 연습생들을 무표정으로 바라보며 윤호는 피로한 듯 한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 평생 휠체어 타고 싶지 않으면, 당장 나가. " 상황을 이제야 파악하기 시작한 선배들은 고개가 땅으로 박아질 기세로 '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 군기가 바짝 든 이등병 말투로 윤호에게 사정을 하기 시작했고, 여전히 낮은 음성으로 입을 연 윤호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 입 다물어. 목을 부러뜨리기 전에. " 어쩔 줄 몰라 하며 일단은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느낀 선배들은 너도나도 급하게 숙소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힘없이 닦아대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재중이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윤호를 바라보았고, 처음으로 자신을 향해 서늘한 눈빛으로 아무런 감정 없이 재중의 동공을 태연하게도 바라보는 윤호가 새삼 무서워 재중이 자기도 모르게 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다. 이 시간만큼 지독한 것도 무서운 것도 두려운 것도 창피한 것도 없었던 순간이기도 했었다. 윤호의 무서운 시선에 놀란 재중이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고, 가뜩이나 놀란 호흡이 진정이 되지 않아 힘든 참이었는데 허술한 눈물샘에서는 계속해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오고, 입에선 ' 하아..히끅.. ' 불완전한 호흡과 딸꾹질 소리가 재중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발기된 페니스가 절정에 다다랐지만, 쉽사리 나오지 않은 정액이었는데 윤호의 굳은 얼굴을 본 재중이 어릴 적 참기 힘든 오줌에 당황해 하며 엉엉 길에서 울어버리는 어린 아이처럼, 일순간 탁- 하니 쏟아진 정액에 페니스를 가리고 있었던 손바닥과 팬티가 적셔지고 있었고, 물컹물컹 쏟아지기 시작한 느낌과 비릿한 냄새가 생소한 재중은 굉장히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잘못을 깨달을 아이처럼 울기 바쁜 재중에게 다가간 윤호는 근처에 놓여있는 티슈를 몇 장 뽑아서 멍하니 앉아있는 재중의 시들해진 페니스를 구석구석 닦아주기 시작했고, 벌벌 떨고 있던 손가락을 들어 묻어있는 정액 또한 말끔히 닦아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찝찝할법한 재중의 마음을 아는지 재중에게 시선을 맞추며 자세를 낮춘 윤호가 재중의 멈추지 않은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 다신 형한테 이런 모습 보여주지 마. " 하아.. 히끅.. 목이 꺾어질 기세로 고개를 끄덕이던 재중이 참았던 울음을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고 불규칙한 숨소리에 불안한 윤호는 재중의 등을 토닥이며 괜찮다고 말했다. 괜찮아. 울지 마. 그렇게 뜨거운 어느 여름날, 처음으로 서늘한 시선으로 재중을 타이른 윤호의 표정을 본 어린 재중은 타인 앞에서 내뱉어지는 신음소리와 달궈지기 시작한 아래가 굉장히 치욕스럽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시는 형의 단호한 말처럼 이런 모습을 보여주지 말아야겠다고 크게 다짐을 한 계기가 되기도 했었다. 형이 하지 말라는 건 어떤 일이든 안 할 수 있었다. 어느새 그게 재중도 모르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 오피스텔에 도착하자마자 재중을 침대에 눕힌 창민은 정실장이 알려준 선반에서 숙소에서 동일하게 사용하고 있는 휴대용 산소 호흡기를 꺼내 작동 시켰다. 경련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재중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흰자위로 뒤덮이기 시작했고,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재중이 숨쉬기가 굉장히 힘들었는지 가뜩이나 부어있는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무는 마당에 입술에 핏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곧바로 손수건을 찾아 재중의 입에 물어주었고, 호흡장애를 피하기 위해 바지를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지속적으로 심하게 아랫부분의 근육이 수축하기 시작하자 다리마저 벌벌 떨기 시작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엉클어진 머리를 다시 흐트러트린 창민은 그저 욕을 내뱉는 일이 전부였다. 연예인에게 병원은 언제나 과장된 소문을 동반해야만 하는 어려움들이 뒤따라야만했다. 감기가 성인병이 되기도 하고, 건강검진이 성대수술로 바뀌곤 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그런 일들과는 차원이 다른 자극적이고 낚시성이 짙은 여러 가지 타이틀로 기사가 쏟아져 나올 수 있는 막대한 일이기도 했다. 이런 일로 병원을 가게 되면, 소문이라고 무성했던 일들이 마치 진짜였던 것처럼 오랫동안 루머에 시달리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나마 차가운 산소가 공급되자마자 막혔던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는지, 잦게 일어나는 경련이 멈추고 아까 전 보다는 훨씬 더 부드러운 호흡에 오르락내리락 거칠게 움직였던 가슴이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이제야 마음이 놓이기 시작한 창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재중에게 이것저것 불편한 점들을 물어보며 안색을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점 없는 재중의 눈에는 무척 슬픈 표정이 어려 있어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된 창민이었다. 그저 한없이 느리게 흘러가는 야속한 시간이 답답해질 뿐이었다. 안정된 호흡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약의 기운이 심하게 돌기 시작했는지 다시 바들바들 떨고 있는 힘없는 다리의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재중의 안쓰러운 얼굴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아까와는 다른 호흡으로 입술 끝까지 매달린 신음을 억제하느라 다시 수건을 꽉 물기 시작한 재중이 기어이 또 한 번의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수건 끝에 매달린 울음소리에는 신음과 함께 딸꾹질까지 포함되어, 잠잠했던 가슴이 다시 위 아래로 곤두박치기 시작했다. 흐..흡.. 끅.. 흐흑... 히끅.. 호흡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졌는지 갑자기 호흡기를 떼고 입에 물린 수건을 뺀 재중이 입으로 새어나오는 신음소리를 손으로 막으며 침대에서 일어났고, 옆에서 안절부절 서성이던 창민이 위태로운 발걸음의 재중의 팔을 부축하기 시작했다. " 혀..형! 누워있어요! 아직 움직이면 안돼요. 정실장님 거의 다 오셨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잠깐만 참아 봐요! " 탁-! 소리와 함께 재중을 부축이던 창민의 손이 거칠게 나가떨어졌고, 단 한 번도 이런 냉담한 재중을 본 적이 없었던 창민은 크게 당황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막아 설 수 없을 정도로 단호하게 움직인 재중은 욕실을 향해 들어갔고, 들어가자마자 욕실 문이 잠가지는 소리가 덜컹 창민의 심장을 크게 조이고 있었다. 분명 열에 들뜬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던 모양이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욕조에 물이 받아지는 소리가 크게 메아리치듯 울리기 시작했고, 멈춰있는 시계만 바라본 채 정실장을 기다리는 창민의 얼굴이 몇 시간 사이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 욕실 문에 기댄 채, 행여나 나쁜 일이 생길까 모든 청각을 욕실 안으로 집중시킨 창민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저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머리까지 지끈 울려왔다. 그와 동시에 욕실 안에서 다시 시작된 재중의 울음소리와 딸꾹질 소리에 번쩍 정신이 든 창민이 좋지 않은 느낌에 문을 두들겨 재중을 불러보았지만, 더욱더 커져버린 울음소리만 되돌아올 뿐이었다. 이에 놀란 창민이 거실과 침실을 미친 사람처럼 뒤지기 시작해 욕실 열쇠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때마침 도어락의 비번이 풀리면서 현관문에 등장한 정실장의 모습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은 창민이 허옇게 질린 얼굴로 정실장을 질책하듯 말했다. " 형만 없으면 저렇게 죽을 듯 약해빠진 사람. 잘 아시면 멋대로 휘두르지 마요. 그거 굉장히 비겁해요. " 창민의 서늘한 눈빛을 정실장이 독하게 받아내고 있었다. " 호흡기는? " " 호흡은 일단 안정되었고, 욕실 들어간 지 20분이 지났는데 계속 울어대요. 어찌나 고집불통인지. " " 다른 약과 혼합되면 문제 생기나? " " 수면제 같은 거라면, 아무래도 좋지만은 않죠. 그냥 빨리 풀어주는 게 상책 이예요. 아래가 얼마나 쾌감만큼 고통이 동반하는지 상상도 못하실 걸요? " 창민의 말에 정실장의 미간이 잔뜩 곤두서 있었다. " 많이 늦었다. 내일 스케줄은 캔슬했어. 그만 가봐. " " 알아서 어련히 잘하시겠지만, 많이 알수록 더 모르는 법이예요. 다른 건 몰라도 마음은 다치게 하지마세요. " " 그래. " 곧바로 창민이 찾지 못한 열쇠를 거실 테이블 선반에서 쉽게 꺼낸 정실장이 입고 있던 블랙 슈트를 소파에 벗어 던지고 꽤나 답답했던 모양인지 입고 있던 와이셔츠를 단추가 거실바닥으로 나가떨어질 정도로 우악스럽게 뜯다시피 벗었다. 곧바로 보이는 팔뚝에 살짝 돌출된 힘줄과 탄탄한 근육으로 다져진 넓은 등판이 눈에 들어왔고, 긴 한숨을 쉬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창민이 오피스텔을 나서는 순간이기도 했다. 열쇠를 꽂아 욕실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재중의 모습은 곧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라도 할 듯 위태로워 보였다. 이를 악문 듯 한 정실장의 공허한 목소리가 욕실에 메아리치기 시작했고, 목소리의 주인공이 뇌로 인식되자마자 고개를 푹 숙인 채 벌벌 떨고 있던 재중이 한껏 움츠린 몸을 더 꽉 움츠리며 울먹이기 시작했다. " 그 꼴로 병원에 실려 가고 싶지 않으면, 그만 울어. " " 흐흡..시..싫어.. 가..나가..히끅.. 나가란 말이야.. 흐흡..끅.. " 고개가 꺾어질듯 이리저리 저으며 흔들어대는 통에 머리가 어지러울 법도한데 그 동작을 쉽게 멈추지 못한 재중에게 다가간 정실장이 가득 채워져있는 욕조의 물 온도를 체크하고는 얼음장처럼 소름 돋게 차가운 온도에 인상이 험하게 구겨지기 시작했다. 아래가 빳빳해져 아파오기 시작한 통증으로부터 나오는 쾌감이 치욕스럽다고 느낀 재중이 그 고통을 분산하기 위해 찬 물을 욕조에 받았고, 자꾸만 아려오는 페니스를 두 손으로 꽉 붙잡은 채 몸을 한가득 웅크리고 있었다. 입고 있던 옷들은 다 찬물에 젖어 다시 못 입을 옷처럼 축 늘어져 있었고, 바들바들 떨고 있는 몸은 추위로 새파랗게 멍든 사람처럼 물들어지고 있었다. 표정이 싸늘하게 변한 정실장의 얼굴을 본 재중이 더해가는 딸꾹질로 한손으로 파랗게 질린 가슴을 치며 답답하단 듯이 울음을 애써 멈추려 입술을 깨물기 시작했고, 핏방울이 가득 고인 재중의 입술에 더 이상 깨물지 말라고 자신의 검지 손가락을 넣은 정실장이 고요하지만 서늘한 음성을 내뱉었다. " 병원 갈래? " 다시 고개를 세차게 흔든 재중이 히끅 히끅 거리며 또 한 번에 눈물을 쏟기 시작해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일단 차가워진 몸을 녹여주기 위해 한가득 차 오른 욕조의 마개를 빼자, 욕조의 물이 몽땅 욕조 구멍 밑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재중의 팔을 잡아 일으키려하자 갑작스럽게 꺼림칙한 손길처럼 정실장의 팔을 탁-!!! 치면서 밀어낸 재중이 시선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괜찮다는 듯 손사래 치듯 말했다. " 시..싫어.. 히끅.. 혼자 할래.. 그냥.. 나..나가...형.. " " 재중이 자꾸 형 힘들게 할래? " 다시 고개를 세차게 흔든 재중이 아래가 아파오기 시작하는지 다시 한 번 부들거리는 손으로 제멋대로 반응하는 페니스를 움켜잡았고, 이런 몸 그 자체가 굉장히 치욕스럽다는 듯이 다시 혀를 깨물며 울먹거렸다. " 흐흡..히끅.. 이런 모습 형한테..흡흑.. 보여주기 싫어. 흐엉엉.. 싫어.. " 자꾸만 파랗게 질려가는 몸 때문에 더 이상 시간을 주체할 수 없단 듯이 우악스럽게 재중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억지로 집어넣은 정실장이 쉽게도 욕조 안에서 웅크린 재중을 욕조 밖으로 꺼내 들어 올렸고, 정실장의 육중한 팔을 힘없이 탁- 탁- 내리치며 울음소리가 더 커진 재중을 혼이라도 내듯이 입고 있던 옷들을 하나씩 벗기기 시작했다. 먼저 물에 젖어 축 늘어진 스웨터를 머리 위로 벗겨내자 오돌오돌 솟은 가슴팍과 퍼렇게 멍이 든 것처럼 홀쭉한 배 부위가 눈에 들어왔다. 저절로 씨발. 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나지막이 뱉어진 정실장이 화가 난 듯 버클이 풀어진 바지를 벗겨내기 시작했고, 페니스를 움켜잡고 엉엉 소리를 내는 재중이 정말로 싫다는 듯이 정실장의 우악스런 손길을 피해 몸을 움직여 보았지만 그런 건 안중에도 없단 듯이 바지를 잡아 입고 있던 팬티와 함께 동시에 확 내려 벗겼다. 순식간에 알몸이 되어버린 재중은 여전히 페니스를 움켜잡고 숨이 넘어가도록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고, 차가운 욕실 타일위에 철푸덕 나체로 앉아있는 모습을 보자 조금이라도 부드럽게 타이르고 싶었는데 이미 터져버린 화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아 스스로에게 화가 날 지경이었다. 새롭게 따뜻한 물을 욕조에 받아내는 시간동안 냉담한 시선으로 욕조에 걸터앉아 울고 있는 재중을 한없이 바라만 보았다. 그리고 동시에 어느 뜨거웠던 여름의 일들이 오래된 필름처럼 빠르게 지나갔고, 다신 이런 모습 형에게 보여주지 말라고 했었던 자신의 말이 떠오르면서 치가 떨리듯 온몸에 세포가 발작하는 것처럼 자신을 밀쳐낸 재중의 생각이 읽혀지는 순간이었다. 어느 정도 북받쳐 올라왔던 화가 잦아들었고, 재중의 시선과 동일하게 몸을 낮춘 정실장이 재중의 퉁퉁 부어버린 눈가를 부드럽게 쓸어주며 말했다. 아직까지 그 일을 어제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재중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기도 했었다. " 재중아. 그때 형이 한 말은, 그런 연습생들과 같이 있었던 재중이 몸이 치욕스럽다고 여겨져서 뱉은 말이 아니라, 형이 아껴하는 재중이가 그런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져서 화가 나서 한 말이었어. 널 업신여기며 한 말이 아니야. 형 마음 모르고 있었어? " 때마침 어느 정도 받아진 욕조의 온도를 확인한 정실장이 차가운 욕조 타일에 털썩 주저앉은 재중을 다시 한 번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이번에도 가볍게 들어 올렸고, 손이 닿기만 해도 얼음장처럼 차가운 몸을 따뜻한 물에 담가주자 으..으... 앓는 소리가 절로 나온 재중이 서서히 눈물을 멈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쩌면 정실장이 생각한 재중은 그 보다도 훨씬 더 어른이 된 느낌이라, 이 정도의 일은 혼자서 해결하는 게 이 아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 다치지 않는다는 걸로 다시 생각하게 된 정실장이었다. 곧바로 다 받아진 욕조의 물을 잠그고 욕조에서 재중을 내버려둔 채 정실장의 몸이 빠져나갔다. 그런데 그때 멈춰진 재중의 울음소리가 다시 거세게 욕실 안을 매우기 시작했고, 엉엉 소리를 내며 앙상한 두 팔을 벌려 정실장에게 내밀기 시작한 마음을 읽기 어려운 재중에게 다가가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며 왜 자꾸 우냐고 물어보자 정실장의 등을 꼭 껴안은 재중이 숨을 힘들게 나누어 내쉬며 말했다. " 흐엉어엉..히끅.. 나가지마.. 흐흡.. 나가지마 형.. 흐흑흡.. 아파.. 히끅...나... 너무 아파.. " 그제야 제대로 자신의 마음을 실토한 재중의 모습에 마음이 놓여오는지 행여나 재중의 민감하고 여린 살에 옷감이 아프게 스치지 않을까 염려된 정실장이 빠르게 정장바지를 벗었고, 따듯하게 차오른 욕조 안으로 들어가 재중의 물기어린 시선을 마주보고 아이가 조금 더 편하게 그리고 상처가 되지 않도록 땀과 찬물로 흠뻑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주며 괜찮다는 시선을 오랫동안 보내기 시작했다. 서서히 울음이 멈춰지기 시작한 재중이 일정한 거리를 두고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딸꾹질에 힘이 다 빠졌는지 앙상한 두 팔을 들어 정실장의 목을 둘러 안고 여러 번 호흡을 나누어 쉬며 말했다. 잔뜩 울음이 가득한 목소리는 심하게 떨고 있었지만, 맞닿은 가슴에서 요동치는 심장박동수가 정실장의 마음을 아릿하게 조여 왔다. " 히끅.. 형... 형아.. " 아직 차가운 재중의 마른 등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등을 토닥이는 정실장의 눈빛이 고요했다. " 말해. 형 듣고 있어. " 정실장의 목을 두른 팔을 더 세게 끌어안으며 하기 힘든 말이었는지 몸이 힘들어서 말하기가 힘든 모양인지 쉽사리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재중을 재촉하지 않고 그저 등을 토닥이고 있었다. 다시 입술이 열린 재중의 음성이 사시나무잎 흔들리듯 저 멀리 날아갈 것처럼 적막하게 욕실에 메아리처럼 울렸다. " 형.. 우리는 사랑이야? " 등을 토닥이던 손길이 한순간에 우뚝 멈추었고, 여전히 벌벌 떨고 있는 재중의 안쓰러운 몸이 동시에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목에 둘러진 앙상한 팔을 서서히 빼고 눈물이 그렁그렁 끝까지 차오른 재중의 눈을 마주보며 눈썹, 이마, 콧망울, 입술 하나하나 부드럽게 얼굴을 스쳐지나가는 손길에 눈을 꼭 감은 재중의 속눈썹이 파르르 경련 일어나듯 떨려왔고, 그와 동시에 맞닿은 입술로 가득 고였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려왔다. 재중의 양 볼을 두 손 한가득 잡은 정실장의 입술이 예고 없이 거칠게 파고 들어왔고, 뜯어먹기라도 할 것처럼 자근자근 아랫입술과 윗입술을 번갈아 깨물며 진득하게 다가왔다. 처음엔 당황했던 입술이 어느새 곱게 열려졌고, 기다렸단 듯이 더욱 뜨거운 깊은 곳으로 들어간 정실장이 길을 잃고 방황하는 재중의 어색한 혀를 금세 잡아 거세게 옭아매기 시작했다. 츕-츕 야한소리와 함께 재중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달뜬 신음소리는 굉장히 고혹적이었다. 금방 멈추기 힘든 상황처럼 불편하게 앉아있는 재중의 엉덩이를 가볍게 들어 올려 자신의 허벅지위로 편하게 올려주자마자 자세가 편안해진 재중이 자유로운 두 발을 정실장의 허리로 감싸 안았고 빈틈없이 가까워진 품안에 재중의 혀를 더욱 깊게 옭아 혀로 감싼 정실장은 혀의 돌기 하나하나가 빨판처럼 단단하게 재중의 입 속으로 파고들었다. 혀와 혀가 엉키고, 타액과 타액이 서로 섞이는 진득한 애정 어린 키스였다. 중간 중간 숨을 쉬기 힘들어 정실장의 등을 미약하게 친 재중의 입 속으로 여러 번 숨을 나누어 호흡하기 편하게 숨을 불어 넣어주자, 다시 안정된 재중이 정실장의 등을 꼭 끌어 안은 채 키스를 보채기 시작했고, 살살 간질이듯 혀를 훑어가는 느낌에 쾌감이 배로 달아오른 재중이 오뉴월 엿가락 눌어붙듯이 정실장의 몸에 찰싹 달라붙어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제대로 약의 효과가 올라오고 있는 시점이기도 했지만, 정작 몸이 저절로 자극을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는걸 본인은 알지 못했다. " 하으응...흣... " 뱃속이 꼭 조여드는 것처럼 홀쭉해졌다 다시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재중은 아릿하게 솟아오르는 페니스를 움켜쥐고 싶었지만, 이미 자신의 혀를 옭아매는 정실장의 애무로 혼이 나갈 정도로 환각상태에 빠진 뒤였다. 히잉.. 앓는 소리가 저절로 튀어나왔고, 중간 중간 코, 입술, 이마, 볼을 돌아가며 입을 맞춘 정실장의 손길 하나하나에 입에서는 고통인지 희열인지 모를 신음 소리가 그의 움직임에 따라 새어나왔다. 낯설지만 익숙한 느낌이기도 했다. 키스를 하던 도중 입술이 재중의 귓불로 옮겨져 살짝 이로 그곳을 깨물자 꼬리뼈에서 부터 올라오는 강한 충동에 몸을 흠칫 놀라듯 떤 재중이 다시 정실장의 입술을 찾아 뜨겁게 파고들었다. 쾌감의 진원지를 살짝 잡은 정실장은 중간 중간 재중의 귓불을 깨물고 문지르자, 온몸이 벼락에 맞은 것처럼 재중의 몸이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 흣... 형아.. 이상해, 그거...흣... " 에로스에 유괴당한 프시케처럼 재중은 정실장의 품안에서 엄청난 쾌감에 사로잡혀 바들바들 떨고 있었고, 재중의 어깨와 목 사이에 얼굴을 비비며 발기가 제대로 된 재중의 페니스를 살펴본 정실장이 가득한 욕조의 마개를 다시 한 번 뽑았고, 소용돌이처럼 빠르게 물이 빠져나가자마자 허벅지위에 앉아있던 재중의 몸을 들어 자신의 가슴에 재중의 등이 맞닿도록 편하게 기대어 앉혔고, 이미 달뜬 숨 때문에 가슴과 머리 모두가 마비된 사람처럼 눈을 꽉 감은 재중이 따뜻한 물이 사라지자 아릿해오는 빳빳한 페니스에 다리를 벌벌 떨기 시작했다. 이런 자신이 망측하단 듯이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살짝 아래로 숙였고, 동시에 재중의 가느다란 허리를 팔로 감싸 안으며 편안하게 자신에게 기대게 자리를 잡아준 정실장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 " 이거 창피한 일 아니야. 누구나 이럴 수 있는 일이야. 형이 그 자리에 함께 있어주지 못해서 미안해. " " 하아...으흥...하아.. " 온 몸에 기가 빠진 사람처럼 축 늘어진 재중의 허리를 한 팔로 안으며 꽉 오므려진 다리를 벌리기 시작했고, 앓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흔드는 재중에게 괜찮다고 계속해서 말해주며 허벅지를 연 정실장은 재빠르게 솟아오른 재중의 뜨거운 페니스를 한손에 움켜쥐었다. 곧바로 몸을 앞으로 구부리며 숨을 헐떡이던 재중이 자꾸만 다리를 오므리려했고, 정실장의 손이 닿는 곳마다 격하게 반응하는 몸이 무척이나 예민해졌다는 사실이 인식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자유로워진 두 팔이 매달릴 곳이 없어지자 조급해진 재중은 자신의 몸을 감싸 안고 있는 정실장의 허벅지위에 손을 올렸고 서서히 벌려진 허벅지 사이로 조금 두렵지만 야릇한 전율에 쉽게 울지도 못하고 고개를 떨군채 떨어야만 했었다. 마치 구름위에 동동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재중의 페니스를 움켜쥐었던 잠잠했던 손이 위 아래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럴 때마다 허리가 요동치듯이 튕겨져 올라와 발가락이 오므라들기 시작한 재중이 고개를 뒤로 꺾으며 참기 힘든 신음을 뱉기 시작했다. 여러 번 반복되는 점점 거세지는 손짓에 피가 거꾸로 솟는듯한 고통과 함께 몰아치는 쾌감에 전혀 얻을 수 없었던 절정으로 올라갔고 선율이 일깨우는 아릿한 정실장의 살내음에 자신의 목 부분을 입으로 간질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뜨거운 숨결에 입술은 더욱더 축축이 젖어들고 있었다. 일정한 속도로 밀려왔다 밀려들어가는 손짓에 재중의 몸도 따라서 절정을 향해 치닫게 만들었고, 혼곤한 감각에 살갗에 흐르는 미세한 전율에 허리가 비틀어지고 체온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손길처럼 재중이 가장 민감한 부분을 찾아 여러 번 반복적으로 격하게 움직이는 손길이 가져다주는 쾌감에 눈물이 저절로 나오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페니스 안에서 데일 듯 뜨겁게 꽉 차 있었던 정액이 화산처럼 흩어져 물컹물컹 하얗게 흘러 나왔다. 지진이 일어난 듯 몸을 바르르 떨기 시작한 재중이 뜨거운 숨소리를 나누어 내뱉으며 정실장의 가슴에 등을 기댔고, 어느새 땀으로 흥건해진 재중의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며 귓불, 목, 어깨, 그리고 볼 하나하나 부드럽게 키스를 해주는 정실장이 놀란 재중의 가슴을 토닥여주었다. 꽤 긴 시간동안 반신욕을 했기 때문에 빈혈이 염려스러운 정실장은 곧바로 물을 틀어 눈을 꼭 감고 축 늘어진 재중의 몸을 구석구석 조심스럽게 닦아주고는 침실로 데려와 재중을 눕히고 서늘한 오피스텔의 온도를 최대로 올리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재중이 다녀간 이후로 처음으로 작동되고 있는 보일러였다. 일단 재중의 몸이 서늘하지 않도록 축축하게 젖은 머리카락을 말려주었고, 새 팬티를 꺼내 입혀주자 고맙게도 잠이 몰려오기 시작하는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침대 시트 안으로 몸을 크게 말은 재중이 편안하게 눈을 꼭 감았다. 이제야 놓이는 마음에 곧바로 샤워를 마친 정실장이 금방 잠이 든 재중의 옆자리로 자리를 잡아 눕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실장에게 몸을 돌린 재중이 익숙한 체향을 찾아 아이처럼 가슴팍에 파고들었다. 편안하게 잘 수 있도록 팔을 내어 머리를 받쳐주고 이불을 여며주자 기분 좋게 앓는 소리를 내며 잠에 취한 듯 늘어진 재중의 목소리가 울렸다. " 혀..엉... " " 응. " " .. 나 .. 허벅지이... " 그제야 제대로 잠들지 못한 이유를 찾은 정실장은 재중의 마른 허벅지를 들어 자신의 허벅지 사이로 끼어 맞춰주었고 넓혀진 틈을 빈틈없이 꽉 안아주자, 그제야 재중이 깊은 숨소리를 내며 잠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고요한 재중의 얼굴을 바라보며 자꾸만 ' 형.. 우리는 사랑이야? ' 라고 말했던 재중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맴돌아 마음이 아릿한 날이기도 했다. 정실장 속에서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많이 어리다고 느낀 재중이 어느새 형. 우리는 사랑이야. 라고 단호하게, 느리기 만한 자신을 책망하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가슴이 아려왔다. " 사랑한다. 재중아. " § 개인 레슨을 가르치는 선생 양반을 보아도 예체능에서 환경 조성이 얼마나 학생에게 중요한가를 뼈가 오죽하면 저리게 느낄 수가 있느냐 이 말이다. 콩 심은 데 콩이 나야하고, 팥 심은 곳에 팥이 나야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거늘, 내가 피아노를 치겠다면 음악적인 환경을 전부 다 끌어올려서 최대한 좋은 환경을 만들어줘야지 정상이었다. 악보 보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는 녀석이 거실에서 개그프로그램을 보질 않나, 생뚱맞게 멜로디언을 옆으로 가져와서 난데없는 화음을 맞추질 않나, 이것은 가르치려는 의도가 전혀 없는 걸로 보였다. 지 무료한 시간에 심심풀이 땅콩처럼 천하의 박유천을 질겅질겅 씹고 있다 이 말씀이다. 피아노는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흔하게 접하는 악기중 하나였다. 그러나 단순하게 남들처럼 나에겐 흔한 악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좋은 노래들을 접하게 되고, 좋은 선율들을 하나씩 배우기 시작한 나에게 피아노는 그저 악보를 보고 치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선율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화성을 느끼고 이런 것들을 섬세하게 밖으로 표출해 내는 중요한 과정 중에 하나였다. 집에 터치감도 좋은 그랜드 피아노도 있는 녀석이 툭하면 멜로디언을 꺼내 들어 내 속을 뒤집어 놓았고, 악보를 가르쳐준다면서 처음에 중요한 악보만 콕 집어서 대충 알려주고는 돌아서기 일쑤였고, 내가 열심히 악보를 치다가도 한 음이라도 엇나가기 시작하면, 게임을 했던 중간이라도 음식을 먹던 중간이라도 화장실에서 오줌발을 날리고 있던 중간이라도 경기 일으키듯 벌떡 일어나서 내게 소리쳤다. " 야! 박유천!! 거기 틀렸잖아!! 거기서는 가장조로 들어가야지! ' 도 ' 음이 건반에서는 ' 라 ' 음으로 잡아야지~ 박유천! 너 아까 #에서 ' 시 ' 음보고 ' 도 ' 잘 찾았었잖아! 플랫도 b에서 ' 파 ' 음 보고 ' 도 ' 찾아! " 기차화통 삶아 먹은 것 같은 거센 바람의 목소리를 좀 제발 삼가해줘, 씨발새끼야 고막 떨어지겠다!! 아주그냥 짱알짱알 유리알 굴러가는 소리하고 자빠졌네! 녀석을 째려보며 나는 귀찮게 귀를 후비적거렸고, 녀석의 말대로 손가락을 건반으로 옮기자 제대로 된 음이 나왔다. 이제야 만족스러운 듯 다시 거실로 나가 TV를 보기 시작한 녀석이 빠르게 TV를 집중하다가도 한 음이라도 다시 엇나가면 굉장히 무서운 호랑이 선생처럼 눈을 찢어서 노려보고는 나를 멍청한 특수반 학생처럼 업신여겼다. 그럴 때마다 존심이 상해서 이가 갈렸는데, 이상하게 저 새끼보다 못한다는 게 있다고 생각하니까 존나 분노가 되기 시작하는 거다? 한명의 경쟁상대가 고위층 과외비 안 아깝다 라더니 내가 그 꼴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녀석은 내게 악보를 가르쳐줄 때 적어도 애완견 취급은 안했다. 솔직히 내가 아직까지도 버티고 있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 중에 하나임은 분명했다. 물론 ' 유천아 - ' 와 같은 봄바람처럼 살랑살랑 거리는 호칭은 아니지만, 그래도 믹키에서 박유천으로 레벨업한게 어디냐고? 난 어느새 이런 호칭 하나하나에 소소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녀석의 진정한 노예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씨발, 그래도 어떡해 10분이라도 더 붙어있고 싶은데. 그래도 녀석은 만날 재채기 나오게 코를 자극하는 후추만 뿌려대다가 중간 중간 혀가 달짝지근한 설탕도 뿌려줄 줄 아는 그야말로 학생의 목을 쥐흔들기에 능숙한 밀당에 천재이신 킴선생님이셨다. 악보는 보지 못해도 어떤 음악을 듣고 피아노 88개의 건반 중에서 어떤 것에 해당되는지는 정확하게 아는 녀석이라며 ' 인정하기 싫지만 넌 나처럼 절대 음감이야! ' 라고 자기자랑에 원플러스원 제품처럼 나를 옆에다 끼워 대놓고 팔아댔다. 그리고 녀석이 자주 내뱉은 말 중에 하나는 ' 피아노를 정확히 배우면 다른 악기를 배울 땐 껌 값이야. 작곡을 하려거든 네가 치는 악기를 정확하게 알아야 하지 않겠어? ' 라며 나에게 작곡의지를 살금살금 불러 모으기도 했었다. 게임을 하다가 중간에 작업실로 들어온 녀석이 또다시 다짜고짜 멜로디언을 꺼내 불면서 비어있는 악보에 음표를 채우기 시작했고, 섞이기 시작한 화음에 짜증이 나 건반위에 올린 손가락을 내리치며 녀석에게 소리쳤다. 이상하게 전봇대에 붙여있는 [ 서울대 음대학과 재학 중, 학생을 내 동생처럼 레슨 시키겠습니다. 연락주세요. ] 와도 같은 허위성 짙은 홍보물에 눈이 멀어 사기를 당한 느낌과도 비례했다. 피아노 악보를 넘겨주며 미소로 화음을 넣어주는 상상을 한 사기 당한 놈이 병신이었다. " 김준수!! 왜 자꾸 멜로디언 키고 지랄이야!!! 헷갈리잖아!!! " 내 보이스는 이미 안드로메다에 출장까지 가셨고, 흥얼흥얼 거리며 신이 난 녀석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벌떡 일어나 녀석에게 다가가 얄미운 어깨를 아프지 않게 살짝 때렸고, 갑자기 휙! 돌아서서 확! 째려보는 눈에 기가 눌러 깨갱.. 깨갱 소리가 절로 나왔다. " 박유천, 멜로디언의 장점을 말해봐. " 갑작스런 질문에 머리가 돌아가질 않았고, 눈동자를 굴리던 내 머리를 아프지 않게 연필로 탁-! 친 녀석이 재수 없게 혀를 쯧쯧 차며 내게 말했다. 박유천 소리 하나 때문에 참고 있는 내가 너무 불쌍했다. " 작곡가 맘대로 곡을 쓰면,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버거워. 양립을 위해선 호흡을 조절해주는 게 마음이 가장 편하다는 거지. 멜로디언은 뭐 지 혼자 돌아가? 아니잖아, 내 침이 강물처럼 고이도록 숨을 뱉어줘야지 소리가 나와. 그래서 어느 구간쯤이면 호흡을 내쉬고, 가성 혹은 미성이 편한지 100%는 아니더라도 도움이 될 정도로 짐작이 갈 수가 있어. "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침 고여 있는 멜로디언 나한테 털어댈 때마다 도망가기 바빴는데, 그런 깊은 뜻이 있는 줄도 몰랐다. 아 그래서 리코더도 불러? 근데 가끔 코로 부는 건 무슨 심리야? 그것도 가수를 위한 배려라고 주둥이 열어 쌀래 색꺄!! 드러운 새끼! 마치 1주일동안 나를 위해 잠을 못잔 것처럼 입술에 침까지 발라가며 구라를 깐 녀석이 다름이 아니라 학교 과제로 인해 날밤을 샜다는 정확한 소식을 듣자마자, 기가차서 한참을 병신처럼 웃어야만 했었다. 거실을 지나가던 길에 우뚝 서 있는 내 이마위로 손을 올려 열을 체크한 녀석이 훗. 하고 비웃듯 나를 비켜 지나갔고, 난 그저 씩씩 거리며 콧바람의 위력을 테스트할 뿐이었다. 하지만 난 솔직하게 녀석과 함께 하는 시간들이 너무나도 좋았다. 살내음이 좋았고, 녀석의 집 냄새도 좋았고, 어지럽게 더럽혀진 침대도 좋았고, 아직까지도 샤키의 향기로 가득한 샤키방도 좋았다. 뭐 가끔 샤키 껌을 가지고와서 심심하면 질겅질겅 물고 있으라는 소리만 빼고 말이다. 그리고 가장 좋은 건, 녀석과 함께 감성을 공유하는 작업실이 너무너무 좋았다. 기분 나쁘게 조롱을 당하다가도 작업실에 들어가면, 정말로 내가 마치 유능한 작곡가처럼, 또 엄청난 가창력을 소유한 가수처럼, 또는 신이 내린 빌헬름 켐프 연주가처럼 모든 선율에 나를 맞추고 있다는 착각들이 자주 들곤 했었다. 녀석은 의자 보다는 작업실 바닥을 주로 이용했다. 엎드린 자세로 곡을 쓰기도 하고 작업이 중간에 막힐 때에는 시간을 내버려둔 채 금세 게임에 열중하기도 했다. 작업실에서 내가 연주한 피아노에 푹 빠져 감성적일 때 녀석은 내가 앉아있는 의자의 다리 사이로 몸을 기댄 체 흥얼흥얼 화음을 넣기도 했었다. 그렇다. 내가 느낀 사기꾼의 배신감이 한순간에 녹아드는 결정적인 현장이기도 했었다. 녀석이 가장 진지한 시간이자, 녀석이 가장 솔직한 시간들이기도 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도 꿀처럼 달콤하고 레몬처럼 시기도 했고, 청량고추처럼 코가 메워지기도 했다. 여전히 의자에 등을 기댄 녀석이 악보를 점검하고 있었고 몸이 축 늘어진 채 녀석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노는 내가 물었다. " 유명한 기획사에서 여러 번 연락도 갔던 걸로 알고, 재능도 있고, 실력도 있는데 왜 가수 안 해? " 검지손가락과 중지손가락 연필을 껴놓고 돌리기 시작한 녀석이 시선은 여전히 악보에 집중된 채 별 질문 아니라는 듯 쉽게 말을 내뱉었다. " 내가 직접 부르면, 작곡할 때 머릿속이 어지러워. " " 그게 무슨 말이야? " " 작곡을 하면, 선율에 집중하게 되는데 노래를 부르게 되면 그 시기의 유행, 리듬, 대중들에게 휘어간다는 소리야. " " 노래 부르는 거 좋아하잖아. " " 응. 근데 목소리 팔리는 것 보다, 내 감성이 팔리는 게 난 좋아. " 녀석이 악보에 집중하면 난 녀석을 마음대로 만질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지게 된다. 이 말은 굉장히 위험한 발언과도 같지만, 난 약간의 변태성이 짙은 수컷은 분명했다. 그러니까 평소 정신 상태로 허리를 껴안거나 녀석의 살내음에 취해 이리저리 살을 부대끼면, 정신병자 취급하듯 머리 옆으로 손가락을 빙글빙글 돌리던 녀석이 한번 무언가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그냥 나를 무존재, 투명인간 취급을 하기 시작했다. 게임에 집중하던 순간에도 편안하게 내 다리 품안에 넣어두고 녀석의 등을 내 가슴팍에 기대게 해주면 진짜로 1시간 게임을 하든 2시간이든 미동도 하지 않고 정말 편안한 자세마냥 내게 기대 게임을 했고, 중간 중간 키득거리며 녀석의 허리를 껴안아도 등에 볼을 부비적 거려도 아예 촉감을 잃은 애자처럼 나의 존재를 무시했다. 처음에는 이게 너무 짜증이 나서 몇 번 소리를 질러 싸고 방방 거렸는데 어느새 노하우가 생겨 단점을 장점으로 순환 시킨 내가 너무나도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어딜 가서 이딴 소리 하면 그야말로 동방신기 믹키유천 변태요~ 라는 소문이 무성할 게 뻔했다. 여전히 악보에 온 시선을 집중한 녀석의 등 뒤로 앉아 한껏 부풀은 희망으로 두 팔을 덥석 녀석의 가느다란 허리를 감싸 안았고, 좀 더 업그레이드된 스킨십으로 훤하게 내보여진 목덜미에 입술을 박아 쪽 소리 나게 뽀뽀를 했다. 발가락이 짜릿하고 손가락이 오므라질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다. 이상하게 한 번씩 업그레이되는 스킨십이 감당이 안 되기도 했지만, 매번 먹혀들어가니까 자꾸만 자신감이 생겨지는 거다. 이런 행복한 감성에 취해 녀석의 허리를 꽉 조이고 있었는데, 순간 손등의 그나마 조금 붙어있는 살을 아주 쫀득하게 잡아당긴 얄미운 손이 있었고,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아파서 5초 후에야 비로소 비명이 터진 내가 있었고, 자리에 벌떡 일어나 내 대가리를 갈기고 달아나는 녀석이 있었다. " 변태 개새끼!!!!!!!!!!!!!!!!!! " " 아악!!!!!!!!!!!!!!!!!!!!!!!!!!!!!!!!! 아파!!!!!!!!!!!!!!!!!!!!!!!!! 씨발새끼야!!!!!!!!!!!!!!!!!!!! " 그렇다. 모든 행복은 언제나 불행을 잉태하기 위해 생기는 것이었다. 행복해지려면 불행을 반드시 감수해만하는 생존법칙을 잊고 살았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어떻게든 이 불행을 피하기 위해 애를 썼어야 했거늘, 단점과 장점이 서로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매번 잊고 사는 내 머릿속은 언제나 지우개가 가득했다. 녀석의 살내음에 부비적거리고 있다가도 집중하고 있던 일이 마무리되자마자 상황이 인식된 녀석은 가차 없이 나를 밟거나 때리거나 꼬집거나 귓속에 대고 고막이 떨어지도록 소리를 쳐댔다. 녀석은 마치 유리 구두를 티나게 흘려 놓고 흑흑~ 전, 이만.. 하고 달아다는 21세기 유형의 준데렐라와도 같았다. 땡! 치자마자 나를 변태 취급하는 녀석은 종종 철수와 통화를 하다가도 영희 누나를 손수 바꿔 개친절하게 나에 대해 까발리곤 했었다. ' 영희 누나가 좋아하는 믹키유천 쌍변태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지금 팬 많을 때, 자료 프리엄 걸어서 파세요. ' 난 녀석을 만나서 유치원생처럼 순수하고 올바르고 건전한 생활들을 하기 시작했지만, 녀석을 만나서 하루가 다르게 피가 말리기 시작하고, 살이 쏙 쏙 빠지고, 목이 자꾸만 득음한 것처럼 잠기고 이러다가 정말 피똥 쌀 것 같아 무서워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게 또 익숙하다 보니까 잔잔한 강물처럼 느릿~하게 나약하게 소곤거리듯 말을 곱게도 내뱉은 김영웅재중이 같은 종속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면 1분도 채 되지 않아서 머리를 쥐뜯으며 녀석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 나한테 소리 질러!!! 소리 좀 질러줘!! 네 목청이 필요해!!!!! 씨발!! 아악!!!!!!! ' 눈을 찡그리는 창민이 투니버스 마약 그만 좀 처먹으라며 대기실을 빠져나갔고, 살금살금 대기실을 빠져나가는 김영웅재중의 뒷모습이 포착되었고, 이미 내 전화를 무시한 채 핸드폰을 끊어버린 녀석은 핸드폰의 전원을 끄기도 했었다. 씨발, 학교종이 땡땡땡이 이젠 아예 종을 쳐 주지도 않는다 이 말이다. 저런 쓰레기 학교가 아이들의 인성을 망치고 있었다. 근데 어쩌라고 특수반이든 간에 난 그 학교가 너무 좋아 죽겠는데... § 10일 동안 녀석의 얼굴과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 내 눈 밑에는 제대로 그을어진 다크서클만이 내 몸 상태를 고스란히 알려주고 있었다. 캔슬할만큼 했다고 한 스케줄이 이 모양이니 나, 참 슈퍼스타는 이래서 슈퍼스타라고 겸손함은 저리 때려치우고 일단 잘 난건 잘 난거니까 라는 허세를 떨어대야지만 이 험한 스케줄에 끌려 지낼 수가 있었다. 오랜만에 생긴 오프에 신이 난 나는 몸이 안 좋은 상황 속에서도 준수새끼는 봐야겠다는 고집으로 걱정스런 상철의 팔을 뿌리치고 도망치듯 숙소에서 빠져나왔다. 두 번째로 방문하게 된 녀석의 학교 앞이었다. 이상하게 말없이 게릴라로 녀석을 태우러 두근두근 학교 앞으로 오게 되자, 이상하게 콧소리가 흘러나오고 어깨가 들썩 거렸다. 하지만 수척해진 얼굴이 백미러로 보이자마자 헉! 소리가 절로 나며 내 얼굴을 보고 내가 놀라고 있었다. 오늘 같은 날이면 그래도 반가운 비가 슬렁슬렁 내리고 있어 밖의 날씨는 급격하게 추워지고 있었다. 정문에서 무리지어 나오는 학생들의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기 시작했고, 기다리기 시작한지 2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등장한 녀석은 웬일인지 오늘은 혼자였다. 여전히 쓸데없는 물건이 가득한 큰 악기를 등에 메고 있었고, 갈색바지 위에 귀여운 패턴의 무늬가 새겨진 스웨터 조끼를 입고 있었다. 가뜩이나 마른 허리가 부각되는 옷들이었다. 난데없이 내리기 시작한 비에 우산이 역시 없었는지 비를 쫄쫄 맞으며 새치름하게도 발걸음이 빨라지는 녀석을 보자 입꼬리가 사정없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녀석이 지나가기 전에 녀석을 불러 세우기 위해 썬팅된 오른쪽 창문을 내리고 녀석을 막 불러 서려고 할 때였다. " 준수야.. " 아까도 정문 앞에서 서 있었던 나이가 어느 정도 엄마와 비슷한 여성 한분이 녀석을 불러 세웠고, 누군가가 자신을 불러 세우는 음성에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녀석이 별안간 목석처럼 굳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굴이 사색이 되기 시작해 미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무슨 상황인지 납득이 가지 않아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고, 준수의 팔을 잡으며 뭐라 뭐라 애원하듯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여성 앞에서 발이 굳은 채 서 있던 녀석의 표정에는 그 어떤 변화도 없이 고요하다 못해 서늘하기 까지 했었다. 비를 온몸으로 맡기 시작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도 저런 모습이 샤키때 이후로는 처음인지라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며 녀석을 지켜보았고, 별안간 무릎을 꿇으며 준수의 바짓가랑이를 잡은 여인이 눈물을 크게 훔치며 내내 준수에게 뭐라 뭐라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차갑게 식은 손을 뿌리치고 녀석이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고, 녀석의 뒷모습을 따라가며 다시 한 번 팔을 잡자 소스라치게 놀란 사람처럼 여인의 팔을 게세게 단호하게 내리친 녀석이 냉담하게 말했다. " 잘못 찾아오셨습니다. 전 김준수가 아닙니다. "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여인을 피해 달리기 시작한 녀석의 뒷모습이 보였고, 깜짝 놀란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해 하면서도 이대로 녀석을 내버려 둘 수가 없어서 녀석을 따라 차를 움직였다. 어찌나 날쌔던지 빠르게도 뛰어간 녀석은 이미 두 정거장이나 뛰어갔고, 버스정류장에 털썩 앉아 얼굴에 묻은 빗방울을 닦기 시작한 녀석의 고개가 땅을 향해 처박혀 있었다. 축 쳐진 눈망울 사이로 하늘에서 내린 빗방울이 아닌, 눈에서 새어나온 눈물처럼 보여지자, 가슴이 진하게 아릿해왔고, 학교 앞에서 지켜봤다는 소리 보다는 녀석이 일단 편안할 수 있도록 너스레를 좀 떨어야 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냥 모른 척 옆에만 있어주고 싶었다. 아무것도 세워지지 않은 버스정류장에 차를 세워 창문을 열었고, 세상에서 가장 밝은 소리로 녀석에게 말했다. " 야!!!!!!! 타!!!!!!!! " 쪽팔리지만, 버스정류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고, 존나 흉측한 얼굴로 야!타! 를 외치고 있는 믹키유천을 발견한 몇몇 사람들은 꺅 소리를 내며 진짜 맞냐며 얼굴 보니까 그냥 닮은 사람 아니냐며 저 다크써클이 어째서 믹키유천이냐며 나의 모습을 보고 혼동하기 시작했다. 씨발, 하지만 고맙게도 나를 알아본, 정확하게는 내 차를 알아본 녀석이 떨어뜨려진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눈은 너무나도 슬프게 젖어있었지만, 예쁜 입가가 하늘을 향해 올라가며 나를 반가워하고 있었다. 그게 이상하게 감격스러워서 코끝이 짠해졌다. 녀석을 알고 나서부터 이렇게 소소한 일 하나에도 크게 감동받는 내가 있었고, 그만큼 녀석은 내게 너무나도 작고 큰 행복들을 천사처럼 안겨다 주기도 했었다. 마음이 놓인 사람처럼 축 쳐진 몸을 들어 앞좌석에 탄 녀석이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앞을 바라본 채 나처럼 세상에서 가장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 아저씨이!!! 출발!!!!!!! " 나로 인해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된 마음이, 그냥 언제나 녀석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분명 나를 만난 녀석은 반드시 행복해질 운명으로 만들어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준수야, 넌 반드시 행복해질 운명이야. 그니까 울지 마. | 난 이미 시작했는데, 그때 넌 아니었어? | My Melody w. 킵 * * * 콧물이 실시간으로 얼음이 되어가는 덩덩 덩더쿵, 풍년 고드름과도 같은 날씨의 어느 날이었다. 한번 마음먹은 일은 즉시 행동으로 옮겨야 직성이 풀리고, 한번 마음먹은 일은 세상이 두 조각이 나도, 영혼이 갈기갈기 찢겨져도 결실을 거둘 때까지 실행하고야 마는, 끈질긴 인내심과 자신만의 원칙이 존재했던 정실장은 아무리 내 육신이 조여질 지언즉, 내 예쁜 발목에 쇠고랑이를 채워서라도 날 고등학교에 보내려고 했다. 이미 선생의 뇌 회로가 눈에 훤하고, 야비한 인간들의 이기심을 깨닫게 해주고, 아무런 의미도 없이 허울뿐인, 그야말로 약육강식 정글의 생존법칙만이 얻어가는 유일한 지식이라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인식한 나는 학교를 가란 정실장의 말이 마치 사형선고처럼 들려졌다. 하지만 씨발, 난 이미 계약서를 작성한 나약한 연습생뿐이었고, 학교를 안가면 짱꼴라에서 ' 황비홍Park ' 으로 데뷔를 시킬 거라는 협박에 오줌 지리도록 몸을 부들부들 떨었을 뿐이었다. 나는 학교가 진짜 싫었다. 분명 힐끔힐끔 서로 견주어 보는 시선 속 단체생활에 토기가 몰려올 테고, 1주일에 한 번도 가기 힘든 퇴학 위험성으로 저조한 출석률임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데뷔를 앞 둔 가수라고 두둔하는 속 보이는 학교도 싫었고, 연예인이라고 앞에선 펜 내밀고 카메라 들이 내밀면서 뒤에선 ' 지가 가수면 다야? 왜 학교는 안 나오고 지랄이야! ' 같은 지킬박사와 하이드급으로 변하는 무리들이 싫었고, 성적도 존나 개꼴로 나오는 주제에 시험은 반드시 쳐야지 졸업이 가능한 무모한 짓도 싫었고, 고등학교 졸업 안하면 군대 가서 말뚝 박아야한다고 나를 부추기는 옆 사람들도 싫었다. 이렇게 싫은 이유가 정확하게도 많은 나였지만, 정실장의 추진력에 반항할 수 없는 나약한 노예의 연습생이었으므로 그때는 질질 끌려갔었다. 나는 낮잠, 밤잠, 새벽잠은 없는데 유일하게 아침잠이 심해서 언제나 새로 뜨는 태양이 곤욕스러웠다. 어찌 어찌해서 눈을 떠보고 준비를 해서 나오기는 하지만, 내 이름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지금 내가 가려던 길은 도대체 어디인지에 대한 내 안의 자아를 찾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타입이었다. 이런 정신에 나사가 빠진 나를 위해 정실장은 어울리지 않게 자식들에게 인자하고 자상한 아버지의 본보기처럼 비록 잠이 덜 깬 내 멱살을 잡고선 차에 태우기는 했었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등교시간과 하교시간에 맞춰서 나를 데려주는 눈물 나는 아량을 베풀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바뀐 룰 없이 드럽게 흘러가고 있는 학교가 빠르게 좋아질 일이 없었던 나는 늘, 정실장이 강제로 짜놓은 내 인생의 계획표를 너무나도 올바르게 실행하는 내가 짜증났었다. 솔직히 정실장한테 반항하긴 뒤가 무섭고, 그렇다고 줏대 없이 하라는 대로 굴러가는 건 더 화가 났었다. 언젠가 한번은, 수업이 끝난 후에 어디로 튀지도 못하고 여지없이 학교 정문 앞으로 힘이 축 늘어져서는 걸어가고 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차에서 내린 정실장이 담배를 간지 나게 꼴아 물고 있었다. 정실장은 슈퍼맨이나, 배트맨처럼 변신에 능한 구라성 짙은 영웅을 패러디하는 사람과도 같았다. 이 말은 즉, 블랙 슈트만 입으면 모두의 영웅이 될법한 페이스, 바디, 예의, 능력, 힘 등등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출중하게 완벽했다. 정실장의 블랙은 언제나 오만했다. 그런데 학교를 꿈에 궁전처럼 나를 처넣은 인간이 이런 궁전 앞에서 담배나 꼬나물고 서 있으니, 마치 급이 되는 유능한 사채업자처럼 보였다. ' 아가야, 너희 아버지가 돈을 안 갚는다. 아저씨랑 어디 좀 같이 갈까? ' 정실장과 붙어 다니면서 느끼게 된 것은, 어딜 가든 진드기처럼 달라붙는 진~한 시선이 뒤따른다는 점이었다. 씨발 난 처음에 나만 보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사진 찍어달라길래 ' 저 바쁘거든요? ' 하고 도도하게 거절했더니만, 다짜고짜 정실장한테 팔짱을 끼더니만, 방정맞은 브이질을 하는 거지. 나 참.. 오늘도 깨지지 않는 공식처럼, 교문 앞에 모인 남녀 학생들이 시선을 모아 정실장을 한참동안 우러러 바라보며 설레듯 지나갔고, 벌떼처럼 연예인 보듯 몰리는 광경마저 배알이 꼴리기 시작한 나는 득음한 국악신동처럼 뱃심을 이용해 목청이 터지도록 외쳤다. " 아빠!!!!!!!!!!!!!!!!!!!!!!!!!!!!!!!!!!!!!!!!!!! " 다 피운 담배를 비벼 끈 정실장의 미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함과 동시에 바닥에 껌처럼 붙은 발을 억지로 떼어 펄쩍 뛰어 날아올라 정실장의 단단한 목에 매달리자, 소문만 무성했던 정실장과 나의 존재가 부드럽게 자상한 아빠와 애교 많은 아들로 전환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순식간에 과속스캔들을 보여주는 예시가 되었고, 덩달아 캐동안인 능력자 아빠로 이미지가 둔갑되자, 밑에서 부터 올라오는 희열감에 단순하지만, 학교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학교에 적응을 하고 남녀 공학이었던 학교 앞에는 서울 일대에서 가장 유명하기로 소문난 멀쩡한 변태의 존재를 알기 시작했다. 그 변태가 유명해진 이유는 보통의 식상한 변태들은 ' 꺅!! ' 소리의 울림이 쾌활한 여학교를 노리기가 정석이었지만, 모두가 YES 할 때, NO를 하는 유행에 민감하지 않았던 그 변태는 어디서부터 흘러나오는 대담성인지 남학생도 판을 쳤던 우리 학교에 등장하는 바람에 변태 중에서도 가장 엘리트로 소문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로 키도 훤칠했고, 얼굴도 오덕스럽지 않게 대기업 회사원의 유능한 인재처럼 지적으로 생겼었다. 하루는 방과 후에 어김없이 나타난 변태 새끼의 바바리를 보며, 혀를 차고 지나가는 내가 있었고, 곧바로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타자마자 꽤나 흥미진진한 K-1을 보는 수컷처럼 고도의 집중력으로 스파링을 감상하는 정실장이 있었다. 변태 아이템 치고는 꽤나 진지한 눈빛으로 집중하기 시작한 정실장이 손으로 한 방향을 주시하며 내게 물었다. " 저 옆에서 말 거는 애. 알아? " 정실장의 시선 끝에 닿아있는 물체는, 저 변태새끼만큼이나 유명한 이상한 새끼가 서 있었다. 어느 날인가 졸린 눈을 비비면서 교정을 지나가는데 박수를 치면서 한쪽 눈을 찡그리는 새끼가 친구와 무리지어 내 옆을 지나가는데, 그때 정말로 온 몸에 털이 바짝 서는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괜히 꺼림칙한 것이 지독한 변비에 걸린 듯 한 느낌이 들었었다. 그래서 교실에 들어가서 그 녀석에 대해 물어보니, 이 학교에서 꽤나 4차원의 싸움꾼으로 유명하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옆에서 소곤거리듯 ' 오죽하면 체육선생도 쟤는 안 건드려. ' 라고 말했었다. 그렇다고 질 나쁘게 이 사람, 저 사람 툭- 툭- 시비 걸면서 싸움을 일으키는 양아치 스타일도 아니었는데, 언제가 한번 레전드급으로 그 녀석한테 시비를 건 똘마니가 있었는데, 장기가 부서질세라 밟아대는 통에 학교가 발칵 뒤집어진 일이 있었다고 했었다. 그때 가뜩이나 큰 눈알에 핏발 선 모습 본 애들은 교과서급 올바른 대화만 나누게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소문들과는 별개로 녀석 주위에는 종류를 불문하고 꽤 많은 친구들이 녀석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소소한 매점과, 점심내기 농구를 즐겨 했었고, 성적은 좋아하는 과목만 상위건 이고 관심 없는 과목은 한자리 점수가 대다수라고 했었다. 그런데 이런 이력들을 다 떠나서 매번 보는 성기노출이지만, 매번 꺅 소리를 내며 허옇게 질려서 도망가는 여학생들과, ' 씨발 좆도 안 되는 새끼!! ' 라며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고 지나가는 남학생들의 극과극 상황 속에서 마치 오래된 유치원 동창생을 만난 사람처럼, 변태새끼한테 스스럼없이 다가갔고, 그 변태 또한 이런 녀석이 반가운지 쑥스러운 듯 머리까지 긁적이며 부끄러운 웃음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더 이해가 안가는 점은, 마치 힘들어하는 병자에게 희망을 넣어주는 유능한 의사마냥, 변태새끼의 어깨를 탁-탁- 쳐주며 이해가는 행동이라며 위로하듯 말했다. " 아저씨 물건, 진짜 훌륭해요. 원래 자고로 인간들은 1세에서 3세 사이에 항문기를 겪게 되거든요? 이시기에는 누구나 대변을 배출할 때 똥구멍에서 근육이 이완, 수축되면서 느끼게 되는 첫 쾌감에 아동이 발달이 됩니다. 그런데 그 시기에 아저씨는 그저 오줌이 너무 마려워서 오줌을 쌌거나, 똥이 너무 마려워서 똥을 쌌었던 것뿐인데, 안타깝게도 가장 중요한 아동발달의 시기를 올바르게 대응하지 못한 어른들을 접하셔서, 호되게 당한 적이 있으신 케이스이신 거죠. 이를테면, 에비!! 오줌 싸지 마! 라던가 아가!! 똥싸지마! 이런 말들이요. 그래서 아저씨는 그때의 상황 충격으로 커서도 잊혀지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잠재된 충동이 발산되는 상태이신 겁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이 최면을 걸어서, 과거로 돌아가곤 하거든요. " 여러 번 교문 앞에서 불량한 복장을 단속하는 까칠한 선도부처럼 변태새끼의 어깨를 잡았고, 근거 없이 주둥이 나불대며 설교하는 녀석의 이야기를 지조 없이 고개까지 끄덕이며 진지하게 듣고 있는 변태새끼나, 그런 변태새끼를 친형처럼 안쓰럽게 쳐다보며 주둥이를 나불대는 이상한 새끼나, 이런 변태도 힘든 과거가 있다며 그 심정을 누구 보다 가장 잘 알 수 있단 듯이 말을 이어나갔고, 그런 이상한 놈들의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정실장은 차를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고, 아예 핸들에 팔을 얹어 턱을 괴었다. 마치 뺑소니 현장을 목격한 유일한 사람처럼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 아저씨에게는 일종의 성도착적 증세와도 같은 현상 이예요. 자신의 성기를 이성에게 노출하여 그 사람이 수치스러워 하는 것을 보고 성적, 심적인 만족을 느끼게 되는 거죠. 그런 심리적 안정으로 인해 끊을 수 없는 마약처럼 멈추지 못하시는 거구요. 일단 아저씨에겐 스피드가 생명이시죠? 지나가는 학생이 단 한 번에 볼 수 있게 바바리를 입으신 현명한 판단처럼 말이죠. 바지 내릴 시간이 없다는 건, 저도 동감하는바 입니다. " 생각보다 두 사람의 어이없는 대담 혹은 만담이 길어지기 시작했고, 오늘이 장 날인 것처럼 주둥이가 화산처럼 트인 녀석은 변태를 붙잡고 한참동안을 자신의 생각을 토론회처럼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대화가 길어지자 변태의 성기노출이 굉장히 춥겠다고 느낀 그 녀석이 변태새끼를 걱정하며 말했다. " 아저씨. 우리 분식집 가서 마저 이야기해요. " 그러자, 그 이야기 한번 반갑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변태가 결심한 듯 펼쳐진 바바리를 여미다가도, 뭔가 아쉽다는 듯 입을 쩝 거리며 눈을 불쌍하게 아래로 축 늘어트리며 녀석의 눈치를 보듯 지그시 바라보기 시작했고, 머리 위에서 ' 아차! ' 하고 등불이 켜진 녀석은 변태 아저씨의 어깨를 탁- 탁- 위로하듯 치며 당연히 이해 할 수 있다는 어조로 이렇게 말했었다. " 아쉬우시면, 한 번 더 펼치시고. 저기 보이는 분식점으로 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 그러자, 변태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흐뭇하게 웃으며 곧바로 변태를 지나 분식집으로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는 4차원 똘아이 새끼가 있었고, 그와 동시에 갑자기 차에서 내린 정실장이 그 녀석의 팔을 강하게 붙잡았다. 차 안에서 변태새끼, 씨발새끼, 둘 다 병신새끼. 욕이란 욕을 다 퍼붓고 있던 나는 갑자기 차에서 내린 정실장의 뒷모습을 따라 바쁘게 시선을 따라 옮겼고, 그 똘아이새끼의 팔을 잡은 정실장이 흐뭇하게 위아래 녀석의 몸을 훑으며, 몇 초간 얼굴을 뚫어지게 가격 측정하는 진품명품 감정단처럼 평가를 하기 시작했고, 이내 짝퉁인지 명품인지 결정한 사람처럼 단호한 말투로 녀석에게 말했다. " 너 심심하면, 가수할래? " 이게, 정실장과 창민이 어드벤처, 판타지아, 스팩타클한 상황이 전개된 첫 만남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계획한 일이 제대로 잘 마무리가 되었다고 느낀 정실장은 그 날 이후로, 졸업할 때까지 단 한 번도 나를 데려다 주는 일이 없었다. 즉, 내가 생각했던 자상하고 인자하고 포근한 아빠 흉내가 아니라, 단순히 정실장 눈높이 레이더망에 걸려들 노예발굴을 위한 캐스팅 작업이었단 말이다. 태연하게 ' 캐스팅하러 학교 갔지 뭣 하러 가? ' 라는 감정 없는 말투에 배신감스런 분노를 느낀 이용당한 내가 있었다. 하지만, 더욱더 기가 막힌 사실은 정실장과 첫 대면한 사람들의 대사 치고는 내 사례가 가장 찌질 했다는 사실이었다. 창민이한테는 ' 너 심심하면, 가수할래? ' 였고, 재중이한테는 ' 너 형이랑 놀고 싶으면, 가수할래? ' 였고, 마지막으로 나한테 한 말은 ' 너 배고프면, 가수할래? ' 라는 사실이 존나 싸보였다 이말이다. 진정한 노예는 only 1. 이었고, 누구는 심심해서 가수하고, 누구는 누구랑 붙어있고 싶어서 가수하고, 그래! 누구는 존나 배고파서 가수 했다! 그들이 뭉쳐 동방의 조증을 알리는, 동방신기가 되었고, 그룹이 되었고, 이런 우리들의 조합을 보며 대중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주는 드넓은 아량까지 선보여주셨다. 세상은 눈물 나게 공평했다. 이런 훌륭한 인재를 적어도 굶겨죽진 않았으니 말이다. § " 아 씨발, 정신 사나워!!!!!!!!!!! " 고산스님 200년 수행의 결과물처럼 공중부양급으로 살금살금 기어 다니던 재중의 발걸음으로, 언젠가 한번 라디오를 통해서 ' 신발에 소리 나는 운동화. 그거 좀 어른용으로 개발합시다! ' 라고 외친 내 발언에 기가 막히게도, 생활의 달인처럼 걸을 때 불이 들어오는 리복 알파첵 신발에다가 소리기능까지 합세한 능력자 팬이 그 신발을 재중에게 선물했고, 받자마자 눈이 휭둥그레지며 그 날 이후로 그 뿅! 뿅! 뿅! 하며 걸을 때마다 빨간 불이 들어오는 유아용 신발을 신고 싸돌아다니는 김영웅재중이 때문에 귀가 거슬려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오후에 있는 스케줄로 시끄러운 뿅! 뿅! 뿅! 소리에 귀를 막으며 인상을 구기고 숙소를 나오고 있었고, 또 주특기처럼 겨울에도 흰 나시티에 검정색 파카를 즐겨 입는 재중은 옆에서 그렇게 입고 나왔다고 잔소리하는 정실장의 핀잔도 사랑가처럼 들리는지 히죽 웃기만 했고, 그런 형들이 귀엽다며 흐뭇하게 팔짱을 끼고 숙소를 빠져나가는 아가창민이 있었다. 그야말로 조증신기를 보여주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스치듯 지나갔지만 정확하게 기억되는 의상이었다. 학교 앞 변태가 자주 입었던 똥색의 긴 코트를 입은 녀석이 멀대같이 서 있었고, 그 의상으로 하여금 창민과의 첫 만남을 귀신같이 떠오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당연하단 듯이 그 변태의상 옆에 서 있는 녀석은 굉장히 해맑은 표정과 동시에 귀찮은 표정들이 난데없이 어우러져 이상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심연위로 떠오르듯 스치는 기억으로 그 변태의상의 주인공이 수능만점 얼굴유형 개철수란 사실이었다는 것이다. 아직 잠이 덜 깨, 나의 자아를 찾기 시작한 나에게 지금 같은 상황은 몽롱한 꿈속에서 꾸는 악몽과도 같았다. 그리고 더 기가 막힌 시나리오는 준수의 뒤에서 어물쩍 내려간 안경을 고쳐 올리며 서 있는 개철수에게 툭 던지듯 귀찮은 어조로 말을 내뱉은 김준수였다. " 야, 빨리해. 야야, 빨리 하라니까? 오늘 꼭 한다며. 해~ 빨리~ " 눈동자가 너무도 수줍어서 제 어미의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리듯 순수청년 개철수님이 녀석의 재촉에 마지못해 앞으로 나왔고, 정말로 훤칠한 키에 정상적으로 보이는 평범한 페이스에 받쳐 입은 똥색 코트가 너무 개철수 다워서 입가에 웃음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중 앞으로 슬금슬금 다가간 개철수를 보자마자, 익숙한 사례처럼 스토커 남팬 취급하는 정실장이 한걸음 앞으로 구둣발을 내세웠고, 그와 동시에 범상치 않은 의상에 기가 죽어 발랄하게 움직이던 오도 방정스러운 김영웅재중의 신발이 멈춘 채 정실장 등 뒤에서 고개만 새침하게 내민 재중이 있었고, 흥미로운 상황연출에 눈썹이 꿈틀거린 창민이가 있었다. 그와 동시에 주섬주섬 코트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낸 개철수는 땀까지 삐질 삐질 흘리며 고도의 긴장감을 표현하고 있었고, 내밀어진 손 위에 놓여있는 장미꽃 3송이를 보자마자 웃음이 터진 나는 발작 일으키는 정신병자처럼 욕을 뱉으며 ' 끄악악 씨발, 내 배야.. 너무 웃겨. 끄악악! ' 웃고 있었다. 그리고 난데없는 고백에 눈이 휘둥그레진 재중과 동시에 정색하며 ' 이 새끼는 뭐야? ' 라는 눈빛으로 개철수를 진득하게 연구하고 있는 정실장이 있었다. 그리고 준비된 대사를 읊기 시작한 철수로 인해 팬을 비롯해 모든 사람들이 주둥이에 손을 틀어막고 새어 나가는 웃음을 힘들게 잡기 시작했다. 용감한 개철수님이 장미꽃 한 송이를 내밀며 말했습니다. " 하나는 너, " 재중이가 꽃 한 송이를 곱게 받자, 용기가 생겼는지 다시 한 송이를 내밀며 말했습니다. " 하나는 나, " 그리고 마지막 한 송이를 내밀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그리고 하나는 너로 인해 변한 내 모습. " 끄악악, 씨발 가출한 내 배! 내 허파에 누가 토네이도 퀵 보냈어! 끄악악! 떨리는 음성을 다시 고쳐 잡으며 머뭇거리는 개철수의 등을 다시 툭 친 녀석은 철수의 느린 행동을 귀찮다는 듯 재촉하고 있었고, 더 이상 시간을 끌면 안 된다고 느낀 철수는 다시 목을 가다듬으며 준비한 마지막 대사를 날렸다. " 처음엔 영웅씨가 쓰고 있는 볼펜제품이 똥도 잘 안 나오고 좋아서 영웅씨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다음엔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영웅씨가 사용한 침대마저 좋아졌어요. 그리고 지금은 영웅씨의 모든 걸 좋아합니다. 저 카시오페아 1기부터 들었어요. " 눈물범벅인 나를 보며 길 가다 똥 밟은 사람처럼 표정을 구긴 준수가 나에게 다가와 아무렇지 않게 옆구리를 푹 찌르며 ' 믹키! 가시오, 폐하 1기가 뭐야? 고전게임이야? ' 라고 이상한 구렁텅이로 빠진 녀석이 태연한 질문을 날리고 있었고, 고백 내용을 듣자마자 눈이 반달로 휘어지며 예쁘게 웃음을 선사한 김영웅재중이가 있었고, 재중이 받은 꽃송이를 바라보며 경계를 늦추지 않는 정실장이 있었다. 화려하고도 개그스러운 풍경이었다. 첫 스케줄이자, 다음 스케줄은 개그콘서트 녹화였고, 이 사실을 듣자마자 갑자기 눈이 확 뒤집힌 김준수 새끼가 나도 아니고! 정실장도 아니고! 그렇다고 매니저 상철형도 아니고! 재수 없게 창민이 팔에 매달려서 방청하고 싶다고 조르는 재주를 부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 음.. ' 한번 생각해 볼게요. ' 라는듯 어려운 결재 서류에 사인을 하는 CEO처럼 고개를 끄덕인 창민이 괴짜 세트로 개철수와 김준수를 동시에 벤에 태웠고, 방송국에 볼일이 있어 숙소를 나섰던 정실장은 김영웅재중이만 쏙 빼서 자신의 차에 왕비처럼 태워서 홀랑 가버렸다. 내가 아무리 김준수를 좋아했기서는 저런 개 같은 조합 속에 동행을 한다는 건, 자살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곧바로 잽싸게 정실장 차 뒷문을 열려하던 순간에 차 문이 탁-!! 하고 잠겼고 미련 없이 떠나는 차가 보이는 순간이었다. 씨발!!!!!! 지금 나 배고파서 가수하는 애라고 차별한 거지 !!!!!!!!!!!!!!!!!!!!!!!!!!!!!!!!! 첫 대면부터 개철수와 난 이미 오래 알고지낸 그저 그런 사이처럼 서로의 눈빛만 교묘하게 비웃으며 이동하고 있었고, 오랜만에 붙어먹는 녀석은 창민 옆에서 떠날 줄도 모르고 새로 나온 게임과 엊그제 왜 게임방에 안 들어왔냐고 따지듯 물어보는 녀석과 창민이 있었다. 씨발새끼 나한테는 가시오, 폐하만 묻고 아무 말도 안 시킨 주제에 얄밉게 꼭 저런단 말이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귀에 닿은 핸드폰 하나가 있었고, 나를 노려보듯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던 개철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 말 해. " 머리, 꼬리, 몸통까지 다 잘라내고 무슨 말을 하고 자빠졌냐? " 뭘 말 해. " 그러자 답답하단 듯이 핸드폰을 다시 귀에 대주며 말한다. " 목소리 내서 아무 말이라도 좋으니까 말 하라고. " 내가 우리 준수 불쌍해서 그 사람의 그 친구, 소리 안하려고 했는데! 뭐야 너!!! " 아 진짜! 속 터지겠네! 뭘 말해???? " 그러자 귀에 닿은 수화기 저 너머로 들리는 음성 하나가 있었다. " 야 개철수!!!!!!!!!!!! 다시 한 번 우리 믹키오빠 가지고 장난치면 주겨버린다!!!!!!!!!!!!!! " 뚜뚜뚜- 끊긴 전화가 만족스럽다는 듯 폴더를 접은 녀석이 창민과 준수의 대화에 스스럼없이 끼어들었고, 한명의 낙오자는 혀를 깨물고 존나 죽고 싶었으나, 꾸~욱 참았습니다. 씨발새끼들. 내 팬이 어딜 봐서 저능아야 목소리도 예쁘네!!!!!!!!!!!!!! § 개새끼가 눈에 별을 박아댔나! 왜 이렇게 반짝 거려! 난생처음으로 녹화장 복도를 지나가는 개그맨들을 실사로 본 녀석은 말까지 더듬으며 손가락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가리키며 ' 어..어...어!! 개..개그맨!! 우와! ' 라고 쉽게 달려들지는 못하고 멀리서 한곳을 바라보는 지고지순한 해바라기 유형처럼 설레어하고 있었고, 아니 어딜 돌아다녀도 개그맨 보다 사인을 더 해주고 있는 이 럭셔리하고 잘 난 박유천님이 옆에 꼭 붙어서 짱알대고 있는데, 나를 너무 하인 취급하는 녀석은 앙리를 만난 사람처럼 엉덩이를 들썩 거리며 작은 두 손을 모아대며 아기처럼 좋아했고, 녀석이 가장 좋아하는 일명. 장동건의 사인을 받아서 전해주자 처음으로 감명 깊게 읽은 위인전을 바라보듯 나를 쳐다본 녀석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 우리 강아지 최고! ' 라고 덩실덩실 춤을 추려해서 일단 팔을 잡아 앉혔다. 그리고 재중에게 단단히 붙잡힌 정실장은 끝없는 칭얼거림에 이상한 녀석들과 함께 녹화장 관람석에 앉게 되었고, AD가 잡아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 제각각이라 무대에서 내려다보는데 진짜 웃음보가 터져서 몇 번을 혀를 깨물어야만 했다. 우리 셋이 억지웃음을 유도하며 내던진 코너는 지루하단 듯이 귀를 후벼 판 녀석이 존나 어이가 없게도 동방신기를 까대는 왕비호감이 나오자, 이게 가장 웃기다는듯 투니버스 소리가 무대 위까지 들리도록 실신할 듯 웃고 있었다. 저것은 마치 갈비뼈 사이사이에 손을 꽂아 흔들어 대듯 간지럼 타며 웃어대는 재수 없는 창민의 모습과 흡사했다. 너. 그러지마. 다른 건 몰라도 쟤 닮아 가면 안 돼. 너 생각해서 하는 소리야.. 웃기는 게 까대는 개그에 신이난 건, 김준수밖에 없었다. 얄미운 표정으로 동방신기를 신랄 나게 까대자, 눈물이 그렁그렁 차 오른 개철수는 급기야 눈물까지 뜨르륵 흘려대며 카시오페아 1기생의 오래된 팬의 인증 샷을 개발하고 있었고, 이런 개그가 가장 웃기다 는 듯이 다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며 허파에 심하게 들어간 바람 때문에 기절할 듯 웃어대는 캐해맑은 녀석이 있었고, 뭐 저런 개자식이 개그맨이냐면서 저런 개그로 밥 벌어먹는 게 우습다는 듯이 팔짱을 낀 채 서늘하게 연신 무표정을 짓고 있는 정실장이 있었고, 이런 이들을 보며 안절부절 무대와 관객석을 동시에 눈치 보는 매니저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웃긴 표정에 웃음보가 셋 다 동시에 터진 우리가 있었다. 우린 정말 누가 뭐래도 이럴 땐 하나였다. § 재중은 식욕만큼이나 아침잠이 없는 편이었다. 어제 맞춘 알람 진동소리에 정확히 일어난 재중은 주섬주섬 일어나 꼼꼼하게 씻은 뒤 머리를 말리고 예정된 시간에 숙소에서 나왔다. 다행히도 제법 이른 아침이라 숙소 앞에는 팬들이 보이질 않았고, 시간을 맞춰 어디론가 바쁘게 전화를 거는 재중의 표정에 사뭇 자연스러운 애교가 묻어나 있었다. 곧바로 통화음이 연결되자마자 정말 보고 싶었단 말투로 말끝을 늘린 재중의 발걸음이 점점 말끝처럼 느려지고 있었다. " 맘~ 오늘은 통화가 되네에.. " 곧바로 보고 싶다고 앓는 소리를 내듯 같이 목소리가 늘어지는 음성이 들려왔다. " 우리 아들~~~ 이게 얼마만이이야.. " 히죽- 보리밭 건너오는 봄바람 보다 더 환한 엄마 목소리 하나에 눈이 반달로 휘어진 재중이 칭얼거리듯 투덜거렸다. " 맘 너무 보고 싶어! 계속 이렇게 목소리만 들려줄 거야? 맘은 치사하게 내 방송 다 챙겨보잖아! " 기분 나쁘지 않은 투정에 설설 웃음을 흘리는 엄마가 정말로 미안하단 듯이 애틋하게 마음을 전했다. " 우리 아들 때문에 엄마가 상사병이 다 날 지경 이예요~ 우리 아들은 어째 날이 갈수록 미모가 훌륭해지고 있어?? " " 맘 아들이잖아.. " " 에구구 그래쪄요.. 그런데 지금 이른 시간일 텐데. 우리 아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대? 아침부터 스케줄 있는 거야? " 아예 걷던 발걸음이 멈춘 재중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는 사람처럼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손톱을 깨물며 웃었다. " 아니이.. 오늘 오전에 시간 비어서 형아한테 가는 길.. " " 엄마가 아들한테 사랑은 너무 못줘서 우리 아들이 애정이 부족한 건가? 어째 아직도 오리새끼마냥 정실장 꽁무니만 졸졸졸 따라다니고 있어요~? " 다시 히죽 웃는다. " 아니야.. 맘 사랑이 너무 커서 줄줄 새고 있어! " " 그래쪄요.. 우리 아들 너무 너무 보고 싶다.. " 진심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가슴이 울컥 치밀어 올라왔다. " 으응.. 나두 우리 맘 너무 너무 보고 싶다.. " " 아들 아프지 말고, 살 좀 많이 찌워놔. 엄마가 한국 가서 우리 아들 포동포동한 볼 살 좀 만져보자! " " 히히.. 맘도 아프면 안 돼? " " 그럼, 그럼~ " " 맘 사랑해. " " 아들 사랑해~~ " 자연스럽게 핸드폰에 쪽소리 나도록 뽀뽀를 마친 재중이 가려던 발걸음 다시 옮겼다. 시간이 안 맞거나 늘 회의중이라 최근에는 전화통화도 힘들었던 엄마와 미뤘던 통화를 마치자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과 조금 애틋해진 가슴에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고 있었다. 간단한 추리닝 차림에 후드티를 덮어쓴 재중이 다시 조급해진 발걸음으로 정실장의 오피스텔에 도착했고, 도어락의 비번이 풀리자마자 쏜살같이 쿵쾅쿵쾅! 뛰다시피 걸어가 침실 문을 열자, 예상대로 침대위에 누워있지 않은 정실장의 모습에 순식간 실망감을 드러내며 눈가가 축 쳐진 재중이 다시 쿵쾅쿵쾅 거리며 정실장을 부르기 시작했다. " 형아~~~~ 형~ 어디에 있어? " 그러자 넓은 마당에 놓인 큰 대문이 활짝 열리듯 욕실 문이 덜커덩 열려졌고, 턱주변에 쉐이빙폼이 한가득 묻은 채로 오른쪽 손에 면도기가 들어있는 정실장이 놀란 눈을 키우며 여기에 왜 있냐고 물어보기도 전에 다다닥! 욕실로 들어온 재중이 면도기를 낚아채듯 홱! 뺏으며 말했다. " 너 여기.. " " 나! 나! 형아 면도 시켜주려고 왔어. 하마터면 늦을 뻔 했다 진짜.. " 달력에 중요한 기념일처럼 동그라미 치듯 아침 댓바람부터 달려온 재중은 정실장의 턱을 다짜고짜 잡으며 빠르게 말했고, 어리둥절해진 정실장은 그런 재중의 하얀 손을 조용히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얼굴이 되었다. 곧바로 발꿈치를 들고 면도를 해줄 수가 없었던 재중은 멀뚱멀뚱 생각에 잠긴 정실장의 팔을 잡아 당겨 욕조에 걸터앉도록 어깨를 위에서 눌러 그곳에 앉히게 했고, 그제야 위치가 편안해진 재중이 날카로운 칼날을 들어 다가왔다. 순간 불안한 눈동자가 돼 버린 정실장의 흔들리는 눈빛을 보자 배시시 웃음이 터진 재중이 말했다. " 나 연습 많이 해봤어. 형아 나 이거 진짜 잘 해. " " 어. 그래. " " 유천이 다리털 내가 이걸로 밀어봤어. 피 안 났어. 예쁘게 밀렸어. 그니까 믿어봐. " " 어. 그래. " 아무리 턱에서 피가 줄줄 새어 나와도 눈을 휘어가며 웃으면서 성심성의껏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는 프로처럼 어울리지도 않은 면도기를 들고는 해맑게 웃는 재중이 있었고, 그런 재중을 보며 이길 수 없단 듯이 자포자기 심정으로 함께 웃음이 전염된 정실장이 턱을 곱게 내밀었다. 그러자 눈에 현미경을 채우고 작은 세포 하나하나 고도로 집중한 재중이 아주 조심스럽게 조금 자란 수염을 면도하기 시작했다. 한번 집중하기 시작하면 무서울 정도로 집착을 보이는 재중의 버릇을 잘 알고 있는 정실장은 맘 편하게 이리저리 신중하게 굴러가는 재중의 반짝이는 까만 눈동자를 한 순간도 놓치지 않을 새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고, 꽤나 만족스런 작품이 나온 예술가처럼 미소가 피어오른 재중이 정실장의 턱을 이쪽저쪽 손으로 돌려보며 말했다. " 형아, 아주 완벽해! " 재중의 시선을 따라 눈동자가 자동으로 옮겨진 정실장이 키우던 예쁜 강아지처럼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고마움을 표현했다. 금세 기분이 좋아진 재중이 답례하듯 눈을 휘어가며 사랑스럽게 웃고 있었고, 그런 재중의 진한 눈빛 속에 정실장의 행복이 깃든 진한 시선의 눈동자가 비춰지자 곧바로 흠, 하고 헛기침이 나온 정실장이 빠르게 욕실에 빠져나갔고, 바로 졸졸졸 정실장을 따라 나온 재중이 이번에는 드라이기를 꺼내오더니 대뜸 침대에 앉으랜다. 로션을 바르고 드레스 룸으로 이동하려던 정실장이 갸우뚱 거렸고, 멈춰진 육중한 팔을 잡아 당겨 침대위에 앉힌 재중이 드라이기를 틀어, 아직 마르지 않은 정실장의 머리를 말려주기 시작했다. 재중의 손길이 지나가는 부분마다 샴푸대신 봄 햇살 속에 막 피어오른 목련꽃처럼 맑은 향기가 아련하게 묻어 나오는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났다. " 형아 머리 올린 것도 멋진데.. 이렇게 내려도 멋있어. " 이리저리 스타일을 보아가며 머리손질하기 바쁜 재중은 종종 멤버들의 머리를 만져주기도 했었다. 어릴 적 집에서 도우미 아주머니의 머리를 재밌는 놀이처럼 자주 손질하던 재중은 미용에 관심이 많았다. 코디들이 정신없이 바쁠 때면 홀로 준비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감각도 뛰어났었다. 평소에 해주고 싶었던 스타일이 있었는지 이리저리 작은 손을 바쁘게 움직여가며 손질하게 바쁜 재중이 있었고, 모든 걸 재중에게 맡긴 채 기분 좋은 듯 눈을 꼭 감고 있는 아침풍경이 봄날의 햇살처럼 조금씩 따스해지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아침 내내 정실장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며 머리며, 옷이며, 양말이며 하나하나 섬세하게 다 챙겨준 재중이 이제야 속이 편안해지는지 뒤늦은 기지개를 피기 시작했고, 중요한 회의가 있는지 재차 시계를 확인한 정실장이 이런 재중에게 고맙다는 듯 다시 한 번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오랜만에 함께하는 아쉬운 시간을 뒤로한 채 곧바로 오피스텔에서 나왔고, 나오자마자 이제야 뜨기 시작한 부드러운 햇살에 각자 한쪽 눈이 찡그러진 서로의 모습에 하하하.. 웃음이 터진 그들이 햇살을 등지고 나란히 얼굴을 마주한 채 서 있었다. 고요한 눈빛으로 하염없이 별을 바라보는 것처럼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하는 애틋한 연인처럼 서로의 얼굴을 하나하나 기억하듯 바라보았고, 더 이상은 안되겠단 듯이 다시 시간을 체크한 정실장이 주차된 차로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난데없이 발꿈치를 들어 정실장 목에 팔을 두르는 재중이 있었고, 갑작스런 돌발 행동에 주변의 시선부터 돌아보게 되는 침착한 정실장이 있었다. 모든 시선은 안중에도 없단 듯이 결심한 듯 정실장의 아랫입술을 진득하게 자신의 입술 사이로 물은 재중이 츕- 부끄러운 소리가 울리자마자 스스로 놀란 듯 화들짝 입술을 떼더니 금세 볼이 발그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런 재중의 모습이 안달 나게 귀여운지 다시 머리를 쓰다듬은 정실장이 시선을 재중과 동일하게 내려 맞추고는 달아오른 부끄러운 볼을 쓰다듬으며 향기가 묻어 나오는 웃음을 보였다. 그와 동시에 다가오는 입술에 눈이 스르륵 잠기는 재중이 있었고, 재중의 온기로 따뜻한 뒷목을 한손으로 그러잡은 정실장이 부드럽게 재중의 아랫입술을 진득하게 빨아 깊게 물었다. 살짝 열려진 입술 틈 사이로 빠르고 집요하게 뜨거운 혀가 들어갔고, 아직 돌기마다 가득한 치약 맛이 청아하게 혀를 옭아매자 서로서로 넘겨오는 마치 캐러멜을 먹는 사람들처럼 달콤하게 고인 침이 목울대가 움직여지며 서로에게 넘어갔고, 손끝이 아려지고 발끝이 간지러워진 재중이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발꿈치를 살짝 들어 정실장의 목에 두 팔을 둘렀다. 그러자 빈틈없이 맞물려진 깊은 입맞춤에 만족스러운 듯 부드럽게 재중의 혀를 옭아맨 정실장이 정신없이 그윽한 향에 취해 달콤한 혀를 츕-츕-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출근시간이 임박해오는 한적한 오피스텔 야외 주차장에서 대담함이 엿보이는 모닝 키스를 한 두 사람의 은은한 향기가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 가끔 난 거주유형에 따라 주말부부가 된 것처럼 느끼곤 했었다. 언제나 바쁜 스케줄 속에서 연애란 걸 하게 되면, 자주 못 만나게 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사랑을 해도 모자를 판에 서로 힘든 감정만 소진해서 쉽게 싸움이 일어났고, 그만큼 쉽게 헤어지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젊은 날의 연애란 그 끝이 이별이라는 것을 알고 시작하는 사랑이었다. 그 순간에 가장 열정적으로 사랑 했지만, 그런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들려줄 수 있는 유일한 목소리가 전부만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싸우면서도 면상은 꼭 보고 미워도 살을 부대끼며 살아야지 진득한 연애사가 억지로라도 이어진다 이 말이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서 내가 녀석과 한 방향을 바라보는 연애라 는걸 하고 있는 풍족한 사람도 아니고, 그냥 불현듯 과거에는 이런 짜증스런 스케줄 속에서도 서로 얼굴 보기 힘들어서 헤어지기가 일쑤였던 내 생활패턴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스케줄이 많은 날이면, 녀석이 자고 있든 간에 새벽에 녀석의 집으로 가거나, 녀석의 집 근처에 스케줄이 있는 날이면, 전날 미리 와서 잠을 자고 다음날 방송국으로 향하는 익숙한 풍경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런 나를 보고 창민은 ' 드디어 충견인생을 인정하셨네 그려. ' 라고 내 인생패턴을 제멋대로 주물렀지만, 이상하게 녀석과 나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편도핵의 착각이 존재하지 않았다. 결정적인 이유로는 언제나 녀석의 집을 찾아가면 몇 시간이 지나서든 반드시 녀석이 내가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곧잘 집으로 들어오곤 했었기 때문이었다. 난 그게 정말 신기했었다. 녀석은 곯아빠진 동태눈을 하고 프로게이머를 꿈꾸는 순박하지만 대책 없는 시골청년과 같았다. 그리고 정말 주둥아리에 밥알이 들어가는 꼴이 없었다. 저번에는 양념통닭을 최초로 거부한 녀석이 알고 보니까 영양분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해서 몸에 아연이 부족해지는 현상으로 입안이 온통 심하게 헐어서는 매운 거 먹으면 아프다고 아무렇지 않게 뱉어대는 통에 다른 건 몰라도 난 누가 굶어 죽는다는 소리만 들려오면 정신이 바짝 곤두서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니 저 삐쩍 나무젓가락만한 새끼가 얼마나 먹으면 먹는다고 그걸 굶기고 자빠졌대!! 하고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하며 손수 밥상을 차려 먹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통 밥을 잘 안먹길래 넋 놓고 게임을 하는 녀석 곁으로 다가가서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영양만점 볶음밥을 입에 넣어주며 ' 아~ 해. ' 라고 하면 정말 입을 벌려서 밥을 넣고 밥알을 여러 번 씹어서 삼켰다. 그래서 신이 난 나는 방법을 터득해서 매번 밥을 먹이고 싶으면 게임하던 녀석을 노리거나 무언가에 집중해서 육체이탈을 한 녀석의 단점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밥을 먹였는데, 어느 날이었다. 모 프로그램에서 진행하는 우리 아이에게 절대 하지 말아야할 부모의 생활수칙에 대한 다큐멘터리 아기 성장 보고서를 보게 되었고, 그 영상 안에는 내가 녀석에게 취하는 갖가지 행동들이 나오면서 절대! 네버! 우리 아이에게 하지 말아야할 수칙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난 식겁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진지하게 말하는 아동상담자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고, 이런 불규칙한 생활규칙이 몸에 베인 아동들이 커서 폭력성과 자기중심적으로 변화된다는 말을 듣자마자, 마치 하루가 위험하게 발전하는 개구쟁이 아들을 키우는 어미마냥 안절부절 하며 녀석의 나쁜 식습관을 고치기 시작했다. 마늘을 먹지 않은 녀석에게 난 이솝우와처럼 따뜻하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난 나름 친절했다. 다만 육두문자가 안 섞여지면 애정이 없어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큰 사람이므로 다른 사람에겐 욕으로 받아들여진다는 큰 단점이 공존해서 문제였다. " 씨발새끼야. 마늘 처먹어! 편식하면 너 없을 때 들어와서 게임기 박살 낼 거야. " 박살이란 단어에 몸을 흠칫 떤 녀석이 옆으로 제쳐둔 익은 마늘에 젓가락을 다시 갖다 대기 시작했고, 나는 아름다운 이솝우와처럼 녀석에게 상냥하게 말했다. " 야. 마늘이 얼마나 몸에 좋은 거냐면, 오죽하면 단군 신화에서 쑥과 마늘을 무식하게 많이 처먹은 곰이 웅녀로 변신해서 단군을 낳았다는 소문이 났겠냐? " 새로운 이야기처럼 신기한 듯 눈동자를 반짝 빛내며 내 말에 귀를 기울이던 녀석이 내 의견에 동조한단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고 우쭐해진 나는 옆에서 밀쳐진 마늘만 바라보며 언제쯤 저 새끼가 준수 입속으로 들어갈지 인내심을 기르던 찰나였다. 갑자기 젓가락으로 마늘을 집은 녀석이 내 코앞으로 마늘을 내밀었고, 가장 진지하게 걱정스런 눈빛으로 내게 진실이 묻어나는 음성을 내뱉었다. " 아~ 해. 난 네가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 마치 어디선가 내 하루 24시간이 생방송 되는 트루먼 쇼의 주인공처럼 내 머릿속을 훤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 녀석이 내가 다음에 할 대사를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외쳤다. " 씨발새끼! 병신새끼! 개새끼! " " 씨발새끼! 병신새끼! 개새끼! " 그리고 얄밉게 히죽 웃고는 어느새 비워진 밥그릇을 싱크대에 내려놓고는 작업실로 들어갔다. 아오.. 소리가 절로 나던 나는 현모양처처럼 익숙하게 설거지를 하고 냉장고에 반찬을 넣어두는 마무리를 선보였다. 요즘 학교 과제로 정신없이 바쁜 녀석은 게임 보다 작업실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덩달아 작업실에서 이것저것 하게 된 나는 작곡에 대한 욕심이 서서히 부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녀석에게는 멜로디언 말고 한 가지 더 특이한 점이 있었다. 녀석은 항상 주머니에 들고다니는 MP3처럼 녹음기를 언제나 들고 다녔었다. 어느 날은 갑자기 통화를 하던 도중에 녀석이 ' 잠깐만 기다려봐. ' 라고 해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흥얼거리듯 음음음♬ 거리는 녀석이 있었고 곧바로 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시 통화가 이어진 적이 있었다. 녀석은 길을 가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게임을 하다가도 생각나는 가사와 멜로디가 생기면 여지없이 녹음기를 꺼내 녹음을 자주하는 버릇이 있었고, 특이한 사람을 만나거나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거나, 흥미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에도 그 상황의 기분을 그대로 녹음기에 녹음하는 버릇이 양치하는 것처럼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다. 작업실 바닥에 엎드려서 가사를 적던 녀석이 난데없이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단잠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배가 부르자마자 잠이 쏟아져 잠든 녀석의 솟아오른 앙증맞은 엉덩이가 마냥 귀여웠다. 변태처럼 흘흘 웃음을 흘리던 내게 녀석의 녹음기가 보였고, 흥미로운 테이프들이 가득한 케이스에는 녹음된 날의 중요한 단어들이 본인만 알아보도록 쉽게 적혀져있었다. 갑자기 눈이 반짝 거리던 내게 어디선가 많이 익숙하듯 눈에 보인 녹음 테이프의 제목은 「오늘도 맑음」이었다. 그렇다. 녀석이 내 이름을 저장한 이름이기도 했었다. 저절로 손이 가는 테이프를 녹음기에 끼워 넣었고, 곧바로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녀석의 목소리는 섭섭하다는 듯이 입을 뾰로퉁 내민 목소리와도 같았다. 「 이상한 날이다. 철수가 여러 번 각인 시켜준 닉네임이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생각이 났었는데, 이상하게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는 질문에 엉뚱하게 우리 샤키 이름을 말해버렸다. 짜증스럽게 얼굴이 구겨지는데 이마도 넓은 새끼가 되게 웃긴 표정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앙리콧구멍이라고 써달라고 하니까 감기에 걸렸는지 웃기는 재채기를 하기 시작했다. 더욱더 재미난 표정이 되어버렸다. 부쩍 몸이 안 좋아진 우리 샤키를 데리고 병원에 들렀다 오는 길이었는데 축 처진 기분이 굉장히 좋아졌다. 인상을 구기면서 나를 째려보았지만, 그게 하나도 무섭지도 않고 마냥 재밌었다. 쟤는 비록 주둥이에는 걸레를 물었지만, 나쁜 아이는 아닌 것 같다. 아무런 상처 없이 언제나 맑은 태생 같다. 그게 부러웠다. 오늘도 맑음. 축구하기 좋은 날, 희망하기 좋은 날, 오늘도 맑음. 오늘도 맑음…… 」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그대로였다. 그리고 나는 왠지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녀석의 반응 하나하나에 덜컹 거렸다가 뛰었다가 화났다가 환상적인 조증을 달리고 있는 나는 가끔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쉽게 피로하단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그만큼 단어 하나에, 자꾸만 거르는 한 끼 식사에, 몇 시간 못잔 잠시간에, 추운 날씨에 등 모든 상황 속에서 녀석을 먼저 걱정하는 내가 생소하기도 했었다. 일전에 난데없이 찾아와 녀석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눈물을 훔쳤던 여인을 뒤로한채 녀석이 나를 만난 날, 우리는 그저 아무 말 없이 집 근처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드라이브를 즐기다가 날이 저물어 녀석의 집으로 돌아왔고, 많이 피곤하단 듯이 이른 시간에 침실로 향한 녀석의 뒤를 따라 같이 잠을 청했다. 녀석이 나처럼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저 멀리 떨어져 손톱만 깨물고 있는 녀석의 팔을 잡아당겨 녀석이 가장 편하게 잠이 드는 가슴 위로 몸을 올려주자 긴 한숨을 내뱉고는 한참을 맞닿은 가슴이 고요하게 오르락내리락 거렸다. 그리고 고맙게도 나보다 먼저 녀석이 잠들었다.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전해지는 가슴 때문에 자꾸만 심장이 짠했었다. § 정상적인 남자라면, 오럴 섹스로 아침을 깨워주는 여자와 결혼하고 싶은 환상이 있었다. 그런 바람직한 사례에 나 역시도 포함되기도 했다. 어젯밤에 잠이 오지 않은 나는 피아노도 쳤다가, 녹음기도 들었다가, 지저분한 거실도 좀 치웠다가 그렇게 새벽 내내 온 집안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잠이 오지 않은 밤을 위로하고 있었고, 이미 작업실에서 철푸덕 잠이 든 녀석이 오랫동안 깨지 않아 조심스럽게 안아 올려 침실에 눕혀주었다. 그리고 새벽 5시쯤 되서야 졸음이 몰려온 나는 이때다 싶은 타이밍에 녀석이 누운 침대 옆에 누워 잠을 청했고, 정말로 순식간에 깊은 잠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상하게 뭔가 아래서부터 꿈틀꿈틀 거리는 생소한 느낌과, 뭔가 아래에서 꽉 차서 발가락 끝이 저릴 정도로 부들거리는 다리가 있었고, 무엇보다도 가위에 눌린 사람처럼 눈이 떠지질 않아서 몸을 뒤척거리고도 싶은데 그게 또 뒤집어지지도 않아서 점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불현듯 낯선 손길이 닿은 내 페니스에 감각이 되살아나기 시작했고, 이 느낌은 모든 남성들이 희망하는 오럴 섹스로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는 새신랑처럼 야릇한 감촉에 눈이 파르르 경련이 일어나듯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현듯 닿아지는 손길에 화들짝 놀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고 뜨자마자 보이는 천장에서 시선을 옮겨 내 밑을 바라보았다. " 으악 씨발!!!!!!!!!!!!!!!!! " 이건 생방송이다. 이건 실제 상황이었다. 이건 꿈이었을까?!!!!!!!!! 발기부전으로 상심에 빠졌던 심하게 퇴보기에 허우적거렸던 내 물건이 천장이 닿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정말 존나 커진 것처럼 위로 산처럼 솟아 있었고, 침대 시트에 가려진 내 물건이 하루아침에 기네스북 감으로 커지나 돌연 이걸 들고 어떻게 걸어 다니고 춤은 어떻게 추지? 라고 진심으로 걱정하기 시작한 나는 이건 꿈이야! 이건 꿈이 아니고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하고 뺨을 난데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찰싹! 찰싹 아, 씨발 아파. 뭐야 꿈이 아니야. 진짜 내 좆이란 말이야????? 아니야. 아니야. 너무 커. 반갑지 않아. 아니야, 내꺼 아니야 흑흑.. 순식간에 공포감에 휩싸인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비비며 산처럼 솟아오른 침대 시트를 확 제쳤다. " 으하캉하항하항하학! 야 박믹키! 너 오줌 꽉 차서 니 꼬추 대따 무거워!!!!!! " 좋았던 순간은 늘 잔인하다. 저 새끼는 변태새끼보다 불쌍한 새끼였다. 그냥 말하기도 귀찮다. 아 그냥 무개념 해! 무개념 너 가지라고 씨발새끼야!! 난데없이 오줌통이 꽉 차 발기한 것처럼 솟아오른 내 페니스를 손에다 올려놓고 무게를 측정하고 아침부터 좋다고 미친놈처럼 웃고 자빠진 녀석이 숨까지 나누어 쉬며 정말 재밌는 현상인지 배를 움켜잡고 침대에서 뒹굴기 시작했다. 누구나 아침이면 흥분된 상태를 떠나서 꽉 찬 오줌으로 인해 거시기가 발기가 되는 건 아주 회피할 수 없는 남자들의 영원한 본능이다. 아침에 솟아 오른 게 뭐가 그렇게 신기해서거늘 고사리 같은 손바닥에 내 물건을 올려놓고 웃고 자빠졌냐 이 말이다! 씨발새끼! 병신새끼! 개새끼! 급하게 팬티를 고쳐 입은 나는 녀석을 어이없게 바라보며 욕실로 향했고, 끝없이 줄줄 흘러나오는 오줌발에 만족하며 물을 내렸는데 이상하게 이게 안내려갔다. 으응..? 이거 왜 이러지. 잠결에 덜 쌌나 싶어서 병신같이 다시 팬티를 내려 오줌을 싸려고 하는데 더 이상 나올게 없는지 반응이 없었다. 그런데 이게 자꾸만 부풀어 오른다. 어..어...어...???? 뭐야.. 이거.. 왜.. 이래. 왜 이래.. 너 한동안 나 배신했잖아.. 나 약 먹을까 생각도 했었잖아.. 왜..이래. 왜 자꾸 서. 야! 야! 밖에서는 여전히 바닥을 뒹굴며 웃음이 끊이지 않은 녀석이 있었고, 나오기 전 자연스럽게 여전히 팬티만 입고 있던 녀석의 아래에 눈길이 갔던 것도 사실이고, 뭐 이유야 지도 아침이면 서는 주제에 왜 비웃나 싶어서 그랬다. 씨발, 그런데 내가 지금 왜 그러는 거지. 이거 내 꺼 맞는데. 혹시 너 주인 찾아 되돌아온 거니..? 그런 거야..? 갑자기 어깨가 펴지고 졸음으로 가득했던 눈동자가 똘망똘망 뚜렷해지고 없던 근육들이 전부 나와 솟아오른 느낌이 들었다. 얼마 만에 갖는 우월감인지 노래가 절로 나왔고 흥분한 나는 화장실 문을 벌컥 열어 아직까지도 눈에 눈물을 매달고 울고 있는 녀석에게 자랑스럽게 외쳤다. " 준수야!!!!!!!!!! 나 예전보다 존나 업그레이드 됐나봐!!!!!!!!!!!!!!! " 그와 동시에 무섭게도 웃음이 싹 멈춘 녀석이 아직까지도 솟아오른 팬티를 보더니 걱정스럽다는 듯 안타깝게 말했다. " 중성화수술 예약할게. 수술하면 성격도 온순해진대. " 씨발새끼. 자랑스러운 몸을 돌아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 웃음 싹 멈추고 살벌하게 말하는데 다시 오줌이 마려운 기분이었다. 갑자기 수술대 위에 놓인 내 몸이 상상이 되고 그 위에서 우리 개새끼 잘 부탁한다며 수의사 주머니에 천원을 찔러 넣는 녀석의 고사리 같은 손가락이 보이는 순간이기도 했다. 엉뚱하지만 이상하게 녀석의 말처럼 언제나 오늘도 맑음이란 녀석이 지어준 내 이름처럼 난 하루하루 녀석에게 전염된 맑은 웃음에 사로잡혀 마음이 풍족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다. 정작 녀석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이렇게 큰 존재로 자리 잡혀 있다는 사실을 너무 느리게 따라오는 것 같아서 가끔은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정말로 아주 많이 아주 느려도 좋으니까, 녀석의 끝에는 온전히 녀석을 바라보며 오늘처럼 웃는 내가 있기를 희망했다. 마음이 많이 따뜻해지는 아침이었다. | 많이 느려도 좋으니까, 네가 내게 닿았으면 좋겠어. | My Melody w. 킵 * * * 어느 날이었다.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창민의 보물 1호. 007 편의점 가방을 처음으로 내팽개친 창민이 유서라고 하기엔 많이 초라한 초딩일기를 남겨둔 채 숙소에서 먼지와 함께 사라진 적이 있었다. 가방을 두고 말없이 사라진 창민은 새벽 내내 연락이 닿질 않아 처음엔 우스운 농담으로 넘겼던 매니저들이 점점 사색으로 변하기 시작할 무렵에 나는 낮에 일어난 일이 생각났었다. 우연히 방송국에서 연정훈 선배님을 처음 보게 된 우리는 묘한 기분에 휩싸여 창민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 오늘 연정훈 선배님 봤는데, 정말 좋으신 분이더라, 창민아 좋으신 분이야. 괜찮아. 안심해. 좋은 데로 가셨으니까. 」창민은 언제나 심기가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을 지었지만, 본인의 의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일이 풀리지 않거나 원하지 않던 방향으로 일이 유턴되면, 굉장히 무섭게 돌변하는 타입이었다. 이른바, 격려라는 조짐성이 짙은 단어를 내뱉기만 해도 버럭 화를 내고 씩씩거리며 혼자 옥상으로 올라가 화를 식히고 내려오는 타입이었다. 그 어떤 것 보다 격려 받는 입장을 굉장히 싫어했기 때문에 격려 받을 일을 아예 만들지도 않았다. 사라진 창민이 남기고간 일기에는 짧지만 진지한. 하지만, 웃긴 문장이 적혀있었다. 「 나는 한가인을 사랑했다. 오늘 멤버들에게 들었다. 연정훈 선배님은 참 좋으신 분이라고.. 나도 그렇게 나쁜 아이는 아닌데.. 」 창민에게도 뛰는 심장이 있다는 휴머니즘 인간극장 다큐멘터리스러운 모습의 산증인처럼 창민에게도 미처 면역 체계를 갖추지 못해 안달이 난 육체에 난데없이 들이 닥치는 첫 번째의 열병인 첫사랑이 다가왔었단 이 말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난데없이 숙소로 걸려온 전화기 너머로 밑도 끝도 없이 취한 음성으로 다짜고짜 「 사과랑 과도 들고 놀이터로 오슈. 」 라고 창민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뚝 전화를 끊었다. 카레를 좋아할 것 같은 생김새와는 다르게 어울리지도 않는 과일들을 아주 예쁘게 현모양처급 다리모양새를 하고는 잘도 깎아댔다. 그리고 과일 잘 깎는다는 소리의 칭찬은 여러 번 들어도 들을 때마다 처음 듣는 기억 상실자처럼 좋아했다. 칭찬은 돌고래뿐만 아니라, 천하의 심창민도 춤추게 하는 무서운 행위와도 같았다. 일단 씨발거리며 어이가 없었던 나는 첫사랑에 허우적거리는 우리 막내를 위해 분부대로 사과와 과도를 챙겨들고 놀이터로 갔었다. 청승맞게 축축한 새벽이슬을 씁쓸히 맞으며 놀이터 모래위에 털썩 주저앉아 모래와 대화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으로 보는 지 몸에서 벌어지는 일을 아예 모를 만큼 정신상태가 가출한 상태였다. 그 현상이 반가운 만큼 신기하도 했었다. 나는 창민이 옆에 차마 차가운 모래위에 앉지는 못하겠고, 어정쩡한 자세로 쭈그리고 앉아 창민을 처음으로 측은하게 불쌍히 여기며, 녀석이 천천히 과일을 깎는 모습을 지켜봐주었다. 그새 기분이 좋아졌는지 한쪽 눈을 찡그리기 시작함과 동시에 내 팔에 돋은 닭살을 문질렀다. 그리고 잘 깎아진 사과에서 나는 상큼한 즙내로 입에 군침이 돌기 시작한 나는 창민에게 당연하게 요구했다. 녀석의 불가항력은 만만해보였으니까. " 창민아, 나 사과 딱. 한 입만. " 눈은 사정없이 풀렸지만, 혀는 전혀 꼬아짐 없이 정확한 발음은 마치 아나운서를 보는듯했다. 창민은 이제야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는지 상체를 이리저리 흔들며 눈을 감았고 내 요구와 함께 사과를 번쩍 든 녀석이 내게 정확한 발음으로 말했다. " 형님이라고 해보슈. " 그렇다. 이 새끼는 술에 취해도 아무리 불가항력 상태였어도 재수 없는 새끼였다. " 일어나 씨발새끼야! 집에 가게!!!!!!!!!!! " 나는 언젠가 주변사람들의 술버릇을 떠올리다가 녀석에게 술을 먹여보고 싶은 억누를 수 없는 충동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준수는 언제나 술을 먹은 사람처럼 어느 날은 미친 텐션으로 돌고래 소리를 내거나, 어느 날은 자폐아에 걸린 저능아처럼 한국말이 의심스러운 주어, 동사 없이 지가 꼴리는 대로 내뱉기가 일쑤였다. 일전에 호프집에서 창민과 통닭을 뜯을 때에도 단 한 번도 맥주 한 모금을 입에 댄 적이 없었다. 불현듯 난 녀석의 술버릇이 너무나 궁금해졌고, 한참 게임에 빠져 정신줄을 놓은 녀석에게 다가가 아직 마르지 않은 머리를 수건으로 살살 털어 말려주면서 물어봤었다. 「 너 술 먹으면, 지금하고 뭐가 달라? 」질문의 핵심은 ' 지금과 뭐가 다르냐 ' 는 것이었다. 한참 게임기 스틱을 화려하게 움직이던 녀석이 몇 초간 생각하더니 술에 관한 작은 기억이 났는지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기 시작했고, 그 말에 나는 한참동안을 멍하니 벌벌 떨어야만 했었다. 「 약속이 생겨서 집에서 나가려고하는데, 우리 샤키가 꼬리 살랑 살랑 흔들면서 앞 발 들어서 나한테 매달려서 코에 뽀뽀두 해주고 그랬는데에.. 술 먹고 집에 들어오니까, 이빨하구 발톱 내밀구 물어뜯어서 죽일 것처럼 엄청 짖어댔어. 」 헉. 머리를 말리던 손이 자동으로 멈췄다. 「 샤키도 너한테 짖고 그랬어? 왜? 」 머리 말려주던 손길이 꽤나 기분이 좋았는지 바닥으로 내려간 수건을 팔꿈치로 건성으로 툭 치며 다시 말려달라고 무언의 재촉을 했다. 다시 멈춰진 손을 들어 녀석의 머리를 말려주기 시작했고, 이제야 만족스러운지 녀석이 마저 대답했다. 「 원래 개는 낯선 개보면, 무섭고 경계하려고 짖어. 」 그렇다. 김준수는 술을 먹으면 개가 되어서, 몇 십 년을 동고동락 애지중지하던 충견을 사냥개로 레벨업하는 미래가 보장된 훌륭한 조련사가 분명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날 이야기라면 애초에 주둥이 열지도 않았다. 재중은 알다시피 알코올 해독장애가 있어 술 같은 건 입에 대지도 않았지만, 가끔 기분이 좋아서 마시는 소량의 과일 칵테일은 녀석을 가장 기분 좋은 상태로 유지시켜주는 유일한 술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마시기만 하면, 「 하으응♡ 기분 좋앙, 기분 너무 좋앙. 」이 같은 대사를 기억상실증자처럼 100번은 반복하다가 살짝 올라오는 취기에 열이 올라 입고 있던 옷을 아무대서나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옆에서 오만가지 인상을 구기며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그런 하얀 손을 붙잡는 정실장은 매번 재중이 훌러덩 벗은 옷을 주워 다가 입히고, 다시 훌렁 벗은 옷을 주워 다가 다시 입히는 인내심이 엿보는 반복적인 수작업을 해야만 했었다. 그런데 이런 게 재중에겐 마치 어릴 적 도우미 아주머니와 자주 했던 패션쇼처럼 재밌는 놀이에 불과했다는 슬픈 사연이 포함되어있어서 문제였다. 그렇게 여러 번 입고 벗고를 반복하다가 결국 바닥난 체력에 스스로 지쳐 「 하으응♡ 」소리를 내며 스르륵 잠이 들어버리곤 했었다. 그런데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결정적으로 난 문제의 이 사람으로 인해 이 사람의 주둥이에 술이 조금이라도 들어갔다는 고급정보가 흘러나오면 아무거나 주워 입고 조난당한 피해자처럼, 숙소에 불이라도 난 듯이 숙소를 뛰쳐 도망가거나, 핸드폰을 아예 꺼버리고 무언의 잠적을 하는 행동을 취하게 되는 버릇이 생겼다. 정실장의 집안은 대대로 알코올을 아예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울리지도 않은 소심한 아이템 병을 앓고 있었다. 오죽하면 온 집안이 모두 모여 앉아서 맥주 1병으로 누구는 속이 뒤틀린다 토악질을 하고, 누구는 기분 좋다고 헤실헤실 웃어대고, 누구는 울기 시작하고, 누구는 화내기 시작하고, 거기다가 꼴랑 그거 마시고 다음날에는 시원한 해장국을 반드시 먹어야만 속이 풀리는 집안이었다. 정실장은 캔 맥주 하나라도 킵을 해서 먹어야할 위인이었다. 그리고 이런걸 다 떠나서 가장 최악은, 술이 취하면 어떠한 과정과 입에 발린 포장 없이 모든 말을 스트레이트로 내뱉는 게 가장 결정적 문제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처음으로 술자리를 함께했을 때 난 욕이 정말이지 혀끝까지 올라왔지만, 정확하게 틀린 말 하나 없이 내뱉는 음성에 혀를 잘근잘근 깨물어 참아야만 했었다. 거기에다가 얼굴색은 어디 하나 변하지도 않아서 평소의 모습 그대로 말하는 느낌이라 매번 움찔 거려야만 했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차별은 존재했었다. 이를테면 나한테는 「 넌. 앞머리 다시 까면, 다음 앨범에 네 파트 줄어든다. 」, 「 넌. 웃기만 해. 인상 구기면, 시트콤 내보낸다. 」, 「 넌. 뱃심 좀 길러, 혼자 립싱 할래? 」그리고 점점 썩소로 변해가는 창민에게는「 넌. 리더면서, 아래것들 저렇게 관리할거야? 」, 「 넌. 방송관계자들한테 말대꾸 줄여. 」, 「 넌. 키 그만 커. 」아니, 씨발 자기는 키 멀대같이 큰 주제에!!! 아니 키가 무슨 거기 멈춰! 하면 멈춰지는 거야???? 왜 쓸데없이 남의 성장통을 관리하고 지랄이야!! 그래, 그냥 틀린 말 하나 없어서 아무 말 없이 듣긴 했다 이거야. 그런데 왜! 어째서! 같이 활동하고 있는 김영중재중이한테는 「 넌. 살 좀 찌워. 」 , 「 넌. 아무한테나 웃어주지 마. 그거 기분 나빠. 」, 「 넌. 밤에는 잠을 자야해. 그래야 건강해. 」, 「 쇄골 밑으로 파인 옷 입지 마. 그거 마음에 안 들어. 」, 「 넌. 왜 자꾸 이뻐져. 그거 별로야. 」...... 나 원래 뒤끝있고 그런 소심한 사람은 아닌데, 내가 정실장 처음 만났을 때에는 내가 진짜 존나 배가 고파서 따라간건 맞는데, 정실장 아니었어도 난 원래 태생이 존나 이례적으로 볼 수 없을만큼 뛰어난 인간이기때문에 누구든 날 캐스팅했을 거거든요? 떨어진 콩고물이나 주워먹는 태생이 아니란 말입니다. 자꾸 이런식으로 멤버 차별하면!! 존나 짱꼴라가서 황비홍 Park으로 대박치고 재계약 안할거야!!!!!!!!!!!!! 그리고 말이야, 따지고보면 여기서 나 빼고 누가 정상이야? 말 할 수 있는 사람 있으면 말해보라고. 한놈은 놀이터에서 사과를 깎아대질 않나, 한놈은 충견도 못알아볼만큼 개로 변하질 않나, 한놈은 유아기처럼 옷을 훌렁훌렁 벗어대질 않나, 그리고 한놈은 맥주 한모금에 술자리에 함께한 모든 사람을 울릴정도로 독설을 내뱉질 않나! 차라리 나처럼 술 이빠이 마시면 엉엉 우는게 낫다 이 말이다. 그게 겉모양은 좀 흉측하고 가오는 안살지만, 그게 여기선 가장 양호하단 사실에 다시한번 기가 차는 순간이었다. 흑흑 전 어디로 가야하죠 아저씨.. 우는 손님이 처음인가요.. 달리면 아무도 모를거야.. 우는지 미친 사람인지.. § 정실장은 가급적 재중을 새벽스케줄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포함되기도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가뜩이나 일반 사람들 보다 체력이 약한 편이므로, 멤버들과 똑같이 스케줄을 다 소화해 내기엔 건강 적으로 여러 가지 위험을 동반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밤늦게까지 녹화가 있었던 창민과 유천은 연장된 녹화가 많이 늦어지는지 새벽이 되도록 숙소로 돌아오지 않았고, 오랜만에 비는 텀을 이용해 낮에 정실장 사무실에 비밀장소처럼 몰래 들린 재중은 6시간을 정실장의 의자나 책상을 만져보며 적막한 사무실을 서성거리면서 휑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정실장을 기다렸지만, 평소보다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는지 처음으로 정실장이 재중을 찾지 못한 유일한 날이 되기 시작했다. 재중의 목소리에 실망감이 묻어 있는 걸 들킬까봐 두려워진 재중은 억지로 즐거운 콧노래를 부르기도 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숙소로 돌아온 재중은 잠이라도 쏟아지면 좋으련만,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한 정신에 잠까지 확 달아난 재중은 몸을 많이 움직이기라도 하면 행여나 잠이 쏟아질까 숙소의 모든 방을 이리저리 쑤시고 돌아다니며 어지러운 방을 정리하기 바빴고, 한번 시작된 큰 숙소의 청소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렇게 새벽 3시가 다 되도록 방을 치운 재중은 땀이 슬슬 나기 시작한 몸으로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멤버들과 정실장 때문에 문득 졸음이 가득하면서도 심통이 난 얼굴을 하고 머리를 말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울리는 휴대폰에는 반가운 이름이 표시가 되었는지 금세 얼굴 표정이 환하게 꽃피듯 피어올랐다. 웬만해선 새벽에 울릴 일이 없었던 휴대폰이 재중의 작은 손을 재촉하고 있었다. 버릇처럼 말끝이 늘어지는 소리는 상대방이 누군지를 짐작하기에 매우 충분했다. " 형아……. " " 밤늦게 죄송합니다. 혹시 정윤호씨 댁인가요? " 처음 듣는 낯선 여자의 목소리에 흠칫 놀란 재중은 다시 한 번 액정에 뜬 이름을 체크하고 무슨 일인지 크게 당황해 하며 들고 있던 수건을 떨어트렸다. " 지금 윤호씨가 술이 많이 취한 상태인데, 연락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저장된 1번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세요? " 이제야 상황이 파악된 재중이 재빨리 발걸음을 옮겨 자신의 방으로 이동하면서도 장소를 자세히 물어보는 침착성을 잃지 않았다. "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어디로 가면 되죠? " 다행이도 기획사 근처에 있는 고급 와인바였다. 급하게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재중의 고요한 눈동자 주위엔 푸른 그늘이 드리워졌다. 급하게 서랍을 뒤지며 차 키를 찾는 손길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블랙의 렉서스 250을 엄마로부터 선물 받은 지는 두 달이 훨씬 지났지만, 딱히 차를 끌고 나갈 일이 없었던 재중의 차는 언제나 지하 주차장에 고스란히 멈춰진 상태였다. 급하게 찾는 손길에 자꾸만 엇나가는 손에 울컥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지 재중의 얼굴이 미세하게 구겨졌다. 급하게 찾은 차 키와 간단하게 짚이는 대로 가디건을 걸쳐 입은 재중이 숙소를 나왔다. 얇게 입고 있던 실내복 사이로 차가운 새벽바람이 스며 들어왔고, 맨발로 나선 얇은 발목이 시리도록 아릿해지는 적막한 새벽길이기도 했다. 4층으로 이루어진 ' 게스트 하우스 ' 라는 와인바에 도착하자마자, 새벽일수록 많은 손님들로 꽉 채워진 와인바에 여기저기서 재중을 쉽게 알아보며 간단하게 입고 나온 추리닝 차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재중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이상의 특별함과 신비한 동선은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기에 더할 나위 없이 충분했다. 그런 질기도고 익숙한 시선을 뒤로한 채 와인바에 발을 들인 재중은 온통 통유리로 되어있는 익숙한 통로를 지나 지배인에게 정실장의 이름을 말하자, 친절하게 장소를 이동하며 안내하는 지배인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자리를 이동할 때마다 들리는 과하지 않게 로맨틱한 노라존스의 선율이 섬세하고 고혹적으로 들려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정실장의 블랙 정장 상의를 가녀리게 보이는 얇은 한쪽 팔위에 얹은 여성이 보였고, 그 옆에 테이블 위에 두 팔꿈치를 올린 채 두개골이 깨질듯 묵직하게 조여 오는 두통에 머리를 두 손으로 짚고 있던 정실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평소에 입에 대지도 않던 와인이 반 이상 비워져있었다. 친절하게 자리를 안내 해준 지배인에게 가볍게 묵례를 한 재중의 표정이 사뭇 어둡게 내려앉기 시작했다. 정실장 옆에서 안절부절 손목에 찬 얇은 시계를 계속 체크하던 여성이 급기야 정실장의 어깨를 흔들며 계속 괜찮냐고 걱정된 억양으로 물어보기 시작했고, 그런 흔들리는 음성 뒤에 되돌아오는 말이 없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뜨거운 물에 팔이 데인 사람처럼 마른 체형의 몸이 크게 흠칫 떨릴 정도로 팔을 세게 뿌리친 정실장이 다시 이마를 지끈 눌러대며 여전히 감정 없는 목소리로 여성에게 말했다. " 입 다물고 꺼져. 네 인생 소중한 거 그렇게 잘 알면, 그렇게 함부로 지껄이지 말라고. " " 윤호씨 일단 일어나 봐요. 기사 아저씨 지금 다 오셨다니까, 일단 일어나 봐요.. " " 절대 이대로 내버려두지 않아. 절대. 그렇게 안 해. 안 해.. " " 이미 끝난 일이예요. 윤호씨 어서 일어나 봐요.. 정말 못 일어나겠어요? " 정실장만큼이나 단호한 입장을 보인 여성이 다시 정실장의 단단한 팔을 한차례 고민 없이 붙잡았고, 이에 질세라 다시 뿌리치듯 여성의 팔을 탁! 치자마자 거센 파동으로 위에 놓여 있던 와인잔들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밑으로 나가 떨어졌다. 언제나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묵묵하게 서 있는 게 전부였던 정실장이 자신이 아닌 다른 이로 하여금 이렇게 단단하게 화가 난 표정이 처음인 재중은 무슨 큰일이 생긴 건지 불안해하며 위태로워 보이는 정실장에게 다가갔고, 아예 테이블위에 엎드린 정실장이 잔뜩 억눌린 목소리로 무언가 말을 했지만, 깨진 유리조각을 피해 관리자를 부른 여성은 그 자리에서 정신이 없었고, 그런 시끄러운 잡음 속에서도 정확하게 정실장의 목소리를 들은 재중이 파르르 떨리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 재중이.. 재중이 좀 불러줘.. 제발. 좀.. 불러줘. " 오늘따라 힘들어 보이는 정실장의 등을 토닥이기 시작한 손길이 사뭇 떨려오는 순간이었다. 지끈 거리는 정실장의 머리를 아프지 않게 살살 지압을 하기 시작한 재중의 손길이 있었고, 금방 낯설지 않은 체향에 꼭 감고 있던 눈을 힘겹게 뜬 정실장이 숙여진 테이블에서 고개를 들었고, 들자마자 보이는 재중의 휘어지는 눈웃음에 무언가 잘못 본 사람처럼 무거운 눈 커플을 천천히 다시 끔뻑 뜬 정실장이 정말로 재중이 자신이 중얼거린 마술처럼 앞에 서 있자, 이내 인상이 구겨짐과 동시에 어지러운 머리를 바로 잡기위해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런 정실장의 머리를 계속 아프지 않게 지압하는 손놀림이 굉장히 익숙해보였다. 눈을 감고 재중이 서 있는 방향으로 의자를 틀어 돌려 앉은 정실장이 살짝 걷어 올린 와이셔츠 소매단 밑으로 보이는 탄탄한 팔뚝을 들어 아이처럼 재중에게 두 팔을 벌렸고, 머지않아 정실장 팔뚝 안에 빈틈없이 안겨진 재중의 허리가 빈약하게 조여지고 있었다. 허리를 한 아름 끌어안은 정실장의 손등 사이로 미세한 핏줄이 튀어나오고 있을 무렵, 여전히 지압을 멈추지 않은 재중이 정실장의 등을 토닥이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 혹시, 그쪽이 재중씨 이신가요? " 그녀는 오랜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처럼 재중의 얼굴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여성의 질문에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을 표현한 재중이 곧바로 여성의 팔에 걸쳐진 정실장의 슈트를 알아보며 아무런 홍조 없이 새하얗기만 하던 얼굴에 유일하게 붉은 입술이 감정 없는 음성으로 건조하게 말했다. " 정실장님. 술을 전혀 못하세요.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옷 이리 주세요. " 그제야 얼음처럼 차갑기만 했던 서늘한 사람 품에 온전히 안겨있는 재중의 허리가 눈에 들어온 여성이 지그시 그 둘을 바라보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재중에게 슈트 상의를 넘겨주며, 기사 아저씨 불렀으니 댁까지 모셔드리겠다는 낯선 여자의 친절을 곧바로 거절한 재중이 와인바 지배인을 불러 1층까지 부축 좀 도와달라고 요청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스텝 한명이 위로 올라왔다. 여전히 자신의 허리를 꼭 껴안은 채 두통이 심하지 인상을 구기고 있던 정실장의 머리를 눌러주며 정실장의 단단한 팔을 잡아 내린 재중이 두 손으로 정실장의 턱을 자연스럽게 잡으며 흔들리는 시선을 마주 보았다. 그러자 곧바로 아무 말 없이 재중의 시선을 마주한 정실장이 천천히 간절한 음성으로 말했다. " 재중아. 우리 집에 가자. " " 응. 우리 집에 가자. 형아……. " § 스텝의 도움으로 운전석 옆에 정실장을 태운 재중은 뒤에서 내내 마중을 도와주었던 여성에게 눈길 한번 인사 한번 내비치지 않고 싸늘하게 돌아서 와인바에서 빠져나갔다. 다리가 길어서 어느 좌석에도 다리를 꼬아서 타는 게 버릇이 돼 버린 정실장을 위해 최대한 앞좌석 위치를 뒤로 밀어준 재중이 편하게 정실장의 다리를 뻗게 자세를 잡아주었고, 편안한 자세처럼 축 늘어져 눈을 감고 있던 정실장은 많이 괴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몇 년 동안 보기 힘든 일들을 한꺼번에 무리해서 소화라도 했는지 자꾸만 타들어가는 입술을 축이며 행여나 어지럽지 않도록 천천히 차를 몰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손끝이 떨리고 가슴이 아릿하고 다리가 부들거려서 몇 번을 길게 나오는 숨을 나누어 쉬면서 여러 번 마음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한강 시민공원을 지나갈 무렵, 지끈 거려오는 머리를 붙잡으며 정실장이 눈을 떴고, 현재 이곳이 어딘지 위치 파악을 한 정실장이 참기 힘들다는 듯이 재중에게 말했다. " 재중아, 형 어지럽다. 차 좀 세워봐. " 그제야 안색이 안 좋은 정실장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 재중은, 한남대교를 지나 잠원지구 한강 리버시티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많이 늦은 새벽이라 어둡고 한적하기만한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혹시나 열이 올라 이마가 뜨겁지 않은지 손을 올려 이마를 체크하고 불안하고 흔들리는 눈동자로 정실장의 얼굴을 살펴보는 재중에게 괜찮다는 듯이 재중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창문은 닫혀있었지만, 정실장의 텅 빈 가슴 속에 싸늘한 바람이 휭휭 불고 있는 착각이 엄습할 때였다. " 재중아, 미안한데 편의점에서 형 음료수 좀 사다줄래? " " 어? 어어..! 형 잠깐만 기다려. 금방 올게! " 뭔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 굉장히 기쁜 사람처럼 차문을 열고 저 멀리 불이 켜는 24시간 편의점으로 달려가는 재중의 뒷모습이 보였고, 추운날씨에 간편하게 차려입고 온 의상에서 얼마나 놀란 상태로 녀석이 뛰쳐나왔을지 상상이 되자, 다시 정실장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내 가슴이 답답해졌는지 차에서 내린 정실장이 담배를 꺼내 물어 늦은 새벽에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피아노를 치면 아름다울 것 같은 길고 마른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하얀 담배가 위태롭게 느껴질 무렵이었다. 상당히 늦은 시간에 걸려온 전화에 심기가 불편했는지 상대방의 목소리는 사뭇 호통이 묻어나 있었지만, 그런 호통에도 상관없단 듯이 강한 담배 맛이 폐로 스며드는 알싸한 느낌을 고스란히 느끼며 막힘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 당신 인생에 제 인생을 멋대로 끼워 놓지 마세요. " " 너로 인해 우리 가문의 위계질서가 재편될 순 없다. 네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서다. " " 권력은 검열의 맹수라고 그렇게 질리도록 제게 훈계하시던 분이 어느새 절대 권력으로 타락된 꼴이라니 상당히 우습군요. " " 애들 장난 같은 딴따라 뒤치다꺼리는 집어치우고 당장 법계로 복귀 하거라. " 때마침 편의점에서 나온 재중이 차문에 기대선 정실장의 아슬해 보이는 몸을 보자마자 뭐가 그리도 급한지 다시 뛰기 시작했고, 급하게 시간을 벌려 재중을 편의점으로 보낸 정실장의 음성이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 이곳이 제 자리입니다. 아버지 뜻대로 절대 되지 않아요. " 통화를 마치자마자, 막막하고 불안한 마음에 꽤나 쌀쌀하게 불어오는 새벽바람이 행여나 재중의 몸이 얼어붙진 않을까 심려스런 마음이 어우러진 정실장이 다 타들어간 담배를 바닥에 비벼 껐고, 때마침 도착한 재중은 금세 추위로 빨개진 콧잔등으로 편의점에서 사온 오렌지 쥬스를 내밀었다. 보내기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목이 재중을 보자마자 순식간에 타들어가기 시작했고, 쥬스를 받자마자 한입에 들이키기 시작한 정실장의 목울대가 일정한 속도로 움직였다. 이상하게 차가운 병을 손에 들었는데, 목을 타고 넘어 들어오는 쥬스는 너무 뜨거워서 심장이 녹아 내리는 것 같은 어떻게 해도 해소가 안 되는 느낌이 들었다. 쥬스를 그렇게 다 마시자마자 옆에서 빈병을 대신 잡은 재중이 다시 괜찮냐는듯이 정실장의 얼굴 표정 하나하나를 유심하게 쳐다보기 시작했고, 정실장만큼이나 불안하게 움직이고 있는 재중의 동공이 크게 흔들릴 무렵이었다. 갑자기 차에서 기댄 몸을 급하게 뗀 정실장이 닫힌 앞좌석 문을 열었고, 멍하니 정실장의 동공만 바라본 채 시선을 따라서 이동한 재중의 차가워진 팔을 붙잡아 순식간에 앞좌석에 태웠다. 그와 동시에 최대한 뒤로 젖혀진 앞좌석 의자의 넓어진 공간으로 아무런 불편함 없이 재중이 앉은 몸 위로 몸을 겹쳐서 들어온 정실장 뒤로 앞좌석 자동문이 곧바로 쾅 하고 닫혔다. 덜컹 하고 작게 흔들린 차에 돌연 위에서 누르는 정실장의 힘의 압박감과 갑자기 벌건 눈빛이 흔들리는 까만 동공이 너무나 위태로워 보이는 순간이었다. 불현듯 안 좋은 예감이 들었고, 그와 동시에 이미 의식 속에 절제하기 힘든 상태처럼 아릿한 강렬한 힘이 자기 분열을 하듯이 재중의 붉은 입술을 크게 한 입 물어왔다. 놀란 심정과 불안한 가슴이 어우러져 혼동이 되기 시작한 재중의 눈이 파르르 경련 일어나듯 나약하게 떨리면서 감겨졌고 그와 동시에 열려진 입술 틈새로 가슴 가득히 번져오는 담배 맛이 들어왔다. 쓴 약을 삼키는 사람처럼 인상을 찌푸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오렌지향이 정실장의 체향에 섞여 부드럽게 빨려 들어왔다. 입안에 퍼지기 시작한 오렌지 향에 머리가 아찔해진 재중이 허겁지겁 자신의 혀를 엉켜 빨아올리며 숨 가쁘고, 집요하게 달콤한 샘처럼 한 방울도 빠짐없이 빠르게 자신의 침을 가져가는 정실장의 목으로 두 팔을 올린 재중이 숨 쉬기 힘들다는 듯 정실장의 등을 살짝 치기 시작했고, 이미 화가 나서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쉽게 제어하기 힘든 정실장은 별안간 쉽게 흔적이 남아선 안 되는 재중의 목선과 쇄골을 따라 입술을 옮겼고, 정실장의 뜨거운 입술이 진득하게 빨려진 곳곳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붉은 꽃들이 수를 놓기 시작했다. " ...하..앙... 하...아... " 재중의 호흡이 정상적으로 돌아오기도 전에 다시 급하게 입술을 부딪혀온 정실장은 화가 단단히 난 사람처럼 재중의 입술과 혀를 깨물면서 진득하게 빨아올리기 시작했고, 그럴 때마다 쾌감과 함께 따라 올라오는 통증에 정실장의 목을 더 가깝게 끌어안은 재중이 애써 정실장의 빠른 페이스에 따라가려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다시 금방 숨이 차오른 재중이 이번에도 정실장의 등을 치며 숨쉬기 곤란하단 표시를 했고, 다시 입술을 뗀 정실장이 헉헉 거리며 숨을 나누어 쉬고 있는 재중의 나약한 숨소리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답답하게도 차오르는 숨 때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 여력조차 없었던 재중은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인상이 구겨진 정실장의 얼굴을 잡았다. 그리고 모든 게 잘 될 거라는 위로처럼 잘생긴 얼굴위로 이마, 눈썹, 눈, 코, 입술 마다 짧은 키스사례를 퍼붓기 시작했다. 여전히 크게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고, 재중의 입술이 스치는 곳마다 인상이 점점 구겨지기 시작한 정실장이 결국 참아내지 못한 숨결을 한 번에 내려 받은 사람처럼, 얇게 입고 나온 재중의 옷 사이로 차가운 손을 넣었다. 그러자 차가운 손길에 흠칫 허리를 들썩인 재중이 놀란 눈을 키우며 정실장을 바라보았고, 그와 동시에 넉넉한 가디건 속으로 고개를 넣은 정실장의 입술이 오돌돌 굳어진 체 미세하게 떨고 있는 재중의 분홍빛 유두를 한입에 물어 빨기 시작했다. 갑자기 예고 없는 애무에 놀란 재중이 상체를 일으켜보려 했지만, 그와 동시에 앞좌석 의자를 뒤로 확 젖힌 정실장이 더 편해진 자세로 재중의 허벅지를 누른 채 집요하게 재중의 보드랍고 하얀 속살을 파고들기 시작했고, 이리저리 붉은 수를 놓듯이 입술이 움직이기 시작한 정실장의 애무에 숨이 가빠 오른 재중은 오로지 정실장의 등을 간헐적으로 내리 치며 호흡하기 힘들다는 표현을 최대한하고 있었다. 하지만, 솜털이 보송보송한 새하얀 목덜미 너머로 붉게 물든 앵두 같은 입술이 쉽게 벌어지면서 달콤한 숨결이 어쩔 수 없이 토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 ...으흥, 읏..하..앙... 형아.. 나.. 하..앙. 숨..차..읏, ... " 계속해서 툭 튀어나온 유두의 살점을 손가락으로 어르기 시작한 정실장의 손이 이번엔 얇은 추리닝 바지 사이로 거침없이 파고들기 시작했고, 순간 허리가 튀어 오르듯 몸이 민감해지기 시작한 재중이 정실장의 등을 다시 한 번 여러 번 치기 시작했다. 이런 낯선 행위는 재중의 몸을 경직되게 만들었지만, 거세게 빨아 올려 크게 부풀어진 유두에서 입술을 뗀 정실장의 입술이 무르팍까지 바지가 내려간 재중의 허벅지 다리 사이로 거침없이 가져가기 시작했다. 뜨거운 혀를 들이밀어 귓속을 핥는 것처럼 온 몸이 축축해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더 없이 뜨거워진 혀로 재중의 허벅지 연한 살 안쪽을 파고드는 아찔함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재중은 점점 가빠 오르는 숨통에 기어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교묘하게 스치듯 지나가는 입술이 재중의 잠잠한 페니스를 건들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허리가 튕기듯 참을 수 없단 듯이 정실장의 등을 탁탁 치기 바쁜 작은 손은 점점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온몸을 분홍빛으로 물들인 재중은 허리를 크게 비틀며 말했다. 너무나 뜨거운 정실장의 뜨겁고 축축한 혓바닥이 재중의 매끈한 배를 핥고 배꼽을 간지럽히며 가장 자극되는 허벅지 안쪽을 여러 번 괴롭히듯 물어뜯듯 지나가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보게 된 정실장의 이성을 잃은 모습에 이제야 놀란 가슴이 전해진 재중은 심장으로 전해지는 아릿한 메아리에 울컥 심장이 아프게 조여져 자신도 모르게 볼을 타고 빠르게 흐르기 시작한 눈물에 당황해 하며 연신 눈물을 감추려 바쁘게 닦아대는 재중의 손이 안타까워 보였다. " 흡...흐앙... 형아.. 읏..하앙.. 나.. 아무대도 안가... 흡...흐엉아앙..천천히..해...흡흐앙아.. " 재중의 눈물이 흐르고나 서야 모든 행동을 멈춘 정실장이 괴로운 얼굴로 눈물을 참고 있는 게 빤히 보였다. 곧바로 이를 악 물듯 자신의 행동을 질타하듯 멍하니 재중을 바라보던 위태로운 시선에 가슴이 놀란 재중이 급하게 팔을 들어 정실장의 목을 잡아당겨 빈틈없이 꽉 안기 시작했고, 오히려 나약하기만 한 자신의 몸이 속상했는지 울먹이던 목소리가 쉽게 잦아들지 않아, 놀란 듯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딸꾹질까지 시작되었다. " 히끅.. 미안해.. 형아.. 내가 미안해.. 흡..흐어앙.. 내가 너무.. 건강하지 못해서.. 히끅.. 너무 미안해.. " 자신은 괜찮다면서 실제로 많이 놀란 자신의 심장은 저 멀리 뒤로한 채, 멍하니 무서운 생각에 빠진 사람처럼 아득한 고통과 번민으로 흔들리는 정실장의 눈동자가 재중의 뛰는 심장을 더욱 아프게 조이고 있었다. 지금 정실장에겐 조용한 외로움이 있었다. 그 외로움으로 크게 당황한 정실장은 말할 수 없는 애절함이 뼛속 깊이 사무쳐와 어찌할 바를 몰라 했고, 이런 자신을 크게 위로하듯 등을 토닥이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자신이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서 미안하다고 우는 재중의 말 한마디가 크게 가슴에 박혀 메아리치듯 여러 번 자신을 질타하기 시작했다. 그 어떤 거대한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자들보다, 재중의 음성은 그 이상의 권세를 누리고 있는 사람처럼 그들이 갖고 있는 그 이상의 포용력과 위엄, 그리고 배려깊은 사랑을 함께 갖춘 그러한 목소리였다. 하루 종일 혈관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충동이 유일하게 잦아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정실장의 등을 토닥이며 울음을 애써 멈추려는 재중이 있었고, 그런 재중의 아련한 손길에 몸을 맡긴 채 깊은 생각에 잠긴 정실장이 모든 게 정리된 사람처럼 상체를 들었고, 아직 눈 꼬리에 매단 체 아슬아슬하게 고여 있는 남은 눈물을 손으로 부드럽게 쓸으며 재중에게 말했다. " 재중아. 아직 형은 강한 사람이 못 돼. " 히끅..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재중은 초점 없는 눈에 잠긴 정실장의 슬픈 표정에 순간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 욕심일지라도, 그래도 넌 내 곁에 두고 싶다. " 고개가 끊어질 기세로 위 아래로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인 재중이 다시 한 번 정실장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아 곳곳마다 성지 순례하듯 정성껏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이마, 눈썹, 눈, 코, 입술등 곳곳에 표시했다. 그런 키스세례를 고스란히 받으며 눈을 감은 정실장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려오는 순간이었다. 정실장은 재중에게서 과정 없는 이해를 요구했고, 재중은 정실장에게서 그런 알 수 없는 이해의 요구마저 아프지만, 그 마저 고맙다는 듯이 그를 작지만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주었다. 장황한 이유도 화려하게 포장된 과정도 부풀린 이해관계도 필요 없었던 그들의 모습위로 찬란하게 빛나던 별이 사뭇 야속해지는 그런 새벽이었다. §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뱃속 양수 가득히 곤히 잠들었던 핏덩어리 아이 하나가 식상한 인생이 될법한 내 세상 밖으로 지금 막 뛰쳐나와 조금은 힘겹지만, 정확하게 나의 눈에 초점을 맞추며 아빠- 하고 부르는 상황처럼 느껴지는 날이라고 자주 생각되었다. 녀석은 뭔가 마음에 안 들면 얼굴을 찡그렸다가도 그새 다른 일로 칭얼거렸다가도 다시 짜증을 내보였다가도 기쁜 일이나 무서운 일이 생기면 뚜렷한 눈으로 나와 적극적으로 눈동자를 마주치며 안정을 취하려 애쓰는 행동들을 보였다. 가끔은 거침없이 고민 없이 내뱉는 말들에 혀가 내둘러지기도 했지만, 재밌는 일에 그저 웃는 모습이 나를 여러 번 설레게 만들었다. 꽃이 혼자 피듯 녀석도 혼자 방실방실 웃었다. 김준수가 웃으면 세상이 웃었고, 그리고 녀석을 따라서 병신처럼 좋다고 따라 웃는 내가 있었다. 가끔 게임을 하고 앉아있는 녀석의 허리로 다리를 감싸 안고 곧바로 느껴지는 뼈만 앙상한 골반에 가슴이 내려 앉아 아픔이 전해지기도 했었다. 녀석은 자신이 칭얼거리면 내가 다가와 이것저것 관심 있게 물어보는 것을 쉽게 파악했고, 울먹일 듯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이는 날에는 모든 걸 제쳐두고 자신에게로 달려올 것을 알아차렸고, 짜증을 부리게 되면 같이 소리를 버럭 지르다가도 끝내는 포기했다는 듯이 두 손을 번쩍 들어주는 나를 귀신같이 잘 알았다. 그리고 이런 나를 이용해 외로울 때마다 나를 자신의 집으로 새침한 표정으로 입을 뾰족 내밀어 부르는 녀석의 아릿한 마음이 난 미치도록 좋았다. 가끔은 이런 내가 무섭기도 했다. 갑작스럽게 잡힌 해외일정 때문에 온갖 짜증이 온몸에 배어 있는 상태였고, 유일하게 일본지사 연구실에 가게 된 게 좋은 창민은 춤이라도 출 기세로 높은 텐션을 눈치 없이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미용실에서 입이 사발로 나온 나를 보고 원장님과 코디들이 기분 풀어주려고 온갖 에피소드며 입에 발린 칭찬들을 아끼지 않았지만, 이상하게 반갑지 않은 일정이었다. 평소에 나라면, 해외에서 자유롭게 쇼핑할 기회가 주어진 절호의 찬스였지만, 이상하게 먹힐 수 있는 핑계가 있다면, 아파서라도 한국을 비우기 싫었다. 그 이유 끝에는 김준수가 전부였지만, 일단 그냥 그냥 무조건 가기 싫었다. 밤 늦게까지 있는 스케줄을 파악하며 자꾸만 화가 잦아들지 않아, 평온해지기 위해 안정제를 찾듯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분주한 동작으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건성으로 전화를 받는 새끼가 얄미웠다. 나 일본 간다니까? " 야!!!!!!! 너 왜 이렇게 정신 사나워!!! 내 이야기 듣고는 있는 거야????? " " 아씨!! 정신없어 닥쳐!!!! " 개새끼. 닥치라면서 1시간동안 전화 안 끊는 넌 뭔데. " 너 지금 뭐하길래. 왜 이렇게 부스럭 거려!!! 나 내일 일본 간다니까!!! 열흘이나 걸린다고!!!!! " 자꾸 귀찮게 달라붙은 머리카락처럼 짜증이 난 녀석이 하고 있는 동작을 쉽게 멈춘 채 1시간이 훌쩍 넘어서야 내 목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진이 다 빠졌다. " 뭐라고? 중국 간다고? " 개새끼.. 제대로 들었으면 꼭 매번 저렇게 엇나간다. " 오늘 숙소에서 짐 싸놓고 집에 갈 거니까, 어디 나가지마. " " 나 저녁에 MT 가는데. " 순간 쇼파에 몸을 축 기댄 채 앉아있던 몸이 스프링처럼 빠르게 튕겨져 올라왔고, 조증환자처럼 이리저리 미용실을 1층, 2층 돌아다니며 부탁 아닌 애원 그래 씨발, 구걸을 하기 시작했다. 흑흑.. 다른걸 다 떠나서 열흘 동안이나 해외에 나가 있는데 가기 전에 녀석의 얼굴 한번 못보고 가는 게 심기를 크게 불편하게 만들었고, 무엇보다도 저 새끼의 온갖 버릇들을 자세하게 꿰차고 있는 내게 어떤 속일지 모를 무수한 사람들과의 그게 1박일 지언즉 함께 날을 새는 짓. 그 자체가 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건 내가 MT를 따라가지 않아도 그 일정동안의 녀석의 모든 행동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분명 도착하자마자 옷부터 훌러덩 벗고 팬티바람으로 게임 한판 하겠지? 안 돼. 그건 아니야. 아니야. 씨발. 이러한 난세에 무슨 MT야!!!!! 술 각자 먹고, 토악질 각자 하라고!!!!!!! 손가락만 넣으면, 술술 나오는 토악질 꼭 같이 간 선후배가 등 두들겨줘야지 돈독해지는 MT냐고!!!! " MT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 샤키가 있을 때에는 샤키 때문에 발목이 잡혀 한 번도 가지 못한 MT를 저번에 한번 나에게 샤키를 맡기고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한번도 MT에 간적이 없었으니 이번이 아마 두 번째일 것이다. 그런데 어찌되었든 얼마나 중요한 MT든 간에 보내기 싫었다. 유치한 감정과 장난인건 맞는데 일단 내 마음이 그랬다.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안가게 할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하지만 녀석의 고집을 알기에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난 정말 바위에 계란이라도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 안 돼! 삶은 계란 던지면 안 깨지잖아!!! 됐어. 안 돼.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 넌 비행기 타고 일본가면서, 난 자동차 타고 강원도 가서 맑은 공기 좀 마시고 돌아오겠다는데 니가 뭔데 가지마 소리를 해? 너도 그럼 일본 가지마. " 참.. 할 말 없게 만드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 이유 없어. 그냥 가지 말라니까? 내가 저녁에 통닭 사줄게. 게임도 같이 하고, 머리도 말려줄게. 맛있는 볶음밥도 해줄게. 드러운 작업실 바닥도 치울게. 게임팩도 정리해줄게. " " 너 전업주부로 직업 옮겼어? 응? " " 나 진짜 장난 아니거든? 가지마. 무조건 MT 가지마. " " 나도 장난 아니거든? 난 무조건 MT 갈 거야. " " 나 내일 일본 간다니까. 내 얼굴 필요 없겠지만, 그래도 다시 생각해봐. 열흘이라고. " " 너 안돌아 올 거야? 그게 1년이야? 10개월이야? 고작 열흘이잖아. 넌 왜 자꾸 열흘을 몇 배로 부풀려서 칭얼거려? 니가 애야? " 아무리 설득해도 넘어오지 않을 것 같자, 화가 나기 시작해 별안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목이 바싹바싹 마르기 시작해 정수기에 가득 담은 머그잔의 차가운 물을 벌컥 벌컥 마셔 넘겼다. 씨발, 속 타 죽겠네. " 나는 너랑 단 10초라도 떨어져 있기 싫어. 열흘은 나한테 1년처럼 길어. 내가 꼭 이렇게 까지 말해야지 넌 속이 시원해? " 말이 없다. 그 대신 무언의 대답으로 다시 짐 싸는 부스럭 소리가 들려왔다. 열이 났다. 안달도 났다. " 씨발새끼!!!!!! 됐어!!!!!!!!! 끊어!!!!!!!!!!!!!! " 진짜 개새끼다. 진짜 열흘 동안 떨어져 있어야하는데 마치 10초처럼 대하는 말투에 진심으로 섭섭한 마음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씩씩거리며 거칠게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숨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고, 미용실을 이리저리 쿵쾅쿵쾅 소리를 내며 여러 가지 생각을 지우려던 내 머릿속으로 팬티바람으로 S라인 강조하듯 귀엽게 잠든 녀석의 앙증맞은 얼굴이 떠올랐고, 고사리같이 작은 손으로 고양이 세수하듯 급하게 세수하고 나와서 로션도 안 바른 채 게임기부터 잡는 녀석의 뽀얗고 하얀 속살이 눈에 아른거렸고, 아직 다 마르지 않은 머리를 내 등에 편하게 기대며 부드럽게 말려주는 손길에 기분 좋은 듯 ' 흐~응.. ' 소리를 내는 녀석의 목소리가 귓바퀴에서 도대체가 떠나질 않았다. 진짜 씨발새끼!!!!!!! 이내 정신없이 쿵쾅거리던 발걸음을 멈추고 마지막 발악처럼 휴대폰을 다시 손에 잡았다. 그리고 다짜고짜 문자를 보내고 핸드폰을 꺼버렸다. 인생사 새옹지마, 도 아니면 모,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씨발 못 먹어도 쓰리고다 색꺄!!!!!!!!!!!!!!! 「 저녁에 집으로 갈 거야. 너 없어도 갈 거야. MT 가지마. 」 § 시상식 이후로 이렇게 가슴이 떨려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그게 필요한 물건이든 필요하지 않던 물건이든 판단이 쉽게 서지 않은 두뇌로 챙긴 트렁크 가방 안에는 도대체 어떤 물건을 담았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저 짐을 싸지 않으면 준수네 집에 못 간다는 매니저의 말에 무조건 꽉 꽉 채워 넣었고, 급하게 택시를 잡아타서 녀석의 집 앞으로 왔다. 이제는 굉장히 익숙해진 경비아저씨와 간단한 담소를 나누는 여유를 부린 채 녀석의 집으로 올라왔다. 어느새 내 집 열쇠처럼 녀석의 보완카드를 늘 갖고 다니는 버릇마저 생겼다. 낮에 보낸 문자를 뒤로한 채 한 번도 핸드폰을 키지 않았다. 사실 자신 없는 쪽이 더 강했다. 언제나 제멋대로 나는 안중에도 없단 듯이 행동한 녀석이었기 때문에 역시나 제 고집대로 MT를 갔을 거라는 생각이 더 가까웠지만, 그래도 작은 일말의 희망을 붙잡았다. 씨발 내가 쟤 때문에 여기서 희망이란 단어를 써야 하겠냐고. 일단 기대감 부풀어 오른 마음으로 심장이 함께 뛰기 시작했고, 마치 대상을 기다리는 풋풋한 신인과도 같았다. 그리고 12층 엘리베이터 소리와 함께 내린 나는 일전에 ' 0000 ' 이라는 초기화 비번들은 모두 ' 0604 ' 내 생일로 바꾸는 통에 한참을 녀석이 여러 번 전화를 걸어 제집 비밀번호를 내게 물었다. ' 야 우리 집 비번 뭐야? ' , ' 색꺄 내 생일 6월 4일!!! 좀 외워! ' 하지만 4 소리와 함께 이미 전화는 끊겨진 상태였다. 그렇게 한 달을 알려주었다. 빌어먹을 기억력이었다. 나는 비번을 누르지 않고, 처음으로 녀석의 집에 온 사람처럼 간 떨리게 초인종을 눌러보았다. 쾌활한 초인종 소리가 두 번 울렸고, 불안하게도 안에서 그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숨을 가다듬고 초인종을 눌렀다. 나중에는 분노의 타자를 길거리 스트리트파이터처럼 초인종 버튼에다가 하소연 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십번이 울린 녀석의 문은 결국 끝까지 열리지 않았다. 솔직히 없을 거라는 생각이 크긴 했는데, 있을 거라는 마음이 그 보다 훨씬 몇 배로 간절했던 나는 화가 난걸 떠나서 아쉬워지기 시작했다. 그냥 얼굴 한번 못보고 목소리 한번 듣지 못하고 돌아서는 게 마냥 아쉬웠다. 마치 전쟁터 나가기 전에 가족과 뿔뿔이 흩어진 느낌처럼 생소했다. 씨발새끼 지가 뭔데! 나를 전쟁터 느낌까지 들게 해? 개새끼. 입은 욕을 뱉고 있었지만, 손은 자동으로 0604를 거칠게 누르고 있었다. 도어락의 비번이 풀리자마자 익숙하게 집으로 들어온 나는 거칠게 옷을 번어던지고 고요한 거실의 불을 키고 쇼파에 앉아 씩씩 거리며 분노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뭐라고 변명이 담겨져 있을 법한 이용당한 핸드폰을 켰지만, 도착한 메시지는 아무것도 없었다. 씨발 그러니까 더 화가 나는 거다. 울컥 치밀어 올라오는 섭섭함에 진짜 눈물이 그렁그렁 차 오르기 시작했다. 녀석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시작된 사랑은 아니었는데, 자꾸만 난 녀석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게 되고 욕심이 생기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마저 녀석은 모르는 것 같았다. 터덜터덜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가 시원하게 샤워를 했다. 일단 이대로 숙소로 들어가기도 귀찮고, 자고 갈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말리면서 넓은 방에 혼자 있는데 어찌나 청승이던지 웃음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녀석이 하던 행동처럼 게임기 스틱도 잡았다가, 아이스크림도 쪽쪽 빨아 먹었다가 널브러져있는 과자도 주워 먹었다가 아무 생각 없이 거실을 뛰어 놀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문득 억울한 심정이 담긴 가사가 떠오른 나는 아차 싶은 마음에 녹음기를 찾으러 작업실 문을 열었다. 그런데 그곳에 녀석이 팬티바람으로 앉아있었다. 왜 이곳이 작업실이고 방음처리가 잘 되어있는지 훌륭한 제품을 테스트한 기분과도 같았다. 순간 벌렁 벌렁 뛰어오른 가슴과 눈에 한가득 고인 눈물이 존나 떨어지는 거다? 씨발 나 왜 울어. 나 왜 울지. 이상하게 녀석 앞에서 나는 눈물을 억지로 삼키지 않았다. 양쪽 볼 사이로 떨어지는 눈물과 콧물을 더럽게 팔로 문지르며 녀석의 작은 뒤통수를 보고 있었고, 아무것도 안들리는 듯 큰 헤드셋을 끼고 열심히 가사를 받아 적고 있던 녀석의 뒷모습에 크게 감격한 나는 그렇게 한참을 서서 눈물을 닦고 있을 때였다. 가사를 다 썼는지 의자를 빙그르르 돌린 녀석이 문 앞에서 찌질 하게 눈물을 훔치며 같은 팬티바람으로 서 있는 나를 발견했고, 곧바로 정신병자를 본 사람처럼 어이가 없단 듯이 헤드셋을 내리며 말했다. " 너 왜 울어? " " 몰라 씨발새끼야!!!!!!!!!!!!!!!!!!!! " 녀석이 갑자기 입 꼬리를 하늘위로 올리고 새어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아내기 시작했다. " 안 울어도 흉측한데 우니까, 더 무섭다. " 나는 콧물 눈물을 자꾸 훔치며 거칠어진 숨을 씩씩 거렸고, 의자에서 일어난 녀석이 가까이 다가와 놀리듯 웃음을 머금고 작은 손을 들어 올려 내 코에 대고 자상하게 말했다. " 코. 흥~! 해. " 순간 복수심이 생겨났다. 내 고막이 저 멀리 악의 구렁텅이로 나가떨어질 지언즉 내안에 있는 모든 정기를 코로 끌어올려 존나 거세게 코를 흥!!!!!!!!!!!!!!!!!!!!!!!!!!!!!!!!!!! 불자, 녀석의 작은 손가락 사이로 거센 파도처럼 나온 콧물에 녀석의 평화로운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금세 나와 같이 울먹거릴 듯 눈물이 가득 고인 눈망울이 되어버렸다. 그 모습에 난 웃음이 나기 시작했다. 이런걸 쌤쌤이라고 하는 거다. " 디러운 새키야!!!!!!!!!!!!!!!!!!!!!!!!!!!!!! " 녀석은 마치 치료 불가능한 오염물질이 손에 닿은 듯이 치를 떨며 손을 저 멀리 뗀 채 욕실로 다다닥 뛰어가기 시작했고, 그제야 속이 후련해진 나는 귀속이 멍해진 것도 모른 채 승리의 찬 우월감으로 웃지 못해 안달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꼴이 우스워서 얼른 옷을 입었다. 그리고 손을 닦고 나온 녀석이 흘기듯 나를 째려보았고, 팔짱을 끼고 흐뭇한 얼굴로 그런 녀석이 귀엽다는 듯 존나 밝게 웃는 내가 있었다. 존나 웃긴 상황인데 이상하게 가슴이 벌렁벌렁 숨을 쉬고 손끝이 아리고 발바닥이 너무 간지러웠다. 누군가 내 가슴을 긁고 지나가는 듯 했다. 그리고 그 마음만큼이나 뭔가 안에서 요동치는 심장이 동시에 있었다. 녀석은 다시 나를 무시하고 작업실로 들어갔고, 문이 닫히기 전에 재빠르게 작업실로 같이 들어간 나는 바닥에 엎드린 채 가사를 수정하고 있는 녀석의 몸 옆으로 길게 몸을 뻗어 누운 채로 녀석의 눈동자를 집요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오로지 녀석의 까만 동공만 바라보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연필로 내 이마를 탁 친 녀석이 다시 가사를 바라보며 말했다. " 눈 저리 치워. 그만 봐. " " 싫어. " 자꾸 나는 눈동자를 마주보려 하는데 녀석이 자꾸만 가사를 핑계 삼아 나의 시선을 피했다. 오기가 생긴 나는 더 가까이 다가가 녀석이 눈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그 시선 그대로 나를 피한 녀석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 그만 봐. 그러다 나 닳겠다. " " 억울하면 너도 나 봐. " " 넌 민망하지도 않아? " 나이스캐치. 알고 보니 내 진득한 시선이 민망했는지 일부러 내 시선을 피한 녀석인걸 알아차렸고, 곧바로 녀석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아 내 시선과 동일하게 나를 바라보게 잡아 당겼다. 그러자 어쩔 수 없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기 시작한 녀석은 크게 당황한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기 시작했고, 그런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녀석이 제정신 상태였는데 입술에 뽀뽀를 했다. 쪽 소리가 작업실에 울렸고, 눈이 동그랗게 떠진 녀석의 볼이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할 것처럼 빠르게 붉어지기 시작했다. 만지면 반응하리라. 그대로였다. 별안간 달아오르기 시작한 자신의 얼굴을 감지한 녀석이 엎드린 상체를 들려했고, 이에 질세라 다시 강한 힘으로 녀석의 얼굴을 붙잡은 나는 다시 쪽쪽 소리를 내며 여러 번 녀석의 입술에 애정 어린 뽀뽀를 했다. 그리고 에라이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뿌리치던 행동이 잠잠해진 녀석이 나와 동일하게 이번엔 나를 피하지 않고 내 시선을 진득하게 바라보았고, 녀석의 동공 안에 그리고 내 동공안의 비춰지는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렇게 한참을 바라볼 때였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내뱉어진 말에 녀석의 동공이 또 한 번 크게 일렁거렸다. " 나 너 좋아해. " " 그래서. 나도 너 좋아해야 해? " 그럼, 더 좋지. " 아니. " " 그럼 왜 말해. " " 그냥 하고 싶어서. " 내 눈빛에 담겨진 진지한 생각을 읽으려는 듯 내 눈을 다시 주시했다. " 이거 고백이야? " " 이게 고백이 아니면 뭐야? " " .. 웃기지 않은 농담. " 정말 웃기지 않는다. " 그래서 지금 농담으로 넘겼어? " " 생각중이야. " " 내가 고민이 되긴 해? " " 왜 자학 개그 해? " 녀석이 내 손을 탁치며, 나와 같은 자세로 천장을 바라보며 누웠고 곧바로 아쉬운 대로 녀석의 손을 잡아 깍지를 끼웠다. 고맙게도 손을 피하지 않았다. 얼마 못가서 고개를 틀어 녀석을 바라보았고, 무슨 생각에 빠졌는지 넋 놓고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 녀석에게 가장 진솔한 목소리로 나를 전했다. " 사랑해. 준수야. " 한참동안 말이 없었던 녀석이 조용하고 어색하게 내게 전했다. " .. 고마워. " 이런 내 마음이 더럽다고 손가락질 하지 않은 녀석이 고마웠고, 자기를 친구 이상으로 바라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배신감을 느끼지 않은 녀석이 고마웠고, 내 진솔한 고백을 진지하게 같이 고민하는 녀석이 고마웠고, 무엇보다도 고백에 대한 답이 아닌, 사랑한단 한마디에 고맙다는 말을 대신한 녀석의 배려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웃음이 떠나질 않았고, 손가락이 간지럽고 발바닥이 간지럽고 가슴이 간지러웠다. 그리고 꽉 잡은 손을 오랫동안 놓지 않았다. 왠지 녀석에게 닿아진 느낌이 들었다. 오늘 꿈에도 네가 보일 것만 같았다. 가슴이 벌써 세차게 뛰었다. § 진짜 열흘이 1년인 줄 알았다. 웃기지도 않은 프로에서 존나 웃기다는 듯이 웃는 날들을 보냈고, 존나 맛도 없는 음식을 먹으면서 오이시♡ 우마이!!를 날리는 연기를 선보였고, 입에 발린 소리를 진짜처럼 지내는 잔혹한 일정에 쉽게 피로해진 몸은 밤마다 김준수를 찾았고, 찾을 때마다 새벽이든 아침이든 전화를 받아 욕이라도 실컷 먹어야지 하루 일과가 시작된 나를 보며 창민이 혀를 찼다. 근데 그 소리마저 사랑가로 들리기 시작한 나는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그런데 하늘이 두 쪽이 났는지, 열흘 내내 정실장을 단 한번도 찾지 않은 김영웅재중이는 씩씩하게도 한 번도 아프지도 않고 잠도 곧잘 자고 음식도 잘 먹으면서 즐거운 여행 온 사람처럼 빡빡한 일정을 무리 없이 해냈다. 그런데 무언가 느껴지는 촉으로 억지로 참고 있는 듯 한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그렇게 열흘간의 대장전을 끝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한 우리들은 공항으로 많이 몰려든 팬들을 뒤로한 채 피곤한 몸을 벤에 실었다. 그리고 어찌나 한국말과 한국간판, 한국음식 그 모든 게 사랑스럽고 정겹고 아름답고 마냥 좋은지 헤실헤실 웃음이 멈추질 않았고, 벤에 몸을 싣자마자 TV를 튼 화면 속 중앙에 자리 잡은 정실장의 모습에 일순간 벤을 한 번에 집어삼킨 것 같은 적막함이 스며들고 있었다. 곧바로 창민과 나는 눈치를 보듯 재중의 얼굴로 시선을 자동으로 옮겼고, 예상 밖으로 아무렇지도 않는 일이라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신기하게 TV를 주시한 재중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니,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우리가 열흘 동안 일본 일정을 해내는 동안. 그 사이에 정실장이 약혼식을 치렀다고 TV에서 지껄이고 있었다.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도 같은 내용의 뉴스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흰색 슈트를 멋지게 차려입은 정실장이 고요한 눈빛으로 약혼녀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런 정실장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약혼녀는 정실장과 다르게 굉장히 들뜬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실장의 약혼식장 모습을 TV로 지켜보던 재중이 핸드폰을 꺼내들었고, 무언가 서늘한 기운이 맴도는 벤에서 죽은 듯이 조용해진 창민과 나는 재중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 정실장님. 약혼 축하드려요. " | 사랑한다는 고백에 고맙다고 대답해준 너, 그땐 왜 그랬어? | My Melody 12 My Melody w. 킵 * * * 뭔가 꺼침직한 침묵과 불길한 기운이 내 대가리를 너무나도 무겁게 짓누르고 있을 때였다. 지방 스케줄을 끝마치고 곧바로 서울로 올라와 몸 상태도 피로에 지쳐 최악이었지만, 이런 불길한 기운이 엄습해오는 날에는 내가 존나 피하고 싶으면 싶을수록 우연찮게도 그 상황에 맞닥뜨리는 순간에 언제나 나 박유천이 있었다. 사건이 발생되고 있는 현관문 앞에서 숙소를 박차고 나가지도, 그렇다고 다시 방 안으로 들어서지도 못한 채 풀어진 운동화 끄나풀을 만지작거리며 소심하게 눈치를 보고 있는 나는 확실히 우유부단의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줏대 없는 인간이었다. 씨발, 오늘 준수 만나기는 글렀네. 새벽이라도 집으로 가겠다고 먼저 자지 말라고 했는데…… 오랜만에 반갑지 않은 살벌한 운동회가 가을하늘도 아닌, 먹구름이 잔득 낀 숙소에서 개최되었다. 양쪽 밧줄로 전달되는 팽팽한 스릴과 온몸을 감싸고 흐르는 짜릿한 긴장감과 섬뜩한 두려움이 서늘한 공기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마저 흥미롭단 듯이 팽팽한 밧줄 위에서 태연하게 눈을 감고 앉아 느린 춤을 추고 있는 심창민과, 이런 상황에 당황해 하며 눈동자 굴러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눈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소심한 나 박유천과 그리고 이 밧줄의 중심부에 달의 뒷면처럼 어둡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 있는 김재중이 있었다. 그리고 재중의 양쪽으로 마치 껍질을 벗긴 나뭇가지처럼 매끄럽고 부드럽고 하얗기 만한 재중의 얇은 손목을 피가 안 통할 정도로 한 손에 꽉 쥐고 있는 정실장과,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은 여인이 팔짱을 낀 채 그런 정실장을 귀엽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오금이 저리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렇다. 비록 아들을 위해 비오는 날에 교문 앞에서 우산을 준비하고 있는 여유로운 엄마들 무리에는 속하진 못해도, 행여나 귀한 아들이 싸늘한 비를 외롭게 홀로 맞지는 않을까 해외일정에서도 한국 날씨는 반드시 보고를 받아야 일을 시작한 재중에게는 절대적으로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여인이 마치 원더우먼처럼 코발트 네이비 실크 미니 원피스를 입은 절대적 S라인에 감히 근접하기 힘든 기품을 갖춘 그런 미인의 여성인 재중의 엄마가 놀랍게도 순간이동처럼 한국으로 귀국했다. 하지만, 재중의 눈동자에는 관심도 놀라운 기색도 없이 건조한 표정이었고, 당황한 건 오로지 나와 정실장뿐이었다. 그렇게 드라마에서 자주 써먹는 식상한 스토리처럼 상당한 반열에 오른 두 검사집안의 장남과 장녀가 약혼식을 치렀고, 곧바로 국내 언론은 물론이거니와 해외에서도 뜨거운 매스컴을 탈 정도로 두 집안의 양립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이끌어냈다. 그로인해 하루아침에 정실장은 검사가 확정된 미래가 촉망한 젊은이로 둔갑되었고, 머지않아 가볍게 뒤치다꺼리 하면서 즐긴 기획사는 폐기처분하듯 이미 다른 대주주가 생겨났다고 확정된 사실처럼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이미 각인된 상태였다. 약혼식을 치룬 후 5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정실장의 모습은 마치 오랫동안 숨어 지낸 죄인처럼 수척해진 얼굴과 불안한 눈동자가 어울리지도 않게 애처로움을 자아내기도 했었다. 하룻밤 사이에 병자처럼 꺼슬꺼슬한 수염이 자라나 있었고, 모슨 수분이 죄다 빠져나간 것처럼 거칠고 메마른 입술에는 어디 가서 싸움질을 격하게도 했는지 붉은색 피딱지가 굳어 있었다. 단 한 번도 우리들 앞에서 괴로운 듯 흐트러진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나는 정실장의 피죽도 못 먹은 얼굴 등장에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이리 저리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여러 번 얼굴을 다시 확인하고 뒷걸음까지 쳐댔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차갑고 건조한 눈빛으로 둔중한 침묵으로 제 할일을 이것저것 분주하게 하고 있는 김재중이 처음으로 무서워지기도 했었다. 일단 피하고 보자라는 심보로 급하게 운동화를 신고 있던 도중에 재중이 엄마가 잔 다르크처럼 혜성같이 등장했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구두를 신고 멋지고도 세련된 워킹으로 내 모든 기를 빼앗아갈 것 같은 착각이 엄습했을 때였다. 단호하게 재중의 팔목을 잡은 정실장이 입을 열었다. 이미 몇 차례 감정소모를 하고 온 모양인지, 심각한 표정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 어머님 죄송하지만, 오늘은 먼저 댁으로 가시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재중이랑 중요하게 할 말이 있습니다. " 가시철망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려진 넝쿨 장미처럼, 위태롭게 재중의 앙상한 손목을 붙잡고 있는 정실장의 눈빛은 단호했지만, 아찔한 구두 높이만큼이나 날카로운 말들이 정실장을 에워싸고 있었다. " 정실장. 여태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우리 아들한테 가장 섭섭한 이유가 뭔지 알아요? " 무미건조했던 재중의 하얗게 질린 얼굴이 그제야 엄마 얼굴로 방향이 틀어졌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재중의 엄마를 바라보던 정실장은 다시 한 번 완고한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재중의 팔목을 단단히 잡았다. 그것은 가지 말라는 애처로운 무언의 표시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다시는 재중의 고개가 정실장을 향해서 돌아서지 않았다. 주춤하지도 고민하지도 망설이지도 않을 만큼 단호했다. " ……. " " 독립군처럼 입이 쓸데없이 너무 무거워. 난 우리 아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일로 고민을 하는지, 무슨 일로 힘들어 하는지, 어떤걸 원하는지 엄마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는 뜻이 예요. 그래서 그 부분이 엄마로서는 가장 섭섭한 부분이었어요. " " ……. " " 이렇게 자기표현이 서툰 애가, 어느 날 불쑥 나한테 전화를 걸더니 시답지 않은 이야기들을 꺼내면서 2시간동안을 웃으면서 입을 열더라고.. 처음이었어요. 우리 아들이 이렇게 수다스러운 아이였는지.. " " ……. " " 내 아들과 1년을 떨어져 지냈든, 그게 비록 10년일지라도 내 아들 이예요. 그 누구보다 우리아들은 제가 더 잘 안단 뜻입니다. " 엄중한 훈육처럼 남다른 포스의 공기가 현관문 앞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야말로 정실장은 여인의 말에 빼도 박도 못 하고 거듭 여러 번 확인을 받고 있는 듯 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절실한 마음이 다시 한 번 정실장의 입을 열게 만들었다. " 어머님. 재중이가 힘들어 하는 건.. " 정실장의 말을 중간에 자른 여인이 팔짱을 푸르고 재중의 한쪽 팔을 잡았고, 재중이 피가 통하지 않는 팔목을 아프다는 듯 정실장이 잡은 팔목을 보며 피곤하단 표정으로 얼굴을 크게 일그러뜨렸다. 그런 재중의 냉담한 표정과 동시에 손목을 자동으로 놓쳐버린 정실장이 텅 빈 눈동자로 재중을 응시하고 있었다. 상당히 충격 먹은 후유증은 꽤나 오래갈 기세였다. " 활동하는데 차질 없도록 이쪽에서 따로 움직일 테니, 변동된 스케줄은 최비서한테 보고해주시고, 당분간은 차량도 이쪽에서 이동할 테니 매번 수고스럽게 벤 집으로 보낼 필요 없어요. " 이런 살벌한 공기 가운데에서 여전히 평온한 얼굴로 궁금한 사항을 묻고 있는 창민의 부은 간댕이가 무서워지는 순간이었다. " 어머님. 이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숙소에서 재중형을 데려가시면.. " 현관문을 지나 내딛는 구두소리가 대리석 바닥에 청아하게 울리고 있었고, 돌아서던 등을 멈추고 다시 창민의 말을 자른 여인이 여유롭게 말을 이어나갔다. " 엄마가 아들 얼굴 좀 본다고 집으로 데려가겠다는데, 더 이상의 부연설명이 필요한가요? " 창민에게는 오래전부터 자신만의 수칙들이 완고하게 존재하고 있어서 그런 고정된 틀을 누군가가 흩트려 놓거나 맘대로 휘젓기 시작하면 부모도 몰라보고 눈이 뒤집힌 상태로 잡히는 대로 주먹질을 하려 들었다. 어느날 우역곡절 끝에 그렇게 말이 많았던 데뷔를 하고나서도 변함없이 많은 구설수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심장이 뛰었다 쪼그라들며 그런 불안함의 연속 속에서 우리들은 이것이 제대로 올바르게 흘러가고 있는지 모두가 혼란스러워할 때 새벽까지 연습을 끝마치고 숙소로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에 창민은 건조한 음성으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 지금 이렇게 순수한 마음이 아닌.. 우리들이 지금 보다도 훨씬 더 어른이 되면 말이예요. 중간에 서로를 업신여기게 되더라도, 중간에 서로를 믿지 못하고 의심을 하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누군가의 잣대에 나약하게 휘말리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아주 많이.. 그러니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많이 빙빙 돌아와도 좋으니까요.. 아주 많이 서로가 방황해 하고 힘들어 해도. 그래도 그 끝에는 형들이랑 제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많이 늦어도 좋으니까 우리들 끝은 함께 시작한 이곳이었으면 좋겠어요. 」 난 창민이 지금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재중의 팔목을 잡으려고 애 쓰고 있는지 말하지 않아도 표정만으로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이건 재중 역시 마찬가지였다. 말없이 창민과 눈을 마주친 재중이었지만, 비록 그게 엇갈린 시선이었을지라도 그가 김재중이고, 심창민이고, 박유천이고, 우리가 인생의 룸메이트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 서로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재중은 쉽게 등을 돌아서 숙소를 유유히 빠져나갔다. 재중은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돌아서서 이곳에 닿을 힘든 여정을 선택했고, 그런 재중의 뒷모습을 붙잡지 않은 채 이곳에서 재중을 기다리고 있을 지금의 우리가 있었다. 이건 정실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날의 초목들도 잠들었을 한밤중 숙소로 돌아가는 어두운 새벽길에는 어김없이 달빛이 비추고 있었고, 모퉁이를 여러 번 돌고 돌아도 우리들의 길을 밝게 비춰주는 그날의 쓸쓸하지만 따뜻했던 달빛을 우리는 아마도 동시에 기억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이 늦어도 좋으니까 끝은 이곳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창민의 간절하지만 진솔한 고백이 내 심장을 아릿하게 쥐고 있는 그런 밤이었다. § 정실장의 기획사 지분 횡령에 대한 협박으로 충분히 법적 효력을 가진 통치자의 확고한 즉, 정실장의 아버지의 명령 앞에 예고된 방향대로 약혼녀가 될 여인을 만난 정실장은 아직도 혼동된 뇌리가 쉽사리 진정이 되질 않았지만, 그 여성 또한 확고하고도 단호한 음성으로 정실장에게 자신의 요구를 당당하게 설명했었다. 어쩌다 이 땅에 던져진 존재들의 억지스럽고 무의미한 만남에 불과했지만, 이미 그 여인은 자신을 마치 정실장의 미래를 도와주기 안성맞춤 유형의 남편을 돕는 배필자처럼 단호하게 자신의 결혼상대를 정해버린 자신의 아버지 선전포고에 대한 방향을 쉽게도 인지하고, 물러설 수 없는 치열한 접전으로 머리를 쓰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이런 식의 약혼을 그리고 모두가 원하는 결혼을 원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일사불란 공식적인 위계질서와 더러운 편법 검사가문의 대를 이을 생각은 양쪽 전부 추어도 없었다는 공통점이 유일하게 그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그런 정실장에게 여성은 일단 급한 불 부터 끄고 보자는 심산으로 정실장에게 예고 없는 약혼을 권유를 했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하게 확고한 의지를 담은 눈빛으로 정실장은 그 여인과 같은 뜻으로 약혼의 숨겨진 트릭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게 비록 재중을 외롭게 만들지라도 언젠가 반드시 치러야할 일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사슬처럼 단단히 발목에 감긴 강제적으로 처분 당해야할 사람처럼 아버지 밑에서 법을 심판하는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지막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방법밖에 선택할 수 없는 자신의 나약한 위치에 다시 한 번 커다란 상실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갑작스럽게 결정된 일본일정은 정실장의 약혼식 때문이었다. 약혼식으로 급하게 해외일정을 잡아 일본으로 떠난 재중은 공항으로 마중도 나오지 못한 채 끼니며 건강이며 스케줄이며 이것저것 세세하게 잘 챙겼는지 체크하는 수화기 너머로 정실장의 걱정이 묻어난 소리에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최대한 밝은 웃음소리로 정실장을 안심시킨 재중이 단단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이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에서 지내는 동안 단 한 번도 정실장에게 전화를 걸지 않았던 재중은 이례적으로 보기 힘든 행동으로 여러 번 주위 사람들의 심장을 위태롭게 쥐어흔들기도 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갔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 빽빽한 일정 속에 쉽게 피로가 몰려 여기저기 정신없이 곯아떨어진 멤버들과 매니저들을 뒤로한채 묵고있던 호텔 테라스로 익숙하게 빠져나온 재중은 서늘한 바람보다 더 날카롭게 가슴을 파고드는 자꾸만 나약해지는 마음을 다시 단단히 붙잡으며 일본 일정을 아무런 무리 없이 해낼 수 있게 도와준 수면제 세알을 아무렇지 않게 입에다 넣고 미지근한 물과 함께 목울대로 쉽게도 넘겼다. 이미 새벽 2시를 향해가는 시간임에도 쉽게 잠이 들지 못한 재중은 테라스 난간에 몸을 기댄 체 어둠이 짙게 깔린 도쿄의 야경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기다렸단 듯이 가디건 주머니로 미세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핸드폰을 들었고, 잘 지내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물어보는 것처럼 쉴 새 없이 핸드폰에서 반짝거리는 발신자의 이름을 본 재중은 이제야 하루일과를 끝마칠 수 있는 사람처럼 순식간에 몰려오는 잠에 취해 침실로 이동했고, 이미 까맣게 죽은 잠잠해진 핸드폰을 두 손으로 꼭 쥔 채 잠이 들었다. 그렇게 열흘 동안을 새벽 2시면 걸려오는 발신자의 이름과 함께 1년처럼 길게 느껴진 여정을 담담하게 이겨내고 있었다. 재중에겐 아름다운 야경만큼이나 아찔한 나날들이었다. 한국으로 귀국하자마자 여기저기서 떠들썩하게 정실장의 약혼식 장면들을 내보내고 있었고, 갑작스런 약혼에 너무 놀라 숨소리조차 내기 힘들었던 창민과 유천과는 달리, 재중의 표정은 섬뜩할 정도로 고요했고 평온해 보이기 까지 했었다. 어찌된 일인지 재중은 일본 일정을 떠나기 전 부터 정실장의 약혼을 미리 알고 있었고, 그 무의미한 약혼식의 이유도 그러한 결정을 내린 어쩔 수 없는 상황 속 중심에서 괴롭게 서 있는 정실장도 어떠한 배경으로 치졸하게 정실장을 몰아세웠는지도 너무나도 상세하게 재중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괴로운 심정을 토해내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했다. 이제는 쓰디쓴 눈물과 살을 저미는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도 배우게 된 재중은 정실장이 생각했던 이 상으로 어른이 되어 있었다. 꼬박 꼬박 정실장님이란 호칭으로 여러 번 정실장의 속을 뒤집은 재중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두워지기는커녕, 이례적으로 잘 챙겨먹지 않았던 아침식사를 시작으로 꼬박 꼬박 엄마가 챙겨주는 값비싼 보약까지 빠짐없이 자신의 건강을 걱정하던 많은 사람들을 뒤로한 채 반전으로 너무나도 잘 지내고 있었다. 그에 반면 하루가 다르게 피골이 상접해 있어서 그나마 작은 얼굴이 거의 반으로 줄어들어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든 정실장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빽빽한 일정들은 칼 같이 전부 잘 소화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재중과의 접촉을 시도했지만, 받지 않은 전화와 스케줄이 끝나면 쏜살같이 집에서 보낸 차량에 몸을 실어 달아나듯 사라지는 재중때문에 정실장의 속은 타들어갔고, 그 만큼 담배량과 두통약 또한 급격하게 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심각하게 야위고 괴로워하는 정실장이었지만, 모두가 걱정하고 위태롭게 느껴져 불안한 건 오히려 재중쪽이었다. 있는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감정을 폭발시키며 역공격을 하는 정실장과는 다르게 재중은 화를 제대로 발산하는 방법을 몰랐다. 이런 분노와 억제라는 악순환이 재중에게 반복되어 정작 가장 화를 내야 할 때에는 소리조차 나오지 못했다. 마음에 담아둔 울분과 정실장의 야윈 얼굴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괴로워하며 수면제의 양을 늘리기 시작한 재중만 존재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새벽 2시마다 전화를 거는 정실장과 그 전화에 하루일과를 끝마치는 재중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난 채 안개가 자욱하고 깊게 피어올랐다. 「 오늘도 잘 자. 형……. 」 § 새벽 3시에 마지막 라디오 스케줄까지 끝마치고 어떤 정신으로 숙소까지 걸어 들어와서 침대에 골아 떨어졌는지 기억조차 안날정도로 누적된 피로는 온 몸이 육체 이탈될 정도로 상당했었다. 하루아침에 전세 역전된 정실장과 김영웅재중이 때문에 이리저리 눈치 보며 역전된 상황 파악하느라, 물과 기름처럼 정실장을 피해 조용히 사라지는 재중을 다시 찾아다니느라, 연구하던 제품에 결과 수치가 생각했던 기대 이상으로 저조했는지 내내 구겨진 인상으로 텐션이 최악으로 가라앉은 심최강창민이 새끼의 인상을 피느라, 씨발 내가 무슨 실권을 찬탈당한 황제의 볼모 처지처럼 지지리도 말도 들어 처먹지도 않는 두 새끼 때문에 어울리지도 않은 고민을 해가며 내 나름대로의 괴로움을 이겨내고 있었단 이 말이다. 가뜩이나 김영웅재중이 새끼는 어린노무새끼 마르코처럼 다 커갖고 엄마 찾아 3만리도 안 되는 거리를 떠나는 지랄을 해싸갖고 살벌한 기운이 감도는 숙소를 쉽게 비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열흘 동안 38선 경계 사이로 애틋한 사랑을 속삭이는 행위를 저지른 상황과는 반전으로 한국으로 귀국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거다. 아니나 다를까 비운 일정만큼 쌓인 스케줄 때문에 오로지 비는 시간은 새벽뿐이라 쉽게 녀석에게 전화를 걸지도 그렇다고 찾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 그저 답답해서 울상이 되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깊게 잠이 들었던 내 귓바퀴 너머로 들리는 벨소리는 20분이 넘게도 끊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고, 어느새 짜증스럽게 고막을 야금야금 괴롭히는 미세한 소리에 몸을 뒤척이다가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손을 뻗어 곧바로 다시 끊을 기세로 핸드폰을 열었다. 그런데 한참 뒤에 들리는 음성에 다시 한 번 몸을 뒤척인 나는 이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잠은 달콤한 만큼 제어가 안 되는 유혹적인 요소임은 분명했다. " ... 유천아.. " 녀석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도 유천이란 호칭이 줄어들게 되었고, 어느새 믹키야~ 혹은 박믹키. 라는 호칭들로 늘어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게 개새끼 부르듯 혀로 아랫입술을 차듯이 쭈쭈쭈~ 부르는 소리로 들려서 존나 열이 받았는데, 어느새 그게 또 적응이 되다 보니까, 유천아 라는 호칭이 굉장히 생소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익숙함은 참으로 지조 없고 간사했다. 졸음이 가득한 귀 너머로 들리는 유천아.. 라는 호칭은 마치 잘못 걸려온 전화만큼이나 어이가 없었고, 순간 유천이는 어떤 빌어먹을 새끼 길래 이 새벽에 전화가 다 오고 지랄이야 라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었다. ' 전화 잘못 거셨습니다 ' 라는 소리와 함께 전화를 끊으려던 내게 불현듯 내 이름이 박.유.천. 이라는 사실을 순식간에 떨어지는 별똥별처럼 잽싸게 깨닫고 있는 내가 있었다. 다시 한 번 졸린 눈을 힘겹게 뜨며 통화가 연결되고 있는 핸드폰의 액정을 바라보았고, 「 주인님 」 이라고 적혀있는 발신자 이름에 다시 한 번 놀란 나는 뾰족한 가시침대에 누워있던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시계를 보았다. 달빛이 부서지는 캄캄한 어둠 속 시간은 새벽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대충 2시간이 안되게 깊은 잠이 들었던 나는 다시 한 번 액정을 바라보았고, 무언가 잘못 들은 사람처럼 다시 한 번 귀를 핸드폰에 가져갔다. " ... 유..천아.. " 그냥 들어봐도 울음이 가득한 음성이었다. 분명 우는 목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아랫입술을 질근 깨물었을 거였다. 순간 꿈처럼 머나먼 이야기처럼 내게 유천아- 라고 애달프게 나를 부르는 녀석의 소리를 실제로 듣게 되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방안을 서성이며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녀석의 부름에 곧바로 대답이 안 나온 이유는 아주 간단하게도 꿈과 현실의 경계선을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 이 상황이 피로에 누적된 달콤한 꿈이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고, 가위에 눌린 사람처럼 이상하게 주둥이가 쉽게 열리지 않기도 했었다. 곧바로 우는 게 힘에 부치기 시작했는지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숨넘어가는 소리를 중간에 낸 녀석이 다시 한 번 울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슴이 철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아찔해졌다. " .. 유천아.. 끅... 너 죽은 거 아니지.. 불 난거 아니지.. 그렇지.. 흐흡흐엉... 빠져 나온 거지.. 흐아아엉... " 갑자기 목젖을 보이며 크게 울음을 터트린 녀석의 목소리에 이제야 몽롱했던 정신이 바짝 차려진 나는 크게 당황했지만 이상하게 나무늘보처럼 행동이 쉽사리 움직여지지 않았다. 방안을 이리저리 서성이다가 순간 손바닥을 들어 얼굴에 여러 번 싸대기를 날렸다. 찰싹 소리와 함께 상황이 인지된 나는 작은 휴대폰을 붙잡으며 녀석을 달래기 시작했다. 난 녀석이 울면 달래는 방법도 울음을 그치게 할 만한 방법도 모르는 그러니까 다독거리는 방법에는 굉장히 서툰 사람처럼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크게 당황해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난 녀석의 울음소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끔찍했다. 정말 온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끔찍했다. 무섭고 당황하면 냅다 소리부터 지르는 내가 참 못났다고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 .. 야야.. 씨발. 새벽부터 왜 울고 지랄이야!!!!!!! 아씨.. 왜 울어.. 울지 마. 울지..마!!!!! " " .. 죽지마아.. 흐아어앙..흑...유천아... 흐흡..히끅... 흐아아앙.. " 울지 말라고 말하는 내 음성을 듣자마자 목소리가 더욱 커진 녀석이 자꾸만 숨넘어가는 소리를 했다. 분주하게 방안에 걸려있던 점퍼를 잡아 급하게 팔을 끼워 넣었고, 눈에 보이는 캡모자를 아무거나 집어 얼굴에 뒤집어썼다. 그리고 급하게 차 키를 챙겨 운동화를 구겨 신고 숙소에서 빠져나왔다. 어느새 익숙해진 직선 도로들이 이상하게 오늘따라 구불구불하게 어려운 길처럼 느껴지는 다급한 느낌이 들었다. 지하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자꾸만 마약 먹은 새끼처럼 떨려오는 손에 짜증이 치밀었고, 보완카드로 문을 열자마자 12층을 향해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내새끼가 부끄럽지도 않은지 아이처럼 목을 놓아 울어버리는 통에 같이 울상이 된 나는 중간 중간마다 울음 속에 섞인 죽지 말라는 말에 가슴이 감당 안 될 정도로 철렁하고 여러 번 내려 앉아 가슴을 여러 번 쓸어내렸었다. 샤키가 죽기 전에도 녀석이 숨넘어가듯 울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상황처럼 깊게 자리 잡힌 녀석의 울음소리가 나는 너무 무섭게만 느껴졌다. 도어락의 비번이 풀리자마자 녀석의 집으로 들어선 나는 온 방의 문이라는 문은 전부 열어져있었고, 테라스의 문마저 활짝 열려진 거실에는 서늘한 새벽 공기가 크게 에워싸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실 한가운데에 자다가 일어났는지 하얗게 질린 얼굴과 새파랗게 덜덜 떨리고 있는 입술과 멍든 몸처럼 추위에 질린 몸이 팬티차림으로 바닥에 앉아있었고,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큰 와이드 화면에는 한참 접전중인 게임경기가 벌어지고 있는 위닝의 장면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흰자가 안보일정도로 새빨개진 녀석의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고, 내 등장에도 여느 때와 똑같이 화면만 응시한 채 게임 속의 주인공처럼 한참 축구에 빠져있는 녀석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눈꼬리에 한가득 고여 있는 눈물은 주르륵 주르륵 고스란히 잘도 녀석의 양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눈물이 게임에 방해되는 듯 귀찮게 눈물을 닦아대는 녀석의 자그만 손이 애처로워서 울컥 소리 내어 울고 싶은 충동마저 일어났다. 녀석이 우는 모습은 정말이지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너무 무섭다. 그냥 그게 너무 너무 무서웠다. 일단 활짝 열려있는 테라스의 문을 꼼꼼히 잠그고 찬바람이 새어나오는 방향을 찾아 여지없이 열려있는 창문들을 죄다 닫았다. 그리고 여전히 눈물을 훔치며 게임에 집중한 녀석의 등 뒤로 두꺼운 이불을 꺼내와 슈퍼맨처럼 내 어깨를 충분히 감싼 채 내 품으로 녀석을 손쉽게 감싸 안았다. 허벅지를 벌려 그 틈 안에 녀석의 엉덩이를 편안하게 자리 잡아주고 어깨에 걸친 이불을 들어 올려 녀석의 몸이 몇 초라도 빠르게 따뜻해질 수 있도록 꽉 껴안았다. 두 팔로 녀석이 숨쉬기 힘들 정도로 허리를 가득 조이며 꽉 안았고, 이런 행동에도 녀석은 불편하지 않단 듯이 버릇처럼 내 가슴에 자신의 등을 기대왔다. 차가운 눈물만큼이나 서늘한 등이 못 본 사이에 많이 야윈 것 같아 녀석의 차가운 목덜미에 입술을 묻고는 한참을 시체처럼 서늘해진 녀석의 몸을 녹여주고 있었다. 마음이 많이 안 좋았다. " 너 악몽이라도 꾼 거야? 응? 그랬어? " " ……. " 몸에 온 기운이 빠진 사람처럼 몸을 축 늘어트린 채 내 가슴에 등을 기댄 녀석의 스틱위에서 현란하게 움직이던 신 같은 손놀림이 느릿해지기 시작했다. 대답하기 싫은 모양인지 고개를 저으며 내 가슴에 등을 더 늘어지게 기대는 녀석이 있었고, 행여나 추울까봐 하얗게 질린 팔뚝을 문질러주고 목덜미에 입술을 비벼주고 한껏 껴안은 팔로 배와 가슴을 문질렀다. 배는 어찌나 홀쭉한지 살점 없이 만져지는 갈비뼈와 골반에 머리가 아찔해질 정도였다. 너 도대체 뭘 먹고는 지낸 거야? " 꿈에서라도 나 때문에 울어주고.. 이래서 다들 벽에 똥칠해서도 꾸역꾸역 사나보다. " " ……. " 초점 없는 동공은 여전히 게임을 주시하고 있었고, 점점 녹기 시작한 몸에 안심이 되기 시작한 나는 녀석의 마른 몸을 다시 바짝 끌어당겨 안은 채 고개를 녀석의 옆으로 돌린 채 넋 나간 틈을 이용해 자기만족겸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겸 과감히 녀석에게 한쪽 볼을 쭉 내밀며 당당하게도 말했다. " 빨리 여기다가 뽀뽀. " 한번은 무언가에 무섭도록 집중한 녀석의 넋 나간 틈을 이용해 여러 번 사심이 가득담긴 행동을 요구한 적이 있었다. 이를테면 녀석을 먹일 밥을 차리다가도 쿵쾅 쿵쾅 뛰다시피 달려들어 볼을 내밀고 다짜고짜 뽀뽀를 하라고 볼을 내밀면 정말로 넋 나간 표정으로 내 볼에 쪽. 아침마다 양치를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처럼 주저 없이 입술을 내주었다. 그게 어느 날은 붉어진 볼이 되기도 하고, 녀석이 자주 놀려먹는 넓은 이마가 되기도 하고, 짭짤할 것 같은 손등이 되기도 했었다. 지금도 고민 없이 내 음성이 고막에 닿자마자 잠깐이지만 홱 고개를 틀어 내 볼에 쪽.. 하니 입술을 맞닿은 녀석이 다시 게임 속으로 빠르게 집중하기 시작했고, 꽉 껴안은 팔을 푸르지 않은 채 여러 번 나는 녀석에게 뽀뽀를 요구했다. 그럴 때마다 귀찮은 내색하지 않고 여러 번 입술을 내민 녀석이 마냥 귀여워서 발이 오그라들기도 했다. 그렇게 한참을 게임에 빠진 녀석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마르기 시작했고, 녀석의 몸은 이상이 없을 정도로 온전하게 따뜻해졌다. 그리고 곧바로 게임이 끝나자마자 기운이 없는 듯 눈을 감고 축 늘어진 녀석이 엄청나게 흘린 눈물만큼이나 힘이 들었는지 쉽게 눈을 뜨지 않았다. 어디서 샘솟는 자신감인지 여전히 파르르 미세하게 떨리는 속눈썹과 함께 꾹 닫힌 퉁퉁 부운 입술위로 내 입술을 가져갔다. 많이도 질근 깨물었는지 열에 들뜬 입술은 보드랍기만 했고, 딸기를 집어삼킨 입술처럼 상큼하고 달달한 향기가 그윽하게 묻어나 있었다. 똑같이 눈을 감고 녀석의 허리를 다시 고쳐 안으며 꽉 껴안은 채 고개를 틀어 더 깊게 녀석의 윗입술과 아랫입술 사이에 내 입술이 알맞게 들어가도록 끼워 맞췄고, 아무소리 없이 공허한 거실로 츕츕- 녀석의 입술을 삼키는 소리가 가득 쌓여지고 있었다. 퉁퉁 부은 아랫입술을 차마 깨물지는 못하고 조심스럽게 빨아올려 여러 번 츕츕 거리는 내 입술이 있었고, 쉽게 열려질 조짐이 없어 보이는 도도한 입술을 그렇게 여러 번 물고 빨아서 내 침으로 범벅이된 녀석의 입술이 귀엽게도 반짝 빛날 무렵이었다. 집요하게 혀로 녀석의 치아를 훑던 과감한 혓망울 끝으로 녀석의 뜨거운 입술이 고스란히 열려왔고, 기다렸단 듯이 미끄러지듯 녀석의 안으로 들어간 열에 들뜬 혀는 여러 번 녀석의 혀를 찾아 바쁘게 움직였고, 이런 키스가 처음인 것처럼 녀석은 익숙하지 않은 생소한 느낌에 잠시 몸을 떨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녀석의 홀쭉해진 배를 쓰다듬어주고 더 마른 허벅지를 부드럽게 문질러주며 괜찮다는 무언의 행동을 전달했다. 어느새 안심이 된 녀석이 조금 편안하게 내 쪽으로 고개를 틀어주는 통에 더할 나위 없이 깊어진 키스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녀석은 키스를 하는 도중 언제 숨을 쉬어야할지 모르는 서툰 사람처럼 호흡에 힘들어 했고, 녀석이 손가락을 움켜쥘 때마다 입을 떼어 여러 번 아랫입술과 윗입술을 쪽 하니 뽀뽀를 해주는 시간으로 녀석의 호흡을 도우는 내가 있었다. 다시 녀석이 호흡에 안정을 취하면 바쁘게 다시 들어가는 입술을 녀석은 매섭게 밀치지 않았다. 그게 너무 설레고 가슴이 벅차올라서 정말이지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지기 시작했고, 참을 수 없이 달콤하고 미끄러지듯 부드러운 녀석의 혓망울에 제어가 힘든 나는 녀석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녀석의 몸을 돌려 세워 마주 보도록 내 허벅지 위로 녀석을 올려놓았고, 이제야 녀석도 자세가 편안해졌는지 당황해 하면서도 자유로워진 두 팔을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허공으로 두 팔을 올려 꼼짝도 못하는 사람처럼 경직되어있었다. " 준수야 사랑해... " " ……. " " 그니까 제발 다시는 나 없는 곳에선 울지 마. " 빈틈도 없이 고스란히 가슴을 맞댄 채 안긴 녀석의 몸이 미칠 정도로 사랑스러웠고, 그만큼 이상하게도 안쓰럽기도 했었다. 녀석의 메마른 심장이 내게 닿아지고 녀석을 향해 세차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이 녀석에게 닿을 때마다 아릿해오는 손가락과 발가락 때문에 더욱더 집요하게 녀석의 뜨거운 안으로 애처롭게 녀석의 혀를 옭아 츕츕 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녀석의 등을 토닥이며 입술을 맞대었다. 이상하게 무언가에 집중하지 않은 녀석의 이와 같은 행동은 착각이라도 좋을 만큼 애정 어린 진지한 키스였고, 내 입술에 위로라도 받듯이 고스란히 내 키스를 받아주는 녀석의 야윈 몸이 그저 사랑스러웠다. 하루라도 어서 빨리 녀석과 애달퍼도 좋으니까 예쁜 사랑이 달콤한 연애가 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그냥 모든 게 좋고 모든 게 안타깝고 강철 심장도 녹여버릴 만큼 사랑스러웠다. 녀석이 다치지 않게 그리고 녀석이 온전히 뻗는 손끝에는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그만큼 생겨나기도 했다. § 키스하다 잠이 들 수 있다는 사실을 녀석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된 나는 녀석의 축 늘어진 몸을 한참동안을 껴 안은 채 큭큭 거리며 미친 사람처럼 웃어야만했다. 그렇게 모든 힘이 다 빠져나간 듯 제 몸에 제가 지쳐 잠이든 녀석을 안아 올려 침대로 데려가 녀석이 가장 편하게 잘 수 있도록 내 목 언저리에 녀석의 얼굴을 맞대어 가슴위로 녀석의 몸을 올려다 주었다. 편안한 듯 새근새근 잠이 든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곧 머지않아 피곤했던 몸의 피로가 다시 몰려오면서 순식간에 잠이 든 내가 있었다. 새벽 내내 한 키스 생각에 꿈에서도 방실방실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팔불출처럼 쳐웃고 있을 내가 보였다. 그런데 지금 이게 뭐지? 지금은 뭐랄까 무언가가 내 배위에서 무거운 아령을 올린 것처럼 진득한 무게에 숨을 쉬기가 힘들어지기 시작했고, 중간 중간마다 무게가 들썩이는 통에 무겁게 내려앉았던 눈 커플이 힘들게 열리자마자 난데없이 찰싹 찰싹 양쪽 볼을 한차례씩 쓸고 지나가는 매서운 손놀림에 존나 놀라 눈을 번쩍 떴다. 뭐야, 너 거기서 뭐하냐? 분명히 내 가슴위에서 새근새근 순수한 아기마냥 얌전하게도 잠이든 녀석이 어느새 내 배위로 올라 앉아 눈을 치켜뜨고 나를 째려보며 화가 난 고양이처럼 긴 손톱을 이용해 내 얼굴을 할퀴어대는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이유도 모른 채 일어나자마자 싸대기를 맞은 나는 아직까지도 어리둥절해 하며 녀석의 매섭고 서늘한 동공을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받아내야만 했다. 가득 쌓인 분노가 쉽게 삭혀지지 않는 모양인지 녀석은 다시 한 번 씩씩 거리며 눈을 매섭게 뜬 채 나를 째려보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조그맣지만 얇은 녀석의 손바닥이 허공위로 높이 올려 세워졌고, 아직까지 아픔이 가라앉지 않은 나는 벌떡 상체를 세워 내리 찢듯이 내려오고 있는 손을 다행히도 잡아 세웠다. 씨발. 생각해보니까 억울한 거다. " 씨발새끼야 왜 때려!!!!!!!!!!!!!!!!!!!!!!!!!!! " 녀석이 시끄럽단 듯이 잡힌 손을 확 빼서 두 손으로 자신의 고막을 보호하듯 가렸다. 내 고함은 침이 사방으로 튈 정도로 엄청났고, 짜증스럽게 눈살을 찌푸린 녀석이 바로 코앞에 앉아있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가득 잡은 채 마치 내 얼굴이 사포라도 된 것처럼 이리저리 구겨지게 쫀득하게 존나 아프게 살점들을 꼬집고 잡아 세웠다. 잠이 덜 깨 반응이 느린 내 무신경한 신체는 10초가 지나서야 비로소 올라오기 시작한 엄청난 고통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내 무릎위에 앉아있는 녀석을 밀치고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고 엄청난 고통에 숨막혀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씨발 아아악아파!!!!!!!!!!!!!!!! 엄청난 괴성은 베게에 애처롭게도 파묻혔고, 이미 홀랑 침대에서 내려가서 팔짱을 낀 채 아무 잘못도 없단 듯이 나를 째려보고 있는 녀석을 향해 상승된 분노의 게이지를 표출하는 내가 있었다. " 그냥 박유천님 얼굴이 보고 싶었다고 말을 해. 개새끼야!!!!!!!!! 내 얼굴 존나 비싸거든???????? " 녀석이 우습다는 듯이 눈을 치켜뜨더니 콧방귀를 끼며 삐딱하니 선 자세로 내게 말했다. " 너. 손가락이 부러졌냐? 왜 못 온다고 전화를 안하고 지랄이야!!!!!!!!!!!!!!!!!! " 뭐야 씨발놈아 언제 적 이야기야. 4일 지난 이야기를 왜 지금 해! " 개새끼. 네가 먼저 하면 되잖아!!!!!!!!!!!!!!!!!!!!!!!!!!!!!!!!!!!! " " 씨발새끼. 니가 기다리라 매!!!!!!!!!!!!!!!!!!!!!!!!!!!!!!!!!!! " 새벽의 달콤한 키스는 꿈이라고 생각되는 순간이었다. 나 진짜 쟤랑 키스한 거 맞나. 존나 씹어 삼켰는데. 입술 보니까 퉁퉁 부었는데 나도 부었나? 순간 입술에 손을 올리고 이리저리 만져보는 내가 있었고, 갑자기 입술을 만지는 나를 보며 어이가 없단 듯이 헛웃음을 날리던 녀석이 나를 병신처럼 쳐다보기 시작했다. 4일전에 새벽이라도 집으로 가겠다고 먼저 자면 죽여 버릴 기세로 녀석에게 말했던 것은 기억이 났는데 녀석의 말대로 또 상황도 그러했고, 녀석과 통화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이상하게도 없었다. 녀석은 마치 4일을 꼬박 천둥번개가 요란한 철렁히는 바다 속으로 고기를 잡으러 떠난 어부를 기다렸던 청승맞은 애인처럼 억울하단 듯이 나를 째려보며 삭혀지지 않는 분노에 씩씩 거리고 있었다. 순식간에 제 잘못을 뉘우치고 기가 죽은 나는 연달아 맞은 싸대기와 사포놀이도 잊은 채 배시시 촐싹맞게 일단 웃었다. 누가 그랬다. 웃는 얼굴에는 침 못 뱉는다고. ..... ....... ........ 씨발 어떤 호로자식이 그딴 속담을 만들고 지랄이래????????? 저 새끼는 웃는 얼굴에 발길질하는 새끼였다. 때릴 기세로 다시 불끈 쥔 주먹을 머리위로 높이 든 녀석의 손에 놀라 눈을 감고 이불 안으로 후퇴한 내가 있었고, 어느새 침실에서 나간 녀석은 이미 욕실로 들어간 후였다. 조그만한 새끼가 손가락 마디마다 칼심을 박아댔나, 손이 존나 매웠다. 달콤했던 새벽의 기억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씨발 진짜 존나 달았는데 난 도대체 뭘 빨아댄거지... 흐흐흐 그런데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왜 이렇게 주체가 안 되지 흐흐흐.. " 준수야 내가 볶음밥 해줄게!!!!!!!!!!!!!!!! " 말을 하자마자 욕실 문을 거칠게 열었고 한가득 입안에 치약 거품이 하얗게 올라오고 있는 녀석이 나를향해 몸을 돌려 홱 째리더니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였다. " 느으가트웅 세기넌 파압도 초머그마. 쉽빠노머세쿠이야아!!!!!!! " (너 같은 새끼는 밥도 처먹지 마. 씨발새끼야!!!!!!! ) 도대체 뭐라는 거야. 하이쿠우.. 우쭈쭈쭈 귀여워라. 웅얼거리는 입술을 지그시 바라보며 다시 헤실 헤셀 웃음이 새어나온 나는 병신 같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녀석에게 캐 다정하게 말했다. " 응!!!!!! 알았어!!!! 존나 맛있게 해줄게!!!!!!!! " 나를 요양원에 처넣을 기세로 어이없이 바라본 녀석이 기어이 욕실 문을 쾅 닫았고 샤워하는 소리가 사랑가처럼 들려오는 순간이었다. 덩실덩실 넓은 주방을 돌아다니며 아침밥을 준비하는 내 뒷모습이 존나 멋져 보이는 순간이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 너무 젠틀맨이야. 존나 개간지!!!! §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각자 개인스케줄로 시간이 통 맞지 않아 매번 약속이 미뤄지게 되었는데, 운 좋게 동일한 날짜에 오프가 맞춰졌고, 거의 두 달 만에 만난 녀석들은 여전히 빽빽한 스케줄과 매니저들을 까대느라 분주하기도 했었다. 스케줄이 있을 때 빼고는 보름동안 개인적으로 대화하기가 여간 힘들었던 재중 또한 이 자리는 빠질 수가 없어서 새벽까지 이어진 자리였지만 다행히 나와주었다. 재중 역시나 오랜만에 만난 녀석들이 반가운지 평소 입에 대기도 드문 칵테일에 손을 대기도 했었다. 다행히 야금야금 마시기 시작해서 금방 술이 달아오르지는 않았지만, 기분 좋게 적당 선을 유지하면서 마시는 모습이 고마워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중간 중간 하고 있는 드라마의 촬영 에피소드부터 존나 사이코 유형의 연출자를 시작으로 그동안 듣지 못했던 엄청난 말들이 오고가고 있었고, 중간에 궁금한 건 못 참는 현중이 눈치 없게도 재중에게 정실장의 약혼녀 이야기를 꺼내는 통해 한동안은 룸 안에 정적이 맴돌기도 했었다. 그리고 마치 대략 스타덤에 오른 것처럼 여러 번 화제인물이 되어버린 준수의 이야기를 꺼내면서 얼굴 한번 보고 싶다는 녀석들의 애원에 콧방귀를 뀌며 ' 그 새끼는 내가 불러도 안나와. ' 라고 단박에 거절을 했다. 그런데 가죽보다도 질긴 새끼들이 집요하게도 여러번 불러서 같이 놀자고 기름종이처럼 얇은 내 귀를 괴롭혔다. 그럴 때마다 귀엽다는 듯이 여러 사람들한테 만져지는 녀석의 얼굴이 얄미워져서 단호하게 거절을 했다.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기분 좋게 얼큰하게 취기가 올라오자 기분이 좋아진 나는 2차를 외치며 잠시 화장실로 자리를 비웠었고, 어느새 다시 룸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내 핸드폰을 들고 흠칫 놀란 듯 테이블 위에 다시 내려놓은 녀석들이 어색한 썩소를 날려대며 하하하 웃고 자빠졌다. 미친놈들. 양주가 독한가 왜 저래.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룸 문이 벌컥 열려졌고, 그 문사이로 등장한 녀석은 평소에 즐겨 입던 짧은 곰돌이 반바지 차림에 폼이 큰 티니위니 곰돌이가 크게 박혀있는 후드 티셔츠에 맨발로 스니커즈를 급하게 신은 채 머리에는 물이 뚝뚝뚝 떨어지는 광경으로 짜증난다는 듯이 떨어지는 물을 손으로 흐트러뜨리며 슈퍼맨처럼 등장했다. 남들이 흔히 말하는 이런 럭셔리 사적 모임 F4를 단순하게 게임에서 수비형 프로토스의 단축키 F4활용쯤으로 레벨을 상당히 낮춘 녀석은 테이블위에 놓여 있는 술병들과 얼큰하게 취한 사내 녀석들을 아래로 내려다보듯 우습게 쳐다보며 팔짱을 끼기 시작했고, 도무지 녀석이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의아해진 나는 눈깔을 돌려 현중과 승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숨길 수 없는 본능처럼 눈가를 휘어가며 살살 웃기 시작하는 녀석을 보자마자 벌떡 일어난 나는 녀석에게 부연설명을 하기 바빴다. 아니 씨발 내가 누구랑 바람나서 옆구리에 여자 끼고 논 것도 아닌데 왜 화난 얼굴이야. 인상 펴! " 야 김준수. 여기 왜 왔냐? " " 어떤 개새끼가 너 주워가래. 술 취하면 부모도 몰라보는 개자식이라고 얼른 치우래. " 고개를 홱 돌려 녀석들을 바라보자 예상외로 거친 직방 대답에 오히려 지레 놀란 녀석들이 덜썩 엉덩이를 들어 손사래를 치기 시작하며 붉어졌던 얼굴이 사색이 되기 시작해 당황해 했다. 내가 말했잖아. 웃는 모습이 전부인 순수한 아이는 아니라고 새끼들아. 아주그냥 특수반 어린이한테 혼구녕이 나야 정신 차릴 테야? " 아.. 아니에요. 아닙니다!? 그냥 형. 술 좀 취했으니까, 오실 수 있느냐고 정중하게 물어본 게 전부예요! " 급하게 택시를 잡아타서 부리나케 달려온 녀석이 순간 냉큼 고맙고 자꾸만 손가락이 간질간질 거려서 화낸 얼굴을 좀 해줘야 쓰겠는데 그게 자꾸만 엇나가서 병신처럼 다시 웃기 시작한 내가 녀석을 불렀다. 자꾸만 머리카락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짜증스럽게 머리카락을 손으로 툭 쳐대며 자리를 이동했고, 이동하면서 썩소를 날리고 있는 녀석들에게 참~ 무서운 호랑이처럼 인상을 팍 쓰고 노려보았는데 그게 녀석들에게는 앙칼지고 도도한 고양이로밖에 안보여서 다들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입술로 막아서고 있었다. 씻고 있던 도중에 연락을 받았던 모양인지 녀석이 사용하는 복숭아향 바디클렌저향이 내 후각을 자극시켰다. 그리고 지나가면서 보이는 살짝 양쪽 볼 위로 홍조 끼가 보이는 재중을 보자마자 고사리처럼 작은 손을 흔들며 ' 재중아 앙녕? ' 이라고 초딩스럽게 인사를 했고, 그런 녀석이 귀여운 듯 같이 눈을 휘어가며 웃음으로 인사를 보답한 재중의 눈커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졸음이 몰려오고 있다는 표시였다. 곧바로 가까이 다가온 녀석의 팔을 붙잡아 옆에 앉혔고, 마른 수건 좀 갖다달라는 이상한 주문에 어리둥절한 웨이터가 곧바로 마른 수건을 갖다 주었다. 녀석의 몸의 방향을 내 쪽으로 틀어 앉힌 다음에 익숙하게 녀석의 머리를 부드럽게 말려나가기 시작했고, 아직 졸린 기운이 가득한 녀석이 칭얼거리듯 춥다고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마치 호랑이가 두발로 서서 조련사가 던진 건방을 빙그르르 돌면서 받아 처먹은 광경처럼 나와 녀석을 이리저리 신기하게 바라보기 시작한 녀석들은 한참동안을 탁아소안의 재밌는 구경처럼 나와 녀석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 씨발새끼는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점퍼하나 없이 후드티에 입고 있었던 반바지 차림에 어이없는 판단력에 술이 확 깨기 시작한 나는 두 손을 모아 조금이라도 뜨겁게 호호 입김을 불어 차갑게 얼어붙은 녀석의 양쪽 허벅지를 슥슥 문질러 주었다. 그러자 가만히 앉아있던 녀석이 손가락으로 종아리며 발목이며 무릎이며 여러 군대를 자연스럽게 가리켰고, 분부대로 손바닥을 분주하게 옮기는 나를 보며 기가 찬단 듯이 헛웃음을 날리고 있는 녀석들이 기어이 참고 있던 웃음을 터트리며 울고 자빠졌다. 씨발새끼들아 그래 맘껏 웃거라. 차라리 심창민처럼 재수 없게 웃음 참지 않고 속 시원하게 웃는 너희들이 더 사랑스럽다. " 정 추우시면, 이거 쭈욱 들이키세요. " 차가워진 몸을 이리저리 녹여주느라 정신이 없었던 나는 현중이 건넨 잔이 폭탄주라는 사실도 잊은 채 녀석의 몸으로 집중하고 있었고, 많이 추웠는지 넙죽 잔을 받아 한 번에 들이킨 녀석이 다 비우고 나서야 술이라는 사실이 인식되었는지 테이블 위에 놓인 방울토마토를 하나 집어 아무렇지 않게 여러 번 씹어 삼키며 쓰디쓴 속을 달래고 있었다. 어느 정도 머리가 말려지고 신기하게도 갑작스레 얼굴과 온 몸이 발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한 녀석의 모습을 이리저리 돌아가며 바라보는 내가 있었고, 먹은 즉시 반응하는 준수의 몸이 신기하단 듯이 다시 잔을 채워 준수에게 내미는 녀석들의 신난 손이 보였다. 곧바로 녀석이 다시 물처럼 큰 잔을 한 번에 집어 삼켰고, 그것이 폭탄주란 사실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곧바로 잔을 빼앗기도 전에 이미 두잔 째 폭탄주를 삼킨 녀석은 갓 구워진 등터진 새우처럼 아주 곱게도 달아올랐다. 「 약속이 생겨서 집에서 나가려고하는데, 우리 샤키가 꼬리 살랑 살랑 흔들면서 앞 발 들어서 나한테 매달려서 코에 뽀뽀두 해주고 그랬는데에.. 술 먹고 집에 들어오니까, 이빨하구 발톱 내밀구 물어뜯어서 죽일 것처럼 엄청 짖어댔어. 」 난 녀석이 지난 날 내게 귀띔해준 술버릇의 의미를 이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충견이 사냥개로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놀랍게도 참으로 여러 가지였다. 녀석은 순박한 얼굴과 아기같이 순수한 눈웃음과 번지르르하게 침이 묻어 반짝이는 앵두같이 작은 입술을 아무런 미화 없이 그대로 내뱉었다. 마치 정실장의 술버릇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평소에 말 수가 적은 승현이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 야! 짐승같이 생긴 꼭대기야! 시끅.. 흐끅! 헤끅.. " 이것은 말이 아니라, 휘황찬란한 딸꾹질 소리였다. 본인이 낸 소리에 본인이 웃긴지 스스로 웃으면서 딸꾹질을 하는데 아예 룸 안에 있던 모든 녀석들이 팔짱을 끼고 그런 녀석을 재밌게 쳐다보고 있었다. 돈 걷고 싶어졌다. 재주는 돌고래가 부리고 돈은 내가 갖고. " 너어는 왜! 우리 육천원이랑 너냐!!! 고작 육천원 새키 동정 하냐 시파노마!!! " 저 새끼가 진짜 돌았나. 누가 육천원이야 이 미친놈아!!!!! 하늘이 빙글빙글 돌고 땅바닥이 지진이 났다고 이리저리 자리를 이동해 가며 돌아다니는 정신없는 녀석 때문에 순식간에 룸 안이 탁아소로 변한 것처럼 응애 응애 소리가 환청처럼 울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녀석을 보고 웃기다며 심창민처럼 눈물을 흘리고 웃어대는 현중이 새끼에게 다가간 녀석이 다시 앙증맞은 손가락을 녀석의 면상에 대고 가리키며 다시 한 번 미화 없는 말로 일명 관객들을 카리스마 있게도 압도 시켰다. " 야! 너어! 핫케익은 왜 부풀어 오르질 않아서 화제가 된거양!!?? " 배를 잡고 실신할 듯 웃던 현중이 진지하게 웃음을 멈추고 준수에게 신중하게 대답했다. " 핫케익이 부풀어 오르지 않다니 뭔가 점점 재미있어 지는데요? " 옆에서 시크한척 얌전히 술잔을 기울이던 꼭대기 승현이가 옆에서 현중을 거들며 말을 이어나갔다. " 혹시 베..베이킹 파우더? " 아차! 하고 무릎을 친 현중이 다시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 그래~ 그거!! " 그냥 빗자루 들고 와서 여기 있는 새끼들 몽땅 쓰레받이로 쓸 수 있으면 그러고 싶다고 생각되었다. 녀석과 함께 술이 얼큰하게 취한 녀석들은 1분마다 팡팡 터지는 녀석의 재미난 행동에 배를 움켜잡고 혼이 나간 사람들처럼 즐거워했다. 이런 왁자지껄 정신병동스러운 분위기에서도 꿋꿋하게 다소곳이 눈을 내리깔고 새침하게 잠이든 김영웅재중이 새끼가 있었다. 새근새근 잠이 든 모습을 보면 여전한 녀석인데 요즘 가끔씩 서늘하게 내뱉는 녀석의 음성을 들을 때마다 소름이 여러 번 돋아야만 했었다. 계속 정실장의 전화를 피하던 재중이 우연찮게도 변동된 스케줄로 기획사에 잠시 들렸다가 회의실에서 금방 나온 정실장과 만난 적이 있었다. 당황해 하면서도 같은 표정으로 재중이 동선을 그대로 주시한 정실장이 기어이 참지 못하고 재중의 팔목을 잡아 세우며 이야기 좀 하자고 애원하듯 말했지만, 그런 음성 하나에 눈 하나 깜짝 안하던 재중이 무시무시하게도 그런 정실장의 팔을 날카롭게 탁! 소리와 함께 치고는 눈을 똑바로 응시한 채 앙칼진 목소리가 찢어지듯 고요하게 울려 퍼졌었다. 「 정실장님. 지금도 충분히 꼴사나우시니까, 이제 그만 고집 부리 세요. 아주 못 봐주겠으니까. 」 § 술에 취해 잠이든 준수를 자꾸만 만지려고 드는 녀석들을 심각하게 경계한 채로 안 그래도 잘난 새끼들을 쫓기듯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먹지 말라는 술 기어이 여러 번 처먹더니 머리가 어지러운지 칭얼거리기 시작한 녀석이 금세 취기에 지쳐 얌전히 내 무르팍 위에서 잠이 들었다. 한쪽에선 물 한 방울도 손에 묻히지 않고 곱게 자란 김영웅재중이 선하게도 잠이 들었고, 어떤 종족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희귀한 녀석이 오두 방정스럽게도 얇은 다리를 쭉 벌리고 갓 태어난 아기처럼 음냐 거리며 장난스럽게 잠이 들었다. 뭔가 마음이 풍성해지는 아빠처럼 마음이 풍요로워지기 시작했다. 일단 녀석을 데리고 집으로 가야했고, 기사 동반 없이 홀로 나온 재중이 너무 난감했지만, 오해가 결국 기회가 될 수 있는 희망아래 정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벌써 시간은 새벽 3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잠이 들지 않았던 모양인지 피곤함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임은 분명했지만, 또렷한 발음이었다. 다행히 정실장은 아직까지도 사무실에 남아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고, 재중이 좀 데려가란 말에 이쪽으로 바로 움직이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가 급하게 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실장이 도착했고, 여전히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차려입은 블랙슈트와는 다르게 안색은 얼음장처럼 창백했고 눈동자는 계속 불규칙하게 흔들렸지만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면서 재중을 바라보고 있는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덩달아 마음이 함께 무거워지는 순간이었다. 확연하게 늘어난 식사량과는 다르게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가는 재중과 제대로 된 수면상태 없이도 빽빽한 일정을 고집 피우면서 소화해 나가고 있는 정실장은 마치 재중과 동일한 위치에서 으르렁 거리듯 녀석을 훈계하듯 그렇게 자신의 몸이 망가질지언정 그 속도를 낮추지도 멈추지도 않았다. 누군가가 먼저 쓰러져야 끝나야할 싸움처럼 잔인하게도 길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끝나지 않을 싸움이 아니라 누구보다 서로에게 먼저 닿기 위해 아등바등 발악하는 모습으로 느껴져 그 애절함이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졌다. 상당히 불편한 자세로 잠이 들었는지 버릇처럼 앓는 소리를 내는 재중에게로 다가간 정실장이 익숙하게 슈트 상의를 옆으로 벗어 올리고 재중의 뒷목을 손으로 받친 채 고개가 꺾이지 않도록 조심히 어깨와 허리를 잡아 앞으로 안아 올렸다. 그러자 꿈틀 꿈틀 움직이던 몸이 익숙한 체향을 찾아 몸 깊숙이 파고들기 시작했고, 편안하게 잠을 이어서 잘 수 있도록 야윈 등을 여러 번 토닥이는 손길에 사뭇 애절함이 묻어 나왔다. 그렇게 여러 번 등을 토닥이며 잠이 깰세라 재중을 안정 시킨 정실장이 슈트를 집어 환하게 비춰오는 조명을 가리듯 머리위로 덮어주었고, 다시 한 번 편하게 안아 올리며 ' 연락해줘서 고맙다. ' 라는 말과 함께 유유히 룸에서 사라졌다. 이상하게 보고만 있어도 내가 다 가슴이 저릿해서 개구쟁이처럼 귀엽게 잠든 녀석의 붉게 달아오른 볼을 이유 없이 만지작거렸다. 근데 이 새끼 음냐 거리면서 침까지 흘린다. 더러운 새끼. 웃음이 쉽게도 다시 흘흘 나오기 시작했고, 주먹을 꼭 쥐고 잠이든 녀석의 손을 잡으며 아까부터 하고 싶었던 말들을 조용히 전해보았다. 왠지 가슴이 많이 뭉클했다. " 준수야. 우리도 저렇게 사랑하고 있는거 맞겠지? " | 나 없는 곳에서 네가 우는 모습 상상하는 거, 그거 얼마나 끔직한 건지 넌 알고 있었어? | My Melody w. 킵 * * * 달빛이 훤한 새벽 정실장은 마른 갈댓잎처럼 서걱이는 마음을 억지로 다스리며 부쩍 핼쑥해진 얼굴로 곤히 잠든 재중의 얼굴을 보며 차에 몸을 실었다. 혹시라도 집으로 데려가는 도중 잠이라도 깰까봐 염려스러웠던 정실장은 조용히 대리기사를 불렀다. 재중의 집으로 가는길 내내 행여라도 잠에서라도 깨어날까 그렇게 되면 혹시라도 목 놓아 울어버리거나 앙칼지게 화를 내지는 않을까 하고 그동안에 담아두었던 재중의 냉정한 행동들이 정실장의 나약해진 마음을 더욱 무섭게 몰아세우고 있었다. 재중의 뜨거운 입김이 고스란히 전해질만큼 앞으로 바싹 안긴 재중은 버릇처럼 빈틈없이 안겼음에도 불구하고 칭얼거리며 미세하게 미간에 주름이 잡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다독거리듯 재중의 등을 여러 번 쓸어내려주며 안정을 시키는 부드러운 손길이 익숙해보였다. 유난히 짧게 느껴지는 새벽이 걷히고 아침이 밝아오는 것이 두려웠던 정실장은 아침이 밝아오는 새벽의 끝자락에서 강렬해지는 찬란한 빛만큼이나 가슴이 뜨겁게 달려오는 것을 느꼈다. 늦은 새벽이었지만, 깊이 잠든 재중을 안아 올려 집 안으로 들어섰고, 초인종이 울리자마자 기다렸단 듯이 짙은 색 지붕으로 덮인 화려하고 거대한 집의 현관문이 자동센서처럼 보기 좋게 장황하게도 열렸다. 재중을 기다린 관리인의 도움으로 무난하게 재중을 2층 방으로 데려갈 수 있었다. 재중의 방은 남자 아이의 방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낮에는 방 곳곳마다 창문으로 새어 나오는 기분 좋은 자연 채광은 정실장을 숨 막히게도 했었다. 사랑스럽고 아기자기한 세상처럼 깜찍한 장식의 소품을 시작으로 천장과 벽지, 거기에다가 가구란 모든 가구는 흰색으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마치 딸들이 사용하는 방처럼, 아기자기한 소품과, 인형, 액세서리 등이 즐비하게 정리정돈 되어있었다. 그리고 천장에 은은하게 달려있는 조명과는 달리 방안은 환하게 밝았다. 방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밝은 빛에 다시 미간에 주름이 잡힌 재중이 불편한 듯 정실장의 팔 안에 가둬진 손가락을 꿈틀 거려 꽉 쥐고 있던 정실장의 와이셔츠를 다시 움켜쥐었다. 그런 재중의 등을 다시 부드럽게 토닥이며 깔끔한 흰색 침대에 재중을 유리알처럼 조심스럽게 눕혔다. 속눈썹을 찌르듯 내려온 앞머리를 부드럽게 뒤로 쓸어주며 하얀색 시트를 목까지 덮어주었다. 그렇게 한참동안을 그동안 보지 못해 쌓인 간절한 마음만큼이나 오랫동안 재중이 자는 모습을 지켜보던 정실장의 시선으로 가장자리가 헤지고 떨어져나갈 정도로 닳은 악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갈고리처럼 길고 마른 손가락 한쪽은 재중의 가슴 부근을 일정한 간격으로 깊은 잠이 들 수 있도록 토닥이고 있었고, 나머지 한쪽 손으로는 어느새 여러 번 만지작거리고 여러 번 수정이 된 것처럼 많이 닳은 악보 한 장을 집었다. - 잊지 말아줘요 - 침대에 앉아 당신을 생각 했어요. 만날 수 없어도 괜찮아요. 보고 싶다는 그 마음만으로도 괜찮으니까요. 강하게 남아 있는 기억, 당신으로부터의 짧은 메시지가 슬프게 가슴을 조여오지만, 영원한 행복을 제가 언제까지라도 지켜드리고 싶어요. 언제나 길에서 당신의 그늘이 느껴졌어요.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해요.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기를... 깊이 입은 상처, 알지 못하도록 웃고 있었던 당신을 언제까지라도 소중히 할 테니... 계속 외칠 거예요. 흔하디흔한 말이라고 해도 당신과 맞닿았던 밤이 두려워질 만큼.. 피어오르는 향기에 다시금 깊어지는 마음..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도록 더 꼭 마주잡은 손 놓치지 않도록.. 바람이 되어 꼭 안아 주고 싶어요. 당신이 있는 세상으로 얼른 날아가고 싶어요. 보고 싶어도.. 보고 싶어도.. 기다릴 테니까.. 기다릴 테니까... 여기에 있을게요. 잊지만 말아줘요. 너덜너덜하게 닳아 다 완성된 악보 밑으로 적힌 가사가 정실장의 가슴속으로 구멍이 뚫리고 서늘한 가을바람처럼 들어와 앉았다. 다 완성된 가사 밑으로는 몇 번씩 썼다가 지우개로 지웠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마치 지져놓은 것처럼 가슴 저 깊은 곳의 선명한 자국처럼 그렇게 남아있었다.「 우리 윤호형 꽉 한번 안아주고 싶다. 」한참동안 악보를 여러 번 읽어 내린 정실장은 재중의 침대 맡에서 몸을 둥그렇게 말아 주저앉은 채 얼이 나간 듯 멍하니 굳어있었다. 출근시간이 임박해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선 정실장은 재중을 지금 눈앞으로 보고 있어도 애틋한 그리움이 몰려와 두 주먹을 쥔 손등으로 굵은 핏줄이 잠시 튀어나왔다. 곧바로 곤히 잠든 재중의 이마 위로 짧게 입술을 맞대고는 혼잣말처럼 나지막이 말했다. " 지금도 나는 네가 너무 보고 싶다. " § 새벽에 먼저 보낸 차량으로 택시 승강장으로 이동하는 구불구불한 비탈길은 정실장의 발길을 느긋하게 잡아 놓았다.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말없이 턱을 어루만지고 있을 때였다. 한적한 비탈길을 내려가던 중간 정실장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 클락션 소리가 들려왔다. 곧바로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 정실장의 시선 끝에 성공과 함께 주어진 고급 승용차처럼 익숙하게 검정색 차 창문이 열렸다. 그리고 열려지는 창문 사이로 커리우먼 같은 정장을 입은 여인이 웃음꽃을 활짝 피우며 앉아있었다. 아이를 낳은 사람이라고는 보기 힘든 동안임은 분명했다. 고급스러운 까만색 뿔테 안경에 재중과 비슷한 흰색 피부가 지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면서도 아무것도 만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린 머리는 섹시함까지 자아했다. 아침이면 지겨운 기분으로 습관처럼 일어나 일을 하러 가고 출근길에는 얼굴에 웃음 하나 찾아 볼 수 없는 사람들과는 다르게 여인은 하루하루를 귀중하고 설레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처럼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어이~ 멋진 오빠! 뭐하고 서 있어? 어서 타지 않고? " 대답 대신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은 정실장이 뒷좌석에 몸을 실었다. 곧바로 차 안에서 울리던 첼로 협주곡의 선율과 함께 차가 미끄러지듯 구불구불한 비탈길을 유유히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보고 있던 여러 종류의 아침 신문을 옆으로 치운 여인이 정실장의 핼쑥한 얼굴을 보고는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정말 자기 자식처럼 진심이 묻어나는 음성으로 밥은 잘 챙겨먹고 다니냐고, 잘 생긴 얼굴이 이게 뭐냐면서 크게 부풀려서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들의 대화는 오래 알고지낸 사람들처럼 정이 묻어 나왔고 그만큼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그리고 어색한 점 하나 없이 오래간만에 만난 사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다정한 부분도 포함되어있었다. 정실장과 마찬가지 입장으로 갑자기 고집을 피우듯 도망가기 바쁜 재중을 엄마 역시도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처음으로 힘들다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유도 설명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 꾹꾹 담아두는 아들이 안타까워 급하게 한국으로 귀국을 했지만, 보름 동안 아들을 지켜본 여인도 아들의 깊은 속내를 알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일을 하다가도 답답한 마음에 잠시 상념에 젖어드는 시간이 늘어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런 아들의 마음을 재촉할 수는 없었다. "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는 것 같고, 평소처럼 애교도 부리고~ 잘 웃기도 하고 그래. 그런데 얄밉게 우리 아들은 살은 안찌더라? 그거 은근히 질투 나는 거 정군은 알아? " 친구처럼 서로 닮은 점들이 배어 있는 여인의 말에 다시 한 번 미소를 머금은 정실장이 입을 열었다. " 일본에서도 불면증 있었다는 소리는 못 들었거든요. 그런데 다른 이상한 점들은 없었구요? "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한 손으로 우아하게 내려간 뿔테를 다시 고쳐 올리며 여인이 말했다. " 이상한 점이 없어서. 그게 더 이상하다니까? 몇 일전에 정군 기획사 지분 관련된 이야기를 한 적은 있었어. 걱정은 되는지 넌지시 물어보던데 효력 없는 지분이냐고? " " 그랬어요? " " 응~ 그나저나 기획사 문제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하여간 정군도 고집이 여간 아니야. 이번엔 내가 도움 될 수 있게 기회 줬으면 좀 좋아? 은근히 아니 대놓고 그거 재수없는 거 알아 몰라? " 팔짱을 끼고 얄밉지 않게 흘기듯 째려보는 여인에게 다시 한 번 가볍게 목례를 한 정실장이 감사하단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 다행히도 문제되었던 해외 판권이 이번에 잘 해결이 되었어요. 그래서 이번 계기로 인수결정 내렸어요. " " 그래. 엄밀히 따지면 그쪽이 더 빠르겠네. " 어느새 기획사 앞까지 도착한 차가 부드럽게 주차장에 주차 되었고, 손목에 찬 시계를 내려다 본 여인이 정실장의 마른 어깨를 안타깝게 툭 툭 치며 말을 이어나갔다. " 살 좀 찌워보는 게 어때? 영~ 얼굴이 안살아. 붙어있는 근육이 아깝다니까? 내가 재중이 집으로 데려가서 지금 시위라도 하고 있는 거야 뭐야~? " 피를 나눈 형제처럼 서로의 건강을 먼저 생각하는 둘의 애틋한 사이를 시샘하듯 얄밉지 않게 정실장을 쏘아붙였다. 하지만 미소를 머금은 채 차에서 내린 정실장의 길게 뻗은 다리에서 그전과 다른 진중한 책임감이 묻어나왔고, 곧바로 차 문이 닫히자마자 여인에게 겸손하게 묵례를 한 정실장에게 여인이 다시 한 번 창문을 내려 애정 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 정군 없었으면 우리 아들 새장에 갇힌 새처럼 구슬프게 노래하고 있었을 거야. 지금 재중이가 왜 노래를 하고 있는지 이유 잘 알고 있으면 힘내. 괜찮지 않아도 반드시 버텨내. 알겠어? " " 네. " " 그리고 말이야.. 진짜 얼굴에 살 좀 찌울 순 없어? 나도 지레 놀랬는데 우리 아들은 오죽했겠어? " " 네. " " 무슨 일 생기면 전화하고.. 밥 잘 챙겨먹고.. " " 네. " 아쉬운 듯 여러 가지 걱정을 풀어놓은 여인이 이제야 안심이 된단 듯이 밝은 미소로 정실장에게 인사를 건네고 나서야 주차장에서 차가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떠나가는 차량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정실장의 얼굴은 여전히 잿빛으로 굳어있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기세로 많이 위태로워 보였다. § 씨발 헉헉헉!!!! 인간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철인 3종경기처럼 먼 거리를 달음박질해 온 사람처럼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오만가지 인상을 구기고 양 손으로는 김영웅재중이의 삑삑 거리는 운동화를 들고 맨발의 기봉이처럼 뛰고 있는 내가 참으로 한심했지만, 이 새끼 버릇을 고치려면 어쩔 수가 없었다. 삐뚤어도 단단히 삐뚤어진 김영웅재중은 하루아침에 삑삑 소리 나는 운동화를 집어 던지고 다시 스-윽 다가와서 스-윽 사라지는 귀신놀이에 재미를 한참 붙이고 앉아있었다. 그런데 이 새끼가 웃지 못해서 혹은 1분이라도 남는 시간이 지루해 미치는 사람처럼 나를 노리개 삼아 희롱하고 있었단 이 말씀이다. 다른 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김영웅재중이의 카메라가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날은 내 은퇴 날이나 다름이 없었다. 저 새끼는 멤버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이나 도촬증이 비례하듯 늘어갔다. 난데없이 지그시 눈을 감고 변을 보던 그 아름다운 순간에도, 나체로 어슬렁어슬렁 나와 내 방으로 돌아가는 그 길에도, 이상한 자세로 잠을 잘 때에도, 재채기를 하던 순간에도 자동 반사처럼 셔터를 눌러대는 통에 각종 레어 사진들이 찍힌 모든 기계에는 굴욕적인 포즈가 대부분인 사진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이 새끼가 제 발로 숙소에서 뛰쳐나가서 심심한 거였으면서 그 한풀이의 대상을 나로 정했다는 사실이었다. 날마다 김준수한테 포토메일로 내 굴욕 사진을 하나씩 전송하는가 하며, 이건 절대 늙어 죽어서도 우리끼리만 영구보존하자고 두 손을 꼭 잡으며 피는 아니지만 그토록 굳은 맹세 했었다. 그런데 이상한 복장으로 원맨쇼를 했던 영상까지도 녀석에게 메일로 하나씩 전송했다는 사실이 나를 엄청난 충격으로 몰아 세웠다. 히죽 웃으면서 ' 유처나 이건 나만 간직할게~ ' 라고 말했던 게 엊그제인데!!!!! 복도를 뛰어다닐 때마다 중간 중간 보이는 PD들과 작가들이 우리들을 보고 방송국 견학 온 유치원생처럼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저기요..? 나 재밌어서 뛰는 거 아니거든요? 저 좀 살아보겠다고 뛰는 거라구요. 저 은퇴하고 싶은 마음 추어도 없거든요? " 김영웅재중이!!!!!!!!!!!!!!!!!!!! 거기 안 서!!!!!!!!!!!!!!!!!!! " 어우, 씨발 땀 나오잖아! 이젠 나이가 드는지 이거 꼴랑 몇 분 술래잡기 했다고 입 안에서 침이 모자라고 헉헉 소리가 나오면서 다리까지 부들거렸다. 내가 왜 이 삑삑이 운동화를 들고 보송보송 버들강아지처럼 흩날리듯 살랑 살랑 뛰고 있는 녀석을 뒤따라 계주놀이를 하고 자빠졌는지 이해는 안 갔다. 하지만, 일단 실성할 듯 눈이 반달로 휘어져서는 초딩라이더처럼 이리저리 잘도 도망가는 저 새끼 때문에 억울해서라도 기어이 잡아야겠다. 도대체 내 주변의 종속들은 왜 다 하나같이 초딩라이더들인지 내가 진짜 골치가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 어찌되었든 저 새끼를 잡아다가 우선 핸드폰을 족치고 녀석도 족치고 이번에는 피를 쪽 뽑아서라도 굳은 맹세의 계약서를 다시 써야겠다. 인감 준비해 새끼야!!!!! 누구는 금세 숨이 차서 포기하고 싶어지려고 하는데 저 새끼는 뭐가 저리 신나는지 살랑살랑 잘도 뛰어가는지.. 야 인마! 너도 이마에 송골송골 땀 맺힌 것 좀 봐! 머리카락 다 달라붙었잖아!! 가뜩이나 허연 얼굴이 귀신처럼 창백해서는 웃는 꼬라지를 보니까 내가 다 섬뜩했다. 저렇게 뛰어도 되나 오히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툭 하면 쓰러질 것 같은데. 그런데도 뒤에서 내가 헉헉 거리며 웃긴 표정으로 따라가자 그 모습이 재중에겐 재밌었는지 앞을 보고 달려야할 녀석이 자꾸 내 얼굴을 보며 신나게 웃고자빠졌다. 내가 개그맨이야? 왜 다들 기분 나쁘게 내 얼굴 보고 웃어!!!!!!!!!! 그런데 그때 " 어...어!! 어... 야 야!! 앞에!!! 앞에 보고 뛰어 새꺄!!!!!!!!!!!!!!!!!!! " 쿵.............!!!!!!!!!! 갑자기 자지러지도록 웃으면서도 뛰는 속력을 늦추지 않은 녀석의 앞으로 큰 박스 3개를 위로 쌓아올린 채 낑낑 거리며 복도를 지나가던 스텝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스텝을 보지 못하고 엄청난 소리와 함께 쿵!!! 하는 소리가 복도에 크게 울려 퍼졌다. 순간 화이트아웃 현상처럼 뭔가 눈앞이 샤-악 새하얗게 변하더니 순식간에 절벽에서 떨어지는 모션처럼 툭 하니 스텝의 몸과 엉켜 차가운 복도 바닥으로 떨어지는 앙상한 김재중이 보였다. 그리고 무거운 박스가 위에서 떨어지면서 동시에 재중의 위로 덮어질 때쯤 재중의 몸 위로 블랙슈트가 떨어지듯 순식간에 재중의 몸 위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크게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당황한 스텝이 함께 부딪힌 사람이 영웅재중이란 사실에 놀라며 다행히 길쭉한 남자위로 쿵 하고 떨어진 박스를 치우며 ' 괜찮으세요!!!?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 ' 라고 다급하게 말했다. 뭔가 크게 발이 엉키고 차가운 바닥으로 몸이 붕 떠서 바닥으로 곤두박질 당할 찰나에 놀란 눈은 자동으로 감겨졌고, 예상했던 아픔과는 다르게 누군가의 품 안으로 착지가 한결 부드러워져 재중은 고통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익숙한 체향에 지레 놀라 눈을 확 뜬 재중위로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위로 쓰러진 무거운 박스가 귀찮다는 듯 박스를 치우는 정실장의 손 한쪽에 박스 모서리에 긁힌 듯 굵은 핏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등장에 크게 놀란 듯 눈을 똥그랗게 뜨고 정실장을 바라보는 재중의 눈망울에 금세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발라당 넘어진 재중의 양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끼워 천천히 일으킨 정실장이 상체를 조금 숙여 재중과 시선을 마주보더니 대뜸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 어디 다친 곳은 없어? " " ……. " 손에 맺히고 있는 핏방울이나 닦고 말하지 재중에게 괜찮냐고 다친 곳은 없냐고 여러 번 묻고 자빠진 모습을 보자 헛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재중이 숙소를 잠시 나간 이후로 제대로 얼굴 보는 건 처음일 텐데 한 놈은 가득찬 눈물 참아내고 있고 한 놈은 얼굴이 해골이 되어있으니 이거 무슨 삼류신파 흉내도 아니고 뭐하는 짓들이래!!? 허탈해진 마음으로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그 둘에게 다가갔다. 일단 싸한 분위기 전환에는 눈치 없는 새끼가 융화돼야지 분위기가 부드럽게 변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박유천 공식이었다. " 오~ 오!! 피 났어! 정실장님 피 났어!!!! " 그런데 둘 다 보청기를 끼워야하나 내 음성에는 뒤도 안돌아보고 다친 곳은 없는지 이리저리 몸을 파악하는 시선에 정신없는 정실장과 멍 하니 넋을 놓고 정실장의 핏방울 맺힌 손 등만 지그시 쳐다보는 재중만이 존재했다. " 박유천. 너 그렇게 한가해? 왜 애 다치게 복도에서 뜀박질이야. " 어쩔 수 없이 시무룩하게 툭 튀어나온 입술이 나도 모르게 샐쭉거렸다. " 쟤만!! 쟤만! 형 애야?? 나는!! 나는!! 그럼 뭐야!! 나는 애 아니야!!!???? " 재중의 앙상한 팔을 살피고 허옇게 질린 얼굴을 살피고 마지막으로 허술한 다리까지 섬세하게 살핀 정실장이 이제야 자신의 슈트에 묻은 박스에서 나온 부스러기를 아무렇지 않게 손으로 털면서 나를 보았다. 그리고 내 유치한 질문이 크게 어이없는지 살짝 콧방귀를 끼며 건조한 음성으로 내게 말했다. " 지금 네 꼴 상당히 우스워. 알아 몰라? 박유천. " 입꼬리 올리지 마. 이건 심창민으로도 충분히 괴롭거든. " 아씨 왜!!!!!!!!!! " " 운동화는 발에 신는 거야. 왜 손에 신고 난리법석이야? " 정실장의 어이없는 시선 끝에 문제의 김영웅재중의 운동화가 내 손에 장갑처럼 부끄럽게 끼워있었고, 정실장의 말대로 내 모습을 돌아보니 내가 봐도 초딩라이더였다. 씨발, 쪽팔리게.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옆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면서 지나가는 작가들과 연출자들에게 어색한 미소를 보내는 내가 있었고, 여전히 멍한 채로 정실장을 바라보고 있는 영웅재중이 있었고, 손등에서 줄줄 흘러나오는 핏방울이 느껴지지 않는지 식물인간처럼 신경이 마비된 정실장이 있었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차라리 창백한 얼굴로 스윽 귀신 놀이 말고 정신 사나워도 애교 섞인 삑삑이가 김영웅재중이한테 더 어울려서 나 이 짓 하고 있다!!! 어색하게 스텝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내게 다가와 정실장이 양쪽 손에 걸린 운동화를 뺏었고, 예상외로 그 운동화가 재중이거라는 사실을 가볍게 알아차린 정실장이 재중에게로 다시 다가가 상체를 숙여 한쪽 무릎을 아무렇지 않게 바닥에 꿇은 채 이미 끈이 풀려진 재중의 운동화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 한쪽 발 들어. " 자동으로 정실장의 어깨에 손을 올려 중심을 잡은 재중이 한쪽 발을 들었고, 자연스럽게 한쪽 운동화를 빼고 다시 삑삑이 운동화에 한손으로도 충분히 잡히는 재중의 발목을 가볍게 들어 제대로 신겼다. 그렇게 양쪽 발에 내가 원하던 시나리오처럼 보기 좋게 재중이 제 운동화를 신데렐라처럼 찾아 신었다. 그리고 재중이 신고 있던 신발을 다시 내게 가져온 정실장이 아무렇지 않게 다시 내 양쪽 손에 한 켤레씩 운동화를 껴주고 앉아있다. " 어이 정실장님. 이건 발에 신.으.라.매.요. " " 이제 보니까 넌 손이 어울린다. " " 왜 또 사람 차별해. 나 이젠 배 존나 부른 사람이야. " " 어 그래. " 가벼운 미소를 머금은 얼굴이 귀찮다는 듯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지나갔다. 여전히 정실장 뒷모습만 바라보던 재중의 얼굴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오늘 아침에 매니저 형으로 부터 들은 정보로 오늘부로 정실장이 기획사를 제대로 인수했다는 사실이었다. 아직 지분을 다 매입하기엔 어려운 실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최근 무리수 던지면서 해외 판권이며 미뤄진 계약이며 모두 귀신같이 올킬로 성사시킨 정실장이 끝내는 매입의 목적을 달성했다. 정말로 하나에 집착하면 끝을 보고야 마는 무서운 사람이었다. 고맙게도 지분관리를 담당하고 있었던 창민쪽 제약회사에서도 기분 좋게 정실장에게 문제없이 양도를 했고, 각종 언론매체에서 떠들썩하게 정실장의 자리를 놓고 미리부터 훈수를 둔 기자들만 병신된 꼴이었다. 인수와 동시에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 훼손으로 모든 언론매체에 고소가 전부 들어간 상태였다. 더불어 기획사 인수로 인해 검사집안 사위자리에 놓인 정실장의 미래가 혼란스럽게 다른 여러 가지 추측기사로 쏟아졌고 이미 치러진 약혼식에 대한 의문이 일파만파 거세게 퍼지고 있었다. 오늘 해외 판권 계약으로 잠시 방송국에 들른 정실장은 그렇게 슈퍼맨처럼 등장해서 끝처리는 서민스럽고 지저분하게 손등에 핏방울을 맺힌 채 그대로 기나긴 복도 끝에서 사라졌다. 아직까지도 멍한 얼굴로 자신의 발끝만 쳐다보던 재중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야윈 얼굴에 놀란 건지 다친 손등에 놀란 건지 이제는 손목을 붙잡지 않고 저를 지나친 모습에 놀란 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 엉엉 목 놓아 울어버릴 기세는 분명했다. 물기에 젖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 김영웅재중이. 너 여기서 울면 죽여 버린다. " 고개를 힘없이 끄덕이더니 입술을 깨문다. 비록 유리 구두는 아니지만 정실장이 친절하게도 신겨준 운동화를 그대로 신은 채 대기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우리들을 보고 창민은 혀를 차면서 형들에게 나이 값을 하랜다. 저 새끼는 사흘 안 맞으면 여우가 되었다. 누가 저놈 좀 두들겨 패줘요. § 버릇처럼 아침마다 무겁게 가라앉은 눈을 그대로 방치한 채 침대에서 상체를 일으켰다. 더듬더듬 고사리같이 예쁘고 조그마한 손으로 침대를 짚고 일어나 시각 장애인처럼 벽을 짚고 욕실로 향하는 모습이 익숙하게 느껴졌다. 두 손을 들어 기지개를 켜면서 엄청나게 큰 소리로 하품을 하며 욕실로 들어갔다. 야들야들한 허리선 아래 토실토실한 애교 있는 한쪽 엉덩이를 긁적이며 자연스럽게 변기통으로 물건을 조준했다. 마치 이것은 양궁 선수가 활을 쏘기 위해 왼손으로는 활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활시위를 뒤로 당겨 과녁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이었다. 활이 쏘아지자마자 포곡선을 그리며 졸졸졸 나온 오줌발은 정확하게 10점을 향해 달려갔다. 그야말로 연습이 가져다준 완벽한 금메달감이었다. 마지막으로 몸을 미세하게 부르르 떨어주는 팬서비스 정신은 대단히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했다. 그렇게 아침잠에 깨어나 몽롱한 준수의 고막으로 들리는 소리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전혀 부드럽지 않은 박유천의 고함과도 같은 호칭이었다. ' 준수야!!!!!!!!!! 준수야!!!!!!!!!! 준수야!!!!!!!!!!! ' 신기하게도 일정한 간격으로 그렇게 여러 번 이름이 불려졌다. 머리를 긁적거리며 이제야 눈을 뜬 준수는 아침부터 귀찮다는 듯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 아침부터 왜 왔어!!!! 오늘 나 학교 간다니까!!!! " 삐졌는지 욕실 밖으로 들려오는 대답이 없었다. 다시 치약을 알맞게 짜낸 준수가 입안에 칫솔을 넣고 치카치카, 푸카푸카 소리가 나도록 여러 번 양치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안을 헹구려는 도중 다시 들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아까전과 다를 바 없는 박유천 목소리였다. ' 준수야!!!!!!!!!! 준수야!!!!!!!!!! 준수야!!!!!!!!!!! ' 다시 눈썹을 찡그리며 입안에 든 물을 퉷 하니 뱉은 준수는 신경질적으로 입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고 다시 욕실 밖을 향해 다시 대답했다. " 나 씻고 나가야 해! 너랑 못 놀아줘!!!! " 샤워를 마친 준수는 머리를 털어가며 욕실에서 나왔다. 그리고 스스로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릴 생각을 하자 이때쯤 활용하기 유용한 박유천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리저리 방을 뒤져보아도 박유천이 안보였다. 다시 쿵쾅쿵쾅 거리며 샅샅이 넓은 방을 전부 뒤졌는데 정말로 삐졌는지 그대로 나간 모양이였다. 곧바로 쉽게 포기를 한 준수는 머리를 물기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대충 말린 후,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런데 금방 나간 박유천의 목소리가 다시 방안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준수야!!!!!!!!!! 준수야!!!!!!!!!! 준수야!!!!!!!!!!! '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은 준수는 어디에서 자신을 부르는지 알 수가 없어서 일단 소리부터 냅다 지르기 시작했다. 무서운 것도 한몫했다. " 야 빡믹키!!!!!!!!!! 그만 불러!!!!!!!!!!!!!!!!!!!!!!!!!!!!! 나 학교 간다고!!!!!!!!!!!!!!!!!!!!!!! " 그런데 박유천은 살을 파먹는 박테리아처럼 준수를 부르는 목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옷을 입으면서도 계속 들려오는 호칭에 점점 신경질이 나기 시작한 준수는 양말을 마지막으로 신은 다음 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 눈빛은 강렬했고 손은 이미 뜨겁게 달아올랐다. 저 상태로 맞았다가는 철썩 철썩 찰진 인절미쯤은 될 기세였다. 주방으로 달려가 콩고물을 확인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을 때, 다시 울리는 목소리는 여전히 준수를 크게도 외치고 있었다. 계속 넓은 집을 이리저리 뒤지는 준수의 발걸음이 경보처럼 빨라지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복명을 만난 사람처럼 반갑지 않은 술래잡기에 오기마저 생기는 준수였다. 그렇게 10분을 방안을 뒤졌지만 박유천의 얄미운 얼굴은 나타나지 않았다. 씩씩 거리며 시계를 확인한 준수는 급하게 악기 케이스부터 일단 잡아 등에 메고 침대 옆 선반위에 놓여있었던 핸드폰을 들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현관을 향해 바쁘게 발을 옮기는데 다시 박유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준수야!!!!!!!!!! 준수야!!!!!!!!!! 준수야!!!!!!!!!!! ' 그리고 그 목소리가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온 사실에 흠칫 놀란 준수는 점점 커지고 있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손을 뻗는다. 그리고 핸드폰을 잡는다. 핸드폰을 노려본다. 어디서 흘러나온 초딩 마우스인지 언제 이런 목소리로 벨소리를 만들어 설정을 했는지 발신자 이름을 째려보며 혀를 찼다. 애원하듯 액정에 깜빡 거리고 있는 발신자 이름은 「오늘도 맑음」그리고 언제 자신의 몽타주까지 저장했는지 양손으로 턱받침을 한 채 깜직한 포즈로 입술을 내밀고 있는 모습에 순간 혀끝까지 욕이 차오른 준수는 마지못해 미간을 찌푸리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벨소리와 100% 흡사한 톤으로 다시금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으니.. " 준수야!!!!!!!!!!!!!!!!!!!!!!!!!!!!!!!!!!!!!!!!!! " 허무하게 벨소리마다 대답을 하고 대화를 하고 화를 내고 다시 삐졌나 신경까지 쓴 준수는 신경질이 나기 시작했는지 현관에 털썩 주저앉아 축구공이 그려진 캔버스화를 신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른 호칭마다 대답한 자신이 한심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 너 누가 내 벨소리에 저질음성 설정하래? " 이런 질문 따위는 대답이 필요 없다는 표본처럼 준수의 말을 쌩 무시한 유천의 다급한 음성이 다시 현관에 울려 퍼졌다. 꽤나 억울한 일이 일어났는지 옆에 없어도 펄쩍 펄쩍 돌아다니며 씨발, 씨발 거리는 모습이 눈에 훤해 금방 스르륵 입가에 미소가 번진 준수가 올라간 바짓단을 곱게 정리하며 현관문을 나섰다. " 씨발!!!!! 심창민이!!!! 효력 테스트하자고 준 약 먹었는데 씨발 설사가 안 멈춰!!!!!!!!!!!!!!!! 저 개자식!!!!!!!!!!!!!!!!!! " 아침부터 화장실을 여러 번 들락날락 거렸는지 흥분한 듯 씩씩 거리는 호흡이 준수의 귀를 즐겁게 만들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상쾌하게 경비아저씨를 향해 묵례를 한 준수에게 ' 오늘은 준수 학생이 기분이 좋은가 보네. 허허허. ' 라고 같이 기분이 좋아지신 듯 웃음에 대답을 하셨다. 어쩌고저쩌고 처음으로 주둥이가 트인 사람처럼 준수에게 심창민이란 사람을 보고하듯 이런 인간이라며 육두문자를 날려댔다. 그 와중에 다시 막지 못할 재채기처럼 설사가 나오기 시작했는지 다시 쿵쾅, 쿵쾅 소리가 들려오면서 전력질주로 화장실로 향하는 모습이 그대로 상상된 준수는 길을 걸어가다가도 너무 웃음이 나와서 그대로 발걸음을 멈춘 채 한참을 핸드폰을 들고 꺼이꺼이 웃어야만 했다. 아침 출근길 다들 무료한 표정으로 휙휙 지나가는 그 길에 로또 맞은 대박 청년처럼 해맑게도 웃어젖히는 준수로 인해 그냥 걸어가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잔잔한 미소를 만들어냈다. 이럴 때 보면 웃음은 정말 전염병이 분명했다. " 김영웅재중이가 없으니까 다들 나만 갈궈대고!!!!!!!!!!!! 씨발 내가 서러워서 진짜!!!!!!!!!!!!!! " " 말은 제대로 해. 영웅이가 있어도 너만 갈궜어. " 변기통 위에 앉았는지 목소리가 동굴 속처럼 울리기 시작했고, 중간 중간 끄응 거리며 숨을 내뱉은 박유천때문에 중간 중간 인상을 쓴 준수였지만 전화를 먼저 끊으려 고는 하지 않았다. 다만 그런 생리적인 현상까지도 자연스럽게 흡수되어 받아들여진 상황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다시 물처럼 쏟아지는 소리와 함께 씨발 하고 소리를 뱉은 녀석이 신경질적으로 욕실 문을 열고 채소를 날라 파는 아저씨처럼 목에 확성기를 달고 크게 외쳤다. " 심창민 이 개새끼야!!!!!!!!!!!!! 이러다가 너덜너덜해진 똥구녕에서 씨발 애도 나오겠다!!!!!!!!!!! 도대체 무슨 약을 먹였어!! 내가 무슨 니 실험용 쥐새끼냐!!!!!!!!!!!!!! " 크큭.. 하지만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고 누군가가 급하게 숙소를 뛰쳐나가는 소리만 울려 퍼질 뿐이었다. " 박믹키. 오늘 스케줄 있다면서 아침부터 피를 토하며 연습했다는 득음폭포라도 간 거야? 항문에서 애가 나오는 게 아니라 니 주둥아리에서 씨발하고 기어 나오겠다. " " 나 오늘 춤추다가 뿌직 하면 어떡해? 씨발. " " 크크흐흐흐크흐흑.. " " 야 너 울어? " " 육천아. " " 왜 즌수야. " " 나 대놓고 웃어도 돼? " " 아니. 너라도 웃지 마. 참아. " " 내가 웃으면 너 많이 슬퍼? " " 어. 존나 슬퍼. 웃지 말고 일단 혀 깨물어. " " 알았어. 그럼 일단 끊어. 그리고 상철형한테 말해서 생리대라도 차. 끊는다. " " ㅇ야야야야!!! " 전화를 끊자마자 다시 발걸음이 멈춘 준수는 남의 시선 아랑곳하지 않고 바쁘게 걸어가는 출근길 사이로 투니버스 채널을 재생시켰다.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 날씨에 밝은 태양이 구름을 뚫고나와 유쾌한 분위기로 준수를 감쌌다. 그리고 동시에 눈물이 날 정도로 맑은 하늘이 준수의 머리위로 찬란하게 빛을 띄우고 있었다. 여전히 오늘도 맑음이었다. § 벌써 30분째였다.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온통 새하얗다. 그저 무상무념의 상태로 자연스럽게 접어들기까지 했다. 가만히 앉아있었더니 다리도 저리고 목소리도 잠긴 것 같고 무엇보다도 눈앞이 훤하기만 하니 속이 답답해서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난 지금 벌을 서고 있는 중이다. 비록 녀석은 채벌을 옹호하는 빌어먹을 교육학자쯤은 아니었지만 내가 어떻게 하면 괴로운 시간을 버텨내고 있을지에 대한 파악은 가장 뛰어난 담탱이었다. 사내새끼들이 다 거기서 거기지. 나라고 뭐 내가 박유천이라고 뭐가 달라? 무슨~ 나도 남자라고. 물건 달고 태어났으니까 유용하게 활용하고 싶은 게 정상적인 본능이자 욕구이거늘! 그런데 열 받게도 녀석은 나를 발정난 암캐처럼 아무하고도 어울리는 변태새끼로 몰아세웠다. 다른 날과 다르지 않게 10분 다정했다가 100분 싸웠다가 10분 신났다가 100분 화냈다가 그런 조증스런 템포를 유지하고 녀석과 놀고 있었다. 요즘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는지 낮에는 학교에 짱박혀있고 저녁에는 어디를 가서 놀고 자빠졌는지 전화도 받지 않은 녀석이 오늘도 예외는 없는지 피곤에 지친 기색으로 나를 애처롭게 쳐다봤다. 나의 눈은 아주 똥그랗게 정신은 아주그냥 말똥한 나를 억지로 끌고가서 침대에 누우라고 반항하면 내쫓을 기세로 째려봤단 이 말이다. 그래서 뭘 어떻게? 일단 누웠지. 그런데 잘못된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내 가슴팍 아니면 잠을 자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녀석 때문에 나는 기어이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정말로 곧바로 자려는지 평소처럼 웃통을 훌러덩 바지를 스윽 내리더니 아주 자연스럽게 내 가슴팍에 올라와서 목 언저리에 코를 박고 한번 킁킁 거리더니 이제야 좋다라는듯 잠을 청하는 게 아니던가. 뽀뽀도 했고 키스도 했고 가끔 넋 놓았을 때를 틈타서 사심이 담긴 손길을 건네기도 했고, 나는 녀석이 뻗은 손마다 바짝바짝 입안이 타들어가고 꿀꺽꿀꺽 삼켜지는 침이 하염없이 모자들뿐이고, 그런데도 무감각한 녀석은 무방비한 팬티차림으로 거실을 휙휙 돌아다닐 뿐이었다. 축구공이 그려진 귀여운 사각팬티면 그나마 그날은 운수대통인데. 가끔 귀찮아서 미처 벗지 못한 티셔츠 밑에 매끈하게 달라붙은 삼각팬티를 입은 날이면 아주그냥 피가 거꾸로 쏠리고 모든 온도가 아래 내 물건으로 모아지고 눈깔은 녀석의 물건으로 자꾸 고정되고 아주그냥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그리고 새벽에 자기 꼴리는 대로 쿨쿨 남의 타들어가는 속도 모르고 푹 잘 자서 얼굴이 뽀얗게 뜬 새끼가 내가 밤새 부른 애국가는 위로해주지도 못할망정 먼저 떠진 눈으로 저번에 녀석이 내게 했던 행동처럼 시트 속으로 들어가 앙증맞게 솟은 페니스 한번 봤다고 벌을 주냐고. 인심환인심, 인정환인정, 불설타독, 타불설안 씨발새끼 오는 정이 있어서 가는 정을 만들었을 뿐인데 눈에 핏발을 세운 채 기겁을 하더니 일어나자마자 날라 차기 했다. 곧바로 녀석이 내 한쪽 귀를 잡고 질질 끌듯이 샤키방으로 데려갔고 샤키가 사용했을 법한 목욕탕 의자처럼 낮은 의자를 벽 앞에 옮겨놓더니 거기 앉으란다. 씨발 일단 귀가 아파서 앉았지? 그런데 벽을 보고 생각하래. 그래서 뭘? 이라고 되물으니까 반성의 시간을 갖으란다. 거기서 엉덩이를 떼거나 고개를 돌리면 다시 시간을 잴 거라고 협박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 말이다. 일단 한다면 하는 애니까 깨갱거리면서 벽을 보고 있는데 존나 억울한 거다. 녀석은 나의 애정이 담긴 행동들을 그저 발정난 수캐의 치근거림으로밖에 보지 않았다. 중간마다 소리를 지르며 욕을 하고 억울하단 듯이 여러 번 말을 해도 대답하나 없었다. 매정한 새끼. 그런데 난 그게 또 무서운 거다. 나란 인간은 씨발 양육강식에 도가 너무 텄다. 지름길 인생의 단 맛을 너무 잘 안다. 쓴 걸 왜 삼켜? 단것만 삼켜도 모자랄 판국에. " 준수야~~~~~ 30분 지난 것 같은데~~~ " 진짜 다리 저리다. 저 새끼는 정말 나를 애완견 취급하는 걸까? 마치 신문지 위에서 똥을 안 싸면 신문지를 돌돌 말아 내 엉덩이를 찰싹 찰싹 여러 번 때리면서 신문지를 향해 ' 여기! 여기! 여기에 싸!! ' 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누누이 말하지만 녀석에게 동방신기의 믹키유천이란 어필은 이미 태조알 왕권부터 씨알도 먹히지 않은 수법이었다. 샤키방에 다시 등장한 주인님이 팔짱을 끼고 나를 쳐다봤다. 최대한 불쌍한 척 연기를 했다. 눈가고 축 늘어트리고 직각 어깨도 축 볼품없이 늘어트리고 손으로는 다리가 저려온다는 어필로 종아리를 꾹꾹 두들기며 애처롭고 배고픈 표정으로 녀석을 올려다봤다. 낑낑 소리를 내려다가 헐리우드액션으로 레드카드를 받을까봐 주둥이를 꾹 닫았다. " 아예 바닥에 누워 죽은 시늉을 하지 그래? " " 넌 몰라. " " 뭘? " " 내 부지런한 휴지가 자꾸만 지 혼자 피고 큰 강물이 비소로 길을 텄는지. " 아침부터 무슨 헛소리냐? 라는 시선을 뿌리치고 반성의 의자에서 일어났다. 삐진 듯 샤키방에서 나가자 곧바로 내 팔을 잡은 녀석이 쭉 나온 입술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 헛소리 작작하고 입술 넣어! " " 주인님아. " " 왜~ " " 펫을 위해서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 사각 티슈로 좀 바꿔줘. " " 왜? 너 아직도 설사해서 똥구녕 아파? " 개새끼. 제멋대로 해석하고 지랄이야! 부연 설명 없이 불쌍한 척 어깨를 다시 축 늘어트리며 아휴.. 에휴.. 아이고.. 한숨 소리를 박박 내며 가슴을 쳤다. 그리고 욕실로 들어가면서 녀석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 내 꺼 헐면 모두가 비극이야. 흑흑 " 닫히는 문틈으로 녀석이 내 똥구녕을 걱정했다. 정말로 뒤에서 애가 나오면 어떡하냐고........... 녀석에게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성교육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고 생각되었다. § 최근 새벽 늦게까지 밖으로 싸돌아다닌 녀석은 다름이 아니라 재중이네 집에서 놀았다고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았다. 스케줄이 비는 날이면 어김없이 재중의 집으로 놀러간 준수는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 것들이 많은지 새벽이 되도록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재중 역시 멤버들과 함께했던 시간들과 다르게 혼자 있는 시간이 무료했는지 준수를 쉽게 돌려보내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 영웅이네 누나 참 멋지셔~ ' 라고 말하는 녀석은 재중의 가족사항을 자기 멋대로 늘리기도 했었다. 그 사람이 누나가 아니라, 엄마야 라고 말해줘도 쉽사리 믿지 않는 눈치이기도 했었다. 그렇게 여러 번 재중의 집을 드나든 녀석은 쉽게 뭐하고 놀았는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도통 입을 열지 않았다. 난 그게 섭섭하기도 했다. 시간 속에 살다가보면 때로는 난 잊었다는 오만이 우스울 만큼 불쑥 불쑥 떠오르는 기억 하나에 먹먹해지는 심장을 움켜쥐기도 하고, 때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잊히는 기억 하나하나에 쓴 웃음을 삼키기도 했었다. 그런데 녀석의 기억으로 난 심장을 움켜쥐기도 쓴 웃음을 삼키기도 싫었다. 가끔씩 자기 고립화로 인해 녀석의 감정이 억눌린 상태로 입을 무겁게 닫아버리면 내 마음에 심통이 나기도 했었다. 녀석의 마음은 너무 쉽지 않다.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다. 그래서 녀석을 정말로 모르겠다. 며칠 쏘아붙였더니 인심 써주는 척 숙소로 친히 방문을 해주셨다. 심창민 새끼는 설사 사건 이후로 뭐가 잘못되었는지 여러 번 새벽마다 연구실을 다녀오더니 그새 밝은 얼굴이 되어있었다. 어제 나온 수치 값에 굉장히 흡족한 듯 기분전환을 위해 검정색 가죽재킷을 꺼내더니 휘파람을 불면서 오토바이를 끌고 클럽으로 진출하셨다. 또 쓴 콜라 한잔에 가사를 쓸 작정인지 아주 그냥 가죽에서 윤기가 흘러 나왔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이리저리 정신 사납게 돌아다닌 녀석이 지친 듯 거실에 앉아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전히 피로한 기색으로 숙소에 등장한 정실장이 바싹 마른 얼굴을 쓸어내리며 쇼파 밑에 털썩 앉았다. 그래도 공허한 숙소 안을 가득 메우는 준수의 짱알거림이 귀여운지 가볍게 미소를 흘리며 녀석에게 어울리지도 않은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칼 같이 정실장의 인사를 씹은 녀석이 얄밉게 게임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고 그 후로도 여러 번 정실장의 말을 중간에 자르거나 단답형으로 대답하거나 짜증난다는 듯이 하찮게 째려보는 눈빛에 순간 내가 다 오싹했었다. 어디서 맥주 한 모금이라도 마셨는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정실장이 두통이 오기 시작했는지 여러 번 고개를 좌우로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저히 안 되겠는지 무거운 몸을 힘들게 들어 현관으로 아슬아슬하게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 정실장의 팔을 붙잡을 찰나에 녀석의 목소리가 정실장의 발목을 한 번에 잡아 세웠다. " 정실장님 어제 새벽 2시에 뭐하셨어요? " 무슨 의미인지 모를법한 질문에 고개를 돌린 정실장이 준수를 쳐다보았고, 여전히 스틱을 분주하게 움직이던 손가락은 멈출 기색이 없어보였다. 어지러운 건지 술에 취한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는 정실장은 몸을 위태롭게 흔들거리며 현관문 기둥에 손을 짚고는 간신히 서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 그러게 누가 겁도 없이 대낮에 주차장에서 키스하래요? "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은 정실장이 있었고, 무슨 소리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하며 녀석을 쳐다보는 내가 있었다.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스틱을 획하니 집어던진 녀석이 정실장을 앙칼지게 째려보며 작정하고 속을 긁는 듯 한 어투로 말했다. " 그런 사진 한 장에 결혼 퉁치는거 너무 치졸하고 비굴한 이유 아니에요? " " 그게 무슨 말이야? 사진이라니... " " 정실장님 오피스텔 앞에서 영웅이랑 키스한 것처럼 붙어있는 사진이요. 그거 정말 몰라요? 영웅이는 그것 때문에 정실장님이 약혼 서둘렀다고 다 자기 탓이라고 전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던데요? " 흔들리는 눈동자는 그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갑자기 두 손을 들어 얼굴을 감싼 정실장이 기어이 고집대로 밖으로 나가려고 현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정실장이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풀썩 쓰러졌다. 처음으로 정실장이 힘없이 쓰러지는 모습을 두 눈으로 보게 된 내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 하루아침에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복통을 호소하며 병원에 실려 온 김영웅재중과 피로누적에 영양실조로 현관문 앞에서 쓰러진 정실장이 같은 병동 VIP룸에 한쪽 팔에 링거를 꽂고는 마치 동상처럼 얼굴이 파리해진 채 약에 의존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둘 다 누워있는 꼬락서니를 보자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고 이런 둘을 보며 함께 한숨을 쉬기 시작한 준수가 구급차를 타고 오는 도중 많이 놀랐는지 여러 번 내 팔뚝을 잡고 굳은 채로 벌벌 떨기도 했었다. 정실장은 자신의 고집대로 파혼을 목적으로 약혼식을 치렀고, 그 덫에 걸린 정실장님 아버지측은 숨겨진 트릭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던 재중이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처럼 등을 돌리고 정실장을 외면했다.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정실장은 흘러가는 시간에 재중이 언젠가는 편안하게 말할 수 있도록 기다리는 편을 선택했다. 하지만 재중으로 부터 도착한 파파라치들은 정실장 인생에 있어서는 굉장히 치명적인 결함으로 오랫동안 재기를 할 수 없을 만큼 위험한 소재라고 여겨진 재중은 이런 사진으로 인해 서둘러 약혼식을 치룬 정실장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이런 파파라치에 재미 들린 스포츠 신문 기자는 이 사진을 재중과 동시에 정실장 본가 사무실로 비밀리에 부쳤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약혼식의 일정을 서둘렀던 아들의 이유를 아버지는 재중이로 짐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비서를 통해 재중에게 ' 내 아들이 이런 문란한 사진을 통해 인생 망치는 계기가 되질 않길 바란다. ' 는 간단한 뜻만 전달했다. 그게 재중을 움직이게 했고 정확하게 정실장의 오기를 흔들어놓기도 했다. 새벽 6시가 되자마자 길거리를 시작으로 편의점 서점까지 모두 앞페이지를 장식한 문구는 ' 영웅재중 수면제 과다복용 자살 소동 ' 이란 자극적인 타이틀과 ' 이제는 정윤호 CEO 파혼결정 인터뷰 공개 ' 라는 충격적인 발언이 실린 타이틀이 동시에 걸려 있었다. 기획사를 인수하자마자 비밀리에 기자 인터뷰를 한 정실장은 어떠한 말에도 입에 발린 포장 없이 미화 없이 간단하게 사실만을 내뱉었고, 그 안에는 부패된 검사집안을 훈계하는 독설도 다량 포함되어있었다. 그리고 진솔하게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말하는 정실장의 얼굴은 사뭇 평온해보이기까지 했었다. 정실장은 시간이 지나 다시 돌아오는 계절처럼 언제라도 다시 만날 재중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심장이 자꾸만 재중을 기억했다. § 밤새 놀란 토끼눈으로 병실을 지켰더니 금세 잠이 들어버린 준수와 나는 정확하게 들려오는 거친 파도소리처럼 철썩!!!!!!!!!! 하고 메아리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한 번에 눈이 켜졌다. 그리고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풍경에 다시 눈이 놀란 나는 여러 번 눈을 뜨고 감고 비비고 다시 감고 뜨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뭐야 씨발 전쟁 났어!!!!??? 언제 깼는지 얼굴은 귀신처럼 새하얗게 질린 녀석이 맨발로 우두커니 정실장이 누워있는 침대 옆에 서 있었다. 팔목에 걸려있는 링거가 툭 쓸려 바닥으로 곤두박질해졌고, 재중의 팔목에 어느새 핏방울이 뚝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픈 사람의 싸대기를 갈긴 재중은 독하게도 이를 악물고 버티고 서 있었다. 찰싹 소리와 함께 눈을 힘들게 뜬 정실장은 눈앞에 서 있는 재중의 모습에 어리둥절해 하며 무거운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런데 말릴 틈도 없이 다시 찰싹!!!!! 소리와 함께 정실장의 얼굴이 반대편으로 돌아갔고 곧바로 한쪽 뺨이 불이 난 듯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란 나는 벌떡 일어나 다시 손이 올라간 재중을 팔을 잡아 세웠다. 그러자 몸부림치듯이 울부짖는 재중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그동안 참았던 울음을 별안간에 다 쏟아 붓기 시작했다. " 흐아아아엉어엉엉 흡흑흑흑 흐아아어엉 형아 왜 나한테 전화 안했어!!!!!!!!!! 분명 2시였는데 아아엉어엉엉!!!! 왜 전화 안 해!!!!!!!!! 흐아아아엉어엉엉!!!!! " 씨발 귀청 떨어지겠네. 아무 표정 없이 머리를 긁적이던 정실장이 침대에서 내려오더니 재중의 팔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야말로 해골 상봉이었다. 삐걱 삐걱 소리가 절로 나왔다.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 목을 놓아 울어버린 녀석 때문에 손을 올려 귀를 막은 나는 준수의 곁으로 가서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라며 짜증난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녀석 역시 짜증나 죽겠다면서 나와 같은 포즈로 귀를 막고 있었다. 탈진할 것 거처럼 여러 번 울면서 정실장의 얼굴을 때리고 가슴을 때리는 재중이 있었고, 그런 와중에도 한 팔로 잡은 병원복은 절대 놓지 않고 늘어지게 잡고 있었다. 예상했단 듯이 재중의 등을 토닥이는 손길이 잔잔하다 못해 평화로워 보였다. 그리고 더 무서운 건 살짝 입꼬리를 올린 채 웃고 있는 정실장의 모습이었다. 순간 소름이 돋은 나는 준수를 쳐다보았고 같이 소름이 돋은 녀석이 팔을 슥슥 문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점차 딸꾹질을 하듯이 숨넘어가는 소리가 잦아질 때쯤 갑자기 병실 밖으로 익숙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순간 경직된 4명은 하나같이 멍한 얼굴로 병실 문만 쳐다볼 뿐이었다. " 우아아아아아앙흐어어엉어엉엉어엉엉 죽지마아!!!!!!!!!!! 내가 그동안 다 잘못했어요 !!!!!!!!! 윤호형아 영웅이 형아 죽지마아!!!!! 흐흡흑흑흑아아아아아앙흐흑흑어어엉어엉엉어~ 이렇게 보낼 순 없어!!!! 다들 죽지마아아아아!!!!!!!!!!! " 로또처럼 한방에 울음이 뚝 그친 김영웅재중이 정실장 환자복에 코를 흥 풀더니 눈에 매달린 눈물을 새침하게 닦아냈다. 그리고 맨발로 성큼성큼 문 쪽을 향해 걸어 나갔고 동시에 문 쪽으로 시선이 전부 모아졌다. 그리고 병실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풍경에 모두들 귀를 막고 다시 병실 문을 닫고 문까지 걸어 잠갔다. 나이트에서 기분 좋게 아침을 맞이한 창민은 뻔쩍거리는 가죽재킷을 자랑스럽게 쓰다듬으며 오토바이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기분이 좋은지 입에선 휘파람 소리가 절로 났고 잠을 한숨도 못 잤음에도 불구하고 눈동자는 아주 또렷했다. 그런데 길을 지나가는 도중 여러 사람들이 몰린 정류장 간판대에는 ' 영웅재중 자살 ' ' 정윤호 구급차 ' 라는 낚시성 짙은 위험한 제목을 발견했고 즉시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자 가라앉은 목소리로 병실을 알려주는 말에 화들짝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끅끅 거리며 병실에 도착했다. 그리고 난데없이 ' 정윤허 ' 라는 환자의 팔을 붙잡고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그 환자는 화상으로 눈만 빼고 얼굴이 붕대로 칭칭 감겨진 상태였다. 두 번째로 보는 심창민의 눈물이었다. 충격이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쪽팔렸다. 이름이 비슷한 환자를 잡고 늘어져서는 모든 게 자기 잘못이라며 살아만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에 모두들 넋을 놓고 잠긴 문을 불안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정실장 또한 예외는 아니었는지 상당히 심각한 표정으로 잠긴 문을 주시하고 있었다. 큰 이유는 없었다. 그냥 심창민이 우는 게 쪽팔렸다. 이대로 퇴원할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동안을 밖에서 대성통곡하듯 눈물 콧물 흘려보내며 장례식을 미리 치른 심창민이 있었다. " 우아아아아아앙흐어어엉어엉엉어엉엉 윤호혀엉!!!!!!!! 재중이혀엉!!!!!!!!!!!!! 나 두고 축지마요!!!!! 흐흡흑흑흑아아아흐흑흑어엉어~ 살아요!!!!! 안 돼!!!!!!!!!!!!! " 창민의 어깨를 치며 손사래 치는 환자가 발버둥을 쳤다. " %%$&$&*$아$%@##$^&윤*^#허!!!! " " 씨발 하루아침에 병신되는 게 어디 있어!!!!!!!!!!!! 아앙흐어어엉어엉엉어엉 축지마요!!!!! " 30분 뒤. 문이 부서질세라 흔들렸고 마지못해 열린 문틈으로 등장한 창민은 더러워진 가죽 재킷을 던지고 빗물처럼 흘러내린 콧물을 문지르고 흰자 없이 붉게 충혈된 짐승 같은 눈으로 우리를 노려보았다. 무섭고 섬뜩하고 소름 돋았다. 그런데 그런걸 다 떠나서 우린 쟤가 창피했다. 이런 상황이 꿈이길 바라던 창민이 아직 슬픔의 감정이 남아있는지 코를 훌쩍이며 조용히 말했다. " 쪽팔리니까 빨리 집에나 가요. " | 그때 왜 나 의자에 벌세우고 넌 숨죽여 웃었어? 너 웃는 거 다 들렸거든? | My Melody 14 My Melody w. 킵 * * * 어느 날과 다름없는 회의시간이었지만 분명 사무실 공기는 이전과 많이 달랐다. 이곳은 언제나 꽉 여민 커튼으로 어둠이 깊숙이 들어앉아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냉랭한 장소에 불과했다. 하지만 한가로운 오후 바람이 포근히 불어 창문의 커튼이 펄럭하며 여러 번 부풀어 오르는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고 눈이 부시도록 따스하지만 강한 햇볕이 사무실을 에워싸고 있었다. 살랑대는 바람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소리는 오직 서류 넘어가는 소리 뿐, 회의시간 치고는 침묵이 잦게 맴돌았다. 정실장과 나란히 퇴원수속을 마친 재중은 당연하게도 숙소로 다시 돌아왔고, 홀로 극심한 가슴앓이를 한 재중을 혼이라도 내듯이 여러 번 오피스텔로 무작정 찾아와 정실장을 기다리는 재중을 외면하는 것으로 쌓인 화를 삭이고 있었다. 재중에게 있어서 정실장의 선택은 절대적으로 가장 우위에 있는 최선의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런 결론이 재중에겐 익숙했기 때문에 이번 약혼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결정을 쉽게 내린 정실장이 미우면서도 자신 때문이란 죄책감에 불쌍하고 안타깝게 여겨지기도 했었다. 이런 감정들이 하나둘씩 쌓여 재중의 사랑을 책망하고 당연하게도 스스로가 죽고 싶을 만큼 시린 가슴앓이를 했더라도 체념하는 일이 재중에겐 전부였었다. 그게 정실장의 화를 불러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의 굴레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독립을 위해 그 알량한 자존심 하나로 재중에게 큰 상처를 아무런 설명과 동의 없이 무차별로 안겨다준 자신에 대한 억제된 분노였다. 바람 없는 날 학교 운동장 담 아래 병아리 새끼처럼 정실장 사무실의 햇볕을 쬐면서 쇼파에 누워 잠이 든 재중은 잠결이라 몸이 서늘했는지 정실장 품속으로 더욱 깊이 파고들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회의 시간에 맞춰 사무실로 들어온 간부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어색한 헛기침을 토한 후 계면쩍은 웃음을 흘렸다. 그런 사람들의 당혹스러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정실장은 간단한 회의를 고집대로 이어 나갔다. 그리고 회의 전에 목소리 좀 낮춰달라는 당부 또한 잊지 않는 침착함이 서늘하기까지 했다. 재중은 아이처럼 상황이 곤란해지거나 어렵게 느껴지거나 제 잘못을 인식하고 눈치를 보듯 어려워하면 엄마 무릎처럼 정실장의 무릎에 얼굴을 숨기듯 묻고 정실장의 반응을 살피고 그러다가 정실장이 사무실을 나가기라도 하면 쉽게 울음을 터트릴 기세로 큰 눈망울에 가득 눈물이 고였었다. 시간대별로 구성된 정실장의 빠듯한 스케줄을 그대로 따라다닌 재중은 쉽게 피로에 지쳤고 칭얼거리듯 무릎에 얼굴을 묻자마자 깊게 잠이 들었다. 잠결에서도 정실장의 동선은 느껴지는지 자신을 떼고 움직일 때마다 칭얼거리듯 미간을 좁히며 울상 짓는 얼굴이 되었다. 그런 재중이 다시 잠이 들 수 있도록 가슴을 두들겨 주면 신기하게도 젖을 먹고 편안한 얼굴로 잠이 든 아이처럼 변해있었다. 그게 안타까우면서도 가슴이 벅차기도 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침묵만이 흐르는 불편한 자리였는지 간부들이 빠르게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곧바로 아까부터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신경 쓰였던 정실장이 쇼파에서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잠결에 눈을 뜨자마자 희미하게 정실장의 얼굴이 보이자 재중이 난데없이 웃기 시작했다. 세상에 다시없을 그런 맑은 웃음소리였다. 자연스럽게 애교가 묻어난 두 팔이 정실장을 향해 벌리고 있었다. 정실장의 눈치를 살살 봐가면서 히죽 웃는 모습에 웃음이 전염된 정실장은 마지못해 재중의 몸을 번쩍 들어 안아 올렸다. 그러자 익숙하게 정실장 허리에 다리를 바짝 휘어감은 재중이 승리에 찬웃음을 지었다. 다시 쇼파에 몸을 기대고 앉은 정실장은 손가락으로 바람에 흩날리는 재중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말했다. " 잘못은 형이 했는데 왜 네가 아파? " 재중의 차가운 피가 흐르는 것 같은 냉기서린 하얀 발목을 잡아 정실장이 손으로 부드럽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곧바로 검은 동공의 뿌리가 보일 만큼 가까이 얼굴을 내밀어 정실장의 입술에 가볍게 베이비 키스한 재중이 유난히 긴 정실장의 속눈썹을 신기하게 만져가며 그 눈두덩이 위로 다시 짧게 키스를 했다. 그리고 꽃잎이 흩날리듯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 같이 아프면 덜 아파. 형아랑 쌤쌤. " 목소리엔 애교가 넘쳐흘렀고 얼굴은 기쁨에 차 있었다. " 밤에 잠은? " " 형아가 오피스텔에서 나 피하지만 않으면 잠 잘 와. " 삐죽 내밀어진 입술을 손으로 톡톡 친 정실장이 재중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 미안, 형이 재중이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 " " 사랑해. 혀어ㅇ... " 졸음을 이기지 못한 재중의 입가에 느릿하게 생겨나는 미소와 동시에 눈 커플이 떨리듯 감겨졌고 곧바로 정실장의 목에 얼굴을 묻는 재중이 마주 닿은 심장이 자장가처럼 들리는지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깊이 잠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재중의 야윈 등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는 손길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재중을 사랑한 후에 오는 것들이 너무 벅차올라 늘 가슴에서는 뭔가 울컥 치미는 기분이었다. 매일 점점 더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재중이 건강해지고 있었다. 재중의 등을 쓰다듬으며 이마에 부드럽게 키스를 한 정실장이 말했다. 결코 잊지 못할 정도의 애달픈 음성이었다. " 이런 너를 형이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잘 자. " § 녀석이 변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호러스럽게 변했다. 무조건 반갑지 않은 변화였다. 육두문자로 교감하는 애완견 기르는 맛이 금세 식상해졌는지 갓난아이에게 철자법을 가르치는 보모처럼 나를 돌보기 시작했다. 이 전날 새벽에 잠이 오지 않은 나는 고민 없이 무작정 애마를 끌고 녀석의 집으로 와서 무작정 녀석의 몸을 끌어안고 잠을 잤다. 그리고 지금 내 엉덩이를 살살 달래듯 때려가며 나를 깨우는 녀석의 손동작에 눈이 이등병처럼 한 번에 떠졌다. 삐쭉 솟은 머리카락과 다 떠지지 않은 눈으로 엄마놀이처럼 앞치마를 두른 녀석의 허리를 주시했다. 어울리지 않게 뒤집개를 들고 있는 모습이 순식간에 우스워져 푸흐흐흐 하고 웃었다. 그런데 웬일로 아침부터 발차기를 킵해둔 녀석이 다정스럽게 늘어져있는 내 팔목을 잡아 세워 욕실로 인도했다. 마치 저승길을 안내하는 요괴처럼 슬리퍼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머리를 벅벅 긁으며 ' 되새김질 하지 말고 때릴 거면 지금 때려. 졸릴 때 맞아야지 덜 아파. ' 라고 잠결에 웅얼거리며 말해도 그저 웃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방실방실 잘도 처 웃는다. 순간 소름이 돋았지만 일단 꽉 찬 오줌통을 비우기 위해 욕실로 냉큼 들어갔다. 이상하게 녀석의 집만 들어오면 문 닫고 오줌 싸기가 싫다. 이건 무슨 심리인지는 모르겠는데 문을 닫으면 시원섭섭한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그리고 이런 나의 몰상식한 행동을 개초딩 취급하던 녀석이 오늘은 웬일인지 졸졸졸 흐르는 상쾌한 오줌발 소리에 흥을 맡긴 채 덩실덩실 춤을 추듯 주방을 리듬 있게 서성거렸다. 헉. 다시 오싹해서 욕실 문을 쾅 닫고 문을 잠갔다. 잠이 정말로 깼다. " 유천아 밥 먹어!!! " " 어~ " 어.. 어.. 어.. 어??? 응?? 유 to the 천? 저건 내 이름인데? 순식간에 드라이기 코드를 빼서 원래 제자리로 너저분하게 쑤셔 박고 급하게 주방으로 나온 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반복 청취를 원했다. " 방금 뭐라고 그랬어? " 오색 무지개처럼 예쁘게도 볶아진 볶음밥이 요리책 조명발 사진처럼 참으로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비록 야채마다 개성을 살리듯 굵기는 제각각이었지만 이 정도면 훌륭했다. 기가 막혔다. 아주그냥 어깨가 우쭐거려 죽겠다. 졸업 전시작처럼 조심스럽게 볶음밥을 그릇에 담아내던 녀석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뒤를 돌아 청순한 표정으로 응? 하고 되물었다. 으흐흐 씨발 자위 하다 억지로 요도 막은 기분이 들었다. 다 싼 오줌 다시 싸고 싶어지는 표정이었다. 그냥 뭐 좀 확 싸고 싶다. " 밥 먹어 앞에 뭐라고 그랬어??? " 자신이 생각해도 흡족한 요리의 완성품이었는지 환한 얼굴로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표정이 덤덤하게 다시 말했다. " 유천? " " 다시 다시 " " 유천아 밥 먹어. 이거? " " 응!!! 다시 다시 " " 유천아 밥 먹어. "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의 한이 풀어지는 순간처럼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씨발, 당장 불 꺼. 분노의 가래떡 좀 쓸어보자!!!!!! 난 내 이름이 이렇게나 개간지 나는 이름인지 몰랐다. 두 손을 모아 기도라고 하고 싶어졌다. 사랑은 참으로 위대했다. 무교신자를 사이비교로 하루아침에 둔갑시킬 만큼 정말로 위대했다. 눈을 감고 입꼬리를 하늘만큼 올린 채 촐싹맞은 입술은 아침 댓바람부터 녀석에게 지루한 반복 청취를 요구했다. " 다시 다시!!! " 탁!!!!!!!!!!!!!!!!! 참을 인이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누가 지껄였어? 꿈은 너무 달콤했다. 그래서 꿈이었던 것이다.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시궁창 썩은 물에도 달은 비춰지는데... 순식간에 내 뒤통수를 떡메 치듯이 고민 없이 내리친 녀석의 손바닥이 정확하게 뇌세포를 수백 마리 죽여 놨다. 씨발놈아 진짜 아파! " 닥치고 처먹어!!! " 매를 부르는 내 입술이 얄밉게 느껴졌다. 반동처럼 눈깔이 튀어나올 것 같아서 급하게 감긴 눈이 존나 처량했다. 하지만 오뚝이처럼 냉큼 의자에 앉은 나는 이런 경제 위기 속에서도 헌신적으로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다 바치는 갈매기 아빠들을 대하듯 비록 화려한 수라상은 아니지만 이렇게 깜찍한 아침상을 차려준 녀석이 너무 예뻐서 두 다리가 덩실덩실 허공위로 여러 번 교차하듯 흔들렸다. 평생 지속될 감동이었다. 박유천의 쨍하고 해뜰날은 바로 오늘이었던 것이다. 하! 하! 하! 아침부터 찬 우유를 마셔서 밥이 안 넘어간다는 녀석은 청순하게 앞치마를 푸르지 않고 나와 마주보고 식탁에 앉아 내가 먹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지켜보았다. 이에 보답하듯 게걸스럽더라도 쩝쩝 소리 내 가면서 홈쇼핑 모델처럼 맛있게 먹어줘야지 라는 의지가 강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오색 빛깔 무지개처럼 예쁜 볶음밥을 대량으로 입 안으로 투여했다. 그리고 씹었다. 그런데 자꾸 여러 개가 돌 굴러가듯이 씹혔다. 낙엽이 짓밟히듯 아삭아삭 씹혔다. 감자도 아삭아삭 존나 싱싱했다. 당근도 아삭아삭, 파프리카도 아삭아삭, 고추도 아삭아삭, 햄도 아삭아삭.... 모든 게 막 꺼낸 채소처럼 아삭아삭 씹혔다. 이가 없는 노인네처럼 수십 번을 씹어야지 목울대가 움직였다. 후추 맛이 강하게 났다. 하지만 그 열배로 미원 맛이 강하게 났다. 밥은 미지근하고 모든 채소는 너무 싱싱했다. 야채가 무슨 회야? 씨발놈아 뜨긴 왜 떠!!!!!! 분명 볶음밥이 아니었다. 그저 흰 밥과 막 썬 채소를 넣어 알맞게 섞여져있었다. 그리고 미연으로 간을 맞추는 센스는 신선함과 동시에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이런 볶음밥을 먹는 내 모습을 바라본 녀석의 표정은 악어, 뱀처럼 사나운 동물의 가죽을 좋아라하는 부유층 유부녀들처럼 너그럽고 인자했다. 대량으로 투여된 미원이 가져다주는 느끼함에 헛구역질이 나온 나는 임신한 사람처럼 여러 번 꾸엑 꾸엑 거렸다. 입덧의 참된 고통을 알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자 갑자기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녀석이 물을 직접 떠다주며 다정하고 달달하게 말했다. 그리고 히죽 웃었다. " 유천아, 그렇게 맛있어? 천천히 먹어. " 아삭아삭 바스러지듯 씹히는 경쾌한 식감을 보답하듯 녀석을 씹어 버리고 싶었지만, 진심으로 요리사의 참된 행복을 알게 된 새댁처럼 기뻐하는 모습이 그대로 느껴져 솜사탕처럼 볶음밥을 핥아 먹기 시작했다. 처음 녀석이 내게 해준 요리치고는 오금이 저릴 정도로 스릴만점이었다. 이 모든 역경을 앞치마를 두른 허리와 달콤한 내 이름의 외침을 들으며 참아내고 있었다. 알고 보면 내 안에 내장된 쇼타콤 기질은 본능처럼 뛰어났다. § 넌 나의 선샤인이라고 찬양한지 10초도 지나지 않아서 욕이 나왔다. 밥 먹을 동안 식탁 밑으로 기어 들어간 녀석은 별안간 내 발에 양말을 신기고는 소리 죽여 키득거리며 좋아했다. 이미 씹지도 못하고 물과 함께 변기에 물 내려가듯 소용돌이처럼 빠르게 내려간 밥알로 배가 부른 나는 헉헉 거리며 남은 볶음밥을 다 비우느라 공황상태였다. 곧바로 정신없이 나갈 채비를 하기 시작한 녀석이 별안간 내 옷에서 차 키를 빼더니 아파트 1층 입구로 내려오란다. 양치를 하던 도중 허물어진 발음으로 ' 웨에 워티가아? ' 말했더니 사육사처럼 귀신같이 알아듣고 ' 내가 데려다 줄게 ' 라고 대답하며 키를 흔들었다. 불안함이 엄습했지만 그 보다 훨씬 기쁨이 커서 금세 잊고 말았다. 어물쩡거리다 보니까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손목에 시계를 차면서 1층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는데 개새끼가 기다린 게 지루했는지 심통난 고양이 표정으로 집 보다 비싼 내 애마의 바퀴를 팔짱을 끼고 툭 툭 발로 차댔다. 너 요즘 뭐하고 지내? 라는 잘 나가는 사내새끼들 질문에 유일하게 대답할 수 있는 내 애마를!!! 경보하듯 빨라진 걸음걸이로 녀석에게 다가갔다. " 야! 야! 발로 차지마!!! " 무심하게 등을 돌린 녀석이 발길질을 멈춘 채 차 앞문을 열어주며 신사답게 내가 타길 기다렸다. ' 야 안 하던 짓하면 개죽음 당하는 거 몰라? ' 다시 한 번 되묻듯이 검지 손가락의 방향을 내 몽타주로 향한 채 되물었다. " 나? 나 타라고 ? " 오늘따라 무척 기분이 좋은지, 얘기하는 동안 내내 웃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빨갛고 예쁜 주둥아리에서 나온 단어는 상당히 치명적이고 굴욕적이었다. " 애니멀 퍼스트도 몰라? 어서 타! " 녀석이 잘 들리지 않는 소심한 소리로 ' 씨발새끼! 병신새끼! 개새끼! ' 를 궁시렁 궁시렁 대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이 신긴 양말에 피카소도 울고 갈 앙리 면상이 떡하니 발 등에 그려있단 사실에 경악하며 일단 목숨 걸린 드라이브를 위해 안전벨트를 맸다. 마치 놀이농산의 우든 롤러코스터를 타기 전에 안전벨트를 재확인하는 느낌과 비슷했다. 하지만 의외로 녀석은 운전 솜씨가 능숙했다. 생긴 꼬락서니는 세발자전거 타입인데 노련하면서 부드러운 운전 스타일에 놀랍기도 했었다. 중간에 녀석이 가방에서 꺼낸 MR CD를 오디오에 끼우며 말했다. " 이거 운 좋게도 이번에 팔린 OST 곡이다? " " 그래서 오늘 기분이 상당히 좋은가보다? " " 그럼~ 김준수표 선율이 인정 받은 건데. 가이드 녹음 없이 MR CD만 녹음했어. " 보통의 가수들은 기본적으로 가이드로 녹음된 CD로 곡을 처음 접하게 되어있다. 악보를 보고 소리를 내는 즉, 시창을 그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가수들은 굉장히 희박한 편이었다. 그래서 필요한 게 가이드 녹음이기도 했다. 작곡가의 스타일대로 멜로디에 맞게 곡의 분위기에 맞게 허밍이나 완성되지 않은 가사들로 제대로 된 음정과 박자를 파악하기 위해 임의적으로 만들어진 녹음이었다. 그런데 녀석은 단순히 MR과 가사가 적힌 악보로만 전달했다고 말했다. 최대한 곡의 느낌을 살려 녹음을 해서 줘도 곡의 느낌이 100% 곡을 받는 가수에게 전달되기가 쉽지 않은데 본 녹음 전에 MR만 전달한 녀석의 의도가 사뭇 궁금해졌다. " 시창 안 되는 가수들이 널려있는데 본 녹음은 어쩌려고? 제작사도 무조건 가이드 녹음은 요청 할 텐데. " 커버가 있는 길을 부드럽게 핸들을 돌린 녀석이 트랙을 맞추며 당연하단 듯이 말했다. " 제시한 조건 중에 가장 중요한 게 MR로 본 녹음이 가능한 가수여야지 주겠다고 그랬거든. 내가 넘긴 것도 MR하고 가사 뿐이었고, 그런데 멜로디 해석이 능한 사람이었나 봐. 바로 OK 했어. " " 왜 굳이 어렵게 돌아가? 너한테 가이드 녹음 별로 어렵지도 않잖아. 오히려 받는 사람 입장에선 굉장한 득이 될 텐데. " " 달랑 악보만 내민 것도 아니고 MR까지 줬는데도 곡 해석 못하는 가수한테는 노래 팔기 싫더라. 아까워서. " " 그래서 그렇게 나한테 악보 가르쳤어? 내가 부른 노래가 아까워서? " " 이제 너도 그 차이 잘 알잖아, 넌 앞으로 지금 보다도 훨씬 더 많~이 인정받는 대단한 가수가 될 거야. " 녀석의 진지한 음성에 잠시 할 말을 잊었다. 확실히 녀석의 작업실에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 수록곡에 대한 해석과 복잡한 리듬, 멜로디, 템포를 자유자재로 변형 시키는데 재미를 붙이기까지 했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옛날의 산증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듯 녀석과 함께 지내는 시간들은 하나도 헛되지 않고 고스란히 나에게로 쌓여지고 있었다. 이런 사실들을 평소에는 모르다가도 본 녹음이나 작곡을 하면서 크게 집중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되면 새삼스레 녀석의 말 하나 하나에 여러 가지 뜻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곧바로 MR만 전달했다는 녀석의 곡이 흐르기 시작했고, 정확한 곡의 느낌을 살려 녀석이 첫 대상으로 나에게 곡을 들려주었다. It's feel like beautiful thing 달의 그림자 아래 선 나 귓가에 맴도는 바람 나를 어디로 데려갈까 하얗게 밤을 유영하듯 구름을 걷는 영혼 새벽이 찾아올 때까지 밤이 잠들 때까지 Time of love 오 나의 삶에 허락된 날은 언제일까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아름답지 않은 건 없어 삶은 모든 걸 알아가기에는 너무 짧은 여행인걸 계절은 또 오겠지만 시간의 강도 흘러 희미한 세상 빛은 기억만 남게 되고 하루를 난 감사하며 작은 기도의 손을 모아 거짓에 가려진 모든 것을 사랑하게 하소서 벼락을 맞은 것처럼 온몸에 전율이 일고 머릿속이 짜릿해졌다. 그리고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을 만큼 가슴이 울컥거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어야만 했다. 어느새 도착한 방송국 주차장 앞에서 별안간 난 녀석에게 고맙다는 가벼운 인사처럼 ' 사랑해~ ' 라고 말했다. 곧바로 푸흐흐 웃음이 터진 녀석이 나를 애완견처럼 귀엽게 바라보더니 아침 선물처럼 가볍게 볼 위로 뽀뽀를 했다. 쪽! 소리와 함께 떨어져간 입술이 상당히 아쉬웠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바보처럼 웃었다. 나는 오늘도 더 많이 네가 필요할 테고, 네가 더 감사하고, 네가 더 많이 보고 싶고, 네가 더 많이 그립고, 아주 많이 더 사랑할거야. 내게 와줘서 내게 닿아줘서 오늘도 더 많이 고마워 준수야. § 언제부터인가 심창민은 정실장이 없는 자리에선 정실장을 손오공이라고 멋대로 불렀다. 정실장이 원숭이를 닮은 것도 아니고 작명센스에 이의를 제기한 나는 당당하게 물어봤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허~참나! 라는 늙은 할아비 추임새가 저절로 나왔다. ' 준수형이 정실장 두통 있는 손오공 같다고 주변에 삼장법사 나타나면 때려죽이래요 크크크흐흑 ' 다시 그 상황이 재연되는지 한쪽 눈을 찡그리고 어깨를 알콜중독 환자처럼 떨어가며 웃는다. 사실 제대로 따지자면 삼장법사의 주문을 외우는 건 저기 저 삑삑 소리 나는 신발 신고 자지러지게 웃고 자빠진 김영웅재중 때문이거늘! 심창민은 태초에 악의 기운으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듯 오오라 막을 매번 업그레이드 하면서 지냈다. 이에 대한 큰 장점으로는 집요한 팬들이 달라붙지 않았다. 그에 반대로 김영웅재중의 몸에는 병약의 오오라 막이 둘러 싸였는지 다칠까 팬들이 쉽게 달라붙지 않았다. 그렇다! 무슨 좌석에 붙는 클립처럼 나한테만 달라붙는다 이 말이다. 창민은 때때로 라면 한 봉지의 소소한 행복을 체험하는 희귀한 버릇이 있었다. 분명 숙소에 크게 쌓여있는 라면과 계란이 존재하거늘, 저 라면과 저 계란으로는 주둥이가 즐겁게 호강할 수 없단다. 대충 추리닝에 운동화를 구겨 신고는 어슬렁어슬렁 마실 나가는 노인네처럼 뒷짐을 지고 숙소를 나가곤 했다. 하지만 이런 창민에게 달라붙는 팬들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저 언제 변할지 모를 사나운 호랑이를 경계하듯 창민의 몸 주위로 철조망이 쌓여있는 것처럼 멀리서 창민의 동선을 주시하곤 했다. 그리고 정확히 검정색 봉지 안에는 라면 한 봉지와 계란 1개가 존재했다. 달랑달랑 봉지를 흔들며 숙소로 걸어오는 발걸음은 아주 새털처럼 가벼웠다. 그리고 가끔씩 이런 심창민의 내공을 모르고 겁 없이 사인을 요청하는 소녀 팬에게 창민은 살살 웃어가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 펜 하고 종이 있으시면 받아 적으세요. 자 부릅니다? 심. 창. 민. 혹시 PS도 필요합니까? ' 백이면 백 모두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입을 다물며 어색하게 웃음을 보이고 쉽게 포기를 했다. 창민과 반대로 재중은 짧은 질문에도 3배는 길고 상세하고 친절하게 대답해주는 오지랖 유형이었다. 이를테면 상당한 폭언을 아무렇지 않게 뱉는다거나 묻는 질문에 거짓 하나 없이 그대로 대답해주곤 했었다. 다행히 기자가 없었으니 망정이니 순식간에 다 말아먹을 뻔한 경우가 여럿 있었다. 그리고 재중은 생김새와 다르게 운전 스타일이 스피드 레이서처럼 과격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재중을 따라잡는 팬은 단 한명도 없었다. 저 둘의 비해 나는 동네 똥개 새끼였다. 어찌나 귀신같은 판단력과 메가패스도 울고 갈 광랜 스피드인지 내가 어디를 가도 그곳엔 팬들이 미리부터 죽을 치고 앉아있었다. 그리고 어찌나 나를 닮았는지 내 신변보호 없이 본 모습 그대로 인터넷에 뿌리는 마당에 기자들이 숙소 앞에 진을 치고 앉아 있는 게 아니라 그날 포스팅 된 글들을 보고 기사를 쓰곤 했었다. 여자를 만나도 풍기물란하게 싸돌아 다녀도 쿨하게 내 모습을 좋아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가끔은 이런 나를 동생처럼 혼내기도 했었다. ' 유천아? 골로 가고 싶니? 운전 조심해.. ' 특히 누나들은 더 무섭다. 그중에서도 통장 사본 복사해서 보여주는 누나들은 김태촌 피바다가 우스울 정도로 오싹했었다. 하지만 이런 팬들이라도 갑자기 안보이면 서운해지곤 했다. 궁금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생각에 오늘은 평소보다 길게 숙소 앞에서 밤늦게까지 기다린 팬들과 농담 섞인 수다를 떨고 들어왔다. 후속곡과 동시에 얼마 전에 녹음한 OST가 방송을 타는 바람에 강행된 스케줄에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다행히 오늘은 12시가 되기 전에 숙소로 들어올 수 있었지만, 존나 빡세게도 2시간만 자고 새벽 촬영이 있어서 지방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사실 출연하고 싶지 않은 PD새끼 프로 였는데 압력이 쌘 모양인지 무조건 내려오란다. 2시간만 자고 일어날 생각에 그냥 준수한테 갔다 올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MR만 전했던 OST 곡이 녀석이 원하던 곡의 느낌대로 제대로 잘 빠져서 나왔는지 문자나 핸드폰 너머로 녀석의 목소리가 굉장히 밝아서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았었다. 그 날 이후로 1주일가량 녀석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중간 중간 재밌는 표정을 지어 포토메일을 전송하면 똑같이 재밌는 표정으로 포토메일이 날아왔다. 이런 교감이 서글펐지만 이것마저 소소하게 행복하다고 여겨졌었다. 그런데 생각하다 보니까 정말 보고 싶다. 전화도 못 받고 그랬는데.. 그래도 너무 늦었단 생각에 일찌감치 포기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옷을 벗자마자 도착한 문자에 너무 놀라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 유천아 바쁘지 않으면  지하 주차장 비상계단  으로 지금 나와! 」 11시 50분에 도착한 문자는 준수였다. 시계를 확인하고 문자를 확인한 나는 지레 놀라 당황해 하며 혼잣말로 더듬기 까지 했다. ' 어..?? ㅈ..지금?? ' 급하게 운동화에 발을 끼어놓고 현관문을 박차고 내려갔다. 뒤에서 2시간 자고 나가야 하는데 어딜 가냐고 다급하게 부르는 매니저를 뒤로한 채 쿵쾅 거리며 지하 주차장에 있는 비상계단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부른 이유도 모른 채 단숨에 비상계단을 향해 내려가는 발걸음이 크게 메아리 쳤다. 녀석은 내게 인생을 제대로 한번 살아보고 싶은 마음의 가슴이 뜨거웠던 젊은 시절을 내게 매일 매일 선사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고 싶은 마음에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2시간만 볼 거면 속이 뒤틀려서 녀석을 보러갈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내게 왔다. 오래된 비밀을 엿보는 소년처럼 온몸의 피가 역류하며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 계단만이 어렴풋이 보이는 비상 계단구는 생각 보다 많이 어두웠다. 숨을 헐떡이며 도착하는 비상계단에 녀석이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녀석의 자그만 손 위로는 앙증맞게 올라간 생크림 케이크에 꽂혀 있는 초에 불이 환하게 붙여있었다. 금세 생크림 위로 촛농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엉덩이를 털고 조심스럽게 일어난 녀석이 지금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나를 보고 서글프게 웃었다. 순간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이런 행동이 크게 쑥스러운지 어색하게 나를 바라보며 녀석이 애써 밝은 음성으로 말했다. " 앞으로 3분 남았다. 오늘이 내 생일인데 늘 샤키랑 보내다가 혼자 불 끄려니까 어색해서 너 기다렸는데 다행히 12시 안에 들어왔다. " 어떻게 해서라도 먹먹한 가슴을 떼어내 버리고 싶었다. 환하게 웃으면서 축하해주고 싶은데 자꾸만 울상이 지어지고 눈물이 차올라 혀를 깨물었다. 숨을 죽이고 여러 번 울컥 올라오는 가슴을 밀어내고 있었다. 이곳에서 몇 시간이고 쭈그리고 기다렸을 생각에 녀석의 맑은 눈동자를 그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운동화 발끝을 노려보았다. " 노래 안 불러 줄 거야? 야 이거 다 녹아! " 차마 고개는 못 들겠고 노래는 불러야겠고 여전히 바닥만을 응시한 채 생일 축하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부들부들 떨리는 음성이 창피했지만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얼굴을 쉽게 들 용기가 서지 않았다. 정말로 난 김준수에게 사랑받지 않을 용기가 전혀 없었다. 준수만큼 용기가 생기는 것도 용기가 없어지는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 사랑하는.. 준수의 생일 축하합니다.. "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초가 꺼졌고 그 틈으로 참았던 눈물이 툭 하니 운동화 위로 두 번 떨어졌다. 얼른 손등으로 눈 꼬리에 매달린 눈물을 감췄고 고개를 들어 녀석을 바라보았다. 1주일을 못 봤는데 10년처럼 그리운 얼굴이었다. 가장 미안했던 3분이 흐르는 동안 녀석은 내내 내 얼굴을 보고 생긋 예쁘게 웃었다. 미안한 만큼 밉기도 했다. 좀 더 근사한 생일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녀석이 케이크를 내려놓자마자 곧바로 녀석을 꽉 끌어안았다. 숨이 막히다며 내 등을 아프지 않게 때렸지만, 빈틈없이 어깨와 허리를 잡아 당겨 바짝 다시 안았다. " 이건 명백하게 재수 없는 플레이야. 반칙이라고. " 어색하게 허공에 맴돌았던 녀석의 손이 내 허리를 감싸 안았다. 뛰는 가슴만큼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고 하기 힘들어 쌓아두기만 했던 말들을 조심스럽게 꺼내는 녀석이 너무 고마웠다. " 예전에 한번은 샤키 발에 촛농이 떨어져서 너무 놀란 적이 있었어. 내가 떨어트린 촛농이 너무 너무 뜨거웠을 텐데 쪼그만 게 내 생일이라고 짖지도 않고 낑낑 거리지도 않고 내 무릎으로 올라와서 꼬리를 흔들고 얼굴을 핥아줬어. 난 그게 너무 고마워서 크게 소리내서 울었어. " " 응.. 그랬어? " 샤키와 단 둘이 보냈을 생일이 방금 일어난 일처럼 그대로 상상이 되서 가슴이 많이 저려왔다. " 그렇게 늘 샤키가 내겐 전부였는데. 오늘은 신기하게도 네가 먼저 떠올랐어. 근데 얼굴은 넌 샤키처럼 내 얼굴은 핥지 마 " 금세 키득 거리며 바보같이 웃는다. " 다음에는 내가 샤키처럼 하루 종일 옆에서 축하 해줄게. " 대답 없이 웃는 목소리엔 힘이 하나도 실려 있지 않았다. 그리고 서서히 몸을 뗀 녀석이 시계를 보더니 많이 늦었다고 급하게 몸을 돌아섰다. 붙잡을 틈도 없이 다음 스케줄 잘 하라는 말만 남기고 유유히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갑자기 품에서 녀석이 사라지자 모든 것이 사막의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터덜터덜 계단을 천천히 올라가는데 자꾸만 녀석의 야윈 등이 떠올라 여러 번 숨을 나뉘어 쉬었다. 그런데. " 너 왜 울어?? " " 형 왜 울어요?? " 씨발 나 울어? 갑자기 범벅된 눈물로 흉측하게 등장한 내 모습을 본 창민과 재중이 늘어지게 앉아있던 쇼파에서 벌떡 일어나 눈을 휘둥그레 키웠다. 그리고 팔을 붙잡으며 왜 우냐고 걱정스럽게 물어보는데 가슴이 먹먹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우스운 발음이 되었다. 창피한 것도 없었다. 정말로 울고 싶었으니까. " 흐엉 즌수가 흐흐어 생일인데 어엉 지나치코 씨바흐어엉 미안해서 흐엉 죽거시프다 흐허엉엉 " " 그러니까, 준수형이 오늘 생일인데 그냥 지나친 게 미안해서 죽고 싶다고? " 번역 업체에 번역을 의뢰한 것처럼 아주 하나도 빠짐없이 유창하게 해석한 창민이 위대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 뭘 그런 것 같고 울어 쌉니까? 황PD 재수 없으니까 이따가 생방송으로 축하송 날려요. " " 응 그래~ 유천아 울지마아.. 뚝! " 심창민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눈물이 뚝 하고 멈췄고 빠른 손놀림으로 녀석에게 다음 스케줄 생방송이니까 잠들지 말고 꼭 끝까지 보라는 문자를 보내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 간부급 연줄로 아직까지도 음악프로를 맡고 있는 황PD는 지금도 싹수가 더러웠다. 데뷔를 하자마자 정실장과 방송국을 층층마다 돌아다니며 홍보용 파일과 CD를 PD들과 관계자 양반들에게 전달할 무렵이었다. 난생 처음 내놓아라 하는 유명 PD들을 만나며 폴더 접히듯 90도 이상으로 인사를 하며 무조건 웃어야만 했기 때문에 입은 경련되듯 떨리기 까지 했었다. 그렇게 수백 번을 인사를 하며 여기저기 돌고 있는 우리들을 처음 보자마자 황PD가 이렇게 말했었다. ' 동방신기 보름 안에 쪽박친다에 내기 걸사람 어디 없쑤? ' 분명하게 말하자면 정실장 귀에 제대로 안착된 고의적인 음성이었다. 정실장도 방송국쪽 높은 관계자들 사이에 높이 평가받고 있었던 사람도 그렇다고 정확한 연줄이 있는 사람도 전혀 아니었다. 그런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얼어붙어 있는 우리들을 대놓고 비웃은 추태가 참기 힘들었는지 그 PD가 제안한 딜에 과감하게도 그 자리에서 동참했다. 그리고 무려 정실장이 건 딜의 조건은 ' 우리 애들이 보름 안으로 황PD님 프로에서 1위하면 MC 자리 주시겠습니까? ' 였다. 그리고 황PD뿐만 아니라 이런 터무니없는 제의에 다들 숨을 죽여 가며 비웃는 꼴들을 선보였었다. 이에 흥이라도 탔는지 딜을 받아들인 황PD는 ' 그렇다면 1위를 못하면 나한텐 뭐가 돌아오는가? ' 라고 되물었고 이에 대해 정실장은 ' 원하시는 조건이 있으면 얼마든지 제시 하십쇼. 구두를 핥으라면 핥을 테니. ' 이에 대해 참 쿨한 젊은일세 하며 재밌다는듯 너스레를 떨었다. 꽤나 기분 좋게 어깨가 으쓱 거렸는지 그 제안을 그 자리에서 승낙했었다. 그리고 보기 좋게 보름 만에 3년 동안 MC자리를 지켜왔던 연기자가 하루아침에 잘렸고 셋이 MC를 보게 된 엄청난 일이 기적처럼 일어났었다. 아직도 개기름 흐르는 황PD 얼굴을 보면 그때의 목소리 톤이 떠올랐다. ' 동방신기 보름 안에 쪽박친다에 내기 걸사람 어디 없쑤? ' 근처에 볼 일이 있었던 정실장이 무대 밑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정실장 옆으로 살금살금 다가온 황PD가 재수 없게 귓속말로 접대용 웃음을 날리고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헛구역질이 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무표정으로 그런 황PD의 얼굴을 주시한 눈빛이 냉랭하자 금세 깨갱거리며 자리를 다른 쪽으로 옮긴 뒷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날의 비소를 기억하듯 우리 셋은 1위를 타자마자 하고 싶은 말들만 내뱉기 시작했다. 옆에서 마지막 멘트를 해야지 종료되는 프로였기 때문에 안절부절 하며 뺏긴 마이크를 다시 잡으려 했지만, 이에 굴복하지 않고 셋이서 무턱대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생방송으로 난데없는 생일 축하송이 전파를 타고 전국적으로 방송되고있는 현장이었다. "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 창민의 목소리다 압도적으로 컸다. 황PD는 MC를 향해 타박하며 자꾸만 우리를 자르라고 손짓했다. 하지만 율동을 가미한 우리들은 무대를 방방 뛰어다니며 미친놈들처럼 아가미 호흡이 달린 사람들처럼 훌륭하게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이런 우리들을 보며 정실장이 무표정으로 기립 박수를 쳤다. 존나 아래가 꼴리듯 통쾌했다. " 사랑하는 준수의!!!!!!!!!!!!!!! 생일 축하합니다!!!!!!!!!!!!!!!!!!!! " " 준수야 생일 축하해!!!!!!!!!!!!!! " 방송 타임오바로 마지막 내 멘트 끝으로 내 얼굴이 줌인 되었고 곧바로 화면이 페이드아웃 하고 사라졌다. 이제야 살 것 같이 마음이 금세 풍요로워졌다. 그런데 씨발 누구는 감동에 겨워서 무대 위에서 숨을 고르며 웃고 있는데 이런 나를 두고 김영웅재중과 심창민이 벌써 멀리 도망가고 있었다. 그리고 A4를 말아쥔채 옷을 걷으며 무대 위로 섬뜩하게 올라오고 있는 개기름 황PD가 무섭게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지막 구원의 손길이자 유일한 희망인 정실장이 있었던 자리로 시선을 홱! 돌렸지만, 아니나 다를까 이미 연기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준수의 말대로 정실장이 손오공이라면 주문을 외우고 싶었다. 존나 두개골이 깨지도록 두통을 일으켜서라도 이곳으로 데려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래도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렇고 저렇고 나에게 삿대질을 하며 훈계하는 황PD도 그냥 다 이뻐 보였다. 헤실헤실 꾸중을 들어도 웃는 내가 어이없었는지 기어이 중간에 포기를 하고 헛웃음을 날리고 씩씩 거리며 내려갔다. 저 씨발놈이 내가 똥이냐? 더러워서 피한다는 표정 치워줄래? § 내일 올라올 일정을 무리하게 앞당겨 당일날 서울로 올라왔다. 오늘도 많이 늦으니까 쇼파에서 잠들지 말고 숙소에서 잠드는 연습을 해보라고 여러 번 재중을 설득 시켰다. 재중에게 한번 생긴 지독한 불면증은 정실장이나 수면제 없이는 쉽게 잠이 들지 못할 정도로 오래 지속되었다. 그런 재중을 정실장이 여러 번 오피스텔로 데려와 잠이 재우기도 했었다. 정실장의 당부도 잊은 채 혹시라도 제 고집대로 불편한 자세로 쇼파에서 잠들었을 재중 생각에 피로함을 무릅쓰고 오피스텔에 도착했다. 아니나 도어락이 풀리자마자 보이는 거실 쇼파위에 달랑 속옷만 입은채 고개가 살짝 옆으로 꺽어진채 쭈그리고 앉아서 눈을 감고 있는 재중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정실장의 눈썹이 작게 꿈틀 거렸다. 슬리퍼를 신고 슈트를 벗으며 쇼파로 다가가 아직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을 만져보았다. 그리고 머리를 말리다가 잠이 들었는지 쇼파 옆으로 마른 수건 하나가 놓여있었다. 그리고 재중의 몸을 살피던 눈이 재중의 팔 뒤꿈치 뒤쪽으로 이동했다. 재중은 감기약을 먹으면 팔 뒤꿈치 뒷부분이 분홍색으로 물이드는 알레르기가 있었다. 혼이 날까봐 감기 걸렸단 소리도 못한 채 혼자 약을 먹었는지 표정이 굳은 정실장이 행여나 감기가 심해질까 염려스러워 수건을 들어 천천히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곧바로 누군가의 손길인지 머리가 인식했는지 눈을 몽롱하게 뜬 재중이 잠결을 이기듯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곧바로 재중의 허리를 잡아 안아 올려 침실로 데려가는 발걸음이 바쁘게 보였다. 이미 차가워진 몸을 침대에 앉히고 시트를 재중의 어깨위로 올려 감싸 안았다. 그리고 마저 머리를 말리는 손길이 부드러웠다. 기분이 좋아졌는지 눈을 감고 히죽 웃어댔다. " 감기 걸린 거 자랑해? 누가 속옷만 입고 있으랬어. " 이번에도 애교로 넘어갈 작정인지 정실장의 허리를 끌어안고 고개를 저었다. 매번 혼나는 게 싫은 모양인지 곧 죽어도 잘못했다는 소리는 안했다. " 식은땀이 자꾸 나서 몸이 찝찝하잖아. 그래서 씻었는데 입고 온 거 다시 입기 싫어서 " " 병원은 다녀왔어? " 고개를 끄덕인다. 곧바로 이마위로 손을 올려 열을 체크한 정실장이 걱정할만한 온도는 아니었는지 곧바로 욕실로 이동하면서 방의 온도를 그래도 더 높여놓았다. 일단 서둘러 샤워를 하고 1시간이라도 잠을 더 재워야겠다는 생각에 욕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 템포 빨랐다. 급하게 샤워를 마친 정실장이 곧바로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고, 이리저리 뒤척이던 재중의 몸을 돌려 팔베개를 해주었다. 그러자 정실장 품에 깊숙이 파고드는 몸짓이 위태롭게 파르르 떨려왔다. 다시 이마 위에 열을 체크한 정실장이 재중의 마른 등을 일정한 간격으로 두들겨 주며 편안하게 잠이 들도록 유도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오늘따라 이리저리 동공을 움직이며 쉽게 잠이 들지 못한 재중 때문에 덩달아 감기 때문에 아파서 뒤척거리는지 걱정이 되기 시작한 정실장이 토닥이던 손을 내리고 재중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 왜 몸이 많이 안 좋아? 못 자겠어? " 할 말이 너무 많아 오히려 말 못할 사연이라도 있는 것처럼 고개를 힘없이 돌린 재중이 정실장의 매끄러운 콧잔등 만지고 촉촉한 입술을 살짝 매만지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재중의 까만 동공 가득 어지러운 감정들이 떠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뭔가 말하고 싶은데 고민하는 눈치가 역력하기도 했다. 정처 없이 움직이는 손가락을 잡아 세우고 재중의 눈을 똑바로 주시하며 걱정스레 물었다. " 재중이 형한테 하고 싶은 말. 있어? " 대답대신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어느새 길어져 눈을 가리는 앞머리를 위로 올려주며 불안한 눈동자에 보답하듯 재중의 이마위로 짧게 키스를 했다. " 왜 형한테 하기 힘든 말이야? " 도리도리 고개를 내젓고 곧바로 볼멘소리를 낼 법도 한데 자극받는 질의 붉은 입술은 쉽게 열려질 생각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한잠도 자지 못한 두 눈이 다음날 붉게 충혈될 것이 뻔했다. 다시 재중이 편안하게 잠이 들 수 있도록 허리를 잡아 바짝 눕혔다. 그런데 곧바로 정실장의 어깨를 가볍게 밀친 재중이 기어이 더듬거리며 볼멘소리를 냈다. " ㅎ..형아는.. 나랑 틀려? " 당황한 정실장은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재중을 바라보았다. " 틀리다니 무슨 말이야? " 말하기 힘든지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순간 가슴이 서늘하게 얼어붙었다. 다시 한 번 용기를 내듯이 정실장의 눈동자를 바라본 재중은 마음속으로 셋을 외치듯 고개를 세 번 흔들더니 입술을 움직였다. " 그러니까 나는 그래도.. 이 만큼 건강한데.. 그게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어? " " ... 어? " 이번엔 화가 나는지 재중의 하얀 얼굴이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 형아.. 왜 잘 알면서 매번 침대에서 나 피해. 내가 아직 건강하지 못해서 그런 거야? 아니면.. 그러니까 아니면 다른.. 그러니까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거야? " 정실장은 그제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재중은 아직도 그때의 불안함이 내장되어있었는지 쉽게 정실장 곁을 떨어지지 않을 뿐더러 오피스텔 아니면 잠을 쉽게 이루지도 못했다. 그런 재중을 가볍게 불면증으로 여겼었다. 그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데 재중의 행동이 미묘하게 많이 달라져있었다. 입고 있던 옷을 훌러덩 벗고 잔다거나 애교를 부리듯 여러 번 얼굴에 짧은 키스를 하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귀엽다는 듯 재중의 등을 토닥이고 머리를 쓸어 내려준 게 전부였다. 그게 화근이었는지 여러 번 고민을 했을 얼굴이 울 것처럼 순식간에 변하고 있었다. 예고 없는 반응과 질문에 정실장은 크게 당황해 하고 있었다. 다만 아껴주고 싶은 마음에 시간을 맡겼을 뿐이었고 조금 더 건강해지면 그때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 게 재중의 불면증을 불러온 모양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수면제 먹고 잔다는 애를 혼을 냈으니.. 할 말은 잃은 정실장이 이 엉킨 실타래를 어떤 방법으로 차근차근 풀어 나가야 할지 머릿속이 뒤범벅되었다. " 재중이 혹시라도 나쁜 생각했었어? " 곧 떨어질 것처럼 눈에 눈물을 매달고 고개를 저었다. 많이 고민했던 모양인지 미간을 좁히고 정실장을 얄밉게 째려보는 눈빛이 미안하지만 그저 사랑스러웠다.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재중이 잘 이해할지 난감했던 정실장이 무작정 재중을 바짝 끌어안았다. 그리고 눈물이 멈추길 기다리면서 재중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 사랑한다. 재중아 " 울음을 그치라고 전한 말이 더 큰 울음을 불러왔는지 어깨가 들썩이고 순식간에 가슴이 뜨겁게 적셔졌다. 눈물이 넘쳐 말하기 쉽지 않은 이름을 울먹이듯 말하는 재중의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다. " 흐읍..사랑해.. 형아.. " 가슴이 시큰시큰 아려왔다. " 사랑해 재중아. 형이 정말로 많이많이 사랑해. " 울음이 멈춘 재중의 몸 위로 상체를 옮긴 정실장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재중에게 다시 한 번 괜찮아? 라고 소리 없이 물어보았다. 그리고 대답 없이 정실장의 목에 팔을 감은 재중의 젖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눈을 감자 금세 눈에 맺힌 눈물이 양쪽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이제야 제대로 닿은 입술이 허물어지듯 깊숙한 곳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 너 그때 이러려고 나한테 잘해 준거였어? | My Melody 15 My Melody w. 킵 * * * 매혹적으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재중의 나신은 손으로 만지면 하얀 꽃가루가 묻어날 것처럼 뽀얗게 물들어 있었다. 동작마다 고양이처럼 우아하고 느긋한 힘이 미약하지만 아름답게 넘실거렸다. 예고되지 않은 잠자리였기 때문에 아무것도 준비 못한 정실장에게는 콘돔이 전부였다. 무엇보다도 처음으로 느끼게 될 생경한 고통에 혹시라도 재중이 호흡하기 힘들어지지는 않을까 라는 염려스러운 걱정이 욕정 보다 앞설 만큼 정실장은 차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재중의 몸에서 피워지는 참을 수 없이 끈끈하고 뜨거운 늪은 정실장 피부의 모든 세포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용기를 내어 그동안에 담아두었던 표현을 홧김에 풀어놓기는 했는데 막상 긴장된 나신은 더 없이 뻣뻣해 갔다. 이런 재중과 다름없이 강한 충동과 혼란스러움 앞에 눈동자가 수시로 빛나고 있는 정실장의 눈빛에 사뭇 정사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살갗만 맞대었을 뿐이었는데도 쭈뼛하게 치솟아 오른 모든 말초신경들이 순식간에 자극되었다. 몸은 점점 뜨겁게 달아올랐다. 눈을 아래로 내리자마자 보이는 재중의 하얀 허벅지가 정실장의 눈을 어지럽혔다. 붉고 뜨겁게 닫아있는 입술의 고운 선을 따라 정실장의 혀가 부드럽게 그림을 덧칠하듯 움직였다. 조금씩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빨아들이는 힘에 재중은 저절로 달짝지근한 숨을 뱉었다. 그리고 뜨거운 숨을 토해내느라 살짝 벌어진 그 좁은 틈을 순식간에 비집고 들어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동안 참아왔던 절절한 욕망들이 나지막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중의 절박한 호소를 들은 정실장의 심장이 자꾸만 욱신욱신 아프게 조여 왔다. 치열을 훑고 축축하게 젖은 혀를 옭아 빨아드리는 혀놀림이 점점 집요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피어오르는 열기는 재중의 온몸 구석구석에 뜨거운 불을 질렀다. 격정적으로 온 몸이 부들 거릴 정도로 입 안을 헤집고 다니던 혀가 다시 몸을 웅크리듯 재중의 치열을 부드럽게 훑으며 입천장을 살살 간질였다. 그 뜨겁고 생경한 혀놀림에 숨이 막혀 참을 수 없는 감각이 아래로 밀려 나갔다. " 하아, 하아…….” 혀의 감질나는 희롱에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신음이 재중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왔다. 재중의 청아하던 향기가 뜨겁게 달아올라 고혹적인 빛으로 정실장의 욕망을 빠르게 들쑤셨다. 재중의 입 안에서 빠져나온 혀는 곧바로 재중의 귓바퀴를 잘근 깨물고 진득하게 빨아 올렸고 동시에 타액이 질척거리는 소리가 재중의 고막으로 부드럽게 닿았다. 정실장의 속삭임과도 같은 뜨거운 숨결에 한껏 달아오른 재중은 뻣뻣하게 굳은 나뭇가지처럼 얇은 팔을 들어 정실장의 단단한 목에 둘렀다. 귓속이 뜨겁게 질척거릴수록 모든 뜨거움이 아래로 쏠려졌지만, 멈출 조짐이 없는 혀는 집요하게도 재중이 반응하는 부위를 반복적으로 츄-읍 빨아들이며 뜨거운 재중의 신음을 불러 모았다. " 앗, 앗항…… 하아…….” 단단한 근육으로 다져진 정실장의 몸이 재중의 여린 사지를 사정없이 포박해 재중은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자꾸만 커지는 신음이 부끄러웠는지 재중이 입술을 잘근 잘근 깨물며 숨을 간헐적으로 나누어 쉬기 시작했다. 입술이 순식간에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재중의 숨소리만으로도 지금 입술을 버릇처럼 아프게 깨물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정실장의 길고 가느다란 검지 손가락 하나가 난데없이 뜨겁게 달궈진 재중의 입속으로 부드럽게 말려 들어왔다. 이로 인해 안에 고여 있던 타액이 입가로 흘러내렸다. 그 타액을 다시 입 안으로 가져가며 정실장이 혼내듯 말했다. " 형이 입술 깨무는 습관 고치랬지. " 입 안으로 들어온 손가락은 모질게도 도망가기 바쁜 재중의 혀에 금세 닿았고 서늘한 손가락의 감촉을 따라 자동으로 혀가 함께 얽혀 들어간 재중은 어쩔 수 없이 터지는 신음에 크게 칭얼거리듯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어느새 나머지 한쪽손이 분홍빛으로 딱딱하게 솟기 시작하는 유두를 두 손가락으로 감싸고 서서히 문지르자 긴장했던 재중의 아랫배가 꽉 조여들었다. 숨이 쉽게 토해지지 않아 입술이라도 잘근 깨물고 싶은 욕구가 들었지만 자꾸만 손가락으로 혀를 감싸듯 정실장의 검지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통에 참을 수 없는 감각이 여기저기서 동시에 밀려들어왔다. 하지만, 어느새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쾌락으로 이미 다른 한쪽 유두를 입안에 가득 물은 정실장의 입술이 재중의 사정도 봐주지 않은 채 정신없이 빠르게 물고 늘어지듯 빨려졌다. 츄-읍 소리가 야하게 들려왔다. 재중은 충격적으로 몸을 떨면서 허리를 틀며 정실장의 입술을 피하려 들었다. 하지만 나약하게 포박된 허벅지로 인해 고개만 저어질 뿐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순식간에 하복부로 은밀한 열기가 뜨겁게 퍼지기 시작했다. 정실장의 감질나는 희롱에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재중의 신음이 더욱더 커졌다. " 읏, 읏항…… 앗항…… 형아…….” 다시 입술을 세차게 깨물려고 하자 위로 올라온 정실장의 입술이 재중의 입술을 다시 포박해 신음을 참으려는 재중을 저지했다. 대신 달뜬 호흡과 신음의 소리는 정실장의 입 안으로 메아리쳤다. 다시 얽혀진 혀에 정실장의 목을 끌어안은 재중이 시간을 벌이는 것처럼 꽉 껴안고 놔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재중의 손짓에 정실장의 예리한 갈망이 더욱 불어왔다. 손가락이 재중의 척추를 타고 감각적으로 더듬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손을 피해 이리저리 허리를 뒤트는 재중의 허벅지를 다시 포박하고 울 것 같은 눈 커플에 짧은 키스를 여러 번 나누어 했다. 그러자 금세 좁혀진 미간이 보기 좋게 펴졌다. 곧바로 상체를 낮춰 쇄골에 닿은 입술이 한참동안 한 곳에 머물렀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집착하던 입술이 꼿꼿하게 솟아오른 장밋빛 유두를 다시 혀로 희롱했다. 그러자 재중의 허리가 아찔한 감각에 겨워 아름답게 흔들렸다. 아무리 많은 량의 젤과 콘돔을 사용했을 지라도 경험이 없는 재중의 딱딱한 내벽은 미세하더라도 출혈이 나오는 상처를 감수해야만 한다. 그래서 가급적 충분한 애무 후에 애널을 부드럽게 넓히려 고자 하는 정실장의 잠재된 배려가 있었다. 하지만 의지와는 다르게 자꾸만 거칠게 변하는 자신의 욕정을 부여잡고 속도를 낮추는 정실장의 마음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어느새 정실장의 손에서 애무되고 있는 유두는 좀 더 발갛게 충혈 되듯 빳빳하게 솟아올랐다. 다시 가슴을 지나 얇은 허리를 지나 배꼽에 닿은 입술은 여러 번 비틀어지는 재중의 허리를 압박하며 반복적으로 힘들어하는 부위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팽팽해진 재중의 표피가 잘 벗겨져 예쁘게 자리 잡힌 페니스가 정실장의 손안에 가득 쥐어졌다. 배꼽에 닿았던 입술이 떨어지자마자 재중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실장을 향해 울먹이듯 애처롭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에 안중에도 없단 듯이 재중의 허벅지를 잡았고 낯선 감촉에 크게 놀란 재중이 벌어지는 허벅지를 자꾸만 오므리려 안간힘을 썼다. 한껏 팽창하듯 부풀어 오른 재중의 페니스를 움켜쥐고 있던 정실장의 손이 일정한 속도로 움직임이 시작했다. 어느새 참을 수 없는 뜨거움으로 지레 놀란 눈이 스르륵 감기고 재중의 몸이 축 늘어지듯이 경직되었던 몸이 풀어졌다. 그리고 곧바로 골반이 부서진 사람처럼 무릎이 정실장의 손길에 따라 힘없이 벌어졌다. 감질나는 손짓에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신음이 다시 커지기 시작했고 어쩔 수 없이 비틀어지는 허리가 자꾸만 활처럼 굽혀졌다가 펴지길 반복되었다. " 하아…… 앗, 읏항…… 하아…… 읏아…….” 정실장의 수동적인 손길에 압도당한 페니스는 하염없이 꽉 차게 팽창하듯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고 터질듯 새빨갛게 충혈 되고 있었다. 몸속이 녹아내리듯 모든 뜨거움이 아래로 고이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가만히 누워만 있을 수가 없었던 재중은 몸 아래 부드러운 흰색 시트에 손톱을 세우고 본능적으로 말아 쥐었다. 참을 수 없는 쾌락에 충격적인 신음이 흘러나왔다. 마지막으로 꾹꾹 오랫동안 담아뒀던 샘이 한번에 휘몰아치듯 울컥울컥 소리내며 하얀 액체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땅이 꺼질듯 몸 안에 모든 것들이 다 빠져나가듯 크게 휘몰아진 쾌락에 숨을 멈춘 재중의 가슴이 잠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재중의 입 안으로 다시 거세게 들어온 정실장의 입술이 재중에게 숨을 불어 넣어주면서 쾌락에 젖어있는 뜨거운 혀를 다시 앗아갔다. 재중은 숨이 다시 확 트이면서 크게 눈물이 날 것 같은 아릿한 가슴에 어쩔줄 몰라하며 정실장의 목을 끌어 안아 단단한 어깨를 미세하게 빨아 물기 시작했다. 흥건하게 젖은 재중의 페니스로 정실장의 손이 옮겨졌다. 울컥 쏟아진 정액을 손가락으로 여러 번 감싸듯 묻히기 시작한 손놀림이 사뭇 진지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충격적인지 몸을 떨면서 정실장의 어깨를 빨기 시작한 재중이 울먹거리듯 자꾸만 정실장 가슴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많이 놀란 건지 힘든 건지 재중의 호흡이 쉽게 분간되지 않은 정실장이 재중의 등을 토닥이며 달래듯 물어보는 목소리가 너무나 다정하게 재중의 고막을 속삭이듯 간지럽게 울리게 했다. " 재중아, 많이 힘들어? 숨 쉬기 힘들면 그만 할까? " 세차게 고개를 흔들면서도 꽉 둘러 안은 팔은 풀어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등을 여러 번 토닥이듯 달래는 손길과 곧이어 결정을 내린 듯 다시 재중의 아래로 내려간 다른 손은 긴장감으로 팽팽하게 수축된 재중의 입구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허리가 튀어 오르듯 ' 히익! ' 소리를 낸 재중이 다시 정실장의 어깨를 잘근 빨아 물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재중의 허리를 안아 올린 정실장이 침대에 등을 기대고 무릎위로 재중을 편안하게 앉혔다. 여전히 달뜬 숨을 내뱉고 있는 재중은 처음이라 많이 놀랐는지 정실장의 맞닿은 가슴에서 떨어질 생각을 안했다. 가슴은 심하게 오르락내리락 거렸고 허벅지 사이엔 나른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마치 나른한 햇살에 등을 힘껏 웅크린 고양이처럼 간헐적으로 교성을 뱉어냈다. 곧이어 자세가 편안해진 재중의 엉덩이를 움켜쥐어 살짝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틈으로 꿀물처럼 질척하게 젖은 검지 손가락 하나를 애널로 향했다. 기다란 손가락이 축축하게 젖기 시작하는 애널 안으로 서서히 들어가자 바짝 숨을 죽이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재중이 강한 수축으로 움직이려는 손을 잡아 세웠다. 입에선 한층 가빠진 교성이 쏟아졌고, 날카롭게 수축된 애널을 풀어주기 위해 움켜쥔 한쪽 엉덩이를 달래듯 정실장이 탁탁 두들겨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부드럽게 이완된 작은 틈을 이용해 한쪽 손가락이 쑤욱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들어갔다. 하얀 나신이 부드럽게 좌우로 비틀거리며 격정에 찬 교성을 참고 있었다. 이제 겨우 하나가 들어갔는데 좁혀진 미간 때문에 정실장의 걱정이 조금 더 늘어갔다. " 너무 아프면 말해. 참으면 혼난다. " " 하아……으응… 나 괜찮아 형아…… 읏아…….” 손가락이 뜨거움을 찾아 안쪽 깊은 곳으로 쑥하니 박혀 들어갔고 안을 넓히듯이 섬세하게 원을 그리듯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입술을 깨물면 다른 손이 입안을 괴롭힐지 두뇌가 인식했는지 정실장의 입술을 찾아 힘겹게 들어온 입술이 귀엽게도 혀를 찾아 스스로 옭아매기 시작했다. 그 틈을 이용해 손가락 하나를 더 늘렸다. 다시 놀란 듯 빠져나가려는 허리를 붙잡고 모든 고통을 혀로 끌어 오르기 시작했다. 다시 천정을 간지럽히고 치열을 훑고 파르르 겁에 질려 떨고 있는 혀를 잡아 여러 번 사랑스럽게 옭아 내리며 쪽쪽 빨아 당겼다. 그제야 자극이 분산되는지 다시 얼굴이 평온해졌다. 완전히 들어간 두 손가락이 다시 원을 그리듯 둥글게 안을 휘젓듯 수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고통이 줄어든 재중이 한쪽 손으로 정실장을 도우려는지 이미 빳빳하게 솟아오르기 시작한 정실장의 페니스를 용기 내어 살짝 잡았다. 이런 재중의 갑작스런 손짓에 본능처럼 욕망이 자극되기 시작한 정실장의 손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점점 어마어마하게 부풀어 오르듯 커지는 페니스를 한쪽 손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지 한 손을 받쳐 다른 한손으로 귀두를 깨물듯 조였다가 폈다가 비볐다 다시 조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어느새 애널쪽 손가락이 세 개로 늘어나 있었다. 아직 쑥 박히지 않은 세 번째 손가락이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고통에 겨워 허리를 크게 비트는 통에 푹 내려앉은 엉덩이로 인해 세 개의 손가락이 쑤욱 하고 소용돌이처럼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크게 당황해 하며 어느새 움켜쥔 정실장의 페니스를 놓쳤다. 그리고 그리 길지 않은 손톱을 세워 정실장의 등을 바짝 껴안기 시작했다. 곧바로 이번엔 재중의 허리를 양손으로 붙잡아 천천히 리드미컬하게 원을 그리듯 둥글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중의 발가락이 오므라들었다. 하지만 몇 번의 자극 뒤에 안정을 찾았는지 어느새 자극되는 부위를 찾아 저절로 재중의 허리가 본인도 모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목을 끌어안고 둥글게 허리 짓을 하는 자태가 숨이 막힐 듯 요염했다. 애널 섹스를 처음 접하는 재중에게 알맞은 체위는 아무래도 후배위가 맞았다. 하지만 처음 하는 교감을 단순히 욕구를 위한 자세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재중의 내벽이 조금 더 힘들어도 돌아가는 방법을 선택한 정실장은 그렇다고 재중을 그대로 눕혀서 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뜩이나 호흡으로 여러 번 숨을 나뉘면서 참은 아이에게 그리 적지 않은 정실장의 상체 무게마저 견뎌내라는 건 처음 관계치고는 어려울 거라고 판단되었다. 어쩔 수 없이 정실장의 상위로 재중을 허벅지 위에 올렸다. 이전보다 숨 쉬기가 원활해진 재중이었지만, 수동적으로 움직이는 허리에 아래로 싸한 고통과 쾌락이 몰려들자 어떤 자세로 앉아야 할지… 이래도 저래도 막막했는지 금세 울상이 되었다. 어느새 꽉 찬 세 개의 손가락이 다시 미세하게 원을 그리듯 재중의 안을 부드럽게 넓혀 가기 시작했고 울먹일 듯 인상을 쓰면서도 정실장의 입술과 어깨를 깨물면서 뜨거운 아래를 재촉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서늘할 정도로 절제를 하고 있는 정실장의 중심을 풀어주고 싶은 마음에 눈물이 나기도 했었다. 그의 배려가 느껴지면서도 말처럼 쉽게 열리지지 않은 애널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느 정도 넓혀진 애널로 가득 들어앉았던 손가락이 별안간 쑤욱 빠져나갔다. 순간 쭈뼛쭈뼛 일어선 신경줄기를 타고 짜릿한 감각들이 재중의 온몸을 휘저었다. 허리와 척추를 부드럽게 애무하던 정실장이 혼동과 쾌락으로 젖은 재중의 붉어진 얼굴을 보며 마지막으로 걱정스레 되물었다. " 처음이라 쉽게 상처가 날 수도 있어. 그러니까 형이 혹시라도 제어하지 못하면 재중이가 상체 들어서 빼 알았지? " " 하아…… 형아…… 빨리, 빨리…… 읏항…….” 고통스러워하는 정실장의 페니스가 눈에 들어왔는지 움츠리기 바빴던 재중의 뜨거운 몸이 스스로 달라붙어 채근하기 시작했다. 곧바로 정실장이 재중의 허벅지를 양손으로 잡아 벌렸다. 벌어진 허벅지 사이로 또다시 보이는 재중의 페니스 역시 간헐적인 숨을 토하며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재중이 뽀얀 엉덩이를 무릎을 꿇고 스스로 들어 올렸고 숨을 토하듯 애널에 닿은 페니스를 질척이듯 문질렀다. 정실장의 어깨에 양손을 올린 재중이 눈을 질끈 감았다. 곧바로 애널에 닿은 생경한 이물질에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재중의 허리를 두 손으로 한 번에 잡은 정실장이 천천히 리드미컬하게 애널 안으로 중심부를 넣기 시작했다. 다행히 긴 애무로 넓혀진 입구는 쉽게 들어가기 시작했지만,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중심부가 중간부터 턱하니 막혔다. 하지만 참을 대로 참은 정실장의 중심부가 순식간에 몸 깊은 곳에서 열기가 폭발할 듯 곤두서기 시작했다. 재중의 몸이 인형처럼 파르르 떨리면서 굳어갔다. 그리고 머리가 하얗게 일어났다고 느끼는 그 순간 쑤욱 하니 한껏 가득 차게 들어온 페니스로 온 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듯 한 고통이 몰려왔다. 너무 큰 충격으로 몸을 바르르 떨면서 정실장의 어깨를 급하게 깨물기 시작했다. 자신이 몸을 떨면 떨수록 아래로 전해지는 생경한 고통에 몸도 쉽게 움직이지 못한 재중이 숨을 참듯이 여러 번 배가 쪼그라지듯 힘겨워했다. 재중의 탄력 있는 하얀 가슴으로 혀를 옮긴 정실장이 꼿꼿하게 세워진 유두를 애무하듯 거세게 빨아 올렸다. 이전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강하게 조여 오는 고통과 쾌락에 신음이 다시 쏟아진 재중의 허리가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같이 움직이는 가득 조인 페니스에 온 몸이 파르르 떨려왔다. 크게 부풀은 페니스에 맞게 어느 정도 애널이 넓혀지자 곧바로 시간 지체 없이 재중의 가녀리게 떨리고 있는 허리를 양손으로 잡은 정실장이 강하게 밑으로 허리를 내리 잡았다. 놀란 눈이 키워져 신음소리마저 잠들었다. 다시 한 번 허리를 두 손으로 잡아 강하게 바짝 잡아 꽂듯이 아래로 당기자 그제야 뿌리 깊숙이 박힌 페니스가 재중의 안으로 정확히 들어앉았다. 찰박, 찰박 허리가 강하게 아래로 내리꽂아질 때마다 부딪히는 소리가 음란하게 방안을 가득 메웠다. " 아흑!!!!! 읏항……앗항!!!! ” 단단하고 무거운 다리가 재중의 하얗고 가느다란 허벅지를 누르며 움직이지 못하도록 했고, 깊숙이 닿아 꽂아지듯 여러 번 거세게 박혀지는 행위에 재중이 허리를 피하려 들었지만, 다시 단단하게 재중의 허리를 잡아 여러 번 반복적으로 강하게 아래로 내리 꽂기 시작한 정실장이 뜨거운 숨을 그제야 토해내기 시작했다. " ……후우……. " " 흐읏……으, 앙아……앙……흐응…… " 허리를 잡은 손이 강한 충격을 요하듯 재중의 탄탄한 양쪽 엉덩이를 움켜쥐듯 다시 잡았다. 나약한 허벅지가 정실장의 허리를 감싸듯 둘러 모아졌다. 애널은 바깥으로 내쫓도록 되어있어 본능적으로 안으로 자극을 받게 되면 순식간에 괄약근이 조여지기 나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서는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해야지 정실장도 덜 고통스러웠다. 몇 번 지나간 흔적이 그 방법을 일깨우듯 정실장이 재중의 엉덩이를 가볍게 툭툭 쳐댔고 헐렁해진 애널의 틈을 이용해 다시 강하게 뿌리 깊숙이 박히도록 엉덩이를 내리꽂았다. 저절로 재중의 목덜미가 뒤로 꺾어지듯 휘어졌다. 깊숙이 밀려들어온 페니스가 점점 팽창하기 시작해 꼭 죽을 것만 같았다. 재중의 비틀어진 허리 짓이 절박해질수록 찰박대는 소리가 요란해졌다. " 아……하응…앗, …히잉……히흣! " " …읏…. " 전립선이 여러 번 긁어지듯 자극된 재중이 정실장의 어깨에 묻은 얼굴을 자동으로 세게 들어 올려 힘껏 뒤로 젖혔다. 활처럼 휘어진 허리와 한편으로 정실장의 허리를 크게 다리로 조인 몸이 딱 재중의 내벽 안에 알맞게 꽉 차게 들어와 그 안에서 거세게 다시 팽창하기 시작했다. 비단결 같은 재중의 허벅지를 쓰다듬고 빠르게 움직이는 재중의 목젖을 혀로 빨았다. 고통을 넘어선 쾌락에 재중이 조절하면서 조여 오는 애널에 묵직하고 크게 부풀어 오른 페니스가 재중의 안에서 힘들게 숨을 쉬고 있었다. 다시 재중의 엉덩이를 움켜준 정실장의 손이 이번에는 쉴틈 없이 반복적으로 빠르게 허리를 땅 속 깊이 박히듯 내리 찧기 시작했고 재중의 허리가 그의 손짓에 따라 크게 동요하듯 움직이고 허공에 멈춘 나뭇가지처럼 마른 손바닥이 침대 시트를 말아 쥐었다. " 흣하아……혀엉!! 형아!! ……아, 으응, 앙, 나 쌀 것 같애……. " 하지만, 뒤로 젖혀진 얼굴로 쏟아지는 절정에 다다른 신음소리가 간절히 정실장을 원하고 있었다. 다시 빠르게 깊숙한 내벽을 향해 힘차게 돌진해 들어온 페니스는 쉽게 빠져나갈 생각 없었다. 그럴 때마다 재중의 전신이 더욱 더 격정적으로 거세게 흔들렸다. 그 순간 깊숙한 내벽에 맞닿아 있던 그가 딱딱하게 팽창하면서 마지막 정점을 향해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 빠르게 체위가 바뀌었다. 재중의 머리가 딱딱한 침대 기둥에 아프게 닿지 않도록 푹신한 하얀 베개를 대었다. 안에 가득 들어온 페니스로 조금만 움직여도 고통이 엄습 했는데 그 자세 그대로 순식간에 누운 자세가 된 재중의 놀란 눈이 확 떠졌다. 동시에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았다. 정실장은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 이전과 몇 배는 다른 속도로 애널 안으로 깊게 들어온 페니스로 놀란 재중이 내벽이 빠르게 수축하면서 정실장의 욕망을 강하게 옥죄여왔다. 재중의 입에서 한층 가빠진 교성이 쏟아졌다. 어쩔 수 없이 놀란 쾌락은 정실장의 목을 강하게 잡고 입술을 찾아 울먹이듯 츕츕 빨기에 바빠졌다. 곧바로 힘없이 늘어진 재중의 앙상한 한쪽 발목을 어깨위로 올린 정실장이 여러 번 재중의 눈가에 입술을 맞추었다. 파르르 떨리는 눈가 사이로 기어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뱃속으로 페니스가 들어온 느낌이 들 정도로 강하게 다시 박혀 들어왔다. 이전과 다른 찰박, 찰박한 소리가 여러 번 절박하게 들려왔다. 놀란 재중이 몸부림치며 정실장의 등을 탁탁! 여러 번 때렸다. " 흐읏……아흑!!!!!! 앙아,……읏항……흐억!!!!!!……. " 하지만, 내벽 깊숙한 끝을 향해 거칠게 파고드는 정실장의 움직임이 점 점 더 빨라져갔다. 금세라도 쏟아내고 싶은 마음에 구토가 몰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재중의 허리가 크게 휘었고 곧바로 척추를 타고 치달리던 아찔한 감각들이 각 세포에 이르러서 뜨거움에 작렬하였다. 정실장의 뜨거운 맥박이 깊숙한 곳에서 화산처럼 치솟으려던 찰나에 급하게 페니스를 쑤욱 뺐다. 울컥 울컥 용솟음치듯 여러 번 나오는 하얀 액체를 정실장이 손으로 받아냈다. 그와 동시에 재중도 힘없이 벌어진 아래에 하얀 액체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고통이 환희로 바꿔진 그 순간 결국 눈물을 흘렸다. " 흐읏……아흑!!!!!! 앙아,……읏항……흐응……흡흐엉엉……흐아엉……. " 안에 가득 들어있던 처음 느껴보았던 생경한 고통이 순식간에 빠져나가자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재중이 울음부터 새어나왔다. 입술이 벌어졌고 자신의 손안에 묻은 하얀액을 어쩔 줄 몰라 했다. 다섯 손가락을 온전하게 쫙 피고 당황해 하고 있었다. 순간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엷게 미소를 띤 정실장이 티슈를 여러 장 뽑으며 누워있던 재중의 허리를 다시 잡아 무릎위로 올렸다. 그리고 정성스럽게 손가락 하나하나 마디마디에 묻은 하얀 액들을 닦아주기 시작했다. 흐어엉 거리면서도 안 닦긴 다른 손가락을 내미는 통에 다시 정실장의 웃음이 피식 새어나왔다. 이런 정실장의 웃음에 비웃음을 당한 아이처럼 정실장의 가슴을 살짝 밀치면서 얄밉게 째려보는 눈 위로 정실장의 뜨거운 입술이 사랑스럽게 닿았다. " 아파서 우는 거야, 좋아서 우는 거야? " 눈물이 창피한지 손등을 들어 눈물을 훔친 재중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도저히 안 되겠는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듯 팔을 들어 정실장의 목을 다시 꽈악 끌어안았다. 아직까지 숨통이 조인 듯 숨 가쁘게 토해지고 있는 재중의 약한 애널이 보였다. 정실장이 뒤를 재확인하듯 입구에 손가락을 갖다 대자 예고 없던 손가락에 지레 놀란 재중이 허리를 들어 올리고 정실장을 째려봤다. 그리고 억누른 분노를 새침하게 내뱉었다. 많이 아팠던 모양이었다. " 아파! 아파! 거기 아파!!! " 한번 피워진 웃음이 쉽게 잦아들지 않는지 입술을 지그시 깨문 정실장이 자꾸만 피식 거리면서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여러 번 끄덕거렸다. 그렇게 아프다고 화낸 사람처럼 여러 번 소리 질러도 정실장의 목을 끌어안은 팔은 떨어지려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이런 재중을 가볍게 들어 올린 정실장이 곧바로 욕실로 향해 걸어 들어갔다. 혹시라도 소량의 정액이 재중의 내벽 안에서 굳을까 염려스러웠는지 빠르게 샤워기의 온도를 맞추는 손길이 사뭇 진지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온 몸에 후유증이 고스란히 전해지는지 앓는 소리를 하듯 떨어질 기색이 없는 재중의 허리를 다시 안아 올렸다. 어느 정도 온도가 맞춰지자 욕조 안으로 들어가 재중의 애널로 물을 가져갔다. 그리고 이미 넓혀진 애널로 손가락 하나는 아주 쉽게도 쑤욱 들어갔다. 그 고통을 머리가 인식했는지 다시 바짝 긴장한 재중의 등을 토닥이며 내벽 안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그제야 정실장의 의도를 알아차렸는지 재중의 몸이 나른하게 늘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실장에게 몸을 맡긴 재중이 앙증맞게 잠이 들었다. 정실장의 입가에 머무른 웃음꽃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흘러내린 앞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며 붉게 물든 입술위로 가볍게 키스를 하며 말했다. " 재중아, 오늘도 잘 자. " § 한참을 고민하다가 녀석과 어울릴만한 펜던트를 직접 디자인해서 맡겼다. 생각보다 심플하게 제작되어 가벼운 발걸음으로 총총히 숙소로 향해 갔다. 펜던트의 모양은 푸르고 넓디넓은 하늘에 매일 떠 있는 태양과 구름으로 모티브를 잡았다. 태양은 녀석이고 구름은 나다. 히히히. 방정맞은 웃음소리가 창피한 줄도 모르고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런걸 디자인해서 맡길 일이 생기다니 난데없이 어깨가 움츠러들면서 부끄럽게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누가 뭐라 해도, 그래도 나만의 사랑은 내 안에선 최고의 걸작이 될 수 있다. 어린아이처럼 유치한 사랑놀이 하나로 즉석에서 시 한편이 저절로 그려질 만큼 난데없이 음유 시인이 되기도 했고, 유능한 화가가 되기도 했다. 펜던트를 녀석에게 건넬 생각에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마음이 들썩 들썩 높이 들떴다. 오늘 펜던트가 나오자마자 마치 잘 나온 성적표처럼 녀석에게 달려가 칭찬을 받고 춤이라고 추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한적한 지방에 반려동물 납골당으로 샤키를 오랜만에 만나러간 녀석이 오늘은 조금 늦어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숙소에 얌전히 박혀있으랬다.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말을 잘 들었는지 전화하면서도 화상통화처럼 고개까지 연신 끄덕이며 숙소로 걸어 들어왔다. 달은 희고 바람 맑아 흥이 절로 나는 밤이었다. 휘파람을 불며 숙소로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심창민은 야동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저 새끼는 겨울에만 야동을 봤다. 여간 특이한 취향이 아니었다. 하지만 만들어낸 이유는 정확하고 흠잡을 구석이 없어서 이젠 묻지도 않았다. 겨울이라 아직 찬바람이 스물 스물 들어오는 테라스는 역시나 얼음 창고처럼 오래있으면 추워서 못 견뎠다. 그런데 녀석은 꼭 테라스에 파카를 입고 바닥에 책을 깔고 그 위에 노트북을 내려놓고 엎드려서 야동을 감상했다. 신선하게도 언제나 밑에 깔린 책들은 정실장이 반드시 읽으라고 건네준 책들이었다. 오늘 희생된 책의 제목은 ' 우리는 웃기는 리더를 존경한다. ' 였다. 이건 뭐 보나마다 정실장이 고른 아름답고 갸륵한 덕행이 분명했다. 한번은 존나 똘끼 충만해서 건들지도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지만, 이놈의 궁금증은 그새를 못 참고 테라스를 열고 녀석에게 물어봤다. ' 병신아!! 추워 죽겠구먼!! 보려면 방에서 봐!!!!!! ' 말 할 때마다 입 밖으로 나오는 김이 모락모락 연기처럼 피어 올랐다. 그런데 이미 노트북 화면에 푹 빠진 녀석이 1+1처럼 간단하게 대답했다. ' 겨울 난방은 야동이 해결해준다는 사실을 왜 모르십니까? 거~ 좀! 절약하며 삽시다! ' 비싼 보일러 안틀어도 자동 난방 시스템은 야동이 해결해준다는 녀석의 이유에 혀가 내둘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야동 마니아는 아니었다. 차곡차곡 굽듯이 DVD를 쌓아두지도 않았다. 거기에다가 노모는 싫어했다. 모든 이들이 환장하는 HD 노모를 심창민은 유일하게 거부했다. 저 새끼는 대체적으로 남들이 생각한 뇌회로 그대로 가는 일이 전혀 없었다. 언제라도 꼭 저런 식으로 삐딱하게 신호를 위반해서든 유턴을 즐기는 타입이었다. 모든 걸 빠트림 없이 다 보여주는 노모는 매력이 없단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면 우습겠지만, 진짜 돌아이 새끼다. 언제나 추운 겨울이 돌아오면 녀석은 처음으로 야동을 접한 청소년처럼 수백기가의 야동을 다운받았다. 그리고 한번 봤던 동영상이 나오면 사정없이 좋아했다. 그렇다고 진득하게 풀로 다 보는 것도 아니었다. 언제나 빠른 재생이 생명이라며 시간을 단축하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했다. 호~ 하고 불면 확! 하고 입김이 나오는 이 추운 겨울날 내 동생, 우리 막내, 동방신기 리더 창민은 두꺼운 파카를 입고 테라스에서 야동을 보고 웃고 있다. 이른 새벽에 울리는 부엌칼 소리처럼 섬뜩했다. 남들은 이런 리더를 주로 고급 과학두뇌의 초빙이라며 뛰어난 브레인으로 칭하며 부러워했다. 따지고 보면 안무 동선 열 번 알려줘도 못 외우는 노브레인 새끼가!! 왜 똑똑하다 영리하다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이에 대해 녀석은 ' 제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사람이 너무 완벽하면 재미가 없어요. 옜다, 떡밥이다! , 옜다 떡밥이다! 이러면서 빈틈을 일부러 생산시켜 드리는 거죠. ' 라고 해명했다. 진정한 취미는 난방시스템이 훌륭한 겨울 야동시청이거늘, 언제나 취미를 화분에 물 주기로 대답하는 녀석을 볼 때마다 분열성 인격 장애가 의심되었다. 그나저나 이 삑삑이 김영웅재중 새끼는 숙소가 드레드룸이라도 되는지 옷만 갈아입고 처갓집 가듯이 정실장 오피스텔로 미꾸라지 빠져나가듯 숙소에 구정물만 남겨둔 채 유유히 지혼지 살겠다고 쳐나갔다. 예쁘게 키워 놓았더니 저런 돌아이 새끼한테 나를 버리고 도망간 신종 고려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씨발 이 삑삑이 새끼 흑흑. § 생각해보면, 언제나 나는 내 진심이 거부당하는 순간이 익숙한 사람이었다. 학교 앞에서 자주 사먹던 불량식품처럼 개의치 않은 가벼운 이별을 자주 했다. 하지만 익숙한 것과의 이별은 누구나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나 좋은 추억이 없었던 학교와 친구들과도 그랬고, 마지막까지 날 잡지 않은 엄마와의 이별도 마찬가지였다. 이별은 언제나 아득하게 나를 서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 존재를 하찮게도 여겼다. 하지만, 녀석에겐 이별이 익숙한 사람이 되기 싫었다. 짧게 상상만 해도 곧 죽을 것처럼 끔찍했다. 어느새 익숙해진「주인님」이란 이름이 핸드폰 액정에 떴다. 오늘따라 눈물이 스밀 정도로 녀석의 이름이 목소리가 반가웠다. 창피함과 티나도록 간절한 마음을 무릅쓰고 최대한 힘찬 소리로 녀석에게 대답했다. " 준수야!!!!!!!!!!!!!!! 다 왔어??? 어디야!! 어디야?? " 삑삑,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와 함께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막 들어온 모양이었다. " …… 유처나……. " 중생이 독경 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늘어지는 소리의 대한 파장으로 졸음이 오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녀석의 이처럼 달콤하게 늘어지면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는 너무 달짝지근하고 당장이라도 허리를 확 껴안고 싶을 만큼 나를 안달이 나게 만들었다. " 어.. 어!!! 너 지금 들어왔어? 나 지금 가~까아!!?? " 이미 손은 겉옷을 껴입고 있었고, 안달 난 마음에 준수와 함께 목소리는 아기처럼 발음이 쉽게도 새어나갔다. 금세 신이 난 목소리로 호들갑을 떨어댔다. 축지법으로 단숨에 날아가고 싶은 마음에 병신처럼 제 발에 엉켜 넘어질 뻔도 했다. " 유처나…… 나 힘드러엉…… 다리도 너무 아파아……. " " 지금 나가고 있어! 빨리 갈게! 그러게 참았다가 나랑 같이 가자니까. " " 그러게…… 빨리 와아……. " " 전화라도 먼저 해주지! 시간 너무 아깝다. 나 내일 아침에 스케줄 있는데……. " " ……. " " 준수야. 샤키는? 샤키는 잘 보고 왔어? " " ……응, 너가 개껌 안먹길래 샤키한테에 다 주고 와써엉. " " 응, 잘했어! 나 차 탔다! 금방 갈게!! " " ……응, 빨리 와아……. " 어디 가나 사는 게 힘들다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다는데 정작 녀석은 내게 단 한 번도 힘들다거나 아프다거나 걱정이 된다거나에 대한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그게 이해할 수 있었지만, 서운 했던 적이 더 많았다. 막연하고 아련하게 보이는 것에 누구나 더 매혹되기 마련이었지만, 그 대상이 김준수라면 그냥 내 눈앞에서 만큼은 내가 잘 볼 수 있게 또렷했으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했다. 5월의 햇살처럼 녀석의 빨리 오란 목소리가 아련하게 내 마음속에 남아 가슴이 금방 답답해졌다. § 녀석은 내가 지난번에 장난스럽게 그림을 그려놓은 티셔츠를 명품 브랜드처럼 곱게 입고 거실에 앉아 있었다.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은 흰티셔츠 하나를 꺼내서 장난을 친 적이 있었다. 단순하게 녀석과 나를 칭하는 꽃을 두개 그려 넣고, 그 사이로 하트를 그리고 유성 팬으로 빨갛게 하트 안을 채웠다. 단순한 그림이었다. 그렇게 혼자 뿌듯해 하며 잠을 잤는데 그 다음날 그 티셔츠를 입고 있는 녀석의 그림 밑에는 ' brush your teeth ' 라는 문구가 새롭게 적혀져있었다. 의아한 문구에 난 녀석에게 ' 꽃과 양치질이 무슨 관계야? ' 라고 물었다. 그러자 녀석이 내가 그린 그림을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 꽃들도 사랑은 하니까, 양치 시켜야지. 그래야 꽃들도 안 썩고, 안 죽지. ' 어린아이처럼 그림을 본 그대로 해석했다. 그 뜻이 귀여워서 한참을 푸흐흐 하고 웃었다. 정말로 오래 걸어서 다리가 아팠던 모양인지 곧고 얇은 다리를 쭉 뻗고 그 흰티셔츠와 팬티차림으로 머리를 귀찮게 털털 말리고 있었다. 쭉 미끄러지듯이 빠르게 들어가 수건을 빼앗아 제대로 말려주기 시작했다. " 언제는 그 티셔츠 갖다 버린다매. " " 지금 나라가 어떤 꼴인데 이걸 버려어.. " 쇼파에 기댔던 등을 자연스럽게 나를 향해 돌리더니 내 무릎을 탁탁 치며 제대로 앉으라는 무언의 표시를 했다. 웃음을 머금고 바닥에 안자마자 안전벨트처럼 내 등에 몸을 기대왔다. 막 샤워를 끝낸 녀석의 몸에서 정원처럼 신비스럽고 유혹적인 향기가 가득 뿜어져 나왔다. 이대고 안고 싶었다. 금세 부드러운 머리칼이 다 말려졌고 등을 돌려 나를 바라본 녀석의 눈은 더 없이 투명하고 맑았다. 이번엔 내 무릎위에 종아리를 올리더니 내 손을 가져다가 자신의 종아리 위에 올려놓는다. 말도 하기 힘든지 살짝 고갯짓으로 명령을 했다. 매끄러운 종아리와 분홍빛으로 물든 무릎을 주물럭거리듯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탱탱한 엉덩이를 주물럭 하고 싶은데 녀석의 발이 이런 나를 희롱하듯 언제든 공격할 자세처럼 무섭게 뻗어있었다. 때마침 잠깐 잊은 펜던트를 꺼내 녀석에게 툭하니 내밀었다. 곧이어 펜던트를 집어간 녀석이 태양이 그려진 목걸이를 한참 동안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내 눈을 주시했다. " 길거리에서 주웠어? " 제발 한번만 더 생각해서 주둥이를 열어주는 센스 좀 발휘 해줄 순 없겠니? 응? 즌스야..? " 비록 모양새는 비브랜드겠지만, 이 박유천님이 손수 디자인한 거야. " 펜던트를 이리저리 돌려보는 녀석의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그래도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 왜 태양이야? " 녀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어느새 내 목에 걸려있는 펜던트를 꺼내며 녀석에게 자랑하듯 보여주며 말했다. " 짜잔! 난 구름이거든. " " 칫…… 유치하게. " 나는 피식 웃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면서도 신기하듯 구름에서 눈을 쉽게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녀석이 이리저리 돌려보더니 다시 훅하니 내게 내팽개쳤다. 그리고는 다시 태양을 만지작거리며 수십 번을 돌려봤을 모양새를 외우듯 세세하게 만져댔다. 그리고 어느 정도 종아리가 풀렸는지 다리를 내린 녀석이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말했다. " 넌, 박유천 넌 뭐 갖고 싶은 거 없어? " " 어?…… 나? " " 응, 너 말이야. " 얘가 갑자기 왜 이러나 싶어서 이마에 열을 체크했다. 아주 멀쩡했다. 녀석과 똑같이 마주보고 앉아 녀석의 반짝이는 눈을 주시했다. 대답을 강요하는 눈빛에선 미약한 간절함이 묻어나왔다. 가슴이 찔끔 찔끔 따가웠다. 너 오늘 샤키 보고 와서 많이 힘들었어? 샤키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야? 왜 그래 갑자기. 진지해지는 분위기가 다소 생소해져 농담 섞인 어조로 웃으면서 대답했다. " 나야 뭐~ 언제나 네 몸이 갖고 싶지! " 침묵 속에서 준수의 눈빛이 흔들렸다. 눈동자에서 시작된 흔들림은 파문처럼 번져나갔다. 농담으로 건넨 말이었는데 덩달아 진지해지니까 당황스러워 말도 더듬었다. " ……ㅇ야!! 왜이래? 농담이야~ 조크라고. 씨발새끼야!! 너 침묵 하지 마. 그거 무서워. " " 박유천. " 다급해진 마음에 자꾸만 소리부터 질렀다. 세살 버릇 난 지옥까지 가져갈 태생인가보다. " ㅇ왜… 왜!!!!!!!! " " 너 자신 있어? " " 응??? " " 너 잘할 수 있겠냐고. " 이 새끼가 병든 병아리 새끼를 보듯이 내 물건을 위아래 훑어보며 미묘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이 개새끼가 감히 어딜 보고!!!!!!!!!!!!!!!!!!!!!!!!!! 흥분된 가슴이 분노를 일으켰고 벌떡 일어난 나는 거실을 난잡하게 서성거리며 녀석에게 보란 듯이 정확하게 그리고 자신 있게 연설하듯 외쳤다. " 씨발 나 장난 아니야!!!!!!!!!! 내 꺼 끝짱이야!!!!!!!!!! " 갑자기 등을 돌려 푸흐흐흐 웃어버린 녀석이 입을 틀어막았는지 여전히 내게서 등을 돌린 채 말했다. " 크큭.. 알았어. 빨리 씻고 와. " " 개새끼! 비웃냐? 기다려!!! 너 오늘 죽었어!!!!!!!!!! " 쿵쾅, 쿵쾅 일부러 발소리를 크게 내면서 욕실로 들어왔다. 열 받은 척 욕실 문을 거세게 쾅! 하고 닫았다. 그리고 변기통 뚜껑을 내렸다. 그 위에 쪼그리고 앉았다. 청바지에 넣은 휴대폰을 꺼냈다. 내 유일한 희망이자, 내 삶의 구원이신 우리 리더님의 번호였다. 제발.. 제발 받아라. 받아라. 심창민 받아라. 받아라!! 그런데 이 개새끼가 야동 삼매경에서 아직도 허우적거리나 전화를 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일단 너무 갑작스러웠다. 농담이 진담이 되고 진담이…… 진담이 그러니까 진담이 지금 나보고 갖으란다. 어우 씨발 오줌마려. 쟤를 어떻게 갖지. 아니 쟤가 갖으랬잖아? 난 분명 농담이라고 했는데!! 저 새끼가 이쪽에선 나보다 한수 위였던 거야. 그런 거야. 난 아니야. 난 순수했어. 난 티 없이 맑았어. 내가 먼저 아니야! 설마 내 몸을 적선하는 셈 치는 건 아니었겠지?? 혹시 쟤 꽃뱀 출신 아니야?? 아니야 그럴리가 없어.. 그렇다면, 정실장 말대로 내가 그렇게 배고파 보이는 얼굴인가?? 너 나 동정하니? 아니야. 나 존나 잘생겼어. 개간지 아이돌이니까.. 그건 아니야. 그런데 큰이이다. 경험이 없는 나로썬, 유일하게 뒷구멍에 박는 게 전부인데. 자신감 있게 너 오늘 죽었어! 라고 호언장담했다. 옷을 벗기도 전에 핸드폰으로 지식인에 검색했다. 씨발 쪽팔리게 검색이 뭐야!!!!!!!!!!!!!! 잘 해야 하는데. 오늘 잘 못하면 평생 녀석의 노예가 되거나 이걸 인질삼아 날 갖고 놀 텐데. 씨발 근데 나 벌써부터 떨리고 벌써부터 싸고 싶어. 우추케? 난 대체 어디로 가야하나요 아저씨? 순식간에 꿈처럼 메아리 치는 택시기사 아저씨의 말은 ' 침대요.. 침.침.침.침대요.. ' 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그래. 침대지 어디야. 좋았어. 나이스! 너 오늘 아..아마도 죽었어!! § 자고로 통째 먹는 놈은 맛도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녀석의 발갛고 매끄럽고 하얀 몸을 보자마자 숨겨진 욕정이 위로 올라오면서 통째로 먹어도 여한이 없다고 느껴졌다. 침대에 나체로 누워있는 녀석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내 진득한 시선이 부끄러웠는지 앙증맞게도 양 볼에 야릇한 홍조가 번졌다. 침이 꼴깍 꼴깍 넘어갔다.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내 페니스 입구가 꿈틀 꿈틀 지랄을 쌌다. 여전히 진한 시선으로 준수의 몸을 훑어보듯 바라보자 도저히 안 되겠는지 옆에 놓인 시트를 끌어 중심부를 가린 녀석이 도도하고 까칠하게 내게 소주병 추가하듯 그렇게 주문하듯 말했다. 말이 주문이지 명령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건 뭐 마님과 돌쇠도 아니고. 장작이라도 패야하나. " 거기 자꾸 보지 마! " " 너도 내 꺼 봐. 그럼 되잖아. " 상체를 들려고 하자 첫 경험처럼 손으로 눈을 가린 녀석이 발길질 자세로 수비공격에 들어갔다. 순간 기가 바싹 죽은 나는 다시 상체를 내리고 여민 시트를 다시 처량하게 확인하면서 녀석을 타일렀다. 무슨 돈 주고 원조교제 하는 것도 아니고 니가 자꾸 그러니까 내가 아저씨 같잖아!! 씨발 나 박유천이야!! " 알았어. 알았어! 치사해. 안 봐! " " 아프면.. 아프게 하면 확! 꼬츄 물어 버릴 거야. " " .. 어? 어.. 당연하지!! 물론이고말고! " 바짝 바짝 마르기 시작한 입술을 올려 녀석에게 다가갔다. 눈을 꽉 감고 요염하게 누워있는 녀석의 가슴이 맞닿아지자 전해지는 두근, 두근 심장소리에 서로가 동시에 흠칫 놀랐다. 황급히 녀석의 아랫입술을 깨물며 쭈욱 빨아 당겼다. 입술만 닿았을 뿐이었는데, 하복부로 은밀한 열기가 몰려 한 번에 내려갔다. 뭘 집어 삼켰는지 달짝지근한 입술이 자꾸만 안달 나게 쉽게 열어주지 않았다. 곧바로 손을 들어 녀석의 한쪽 유두를 살짝 잡아 문질렀다. 순간 지레 놀란 녀석의 입이 벌어짐과 동시에 내 머리채를 잡아당긴 녀석의 손이 조금 아팠다. 녀석의 입안은 또 다른 성지였다. 씨발 달아. 뭐야 이건? 욕구를 참지 못한 내 혀는 싼티 나게도 녀석의 혀를 찾아 츕츕 거리며 여러 번 빨아 세우기에 급급했고, 빠르게 생성된 서로의 타액들이 입 속으로 오고가기에 바쁜 움직임이었다. 점점 내 머리채를 잡은 녀석의 손이 점점 느슨해졌다. 어느새 내 목에 팔을 둘러 안은 녀석이 나른하고 몽롱한 느낌에 제 몸을 맡기고는 서서히 내 혀를 따라 동조하듯 리드미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슬아슬하게 닿았다가 부드럽게 떨어지는 혀를 계속 아쉬워했다. 긴장한 손으로 녀석의 뻣뻣하게 굳은 가슴을 만지자 몸을 움츠렸다. 허리를 비틀었다. 유두에서 내려온 손은 갈 길이 바쁜지 척추를 쓸어내리다가도 허리를 만지다가도 다시 비단결 같은 허벅지에 머무르기도 했다. 몸 속 깊은 곳에서 열기가 폭발할 듯 녀석의 몸이 빠르게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가슴이 심하게 오르락내리락했고, 녀석의 허벅지 사이엔 나른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탄력 있는 하얀 가슴과 단단한 핑크빛 유두 그리고 늘어지지 않은 탱탱한 엉덩이가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입안에 머물렀던 입술이 아쉽게 떨어지면서 귓바퀴를 진득하게 빨아 숨을 살짝 밀어 넣자 민감한 부위였는지 녀석이 허리를 비틀었다. 그와 동시에 녀석의 허벅지 안쪽 연한 살을 손바닥으로 쓸어 올리며 여러 번 문질렀다. 다시 녀석의 쇄골에서 가슴으로 내려온 입술은 분홍빛 유두가 뾰족하게 솟아오를 때까지 엄마 젖처럼 거세게 빨았다. 준수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으며 진저리를 치기 시작했다. " 하아, 앗하…….” 마치 녀석의 신음은 온몸의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숨겨진 내 모든 정자들을 한 번에 불러 모으기 충분했다. 한층 더 거칠어진 손동작으로 점점 아래로 내려가는 입술을 크게 막듯이 녀석이 몸을 비틀어 나를 잡아 세우려 했다. 그럴 때마다 녀석의 허벅지를 단단히 잡았다. 배꼽에서 한참을 머무르던 혀가 기어이 녀석의 허벅지 안쪽의 연한 살로 이동했다. 열에 달뜬 녀석의 거친 숨소리가 내 욕망을 극한까지 몰아갔다. " 하아…… 하흣!!! 유처나…….” 척추를 타고 흐르는 그 짜릿한 전율이 준수의 흐트러진 숨결을 한순간에 무너트렸다. 대기했던 기나긴 손가락이 축축하게 젖어 있는 녀석의 페니스를 한쪽 손으로 꽉 잡으며 서서히 가동을 하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다리를 오므려드는 녀석의 허벅지를 제지해 벌리게 했고 다시 보이는 허벅지 안쪽 연한 살로 녀석의 몸을 희롱하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난리 난 녀석의 몸이 허리를 비틀고 고개를 비틀고 어깨를 비틀며 피하려 애를 썼다. 입술이 주는 엄청난 감각에 빠져 준수의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갔다. 하지만, 그 후로 오랫동안 달콤한 대화는 나눌 수 없었다. 녀석이 뜨거운 숨을 토하듯 사정하자마자 녀석에게 뒤집으라고 말을 했다. 그랬더니 녀석이 앙칼지게 째려보니 내게 싸대기를 날렸다. 씨발 대가리가 360도 회전하는 줄 알았다. 볼을 감싸며 아프다고 크게 소리치자 녀석이 얄밉게 내 허벅지를 발꼬락으로 툭툭 찌르듯 꼬집으며 말했다. ' 내가 짐승이야!!? 싫어! 엎드리는 거!!! ' 그제야 녀석의 말을 이해한 나는 아픈 볼을 문지르며 녀석을 달래느라 기운이 다 빠졌다. 녀석이 아니었으면 무식하게 박았을 텐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서 아주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그래도 제가 때린 뺨에 미안해졌는지 눈가를 축 내리고 잘못했단 듯이 내 목을 다시 감쌌다. 그리고 속삭이듯 귀를 살살 깨물며 ' 유처나아.. 놀래서 그랬어.. 때린 거 미안해.. 아팟찌이.. ' 라고 말했다. 하여간 선수 치는 건 최고였다. 그래도 예쁜걸 어떡해. 내가 또 참고 참아서 사랑 꼬박 꼬박 챙겨 드려야지. 그런데…… " 아악!!!!!!! 읏!!!!! 흡흐엉엉엉엉!!!!! " 이제 겨우 반 정도 들어갔는데 얼굴이 화산처럼 붉어진 녀석이 나약하게 내 등을 탁!탁! 치면서 놀란 듯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덩달아 놀란 나는 장군처럼 돌진하던 행위를 멈추고 녀석의 얼굴에 키스 사례를 퍼부으며 달래기 바빴다. 씨발, 진짜 아픈가보다. 온 몸의 핏줄이 곤두 섰다. " 준수야. 준수야. 많이 아파?? 응 너무 아파?? " 말도 못하겠는지 고개를 끄덕 거리면서 내 등을 탁! 탁! 쳤다. 그리고 벌써부터 녀석이 가득 조여 오는 통에 페니스가 너무 아프게 팽창되고 있어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어쩔 수 없이 후퇴 작전으로 페니스를 다시 빼려하자 이번엔 더욱더 세차게 고개를 돌린 준수가 별안간 목을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쥐어짜듯이 나를 훈계하듯 말했다. " 이 개새끼.. 이 사기꾼.. 안 아프다매.. 윽.. 니 꼬츄 내가 물어 버릴..거야!!!!!!!!! " 눈물을 주륵 주륵 내보냈다. 씨발 농담이 아니고 진짜 아픈가보다. 볼을 타고 흐르는 녀석의 눈물을 빨았다. 고통스러운 입술이 다시 열리면서 다급하게 내 입술을 잡아 당겼다. 그래도 참을만 했는지 나를 재촉했다. 뜨거운 혀를 탐하면서 동시에 녀석의 페니스를 붙잡고 거세게 문질렀다. 곧바로 아프게 조이는 페니스를 안으로 조금씩 천천히 넣었다. 입 안에선 전쟁이 났다. 아주그냥 난리가 났다. 내 혀를 깨물고 아랫입술을 깨물고 등을 꼬집고 머리채를 잡았다. 다들 이렇게 사랑합니까? 이렇게 열정적으로 말입니까? " 흣하아…… 아흑!!!!!! 이 씨발놈 사기꾼!!! " "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준수야. 근데 못 빼겠어. 흐읏……. 꼬집고 난리가 났으면서도 내 목을 잡아당기며 나를 도우듯 허벅지를 내 허리에 조이듯 감싸 안았다. 그러자 이전 보다 훨씬 자세가 수월해진 나는 녀석의 빳빳하게 솟은 유두를 잘근 씹으며 녀석의 크게 부풀어 오른 페니스에 강약을 더 하면서 안으로 더욱 깊게 들어갔다. 녀석의 갈라진 목소리가 뜨거운 탄성을 품고서 간헐적으로 쇳소리 같은 소리를 뱉어냈다. " 흣항, 읏하앙, 앗항!!……. " " 흐엉엉 미안해. 미안해 준수야.. 그렇게 많이 아파??? " 씨발 여기선 난 왜 눈물을 질질 짜고 있는 거지? 녀석이 눈물 콧물 흘려대며 산통을 느끼는 임산부처럼 내게 간절하게 매달리고 울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빼려고 상체를 들면 더 크게 울어대는 통에 빼지고 못하고 그냥 그 자세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녀석을 끌어안았다. 그러자 점차 울음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다. 페니스는 점차 팽창하고 녀석의 내벽은 나를 강하게 조였다. 씨발 이러다가 아파서 둘 다 죽겠다. " 흡하.. 박육처언.. 넌 왜 울어 씨발새끼야. " " 흡허엉.. 몰라.. 니가 우니까 그렇잖아 개새끼야. " " 아프니까 눈물이 나잖아.. 씨발새끼야. " " 이게 다 사랑이야.. 개새끼야. " " 울지 마. 싫어서 우는 거 아니야. 진짜 아파. " " 울지 마. 아프게 해서 미안해. " 녀석이 내 더러운 콧물을 스윽 닦더니 내 얼굴을 보고 갑자기 푸흐흐 웃음을 터트렸다. 씨발 지금 누구는 심각하게 반성의 의미로다가 감정이 격해져서 울고 있는데 넌 여기서 꼴에 웃음이 잘 나오냐? 씨발, 눈물은 왜 안 멈춰. 개새끼야 너 앞으로 울지 마. 진짜 너 울면 나 너무 당황스러워서 아무것도 못하겠어. 얄밉게 째려보자 녀석이 다시 슥슥 눈물을 다정하게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해맑게 웃는다. 웃는 얼굴 보니까 이제야 마음이 조금 편안해 졌다. 다시 자세를 잡고 정체되었던 페니스를 조금씩 밀어 넣기 시작했다. 이제는 좀 참을만한 고통인지 녀석이 나를 꽉 껴안고 허리를 움직여 나를 도왔다. 그게 또 눈물 나게 고마워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 왜 이렇게 질질 짜. 가오 안 살게. 이래갖고 다음에 어디 위로 올라 탈수나 있겠어? 녀석의 내부 중앙에 빡빡하게 자리 잡은 내 물건이 너무나 낯설었다. 하지만 자랑스러웠고 기뻤다. 녀석의 입술을 막고 치열을 부드럽게 핥아가며 마지막 뿌리까지 쑤욱 한 번에 넣었다. 녀석은 생경한 감촉에 소스라치며 마구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여러 번 강한 동작으로 단 한 번에 녀석의 가장 깊숙한 지점을 향해 돌진했다. 크게 확장된 녀석의 동공이 말로 형용하기 어려웠다. 격정에 찬 움직임은 점차 격렬해 졌고 내 몸과 따라서 녀석이 움직였다. " 하아, 앗하앙, 하아, 하흣!!……. " " 읏……. " 한 치의 틈도 없이 엉덩이를 녀석에게 바짝 밀착시키고서 천천히 허리를 돌리며 원을 그려 나갔다. 그리고 또 다시 거칠게 박혀지는 페니스가 숨통에 겨워 크게 팽창되고 있었다. 고통이 환희로 바뀌어가는 순간이었다. 내 혀를 찾아 들어온 녀석의 달뜬 숨을 한 번에 집어 삼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온 힘을 가하듯 깊숙한 곳으로 한 번에 닿았다. 그 순간 전율이 척추를 타고 내려가 녀석의 안에서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녀석도 내 손바닥 안으로 가득 쏟아내고 있었다. 액이 전부 들어가기 전에 일단 페니스를 빼려했다. 그런데 나를 껴안은 녀석이 괜찮다는 듯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붉게 물든 얼굴, 퉁퉁 부은 눈, 침으로 가득 번질거리는 입술, 나를 꽉 안고 있는 팔, 이 모든 게 사랑스럽고 또 사랑스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너무 단 꿀을 한 번에 집어 삼킨 사람처럼 달달한 액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 사랑해. 사랑해 준수야……. " " ……. " 말없이 내 목을 더 바짝 끌어안은 녀석이 수고했다는 의미로 내 등을 살짝 쳐주면서 나를 위로하듯 달래주었다. 그게 너무 황홀하고 달콤하고 따뜻해서 눈물이 나올 뻔했다. 이렇게 너무 사랑하다 내가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녀석의 퉁퉁 부은 눈에 키스를 하고 귀여운 콧방울에 키스를 하고 침으로 범벅된 입술에 키스를 하고 홍조로 가득 붉어진 볼에 키스를 하고 식은땀으로 젖은 이마에 키스를 했다. 이에 보답하듯 녀석이 으캬앙 하고 웃었다. 그게 너무 예뻤다. " 유천아. " " 응. 준수야. " " 나는 너를 만나서 제대로 웃었어. " " 그랬어? " " 응. 그리고 나는 너를 만나서 제대로 울어봤어. " " 그거 좋은 말이야? " " 응. 적어도 나한테는. " " 그리고 나는 너를 만나서 제대로 사랑 받았다. " " 앞으로 더 많이 사랑할게. " " 고마워. 이런 내게 와줘서. 이런 나를 따뜻하게 안아줘서. " " 야 나 지금 소름 돋았어! 그렇게 좋았어? 왜 그래? 크큭.. " " ……. " 대답 대신 내 입술에 녀석의 입술이 닿았다. 그리고 매번 놀려대던 이마 위로도 녀석의 입술이 한참동안 머물러 있었다. 녀석의 몸이 닿은 곳곳마다 기쁨에 찬 아우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서로 욕하고 머리 잡고 울면서 웃으면서 참으로 티격태격 화려한 밤이었지만, 다시없을 행복처럼 간절하고 아릿하게 가슴에 남아 희미한 웃음이 지어지는 그런 시간이었다. § 요란하게 울려대는 핸드폰 소리에 정신없이 눈을 떴다. 먼저 벽에 걸린 시계부터 바라보았다. 벌써 나가야할 시간이었다. 어제 내 위에서 잠이 들었던 녀석이 언제 내려왔는지 내 등 뒤에서 내 허리를 끌어안고 등에 코를 박은 채 잠이 들었다. 깊은 숨소리가 안정적으로 울려 가슴이 크게 오르락내리락 거렸다. 내 행복한 아침을 열어주는 녀석의 두 팔은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몸을 녀석 쪽으로 조심스럽게 돌려 누웠다. 혹시라도 잠이 깰까봐 꽉 껴안지는 못하겠고 살살 어루만지듯 품에 살짝 안았다. 그러자 작게 꿈틀거리던 녀석이 용케도 내 목 언저리에 향을 맡듯이 코를 박고는 버릇처럼 킁킁 거렸다. 정말로 새끼 강아지 같았다. 익숙한 향기에 이내 마음이 안정되었는지 다시 쿨~쿨~ 깊게 자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곧바로 다시 요란하게 울리는 핸드폰을 들어 속삭이듯 작게 말했다. ' 씨발놈아 지. 금. 나. 가. ' 그러자 100배는 큰 목소리가 대답했다. ' 매번 이럴 거면 둘 다!!!!!!!!! 집 나가요!!!!!!!!!!!!!! ' 그렇다 우리 리더님이셨다. 넌 화분에 물이나 주라고 인마!!! 짜증스럽게 울려대는 목소리를 고이 핸드폰으로 접어 삼켰다. 녀석의 체온이 오늘따라 더할 나위 없이 아쉽고 따뜻하고 거기다가 감동적이었다. 이런 강아지 같은 새끼를 두고 일을 하러 나가야한다니. 백수가 부러워지는 개 같은 타이밍이었다. 그냥 보모도 좋고 도우미도 좋으니까 그냥 샴쌍둥이처럼 녀석의 옆에서 온종일 붙어있고 싶었다. 어쩔 수 없이 침대에서 일어났고 녀석이 춥지 않게 시트를 잘 여며주었다. 체온이 그새 허전해졌다 는걸 인식했는지 녀석이 작게 꿈틀거렸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재촉당한 발걸음은 빠르게 욕실로 향해 걸어 들어갔다. 세수를 하는 도중에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와서 비눗물이 들어갔다. 그런데 그것마저 달았다. 양치를 하는 도중에도 자꾸만 미친놈처럼 웃음이 비집고 새어 나와서 치약이 목울대로 넘어 들어갔다. 씨발 이것마저 사탕처럼 달았다. 난 하루아침에 녀석의 노예가 된 병신처럼 실없이 웃었다. 흐흐흐, 웃음이 멈춰지지 않았다. 그래서 포기하고 그냥 대놓고 웃었다. 배가 쪼그라들었다. 그래도 웃었다. 세상은 참 아름다웠다. 마지막으로 쉽게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으로 녀석이 잠든 침실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여전히 깊이 잠든 녀석의 귀엽게 부풀어 오른 앵두같이 붉은 입술위로 쪽 하니 가벼운 키스를 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소리로 간지럽게 소곤거렸다. " 준수야…… 이따 보자. " 싱글벙글 아침부터 웃음꽃이 활짝 핀 내 얼굴을 보자마자 심창민이 뒷좌석에서 심드렁하게 말했다. " 거~참 이보슈. 나도 바쁜 사람입니다. 거~ 시간 좀 딱! 딱! 지킵시다? " " 오~냐, 히히히. " 내 오동방정 철딱서니 없는 웃음소리에 기가 막힌 창민은 칠판 긁는 소리 혹은 식판을 숟가락으로 긁어대는 소리쯤으로 둔갑시키고 귓구녕에 이어폰을 끼웠다. 벤 앞좌석에 탄 나는 오늘따라 반가운 상철형을 보고 씨익 웃었다. 그런데 그때 백미러 사이로 12층 녀석의 베란다 문이 열려있는 모습이 황급히 눈에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상철형의 팔을 급하게 치면서 차를 멈춘 나는 앞 창문을 내리고 고개를 내밀어 아파트 위를 쳐다보았다. 급하게 베란다로 뛰어 나왔는지 맨 몸 위로 이불을 끌어안은 녀석이 고개를 내밀고 앙상한 팔을 흔들었다. 그리고 뭐라고 말하는데 너무 멀어서 녀석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의 표정은 정확히 보였다. 녀석이 활짝 핀 꽃처럼 예쁘게 웃고 있었다. 팔랑 팔랑 지금이라도 날아갈 것 같이 팔의 동선을 크게 하며 내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벤이 멈춘걸 보았는지 곧바로 다른 한쪽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으로 내게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벨 소리가 울리자마자 통화버튼을 들어 귓가에 갖다 대었다. 여전히 녀석은 팔이 아플 텐데 내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나도 고개를 더 쑤욱 내밀어 녀석을 향해 팔을 크게 저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귓가에 닿은 녀석의 목소리가 울먹거리듯 아프게 들려왔다. 그런데 내 눈 앞에선 너무 행복하단 듯이 환하게 웃었다. " 유천아!!!!! " " 어!!! 준수야!!!! 깼어?? 나 금방 다녀올게!!!! " " 유천아!!!!! " " 어!!! 야!!! 팔 아프게 왜 자꾸 흔들어!! 나 잘 보여!! 그만 흔들어!! " " 유천아!!!!! " " 어!!!!!! 준수야!!!!!!!!! 사랑해!!!!!!!! " 크게 놀란 상철형이 주위를 살피더니 내 등을 세게 치기 시작했다. 내 목청에 크게 놀란 창민은 신경질적으로 이어폰을 빼더니 어이가 없단 듯이 팔짱을 끼고 나를 노려보았다. 그 옆에서 재중은 삑삑이 운동화를 재정검 하듯 제대로 신어가며 키득 키득 웃고 있었다. 야 너희들!!! 저기 위에 천사처럼 예쁜 애 안보여?? 하! 하! 하! 제가 내 사람이라고!!!!!! 존나 예쁘지???? 히히히. " 유천아!!!!! 네가 노래하면 내가 웃어!!!!!!!!!!! " " 응???, 어??? " " 유천아!!!!! 네가 노래하면 그러니까 내가 정말로 웃을 수 있어!!!!!!!!!!! " 준수야, 팔 아프다니까 나도 아픈데 그만 좀 흔들어! " 내가 노래하면 너 웃어?? " " 응!!!! 그러니까 언제 어디서나 노래 해!!!!!!!!!!!! " " 그거야 물론이지!!!! 준수야 나 늦었다!! 다녀올게!!!! 이따가 보자!!!! " " ……. " 말없이 끊긴 전화 뒤로도 계속해서 녀석이 내게 팔을 흔들었다. 덩달아 아픈 줄도 모르고 팔을 거세게 흔들었다. 그리고 벤이 출발했다. 그리고 난 녀석의 형체가 점이 될 때까지 흔드는 팔을 쉽사리 놓지 못했었다. 이상하게 그러고 싶었다. 내가 녀석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더 녀석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싶었다. 벌써 방 안으로 들어갔을 녀석이었겠지만, 행여나 내가 보이진 않을까 아직 안으로 들어가진 않았을까 싶은 마음에 팔을 내리지 않았다. 그렇게 하염없이 난 녀석에게 수십 번 수백 번을 인사 했다. 네가 그렇게 예쁘게 웃어준다는데 내가 어떻게 노래를 안 불러. 평생 죽어서도 너 하나만 바라보고 노래 부를게. 응 그럴게 준수야. 그러니까 딱 오늘처럼.. 딱 지금처럼만 우리 행복하자. 응 그러자 준수야. 어제 보다 오늘 더 더!! 더 많이많이 사랑해. 이따가 꼭 보자. § 이상하게 신호는 가는데, 하루 종일 녀석과 통 연락이 닿질 않았다. 한편으론 불안한 마음이 조금 내장되어 있었지만, 기나긴 정사로 단순하게 부끄러워서 내 전화를 피한다고 여겼었다. 새벽에 스케줄이 끝나자마자 녀석의 아파트로 향하는 발걸음이 모래주머니를 달은 것처럼 무겁고 외로웠다. 그리고 수십 번을 눌렀는데도 도어락의 비밀번호가 자꾸만 틀리다고 짜증스럽게 삐삑 다시 내뱉었다. 잘못 눌렀었나 싶은 마음에 다시 ' 0604 ' 를 눌러 보아도 열리지 않았다. 점점 다급해지는 마음으로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끝까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도어락 비번이 여러 번 틀렸는지 경비실로 비상망이 닿았는지 급하게 올라온 경비 아저씨가 내 얼굴을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셨다. 오늘따라 나도 아저씨가 더 없이 반가웠다. " 아저씨, 준수. 오늘 우리 준수 못 보셨어요? 비번이 자꾸 틀리대요. 분명 맞는데. 자꾸만 틀리대요. " 머리를 긁적이는 아저씨가 난감한 처지에 놓인 사람처럼 내 팔을 잡고 진담처럼 말했다. 하지만 농담처럼 들렸다. " 유천군, 오늘 오전에 준수 외국으로 출국했네.. 몇 년이 걸릴지 준수군도 모르겠다고, 집 좀.. 잘 처리 해달라고 부탁하고 나갔네 그려.. 유천군은 여즉 모르고 있었나 보네 그려... 녀석이 친구한테 말도 없이 떠난걸 보면 무슨 큰 사정이 있었을걸세.. 크게 상심하지 말어.. " 이 아저씨가 벌써부터 노망 나셨나. 으이구 아저씨 무슨 농담을 그렇게 살벌하게 하십니까. 씨발, 지금 누가 어디로 갔단 소리예요. 아까 전까지만 해도 내 품에서 내 허리 꼭 껴안고 나랑 같이.. 그러니까, 나랑 같이.. 나랑 같이 있었단 말이에요. 내가 이따가 집에 들른다고 꼭 보자고 그러니까, 내가 늦어도 집으로 오겠다고.. 와서 널 다시 보겠다고.. 그러겠다고 했단.. 말이에요. 그랬단..말이에요.. 아저씨 무슨.. 저를 호구로 보셨나. 얘, 표현 같은 거 서툴고 속앓이 버릇처럼 혼자서 하는 애는 맞아요. 그런데 적어도 제 앞에선.. 그러니까 제 앞에선 그러지 않았어요. 비록 말은 안 해도.. 말은 안 해도.. 아프면 아프다.. 외로우면 외롭다.. 그렇게 저한테 팔 내밀었어요. 그랬어요. 얘, 저 두고 어디 못가요. 잠도 못자는 게 어딜 가요. 아니에요. 아닐 거예요. 아니야. 씨발 아니야. " 야!!!!! 김준수!!!!!!!! 문 열어!!!!!!!!!!!!!! 준수야!!!!!!!!!! 김준수!!!!!! 문 열어!!!!!!!!!!!! " " ……. " " 야!!!!!!! 씨발새끼야!!!!! 문 열어!!!!!!!! 너 안에 있지!!!!!!!!!!! 내가 아까 다시 온다고 그랬잖아!!!!!!! 다시 보자고 다시 온다고!!!!!! 기다리라고 그랬잖아!!!!!!!!!! 김준수!!!!!!!!!!!!!! 준수야!!!!!!!!! 문 열어줘 제발…… 나 유천이야. 나 박유천이라고. 유천이라고!!!!!!!!!!! 씨발새끼야!!!!!!!! 문 열란 말이야…… 나 유천이라구…… 준수야…… 흡흐흑흑흐흡…… . " 사리를 휘감고 광활한 들판 너머로 신기루처럼 김준수가 사라졌다. 달콤한 꿈처럼 녀석이 그렇게 내곁에서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이 모든 것이 제발 꿈이었으면…… . 멈추지 못한 재채기처럼 그렇게 너를 만났다. 네가 처음으로 내 앞에서 울고, 웃었던 그 날을 기억해. 내가 처음으로 너 바래다 주는 길, 근데 그거 뽀뽀 맞아? 전부 내가 처음이라고 말해줬던 날, 나 굉장히 기뻤던거 혹시 너 알고있어? 아직도 목 언저리가 간지러운데 가슴을 긁어대, 나 왜이래? 처음으로 너 때문에 울었던 날, 너 왜 그때 내 눈물 그냥 내버려뒀어? 집에 오라는 말, 진짜 간떨리게 좋았던 거, 너 알고 있었어? 난 이미 시작했는데, 그때 넌 아니었어? 많이 느려도 좋으니까, 네가 내게 닿았으면 좋겠어. 사랑한다는 고백에 고맙다고 대답해준 너, 그땐 왜 그랬어? 나 없는 곳에서 네가 우는 모습 상상하는 거, 그거 얼마나 끔직한 건지 넌 알고 있었어? 그때 왜 나 의자에 벌세우고 넌 숨죽여 웃었어? 너 웃는 거 다 들렸거든? 너 그때 이러려고 나한테 잘해 준거였어? 내가 노래하면 네가 웃는다고 그랬잖아... 지금 네가 내 옆에 없는데 내가 어떻게 노랠 불러.. My Melody 16 <김준수 번외> My Melody (김준수 번외) w. 킵 * * * 김준수의 My Melody 그 시절의 끔찍한 편린들은 아직도 너무나 생생하여 마치 어제와의 기억과도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성장통을 앓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 기억으로는 우리 집 마당은 넓고 내가 모르는 이름들의 나무들도 꽤 많았었다. ' 따뜻하다 '는 형용사가 딱 들어맞을 정도로 기분 좋은 봄날의 오후처럼 언제나 마음이 녹아내릴 것만 같은 마당이었다. 그 넓은 마당엔 언제나 샤키가 꼬리를 흔들고 껑껑 거리고 뛰어 다니곤 했었다. 그런 샤키와 함께 땀이 흥건하도록 공을 갖고 뛰어놀면 어느새 작업실에서 몰래 빠져나온 아버지가 그 공놀이에 동참하곤 했었다. 그때마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겨울에도 봄바람처럼 포근하다고 생각했었다. 가슴은 수정처럼 투명해지고 몸은 풍선처럼 바람에 날려 햇볕을 타고 멀리 날아갈 것만 같았다. 난 이런 우리 집 마당을 참 많이 좋아했었다. 그리고 우리 집은 넓은 마당과 어울리는 한옥 집이었다. 마음이 사무치도록 비가 내리는 풍경에도 운치와 격조가 있는 그런 멋진 집이었다. 그런 풍경을 어릴 적부터 보고 앉아있으면 그 당시에 내가 많이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 넓은 마당 하나만으로도 굉장히 세상이 평화롭다고 여겨지곤 했었다. 그리고 덩달아 빠르게 흐르는 시간도 멈춘 것처럼 아주 천천히 흘러가는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는 난생 처음으로 가져본 이 집을 정성 들여 오랜 기간에 걸쳐서 완성 하셨다. 제대로 만들어진 한옥 집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버지의 예술품과도 같았다. 문살 하나하나에도 깊은 사연이 있을법한 정교한 곡선들이 있었고, 문살이 끼워진 조그만 문틀에도 단순하게 밋밋한 무늬가 아니라, 그 작은 틈 안에서도 아름다운 물결이 요동치고 들쑥날쑥한 높낮이가 존재했다. 가끔씩 문틈에 새겨진 문양들을 가까이서 보게 되는 날이면 언제나 아버지의 정성에 놀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이런 집 안의 인테리어는 거의 천년이 가는 종이와도 같이 대부분은 한지로 따뜻하게 장식 되어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버지는 나무집에 기름옷을 입히는 정성을 가장 공들여 하셨다. 천연의 자재와 그곳에서 나오는 자연의 고운 빛깔을 언제라도 유지할 수 있도록 여러 번 정성스레 덧칠하곤 했었다. 나는 아직도 그날의 그윽한 나무향이 지금 바로 코끝을 찌르는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버지는 오르간 제작자 이셨다. 그래서 당연스럽게 오르간 제작자로 존경받았지만, 그 보다 오르간 연주자로도 명성이 대단하셨다. 그래서 언제나 아버지의 음악이 연주는 되는 날이면, 아버지가 교회 밖으로 나올 때까지 연주자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너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가슴 아프게도 이런 아름다운 연주를 어머니는 듣지 못하셨다.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그날따라 늦은 귀가를 하셨던 아버지를 걱정하며 어머니가 마중을 나오시다가 그만 돌처럼 단단한 얼음 덩어리에 발을 헛디뎌 어머니는 만성 기관지염을 앓게 되셨다. 이때 넘어진 큰 충격으로 고막에 나쁜 영향이 미쳐서 점차 양쪽 귀가 들리지 않으시게 되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태어날 때부터 귀가 들리지 않았던 사람처럼 소리가 들린다는 게 얼마나 편안한지 모르는 사람과도 같았다. 완전히 청각을 잃으셨어도 어머니는 안 들리게 된 귀를 원망하지도 그런 자신의 인생을 불행하다고도 여기지 않았다. 그 후로 어머니는 자연스럽게 수화를 익히셨고 다시 학교를 들어간 어린 아이처럼 매일 매일 발음연습을 하셨고 그 발음을 녹음기에 녹음하는 습관을 기르셨다. 언제나 내가 학교를 끝마치고 뛰다시피 돌아오는 날이면 선생님께 숙제 검사를 맡는 여학생처럼 내게 녹음테이프를 내밀곤 하셨다. 비록 어머니는 귀와는 멀리 떨어진 세상이었지만, 그 세상을 이어주는 특별한 마법이 어머니에겐 있었다. 어머니는 귀가 없으면, 손으로 손이 없으면, 마음으로 그렇게 세상이 다 떠나갈듯 아파하는 아버지와 나에게 특별한 마음의 또 다른 언어처럼 오히려 우리들을 위로해주셨다. 난 그런 어머니가 애틋한 만큼 존경스러웠다. 마치 어제 일처럼 지금도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나에게 들뜬 표정으로 녹음테이프를 넘기셨던 어머니의 하얗고 가녀린 손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연주를 좋아하셨고 아버지의 오르간을 아버지처럼 아끼고 사랑하셨다. 그리고 이런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언제나 들을 수 없는 연주를 매번 빠트리지 않고 해주셨다. 난 그런 두 분의 모습을 보면서 어린 마음에 혼자서 많이 울기도 웃기도 했었다. 아주 어릴 적에 어머니는 내게 갑자기 멜로디언을 가르쳐 주셨다. 가끔씩 어눌한 발음이 되는 힘든 단어들도 중간에 있었지만, 어머니의 설명은 그 어떠한 음악 선생님 보다 더 정확하고 또 섬세했다. 내게 건반을 알려주고 숨 쉬는 방법을 알려주는 어머니의 눈빛은 그 어떤 때보다 더욱 진지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방법을 터득한 나는 매일 밤마다 학예회처럼 어머니와 아버지께 그날 배운 곡들을 선 보이도 했었다. 그게 하루가 되고 1년이 되고 5년이 되고 어느새 아버지가 손수 제작한 오르간에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서 함께 연주하는 날이 빠르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 날에도 여전히 어머니는 안 들리는 귀를 쫑긋 세우고 우리들의 멜로디를 눈을 감고 평온하게 감상하셨다. 그런 어머니의 엷은 미소를 보며 덕분에 나는 아버지와 많이 웃을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린 어머니의 배려와 어머니의 사랑에 하루하루를 감동 있게 보낼 수가 있었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너무 많이.. 너무 많이 사랑했다. 아직도 난 눈을 지그시 감고 엷은 미소를 띄운 채 오르간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던 어머니의 행복한 표정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수년간 오르간을 제작하셨던 아버지가 어느 날 어머니를 위한 그랜드 피아노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귀가 들리지 않은 어머니를 위한 아버지의 연구는 늘 새벽 4시가 되어서야 끝이 날 정도로 엄청난 시간과 온갖 정성을 다 쏟아 부으셨다. 그렇게 완성된 피아노가 많은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게 되고 아버지의 밤낮 없었던 노력이 헛되지 않게 큰 결실을 가져다주기도 했었다. 늘어난 기쁨만큼 여유롭지 않았던 생활은 나날이 부유해져만 갔다. 하지만 이런 자본 수단을 아버지는 청각 장애인들에게 수시로 기부할 만큼 헛되게 사용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손가락에 딱딱하게 자리 잡은 굳은살이 여럿 어린 아이들의 귀를 돌려주었고, 그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안에서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느낀 일말의 죄책감을 덜으셨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뜬금없이 큰 아버지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돈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도구이자 수단이 분명했다. 그리고 때로는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엄청난 무기가 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돈은 엄청난 효용성처럼 자신이 원하는 물건을 마음대로 살 수도 있었고, 자동차 대신에 비행기를 타면서 시간을 벌 수도 있었고, 부조금을 내면서 품위를 살 수도 있었고, 어떠한 경우에는 보석금으로 큰 죄를 면하게 만들 수도 있는 무서운 것이었다. 그렇게 얼핏 보면 불가능한 일들이 돈은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무서운걸 나는 생각도 못할 만큼 그 당시에는 너무 어수룩한 소년이었다. 도박으로 큰 빚더미에 쌓이게 된 큰아버지는 이슈처럼 기사에 실린 아버지를 보고 무작정 우리 집으로 들어앉았다. 그동안 고생이 훤했던 큰 어머니는 난데없이 찾아온 것에 대한 죄송함으로 매번 진심으로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 큰어머니를 극구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 모든 집안 살림을 먼저 도맡았다. 그런 큰어머니를 말리는 우리 가족들에게 매번 손사래 치며 살림이라도 제발 하게 해달라고 간곡하게 고개를 숙이고 또 애원했다. 우린 그런 큰어머니에게 아무런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큰어머니를 보고도 큰 아버지와 그 아들인 민수형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뻔뻔함이 습관처럼 익숙해보였다. 어느 날에는 오히려 자기 집처럼 매번 큰소리를 떵떵 치면서 「 이 여편네야!!! 밥상 차려오라니까! 감히 네까짓 년이 남편 말을 귓등으로 흘려 들어!!!?? 」, 「 이것들이 지금 나 돈 없다고 무시해? 내 방엔 침대가 왜 없어!!!?? 」,「 이 씨발년이! 당장 술사와!!! 」 등등의 자연스러운 요구를 서슴없이 했다. 그리고 매번 충혈된 큰 아버지의 눈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이상했고 어느 날에는 섬뜩한 조소의 빛을 띠기도 했다. 난 단순하게 그 눈빛을 알콜 중독 영향으로 간주했었다. § 나는 숨통이 끊어진다는 생경한 느낌의 참혹한 고통을 그때 처음 알았다. 매캐하고 쓰라린 맛이 목구멍에서 콧구멍으로 빠르게 역류하고 숨이 턱 막히는 것이 느껴졌다. 목에 밧줄을 매단 것처럼 참을 수 없는 고통과 두려움이 한 번에 밀려왔다. 그 순간 무겁게 감겨진 두 눈이 번쩍 떠졌다. 어젯밤에 분명 침대 위에서 곤히 잠들었던 내 몸이 어느새 누군가로 인해 억지로 옮겨 놓은 것처럼 뒷 정원과 연결되어있는 주방 뒷문에 눕혀 있었다. 이 문은 마치 다락방 문처럼 작디작아서 엄마 몰래 도망을 가거나, 그 문틈을 열고 샤키를 부르면 마치 우리 둘만의 비밀 장소처럼 샤키가 쏜살같이 그 문으로 달려오곤 했었다. 그 문틈 사이로 새벽의 찬 공기가 스물 스물 힘겹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 순간 막혀있던 숨통이 간신히 트였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눈을 여러 번 끔뻑 거렸다. 가위에 눌린 것처럼 절대 움직여지지 않은 몸을 억지로 꿈틀거렸다. 그리고 눈 한가득 보이는 거실에는 눈을 뜨기도 힘든 매캐한 연기와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와 매캐한 연기로 눈물이 흘렀고 콧물이 흘렀고 침들이 줄줄 흘러내렸다. 몸은 전혀 미동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개는 돌려졌다. 순식간에 타오르기 시작한 불덩이는 아버지의 영혼이 담겨진 조각들을 단숨에 집어 삼켰다. 엄청난 불길이었다. 순간 아버지와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 방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방문은 발간 불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붉은 불길이 내 눈앞에서 나를 조롱하듯 날름거리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마치 악몽처럼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난 그 자리에서 바보처럼 눈물만 뚝뚝 흘러 보내고 있었다. 아버지의 숨결과 손길이 가득 담겨있는 집안으로 바람이 타고 흘러 들어오듯 불길은 눈 깜짝할 사이에 치솟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안방 문이 바직 소리를 내며 나가떨어지듯 뻥 뚫리는 순간이었다. 그 문 사이로 불덩이를 동반한 아버지가 어머니의 몸을 안고 지렁이가 꿈틀 거리듯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미 두 분의 다리와 팔 부분에는 불덩이가 옷처럼 감싸 안고 있었다. 집을 지배하는 모든 공기가 사라진 듯 숨이 턱하니 막혀왔다. 그리고 난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얼굴이 점점 고통스럽게 일그러지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이 자세히 보였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빨리 죽고 싶었다. 모든 것이 뜨거운 불길 속에 타오르고 녹아내렸다. 그 뜨거운 불덩어리 안에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부둥켜안고 계셨다. 점점 의식을 잃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아버지는 어머니를 품 안에 가두시고 불덩이 속에서 보호하셨다. 나도 모르게 내가 숨이 통하는 주방 뒷켠에 잠옷을 입은 채로 누워있었던걸 다시 생각하자 이것도 아버지의 보호였다는 것을 순식간에 알 수 있었다. 나는 이것이 모두 지독한 악몽이거나 슬픈 소설이기를 바랐다. 불길은 야속하게도 점차 커지고 있었다. 여기저기 집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거실로 몸이 나온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은 그야말로 어떠한 단어로도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고 끔찍했다. 나는 여러 번 눈을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조금씩 움직여지는 몸을 질질 이끌고 불덩이로 가득한 거실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어찌되었든 어머니와 아버지를 구해야만했다. 비록 저 뜨거운 불길이 내게 옮겨지더라도 난 일단 두 분의 손을 반드시 잡아야만 했다. 그렇게 몸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나를 발견한 어머니가 아버지의 품속에서 놀란 눈을 키우시며 소리쳤다. 정작 불이 나도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 이상 화재를 알 수 없었던 건 어머니였는데 그런 어머니가 점차 녹아가는 아버지의 뜨거운 품 안에서 발버둥 치며 내게 소리쳤다. 그 순간 난 눈을 감았다. " 준수야 안 돼!!!! 여기로 오면 안 돼!!!!! 엄마, 아빠 괜찮아!!!!! 어서 어서!!! 뒷문으로 나가!!!! " 어머니는 오열을 하듯 내게 손짓을 하며 저리 가라고 소리치셨다. 난 어머니의 비명어린 명령에 크게 놀라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움직이는 몸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움직일 수록 어머니의 얼굴이 점차 사색으로 변해갔다. 그와 동시에 아버지의 옷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나는 또다시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너무 무서워서 차라리 눈이 감겨지길 바랐다. 이대로 죽을 수 있다면 그게 더 큰 행복이라고 생각할 만큼 그때의 상황이 너무 끔찍하고 고통스러워서 혀라도 깨물고 싶었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점차 어눌해지는 발음으로 내게 소리치셨다. 하지만 이미 어머니의 몸에도 불덩이가 옮겨 붙었다. 난 엉엉 소리조차 낼 수가 없었다. 어서 빨리 내 손이 어머니에게 닿아지기를 그 시간이 점차 앞당겨지기를 간절히 바랄뿐이었다. 내가 한걸음씩 다가갈수록 어머니는 고개를 세차게 돌리고 나에게 소리치셨다. " 준……수야!!!! 엄마, 아빠 정말 괜찮아!! 그러니까 먼저 나가있어!!! 응?? 우리 아들~ 엄마 말 잘 들을 거지??? 이번 한번만 엄마 말 들어… 응?? …준수야 제발 나가주렴…흐흡…흑… 제발…제발… " 나는 또 다시 고개를 세차게 끄덕거렸다. 하지만 몸은 자꾸만 불덩이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눈물이 자꾸만 흘렀다. 이것이 마지막 이별인 것처럼 막을 길이 없는 눈물은 야속하게도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자꾸만 흐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두 분의 고통스런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몸이 불덩이 속으로 이동될수록 점차 질식하듯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몸은 반 이상이 타들어 갔고, 점차 숨이 끊어지듯 눈을 감기 시작한 어머니는 여전히 손을 멀리 저으며 나에게 나가라고 손짓했다. 내 눈 앞에서 생생하게 어머니와 아버지가 불길에 타들어갔다. 끝까지 나를 보고 차마 고통스런 비명도 지르지 못한 부모님이셨다. 난 미약하게 몸을 꿈틀 거리며 그분들을 향해 기어나갔다. 난 모든 걸 체념했다. 하지만 두 분의 얼굴마저 다 타들어가는 마지막 모습을 끝내 보지 못한 채 나는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 바닥에 얼굴을 묻고 내 몸마저 불길이 어서 빼앗아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가 내 목덜미의 옷가지를 당기듯 거대한 힘이 뒤에서 느껴졌다. 감겨진 눈은 쉽게 떠지지 않았지만 헥헥 거리며 힘들게 숨 쉬는 소리만 들어도 난 그 큰 몸짓이 샤키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샤키는 아버지와 내가 없을 때 유일한 어머니의 말동무이자, 귀와 다름이 없었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위험한 거리에서도 샤키는 언제나 어머니를 보호하듯 보디가드처럼 잘 따라다녔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교육이 잘 되어있는 충견처럼 샤키는 실제로 판단력이 있는 사람처럼 침착하게 그런 상황들을 영리하게 해결하곤 했었다. 그런 샤키에게서도 타다 남은 나무 냄새와 매캐한 연기 냄새가 풍겼다. 숨소리는 상당히 거칠었고 침을 땀처럼 뚝뚝뚝 게걸스럽게 흘리고 있었다. 점차 몸이 뒤로 밀려나가듯 내 몸이 질질 끌려 나갔다. 난 끌려 가면서 손톱을 바짝 세웠다. 그리고 마지막 발악처럼 바닥을 손톱으로 긁으며 샤키의 발을 잡아 세우려 몸부림 쳤다. 그리 길지 않은 손톱은 곧바로 잘게 갈리듯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다. 점차 갈려진 손톱 뒤로 생살이 잘게 갈리듯 살이 벗겨지듯 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꼿꼿하게 세운 손톱을 내릴 수가 없었다. 나를 힘들게 끌고 나가는 샤키가 처음으로 미웠다. 정말로 처음으로 그렇게 샤키가 미웠던 적이 없었다. 손톱을 넘어선 손가락에선 피가 멀겋게 빠져나가듯 액체가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내 무거운 몸을 샤키는 이를 악물고 질질 끌고 나갔다. 샤키의 입안에서 줄줄 나오는 피인지 침인지 모를 걸쭉한 액체들이 내 목덜미 사이로 빠르게 흘러 내려왔다. 나는 꽉 감았던 눈을 마지막으로 떴다. 그리고 이미 불덩이와 함께 사라진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마지막으로 다시 손톱을 바짝 세웠다. 비명소리도 구해달란 발악의 외침도 전혀 나오지 않았다. 한순간에 벙어리가 된 것처럼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난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을 생생하게 지켜보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샤키를 위해 만들어 놓은 뒷문을 통해 이 뜨거운 불길 속에서 기어이 탈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난 정신을 잃었다. 숨을 붙들고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일이 17살. 나에게 일어났다. 아직도 그때가 떠오르면 손톱에서 피가 나고, 목울대에서 불덩이가 치솟고, 눈에선 피눈물이 비집고 새어나오는 생생한 느낌이 들었다. § 세차게 뛰는 심장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숨을 쉬고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야속한 운명을 저주하면서 죽고 싶었다. 사고의 현장은 너무나 참혹했다. 집 전체가 다 타들어 내려 앉으고서야 어마했던 불씨가 잠들었다. 그리고 두 분의 시신을 수습하는데 이미 두 시신이 서로 엉킨 채로 완전히 불에 타서 도저히 형체를 구분할 수조차 없었다. 하얀 천으로 덮여있는 천을 들추면서 잔인하게 나를 부추겼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시신을 보고 당신의 부모님이 맞다고 사실을 인정해야지만 이 시신을 편안한 곳에 모실 수 있다고 나를 몰아 세웠다. 나를 위해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던 두 분의 얼굴이 자꾸만 아른 거렸다. 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통곡했다. 평생 들어본 적 없는 기이한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두 다리를 뻗고 통곡했다. 목이 쉬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까지 그렇게 한참을 통곡했다. 이미 재가 되어버린 시신을 끌어 안았다. 아직까지 꺼지지 않은 불씨처럼 시신은 참 따뜻했다. 내 팔을 붙잡고 함께 통곡하는 큰 어머니가 옆에 계셨다. 차마 눈뜨고 바라볼 수 없는 끔찍한 모습으로 누워 계셨지만, 난 멈추지 않고 시신을 하염없이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울부짖었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쉬지 않고 두 분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이런 나와 시신을 분리하듯 여러 사람들이 내 몸을 잡아 당겼다. 그리고 떨어져간 시신 대신 샤키가 내 품에 들어왔다. 아직도 숨을 헥헥 거리는 샤키는 내 목을 핥고 얼굴을 핥고 눈물을 핥아주었다. 하지만 늘 팔랑 거리던 꼬리는 하염없이 축 쳐져 있었다. 난 그게 또 슬퍼 통곡하듯 울었다. 그리고 난 정확히 볼 수 있었다. 저 멀리서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 이런 나를 바라보고 있는 큰 아버지의 눈빛을 말이다. 그 얼굴에 떠오른 조소의 빛은 소름 끼치도록 잔인했다. 꽤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큰 아버지의 목 깊은 곳에서 낄낄 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난 또다시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연주를 하고 나오시는 길에 신은 우리에게 견딜 수 있는 고통만 허락하신다고 자주 말씀해주셨다. 따라서 내 앞에 놓인 시련을 절대로 피하려 들면 안 된다고 하셨다. 만약 내가 그것을 억지로 피하려 한다면 더욱더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아득한 암흑뿐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난 정말로 신이 있다면, 그 신에게 묻고 싶었다. 이런 고통도 견딜 수 있는 자에겐 내 아버지와 어머니만은 제발 돌려 달라고……. § 나는 정말로 이 세상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친인척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재산과 양육 문제를 둘러싸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친인척들이 자기 일처럼 성화를 내는 날들이 늘어 갔다. 다들 근거 없이 우리 아버지가 자기한테서 돈을 빌려갔다는 소리만 해댔다. 서로 살살 눈치보고 엉키듯 싸우는 모습에 난 정말로 웃음이 나왔다. 큰 어머니는 내가 건강하게 다시 학교에 제대로 갈 수 있는 날까지 정성껏 나를 돌봐주셨다. 그리고 나 때문에 같이 홍역을 앓듯 아파했던 샤키를 매일 병원에 데리고 가주셨다. 샤키의 건강 걱정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내게 큰어머니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매번 난 불길로 시작된 악몽을 꾸면서 일어났고, 비명 소리가 가득한 불길이 꺼지는 악몽을 꾸면서 잠들었다. 그래서 매번 잠들지 못하는 나의 가슴을 두들겨 주는 고마운 손길이 있었다. 역시나 큰 어머니였다. 온 몸이 흠뻑 젖을 정도로 소스라치게 놀라서 깨는 날이면 언제 방 안으로 들어왔는지 샤키가 코를 드렁 드렁 걸면서 내 곁에 누워있었다. 나는 매번 어제 일처럼 정신을 잃을 것처럼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 오랫동안 통곡했다. 이윽고 눈물이 마르고 가슴이 진정되면 샤키를 끌어안았다. 하지만 쉽사리 아픔이 진정되지 않아 그 날의 끔찍한 편린들이 밀물과 썰물처럼 반복적으로 내 가슴을 숨 막히게 조여 왔다. 난 정말로 이대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정신이 제대로 붙어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넋을 놓고 지내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던 어느 날이었다. 붙임성이 좋은 나에겐 친한 친구들이 여러 명 있었다. 그 친구들은 내가 안정을 찾을 때까지 내 곁을 지켜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가정 형편이 어려워진 그 친구들은 내게 진지하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난 그 친구와 함께 부둥켜 몸을 끼어 안으며 그 아픔을 함께 공유했다. 그 아픔이 나를 조금은 위로해주기도 했었다. 그리고 친구들을 도울 수 있는 선까지 난 최선을 다했다. 미약하게 급식비라던가 반찬거리나 쌀을 살 돈 딱 그 정도 였다. 나는 이것을 매 달 도울 수 있을 정도로 가난한 친구들에겐 헌신적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게 한통속 거짓말 이라는 사실을 알아버렸을 때 난 그들이 고함지르며 서로 나를 데려가겠다는 친인척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그들은 매번 내게 받아간 돈으로 4명이서 4등분을 하듯이 용돈을 벌어갔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내게 자연스럽게 설명한 민수형은 나의 몸을 발로 차며 ' 씨발놈아! 너 병신 짓은 이 집 안에서 만으로 충분하다. 씹새끼야! ' 라고 마음껏 비꼬았다. 어서 빨리 재산을 큰아버지에게 양도하라는 말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난 그 발길질을 저항하기 조차 싫었다. 온 몸에 피가 멍들도록 얼씬 두들겨 맞았다. 차라리 맞는게 마음 편안하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리고 이런 나를 감싸 안듯 보호하는 큰어머니는 하염없이 내게 미안하다고 이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며 나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난 이젠 그 모습까지 거짓 연기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내게 진실한 마음은 유일하게 샤키뿐이었다. 샤키가 나에게 죽지 말고 잘 살자는 것처럼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친구들의 거짓된 진실에 그날만큼은 학교를 가지 않았다. 시내를 유유히 활보하며 시간을 때웠다. 그리고 샤키가 유독 좋아하는 껌을 한 움큼 샀다. 그리고 내 발걸음이 빨라졌다. 한시라도 꼬리를 팔랑 팔랑 흔들면서 내게 안길 샤키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방황하던 발걸음을 돌려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지금쯤이면 낮잠을 자야할 시간이었는데 샤키가 보이지 않았다. 혹시라도 집을 뛰쳐 나간 걸까 그렇다면 나는 이젠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기우가 현실로 나타났다. 이미 다 타버린 뒤뜰로 발걸음을 옮긴 내게 보이는 장면은 그야말로 뉴스에서 나오는 살인처럼 지독하고 잔인하고 끔찍했다. 샤키는 단단한 밧줄로 동동 허공에 묶여있었다. 살을 파고드는 밧줄이 힘겨운지 으르렁 짓지도 못하고 거친 숨소리만 내뱉고 있었다. 샤키의 입에선 침이 질질 새어나왔다. 그리고 샤키가 묶어진 허공 밑으로는 연기가 자욱했다. 그 안에 나무가 거대한 불덩어리를 만들며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샤키를 바라보며 낄낄 웃는 큰아버지와 민수형이 편안하게 앉아 있었다. 난 놀란 눈을 키웠다. 쉽게 진정되지 않은 가슴은 심장이 튀어 나올 정도로 뛰고 있었다. 큰 아버지는 그야말로 굶주림에 시달린 볼썽사나운 몰골이었다. 배가 홀쭉하고 눈이 퀭했다. 얼굴엔 핏기가 하나도 없었고 어깨 위로는 살비듬이 소복이 쌓여있었다. 그런 큰 아버지 옆에서 눈만 껌뻑 거리고 아무렇지 않게 샤키를 지켜보는 민수형이 있었다. 완전히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그들의 행동이나 생각은 짐승과 진배없었다. 그리고 곧바로 소름끼치는 대화가 오고갔다. " 아빠. 이게 다 이 개새끼 때문이야!! 진작 죽여 놨어야 했는데. " " 그러게 이 새끼가 그 녀석을 살릴지 누가 알았겠어. 이 개새끼만 아니었어도 한방에 황천길이었는데. " " 그래서 아빠 친척들이랑 머리 좀 썼어? 우리 빨리 이사나 가자. 죽은 사람들 꼭 억울한 귀신 돼서 나타날까봐 밤마다 무서워 죽겠어. " " 이놈아! 이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 혼자 왔다 혼자 가는 세상을 둘이 가게 만들어줬으니 형님한테 고마워해야지. " " 그런데 아빠 진짜 그 새끼 갖다 키우게?? " " 돌았어? 그런 건 흔적 없이 사라져야 해. " " 왜 또 불 지르게?? " 낄낄낄.. 격렬한 감정을 이기지 못해 나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권세를 누리는 자만이 갖는 포용력과 위엄을 함께 갖춘 사람들처럼 목소리를 흉내 내고 있었다. 서로 마주보고 낄낄 거리는 웃음소리가 내 고막을 자극했다. 손톱자국이 선명하도록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있는 큰 나무토막을 주었다.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내 얼굴에 떠오른 조소의 빛이 아찔하게 분노로 바뀌었다. 난 그대로 그들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그리고 아무런 방어 없이 앉아서 언제 샤키를 죽일지 시간을 생각하고 있던 그들을 향해 단단한 나무토막을 내리 찧듯이 거세게 때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엄청난 비명을 지르며 두 사람이 땅 바닥으로 나가 떨어졌다. 큰아버지는 다리가 부러졌는지 덜컹 거리는 다리를 붙잡았고, 민수형은 머리에 피가 조금씩 나왔는지 놀란 눈을 키우고 머리를 붙잡았다. 난 흰자 없이 온통 피눈물로 가득 채워진 눈처럼 사납게 눈을 뜨고 그들을 여러 번 나무토막 내듯이 패기 시작했다. 둔탁한 소리가 여기저기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 나올 때마다 더 악에 받쳐 힘을 실어 패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으악 소리마저 줄어질 때쯤 허공에 매달린 샤키를 조심스럽게 끌어 내렸다. 힘들게 숨 쉬고 있던 샤키의 감겨진 눈이 서서히 뜨기 시작했다. 샤키는 내 외로움을 유일하게 메울 수 있는 가족이었다. 나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결국 가누지 못하고 옷자락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안긴 샤키가 난데없이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죽음이 코앞이었던 샤키가 내게 안기자마자 그렇게 애교를 부리며 꼬리를 흔들었다. 정작 숨 쉬기가 힘들어 헥헥 거린 샤키였는데 난 주머니에서 얼른 샤키가 좋아하는 껌을 내밀었다. 씹기도 힘든 모양인지 힘들게 씹는 샤키의 모습에 난 울컥 치미는 가슴을 뒤로한 채 어서 이 지옥 같은 악몽 같은 곳에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곳이 아니라면 어디라도 숨을 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샤키를 끌어안은 작은 두 손에는 거부할 수 없는 짙은 무게가 실려 있었다. § 새벽 서울역 앞에는 쭈그리고 앉아 있는 노숙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언 몸을 녹이고 있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서울역 지하도엔 많은 노숙자들이 모여들었다. 두꺼운 종이를 바닥에 깔고 신문지를 덮고 잠을 청했다. 마치 골목길을 메운 쓰레기처럼 음식 찌꺼기와 지린내가 풍기는 노숙자들이었다. 궁핍과 굶주림에 직면한 사람들은 서로의 음식 찌꺼기로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고, 서로가 챙겨온 박스 상자 하나만으로도 쉽게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샤키와 자리를 잡아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김없이 악몽으로 잠이 들고 악몽으로 잠이 깼다. 이런 내 옆에서 샤키는 언제나 안심하라는 것처럼 꼬리를 흔들고 머리를 내게 부비며 애교를 부리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깊숙이 잠이든 내게 희미하게 들리는 부스럭 소리에 순간 몸이 떨리듯 눈을 번쩍 떴다. 자기 전에 샤키와 조금씩 먹고 남겼던 빵 봉투로 손을 뻗은 작은 남자 아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손을 뻗은 아이와 난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곧바로 눈을 키우며 놀란 아이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난 눈을 비비며 자리에 앉았고 덩달아 잠이 깬 샤키가 낯선 사람을 보자 으르렁 거리기 시작했다. 이에 놀란 아이는 고사리처럼 작은 두 손을 불이 나게 싹싹 빌어가며 내게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벙어리처럼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웅얼거리듯 애원하는 목소리를 뱉었다. 그리고 난 그 아이가 귀가 들리지 않다는 사실을 쉽게 파악할 수가 있었다. 아이는 자신의 귀 보다 훨씬 큰 보청기를 쓸모없이 귀에 걸고 있었다. 그리고 단순하게 그 보청기는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소모품에 불과했다. 마치 아이는 그 보청기가 자신의 청각을 되돌려줄 것처럼 안타깝게 착용하고 있었다. 아이는 계속해서 손을 싹싹 빌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런 아이에게 난 가방에 넣어둔 새 빵과 샤키를 주려고 남겨둔 우유를 내밀었다. 아이의 이름은 김민서였다. 양쪽에 매달린 눈은 눈방울처럼 크고 작게 쳐져 눈망울이 너무나 예쁜 아이였다. 비록 바싹 마른 몸과 얼굴이었지만, 빵을 허겁지겁 이리저리 눈치 보며 먹는 와중에도 햇빛에 익은 발그스레한 얼굴 한가득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 웃는 모습이 너무 예쁜 사내 아이였다. 유난히 까만 눈이 민서의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의 몸에서는 오래된 쓰레기 냄새가 짙게 풍겼다. 그리고 시간을 짐작하듯 민서는 서둘러 서울역을 빠져나갔다. 그 이후로 밤이 되면 민서는 자기 자리를 찾듯이 내게 찾아왔다. 어느 날에는 어디서 주워왔는지 반 쯤 없어진 빵을 들고 내게 내밀었다. 그리고는 어눌한 발음으로 내게 ' 엉허앙 이거 머거세여.. 어혀엉아 꺼 에여.. ' 라고 말했다. 가슴이 뭉클했다. 민서는 고작 10살이었다. 눈에 별이 박힌 것처럼 반짝이는 눈은 너무 귀여웠고 가끔씩 애교 부리듯 함박웃음을 지을 때면 얼었던 마음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점차 민서가 익숙해진 샤키는 으르렁 거렸던 경계를 없애고 민서에게도 꼬리를 흔들었다. 처음에는 큰 강아지에 지레 놀라 내 품안에서 떠나지 않았던 민서가 어느새 샤키의 배를 쓰다듬고 등을 쓰다듬고 코에 뽀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민서가 싫지 않았던 샤키는 민서가 돌아오는 시간이면 지하철 입구를 서성거리며 돌아다니기도 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이런 민서가 앵벌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충격적이었다. 제 때 시간이 되면 지레 놀라듯 역을 뛰쳐나갔던 이유를 그제야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노숙자가 많은 지하철역에는 어린 아이들을 앞세워 앵벌이를 하는 조직들이 엄청났다. 그들은 때론 잔인하게 멀쩡한 다리의 인대를 잘라서 병신으로 만든 다음에 앵벌이를 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앵벌이들은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이거나 협박에 못이긴 사람들이거나 부모로부터 팔려온 사람들이었다. 그 중에 민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빚더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 대신에 앵벌이로 팔려온 민서의 조건은 조직 내에서 제대로 만족하는 유형과도 다름이 없었다. 일부러 다리를 자르지 않아도 들리지 않은 귀를 이용해 순식간에 앵벌이로 만들었다. 민서의 목에 걸린 문구에는 ' 귀가 들리지 않은 고아입니다. 아버지가 저를 팔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곳에서 도망쳤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10살 김민서 입니다. ' 라는 글씨가 삐뚤빼뚤 서툴게 적혀있었다. 이런 민서의 구걸에 많은 사람들은 속은 셈 치고 동전을 하나 둘씩 넣어주었다. 그런데 일정한 금액이 채워지지 않은 날이면 가차 없이 민서를 짓밟히고 그날 앵벌이를 한 대가를 전혀 주지 않았다. 민서는 돈을 받지 못한 날에도 고개를 조아렸고 돈을 받은 날에도 주변 앵벌이들한테 쉽게 돈을 뜯기면서도 그 사람들에게 까지도 고개를 조아렸다. 민서는 너무 많이 어렸고 또 모든 걸 너무 몰랐다. 어느 날부터 민서를 괴롭히듯 우리의 잠자리에 나타난 앵벌이들이 민서를 괴롭혔고 덩달아 우리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이들을 보고 크게 으르렁 짓는 샤키를 보고 앵벌이들은 쉽게 덤비지 못하고 콰악! 침을 뱉고 도망가기 일쑤였다. 벌떼처럼 수시로 드나드는 행패에 지칠 대로 지친 내게 민서가 손을 내밀었다. 이유가 알 수 없었던 나는 무작정 민서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우리의 잠자리와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은 민서가 바닥을 탕탕 치며 이곳에 앉으라고 권유했다. 영문을 모른 채 무작정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또다시 시끌벅적 행패를 부리러 온 앵벌이들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을 때였다. 저기 한쪽 모퉁이에서 잠이 든 한 남자가 짜증스럽게 머리를 벅벅 긁어대며 몸을 날카롭게 세웠다. 그 남자는 다른 노숙자들과 다르게 깔끔한 침낭이 있었고 굉장히 말끔한 모습이었다. 오로지 잠자리를 위해 이곳에 있는 사람처럼 배고픈 기색도 굶주린 얼굴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짜증스럽게 몸을 일으킨 남자가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간단한 말이었는데 굉장히 위협적으로 들려와 내가 다 소름이 돋았다. " 이 씨발새끼들이 민서 다시 괴롭히면 내가 좆 지져버린댔지. 이 씨발새끼들 얼른 안 꺼져!!?? " 그 남자는 민서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짜증스럽게 내뱉은 그 한마디에 남자의 얼굴을 알아본 앵벌이들은 쏜살같이 다다닥 지하철역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실내가 조용해지자 다시 졸음을 이기지 못한 남자는 침낭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다시 잠을 청했다. 민서는 그런 남자를 보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마치 영화 속 영웅을 본 것처럼 눈이 반짝 반짝 거렸다. 천천히 물어보는 내 입모양을 지그시 쳐다본 민서가 작은 손가락을 내 귀에 바짝 가져대고는 간지럽게 소곤거렸다. " 저어.. 어형아한테서어.. 조오흔.. 냄새 난다요.. 민서 매이일.. 구해저따아.. " 민서의 말에 소리를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입모양으로 조용히 대답했다. 어느새 옆에서 꾸벅 꾸벅 졸고 있던 샤키가 드르렁 코를 골기 시작했다. 경계하느라 많이 피곤했던 모양이다. " 민서야 저 형한테 좋은 냄새가 나? 우리 민서 매일 구해주고 그랬어? "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 민서가 다시 내 귀에 입을 바짝 대로 어눌한 발음을 이어 나갔다. " 모굑도 시켜어주고여.. 빠앙도 저따아.. 크른데.. 강아지 무서워 하니다. 그래서 엉어랑 샤키라앙 가치 못잔다아.. 민서는 춘수엉아랑 그래서 잠니다. " " 크큭.. 강아지를 무서워 해? 그래도 우리 민서 착하네 저런 멋진 형 놔두고 형한테 매일 오고. " " 예엣날에 허엉아가 키우던 강아지가 아파서 가치이.. 아프다가 강아지가 주거버렷대니다.. 크래서어.. 그 이후로 강아지이 무서워 하니다. 강아지 만지면 에치 에치 하니다. " " 아~ 강아지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구나. 강아지가 죽어서 저 형이 엄청 슬펐나 보다. 그치 민서야? "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던 민서가 샤키의 털을 만지작 거리고 얼굴을 부비적 거렸다. 민서의 몸은 비쩍 마르고 예쁜 얼굴 전체에 마른버짐이 피어 울긋불긋하지만 눈빛만은 굉장히 초롱초롱 빛났다. 언제라도 지켜주고 싶은 그런 눈이었다. 하지만 가끔씩 빙그레 웃는 모습이 즐거워하는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지독한 고통에 휩싸인 내 모습을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리고 민서는 잠이 오지 않은 날이면 희미한 허밍으로 노래를 불렀다. 비록 가사는 없었지만, 나는 그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 쉽게 알 수가 있었다. 그리고 잠이 오지 않은 날이면 그 남자가 민서에게 들려주었던 노래였다는 걸 알았다. 어느 날 부터인가 그 남자의 침낭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시무룩해있는 민서의 두 눈에 흐르는 큰 눈물은 오랫동안 멈추지 않았다.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울먹이는 민서는 다시는 그 형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당연스럽게 알고 있었다. 가늘게 떨고 있는 민서는 그 남자가 없는 밤이 무서웠던 것이었는지 그 남자가 들려준 노래를 들을 수 없었던 사실 때문이었는지 오랫동안 앓듯이 아파했다. 그리고 잠결에 내뱉은 말은 그 남자의 사정을 알려주기도 했었다. " 어떤 혀엉아가 배거프지 안케.. 해주겟타고 그 혀엉아 데려갓어.. 혀엉아가 돈 마니 벌며는 민서 찾아언대.. 코옥.. 다시 올거래써.. 민서 이제 개차나.. 안 울어요.. " " 이제 형아가 그 노래 불러줄게. 민서야 너는 아프지 마. " 낡은 마루의 키다리 시계는 할아버지의 옛날시계 할아버지 태어나시던 아침에 우리 가족이 되었다네. 언제나 정다운 소리 들려주던 할아버지의 옛날시계 하지만 지금은 가질 않네. 이젠 더 이상 가질 않네. 어여쁜 신부를 맞이하시던 날도 정겨운 종소리 울렸네. 할아버지의 기쁨 슬픔을 함께 한 보물처럼 아끼던 시계 이제는 들리지 않는 소리로만 시간을 얘기해 준다네. 할아버지의 고단했던 인생에 희망을 함께했던 시계 언제나 인자하시던 미소와 사랑도 알고 있는 시계 이제는 들리지 않는 소리로만 시간을 얘기해 준다네. 할아버지 영혼이 떠나시던 날 밤 요란한 소리로 울던 시계 하늘에 오르신 할아버지를 따라 시계는 이별을 했다네. Ninety years without slumbering Tick Tock Tick Tock His life seconds numbering Tick Tock Tick Tock 이제는 헤어져야 할 땔 알았다네. 시계는 가지를 않네. § 지독한 열병처럼 몸이 아픈 민서에게 찾아온 조직배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차렴치한 인간들이었다. 식은 땀에 절어있는 민서를 개처럼 끌고 가다시피 데려갔다. 그런 민서를 꼭 붙잡고 있는 내게 담배를 물고 있는 머리 짧은 사내들은 내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미처 피할 겨를이 없었던 나는 몸을 크게 비틀 거렸다. 내 복부를 향해 피스톤처럼 빠른 주먹을 연이어 꽂았다. 둔탁한 신음 소리와 함께 나는 배를 움켜잡고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어느새 칼을 들고 샤키를 위협하는 사내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몸을 질질 끌고 그런 샤키의 몸을 감싸 안았다. 민서는 그런 사내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손을 싹싹 빌고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더 많이 벌어오겠다고 샤키랑 형은 때리지 말라고 들리지 않은 발음으로 애원했다. 그런 민서의 머리카락을 움켜잡은 사내가 민서를 가볍게 허공으로 들어올렸다. 발그스레한 민서의 얼굴가득 함박웃음이 나를 향해 지어보이고 있었다. 난 민서와 함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려보내며 주먹을 쥐고 있었다. 그 사내들은 가차 없이 민서의 바지를 벗겼고 아직 자라지도 않은 민서의 성기를 성희롱 하듯 여러 번 잡아 당겼다. 쾌락이 아닌 고통으로 민서는 엉엉 울며 다리를 발버둥을 치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사내의 거침없는 손가락은 멈춰질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이 순간 그 남자의 침낭이 떠올랐다. 잠결에 삐쩍 솟은 남자의 머리카락이 생각났다. 난 그 남자가 간절했다. 하지만 민서의 말대로 그 남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고개를 세차게 돌리며 민서가 나를 보고 엉엉 울었다. 나도 그런 민서를 보고 엉엉 울었다. 못을 박듯이 활짝 내려간 민서의 바지가 얇은 발목에 덩그러니 매달려 있었다. 눈을 꽉 감고 있었지만, 허공에 매달린 민서의 가녀린 몸이 파랗게 질려가자 나는 그 사내 녀석들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내 어깨를 잡은 채 가슴과 턱을 향해 사내가 무릎을 올려 꽂았다. 숨이 막혀왔고 둔탁한 소리가 지하를 에워싸고 있었다. 이런 나를 보고 낄낄 거리는 사내의 웃음소리에서 그간 잊으려고 애를 썼던 큰아버지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그들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고개가 바짝 세워지면 세워질수록 민서의 성기를 꽉 잡은 사내의 압력이 거세지고 있었다. 으악,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민서의 엉덩이가 부들부들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나에게 민서는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언어로 입모양을 크게 냈다. 민서의 이리저리 부르튼 입모양은 아주 정확하게도 ' 준수형 고마워. ' 였다. 난 오열을 하듯 머리를 감싸 안고 통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민서의 머리채를 질질 끌고 사내 녀석들이 사라졌다. 이미 여러 사내들한테 밟힐 대로 밟힌 샤키는 낑낑 거리면서 이런 내 곁으로 다가와 헥헥 거리며 꼬리를 흔들었다. 다시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나에게 고맙다고 웃는 민서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민서를 이 악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내고 싶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보란 듯이 잘 살아야겠다는 강한 오기와 의지가 샘처럼 솟구쳤다. 난 그대로 보름 만에 그 지하도에서 빠져나와 아버지와 의형제처럼 잘 지냈던 변호사 아저씨에게 찾아갔다. 목숨이 끊어지길 기다리고 있던 나에게 민서는 그렇게 일어날 수 있는 용기와 계기를 가져다주었다. 그 작은 손이 그 작은 입술이 내게 말했다. 이런 내게 말했다. 고맙다고. 준수형 고맙다고. § 이미 다 타버린 집은 어느새 큰아버지 명의 밑으로 들어가 있었다. 기가 찼지만 아무런 표정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변호사 아저씨가 위태롭게 바라보았다. 나는 짧고 간단하게 의견을 제시했다. 일단 민서와 샤키가 살 수 있는 큰 집과 아버지가 살아생전에 마지막으로 손수 제작한 그랜드 피아노를 구입할 수 있는 돈과 더불어 민서가 당분간 배고프지 않고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충분한 돈을 빼고 나머지 돈을 전부 청각 장애인들에게 환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런 내게 아저씨는 여러 번 설득 하려 이 방법 저 방법을 제시했지만 중간에 아저씨의 말을 자른 나는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는 사람처럼 나를 진심으로 도우려는 아저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 변호사님도 혹시 돈 필요하세요? 그럼 서류 조작 좀 하셔서 몇 푼 떼어가도 저 별말 안할 테니까 제가 원하던 방향대로 처리해주세요. ' 이 말을 끝으로 아저씨는 더 이상 나를 설득하려 애쓰지 않았다. 서류와 절차는 생각보다 복잡했고 오래 걸렸다. 갈 곳이 없는 내게 아저씨는 잠자리를 제공하고 푸짐한 음식을 주셨다. 하지만 정작 나는 허공에 매달린 민서가 떠올라 그 음식을 차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나를 따라 샤키도 온종일 굶고 있었다. 한 시간이라도 빨리 민서를 그 개새끼들 속에서 빼내오고 싶었다. 그때는 그 생각만이 간절했다. 그렇게 며칠을 아저씨 사무실에 쳐 박혀서 복잡한 절차를 밟았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서류에 지문을 찍고 사무실에서 나올 수가 있었다. 마음이 홀가분했고 가슴이 벅차올랐다. 일단 민서를 데리고 새로 장만한 우리 집으로 데려갈 생각이었다. 급한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진 만큼 자꾸만 엇갈려 힘없이 넘어져서 짜증이 나기도 했었다. 그런데 봄 햇살처럼 포근히 내가 걷는 길을 비추는 햇살에게 보답하듯 난 처음으로 웃음을 선보였다. 그렇게 민서의 곁으로 향해 뛰어갔다. 민서는 깨끗한 박스 상자 안에 몸을 웅크리고 들어 앉아 있었다. 아이의 붉은 뺨과 입술 사이로는 무언가 간절히 말하듯 깊은 소리들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민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민서는 자신을 내다 판 아빠를 찾고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박스 안에 꼼꼼하게 자리 잡은 민서의 몸을 꺼내다시피 끄집어냈다. 그런데 갑자기 민서가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민서에게서 나는 고약한 냄새가 내 코를 찌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다급해진 마음에 난 민서의 이마를 짚어보고 열을 체크했다. 민수의 몸은 온통 멍투성이로 보랗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민서가 점점 눈을 감으면서 혀엉 혀엉 하고 애타게 나를 부르기 시작했다. 놀란 나는 민서를 꽉 끌어안고 등을 두들겨 주었다. 민서는 내가 없는 동안 피골이 상접해 있어서 얼굴은 반 이상 줄어있었다. 가슬가슬 마른버짐이 핀 얼굴로 민서는 나를 보고 웃었다. 민서의 몸에서 나는 악취와 소독약 냄새가 뒤섞여 역한 냄새가 옆 사람에게까지 풍겨졌는지 자리를 피하며 사람들이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상하게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철렁 내려앉은 가슴에 놀라 울었는지 환하게 웃고 있는 민서를 보고 울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민서의 모습을 보고 모든 걸 예상한 사람들처럼 자리를 피해 멀리 달아났다. 나는 급하게 민서를 등에 들쳐 업었다. 따뜻한 햇살을 따라 울면서 병원을 찾아 헤매었다. 추워하는 민서의 엉덩이를 다시 고쳐 업으며 시내 한복판을 뛰었다.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코를 막으며 올라오는 토사물에 역겨워했다. 그리고 등에 매달린 민서가 행여나 무서워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런 마음에 나는 그 남자가 불렀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점차 부들거리던 민서의 몸이 차츰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내 목을 끌어안았던 민서의 나뭇가지처럼 얇은 팔이 스륵 하니 밑으로 내려갔다. 나는 노래를 멈출 수가 없었다. 엉엉 통곡하듯 울면서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찾은 병원에 도착하자 민서는 이미 싸늘하게 죽어있었다. 의사는 길거리에 버려진 농약을 주워 먹은 것 같다고 안타깝게 설명했다. 하지만 피어오르는 악취에 민서를 환자 취급도 안한 채 우리를 다시 내쫓으려 했다. 난 그런 의사와 간호사를 섬뜩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 이 씨발새끼들아 나 돈 많아!!!!!!!!!!!! 나 이제 돈 많다고!!!!!!!!!! 그러니까 민서. 우리 민서... 살려 내란 말이야!!!!!!!!!!!!! 돈 많아!!!!!!! 나 돈 많다고!!!!!!!!!!!!!!! 이 개새끼들아!!!!!!!!!!! 니들이 의사야!!!! 그러고도 니들이 의사냐고!!!!!!!!!! 살려내!!!!!! 우리 민서 살려내!!!!!!!!! " 나에게 제발 용기를 갖고 살라고 환한 함박웃음을 선보였던 민서가 그렇게 하루아침에 내 곁을 떠나갔다. 두번째 이별이었다. § 그 이후로 난 지하철을 타지 않았다. 학교도 가지 않았다. 오로지 뛰어다녀도 모자랄 큰 아파트 안에서 죽은 듯이 지냈다. 통닭을 주로 시켜 먹었고, 몸이 힘들어 지는 날에는 음식을 시켜먹었다. 게임기를 샀다. 하루 종일 게임을 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샤키와 목욕을 하고 샤키와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샤키와 함께 잠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굉장히 고가로 치솟았던 아버지의 마지막 유작인 피아노가 집으로 배달되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버지가 못한 연주를 어머니가 못들은 연주를 민서에게 들려주지 못한 연주를 샤키를 위한 연주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정신없이 작업실을 꾸미고 정신없이 음악에 매달렸다. 그렇게 아파트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죽은 듯이 모든 세상을 차단 한 채 3년을 살아갔다. 이런 나에게 철수라는 친구는 많이 특별했다. 주로 시시 껄껄한 게임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난 그 친구와의 소통이 처음으로 즐겁다고 느껴졌다. 철수는 내가 사는 집을 내가 다니는 학교를 나와 함께 지내는 가족들을 궁금해 하지도 그렇다고 나에 대해 궁금증 많은 친구가 아니었다. 오로지 둘만의 공통된 주제들로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시간들이 점차 늘어나게 되고 자연스럽게 또 유일하게 만나는 친구가 되었다. 그 친구 덕분에 검정고시를 생각했다. 집에선 공부 아니면 건반을 두들기는 일이 전부였던 나에게 대학 입학은 남들보다는 조금 더 쉽게 다가왔다. 그렇게 한걸음씩 느리지만 서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나를 챙겨주고 아껴주었다. 하지만 난 그런 사람들조차도 제대로 된 시선으로 보지 못했다. 아직 가슴 한가득 고여 있는 응어리는 평생가도 풀어질 것 같지 않았다. 마음을 주진 못해도 넉넉한 웃음은 보였다. 그들은 내가 웃는 얼굴을 좋아했고, 내가 아이처럼 까르르 웃어버리면 웃음이 전염되듯 함께 웃었다. 그럴 때마다 난 내가 외로운 사람이 아니구나. 다시 한 번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게 익숙해지고 웃는 게 편안해지고 사람을 만나는 두려움이 점차 줄어들었다. 그 날은 마음이 굉장히 무거운 날이었다. 요즘 부쩍 몸이 나빠진 샤키 때문이었다. 자꾸만 늘어지려고 하고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는 샤키를 데리고 병원을 들렀다 나오는 길이었다. 언제나 꼬리는 세차게 흔들었지만, 이상하게 어딘지 모르게 몸이 좋아 보이지 않은 샤키때문에 마음이 울컥 거려 힘들었다. 이대로 집으로 갔으면 좋으련만 산책을 자주 시키라는 선생님의 말이 떠올랐고 무엇보다도 철수와 내기한 게임팩이 떠오르자 발걸음을 쉽게 돌릴 수가 없었다. 철수가 말한 대로 그곳에는 엄청난 인파들이 몰려있었다. 하지만 그런 인파들을 하나하나 비집고 들어서는 내게 사람들은 이동하게 편하게 길을 터주었다. 그 이유가 애완견을 끌고 들어온 팬이 생소해서였던 것이었는데 그 당시에 난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쓸 만큼 여유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생소한 장소만큼이나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나는 마냥 신기했다. " 이름? " " 얘 샤키. 못 들었어요? 샤.키.요. 우리 집 강아지 " 그 남자가 샤키의 이름을 물어봤다. 그리고 모양새가 우습게도 재채기를 연신 했다. 그 모습이 나는 너무 재밌었다. 무거웠던 마음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웃음이 새어나오려 했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나를 처음 본 남자의 얼굴에는 '왜' 라는 질문을 달고 살아라. ' 그냥' 이라는 대답은 절대 해선 안 된다. 남들에게 비판 받거나 틀린 얘기해서 쪽팔리는 것을 겁내지 마라. 그리고는 의심해보고 내버려라. 싫어하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것이 뭔지 찾아보라. 젊었을 때 쿨한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사소한 일에 흥분하면서 촌스럽게 살아라. 라는 변영주님의 문구가 고스란히 새겨져있었다. 나에게 왜 반말을 하냐고 화를 내고 나이가 몇 살이냐고 얼굴에 열을 올렸다. 그러다가도 궁금한 건 못 참겠는지 내 이름을 물어 보았고 뭐든지 그 이유를 분명하게 물어봤다. 보는 대로 의심을 하고 관심 있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사소한 일에 흥분할 만큼 남자는 촌스러웠다. 그리고 난 그 남자에게서 나는 체향이 그리 낯설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곧바로 내 얼굴을 주시한 남자는 짜증스런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재채기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난 다시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난 진심으로 웃을 수가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낭떠러지에 오른 내 인생이 뒷걸음치던 나약한 내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멈춰지지 않은 그 남자의 재채기처럼 그렇게 난 녀석과 처음으로 만났다. 돌아가는 길에도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와 손바닥이 마구 간지러웠다. § 샤키도 나처럼 그 날의 체향을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키가 내 곁에 없다는 건 또다시 나 혼자 덩그러니 버림받은 세상에 남겨진 기분이 들어 한동안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나에게 아버지와 어머니가 데려다준 선물처럼 유천은 내게 천천히 진심으로 다가왔다. 악몽으로 시작되어 악몽으로 끝나는 긴긴 밤들은 어느새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유천의 목 언저리에 녀석의 향을 맡듯 코를 킁킁 거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스르륵 눈이 감기곤 했다. 처음엔 샤키를 잃고 오랫동안 울어버린 탓이라고 간주했었다. 그런데 유천이 우리 집에서 잠을 자고 간 날만 악몽을 꾸지 않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녀석의 체향에 취하듯 깊게 잠드는 내가 있었다. 생소했지만 그런 녀석이 난 낯설지 않았다. 그리고 오랫동안 잊고 지내려고 애를 쓴 민서가 떠올랐다. 어쩌면 민서도... 어쩌면 샤키도... 유천의 체향에 나처럼 깊게 잠들었나 싶은 마음에 목이 메어오고 가슴이 아프기도 했었다. 죽은 샤키의 공백을 유천은 무리 없이 채워주었다. 샤키 대신에 나의 애완견이 되어주겠다는 녀석의 말은 가벼운 빈말이 아니었다. 유천은 단 한 번도 진심이 아닌 적이 없었다. 난 그런 유천을 곁에 두고 샤키가 없는 외로움에 홀로 싸우는 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유천이 화가 나면 나도 덩달아 소리를 꽥꽥 질러 보기도 했다. 눈물이 나도록 웃긴 날이면 배를 움켜잡고 웃는 날이 늘어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난 유천과 함께 있는 작업실을 가장 좋아했다. 유천은 신기하게도 피아노 건반은 잘 치지만, 악보를 볼 줄 몰랐다. 난 그게 신기한 만큼 반가웠다. 그때부터였다. 유천에게 악보를 가르치고 피아노를 가르치고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한 게. 마치 난 그때의 어머니가 떠올랐다. 진지한 표정과 평온한 표정으로 하루하루 내가 치는 건반의 난이도가 높아지고 손가락이 섬세해질수록 어머니의 미소는 점점 더 깊어져만 갔다. 티격태격 악기를 다루는 동안에도 우리들은 시도 때도 없이 웃고 싸우고 화내기를 반복했지만, 유천도 나처럼 이 작업실을 좋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유천은 아버지가 만든 피아노를 굉장히 좋아했다. 내가 그곳에 앉아있는 꼴을 못 보는 사람처럼 매번 의자를 비집고 자리를 차지해서는 점점 늘어가는 연주를 뽐내듯 내게 들려주었다. 유천의 손가락은 길고 가느다래서 피아노를 치기엔 아주 적당했다. 그리고 굉장히 빠른 속도로 손가락을 늘려나갔다. 하루하루 점차 변해가는 유천의 멜로디를 들으면서 난 서서히 내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제야 아버지, 어머니, 민서, 그리고 샤키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방송을 본 큰어머니가 처음으로 학교 앞으로 찾아오셨다. 나는 그날의 악몽이 어제 일처럼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새 많이 늙은 큰어머니는 다짜고짜 내 팔을 붙잡고 울기 시작했다. 여전히 그녀는 나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난 그녀의 팔을 냉정하게 뿌리쳤다. 그녀의 얼굴을 보자마자 큰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낄낄낄 거렸던 조소어린 눈빛과 끔찍한 목소리도 떠올랐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다리도 부들부들 떨렸다. 나를 다시 찾아왔다는 자체가 나를 크게 위협하듯 조롱하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세차게 뛰었다. 그리고 이런 내게 마법처럼 유천이 내 앞에 나타났다. 피골이 상접된 얼굴과 다르게 목소리는 너무 밝았다. 나를 향해 온전하게 유일하게 진실로 웃음을 보여준 사람. 난 이런 녀석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박유천은 내가 좋다고 말했다. 나도 그런 녀석을 좋아했다. 하지만 박유천은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나도 그런 녀석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난 자신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샤키가 내 곁을 떠나고 나는 마치 짐을 덜어낸 홀가분한 사람처럼 이전 보다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다는 것을 알았다. 깊은 슬픔 뒤에 오는 상실감은 그 어떤 것보다 잔인하게 나를 에워쌌다. 나는 소중한 사람을 잃는 것에 대한 익숙함과 두려움이 언제나 동반되어있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내 곁을 머무는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제라도 내 곁을 떠난다는 사실에 난 어쩌면 유천의 진지한 고백에 뒷걸음치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방송을 통해 내 이름이 알려졌고, 또 내 음악을 통해 나는 이전 보다 많은 음악 관계자들과의 소통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내게 음악을 알려주겠다는 유명한 인사가 나타났고, 나는 이상하게 고민할 겨를도 없이 그 자리에서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정신없이 집을 정리하고 남겨진 물건들을 정리하고 어떻게서든 이 지옥 같은 한국에서 벗어나려 애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남겨진 사람은 내가 아니라 유천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식했다. 녀석은 그 누구보다 밝았고 어떠한 감정에 앞서서 머리를 쓰지 않았다. 머리를 쓸 만큼 자신의 감정에 대해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난 유천이 내게 쏟아 부어준 애정과 사랑을 받는 게 좋았던 만큼 기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유천은 이런 내가 없어도 또 다른 사랑을 예쁘게 꾸려나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근거 없는 확신으로 나는 일단 나를 무마시켰다. 그리고 내 생각에 유천의 의지를 함께 동조시켰다. 그런데 마음이 편안해지기는커녕 결정을 내릴수록 난 유천이 걱정이 되었다. 웃음이 많은 만큼 눈물이 많은 아이였다. 내가 웃으면 한 템포가 느리게 같이 웃어주었고, 내가 울면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내게 다가와 주었다. 그리고 언제가 부터 당연스레 유천이 아니면 악몽을 꾸고 유천이 아니면 웃는 날이 없어졌다. 그렇게 녀석을 만날 때면 난 언제나 맑음이었다. 그게 또 다시 나를 위협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나에겐 잔인한 사치였다. 내가 사랑한 사람들이 모두 떠난 이 순간에 남은 건 유일하게 박유천 뿐이었다. 하지만 유천은 아니었다. 유천은 안된다는 말이 더 정확했는지도 모르겠다. 난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고, 그동안에 미뤘던 기나긴 여행을 위해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유천은 가까이서 보기 힘들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볼 때마다 가슴이 설레곤 했지만 매번 화를 내거나, 유천을 때리는 일로 표현을 했다. 유천은 내게 맞으면서도 입술만 내밀었다. 그리고 이렇게 서툰 내게 더욱 가깝게 다가왔다. 이렇게 사랑스런 아이를... 이렇게 주는 사랑밖에 모르는 유천에게 죄를 짓고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리고 난 유천이 연주하는 손가락과 멜로디에 맞춰서 흥얼거리는 허밍을 좋아했다. 무엇보다도 무대 위의 유천을 우리 아버지처럼 가장 사랑하고 존경했다. 우리가 먼 훗날 어디에서 무엇을 하더라도 유천이 너만은 반드시 지금처럼 무대 위에서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나도 모르게 이런 유천을 너무 사랑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유천을 만나서 제대로 웃었고 그리고 유천을 만나서 제대로 울었다. 그리고 유천을 만나서 제대로 받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 일깨웠다. 그 날 유천은 나처럼 흔들거리는 팔을 쉽게 내려놓지 않았다. 그 순간 가슴에서 울컥 치미는 아픔에 눈물이 쉴 새 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여전히 유천은 나를 향해 팔을 흔들었다. 나도 그런 유천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몸이 바람을 타고 유천의 곁을 머물고 있는 것처럼 난 녀석이 탄 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흔들던 팔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녀석이 언제나 지금처럼 웃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나처럼 많이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그리고.. 그리고 먼 훗날 그러니까 우리가 언제라도 다시 만나게 되는 날에는 녀석을 당당히 사랑할 수 있는 큰마음을 길러서 돌아오겠다고 다시 다짐했다. 그 다짐이 내 발걸음에 가장 큰 위안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돌아올 것처럼 처음으로 나 홀로 여행을 떠났다. 나에게 유천이 얼마나 큰 존재인지 얼마나 큰 사람이었는지 차마 떠나기 전까지 깨닫지 못하고 그렇게 무작정 떠났다. 남겨진 사람의 슬픔을 생각할 만큼 나는 어른이 아니었다. 아직도 나는 그때의 성장통을 앓고 있었다. 나는 잔인했고 유천의 아픔을 모른척 했다. 이게 그렇게 커질줄은 꿈에도 몰랐다. 유천아, 그때 멈추지 못한 재채기가 나를 진심으로 웃게 만들었던 거 너 알고 있어? 내가 큰 소리로 울어버린 날, 나 보고 당황해 하는 네 모습을 아직도 기억해 알아? 난 네가 화내는 모습이 그렇게 재밌었어. 그게 고마워서 뽀뽀 해줬는데 왜 그렇게 놀랐었어? 내 집에 누군가를 부른 거, 우리 샤키를 누군가에게 맡긴 거 전부 네가 처음이었는데 알고 있어? 샤키 대신에 너를 키우라고 그랬었잖아, 그거 정말로 위로되었던 거 너 알고 있었어? 너 삐진 목소리 따로 있는 거 너 알고 있어? 그거 너무 귀여웠는데. 나한테 키스하고 너 울었던 날, 네 뛰는 심장 때문에 밤 샜던 거 혹시 알고 있었어? 갑자기 네가 연락을 안 해서 나 매일 악몽 꿨었는데 너 그거 몰랐지? 네가 필요한 날 마음속으로 너를 부르면 정말로 네가 내게 와줬어. 아침에 눈 떴을 때 어느새 네가 내 옆에서 자고 있는 날이면, 몇 시간이고 네 얼굴 봤었는데 너 알고 있었어? 나를 사랑한다는 너의 고백에 나 바보처럼 도망갈 생각만 했었어. 너도 사라질까봐 무서웠거든. 네가 뜨거운 불 속에서 나를 찾는 악몽을 꿨어. 바빠도 나랑 같이 잠들면 좋겠다고 고집 부렸었어. 나 진짜 너 때문에 그 날 아침에 길거리에서 주저앉듯이 웃었어. 근데 하나도 창피하지 않았어. 우는 거 창피해서 고개도 못 들었으면서 생일 축하곡 불러준 너. 그때 혼자 정말 많이 울었는데 너 몰랐지? 내 옆에 네가 없는 게 벌써부터 무섭고 끔찍하지만, 유천아 내가 웃을 수 있게 노래 불러줘. 내가 좀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네가 노래 불러줘. My Melody 17 My Melody w. 킵 * * * 「유천아 넌 영원을 믿어?」 「영원? 네가 날 사랑하면 그때 믿을래.」 「너 정말로 끝까지 버텨낼 거야?」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그냥…말장난.」 「준수야 심심해? 통닭 시켜줄까?」 「됐어.」 「니가 웬일로 통닭을 마다해? 어디 아파?」 「…니가 영원을 믿으니까.」 「김준수!! 자꾸 말장난할래!!?」 「이건…장난 아닌데….」 극악스런 자신의 현실을 대놓고 낄낄거리는 신 앞에서도 준수는 희망을 버릴 수 없었다. 네가 날 사랑하면 그땐 영원을 믿겠다는 유천의 말에 웃기지 않은 농담을 빗대어 진심을 고백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 고백은 유천에겐 장난감 인형의 태엽을 감는 듯한 작고 미세한 소리처럼 들려와 유천은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그 미세한 소리가 준수에겐 몸부림 치는 서툰 가슴이었다. 식은땀이 날 만큼 힘든 고백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유천은 그 고백을 한번에 직면하지 못했다. 유천은 있지도 않은 영원이라는 걸 김준수란 힘으로 버텨내 볼 생각이었다. 그럴 수 있다고 쉽게 단념하기도 했었다. 유천은 언제나 그 순간순간의 진실을 준수에게 보였다. 그 진실이 사랑이라고 유천은 강하게 믿고 있었다. 그리고 영원이라는 힘으로 김준수란 힘으로 버텨내고 또 버텨내 볼 생각이었다. 유천은 순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무서운 충동을 느꼈다. 유천이 잡은 아슬아슬한 핸들이 거세게 틀어져 가속으로 내달리는 중앙선을 넘고 싶은 지금의 위험한 충동이 유천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만큼 준수의 부재는 모든 운명을 당장 끝내고 싶을만큼 잔인한 욕망과도 같았다. 유천에게 준수는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이름도 향기도 없이 피었다가 저 홀로 소멸하여 말없이 운명을 마감하는 외로운 꽃과 같았다. 얼굴을 가린 신부처럼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향기도 이름도 없는 그 꽃이 유천에겐 찬란함으로 가득찬 감출 수 없는 유일하게 향기로운 꽃이었다. 창밖은 어둠이 빛나는 아슬아슬한 광경이 휙휙 지나갔다. 그 광경을 내달리는 유천의 표정에선 무언가를 찾아낼 수 없었다. 그의 눈에는 어떠한 기억도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미래에 대한 계획도 없었다. 오직 잠시간 그 찰나에 눈에 비치는 휘황한 광경들만 유천의 텅 빈 눈동자에 비칠 뿐이었다. 바람이 빠지듯 피식 음울한 웃음이 새어나온 유천은 방금 자신이 웃었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유천의 편안해 보일 만큼 텅 빈 눈동자 안을 가득 메우고 눈물이 천천히 굴러 떨어졌다. 당장에라도 핸들을 틀어 버리고 싶은 충동만큼 예고 없는 이별은 유천에겐 너무나 잔인하고 가혹한 형벌이었다. 준수야…나 이러다가 죽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 장난이라면 제발 그만둬 줘…. 차 안으로 혼자 떠들어 대는 라디오 소리가 빗소리와 어우러져 이중주를 이루고 있었다. 음량 조절이 고장 난 것처럼 라디오 소리가 너무 커서 내부는 시끄러운 소음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유천에겐 끝나지 않을 터널 속처럼 미약하게 들려오는 숨소리에 불과했다. 터널을 빠져나온 채널 주파수를 스캔하는 잡음은 순간적이었지만, 뚜렷하게 유천의 고통을 말해주고 있는듯했다. 이제야 터널을 빠져나간 듯 마침내 고정된 채널에는 오늘의 초대손님인 동방신기를 소개하고 있었다. 보이는 라디오에 나온 재중과 창민은 처절한 웃음을 흘리며 유천의 부재를 흔한 과로로 설명했다. 간단하게 앨범 소개를 끝마친 DJ는 「돌아온 동방신기 제보를 받습니다.」라는 코너를 이어 나갔다. 「동방신기가 별밤 가족들에게 받고 싶은 제보~ 주제를 정해주세요! 초등학교 때 짝꿍이나 중학교 때 선생님을 찾아달라는 것도 좋구요」억지로 들뜬 창민의 무미건조한 음성이 울렸다. 「정말 찾아주십니까?? 지금이요?」「찾아주죠. 그럼요! 지금 당장! 실시간으로.」DJ 말이 끝나자마자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재중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라디오 부스 안을 메웠다. 「유천아…어디에 있어? 아프지 마.」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돌발 상황이 빚어지고 있었다. 무수한 침묵의 덩어리로 실내가 조용해졌다. 그 순간의 정적은 마치 한 세기가 지나는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어색하게 박수를 친 창민이 웃음으로 그 정적을 깨트렸다. 유천은 완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넋이 나간 사람처럼 텅 빈 눈동자로 핸들을 잡았다. 그 순간 DJ 목소리가 유일한 구원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거칠게 핸들을 꺾어 신호등이 바뀌지 않은 4차선 도로에 빨려 들어가듯 유턴을 했다. 바퀴가 찢어지는 듯한 마찰음과 함께 유천의 몸이 나약하게 흔들렸다. 혼이 나간 사람처럼 방송국으로 재빨리 기어를 바꿔 있는 힘껏 액셀을 밟았다. 순간 행복했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가면서 모든 것을 초탈한 유천의 눈빛엔 서늘한 여유로움이 섬뜩하게 번져갔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독과 절망이었다. § 1주일 만에 제 모습을 드러낸 유천은 거의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였다. 안구가 쏟아져 나올 듯 퀭한 눈은 1주일간의 불면을 뜻했고, 움푹 팬 볼과 뾰족한 턱 그리고 앙상하게 마른 얼굴은 종잇장처럼 질려 있었다. 언뜻 봐도 나쁜 건강상태를 짐작하게 하였다. 말없이 사라진 유천의 행방으로 기획사에는 그야말로 초비상이 걸렸다. 섣불리 경찰서에 제보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저 안절부절못하고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1주일 내내 유천의 동선을 파악한 정실장은 눈물을 쏟는 재중과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있는 창민에게 잠시 놀러 나간 것일 뿐, 기다리면 돌아올 것이라고 가벼운 상황처럼 오싹할 정도로 편안한 음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런 음성과는 달리 정실장은 모든 만사를 제쳐놓고 동방신기의 스케줄을 따라 함께 동행했다. 희망이 있는 기다림은 오히려 설렘이 되기도 하지만, 막연한 기다림은 상대방이 다가올 때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힘겨운 일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쁜 상상만 자꾸 부풀어갔다. 그리고 이럴 때면 어김없이 직업에 대한 회의가 너무나 큰 바윗덩어리가 되어 그들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부스 밖에서 팔짱을 끼고 서서 재중과 창민을 지켜보고 있던 정실장의 얼굴이 일순간 굳어졌다. 얼굴의 반 이상을 하얀색 마스크로 무장한 유천은 혼이 나간 파리한 얼굴로 부스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런 유천을 억지로 붙잡지 않은 정실장은 그제야 본래의 평점심을 잃지 않은 태연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리고 팔목의 시계를 들여다보여 매니저에게 말했다. 「지금 당장 차 대기시키고, 30분 뒤에 도착한다고 삼성동 병원에 연락 넣어.」정실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허둥지둥 주차장으로 달려가는 매니저의 얼굴이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했다. 갑작스런 유천의 등장에 스텝들의 손짓이 바빠지기 시작했고, 언제부터였는지 이미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재중이 심하게 야윈 유천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노려보았다. 다행히 노래가 흘러가는 동안 등장한 유천은 당황해 하는 DJ에게 무의식적으로 가볍게 묵례를 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른 DJ는 굳은 표정의 재중과 창민의 눈치를 살폈다. 유천을 보자마자 마음이 놓이면서도 화가 나기 시작한 창민은 싸늘한 표정으로 웃음마저 거둔 채 억지로 입을 열지 않았고,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유천을 뚫어지게 노려보면서도 차가운 손을 따뜻하게 감싸 쥔 재중은 황급히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이 모든 장면이 실시간 보이는 라디오를 통해 전국적으로 방송되었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방송국 서버가 끊길 정도로 많은 접속자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례적으로 볼 수 없는 청취율에 당황한 PD는 DJ에게 대처할 멘트를 설명하기 분주 해보였다. 곧바로 ON AIR 가 떨어지자마자 너스레를 떨며 이렇게 아픈 와중에도 별밤 식구들을 위해 유천군이 와줬다며 부연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DJ 말을 중간에 가로챈 유천이 마스크를 턱밑으로 내리며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로 지금 당장 사람을 찾아 주시나요?" "....네???" "저 박유천이 사람을 찾습니다." 다짜고짜 사람을 찾는다는 유천의 말에 DJ는 당황해 하기 시작해 구원의 눈빛으로 PD를 곧바로 응시했다. 치솟는 청취율에 난리가 난 부스 밖에서 PD는 같이 당황해 하며 그대로 이어 나가라는 손짓만 할 뿐이었다. 창민이 끼고 있던 헤드셋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재중이 꽉 잡고 있던 유천의 손을 다시 단단하게 붙잡았다. 매캐한 담배 향이 유천의 입김을 타고 모든 사람의 후각을 자극하며 지나갔다. 독한 담배 향이었다. 오랫동안 잠긴 목소리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목을 가다듬는 것처럼 유천이 기침을 했다. 그리고 듣는 모든 사람의 잡다한 생각을 일시에 덮어버릴 정도의 결코 잊지 못할 애달픈 음성이 구슬프게 들렸다. "사람을 찾습니다. 이름은 김준수, 나이는 스물한 살입니다." 온몸에 불을 지피는 것처럼 유천의 몸은 뜨거웠다. 살갗이 토막 나는 것처럼 몸이 욱신거리고 가슴이 끊어질 듯 아팠다. 하지만, 인생의 불합리를 깨달아버린 초탈한 목소리로 유천이 중얼거리듯 말을 이어갔다. 텅 빈 눈동자엔 서러움이 가득했다. 그리고 스튜디오엔 긴 침묵이 찾아왔다. "강아지를 좋아합니다. 밥을 잘 거르는 편이고 그 대신에 통닭을 많이 좋아합니다. 전체적으로 마른 편이고 눈이 신기하게 물방울처럼 생겼어요. 멜로디언과 녹음기는 늘 들고 다니구요, 웃을 때 목소리가 만화처럼 많이 특이한데 들으면 힘이 납니다. 그런데 잘 웃는 편인데 어딘가 모르게 우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집 안에서 옷 입는 걸 귀찮아해서 속옷차림이 대부분이구요, 노래를 굉장히 잘해요. 개그 프로그램을 즐겨 보구요, 엎드려서 가사 쓰는 걸 좋아해요. 어떤 게임이든 뭐든지 다 잘하구요, 지는 걸 너무 싫어해요. 제가 해준 볶음밥은 절대 남기지 않고 끝까지 먹어요. 그런데 음식은 정말 못해요. 그리고…그리고…표현이 너무 서툴러서 칭찬 같은 걸 못하고 대신에 막 때리고 소리 질러요. 좋아해도 화나도 입술 내밀고 괴롭히고 꼬집고 그래요. 그리고 또…제 부탁을 거절 못 할 만큼 많이 여리고 순수하고 착해요. 제겐 그 아이가 날 버린 엄마였고, 날 지켜주지 못한 아빠였어요. 그 아이를 만나서 저는 참 많이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준수야 혹시 듣고 있어?……밉다……정말 난 네가 밉다……." 하나씩 준수에 대한 기억을 읊어가는 유천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맴돌았다. 그리고 고요하게 감긴 유천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눈물이 마스크를 적시고 테이블 위의 A4용지를 적셨다. 울지 않으려 입술을 꽉 깨물지도 않았고 자신이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처럼 애타는 음성을 이어갔다. 모든 사람은 당황해 했고 그만큼 유천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오한에 걸린 듯 온몸을 떨어가며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는 유천을 모두가 동정했다. 「엄마 지금처럼만 살아. 결혼 같은 거 하지 말고 자식 같은 거 낳지 말고 예쁜 옷 입고 예쁜 구두 신고 멋진 남자 만나. 그런데 나보다 행복하겐 살진 마.」 "준수야 지금처럼만 살아. 네가 좋아하는 작곡 하면서 가사 만들면서 피아노 치면서 게임도 하면서…그래도 밥은 거르지 말고, 새벽까지 게임도 하지 말고, 혼자서 외롭게 방 안에만 있지 말고, 또 혼자서 울지 말고…혼자서 아프지 말고…생일날 혼자서 보내지 말고. 준수야…그런데 나보다 행복하겐 살진 마." 갑자기 유천이 온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유천의 음성이 끝나자마자 빠르게 선곡된 음악으로 넘긴 PD는 방송사고 이전에 치솟는 청취율에 징계마저 반가운 기쁨을 표정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그런 PD에게 카메라 당장 내리라고 지시한 정실장이 라디오 부스 안으로 이동했다. 행복했던 기억들이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유천의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축축하게 젖기 시작했다. 어느새 이런 유천의 손을 꼭 잡은 재중이 함께 눈물을 쏟고 있었다. 유천은 마치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엎드려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모두 아픔이 있는 유천은 공인으로써 그런 아픔을 참으며 가만히 있을 줄로만 알았다. 이렇게 악을 쓰며 울어댈 줄은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시체처럼 창백해진 얼굴로 준수의 부재를 기어이 인정했고, 정말로 외국으로 떠났다는 사실을 잘 알았음에도 유천은 1주일 동안 준수의 행방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어느 곳에도 준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끔찍한 악몽처럼 여기기엔 너무나 달콤한 순간들이 유천을 괴롭히고 있었다. 꺼진 카메라 틈으로 정실장이 많이 갑갑했는지 와이셔츠의 단추를 몇 개 풀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금방이라도 탈진해 쓰러질 듯 아슬아슬해 보이는 유천의 몸을 잡았다. 뼈가 녹아내릴 정도로 뜨거운 온도였다. 아이처럼 입 밖으로 소리 내 울기 시작한 유천의 몸을 돌려 등에 단숨에 업혔다. 발버둥치듯 엉엉 우는 유천의 몸을 다시 고쳐 업으며 낮은 음성으로 차분히 말했다. "이제 집에 가자." "흡흑흑으흑…윤호형…준수 좀 찾아줘. 형이 좀 찾아줘. 흑으흑흡흑…." "자고 나면 괜찮아. 눈 감아." "…찾아줘…형이…ㅈ주ㄴ…수…." 숨이 끊어지도록 울던 유천은 결국 탈진하여 정실장에게 업힌 채로 쓰러졌다. 유천에게 준수는 이별을 서둘렀다. 그리고 사랑은 자신 혼자, 이별은 준수 혼자 했을 뿐이라고 유천을 쉽게 절망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사랑은 혼자 할 수 있어도 이별은 혼자 할 수 없었다. 적어도 유천에게 준수는 이별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의 이별은 짧았다. 하지만, 그들의 그리움은 사무치게 깊었다. § 일파만파로 퍼진 라디오는 오랫동안 핫이슈로 머물렀다. 다행스럽게 청취자들은 방송사고로 유천의 음성을 둔갑시키지 않았다. 그저 친구를 애타게 찾는 감수성이 풍부한 소년의 모습처럼 유천의 진실한 마음을 함께 동조했다. 하지만, 이런 방송을 통해 유천에겐 위험한 장난전화가 불이 나게 쏟아지기도 했다. 매번 잘못된 이야기라는 걸 알면서도 유천은 준수를 찾았다고 연락 온 사람들을 만나려 했고 매번 꾸며진 이야기로 되돌아오면서도 매번 그런 사람들을 만나려 했다. 그리고 한동안 없어진 천식이 재발했다. 이유는 심리적 요인이 가장 크다고 의사는 설명했다. 가급씩 유천은 기관지가 경련하듯 수축하면서 발작적으로 호흡 곤란을 일으켰다. 그런 유천 곁에 묵묵하게 정실장이 지키고 있다가 유천이 호흡하기 어려워하면 호흡기를 꺼내 받쳐주기도 했다. 이 증상은 몇 시간에서 때로는 1개월 그 이상 지속하는 사람도 있다. 매년 아니면 1년에 몇 차례든가 주기적으로 나타나지만, 그 기간이 경과하면 거짓말같이 깨끗하게 없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심리적 요인이었던 유천에겐 이게 1개월이 될지 1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점점 말라가는 몸과 달리 얼굴은 쉽게 부었다. 그리고 말 수 또한 점점 더 줄었다. 결정적인 사건이 터진 날이었다. 어느 정도 건강 상태를 회복한 동방신기는 이전에 발매된 OST 곡이 프로모가 없었음에도 1위 후보에 순식간에 올랐고 그 무대는 어쩔 수 없이 빠지면 안 되는 무대로 되어버렸다. 다행히 격한 안무가 있는 곡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스케줄을 잡은 정실장은 여전히 유천의 동선을 주의 깊게 따라다녔다. 그래도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한 유천은 중간 중간 잘 웃기도 했다. 언제나 시끌벅적거렸던 대기실은 조문온 사람들처럼 침묵을 유지하곤 했다. 어느새 삑삑거리는 운동화를 신으며 유천 곁으로 다가온 재중이 유천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유천이 신고 있던 운동화를 벗기기 시작했다. 무슨 영문이지 몰라하며 그런 재중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본 유천의 입가엔 잔잔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하지만, 욱신거리는 심장은 여전히 유천을 괴롭히고 있었다. "유처낭…전에 니가 나한테 귀신같이 돌아다니지 말라구 그런거…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이제 알았다." 재중이 신고 있던 아직까지도 새것처럼 깨끗한 운동화를 벗은 재중이 유천의 마른 발목을 잡아 삑삑 소리 나는 앙증맞은 운동화를 신기며 말을 이어갔다. "스-윽 귀신 놀이 인제 그만 하구…소리 나게 걸어 다녀." "김영웅재중이." "응??" "심심하냐?" "응. 너가 조용하니까 김영웅재중이 너무 심심해." 힘없이 늘어진 팔을 들어 재중의 머리를 유천이 쓰다듬었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창민은 여전히 굳은 얼굴이었다. 아직도 창민은 그때의 놀란 가슴이 쉽게 진정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창민은 딱지가 올랐다가 곪아 터지기를 반복하는 유천의 상처가 살갗이 가렵고 쓰리다는 걸 잘 알았다. 하지만, 그 상처가 하루라도 빨리 곪아 터지도록 유천을 재촉했다. 긁어 부스럼이 돼도 곪은 곳을 자꾸만 찔렀다. 그리고 유천의 여린 살이 더 단단해지길 기다렸다. 이것은 희망이 있는 기다림이었다. 그래야, 유천이 건강하게 되돌아올 수 있다는 확신이 섰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 1주일 동안 잠 한숨도 못 잤어. 업어줘.」 「내가 왜.」 「너 등판 넓잖아.」 「오늘 우리 집에 와.」 「알았어. 자 빨리.」 무대는 생방송이었다. 오랜만에 잡힌 스케줄로 많은 팬이 찾아왔다. 프로모 하나 없이 1위 후보에 오른 곡의 반주가 흐르고 있었다. 마이크를 쥔 유천의 얼굴이 점점 더 차갑게 굳어갔다. 가물가물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처럼 유천은 넋을 잃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갑갑한 실내에는 조금씩 구름의 막이 열리듯 부옇게 들이찬 하얀 스모크가 가득했다. 뜨거운 해도 그 해를 등지고 둥둥 떠다니는 구름도 없었다. 유천은 가만히 목에 걸린 펜던트를 만진 채 눈을 감았다. 「나 내일 일본 간다니까. 내 얼굴 필요 없겠지만, 그래도 다시 생각해봐. 열흘이라고.」 「너 안 돌아 올 거야? 그게 1년이야? 10개월이야? 고작 열흘이잖아. 넌 왜 자꾸 열흘을 몇 배로 부풀려서 칭얼거려? 니가 애야?」 「나는 너랑 단 10초라도 떨어져 있기 싫어. 열흘은 나한테 1년처럼 길어. 내가 꼭 이렇게 까지 말해야지 넌 속이 시원해?」 유천은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유천의 파트가 되돌아왔지만, 반주만 흐를 뿐 유천은 마이크를 쥔 손을 들어 올리지도 감은 눈을 뜨지도 않았다. 당황한 팬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눈이 충혈되듯 격한 손짓을 내보이는 PD는 뒷목을 잡았다. 그리고 결국 유천의 목소리 대신에 창민이 마이크를 올렸다. 유천은 노래 대신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었다. 여전히 펜던트를 만지작거리며 천장을 향해 올린 고개를 내리지 않았다. 감긴 긴 속눈썹이 서서히 젖어들기 시작했다. 잠시 넋이 나간 듯 멍해 있던 유천의 눈에서 기어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유천은 도저히 노래를 부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유천아!!!!! 네가 노래하면 내가 웃어!!!!!!!!!!!」 「응???, 어???」 「유천아!!!!! 네가 노래하면 그러니까 내가 정말로 웃을 수 있어!!!!!!!!!!!」 「내가 노래하면 너 웃어??」 「응!!!! 그러니까 언제 어디서나 노래 해!!!!!!!!!!!!」 § 그 이후로도 유천은 여러 번 노래를 부르지 않아 방송사에서 징계를 먹었다. 하루가 다르게 뜻하지 않는 구설수에 올랐고 그게 사실인 것처럼 억울하게 뒤집어쓰는 날들이 늘어갔다. 생방송을 무대 아래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정실장은 모든 인생을 놓아버린 것처럼 허우적거리는 유천을 차마 그대로 보지 못한 채 방송국에서 유유히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이후로 자의로 유천과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지나치게 부풀린 기사를 열을 팔팔 올리며 수정하지도 않았다. 모든 사람의 후식 거리로 오르락내리락 거리는 소문들을 마치 진실처럼 묵인했다. 그동안 쌓아왔던 유천의 이미지는 동날 정도로 타락했고, 매일 술과 쪄 들어 숙소로 기어들어오는 유천을 혼내지도 않았다. 그런 정실장에게 재중과 창민은 형마저 버릴 거냐고 타박하며 악을 써댔다. 하지만, 정실장은 굳은 석고처럼 작은 움직임조차 보이질 않았다. 유천은 연습 시절부터 칭찬에 약한 타입이었다. 즉, 말 한마디에 슈퍼스타가 되기도 했고, 말 한마디에 다시 노숙자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칭찬을 유도하려고 열심히 연습하는 유천에게 유독 정실장은 칭찬을 냉정할 정도로 많이 아꼈다. 유천은 정실장에게 남다른 제자였다. 많은 연습생이 정실장의 말 한마디에 쉽게 상처받고 쉽게 꿈을 포기했지만, 유천의 심장은 단단했다. 하지만, 그만큼 한 번에 무너지기도 했다. 쥐면 쥐어졌고 피면 펴지는 아이였다. 늘 불안함을 감지하고 외로움을 숨기는 아이였다. 마치 미래가 불안정한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다른 연습생들보다 유천이 연습을 소홀히 하면 더 호통을 쳤고, 유천이 조금 더 뒤따라오면 더 빨리 달리라고 혼을 냈다. 아프면 저 혼자 아프라고 독하게 뱉었고, 노래가 늘면 아직 멀었다고 들뜬 가슴을 한 번에 식게 하였다. 그게 독이 되고 살이 되고 피가 되었는지 유천은 정말로 아파도 연습실은 꼬박 나왔고 칭찬 없는 레슨에도 독을 품고 연습량을 무리하게 늘려 갔다. 그런 유천을 통해 꿈이란 절대 억압된 욕망의 표현에 불과하지 않다고 깨닫곤 했다. 유천에게 정실장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만들었고, 그런 유천을 보면서 자신의 꿈을 키워갔다. 모두가 잘못된 길이라고 검지 하나로 손가락질할 때마다 나머지 세 개의 손가락은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을 절대 잊지 않았다. 유천을 혼내고 유천이 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타박했다. 유천이 그리고 동방신기가 정실장의 미래였고 꿈이었다. 칭찬을 아꼈던 그만큼 정실장은 유천을 참 많이도 아꼈다. 그리고 이렇게 힘들어하는 유천이 폭탄처럼 터지도록 유천을 방치했다. 행여라도 자신의 목소리에 실망감이 묻어 있는 걸 유천에게 들킬까 봐 정실장은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나아질 기미가 전혀 없는 천식에도 유천은 담배를 폐가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멈추지 않을 사람처럼 정신없이 피워댔다. 그동안에 참아왔던 분노를 표출하는 날처럼 느껴졌다. 숙소 안은 숨통을 막히게 할 만큼 무서운 기운이 몰려들었다. 창민은 앞으로 일어날 폭풍우를 예고하듯 소파 위에 앉아있는 정실장의 눈을 피해 유천에게 긴급한 문자를 전송했다. 「유천형. 오늘만 나가서 자고 와요. 절대 숙소로 오지 마세요.」창민과 함께 정실장의 눈치를 보고 있던 재중이 목석처럼 굳어 있는 정실장의 팔목을 늘어지게 잡으며 오피스텔로 가자고 조르고 있을 때였다. 도어락의 비밀번호가 풀리는 반갑지 않은 소리가 현관을 어둡게 에워쌌다. 그 사이로 등장한 유천은 이미 만취한 상태였다.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고 동공이 풀린 채로 비틀거렸다. 그 순간이었다. 갑자기 벌떡 일어난 정실장이 비틀거리는 유천에게 위협적으로 다가갔다.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유천의 목덜미를 거칠게 잡아 질질 끌고 유천의 방 쪽으로 이동했다. 유천은 목석처럼 굳어 있는 정실장이 이끄는 대로 유령처럼 끌려갔다. 불안감을 인지한 창민과 재중은 별안간 정실장의 팔을 애원하듯 붙잡기 시작했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정실장의 거센 힘이 분출되고 난 뒤였다. 쾅!!!!! 소리와 함께 유천의 방문이 닫혔다. 허겁지겁 문고리을 창민이 돌렸지만, 이미 방문은 잠겨 있는 상태였다. 유천은 짜증스럽게 붙잡힌 목덜미에 손을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씨발, 이거 안 놔???!!!!!!! 씨발!!!! 이거 놔!!!!!!!!!!!!!!!!" "박유천. 아직 정신 못 차리지?" 정실장의 표정은 차가웠고 살기가 느껴질 만큼 단호했다. 그동안 참았던 주먹이 유천을 내리칠 때마다 유천의 눈에서 불꽃이 확확 타오르는 것 같았다.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얼굴을 허용한 유천의 고개가 옆으로 비틀리면서 둔탁하게 나가떨어지는 소리가 방안에 가득 울렸다. 거친 숨소리가 서로 오갔다. 곧바로 쓰러진 유천의 배 위에 올라탄 정실장이 정서적으로 미숙한 아이처럼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폭발하기 시작했다. "으윽!" 유천의 입에서 둔탁한 신음성이 터졌다. 온몸이 부서질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입에서 비릿한 냄새가 나는 것으로 보아 입 안이 터진 듯했다. 그 비릿한 향을 혀로 굴리며 눈살을 찌푸린 유천이 이제야 술이 깼는지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며 상대를 확인했다. 그리고 상대방이 정실장이란 사실을 즉면하자 낙오된 사람처럼 뜨거운 울음을 삼키고 독기어린 표정으로 바락바락 악을 썼다. "씨발!!!! 형도 내가 불쌍해????? 뒤에선 다 끝났다고 남들처럼 낄낄거렸으면서!!!!!!!!!!!" 무미건조한 인생을 곧 끝내 버릴 사람처럼 술에 찌든 유천에게 어느 누구도 호통을 치지 않았다. 곧 거품처럼 사라질 사람처럼 겉핥기로 가벼운 위로를 안주 삼아 씹어댔다. 인생 다 산 것처럼 아픈 척하지 말라는 말이 필요했다. 이까짓 거 훌훌 털어버리라는 말이 필요했다. 다시 일어서면 된다는 말이 필요했다. 하지만, 말을 할 때마다 되돌아오는 건 완벽한 침묵과 낄낄거리는 웃음뿐이었다. 뱃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비웃어주는 정실장의 존재가 유천에겐 가장 절실하기도 했다. "일어나." "씨발, 왜!!!! 이제 돈벌이도 안되니까, 형도…형도 나 버리려고 그랬잖아!!!!!!!!!!왜 나한테만!!!!! 왜 다들 나한테만 이래!!!!!!!!!!!!!!!" 미팅을 포장 삼아 뒤늦은 시간에 갖는 회식자리들이 많았다. 그들 역시 유천의 잘못된 기사들을 안주 삼아 정실장을 위한 척 입에 발린 소리를 했다. 다 키워 놓은 자식 다 소용없다고 상심이 크겠다고 말하면서 조소하는 듯한 곁눈질은 그대로 비쳤다. 정실장의 면전을 쳐다보며 자신이 키운 유천에 대한 비난을 듣고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정실장은 신랄한 발언, 무차별적인 비난, 모욕적 발언에도 절대 끌려가지 않았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들에게 몇 배로 이런 조소를 돌려줄 거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어섰다. 유천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잡아주지 않고 손을 놔버린 정실장에 대한 원망이 컸다. 하지만, 정실장은 펄펄 솟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유천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둘의 참아왔던 분노가 동시에 터졌다. 널브러져 있는 유천에게서 떨어진 정실장이 불편하게 내려온 와이셔츠의 소매를 걷어 올리며 냉정하게 말했다. 귓가를 맴도는 오싹한 저음에 유천의 몸이 바짝 얼어붙었다. "셋 샌다. 일어나." "버릴 거면 지금 버려!!!!!!!!!!희망 있는 것처럼 질질 끌고 다니지 말라고!!!!!!" "하나." "씨발, 나 노래 안 해!!!!!!!!! 이제 가수 안 해!!!!!!!!! 싫어, 그냥 다 싫어!!!!!!!!!!!!" "둘." "그냥 날 좀 내버려둬!!!!!!!!! 다 없어질 사람들이라면 필요 없어. 형이고 동방신기도 뭐고 간에…." "셋." 유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셋을 외친 정실장의 빠른 주먹이 유천의 복부를 향해 휘둘렸다. 자신의 형제에겐 세 번쯤 참아주는 삼세번의 미덕을 보여주는 사람처럼 셋과 동시에 피스톤처럼 유천의 복부에 주먹을 빠르게 꽂았다. 유천이 둔탁한 신음과 함께 배를 움켜쥐며 허리를 굽혔다. 격렬한 감정을 이기지 못해 정실장의 몸이 떨리고 있었다. 유천에게 여러 번 주먹을 꽂으면서도 유천보다 더 슬픈 눈빛으로 괴로워 하고 있었다. 유천은 오히려 꽉 막힌 가슴이 트이는 것 같았다. 유천은 흐느껴 울며 악을 썼다. 그동안 유천의 텅 빈 눈동자가 사라지고 온전한 유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이처럼 엉엉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터진 입 안에선 피가 흘렀고, 퉁퉁 부어 오른 눈가에선 그동안 참아왔던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발을 구르고 주먹을 쥔 채 바닥을 내리쳤다. 발악하듯 폭발한 유천의 팔을 잡아 세워 정실장이 자신의 품 안에 가득 안았다. 유천이 숨이 막힐 정도로 유천이 외롭지 않게 안은 팔을 더 거세게 끌어안았다. 숨 넘어가는 소리를 하면서도 유천은 정실장이 자신을 안은 팔이 오랫동안 풀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준수가 없는 유천의 시간들은 오한에 걸린 듯 온몸을 떨어가며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려야만 했다. 「나 너 좋아해.」 「그래서. 나도 너 좋아해야 해?」 「아니.」 「그럼 왜 말해.」 「그냥 하고 싶어서.」 「이거 고백이야?」 「이게 고백이 아니면 뭐야?」 「.. 웃기지 않은 농담.」 「그래서 지금 농담으로 넘겼어?」 「생각 중이야.」 「내가 고민이 되긴 해?」 「왜 자학 개그 해?」 「사랑해. 준수야.」 「.. 고마워.」 "흡흐흑…윤호형…나 목소리가 안 나와…으흑흑흡…끄흑흡…노래가 안불러져…." "괜찮아. 다 지나가면 괜찮아." "윤호형…." "……." "으흑흡…나 준수가 보고 싶어서 미쳐버리겠어. 으흑흑흡…이러다가 죽을 것만 같아." "……." "흡흐흑…나 두 번 다시 사랑 못할 거야" 「이 냄새였구나. 샤키 마음을 이제야 알겠다.」 「내가 예쁜 강아지 한 마리 사줄까?」 「죽지 않고 평생 내가 기를 수 있는 강아지 있으면 사 줘.」 「나 키워. 샤키랑 믹키 뭐 나름 의미를 부여하면 비슷한 게 많다?」 「넌 잡종이잖아. 우리 샤키는 전통 있는 교배의 자손이야. 왜이래?」 「난 돈도 벌어. 대화도 가능해. 게임도 같이 할 수 있어. 목욕도 혼자 해. 밥도 잘 차려먹어. 두 발로도 걷는다?」 「그럼 넌.. 나 보다 먼저 죽지 마..」 유천의 야윈 등을 쓸어내리는 정실장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채 어린 아이처럼 부들부들 떠는 유천을 꼭 끌어안은 정실장의 얼굴이 아픔이 공유된 사람처럼 유천과 비슷하게 함께 일그러졌다. 준수가 사라진 날 유천은 우산도 없이 한참을 걸었었다. 비비린내가 아스팔트를 요란스럽게 적셨다. 멈춰버린 시간처럼 유천의 옆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빗물과 함께 흘러 지나갔다. 이별을 맞이하고 마지막으로 해와 구름에 인사를 전하는 날의 하늘에는 새까맣게 뒤덮은 구름의 그림자처럼 흐느적거리며 해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하지만, 태양은 사라지고 없었다. 어두운 구름만이 빠른 속도로 유천의 머리 위로 휙 휘 지나갔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때 그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는 세상은 이전에 유천이 살고 있던 세상과는 많이 달랐다. 이른 봄에 아기자기하게 피어나는 꽃들이 이렇게 귀여웠었나, 여름날 깊은 밤하늘을 예쁘게 수를 놓는 별들이 이토록 많았었나, 여기저기 떨어져 서로 얽혀 뒹구는 나뭇잎들이 이처럼 고운 빛깔을 띄웠었나, 추운 겨울날 마른 나뭇가지 위를 아름답게 감싸고 있던 눈꽃송이들이 이렇게 따뜻했었나 이렇게 익숙했던 모든 것에 대해 새삼 감동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았었는지 이제야 알았다. 시력을 잃은 사람처럼 유천에게 준수의 부재는 가장 밋밋하고 괴로웠던 자신의 유년시절로 돌아가는 것처럼 가혹했다. 유천에겐 오늘도 흐림의 연속이었다. 「유천아.」 「응. 준수야.」 「 나는 너를 만나서 제대로 웃었어.」 「그랬어?」 「응. 그리고 나는 너를 만나서 제대로 울어봤어.」 「그거 좋은 말이야?」 「응. 적어도 나한테는.」 「그리고 나는 너를 만나서 제대로 사랑받았다.」 「앞으로 더 많이 사랑할게.」 「고마워. 이런 내게 와줘서. 이런 나를 따뜻하게 안아줘서.」 § 재중은 한번 거실에서 자는 습관을 기르더니 좀처럼 자기 방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매번 새벽 늦게까지 일을 하는 정실장을 기다리던 습관이 오래된 버릇처럼 물들었다. 매번 혼을 내듯 방 안에서 잠을 자라고 걱정스레 말하는 정실장의 말에도 어김없이 휑한 거실 바닥에서 홀로 잠들곤 했다. 이에 질세라 어김없이 재중에게 잔소리했다. 그럴 때마다 재중은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는 옷들을 가리키며 저 위에서 어떻게 잠을 잘 수 있겠냐고 입을 삐죽 내밀면서 말했다. 그럴 때마다 정신없이 침대 위에 어질러진 옷들을 정실장이 깔끔하게 접어 드레스룸에 찾기 좋게 차곡차곡 정리를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틀도 못 가서 침대 위는 옷장이 되곤 했다. 이런 재중의 단순함에서 나오는 고집에 정실장이 두손 두발 다 들고 말았다. 아침잠이 유독 없는 재중은 아침에 깨우면 유천 창민과는 다르게 곧잘 일어나곤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웬일인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정실장은 손목에 찬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지금 일어나도 예약한 시간엔 도착할 수 없었다. 곧바로 어디론가 전화를 거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오늘 50분에 예약된 김재중 보호자입니다. 예약 시간을 두 시간 뒤로 미뤄주시겠습니까?」회사 로비에 들어선 정실장은 휴대폰을 귀에 대고 고개를 꺾어 어깨에 고정했다. 여전히 블랙 슈트에 한 손에는 서류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하얀색의 네모난 테이크아웃 종이상자를 들고 있었다. 매혹적이고 은은한 커피 향만큼이나 정실장에게 안정된 편안함이 배어 나왔다. 그리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 연결된 휴대폰은 여전히 정실장 귀에 걸려 있었다. "어. 창민아 재중이 자고 있지?" 이미 아침잠에 육체 이탈한 창민이 부스럭 소리를 내며 마지못해 정실장의 목소리에 자동반사처럼 대답했다. 확연하게 느껴지는 졸린 목소리에 정실장이 낮게 소리 내 웃었다. "어…형… 어, 지금 몇 시에요?" "너 오늘 스케줄 있어. 지금 일어나도 늦어." "아아…형. 마음의 준비는 돼 있어요." "지금 재중이 깨워. 피부과 예약했으니까 거기로 오라고 해." "피부과…형. 저…마음의 준비는 돼 있어요." "어. 그래." 여전히 낮게 웃으며 안내 데스크 직원에게 따뜻한 커피를 건넸다. 기뻐하는 모습이 역력한 직원들에게 가볍게 묵례를 한 정실장이 빠르게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정실장의 뒷모습이 감춰지자마자 짹짹거리듯 모여든 여직원들은 엷은 정실장의 미소 하나에 하루 일과를 기분 좋게 시작했다. § 피부과를 다녀온 재중이 쥐도 새도 모르게 도둑고양이처럼 정실장 사무실에 예고 없이 들어왔다. 노크 없이 열린 문에 정실장의 서류 넘어가는 소리가 일순간 정지되었다. 발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제 모습을 비춘 재중이 언제나 마지막 히든카드처럼 부드럽게 눈을 휘어 웃어 보였다. 오늘따라 유난히 눈매가 애교로 철철 넘쳤다. 무언가를 조르기 위해서 하는 달콤한 말처럼 재중은 다짜고짜 정실장의 목을 둘러안으며 등에 타투를 새기고 싶다고 조르기 시작했다. 웃음 띤 재중의 가는 눈에 애교가 넘쳐흘렀다. "안돼. 피부과는?" "혀~엉…말 돌리지 말구." "안돼. 또 언제 오래?" "그거 지우고 싶으면 지울 수 있대. 작게 할게! 이만큼! 이만큼 작게 할게." 손가락으로 최대한 작은 범위를 표시하는 재중의 눈망울이 애교에서 애원 조로 급하게 변했다. 눈초리가 축 처치고 입가가 축 내려앉았다. 그리고 이 정도로는 안 되겠다 싶은지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우듯 정실장의 목 언저리에 기습 뽀뽀를 하기 시작했다. 쪽, 쪽 소리가 적막한 사무실 안에 크게 메아리쳤다. 결재하던 서류를 덮은 정실장이 의자에서 일어나 재중의 피부를 꼼꼼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회색 츄리닝에 검정 나시티만 입은 재중의 등이 허옇게 내비쳐졌다. 반질반질한 얼굴이 훤히 보이도록 앞머리를 올려 실 핀으로 고정한 이마에 밉지 않은 주름이 피어올랐다. 미간을 좁히고 툴툴거리듯 여러 번 정실장의 눈동자를 마주치려는 재중의 행동이 마냥 귀엽기만 한 정실장이었다. "형이 싫다고 하면 안 할 거야?" 고민하는 눈동자가 빠르게 이쪽저쪽 움직였다.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을 일부러 감추며 재중의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입술이 삐쭉 나왔고 미간은 굳어졌지만 정말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 미세하게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인 재중이 딱딱한 책상 위에 걸터앉으며 정실장을 눈을 흘기며 노려봤다. 이번엔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출 길이 없었던 정실장이 낮게 웃으며 토라지는 재중이 더욱 귀여워 양 볼을 잡아당겼다. "그렇게 타투가 하고 싶었어?" 정실장이 금방이라도 넘어올 기세가 보이자 다시 표정이 밝아진 재중이 정실장의 짙은 눈썹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이들은 한시라도 살이 닿지 않으면 곧 죽을 사람처럼 서로의 체온에 안달하여 보였다. "응. 응. 정말 하고 싶어." "뭐라고 새길 거야?" "정윤호 하고 싶은데 한글은 안 예쁘대." "벌써 알아본 거였네?" 다시 어색하게 눈을 휘며 웃는 재중이 정실장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형이 전에 우리한테 해준 말 있잖아." "뭐?" "좋은 노래는 좋은 말보다 기억에 오래 남는다." "기억력 좋네?" "형아는 모를걸? 형이 우리한테 처음 해준 칭찬이었어." "그랬나." "응. 그래서 내가 신나서 유천이랑 얼싸 안고 방방 뛰었는데. 최강이가 자기두 좋으면서 아닌 척 도망갔어." "그래?" "형이 알려줬어. 좋은 노래로 보답하면 된다고." "기특하네. 내 새끼들." "응! 형아 새끼들 기특하지?" 강아지처럼 정실장에게 머리를 재중이 내밀었다. 탁 터지는 하하하…. 웃음소리와 함께 재중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은 정실장의 가슴이 조금은 아릿하게 절여왔다. A song will outlive sermons in the memory. 이들에게 멜로디는 덩그러니 홀로서기를 시작한 유천에겐 올바른 길을 유도할 만큼 강한 희망을 실어다 주었고, 운동장을 마음대로 뛰지도 못해 새 장에 가둬진 새처럼 구슬프게 울어댄 재중에겐 숨차게 뛸 수 있는 심장과 꿈을 실어다 주었고, 자신이 개발한 약을 시도해보기 전까지는 창민도 환자들의 반응을 알 수 없었던 딜레마를 노래 치료를 통해 채우기도 했었다. 그만큼 음악이란 사람을 다스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 그녀와 떨어져 산지도 4년이 흘렀다. 그녀는 쉽게 유천에게 연락을 할 수 있는 방도가 있었음에도 4년 동안 한 번도 유천을 찾지 않았다. 어쩌면 유천은 그런 엄마를 조금은 원망했는지도 모르겠다. 4년 만에 연락을 닿은 그녀는 손쉽게도 유천에게 연락 닿을 방법을 따라 기획사로 찾아왔다. 넋이 나간 얼굴로 나갈 채비를 하는 유천의 동작이 점점 느릿해졌다. 천식으로 아직 붓기가 그대로인 얼굴을 쓸어내리며 입가에 남은 상처를 만지작거렸다. 옷매무시를 단정하게 고치고 그녀가 기다리고 있다는 커피숍을 향해 나갔다. 그녀는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했을 만큼 야무지고 당찼다. 하루에 한 끼를 먹어도 세 끼를 먹은 사람처럼 자존심이 강했고, 기죽는 소리를 그 어떤 것보다 듣기 싫어했다. 언제나 고개를 뻣뻣이 들었고 허리를 곱게 세웠다. 또깍 거리는 구두 소리는 언제나 명쾌했고, 밥은 못 먹어도 화장품과 새로운 옷들은 구비하는 엄마였다. 늘어나는 한숨 대신 뒤 따라 다니는 남자들이 줄을 썼고, 언제나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만큼 외모도 아주 뛰어났고, 몸매도 좋았다. 언제나 머리를 손질하고 화장을 곱게 했고, 나이와 상관없이 짧은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었다. 4년이 지난 지금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게 상상이 되었다. 그러자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키가 안 클 줄 알았는데, 유천이 많이 컸구나." "세월엔 장사 없다더니 엄마도 많이 변했네요." 예상치 못한 결말처럼 그녀의 얼굴은 너무도 수척해 보였다. 곱게 한 화장 대신 눈 밑에는 거무스레한 그늘이 흘러내렸다. 어깨 밑으로 흘러내린 웨이브 대신에 단정하게 어깨가 닿기 전까지 단발로 자른 머리카락에는 새치가 자리 잡혀 있었다. 많이 낡은 단화에 발목까지 내려온 긴 치마를 입고 있었다. 엄마와 유천 사이에 없었던 4년의 세월은 미친 듯 흘러가는 세월처럼 이미 아슬아슬하게 녹슬어 있었다. 가시 방석처럼 유천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그녀는 연신 마른 손을 만지작거리며 그간 지내온 시간을 형식적으로 묻고 있었다. 깊은 생각에 잠긴 그녀는 눈에 띄게 초조한 모습으로 유천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듯했다. 마른 목을 냉수로 축이며 유천은 그저 생소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울컥거리는 심장을 당장에라도 부여잡고 싶었다. 「엄마 지금처럼만 살아. 결혼 같은 거 하지 말고 자식 같은 거 낳지 말고 예쁜 옷 입고 예쁜 구두 신고 멋진 남자 만나. 그런데 나보다 행복하겐 살진 마.」 유천이 남기고 간 마지막 말처럼 그녀는 행복한 모습이 아니었다. 창백한 얼굴과 퀭한 눈길로 빚더미에 쌓인 사람처럼 망연자실한 표정도 역력했다. 하지만, 애써 아들에겐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지 빠르게 비워지는 냉수로 말라가는 목을 축였다. 그대로 체할 것 같은 점심을 그녀 앞에서 꾸역꾸역 삼키듯 빠르게 먹은 유천은 덥수룩한 속 때문에 미간이 굳어졌다. 밥을 먹는 동안 내내 유천의 얼굴을 바라보며 쓴웃음과 지나온 세월을 회상하듯 눈시울이 적셔진 그녀는 남몰래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훔치기도 했다. 그런 모습이 다 보이면서도 테이블 위로 숙여진 고개가 들어서지 않았다. 유천은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정말로 나보다 행복하겐 살진 마 라는 자신의 말처럼 그녀는 불행한 삶을 살아간 것처럼 느껴졌다. 겨울에 꼭 하라고 손수 짜온 스웨터를 꺼내면서 그녀는 기뻐했다. 유천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평온해 보이는 엄마의 미소를 보았다. 마음이 조여오면서도 함께 적셔지는 눈가 대신에 입가를 올리고 좋아했다. 색이 얼굴에 잘 받는다고 겨울에 감기 걸리지 않게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는 그녀의 음성이 미세하게 떨렸다. 유천이 옷을 곱게 챙기는 사이 급하게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는 엄마는 눈가를 훔치며 레스토랑을 빠져나갔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로밍된 폰이 작게 진동했다. 그녀는 이미 새로운 가정이 있었다. 핸드폰 바탕화면에는 남편으로 추정되는 사람과 중학생과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있었다. 네 식구가 단란하게 정원에 앉아 찍은 사진이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그래도 사진 속에서 엄마는 행복하게 웃고 있어서 마음이 조금은 안심이 되기 시작했다. 방금 도착한 문자에는 말하기 힘들면 그냥 돌아오라는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는 메시지가 도착해있었다. 고스란히 핸드폰을 접은 유천은 곱게 접은 스웨터를 만지작거렸다. 눈물이 비집고 나올 뻔했다. 입술을 물었다. 시원한 물을 삼켰는데, 소주처럼 쓰게 느껴졌다. 그 순간 준수 생각이 가장 많이 났다. 내가 남긴 말처럼 그녀는 불행해 보였고, 마치 유천이 원했던 것처럼 더욱 행복한 모습이 아니었다. 「준수야…. 그런데 나보다 행복하겐 살진 마.」 준수의 모습을 떠올랐다. 혹시라도 나중에 만나게 될 준수가 그녀처럼 수척해진 모습으로 많이 나약해진 모습으로 나타날 상상을 하자 몸이 떨려오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감히 상상도 못할 만큼 끔찍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유천은 마음이 조급해 지기 시작했다. 그만큼 이 시간이 견디기 힘들기도 했다. 끝끝내 그녀는 떠나기 전까지도 자신의 힘든 가정사를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유천의 손을 잡으며 연신 미안하다는 말만 힘없이 내뱉었다. 하지만, 그 음성이 진심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유천을 잘 알았다. 유천의 얼굴을 보자마자 저녁 비행기로 또다시 헤어짐이 다가왔다. 그녀를 마중하는 유천의 눈빛이 조금은 서글퍼 보이기도 했다. 유천은 처음으로 꽉 잡은 엄마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말없이 그녀를 꽉 안았다. 안쓰러운 마음에 가슴이 울컥했다. 핏발 선 눈동자에 눈물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녀가 정말로 모르게 가방 틈새로 카드와 짧게 적은 메모지를 함께 넣었다. 그동안 꼼꼼하게 저축한 돈이 든 카드였다. 미안한 마음에 끝끝내 눈물을 주룩 흘린 그녀가 유천의 볼을 감싸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미안하다. 유천아…엄마가 아프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 유천의 눈가에도 결국 눈물이 한 방울 도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환하게 입가를 올린 유천이 4년 전과 똑같이 메마른 엄마의 볼에 정말로 마지막 키스를 하며 엄마의 주름진 손을 단단하게 붙잡았다. 그리고 진심이 묻어나는 간절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호소하듯 말했다. 이것은 유천을 위한 용서였고, 준수를 위한 용서였다. "엄마. 행복하세요. 부디…부디 이제는 행복하세요." '준수야. 행복해. 제발…나보다 행복해….' § 엄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정처 없이 걸었다. 유천을 쉽게 알아보는 사람들은 쉽게 유천에게 다가서지 못한 채 소곤거렸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다니다가 유천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작은 펫숍이었다. 약간 얼룩으로 그을려진 유리창 사이로 유천을 애처롭게 쳐다보는 강아지는 하늘에서 내려 다 준 선물처럼 유천에게 다가왔다. 그렇게 한참을 강아지의 눈을 마주치며 통하지 않은 대화를 하는 유천의 표정이 이전과 다르게 많이 밝아져 있었다. 처음 만난 강아지는 실제로 사람 눈처럼 눈빛이 남달랐고 샤키처럼 유천을 반갑게 쳐다보며 꼬리를 연신 흔들고 있었다. 천식과 알레르기 상관없이 유천은 결국 펫숍에 들어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강아지와 놀았음에도 알레르기 반응 없이 멀쩡했다. 마치 체질이 변한 것처럼 정말로 말끔히 재채기가 사라졌다. 그래서 이때다 싶은 유천은 단번에 강아지를 샀다. 그리고 하느님이 주신 사랑이란 의미로 '하랑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갓난아기처럼 털이 뽀송뽀송한 하랑이를 품에 안으며 숙소로 향하는 발걸음이 제법 가벼워졌다. 하랑이를 보고 기겁해야 할 창민과 재중이 굳은 표정으로 유천을 바라보았고, 무슨 영문인지 모른 유천은 안긴 하랑이를 자랑하듯 거실로 나갔다. 그런데 휑했던 그 거실 한가운데에 익숙한 그랜드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었다. 그냥 봐도 유천은 그 피아노가 준수 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녀석이 세상에 다시 없을 보물처럼 가장 아껴 하던 피아노였다. 꿈틀거리는 하랑이를 거실 바닥에 내려놓고 피아노가 놓인 곳으로 발을 이동했다. "오늘 배달되었는데 이름도 주소도 없었어." 재중은 유천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그리고 차마 피지 못한 메모 한 장을 유천에게 넘겼다. 닿으면 없어질까 조심스럽게 피아노를 만진 유천의 손길이 진지했다. 그리고 피아노에는 이전에 없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My melody」였다. 급하게 새겨진 글씨는 녀석이 손수 칼로 판 흔적처럼 서툴게 삐뚤 빼뚤 가렸다. 그리고 동시에 접힌 메모장을 연 유천의 시야 사이로 준수의 글씨가 짧게 적혀 있었다. 「넌 나의 노래. 그래서 오늘도 맑음.」 My Melody 18 My Melody w. 킵 * * * - 3 년 후 - 「박유천. 너 아직도 배가 고프지?」 「아마도…아니길 희망합니다.」 3년 전. 정실장 아니 이제는 정사장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정실장이란 호칭을 형에서 누나로 부르는 것처럼 쉽게 떼어내지 못했다. 그날은 늦은 새벽에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 길모퉁이에 정실장이 인신매매 조직원 보스처럼 팔짱을 끼고 입가에 담배를 꼬나물고 내게 한 말이었다. 그 눈빛은 마치 돌벽 위에서 팔짱을 끼고 여유롭게 저 아래에서 몰려오는 수백만 군의 적군들을 가소롭단 듯이 조소를 띄우며 보인 느긋한 표정과 같았다. 정실장이 이런 얍삽한 조소를 띄었을 때는 언제나 복선처럼 더러운 암시가 내포되어 있었다. 내 배를 섬뜩하게 가리키며 눈을 내리깔고 입가에 조소를 띄는 모습은 벌써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었다. 술 먹고 들어오는 길이 아니라고 일자로 애써 걷는 나를 보고 이리 오라고 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순간 정실장 손바닥 위에 올려지자마자 으드득 소리와 함께 척추가 접히는 오싹한 상상이 엄습했다. 곧바로 정실장이 다 타들어간 담배꽁초의 불씨를 손으로 튕기듯 끄며 낮게 말했다. 「넌 곧 배 터져 죽어.」 「…헉!」 이런 살벌한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슬며시 내 배를 슥- 만져보았다. 다행히 아직은 안 터졌다. 하지만, 정실장의 말은 곧 죽어도 빈말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내 배는 너무 꽉 차서 터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로 되돌아왔다. 그 후로부터 1주일 뒤. 우리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정말로 인신매매 조직 보스가 나를 일본 섬으로 팔아넘길 것처럼 나를 협박했었다. 그 와중에도 다행스러운 건 단체할인이라도 했는지 재중, 창민도 함께 팔렸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꽤 값이 나가는 모양인지 통통배를 태우진 않았다. 이걸로 스스로 위안 삼는 내 인생은 그야말로 신선한 시트콤이었다. 우리는 연말에 모든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고 그랜드슬램까지 달성했다. 하지만, 그 화려한 시상식에는 전부 출연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안 했다가 맞겠다. 정실장의 오기인지 복수인지 모를 희한한 옹고집이 제대로 한몫했다. 날이면 날마다 기획사에 불이 나도록 출연 요청이 들어왔지만, 지나간 치욕은 반드시 되돌려줄 인심 좋은 원조 할매처럼 정말 뒤끝 하나는 무서운 남자였다. 가는 몽둥이에 오는 홍두깨, 되로 주고 말로 받아왔다. 도적과 거지처럼 밑천 없는 장사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 절대 만족하지 않고 우리를 쥐어 잡는 밑천을 단순히 돈으로 생각하지도 않았다. 아이돌의 꽉 막힌 패러다임을 바꿔줄 수 있는 인심매매급 추진력과 3대가 망할 협박이 정실장의 가장 든든한 밑천이었단 이 말이다. 가끔은 이런 겁없는 추진력에 외상!! 을 외치고 싶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마다 정실장은 내 아킬레스건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 건드렸다. 「너 배가 아주 불렀지?」 3년 전 처음에 일본에 왔을 땐 그저 여행을 한다는 기분으로 비행기 안에서 두근거리기까지 했던 게 사실이었다. 그때는 이곳에 와서 우리가 몇 개씩 되는 CD를 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다. 로밍된 핸드폰도 갖고 오지 않았으니 말 다했다. 하지만, 고작 3일이 지나고 나서야 점점 가혹한 현실을 파악했다. 언어를 모르는 우리들은 그야말로 길거리의 인형 뽑기 기계나 다름없었다. 술 먹은 정신 나간 새끼들을 타겟으로 돈을 버는 발로 걷어차도 절대 찌그러지지 않고 돈만 먹어치우는 그 기계 말이다. 남들이 웃으면 한 박자 느리게 함께 웃기다고 웃어야 했고, 남들이 맛있어하면, 함께 오이시~, 우마이~ 거리면서 맛있는 척 음식을 남김없이 모두 비워야 했다. 숨겨진 에피소드로는 처음에 언어가 통하지 않았을 땐, 맛있어 죽겠단 표정으로 우마이~!! 라고 게걸스럽게 말하는 패널들을 보며 단순하게 염소 소리로 착각하기도 했었다. 이른바 움메~에헤!!! 그래서 움-메로 따라서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나중에 알고 보니 우마이(맛있어)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도 재중은 남성이 즐겨 쓰는 우마이 대신에 여성들이 즐겨 쓰는 오이시를 이용했다. 그 옆에서 창민은 모든 음식을 솜사탕처럼 핥아서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고 있었다. 이런 창민을 보고 모든 패널은 순수하고 순박하고 착한 동생일 것 같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속이 부글부글 거렸다. 그 당시 먹어본 낫토는 그야말로 미끈미끈한 덩어리인 거미줄 덮밥과도 같았다. 처음에 향을 맡자마자 토기가 올라와 임신한 사람처럼 생방송 도중에 '우엑!'하는 내 주둥이 안에 친절한 리더가 남은 낫토를 전부 쑤셔 박았다. 그리고는 한쪽 눈을 찡그리며 이를 악물고 내게 말했다. 「포도알처럼 삼키세요.」하지만 이런 음식뿐만 아니라 모든 게 맞지 않았다. 그래도 2개월 동안은 유일하게 자유로움이 마음에 들었다. 한국과 달리 거리를 걸어 다녀도 내키는 대로 쇼핑을 해도 투명인간처럼 아무도 우리를 위대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그게 처음에는 편안하고 그 상황을 몰래 먹는 사탕처럼 즐겼지만, 이런 게 쓸쓸함으로 바뀌었을 때에는 정말 이런 식으로 사람이 돌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정실장은 독한 새끼였다. 찌른 게 뭐야? 칼로 난도질해도 피 한 방울도 안 나올 위인이었다. 처음엔 그저 나사 빠진 나를 위해 정신 차리라는 귀여운 극기훈련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정실장의 장대한 포부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우리는 꼬박 1년 동안은 한글로 적어준 발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보다도 자신감이 있었다. 누가 뭐래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독한 정실장의 씨앗이었기 때문에 생기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런 2년 동안의 우리들에게 늘어난 건, 인정받기 시작한 실력과 드높은 인기가 아니라 나날이 상승하는 지독한 향수병이었다. 재중은 정실장이 알려준 방법대로 까마귀와 대화를 했다. 주로 하늘을 멍청하게 바라보며 눈을 접고 웃으며 대화를 시도했다. 「혼또? 까-악~↘ 소오~네? 까-악~」그리고 여전히 삑삑 소리 나는 신발은 일본에서도 신고 다녔다. 창민은 베란다에서 밤마다 슬리퍼를 귀에 대고 전파를 찾았다. 그리고 간혹 외계인과 수신이 닿았다면서 곧 우리는 이 섬에서도 뜰 위인이라고 슬퍼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셀프치유를 하고 미친놈처럼 좋아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리더의 모습에서 절망을 찾았다. 가끔은 자신의 등에 계곡처럼 양쪽으로 즐비하게 자리 잡은 숲과도 같은 등 털들이 진정한 날개라면서 이 날개가 우리를 외로운 섬에서도 날 수 있게 도와줄 거라고 또다시 우리에게 희망을 억지로 넣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리더의 모습에서 희망없는 좌절을 얻었다. 그러던 어느 날에는 밤 9시 50분만 돌아오면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모여봤자. 셋이었지만, 가볍게 생각했던 게임이 온몸을 불사지를 것처럼 뜨거워지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난위도가 낮은 벌칙은 콜라에 여러 가지 이물질을 타고 한 번에 마시는 것이었다. 우리는 1박 2일의 복불복이 그저 귀여울 정도였다. 평균적인 벌칙으로는 대체로 미간을 괴롭히는 행위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꼭 창민과 재중은 내가 걸린 날에만 다른 벌칙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가장 싫은 벌칙 중의 하나가 수치심을 느껴서 이런 외로움과 향수병을 극복하자는 얼토당토아니한 벌칙이었다. 그것은 전신을 다 벗고 가장 아름다운 바디 포즈로 10초간 서 있기였다. 처음엔 소심하게 반항도 해봤다. 그런데 심창민이 팔짱을 끼고 가소롭단 듯이 내 아랫도리를 지그시 쳐다보며 나를 유인했다. 「내가 사랑하는 내 분신과도 같은 미친새끼들아, 난 이젠 외롭지 않아. 그러니까, 니들이나 벗어.」 「견물생심으로 금을 보고 그대로 둘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박믹키유천님의 물건은 안 봐도 그만인 스댕인가 보죠?」 「내 물건 금이거든? 개새끼! 기다려!!!!」 섬에 팔려와서 내게 생긴 취미생활은 심창민 덫에 걸려 발끈하는 단순한 토끼였다. 톰같이 생긴 게 꼭 제리처럼 치졸하게 행동했다. 매번 알면서 당하는 나도 병신이었다. 그렇다. 나 박믹키유천은 이런 수치심을 느끼면서 향수병을 잊었다. 정실장은 이런 우리에게 2년을 버티면 새로운 신세계를 경험할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리고 정확히 2년 뒤에 우리가 깨닫는 범위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했다. 그 전날까지만 해도 모든 시상식에 대상의 영광을 누렸던 우리에게 하루아침에 동방신기를 전혀 모르는 200명도 되지 않은, 그렇다고 음향시설조차 구비되지 않은 불교대학 강당에서 우리는 모든 스텝들이 그냥 돌아가자고 팔을 붙잡았음에도 『"O" 正 反 合』을 불렀다. 안무를 추던 와중에도 서로 엉키는 줄 마이크 때문에 노래하던 도중 욕이 나올 정도였다. 그렇게 무료공연 순회를 2년 동안 했다. 용케 미치지 않고 서로 부둥켜안고 살아간 나날들이었다. 그로부터 딱 2년 뒤,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우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닿는 곡이라는 건 그저 잘 부른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처음에는 곡의 분위기에 맞춰 감정을 넣어 부르는 게 고작이었다. 그만큼 언어의 이해력과 표현은 많은 사람들의 귀를 자극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렇게 겨우 2년이 되고 나서야 우리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함께 울어주시는 분들을 처음 접했다. 그때였던 것 같다. 조금씩 없어진 자신감이 다시 생긴 계기가…. 아무리 「실력이 있는 그룹」이라는 말을 들어도, 문화적 거리는 상상이상으로 쉽게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을 뒤바꾸게 해준 것은 단순하게도 라이브였다. 일본의 라이브는 관객과 대화하는 느낌이 강했다. 한국에서처럼 커다란 공연장에서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노래를 조용히 들어주는 분위기를 알아가면서 제대로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확실히 하드한 스케줄은 정신적으로 우리들을 괴롭혔지만, 자신의 모티베이션이나 레벨 높은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는 집중력이라던가, 각자가 콘트롤 할 수 있는 부분들은 상상 이상으로 넓어만 갔다. 그만큼 스트레스 발산을 대신시켜주기도 하고, 체력관리의 방법도 터득하게 되어 어느 정도까지는 스스로 조정이 가능한 경지에 다다르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들의 꿈은 허상이 아니고 우리들이 가장 진지한 현실이었다. 그리고 이런 우리들 뒤에서 언제나 그림자처럼 이 꿈에 대해 입김을 불어 넣어주면 우리들은 바다로부터 세상이 솟구치듯 뛰어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정실장이 다시 한번 후~ 하고 불면 또 그 꿈이 더 어렵게 다가와 혼란스럽기도 했었다. 그만큼 정실장은 우리들에게 이 세상의 전부가 한 편의 꿈이라는 진실을 알려주는 냉혹한 사실 또한 잊지 않았다. 세상 전부가 한 편의 꿈이라는 말은 지금을 살아가는 자들에겐 각자가 살 만한 장소와 각자의 방법이 반드시 있다는 말만큼이나 비현실적이기도 했지만, 그 어떤 것보다 가장 현실적이었다. 이렇듯 동방신기 안에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나를 꿈꾸게 하였고, 나를 살게 했다. 그래서 난 꿈이 얼마나 나를 강하게 만들었는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정확히 2년이 채워지자 코빼기도 안보였던 정실장이 프로모 관리에 들어갔다. 중간 중간 정확히 꼬집어서 말하자면, 김영웅재중이 불면증에 시달리는 고 시기에만 출근 도장 찍듯이 섬에 들어왔지만, 그 기간 외에는 겨울잠 자는 양서류, 파충류처럼 좀처럼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그리고 정실장의 무서운 예언처럼 우리는 2년 6개월 만에 오리콘 차트에서 1위를 달성했다. 그동안의 고난과 역경이 필름처럼 지나갔지만 우리들은 울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부둥켜안고 그 자리를 빙글빙글 돌면서 미친놈들처럼 한참을 웃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대기실에서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말로 우리는 얼싸안고 자만하기 시작했다. 「씨발, 난 절대 콩고물 주워 먹는 태생이 아니었다니까!!!!」 「힛-잉! 내 까마귀는 길조였엉!!! 」 「이게 다 외계인 수신 때문이라니까요?」 오리콘에서 첫 1위 한 트리플 A면 싱글은 최초로 「Bolero」라는 한 곡만 실었다. 이 곡은 6/8 박자로 독특한 박자와는 달리 소름이 돋을 만큼 굉장히 웅장하고 아련할 만큼 드라마틱한 분위기의 곡이었다. 악곡의 전개도 굉장히 드물 뿐 아니라, 발라드곡임에도 무대의 분위기를 살려주는 굉장한 곡이었다. 그만큼 곡의 전개는 매력적이었고 멤버들 모두가 단시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감이 있는 곡이 되기도 했다. 이 곡이 처음 우리에게 다가온 날을 지금 떠올리면 확실히 여느 때와는 많이 다른 풍경들과 느낌들이 묘하게 자리 잡혀 있었다. 그리고 곡을 듣자마자 단번에 욕심이 생겼던 만큼 레코딩의 날짜를 무리지어 미루는 일을 처음 병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작곡가에 대한 정보는 오리무중이었다. 하지만, 'MinSeo'라는 작곡가의 이름을 보고 아마도 한국계의 여성분일 거라고 우리는 단순한 추측을 하기도 했다. 작곡가를 추측으로 생각할 만큼 이 곡의 레코딩 방식은 이례적으로 만나기 어려운 케이스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부분은 레코딩 회의가 이루어진 날에도, 음정에 대한 분석으로 문의를 해보고 싶은 날에도 어김없이 작곡가와 연락이 닿을 방법은 전혀 없었다. 단지 우리에게 주어진 건, MR만 녹음된 CD 한 장과 한 번에 끼적거렸을 법한 너덜너덜한 A4용지가 전부였다. 즉, 이 작곡가는 가이드 녹음 전혀 없이 전적으로 우리들에게 이 곡의 해석을 맡긴 셈이나 다름없었다. 이 부분이 우리에겐 강한 승부욕으로 자극되기도 했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완성된 곡을 듣고 행여라도 이 곡을 다시 엎을까 싶은 조바심과 불안함이 어딘가에 내포되기도 했었다. 그만큼 이 곡은 작곡가가 원했던 방향대로 단 1초라도 놓치고 싶지 않을 만큼 강렬했다. 몇 날 며칠을 우리는 CD 한 장을 수시로 들어가면서 곡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하나하나씩 느끼기 시작했고, 쉽지 않은 6/8 박자 곡에 빠르게 매료되기도 했다. - Bolero - 어둠 속에 떠오르는 달의 무대에서 춤을 추는 널 꿈꿨어 깊고 깊은 가슴의 상처를 하나하나 짊어지려고 하지 마 그 누구도 널 탓하지 않아. 너는 지금의 너이면 되는 거야 들려줘. 사랑스럽고 덧없이 발끝으로 연주하는 bolero 춤추듯 날아올라. 너의 슬픔까지도 치유해줄 그곳을 찾게 될 거야 어두운 방안… 채워지지 않은 마음이 창가에서 흘러 꿈이 깊어지고 달빛 아래… 무턱대고 희망의 리듬을 새기는 꿈은 더 해만가 네가 너다울 수 있는 건 자유롭게 날갯짓을 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대답을 찾아서 들려줘. 사랑스럽고 덧없이 발끝으로 연주하는 bolero 춤추듯 날아올라. 너의 슬픔까지도 치유해줄 그곳을 찾게 될 거야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너를 비춰줄 거야 지켜볼 테니 너를 사랑해나갈 미래를 어디에 있든 난 언제나 소망할 거야 지켜낼 테니… 들려줘 들려줘 눈부시고 애절한 정열로 미칠 듯이 반짝이는 bolero 환희의 노래를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니 이 생명이 다할 때까지 날아올라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에 있어. 이상하게 레코딩 날짜가 임박 될수록 우리들의 욕심은 그만큼 늘어갔다. 보통 레코딩을 하게 되면, 자신의 가성을 중심으로 목소리가 들리기 때문에 나중에 전체적인 곡을 듣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굉장히 고민한 부분이기도 했지만, 모두의 페이크가 나올 때 혼자 고음을 소리 냈다. 첫 레코딩 할 때 이런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이었냐고 모두 놀라워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처음 접한 MR은 내가 부른 목소리 톤보다 한 단계가 낮았었다. 그런데 이 점이 머리로는 잘 알면서도 막상 레코딩이 들어가면 그 느낌이 쉽게 오지 않아 힘들었었다. 그래서 CD에 들어 있는 음정을 찾아 바꿔 고음을 선택했었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아이디어로 칭찬을 받기도 했지만 정작 곡을 준 작곡가의 정확한 해석을 듣지 못해 많은 아쉬움을 남기게 된 곡이 되었다. 그리고 자꾸만 'MinSeo 민서'라는 이름이 귓바퀴에 걸린 것처럼 노래 부르는 순간마다 맴돌았다. 내겐 아련한 이름이면서도 동시엔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아픈 이름이었다. § - 작곡한 Kiss The Baby Sky란 곡이 이번 B면 싱글에 실리게 되었는데 곡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 곡을 썼을 당시에 거의 1개월 반으로 11곡을 만들었을 시기였어요. 일단 일본어로 가사를 쓴다는 게 굉장히 어려웠어요. 시와 같은 언어들이 서로 영향을 주기도 해서 막상 실제로 쓰다 보니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었어요. 가사의 내용은 안타까운데 곡은 어째서인지 밝은 분위기네요. (웃음) 왜 그럴까요? - 주로 가사는 상상해서 지으시나요? - 딱히 상상을 일부러 하진 않아요. 이제는 습관처럼 물든 버릇인데요. 늘 가방에 녹음기를 들고 다녀요. 문득문득 생각날 때마다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구요, 좋은 생각이 나면 바로 녹음을 하기도 해요. 처음에는 몰랐는데 이게 쌓이다 보니까 저절로 곡이 되고 가사가 되기도 하더라구요. 이번 Kiss The Baby Sky 가사도 녹음테이프에서 발견했어요. 그런데 언제 녹음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해요(웃음) 굉장히 웃긴 목소리로 녹음되어 있었어요. '미래는 분명 웃게 될 거야…. 그러니까 네 모습 그대로 있어줘, 내일도 분명 밝은 날일 거야…. 네 모습 그대로 있어줘….' 그 녹음된 목소리가 정말 우스워서 멤버들에게 들려줬더니 너 울었어? 라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런데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아서 웃었어요. (웃음) (ORICON STYLE 인터뷰 中) § "박유천! 내가 에어컨 켜지 말랬지!" "또 침낭 폈습니까?" "추워! 진짜 추워!" "김영웅 형. 그러지 말고 우리가 저 침낭을 불태워 버립시다." "저번에 윤호형이 갖다 버렸는데, 다시 사 왔자낭…." "그럼 이번엔 박믹키님을 버립시다." "쟨 분리수거도 안 돼…." 겨울에도 에어컨을 켜는 내게 김영웅재중이는 매번 무서운 얼굴을 애써 하며 손가락질을 했다. 내가 에어컨을 켤 때마다 매번 에어컨 커버를 덮어놓는 귀찮은 정성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상하게 난 그날의 알싸한 거실추위처럼 소름이 돋을 만큼 서늘한 방을 좋아하게 되었다. 마치 내 안에 뜨거운 것은 어느 것 하나도 없다는 일말의 위로처럼 그렇게 서늘한 게 기분이 좋았다. 겨울마다 테라스에 파카를 입고 난방비를 아끼고자 야동을 보는 리더 대신에 내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처음엔 며칠 그러려니 라고 생각한 멤버들이 이게 열흘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자 서서히 내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진부하게 얼어 죽을 작정이니? 그러다가 감기 걸려. 라는 버전의 위로였다. 하지만, 고급 침낭은 내게 안성맞춤이었다. 딱 내 몸이 들어가 적당히 내 몸을 감싸주는 침낭은 그 어떤 것보다 따뜻했고, 어떤 방보다 만족스러웠다. 어느 날에는 컴퓨터 책상을 테라스에 배치하고 소파를 끌어오고 테라스 창문을 칠판 삼아 가사를 적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다음 날이면 다시 원상복구 되어 있는 물건들과 고무장갑을 끼고 유리창을 빡빡 닦으며 얄밉지 않은 입술로 쫑알거리는 재중이가 있었다. 성질은 나는데 이런 건 못 참겠는지 두 손으로 빡빡 문지르며 「빡유천 개새끼…. 잉」이라고 창민과 내가 홀딱 반한 섹시한 욕을 했다. 피식 새어 나가는 웃음을 뒤로한 채 다 지워질 때까지 뒤에서 지켜보는 날들도 있었다. 그만큼 재중의 욕은 내 아드레날린은 상승시키는 데에 일가견이 있었다. 창민은 미팅을 가기 위해 대학을 갔다. 그런데 합격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섬에 팔려왔으니 그 원망이 누구보다도 컸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연구실이 일본지사에도 있었다. 처음엔 외계인과 대화를 나누던 창민이 슬슬 섬나라의 생활에 만족하기 시작했는지 동방신기를 취미생활로 저리 밀치고 한동안은 연구실을 교도소처럼 갇혀 지낸 나날들도 있었다. 열흘 동안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던 녀석이 숙소로 우하하하! 하고 우월감을 비추며 등장할 때마다 재중과 난 어김없이 테라스로 들어가 문이 열리지 않게 잡는 방법을 선택했다. 하지만, 우악스럽게 테라스 문을 거칠게 연 창민은 비아그라를 몇십 통 처먹은 야생마처럼 힘을 발휘했다. 그리곤 여지없이 새로 개발된 약을 우리에게 테스트하곤 했었다. 운이 좋으면 나쁜 영향이 없었고, 운이 나쁘면 꼭 뒤가 뚫린 것처럼 설사가 방출되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은 언제나 내가 먹은 약에만 이런 반응이 온다는 사실이었다. 사랑을 받는 재중은 나날이 예뻐지고 사랑스러웠다. 남자 앞에 붙는 수식어치고는 참으로 지조 없지만, 어쩔 수 없이 재중에게 평생 따라다닐 수식어는 분명했다. 열심히 근육을 키우다가도 정실장이 근육 좀 빼라고 하면 운동을 전혀 하지 않고 연체동물처럼 온종일 흐물거리듯 놀았다. 안 좋은 점은 이럴 때면 살림도 하지 않았다. 맛있는 밥도 차려주지 않았다. 그렇다가 어느새 살이 쪽 빠지게 되면 병 주고 약 주는 것처럼 살 좀 찌우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그럼 또 빵싯거리면서 우적우적 밥을 먹기도 하고 안 하던 조깅을 하러 나를 개처럼 질질 끌고 인근 공원에 가기도 했다. 타지도 않은 자전거를 타자고 조르기도 했고, 오늘은 색다른 음식을 해줄 거라면서 우리를 들뜨게 만들기도 했다. 이런 갭이 너무 심해서 어느 날에는 정실장이 재중에게 주입하는 약이 따로 개발되었는지에 대한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재중은 「히히-」라고 실없는 놈처럼 웃기만 했다. 그게 또 밉지만은 않았다. 테라스 밖으로 둘 다 팔짱을 끼고 나를 보고 욕을 해댔다. 기껏 해봤자. 갖다 버리자. 분리수거도 안 된다. 가 전부였지만, 그런 일상에 스며든 세세한 대화들이 내겐 가장 행복한 나날들이었다. 오늘도 여전히 테라스에 침낭을 피고 그 안에 쏙 들어가 어두운 구름 사이로 비치는 달빛을 받았다. 그리고 습관처럼 펜던트를 만지작거렸다. 잠이 들기 전 난 '참 오랜만이야.'라고 녀석에게 인사를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었다. 과연 그때 나는 웃고 있을지, 아니면 펑펑 울고 있을지, 그것도 아니면 화를 내고 있었을지 정확하게 표정이 상상되지 않았다. 계절이 변하는 끝엔 언제나 녀석을 떠올랐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우연히 라도 녀석을 길에서 스치듯 만날 수도 있겠다는 일말의 희망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우연도 내겐 빗겨갔다. 그런 희망이 어느 날부터인가 나를 얽매이고 내게서 녀석을 놓아주지 않다고 느꼈을 때 어느새 난 일본에 와 있었다. 아직도 내가 웃을 때 사람들은 우는 것 같다고 농담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땐 아프다고 정말로 말하면 내가 정말로 아플 것 같았다. 그땐 보고 싶다고 말하면 정말로 녀석이 보고 싶을 것 같았다. 그땐 내가 슬프다고 말하면 내가 정말로 울 것 같았다. 그래서 웃었다. 하루하루가 행복한 사람처럼 웃는 날들을 늘어갔다. 멍하니 앉아 가사를 적다가도 어느새 어떤 글씨를 적었는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종이가 새카맣게 변하기도 했다. 마치 어제 일처럼 아직도 내 목 언저리엔 녀석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었는데 아무것도 먹지도 못한 날들이 가끔씩 돌아오는 것처럼 녀석도 나처럼 어두운 방 한구석에서 쓴웃음을 삼키고 있진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늘도 변함없이 참 오랜만이야 라고 말하는 녀석의 말에 내 표정을 상상했다. 처음 널 만났을 때처럼 철없이 가슴이 뛸까, 차라리 널 몰라볼 걸 그랬나, 그냥 널 닮은 사람이라고 착각할까…. 아직도 어제 일처럼 내 가슴은 아프고 내 심장은 뜨겁고 내 목은 가렵고 모두가 조용히 잠든 밤에도 어김없이 녀석이 소란스럽게 내게 들려왔다. 눈을 감아도 네가 없어도 대답없는 이름을 수없이 불러봐도, 난 녀석이 내 추억 속에 살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못했다. 아직은…. 아직도…. 내 노래는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내 멜로디는 아직은…. 아직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차라리 지독한 꿈이라면 애써 웃으면서 참아 볼 텐데…. 오늘도 여전히 네 얼굴이 네 목소리가 네 숨소리가 또 생각나. 오늘도 여전히 숨이 막혀왔다. § 생각보다 늦게 숙소에 도착한 정실장은 조심스럽게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구두를 벗고 실내화를 신으며 거실로 들어서자, 희미하게 켜져 있는 TV 소리와 기다리다가 결국 졸음을 이기지 못해 잠든 재중이 힘없이 소파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무거운 책임감처럼 손목을 감싼 시계를 풀며 거실 탁자 위에 내려놓고 와이셔츠의 소매를 조금 위로 걷어 올렸다. 그 사이로 보이는 굵은 핏줄이 두 사람을 끈처럼 이어줄 것처럼 단단해 보였다. 몸 라인 그대로 촥촥 달라붙은 트레닝복 위에 단가라 나시티를 입은 재중의 팔에 미세한 소름이 돋아있었다. 거실 온도는 생각보다 낮았고, 이런 날씨에도 여전히 테라스에서 침낭을 펴고 잠이 든 유천을 보자 정실장이 낮게 웃음을 보였다. 곧바로 재중이 깨지 않게 목과 허리를 받쳐 안아 올렸고, 재중의 침대로 향해 조용히 걸어갔다. 시트를 젖혀 재중을 눕히는 손길이 깨지는 물건을 다루듯 조심스러웠다. 춥지 않게 시트를 잘 여며주며 거실로 나온 정실장이 답답한 목 단추를 두어 개 푸르고 나서 결국 고집처럼 매번 테라스 문 또한 여는 걸 잊지 않았다. 찬 기운이 확 느껴질 만큼 테라스는 많이 서늘했다. 여전히 음울한 표정으로 잠이 든 유천의 서늘한 얼굴을 쓸어주는 손길에는 정이 묻어나올 만큼 따뜻하고 진지했다. 침낭의 자크를 고민 없이 훅 내린 정실장은 그래도 이전보다는 살집이 조금 생긴 유천을 안아 올렸다. 한번 잠이 들면 정글의 사자도 죽은 시체로 코만 흥 거리고 그냥 지나칠 정도로 유천은 깊게 잠이 드는 편이었다. 한 번에 자신의 몸이 들려졌음에도 그 어떠한 미동도 없이 무겁게 내려앉은 눈썹은 움직이지 않았다. 많이 서늘해진 몸을 들어 유천의 방으로 갔다. 이 방의 모든 살림을 테라스로 내 보낼 작정인지 방 안은 썰렁하다 못해 사람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그대로 유천을 내려놓고 목 끝까지 시트를 잘 여며주었다. 그리고 여전히 펜던트를 꼭 쥐는 손이 조금이라도 편해지도록 손가락을 풀어주었다. 그런데 그새를 못 참고 습관처럼 다시 펜던트를 찾아 꽉 쥐는 손이 있었다. 그 손은 매우 차가웠고, 슬픈 기억에 잠든 것처럼 아련하기도 했다. 그대로 방문을 닫고 나온 정실장은 이제야 안심이 되기 시작했는지 욕실로 향했다. 재중의 얼굴을 본 지도 어느새 4개월이나 흘렀다. 내일 일까지 앞당겨 처리한 스케줄때문에 몸은 피로할 때로 지쳤지만, 설레는 가슴은 좀처럼 종잡을 수 없었다. § 욕실에서 허리에 타월을 두르고 축축하게 젖은 머리를 다른 타월로 문지르며 재중이 잠든 방으로 정실장이 들어섰다. 그런데 아까까지만 해도 깊게 잠든 재중이 침대 위에 넋이 나간 듯 멍한 눈으로 앉아있었다. 머리를 털던 손이 자동으로 멈춰졌다. 아마도 재중은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을 못 하는 아이처럼 여러 번 눈꺼풀을 깜빡거리고 있었다. 안 그래도 하얗던 얼굴이 아예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가 서서히 붉게 달아올랐다. 그리고는 마치 잠에서 깨고 싶은 사람처럼 머리를 세차게 도리도리 흔들었다. 그런 재중의 넋 나간 표정을 그림 감상하듯 지켜보며 머리를 다시 털기 시작한 정실장이 피식 웃음을 흘렀다. 그러자 돌리던 고개를 멈춘 재중이 야멸치게 팔짱을 끼웠다. 앙증맞은 미간이 밉지 않게 자리잡혔다. "형. 지금이 도대체 몇 시야." "3시. 25분." 다시 팔을 고쳐 끼며 야멸치게 쏘아붙였다. 기다린 게 억울했던 모양인지 콧바람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분명히 일찍 온다고 나랑 약속했잖아." "약속은 둘이서 하는 거야. 혼자 하는 약속이 어디에 있어." "그래도 내가 기다린다고 그랬잖아!" "그래서 이렇게 왔잖아." 팔을 풀더니 대놓고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완전히 잠에서 깨어난 재중은 서서히 보고 싶었던 지난 넉 달을 한꺼번에 떠올리는 사람처럼 격분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렇게 안달 난 자신에 비해 능숙하게 낮게 웃음을 보이며 머리를 마저 터는 정실장이 야속해 보이는 순간이었다. 정말로 보고 싶어도 보고 싶다고 말하지 못하는 강한 척을 애써 배우기 시작했다. 정말로 보고 싶다고 말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만큼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보고 싶은 만큼 다른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런 일들이 차츰 늘어갈수록 불안정한 마음은 안정되기도 했지만, 막상 너무나 보고 싶었던 얼굴이 떡 하니 재중 앞에 보이면 마음이 더 불안하고 그렇게 보고 싶었던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었음에도 더 보고 싶고 더 애가 탔다. 그런데 이런 재중과 달리 정실장은 언제나 보고 싶다는 표현을 자주자주 많이 했다. 하지만, 정작 보지 못한 시간들이 늘어가도 애가 타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더 여유로운 사람이 되어 있었고, 그 어떤 상황에도 느긋하게 일을 처리했다. 그런 여유로움이 한편으로는 재중에겐 불안함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그만큼 이마를 마주하고 온종일 함께 있고 싶은 아쉬움이 재중에겐 크게 다가왔었다. 이마를 마주하고 아무리 사랑스럽게 속삭여도 가슴이 채워지지 않았다. 가슴이 매일 감당 되지 않을 만큼 벅차올랐고 끝없이 귓전에 살랑 살랑거려도 쉽게 채워지지 않을 그런 사랑의 욕심이었다. 재중의 표정에서 점점 심상치 않음을 느끼기 시작했는지 다 말린 타월을 의자 위에 올린 정실장이 낮게 웃는 웃음을 거두고 재중의 까만 눈동자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동자엔 낮은 파도가 일렁거렸고 꾹 다문 입술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눈 한가득 눈물이 차올랐다. 순간 가슴이 철렁한 정실장이 도무지 왜 우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약간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울지마. 왜 울고 그래." 고집스럽게 꾹 다문 입술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저벅저벅 슬리퍼를 끌며 침대로 다가온 정실장이 재중의 눈꼬리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눈물을 손으로 훔치며 눈 밑으로 내려온 앞머리를 뒤로 쓸어 올렸다. 다시 한 번 양쪽으로 눈물이 뚝뚝 흘러내린 재중은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리며 지그시 자신의 눈동자를 바라보는 정실장의 눈을 피했다. 막상 울고 보니 창피한 표정이 역력했다. "오랜만에 보는 건데 형 놀라게 왜 울어." "이거 우는 거 아니야…." "우는 거 아니고 뭐야." "……." "뭐가 그렇게 서러워서 울어. 형한테 서운한 거 있었어?" 혹시라도 열이 오른 건 아닌지 자연스럽게 이마의 열을 체크한 장실장이 침대 시트를 열어 그 위로 올라왔다. 아직 옷도 갈아입지 못한 상태로 올라와 타월이 조금 불편했지만, 고개를 떨어뜨린 채 앉아있는 재중의 팔을 잡아 그대로 곁에 눕혔다. 이윽고 재중이 포근한 품에 파고들며 깊게 안겨들었다. 재중의 우수수 비단결처럼 흩어지는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심장이 마주 닿도록 더욱 가까이 안았다. 정실장의 쇄골 위로 입술이 닿은 재중이 입술을 파르르 떨며 투정치고는 사랑스러운 오랫동안 담아둔 말치고는 너무나 아련한 말을 이어 나갔다.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그런데 내가 보고 싶다고 말하면 형아도 힘드니까…." "그래서 말하고 싶은데 참았어?" "매일매일 나는 형이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 "형도 매일매일 재중이가 보고 싶었어." "형은 만날 보고 싶다고 말했잖아." "재중인 피곤하다고 끊었잖아." "눈물 나니까 그렇지." "형처럼 보고 싶다고 말하지." "그것도 눈물 나니까 그렇지." 재중의 표정을 읽고 싶은 마음에 얼굴을 만졌는데 자꾸만 창피한 건지 싫다는 표시로 고개를 저으며 정실장의 손을 피하기만 했다. 삐쭉 내민 입술은 그런 손이 싫지 않다고 앙증맞게 내밀어 져 있었지만, 재중이 잠시 방심한 틈을 이용해 양쪽 허리를 잡아 가슴 위로 올렸다. 으학! 소리와 함께 정실장 몸 위로 올라온 재중이 별안간 정실장의 가슴 위로 두 손을 짚으며 몸을 멀리 떼어냈다. 그러자 낮게 웃으며 그제야 재중의 눈동자를 제대로 바라본 정실장이 이제야 만족스러운지 성취감에 찬 표정으로 재중에게 말했다. "보고 싶었어." "알아." "재중이는. 재중이는 형한테 말 안 할 거야?" 가슴에 짚은 손바닥 밑으로 두근두근 소용돌이치는 정실장의 뛰는 가슴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그 가슴이 재중의 심장에 전해지고 덩달아 몸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 재중이 정실장의 깊고 짙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꾸만 새어 나오는 눈물을 슥 훔치며 환하게 웃었다. 올라간 입가 사이로 또다시 눈물이 흘러 내려왔고 쉽게 진정되지 않은 가슴을 부여잡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나도…. 나도 형이 너무 보고 싶었어." "잘했어. 앞으로도 참지 말고 이렇게 말해야 해?" "응…. 사랑해 형아." "옳지~ 잘한다." § 하얀 우유가 흐를 것 같은 앙상한 팔은 첫 정사가 아니었는데도 매번 익숙해지지 않은 사람처럼 어찌할 줄 모르며 정실장의 몸과 함께 흔들렸다. 개미허리처럼 한층 더 얇아진 재중의 허리의 센치를 가늠하듯 눈이 가늘게 떠진 정실장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재중을 올려다보았다. 정실장 허벅지 위에 앉은 재중은 오랜만에 이루어진 정사로 혼비백산 상태로 신음을 간헐적으로 내뱉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도 자신의 몸 상태를 파악하는 정실장이 그저 얄밉게 느껴졌다. "살이 많이 빠졌는데. 왜 자꾸 형한테 거짓말해." "하아, 하아…아니야…지금 찌고 있다니…까아…하아, 아앗!…거기…아파!…." 다시 양손으로 허리를 꽉 잡은 정실장이 재중이 아파하는 부위를 골라 원을 그리듯 여러 번 찌르듯 미세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뜨거운 숨을 뱉으며 다시 고개를 숙이고 정실장의 가슴팍 위로 손을 올린 재중이 참기 어려운 듯 새어 나오는 신음에 입술을 깨물기 시작했다. 하지만, 깨문 지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입 안으로 들어오는 긴 손가락 때문에 다시 입이 열린 재중은 결국 고개를 뒤로 꺾을 수밖에 없었다. 눈부신 희열 앞에 가는허리가 활처럼 팽팽하게 휘어지면서 꽉 다문 이 사이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앗, 앗항…… 하아…….” 다시 정살장의 목을 끌어안으며 힘들게 신음을 뱉는 재중이 정실장의 등을 탁! 쳤다. 견디기 힘들다는 표시였다. 하지만, 침대에 등을 기댄 정실장이 별안간 허벅지 위에 앉아있는 재중의 자세를 배려하지 않고 무릎을 들었다. 그 순간 안 그래도 꽉 들어찬 페니스가 쑤욱 미끄러져 재중의 가장 깊은 곳까지 밀고 들어오듯 억지로 안을 비집고 들어왔다. 갑자기 놀란 재중이 모인 무릎을 탁! 탁! 쳤다. 참을 수 없는 쾌락과 고통에 얼굴이 허옇게 질려갔다. "앗, 형아…무릎!!…읏항…하아, 하아…무릎…내려줘어…." 하지만, 어느새 뇌와는 달리 가장 흥분되는 부위를 여러 번 강조하듯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한 재중이 어쩌지도 못한 팔을 정실장의 목으로 둘러 안았다. 길지 않은 손톱을 새우며 등을 할퀴며 참지 못한 신음을 뱉어내느라 힘겨워 보였다. 이전보다 마른 재중의 몸이 신경이 쓰이는지 부드럽게 허리를 잡은 정실장의 손길이 사뭇 조심스러웠다. 재중의 안에서 점차 팽창하기 시작한 페니스에 재중의 애널이 고혹적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느긋한 정실장의 페니스를 애원하듯 빠르게 수축했다가 이완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재촉하듯 뜨거워진 아래에 혼이 나간 듯 입이 벌어지는 뜨거운 안으로 정실장의 부드러운 혀가 들어왔다. 구석구석 파르르 떨리는 혓망울 찾아 함께 움직였다. 고른 치아를 훔쳤다가 간지럽게 입 천장을 쓸었다가 다시 애원하듯 정실장의 혀를 찾으면 어김없이 옭아매듯 빠르게 다가와 츕츕 거리기에 바빴다. 서로를 빨아 들이는 음란한 소리가 방 안에 가득 메우기 시작할 무렵 난데없이 재중의 허리를 바짝 잡은 정실장이 빠르게 폭발을 향한 피스톤질을 하기 시작했다. 재중의 신음이 흐억! 소리와 함께 다시 정실장의 입 안으로 삼켜졌고 어느새 체위가 바뀌어 재중이 침대 위에 눕혀졌다. 자신의 가슴팍으로 재중의 등을 기대게 한 정실장이 빠르게 재중의 한쪽 허벅지를 들어 올렸고, 정실장의 손길에 따라 힘없이 축 늘어진 허벅지는 쉽게도 위로 올라갔다. 숨이 끊어질 듯 나오는 뜨거움과 쾌락에 모든 정신이 빼앗긴 사람처럼 재중은 힘겨운지 시트를 입에 물고 어디로 손을 내려야 할지 몰라하는 손으로 베개를 움켜잡았다. 재중의 뜨거운 뒷목을 혀로 빨아올리며 얼마 지나지 않아 재중의 귓속으로 질척하게 들어온 혀는 뜨겁게 재중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침으로 범벅된 소리가 야릇하게 재중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참기 어려운 듯 정실장의 혀를 피해 고개를 돌린 재중이 정실장의 입술을 찾아 파고들었다. 그런데 이때다 싶었는지 힘껏 들어 올려진 허벅지를 움켜잡은 정실장이 재중의 뜨거운 혀를 빨아 먹을 것처럼 강하게 당기며 한쪽 팔로 재중의 가슴을 안았다. 화산처럼 머릿속에서 폭발하듯 거센 행위가 이어졌다. 꽉 잡힌 한쪽 허벅지는 정실장이 움직이는 허리 짓을 따라 힘없이 따라서 흔들렸고, 쏟아지는 신음은 이미 정실장의 입 안에 머무른 지 오래였다. 강하게 뒤에서 박히는 페니스는 힘을 잃어갈 의지가 전혀 없는지 여러 번 빠르고 강하게 깊숙이 재중에게 들어왔다가 쉽게 놔주듯 나갔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빠르게 들어오기를 반복했다. 재중의 몸이 크게 흔들리지 않게 가슴을 안은 손은 어느새 딱딱하게 솟아오른 유두를 괴롭히고 있었다. "흐엇!!하아…하아…앗아…ㅎ형아!…하응…." "하아……." 찰박, 찰박거리는 소리가 여러 번 반복적으로 방 안을 메우고 동시에 탁! 하니 뜨거운 액이 흘러나오고 나서야 재중의 올려진 허벅지가 내려갔다. 과일의 향처럼 물씬 달콤한 액이 가득 흘러내렸다. 한없이 마셔도 끝없이 솟아오르는 샘은 늘 정실장의 욕망을 쉽게 불러 모았다. 그와 동시에 등 돌려진 재중의 몸을 다시 돌려 마주 보자, 아직 여운이 그대로 남긴 재중은 울먹이듯 깊게 안겨오며 입술을 찾아 들어왔다. 녹아내릴 듯 뜨거운 혀는 쉴 새 없이 정실장을 찾아 목마르게 다가왔고 그런 재중이 등을 토닥이는 손길에는 정성스런 애정이 묻어나 있었다. 어느새 눈초리에 흐른 눈물을 닦아주며 재중의 눈꺼풀 위로 짧게 키스를 했다. 이에 질세라 정실장의 입술 위로 짧게 입맞춤을 한 재중이 눈을 휘어가며 환하게 웃었다. 이런 재중을 그대로 보고 있기 힘든 사람처럼 너무 귀여워서 엉겁결에 안아 뺨에 여러 번 비벼댔다. 꿈에서 보일 만큼 서로가 그리운 날, 그 기다림 마저 너무 애틋해서 차마 입 밖으로 내보낼 수 없었던 시간들, 이들은 연탄재처럼 서로에게 언제나 뜨거운 사람들이었다. 빗살과 빗물로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바닷물결에도 서로가 움직이는 공간보다 먼저 도착해 등불이 되어주었고, 때로는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아득한 샛별이 찬란하게 까만 하늘을 수를 놓듯 별이 되어 함께 떠 있는 그리움은 아픈 만큼 애틋했지만, 또 그만큼 서로의 단단한 끈이 되기도 했다. 사랑을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전에 이들의 본질은 이미 사랑이었다. § 이곳에 닿기까지 우리는 3년간 쓰디쓴 눈물을 가슴에 담고 포기하고 싶은 울분의 한을 노래에 담기도 했었다. 그리고 닿은 무도관 라이브는 이런 모든 역경과 노력을 단 한 번에 씻어 내리게 할 만큼 위대한 곳이었다. 무도관에서의 라이브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누구나 언제나 목표로 말할 수 있을 만큼 동경의 장소이기도 했다. 마치 고교 야구소년이 여름의 코시엔 출장을 목표로 하듯 그만큼 우리에게 무도관 라이브는 꿈에 그리던 장소였다. 이런 동경의 장소라고 불리질 만큼 입장 가능 관중 수는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다. 하지만, 이곳에서 콘서트를 가진다는 것은 규모와 상관없이 아주 큰 상징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상업적 목표를 가진 엄연한 공연이 5만 명 이상의 관중을 끌어모을 대관비 대신에 굳이 2만 명이 채 되지 않은 무도관에서 이렇게 콘서트를 하려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일전에 무도관은 유도, 검도 등의 일본 전통무술 시합이 열리던 정소에 불과했었다. 고교 운동선수들이 꿈꾸는 장소처럼 이 무도관은 꿈의 무대가 다름이 없었다. 야구선수들이 갑자원의 흙을 직접 밟아보고 싶은 게 꿈이듯이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대게 공연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비틀즈가 시작이었다. 즉, 이 무도관 공연을 한다는 것은 가수들에게 있어서 최고 실력을 인정받는 증거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특히나 연말연시에 이 무도관에서 공연한다는 의미는 일본 내에서 굉장한 TOP 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만한 그런 곳이었다. 그런 누구나 꿈에 그리던 곳에서 연말에 공연하게 되었다. 지방 투어를 하는 도중에도 발표된 일정에 모두들 놀라워했던 게 사실이었다. 3년의 시간을 보상받듯 비로소 우리의 음악적 지위나 위치를 인정받게 되는 순간이었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곳이 성지가 된 것처럼 어떤 의미로 우리에겐 '아 해냈구나'라는 강한 의지와 성취감이 자리 잡게 되었다. 많지도 그렇다고 적지도 않은 관객 수용과 비교하면 갖춰지는 시설들은 어떤 곳보다 섬세했고 놀랄 만큼 뛰어났다. 이렇게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지금 일어났다. 이런 무도관 안에 우리가 있다. 아직은 믿기지 않다는 표정으로 어색하게 자리 잡은 미소엔 한껏 숨겨진 대량의 울컥거림이 숨겨져 있었다. 오랜만에 가슴이 세차게 뛰어올랐다. 엉엉 소리 내 울고 싶을 만큼 강한 감동에 가만히 앉아 있어도 몸이 파르르 떨렸다. 멍하니 앉아있는 등 뒤로 갑자기 누군가 등장했다. 역시나 얼굴만 봐도 단번에 마음이 녹아내렸다. 일명. 우리 아빠다. "아빠!!!!!!!!!!!!!!!!!!" "훠이, 정사장님 오셨쑤?" "형아!!!!!!!!"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 신문을 정독하고 있던 창민이 반가운 표현으로 집중해서 읽던 신문을 옆으로 내렸다. 저건 명백하게 가장 반가운 표시에 절대 부족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새 메이크업을 하다가 폴짝 날아서 뛰어오르듯 목에 팔을 매 단체 가슴에 안긴 재중이 혀엉,형,형 거리며 고목나무의 매미처럼 들러붙어 필살기 애교를 선보이고 있었다. 이미 가슴팍을 빼앗긴 나는 침이 자동 생성되는 넓은 등짝을 노리며 달려들었다. 앞뒤로 애새끼들이 달라붙자, 차별근성이 성실한 정실장 이 양반은 고새를 못 참고 재중이 떨어지지 않게 허리를 안았다. 하지만, 뒤에 매달린 나를 홱 떼어내며 내게 창피하단 듯이 진지하게 말했다. 꼴에 유부남은 싫은 모양이다. "내가 왜 네 아빠야." "그럼 난 누가 키웠어?" "내가." "내가 무슨 홍길동이야?" "입 다물어." "왜 아빠를 아빠라 부르지 못하게 해!!" 귓속이 간지러운지 손가락으로 가볍게 귓바퀴를 만지작거리는 손에는 장난기가 묻어나 있었다. 곧바로 정실장에게 매달린 재중의 엉덩이를 귀엽단 듯이 토닥이자 재중이 그제야 땅에 발을 밟았다. 늘 조신하고 얌전하게 앉아있던 재중이 신들린 것처럼 뛰쳐나가자 오히려 주변 스텝들이 놀랐는지 「재중 괜찮아?」라고 물어보고 있다. 내가 진짜 입이 무거워서 주둥이 닥치고 있지, 내 입이 새털처럼 가벼웠음 영웅재중 네 인생 내 손바닥 위라고. 맛있는 밥 안 차려주면 내 언젠가 다 까발릴 거야. 누구 앞에선 나보다 시끄럽다고. 지킬앤하이드 신드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그로테스크한 이중인격! 다중아! 선악의 양극형. 한순간 양처럼 착하고 다정하다가 다음 순간 여우처럼 사납게 변했다. 살얼음판을 걷는 것처럼 예측불허형. 김영웅재중이 어서 이중인격의 덫에서 벗어나라! 섹시한 욕을 이젠 보여주라! § "기분이 야리꼬리 찝찝하겠어요?" "어. 존나." "3년 동안 신체 부위처럼 달고 다녔으니, 끊어질 법도." "잊어버린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속이 체한 것처럼 울렁거릴까." "벌써 기억 안나슈? 저번에 5분 동안 목걸이 잃어버렸을 때 입 쩍 벌리고 패닉상태였잖아요." "몰라. 기억하고 싶지 않아." "오늘 오라스 공연 끝나면, 체인 맡겨요." 일전에 코디가 의상과 액세서리를 맞추려고 잠시동안 펜던트를 목에서 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코디가 따로 다른 곳에 넣어둔 것도 모른 채 그저 없어진 펜던트에 모든 대기실을 뒤엎은 적이 있었다. 말이 더듬어지고 초조해지는 마음이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아 여러 번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영혼까지 더럽혀지는 궁핍을 느낄 정도라면 상상이나 될까? 하지만, 당황한 듯 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다시 돌아온 펜던트에 털썩 그대로 주저앉은 나는 마치 어제 일처럼 시도때도없이 녀석의 울림 안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다시 돌아오는 계절이 올 때마다 늘어가는 원망 대신, 눈 깜짝할 사이가 되어도 좋을 만큼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그저 오늘 밤만 자고 눈을 뜨면 흔들거리는 의자 위에 단잠에 빠진 노인처럼 그렇게 긴긴 세월이 한 번에 흘러가길 바랐다. 하지만, 적어도 시간은 애원하지 않아도 잘 흘러갔지만, 붙잡는다고 해서 멀리 흘러가지 않았다. 그저 이 모든 시간을 견디고 또 견디라는 방법만 각인시켜줄 뿐이었다. § 무도관에서의 마지막 라이브는 그 어떤 공연보다 강렬했고 감동적이었고 뜨겁게 달아올랐다. 1초라도 다른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우리는 강한 집중력을 선보였고, 그동안에 쌓아온 서러운 기억들, 나약한 생각들, 점차 자신 없어지는 무기력한 모든 것에 대한 시간과 감정들이 우수수 쏟아져 가슴이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뛰는 가슴이 감동을 주었다. 객석 한가운데에 앉아서 마지막 무대를 보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든 정실장님의 모습에 울컥 눈물이 치밀어 올라왔다. 온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손끝 마디가 떨려왔다. 다리도 후들거렸다. 이런 미세한 감정 하나하나에 두근거림과 울컥거림이 한대 어우러져 나는 울지도 그렇다고 쉽게 웃지도 못한 상태로 눈을 감고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버릇처럼 목 언저리에 손을 가져갔다. 아쉽게도 펜던트가 잡히지 않았지만, 그 자리에 맴돈 손은 쉽게 내려오지 않았다. 마지막 노래의 반주가 나오기 시작하자, 2만 명이 채 되지 않은 팬들은 펜라이트를 흔들며 우리와 함께 호흡했다. 이보다 아름다운 대화는 이 세상에 없을 거라고 쉽게 단언할 수 있었다. 그들이 우리들의 멜로디에 웃고 울었다. 그리고 그들의 진실된 대화에 우리는 3년을 보상받았다. 그날의 기억처럼 난 천장을 바라보았다. 매일 밤 숙소의 테라스 천장을 밝히는 달빛 아래 나 홀로 만찬처럼 무대 위는 별빛처럼 수를 놓은 별들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차마 노래를 부를 수 없었던 지난날들이 새록새록 필름처럼 지나갔다. 그땐 너무 어린 가슴을 지니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녀석이 나 없이 행복해질 시간을 생각하면 잠을 못 이룰 만큼 난 굉장히 서툰 가슴이었다. 내가 아파하고 불행한 만큼 녀석도 그 어딘가에서 나처럼 아프길 바랐다. 적어도 나 없는 곳에서 행복한 듯 웃는다는 건 끔찍할 만큼 나에게 가혹했다. 하지만, 불행한 녀석의 모습이 나에게 더 큰 슬픔이라는 걸 쉽게도 깨달았다. 그 슬픔은 어느 누구도 잴 수 없었다. 내가 녀석의 슬픔을 잴 수 없듯이 말이다. 좌우로 흔들리는 펜던트를 따라 녀석이 피아노를 치던 고사리 같은 손이 떠올랐다. 핏대를 만들어가며 정성스럽게 노래를 부르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팬티만 입은 채 바닥에 엎드려 가사를 끼적거렸던 허공으로 교차하는 두 발이 떠올랐다. 나를 위해 웃었던 것도 또, 나를 위해 울었던 것도 모두 떠올랐다. 보고 싶다. 지금 이 순간, 노래를 부르는 이 순간, 모두가 인정한 장소에서 내 노래를 들어주는 많은 관객이 눈물을 훔치고 이 순간, 난 김준수가 가장 간절했다. 녀석의 인정이 내게 필요했다. 잘했다고, 덕분에 행복할 수 있다는 위로가 필요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관객들 사이로 녀석의 얼굴이 스치듯 보였다. 어느새 눈물이 볼을 타고 내려앉기 시작했다. 내 파트가 돌아왔지만 벅찬 가슴 때문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등을 돌렸다. 함께 울먹이듯 함성을 질러준 팬들의 울분이 귓속에 맴돌았다. 내 팔을 붙잡으며 함께 눈물이 범벅된 재중이 어찌할 줄 모르며 노래를 대신 이어가고 있었다. 쏟아지는 눈물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매번 꿈속에서만 보였던 녀석의 모습이 마치 이건 꿈이 아니라는 듯 내 앞에 비쳤다. 녀석의 등에는 어김없이 악기케이스가 매달려 있었고, 코끝까지 그림자가 생길 정도로 챙이 긴 캡모자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관객이 서 있는 왼쪽 모서리 틈에 나의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처럼 전혀 달라진 게 없어 보이는 녀석은 분명히 김준수였다. 행여나 녀석이 연기처럼 사라질까 봐 눈물을 훔치며 입술을 깨물었다. 엉엉 아이처럼 자꾸만 소리 나는 목소리를 감추며 등을 다시 돌렸다. 그런데 그 자리에 녀석은 없었다. 마치 내 간절한 호소가 희미한 꿈처럼 녀석을 갖다 놓은 것처럼 냉혹한 현실에는 녀석이 없었다. 그 순간 눈물이 뚝 멈췄다. 여전히 펜던트가 있던 자리를 손으로 올리고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때 어쩌면 나는 차마 눈물로 노래를 부르지 못한 나를 훈계하듯 녀석이 내가 보이는 자리에서 떠나간 건 아닐까? 라는 간절한 마음이 동요되었던 것 같았다. 행여라도 녀석이 무도관 밖으로 나가는 통로길이라도, 내가 안 보이는 구석에서 내 노래를 듣고 있더라도 내 목소리가 녀석이 행복할 수 있다는 내 노래가 내 멜로디가 녀석에게 온전히 닿을 수 있도록 노래했다. 여전히 난 녀석의 부재를 인정하지 못했다. 혼자 한 이별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도 구름만 가득한 흐림의 연속이었다. §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인간의 간사함이 간지럽게 느껴졌다. 오리콘 1위를 시작으로 끝나지 않은 동방신기의 범위는 대체 어디까지인가. 라는 겉만 단 기사들이 줄을 이어서 나왔다. 이렇게 계산된 실용주의자들은 언젠가 거품처럼 타락될 우리를 굿하며 기다릴 양반들이었다. 대놓고 입에 발린 소리를 했지만, 이제는 이런 감언이설이나 과하게 포장된 말들에 휩쓸린 우리는 없었다. 읽고 있던 잡지를 내려놓았다. 무도관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3일 뒤에 연초에 있을 앙코르 무대 레코딩차 녹음실로 향하던 길이었다. 짙은 먹구름이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기세인 만큼, 소나기를 퍼붓기 전의 하늘 같기도 했다. 새롭게 개발되어 출시된 약의 케이스를 이리저리 돌아보며 성분체크에 열을 올린 창민은 이미 다른 세계에 빠져 있었다. 정실장이 일본에 다녀가자마자 다시 불면증은 온데간데없고 공기 중에 떠도는 춘곤증에 감염되기라도 한 듯, 몸을 축 늘어트리며 재중이 새근새근 잠들었다. 그런 재중을 바라보자 마치 재중에게 춘곤증이 감염된 사람처럼 나른하면서 갑자기 기억력이 떨어지는 기분마저 느꼈다. 온몸이 노곤해지는 봄처럼 우울한 구름과는 달리 몸은 모든 에너지가 빠져나간 것처럼 흐물거렸다. 그렇게 잠깐 잠이 들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깨를 흔들며 매니저가 나를 깨웠다. 어느새 잠이 깼는지 눈을 비비며 재중이 차 안에서 내리고 있었다. 아직 몽롱한 기분에 도취해 동작이 느릿해진 나는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가방 안에는 별다른 게 없었다. CDP, 녹음기, 지갑이 전부였다. 일본 스텝들은 대부분 거주할 수 있는 지반이 적어서인지 매우 좁은 생활들에 익숙했고 또 그런 이유인지 몰라도 매우 소박한 편이었다. 친절해 보이는 얼굴만큼이나 친절함이 몸에 밴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얼굴과는 달리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었고 그만큼 가족 간에도 예의를 중요시했다. 어디까지나 업무적인 차원에서의 진심으로 친절함은 묻어 나왔지만, 쉽게 자신의 진심이나 약점을 보여주지 않는 편에 속했다. 오히려 이런 점들이 우리는 스텝들과 일적으로 서로 배려할 수 있을 만큼 마음이 편해서 일할 때에 입에 발린 소리를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마음은 편했다. 이런 전형적인 특징과는 조금 벗어난 스즈키 다이스케씨는 굉장히 털털한 작곡가였다. 전부 잘했어요 라고 고개를 끄덕거렸음에도 최종적으로는 단점을 끄집어 내서 재녹음을 하는 작곡가들과는 달리 레코딩 하던 도중도중 우리의 의견을 물어왔고, 그만큼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 점이 같이 작업함에 있어서 굉장히 편했었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갖는 레코딩이 반갑기도 했다. 재중과 창민도 스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잠이 확 깨고 기분이 들떴는지 발걸음이 가벼워져 종종걸음이 되었다. 마치 일전의 무도관 콘서트에 대해 열변을 토해낼 사람처럼 뒷모습이 아이처럼 귀여웠다. 그런데 안에서 이미 또 다른 녹음이 진행되고 있는지 안에 들어서자마자 쉿…. 하고 손가락을 입에 갖다댄 스텝이 보였다. 덩달아 발걸음이 느릿해졌다. 주로 혼자 작업하는 다이스케씨 옆으로는 낯선 사람이 뒤통수가 눈에 들어왔다. 며칠 야간작업을 한 사람처럼 가벼운 반팔 티셔츠에 간편한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지극히 내츄럴한 모습이었고, 맨발로 의자 위에 정좌로 앉아 헤드셋을 끼고 집중하는 모습이 다소 특이해 보이기도 했다. 모아진 무릎 위로 손을 괴고 그 위로 얼굴을 올리고 있었다. 흰 티셔츠 사이로 삐죽하니 나온 앙상한 팔이 하얗게 질려 있는 것처럼 메말라 있었다. 체구는 어찌나 작은지 한쪽 팔로 허리가 감길 것처럼 아슬아슬해 보이기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혼이 나간 사람처럼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온 시선을 빼앗겼다. 그리고 이제야 만족스러운지 'OK!' 소리를 하며 헤드셋을 벗었다. 다이스케씨와 나누는 대화는 어딘지 모르게 말투가 어눌했지만, 곧잘 입을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민서씨 내일 돌아간다면서요? 에헤~ 그럼 오늘이 마지막인가요?" "많이 보고 싶을 거예요."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꼭 다시 한 번 같이 작업해요." "오히려 영광이죠. 감사합니다." 스튜디오에 들어선 우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는지 이제야 다이스케씨가 손을 들어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옆에 앉은 사람을 여러 번 가리키며 신난 듯이 소개했다. "네놈들이 그렇게 갈망하던 MinSeo씨가 남성분이셨다!" "…." "왜 그렇게 멀뚱멀뚱 서 있어? 꼭 한번 뵙고 싶었다고 노래를 불렀잖아. 이 놈들아!" "…." "…얼레? 왜 그래? 인사 안 할 거야?" 어쩐지 사무치게 그리운 몸이었다. 여전히 맨발로 무릎을 모은 채 회전의자를 홱 돌린 작곡가가 우리를 향해 돌아보았다. 마치 3년의 시간이 지금 막 지나간 것처럼 돌아서는 등이 길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온전하게 얼굴이 전부 드러나자 숨을 죽이며 조용히 의자에 앉아있던 재중과 창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단 듯이 손을 가리키며 말을 더듬었지만, 음성은 그 어떤 때보다 기쁨에 차 있었다. "ㅈ주…준수형!!!!!!!??" "주…준수야!!!!!!!!" 마치 우리가 올 것을 미리 안 사람처럼 녀석은 등을 돌리고 화들짝 놀라 멍청한 얼굴이 된 우리의 얼굴을 보고 소리 내 웃기 시작했다. "으캬앙!! 으하항!!" 다다닥 달려가 녀석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는 손 앞에 당황한 다이스케씨는 옆에서 당혹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즌수? 준수? 그게 뭐야? 뭐야? 서로 아는 사이야??" "으캬앙!! 으하항!!" 멍청한 얼굴이 한 사람 더 추가되자 녀석이 더욱 환한 웃음으로 빵싯거리며 웃었다. 나는 그대로 얼어붙은 사람처럼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하지만, 몸과 반대로 크게 요동치는 가슴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녀석의 웃음소리가 달콤한 만큼 다리가 후들거리고 차마 견디기 어려운 고통스럽고 복잡한 기분이 나를 얽매이고 있었다. 하지만, 심장이 뻥 뚫린 듯 스산해진 마음을 녀석에게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녀석이 이렇게나 깊숙이 자리 잡은 내 뻥 뚫린 상처에 성스러운 입맞춤을 해주길 한편으로는 상상하기도 했다. 내 눈동자는 오로지 녀석을 꽉 잡고 물고 늘어질 것처럼 온전히 녀석을 향해 있는 시선을 멈출 수가 없었다. 녀석이 말없이 떠나고 나는 그래도 내겐 녀석과 바꿀 수 없을 만큼 중요한 많은 것을 지닌 사람이라고 스스로 위로했다. 하지만, 언제나 돌이켜 생각하는 날에는 녀석이 내 곁에 없는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처럼 어둡고 초라했다. 녀석이 혹시라도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는 날이 있더라도, 그런 녀석을 크게 비웃듯 가끔가다 난 녀석 없는 딴생각을 하려 노력했다. 나는 그때의 날처럼 인정하고 싶지 않은 충동을 느꼈다. 완전히 무표정한 얼굴에, 넋이 나간 사람처럼 텅 빈 눈동자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녀석의 볼을 밉지 않게 꼬집으며 살이 왜 이렇게 빠졌냐고 걱정스럽게 묻는 재중의 질문을 뒤로한 채 녀석이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녀석의 반짝이는 눈빛이 뜻하는 바를 난 읽기 싫었다. 그리고 곧바로 들리는 녀석의 목소리에 난 내 귀를 틀어막았다. "유천아 잘 지냈어? 오랜만이야." My Melody 19 My Melody w. 킵 * * * 버려진다는 것에 대한 농도 짙은 슬픔이 나에겐 서글프게도 익숙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내게도 절대 길들여지지 않는 슬픔이 있었다. 푸시키의 시처럼 '아무리 내 가슴을 아프게 했던 경험일지라도 결국 그리움으로 남으리라.' 그만큼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또다시 그리움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녀석은 지나간 그리움도… 지나간 추억도… 지나간 청춘도 아니었다. 지금 녀석은 마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의 아픔은 통과의례처럼 반드시 견뎌내야 한다고… 내 20대에 벌어진 축복 같은 일은 온전히 박유천. 너 하나였다고. 마치 이 세상의 모든 비극을 희망으로 대처하는 역설처럼 나에게 보채는 눈빛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지나가도 절대로 길들여지지 않은 것이 있는 것처럼… 나 역시도 지금 이런 예기치 못한 이 상황이 그러했다. 지금 이런 순간에도 진실로 여유로운 웃음을 보이며 쿨하게 '난 잘 지냈어.'라고 큰소리로 괜찮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네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때가 마치 어제 일처럼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럴 때 기억은 참으로 내게 잔인했다. 녀석의 반짝이는 눈빛은 아무 말 없이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끝없이 재촉하고 나를 설득하려 했다. 난 그 잠시간의 틈이 우주보다 더 아프다고 생각했다. 녀석은 깊디깊은 슬픔의 눈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조차 없어 보였다. 그 순간 난 양치기 소년들은 거짓말을 하는 동안 얼마나 즐거웠을지 생각했다. 그리고 또 얼마나 외로웠을지 생각했다. 여전히 계절은 아름답게 내게 돌아왔지만, 이렇게 녀석과 다시 재회한 날들까지의 시간은 아주 많이 슬프게 더디게 지나간 것 같았다. 녀석의 시린 햇살만큼이나 고운 미소에 안심되었다가도 난 바닥까지 토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답답함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난 언제나 '오랜만이야.'라고 말하는 녀석과의 재회를 자기 전 매일 상상했었다. 과연 그때 난 하염없이 눈물을 펑펑 흘리고 있을지, 감정 조절 못 하는 아이처럼 보이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지며 화를 낼지, 넌 이미 내겐 추억 속 사람이라고 그저 녀석을 닮은 사람이라고 애써 외면할지, 수 없이 마음속으로 불렀던 이름 만큼이나 수없이 상상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난 어떤 말도… 어떤 눈빛도… 어떤 행동도 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마치 내가 녀석을 만나기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갑자기 지구가 돌기를 멈춘 것처럼 숨이 가빠왔고 호흡하기 힘들어졌다. 20대. 우리는 아직 많이 이기적이고 미숙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좋은 사람 혹은 소중한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과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고 사랑받을 만한 가치를 끊임없이 되새기고 기억해야 하는 어려운 나이였다. 하지만, 그걸 잘 알면서도 난 자꾸만 녀석 앞에선 이기적인 사람이 되곤 했었다. 나는 너에겐 적어도 좋은 사람이고, 나는 너에겐 적어도 널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고, 나는 너에게 적어도 누구보다도 너를 가장 이해해 줄 수 있는 여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위대한 착각이었다. 우린 여전히 많이 미숙했고, 또 그만큼 이기적이었다. 정수리를 시작으로 발끝까지 조여져 오는 답답함에 난 숨이 잘 쉬어지질 않았다. 애석한 마음은 누구에게나 끝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내가 사랑했던, 내가 기억하는 그 모습 그대로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모든 형체를 떠나서 생각하면 녀석은 내 기억 속에 줄곧 함께였다. 한 시도 함께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다. 같이 있을 순 없어도 같이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오히려 강했다. 어딘가에서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그 느낌 하나로 나는 기운이 마구 솟구치기도 했었다. 주위는 정적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난 그 고요함 속에 혼자라고 여겨질 만큼 기분은 한없이 고요하고 맑았다. 나는 이렇게 변함없이 이 자리에 가만히 있었는데 녀석은 저 홀로 조금이라도 여유롭고 현명한 어른이 되어 있었다. 흔하지 않게 밀려오는 애절함의 분량이 기적처럼 균형을 잡고 말할 수 없는 거대한 그리움을 난 애써 감췄다. 분명히 웃을 수도 있었는데, 분명히 아무렇지도 않았었는데, 손끝이 미세한 바늘이 일정한 속도로 찔리듯 따끔거려왔다. 골이 빠질 것처럼 온몸이 욱신거리고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을 정도로 심장 한쪽이 욱신거려왔다. 난 마치 녀석을 소설책에서 읽은 주인공의 한 사람처럼 억지로 상상해서 떠올렸다. 마치 내가 읽었던 글 속에서 보여진 감동과 사랑이 그대로 현실에 나타나지 않았을 때에 생기는 이상의 괴리감이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내가 읽은 책의 주인공이 만약 김준수였다면, 그게 아무리 추리 소설이었더라도, 난 분명히 뒤에서부터 읽었을 것이었다. 이런 슬픈 통과의례쯤은 콧방귀 뀌어 가면서 어차피 지나갈 일처럼 여유롭게 3년의 시간을 보냈을 것이었다. 녀석과 내 청춘이 뒤에서 읽을 수 있는 소설책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얼마나 덜 아팠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만큼이나 난 3년의 시간이 간절했고 간절한 만큼 녀석이 그리웠다. 그만큼 녀석은 내게 언제나 부인할 수 없는 존재였다. 흔적은 또 하나의 상처나 흉터처럼 내 안에 자리 잡혀 있었다. 난 그 흉터 위에서 해탈의 웃음이 번질 정도로 진정한 흔적의 김준수 앓음을 했다. 순간 마치 박제 당한 청춘에도 희망적인 날개가 있다고 녀석이 내게 말해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다시 마음을 고쳐먹자 다시 웃음이 희미하게 번졌다. 난 곧바로 숨을 꾹 들이마시고 녀석에게서 등을 돌렸다. 내게 슬픔은 가장 익숙하고 친밀한 감정이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슬픔으로부터 자유롭기는 힘들었다. 네가 없는 시간이 우리를 멀어지게 보챘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다시 이렇게 우리를 만나게도 했다. 행여라도 내가 널 미워하게 될까 봐, 내가 널 원망하게 될까 봐, 난 녀석에게 받은 웃음만 애써 떠올렸었다. 여전히 내 안의 넌 지금처럼 밝게 상처를 모르는 사람처럼 평온하게 웃고 있었다. 내 마음과 내 온전한 사랑을 늘 당연하게 여겼던 넌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스러운 표정을 했다.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린 나를 보고 넌 고개를 갸우뚱거렸겠지, 오랜만의 재회인데 왜 기뻐서 날뛰지 않는 걸까? 하고 해답 없는 고민을 했겠지. 분명히 그리움은 내게 힘겨웠지만, 어쨌든 넌 이미 내겐 너무 고마운 사람이었다. 난 그것을 부정할 만큼 녀석을 잊지도 일부러 저 멀리 제쳐두지도 않았다. 그게 지금은 처음으로 조금 후회가 되었다. 너무 멀쩡한 너를 보니 조금은 아니… 많이 후회가 되었다. 내 시간을 돌려달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견딘 그 아픔보다 난 어쩌면 녀석이 다시 돌아온 것에 대한 기쁨이 먼저였던 것 같았다. § 어느새 흐린 하늘마저 개어 있었다. 자욱한 구름은 사라지고 따뜻한 햇볕이 얼굴을 내밀었다. 순간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한 사람이 걸어 다닐법한 좁고 기다란 길을 하염없이 걷고 있었다. 걷고 있는 길 왼편에는 그다지 깊지 않은 깨끗한 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 위에 듬성듬성 보이는 오래된 돌다리는 이 물이 얼마나 깨끗한지 몸소 보여주고 있는듯했다. 그 강을 따라 수를 놓은 들판으로 천지 사방이 평평하고 평온한 모습이었지만, 마치 고대 도시의 폐허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조용하고 적막한 동네라 비명 소리 하나 없이 사람들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나는 그 좁은 길을 때로는 휘청거리며 때로는 멈췄다가 다시 걷기 시작하기를 반복하며 유유히 걷고 있었다. 나는 꿈에서 금방 깨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고, 한밤중에 잠에서 깼다가 다시 그 꿈속으로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햇볕과 반대로 날씨는 지독하게 추웠다. 강물이 흐르는 소리, 산들바람에 나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내가 한 걸음씩 움직일 때마다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서 움직이는 발걸음은 여전히 그대로 내 뒤를 밟고 있었다. 그렇게 무거운 침묵 속에 한참을 걸었다. 그리고 그 좁은 길 끝에 만난 부드러운 잔디밭에 누워 청초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중간 중간 몰려오는 바람에 초여름의 산뜻하고 따스한 손길에 슬픔을 맡겼다. 그리고 그 순간 고여 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툭 흘러내렸다. 눈가에서 귀까지 눈물의 흔적이 고스란히 생겼다. 난 눈동자에 난 땀을 아무렇지 않게 닦아냈다. 눈물은 왜 짤까? 이런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자 피식 웃음까지 흘렸다. 분명히 그대로 나를 따라 뒤쫓아온 녀석은 얇은 반팔 티셔츠에 추리닝에 맨발, 그리고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을 것이었다. 나뭇가지처럼 더없이 메마른 팔에는 오돌돌 추위에 질린 소름이 돋아나 있을 것이었다. 내가 가는 길을 고민 없이 당연하게 당당하게 따르고 녀석은 내 눈치를 봤다. 언제나 안달이 난 것도, 언제나 녀석의 행동과 말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경험했던 것도, 차마 떼를 쓰지는 못하고 녀석의 눈치를 보며 칭얼거렸던 것도 나였는데, 분명 내가 그랬는데 문득 발길을 멈추면 따라서 흠칫 멈추는 발걸음이 소름이 돋은 팔을 문지를 생각도 안 날만큼 녀석은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괜찮다고 큰소리로 웃으면서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왜 괜찮지 않을 걸까? 나는 왜 이렇게 괜찮지 않을 걸 꼭 녀석에게 들키고 마는 걸까? 혹시 나만 이런 걸까…. 이런 나를 대신하듯 녀석은 정말로 괜찮아 보였다. 냉기가 살을 에는 듯한 마치 누군가가 내 몸에서 표피를 벗겨 낸 것 같은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모래를 먹은 것처럼 목이 칼칼해져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햇살은 눈 부셨다. 그리고 그 햇살을 핑계 삼아 눈을 감았다. 녀석의 멱살을 잡고 눈물이 새어나오는 우스운 목소리가 되어서라도 꼭 묻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술에 취한 날 너도 친구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울면서 수없이 한 적이 있었냐고… 우리 둘만 기억하는 유치하고 비밀스런 이야기를 위대한 자랑처럼 줏대 없이 웃어가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냐고… 매일 밤 전봇대를 발로 차며 어디에 있냐고 울면서 매달려 본적이 있었냐고… 내가 부른 노래가 너를 정말 웃게 만들었냐고… 넌 웃을 수 있었냐고… 넌 나 없이 정말로 웃을 수 있었냐고…. 바지를 털며 벌떡 일어났다. 멀뚱멀뚱 서 있던 녀석이 이번에도 흠칫 놀라며 내 눈을 바라보았다. 눈빛은 이전보다 더 반짝하고 빛났다. 그리고 환한 미소가 얼굴에 가득 번졌다. 그게 기쁨의 미소였는지, 반가움의 미소였는지, 잘 지냈다는 대답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달짝지근한 사탕을 입에 물고 슬픈 미소를 지은 것처럼 알 수 없는 표정이 되어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조금 자란 녀석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인제 보니 귀신도 인형도 아니었다. 제대로 보니 누군가가 살을 벗겨 내버린 것처럼 많이 야위어 있었다. 마음이 안 좋았다. 바람을 따라 다시 살랑살랑 미소가 번진 녀석이 다시 얄미운 입술을 이번에도 먼저 열었다. "오랜만이야." "……." "너 많이 말랐다…." "……." "키는 좀 더 컸나?" "……." "좀…많이 놀랐지?" "……." 녀석은 쉬지 않고 이 어색한 침묵을 애써 당황해 하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지 않았다. 한 마디 한 마디 내뱉은 음성을 똑 부러지게 천천히 발음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게 떨리는 애원처럼 들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설탕이 독약이 되듯 촌철살인처럼 급소를 찌른 내 한마디는 녀석의 모든 음성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김준수." "……." "나보다 행복했어?" "……." "오늘 보니 난 너보다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유천아…." "내가 아무리 TV 속에 살면서 인형처럼 웃어도, 슬픔은 네 맘대로 잴 수 없어. 내가 지금 너를 이해하지 못하듯." "……." "그래도 네가 나 없이 행복해 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내가 힘들게 보낸 시간이 적어도 헛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라고 지금 생각했다." "……." "그만큼 넌 내겐 아직도 고마운 사람이야. 그리고 그만큼 잔인한 사람이기도 해." "……." "지금처럼 그렇게 웃어. 그리고 행복해라. 나도 지금처럼 노래 부를게." "……." "잘살아." 녀석의 미간이 보일 듯 말 듯 움찔거렸다. 난 뻔히 녀석의 속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 다시 등을 돌렸다. 이제 완전히 내 곁으로 다시 돌아온 거냐고, 그때 네가 왜 그랬는지 난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고, 난 너무 아팠는데 너도 나처럼 아팠냐고, 왜 이렇게 마른 거냐고, 지금 당장 안고 싶다고, 많이 기다렸다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난 등을 돌아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 걸으며 김준수 때문에 울었다. 눈물은 철저하게 이기적인 현상이었다. 불필요한 죄의식을 떼어버리기 위한 통과의례처럼 난 무의식적으로 울었다. 그리고 지금 우는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숨을 꾹 들이마셨는데도 눈가에 비죽 눈물이 솟았다. 눈가에 찰랑거리던 눈물이 흘러넘쳤다. 그때 나는 너무 어렸다고, 그때 나는 내 마음을 숨길 수가 없었다고, 그리고 내 사랑이 당연했던 너를 난 참 많이도 사랑했다고. 난 녀석 앞에서 처음으로 진실하지 못했다. 영원이란 힘으로 김준수란 힘으로 이렇게 녀석을 버텨내고 있었는데 그 진심을 녀석에게 결국 보여주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녀석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벌이기도 했다. 미치도록 보고 싶은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미치도록 녀석이 미웠다. 나 없이 행복하게 웃었을 것 같은 태연한 얼굴이 정말 미웠다. 억울했다. 나를 따라서 움직이는 발걸음이 이젠 들리지 않아서 억울했다. 혹시나 감기에 걸리진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어 억울했다. 지나간 청춘이 억울하고 지나간 눈물이 억울하고 지나간 그리움이 너무 분하고 너무 억울했다. 그리고 눈물은 피식 웃음이 흘러 나올만큼 짰다. § 3년 동안 한국과 일본을 수시로 오가면서 나는 작업실을 꾸몄다. 그래 봤자 이전 숙소로부터 10분 거리에 위치한 곳이었다. 주로 일본에서는 일단 곡의 타이틀을 정하고 멜로디부터 완성해 나가는 편이었다. 비트가 강렬한 타이틀에는 리듬 위주로 스타트를 끊지만, 보통은 피아노로 인트로와 후렴구를 붙이고 나서 나머지를 붙여가며 넓혀가는 편이었다. 이런 식으로 작업순서를 하지 않으면, 곡을 완성하지 못할 만큼 조금 다르게 곡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가볍기만 한 디지털 피아노가 어색해서 무거운 손만큼이나 멜로디가 한없이 가볍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 그럴 때면 모든 작업을 멈추고 타이틀과 원하던 멜로디를 허밍으로 녹음한 후에, 한국 작업실에서 마무리하는 일이 늘어갔다. 다른 것과 다를 게 없는 피아노였지만, 이상하게 다른 피아노에서는 도통 작업이 잘되지 않는 편이었다. 분명히 어쿠스틱의 매력도 알고, 헤드셋을 끼고 소리를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디지털 피아노 역시 편리했지만, 이상하게 난 그랜드 피아노를 쉽게 놓지 못했다. 헤드셋을 구태여 끼지 않아도 마치 음계를 짚고 내려가는 피아노의 속살이 귀속으로 고스란히 전달되는 느낌이 더욱 섬세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주로 소프트 록적인 분위기를 위해 억지로 업라이트 피아노로 작업하는 경향이 컸다. 하지만, 정색하고 자세를 똑바로 고쳐잡고 쳐야 할 것 같은 그랜드 피아노에 앉아도 난 뜨끈한 방바닥에 엎으려 누워 어느 힘 하나 들지 않고 가볍게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끼적거렸을 정도로 나에겐 편안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노력하지 않아도 내 곡들은 소프트 록적인 분위기가 대부분이었다. 음악 하는 지인들은 그 점이 신기하다고 자주 말했었다. 오랜만에 한국에서 새 앨범을 낸다는 것 자체가 나를 설레게도 만들었지만, 이젠 진득하게 작업실에 처박혀 작업할 생각을 하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이번 해에 계획한 곡들은 최대로 잘 뽑아내고 싶다는 의욕이 넘실거렸다. 향수병은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었던 것만큼 멤버들간의 유대관계는 실로 엄청났었다. 간혹 일본에선 숙소생활을 아직 하고있는 우리를 보고 놀라운 TV 속 다큐멘터리 주인공처럼 대단하다고 고개를 끄덕거리곤 했다. 온갖 잡지마다 '키즈나(인연)'라는 타이틀이 반드시 붙을 정도였으니……. 오랜만에 돌아온 한국은 여전히 열정적이었고, 오랜만에 만난 팬들의 얼굴 또한 여전히 반가웠다. 아, 그리고 숙소가 조금 더 넓은 곳으로 이사했다. 역시나 작업실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했다. 정실장은 평생 우리를 옆에 끼고 늙어 죽어서도 협박을 할 모양인지, 모든 작업실과 편리한 시설이 두루 갖춰진 곳으로 새롭게 숙소를 장만했다고 했다. 조금 앞당겨진 귀국 일정으로 아직 공사가 덜 끝난 숙소 덕분에 난 귀국하자마자 작업실로 트렁크를 끌고 왔다. 김영웅재중은 해외 출장 나간 맘을 핑계 삼아 정실장 오피스텔로 들어갔고, 심최강창민은 씩씩거리며 연구실로 직행했다. 저 새끼는 꼭 뭐든지 잘하면서 일단 불만을 늘어트리고 시작했다. 정말 별난 새끼였다. 귀국한 날짜에 맞춰서 하랑이를 훈련소에서 데려와 달라고 상철형한테 부탁을 했었다. 하랑이는 이상하게 위풍당당해 보이는 남자다운 외모와는 달리 중간에 몸이 많이 아픈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온몸이 쑤시듯 같이 아파했었다. 샤키의 죽음을 생각하면 끔찍할 만큼 내게 하랑이는 많이 특별했다. 생긴 건 저래도 애교는 또 얼마나 만점인지, 자주 못 보는 얼굴임에도 주인은 꼭 알아보고 마치 자신의 체구가 가장 작은 미니 애완견으로 매번 착각을 하는지 매번 볼 때마다 엉덩이를 살랑거리고 안겨들었다. 두 발로 얼굴을 비비기도 하고 내 품에 안길 때면 정말로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일전에 애완견 전람회에서 KING OF BEST 상을 거머쥘 만큼 이제는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뭐 내 아들인데 그건 당연한 이치로 생각하고 있다. 하랑이를 만날 생각에 새로운 곡 작업을 할 생각에 무거운 트렁크가 가볍게 느껴졌다. 도어락의 비번을 풀고 곧바로 작업실 안으로 들어섰다. 말이 작업실이지 일생 생활에 불편함이 전혀 없을 정도로 모든 가구와 물건들이 잘 배치 되어 있었다. 방은 침실, 드레스룸, 작업실 총 3개로 이루어졌고, 욕실은 하랑이가 목욕을 자주 할 수 있도록 크게 구조를 바꾸기도 했다. 벌써 상철형이 왔나…. 형이 평소에 신지도 않던 스니커즈가 현관에 이리저리 정신없게 놓여 있었다. 일단 큰 가방과 트렁크를 거실로 끌어올리며 재킷을 벗었다. "상철형~ 왔어요??" 대답 대신 희미한 물줄기 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은 분명히 욕실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그리고 내 목소리를 알아차렸는지 하랑이가 욕실에서 소란스럽게 짖기 시작했다. 하랑이는 목욕을 굉장히 좋아했다. 회충 때문에 하랑이가 괴로워했었던 일이 있었던 이후로 난 하랑이랑 목욕을 자주 했었다. 그게 어릴 적부터 몸에 밴 건지 유독 하랑이는 물을 좋아했다. 분명히 꼬리를 세차게 흔들고 이리저리 첨벙첨벙 상철형 옷에 물을 묻히고 있을 게 뻔했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개구쟁이 같은 모습에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맴돌았다. 일단 팔을 걷어붙이고 욕실로 향했다. 목욕하는 녀석과 만나려면 일단 들어가서 옷을 벗고 나오는 것까지 예상해야 했다. 신나게 문고리를 돌려 안을 들여다보았다. 욕실에는 열대를 느끼게 해주는 커다란 샤워기가 욕조 밖으로 빠져나와 계속 뜨거운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욕조 안에는 예상대로 기분이 좋은지 물을 사방으로 튀겨가며 큰 몸짓을 흔들어대는 하랑이가 있었다. 그리고 욕조 밖으로 나처럼 긴 티셔츠를 팔꿈치 위로 걷어 올리고, 긴 청바지를 무릎 위까지 걷어 올린 김준수가 있었다. 동시에 울컥 밀려든 그리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이 다시 불쑥 찾아왔다. 이미 초토화 상대로 거의 하랑이와 동시에 목욕을 한 것처럼 녀석의 옷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욕실 문이 열린 것도 모른 채 장난스럽게 하랑이의 얼굴을 부벼가며 으캬앙, 하고 고개를 뒤로 젖혀가며 웃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김준수.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어느새 샤워기를 잠그며 타월을 찾는 녀석이 욕실에 울려 퍼지는 낯익은 목소리에 등을 돌렸다. 뜨거운 수증기만큼이나 붉게 달아오른 녀석이 나를 보고 하랑이처럼 개구지게 웃음을 흘렸다. 마치 금방이라도 누군가 태운 간지러움에 숨이 넘어갈 듯 크게 웃은 사람처럼 입가에 머문 웃음은 쉽게 잦아들지 못했다.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하랑이용 타월이 어디쯤 배치되었는지 쉽게 알아차린 녀석이 큰 타월을 꺼내며 웃음이 가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일정하지 않은 숨소리는 하랑이와 얼마 동안 목욕을 했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유천아. 하랑이 힘 진짜 쎄. 오랜만에 목욕시켜서 그런가…? 꼭 극기훈련 같다!" "야. 네가 왜 여기에 있냐고 묻고 있잖아 지금." 주체하지 못한 거친 숨이 내뿜어졌고, 주먹까지 덜덜 떨렸다. 분명히 반가운 얼굴이고 이곳에 평생 잡아두고 싶은 얼굴인 건 분명한데, 이상하게 녀석 얼굴만 보면 이렇게 화가 났다. 버럭버럭 크게 소리치고 싶을 만큼 강한 열기가 여기저기서 솟구쳤다. 여전히 굳은 내 얼굴과 낮아지는 내 음성과는 달리 고무 마개를 뽑아 욕조 위에 고스란히 올렸다. 녀석은 재미있는 노래가 눈과 귀를 현란하게 유혹하듯 하랑이의 꼬리를 들썩들썩하게도 만들었다. 능숙하게 하랑이의 턱을 문질러주자 욕조에서 껑충 뛰어서 밖으로 나온 하랑이는 시선은 주인을 쳐다보고 앞발은 준수에게 올리고는 타월에 자신의 몸을 맡기며 이리저리 탈탈 몸을 털어댔다. 엉덩이를 흔들고 헥헥 거리며 즐거운 듯 정신 사납게 움직였다. 하랑이의 털을 말리는 메마른 손을 보자 다시 울컥하고 뜨거운 열기가 목구멍으로 솟구쳤다. 머리끝까지 치밀었던 피가 한 번에 발가락 끝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울컥하고 머리 위로 피가 토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난 곧바로 녀석의 손모가지를 비틀듯 아프게 꽉 잡으며 거실로 끌고 나왔다.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나약한 나뭇잎처럼 그대로 힘없이 몸이 딸려온 녀석은 내가 홱 하고 뿌리친 손목이 시큰거렸는지 어느새 붉게 물든 손목을 잡으며 미간을 구겼다. "너 여기 어떻게 들어왔어. 상철형이 알려줬어?" "너 하랑이 키운다는 소식 들어서 보고 싶어서 찾아갔는데, 너 오늘 온다고 해서 대신 내가 데리고 왔어. 야 그런데 너 아직도 비번 0604더라? 나 한 번에 맞춘 거 알아? 크큭…웃기지?? 정확히 따지면 내 초기화 비번보다 네가 더 위험한 거 알아? 여기서 네 생일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무의식적으로 시큰거리는 손목을 문지르며 녀석이 정말 웃기다는 듯 내게 말했다. 물에 젖은 생쥐 꼴을 하고 턱을 달달 떨어가며 웃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거실 한 켠에는 내가 들고 들어온 트렁크 말고 또 다른 트렁크와 악기 케이스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내 시선을 따라 트렁크에 시선을 돌린 녀석이 머리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을 팔로 훔치며 당연스런 음성으로 내게 말했다. 난 어이가 없어 피식 피식 실소가 터졌다. "아…, 저거? 나 집 없잖아. 집 얻을 때까지 호텔에서 지내려고 했는데. 여기 호텔 룸서비스 적응 안 돼서 나왔어. 짐도 별로 없고 아는 사람도 없어서 심심하기도 하고, 하랑이도 여기에 있고, 또 너도 돌아왔고 해서." 녀석은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희귀한 분류의 사람처럼 다시 반짝이는 눈빛을 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던 것도 같았는데 도무지 난 녀석의 눈빛을 읽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녀석이 뜻하는 바를 쉽게 읽기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난 서둘러 녀석의 트렁크와 악기 케이스를 들어 현관 앞에 놓았다. 그러자 금세 굳은 얼굴로 나를 돌아본 녀석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정말 모르겠다는 눈치이기도 했다. "당장 나가." "아…,응??" "안 들려? 당장 꺼지라고." 곧바로 바짝 긴장한 얼굴이 된 녀석의 표정이 점차 굳어갔다. 현관 앞에 놓인 트렁크에 제 눈을 한번 의심하고 당장 꺼지라는 단호한 음성에 제 귀를 의심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일을 예상한 표정 같기도 했고, 또 이런 일을 생각도 못한 표정 같기도 했다. "월세…, 아…아니, 전세금이라도 내라면 낼게. 유천아…그러니까, 나 그냥 여기서 지내게 해줘." "너 지금 나랑 장난하냐?" 나는 일부러 녀석을 노려보았다.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그렇게 노려보았다. 마음처럼 소리를 지를 수가 없어서 애가 탔다. 거칠게 녀석의 팔을 끌어당겨 쫓아낼 수가 없어서 애가 탔다. 녀석은 서글프고 애처로운 표정으로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입을 힘겹게 열었다. "한국은 너무 오랜만이라…나 아직 지하철 타기도 무섭고, 모르는 곳 가는 것도 무섭고, 그냥…시차가 적응되지 않았는지 다른 곳엔 도저히 못 가겠어. 너 하는 일 절대 방해하지 않고 죽은 듯이 하랑이랑 있을게." "그래 알았다. 정 네가 못 나간다면 나라도 나가야지. 이사 갈 곳 정해지면 상철형한테 연락하고. 아, 혹시라도 눌어붙을 생각이었다면 그냥 니가 이 집 갖던지." "……." "마음 쓸 거 없어. 안 그래도 찝찝했는데, 그냥 피아노 값이라고 쳐." 걷어올린 옷을 내리고 벗은 재킷을 곧바로 입었다. 하지만, 곧바로 기운 없이 멍한 얼굴로 사색이 된 녀석이 허둥지둥 달려와 내 앞에 두 팔을 크게 벌리고 내 발길을 멈춰 세웠다. 여전히 추위에 떨고 있는 턱은 덜덜거렸고, 입술은 점점 새파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곧바로 현관문 앞에 놓인 제 트렁크를 다시 끌고 들어와 무슨 영문인지 그걸 욕실로 들고 들어간 녀석의 동선을 따라 내 시선이 옮겨졌다. 동시에 잠잠했던 물줄기 소리가 이전과는 다르게 거세게 욕실에 울려 퍼졌다. 욕조 안에 트렁크를 옮겨 넣은 녀석이 안에 있는 옷가지들을 죄다 꺼내놓고 그 위로 샤워기를 틀었다. 옷은 순식간에 젖어들어 갔고, 뒤에서 보이는 녀석의 메마른 등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 녀석 옆에서 두 발을 들어 올려 꼬리를 흔드는 하랑이의 얼굴을 쓰다듬는 손길은 아무 감정 없이 메말라 있었다. 그렇게 모든 옷이 축축하게 젖어들자 다시 거실로 나온 녀석이 내 동공을 검사하듯 집요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럼 이렇게 해. 저기…저 내 옷. 다 마르면 그때 나갈게. 정말로 저것만 다 마르면 그때 나갈 테니까, 하루…아니, 이틀만 네가 참아줘." "하루." 녀석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단호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곧바로 고개를 끄덕인 녀석이 항복의 표시로 두 손을 들었다. 분명 이런 내가 야속하단듯이 화난 표정을 했지만, 꾹 참는게 그대로 보였다. 밝은 듯하면서도 언제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녀석의 얼굴엔 서러움이 가득했다. 난 그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거나 억지로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진실을 알면 늘 애틋했다. 하지만, 난 잠시 그 진실을 외면하기로 정했다. 내가 아픈 만큼 녀석이 나를 사랑했는지 자신이 없었다. 녀석이 기뻐하는 모든 이유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닐까 봐 무서웠다. 입을 크게 벌려도 채워지지 않을 배고픔처럼 지금 나는 너를 미워할 핑계를 찾고 있었다. 술에 취한다고 네 기억이 지워지듯 않듯, 애써 지우려 별의별 짓을 다 해봐도 결국 시간이 이렇게 흐르면 저 홀로 지나간 거라고 아프면 아픈 데로 살면 된다고 사랑 지나면 별거 아니라고 스스로 그렇게 핑계를 찾았다. § - 철저한 국외시장에서 작곡가로서 인정받은 MinSeo씨는 언제가 가장 힘들었나? - 힘들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다. 그건 작곡가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걸 억지로 가지려고 하면 힘들어진다. 그건 욕심이다. 분명히 강하면 부러진다. 가진 게 있으니까, 포기도 한다. 지금 작곡가로서, 인정받은 것이 너무 행복하고 좋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내가 포기한 것도 다시 잡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악마에게 가수의 재능 중 하나를 온전히 내줘야 한다면. 뭘 포기 해야하나? 목소리? 가창력? 감성? 테크닉? - 테크닉이다. 굳이 필요 없다. 노래엔 우선순위가 있다. 1순위는 무조건 감성이다.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는 스타일의 차이일 수 있다. 하지만, 타고난 목소리로 얼마나 진심으로 부르느냐가 중요하다. - 동방신기에게 곡을 준 이유는 따로 있나? - 동방신기는 욕심이 많은 친구들이다. 아이돌의 이미지를 바꾸고 싶어한다. 하지만, 동방신기가 아이돌이라는 사실을 바꾸고 싶어하진 않는다. 그들은 아이돌이 실력이 없는 게 아니라는 편견을 깨고 싶어한다. 역시나 동방신기는 아이돌이다. 물론 그들은 아이돌이라고 불리든 안 불리든, 그 몫은 대중의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의 말처럼 그들은 남들이 차려놓은 밥상을 맛있게 먹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적어도 난 그들의 노력을 알기에 그 점에선 '금 수저'로 밥을 먹어도 충분하다고 전하고 싶었다. - MinSeo라는 뜻은 따로 있나? 왜 본명을 사용하지 않는가? - 내 노래, 내 심장을 만날 수 있게 도와준 소중한 이름이다. 동시에 아픈 이름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웃으며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괜찮아졌다. - 내 노래, 내 심장의 의미는 무엇인가? - 나를 웃게도 나를 울게도 나를 살게도 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내 심장이자, 내 노래이다.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난 그 사람 때문에라도 노래를 만들 것이다. 지금 그 사람이 너무 보고 싶다. (작곡가 MinSeo GQ 인터뷰 中) § 난 녀석이 혹시 기면증에 걸려서 해외로 뜬 건 아니었는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녀석의 병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마치 3년의 세월을 보상받듯 게임을 하다가도 중간에 픽 쓰러져 잠이 들었고, 밥을 먹다가도 중간에 픽 쓰러져 식탁 위에 잠이 들었고, 한참 동안 욕실에서 꼼짝도 안 하기에 문을 열고 들어서면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 잠이 들어 있었다. 매번 그런 녀석을 깨우는 것도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모르는 척 내버려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녀석은 내게 전혀 방해하지 않고 죽은 듯이 지내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난 녀석의 행동 하나하나에 모든 말초신경을 곤두세우고 집중했다. 그래도 낮에는 많이 뚱뚱해진 하랑이를 데리고 인근 공원으로 산책하러 가기도 했지만, 혹시라도 걸어가는 도중 그대로 도로 위에서 잠들어 버리진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애써 태연한 척 모든 집중력을 작업실에 쏟아 부은 사람처럼 쉽게 등을 돌리지 않았다. 베란다에 널린 녀석의 옷가지들은 3일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축축하다 못해 물기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녀석은 내가 움직일 때마다 용케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을 확 뜨며 내 동선을 주시하는 행동을 보였다. 마치 비무장지대의 보초병처럼 하루도 편안히 잠들지 못하는 눈치였다. 이제 생각해 보면, 낮에는 이렇게 기면증에 걸린 사람처럼 정신없이 잠들었지만, 유독 밤에는 잠을 못 자는 눈치이기도 했다. 그리고 난 녀석이 밤마다 또는 아침, 낮 가리지 않고 시간이 날 때마다 살금살금 베란다로 발걸음을 옮긴다는 사실을 일부러 의식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매번 시도때도없이 베란다에 연결된 호수의 물을 틀고 널려 있는 옷가지 위에 물을 뿌렸다. 몇 시간이라도 옷가지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지 않으면 못 살 것 같은 사람처럼 수시로 베란다를 드나들었다. 그렇게 행동을 하면서도 마치 내가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매번 조심스럽게 뒤꿈치를 들고 베란다로 들어갔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곤 했다. 「유천아!! 볶음밥 먹어!!!!」 「유천아!! 게임 할래?」 「유천아!! 내가 노래 불러줄까?」 「유천아!! 내가 머리 말려줄게!!」 「유천아!! 내가 어깨 주물러 줄까?」 「유천아!! 안 추워? 안아줄까?」 녀석은 마치 내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환자처럼 취급하기도 했다. 자신과 함께한 모든 기억 속 상황들을 전부 끄집어낼 것처럼 내가 녀석에게 해준 모든 행동을 하나씩 기억하며 내게 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3년 동안 부르지 못한 이름을 한꺼번에 부르려고 작정을 한 모양인지, 매번 잘 불러주지도 않았던 내 이름을 살갑게 불렀다. 오늘도 새벽 내내 잠들지 못했는지, 약간 핼쑥한 얼굴을 한 채 분주하게 주방을 드나들며 도마에 칼집 내는 소리를 내며 볶음밥을 만들고 있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잠에서 아직 덜 깬 내 등을 욕실까지 천천히 밀어주며 마치 소풍 가기 전 김밥 꼬리를 여러 개 집어삼킨 사람처럼 신이 난 음성으로 말했다. "유천아 나 이제 볶음밥 진짜 잘해! 배고프지? 빨리 씻고 나와!" 정작 밥이 넘어가지 않는지 사흘 내내 통닭만 끼적거리고 있었던 당사자는 누군데. 꼭 아침마다 밥을 차려주겠다고 정신 사납게 접시가 달그락 부딪치는 소리를 내서 잠을 깨웠다. 그런데 오늘은 저녁도 예외는 아니라는 듯 또 볶음밥을 만들고 있다. 새벽까지 한 작업이 꽤 만족스러워서 동이 트고 나서야 비로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나와 함께 아침까지 거실에서 보지도 않는 TV를 켜고 멍하니 앉아있는 녀석의 등을 우연히 볼 수 있었다. 낮에는 기면증에다가 밤에는 또 불면증인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눈은 퀭했고 얼굴은 창백했고, 몸은 볼품없이 말라 영양 상태가 의심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식탁에 나를 앉혀놓고 볶음밥을 먹는 모습을 유유히 맞은편에서 턱을 괴고 지켜보던 녀석의 눈꺼풀이 다시 스르륵 감겼다. 희한한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밤, 낮 상관없이 내 얼굴만 보면 잠이 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의 말대로 볶음밥은 맛있었다. 일정하게 자른 채소도 앙증맞았고, 오색 빛이 찬란할 정도로 먹음직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매일 이렇게 만들어줘도 아무 불평 없이 평생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밥을 꾸역꾸역 여러 번 넣어가면서 난 마치 반찬 삼아 목이 막힘에도 주저 없이 녀석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며 밥을 먹었다. 파르르 미세하게 떨리는 속눈썹은 언제라도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면 곧바로 눈을 치켜뜰 정도로 예민한 상태였다. 비쩍 마른 팔에는 주삿바늘이 꽂아져 있어야 비로소 어울릴 정도로 처참했다. 순간 목이 막혀와야 하는데 가슴이 쓰라리고 저릿한 진동이 느껴졌다. 밥알이 모래알로 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야채가 칼심으로 변하는 것 역시 순식간이었다. 눈이 온 세상을 가리고 물은 얼어붙고, 살을 에이는 듯한 차가운 바람이 거실을 뒤엎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한 톨도 남기지 않고 꾸역꾸역 볶음밥을 전부 비웠다. 그리고 한참을 조금이라도 편안히 잠든 녀석의 곁을 지켜주었다. 3년 만에 버젓이 나타난 녀석이 내 아침을 챙기고 다 마르지 않은 내 머리카락을 챙기고 밤늦게까지 작업하는 내 수면을 챙기고 오랫동안 앉아있어 근육이 경직되었을 법한 내 어깨를 챙겼다. 새로운 앨범 녹음으로 작업실을 비우는 날이면, 새벽이 되도록 현관 앞에서 나를 기다리다 잠깐 잠이 들기도 했고, 혹시라도 들어오지 않은 날이면 손톱을 물어뜯고 거실을 난잡하게 휘젓고 다닌 것처럼 거실은 많은 물건들로 어질러져 있었다. 게임을 하다가도 스틱을 내려놓은 자국, 하나도 줄지 않은 양념 통닭과 음료수, 베란다에 흥건히 젖은 옷가지들, 널려 있는 게임팩과 녹음기까지. 하랑이를 꼭 끌어안고 열리는 현관문을 주시한 녀석의 동공은 파란만장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곧바로 몰려오는 안심에 스르륵 눈이 다시 감기기도 했다. 녀석은 며칠 만에 나를 완전히 나쁜 사람으로 만들었다. 저는 하루가 다르게 메말라 가고 나는 하루가 다르게 이 패턴에 적응하고 있었다. 저는 하루가 다르게 아프다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는데, 나는 하루가 다르게 이젠 네가 있어도 편안할 만큼 괜찮아졌다는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는 하루가 다르게 쉽게 잠을 못 이루는데, 나는 하루가 다르게 밤이건 낮이건 수시로 잠을 청했다. 녀석이 곧바로 깰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소리 내서 일어났다. 예상대로 같이 눈을 비비고 벌떡 일어난 녀석이 그릇을 치운다. 그 순간 나는 씨발, 하고 욕이 나왔다. 더 이상은 이러고 못 살겠다. 더 이상은 이런 꼴 도저히 못 보겠다. 나도 모르게 나지막이 뱉어진 욕에 순간 몸을 흠칫 떤 녀석이 다시 하던 행동을 마저 했다. 그릇을 치우고 손에 고무장갑을 끼웠다. 돌아선 그 등을 보자 인간의 연약함은 어디까지인가 생각 들게 하였다. 이젠 보기 싫다. 아프다고 소리치는 저 등이 보기 싫어졌다. 아니, 이젠 정말 보기 힘들다. "옷에 물 그만 뿌려대고, 인제 그만 나가." 「꽃들도 사랑은 하니까, 양치시켜야지. 그래야, 꽃들도 안 썩고, 안 죽지.」 "꽃들도 사랑은 하니까, 근데 여기엔 꽃이 없다." 녀석은 속으로 다른 말을 삭이고 입으로는 딴소리하는 것처럼 굴었다. 몇 개 되지도 않은 그릇을 빡빡 닦아대며 손에 묻은 물기를 털었다. 그리고 현기증이 왔는지 싱크대에 손을 집고 몸을 지탱하며 한동안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자 정말로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 모든 열기가 얼굴로 솟구치고 머리에선 불이 났다. 짜증스럽게 실내화를 끌며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뇌가 얼릴 정도로 차가운 물로 샤워했다. 머리가 띵하고 울림과 동시에 기억력이 감퇴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나왔는데 어느새 욕실 문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있던 녀석이 다시 벌떡 일어나 뒤에서 내 등을 껴안았다. 등에서 그대로 전해지는 녀석의 온도는 정상적이지 못했다. 무작정 내 등을 끌어안고 자신의 손을 교차해 깍지를 낀 녀석이 조금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런데 그 순간 봇물 터지듯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쏟아져 나왔다. "유천아 오늘 우리 자자." "너 지금 뭐라 그랬냐?" "자자. 오늘같이 자자." 녀석이 나를 전혀 배려하지 않고 느긋하게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난 진심으로 화가 났다. 화끈화끈 열이 솟고 진땀마저 나온다고 느껴졌다. 잠시라도 이 열을 식히지 않으면 타 죽을 것만 같았다. 울려고 한 것도 아닌데 화내려고 한 것도 아닌데 가슴속에 있던 답답한 응어리가 분노로 토해졌다. 거칠게 깍지낀 손을 풀며 녀석의 어깨를 밀쳤다. 힘없이 뒤로 밀려난 녀석이 음울한 미소를 지었다. 함박웃음을 지으려고 했던 게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것처럼 미소는 참으로 비통했다. 「내가 짐승이야!!? 싫어! 엎드리는 거!!!」 "씨발, 왜!!! 뒤라도 대주려고??" "그냥…엎드리면 돼?" "…뭐?" "그럼, 그렇게 하자. 그렇게 해. 우리 그러자. 그래." "……." "실수했단 표정 짓지 마. 내 뒤가 지금 얼마나 헐렁한지 알면 너 그런 표정 안 지을걸? 흑인들이 얼마나 큰…." 녀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목을 잡아 비틀며 침실로 데려갔다. 이 모든 게 예상했던 행동이라고 쉽게 받아들인 녀석은 아무런 저항 없이 따라 들어왔다. 그 모습이 더욱더 화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억지로 침착하려고 속으로 수십 번을 다짐해봐도 녀석을 매몰차게 이곳에서 쫓아낼 수 없었던 마음처럼 모든 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몰아쉬는 숨이 거칠게 터져 나왔다. 집어던지다시피 녀석을 침대 위에 올려다 놓았다. 마치 거울을 보듯 녀석의 얼굴은 나처럼 조금은 슬픈, 조금은 아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곧바로 녀석의 몸 위에 올라타자마자 바지부터 벗겼다. 체념한 듯 눈을 감고 얌전히 누운 녀석의 얼굴은 평온한 표정과 반대로 새파랗게 질려갔다. 벨트를 매지 않아도 이미 허리가 헐렁한 바지는 아무런 무리 없이 한 번에 쑥 벗겨졌다. 곧바로 하얗게 질린 것 같은 하얀 허벅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욕이 나올 만큼 역시나 볼품이 없었다. 머리카락을 죄다 뜯고 싶을 만큼 눈 뜨고 보기 힘들었다. 내 손길마다 힘없이 널브러진 허벅지는 낭창낭창 줏대 없이 움직였다. 숨을 헐떡이며 그대로 녀석의 몸을 뒤집었다. 일단 오늘은 이곳에서 내 보낼 작정이었다. 처음엔 미운 만큼, 보고 싶었던 것만큼, 반갑고 기쁘고 설레고 궁금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기회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꾹 닫은 입을 열지 않았다. 왜 떠났는지, 왜 그래야만 했는지,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상황을 부인하고 틀어진 내 심장을 조롱하고 냉정하게 부인했다. '너 같은 새끼는 내가 왜 힘들어했는지, 알 필요도 없다.'고 또다시 나를 밀쳤다. 난 그게 진심으로 화가 났다.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다. 보고 싶었다. 잘못했다. 그땐 그게 최선이었다. 이 말들이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난 녀석이 그 말을 내게 해주었다면, 그 진심이 닿았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자꾸만 도망간다. 이렇게 도망쳐서 다시 돌아왔으면서 다시 도망친다. 또다시 나를 떠날 것처럼 굴었다. 또다시 나를 혼자 두게 할 것처럼 굴었다. 나쁜 새끼다. 못된 새끼다. 김준수 정말 정말 나쁜 새끼다. 섹스의 흥미를 모르는 사람처럼 아무런 전희 없이 달려들었다. 이런 행위는 고통만 뒤따른다는 걸 잘 알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격렬한 동작으로 세 개의 손가락을 그대로 애널에 쑤셔 넣었다. 하지만, 녀석의 말과는 정반대로 입구가 아프게 찢어진 듯 속옷에 피가 묻어 나왔다. 엎드린 자세로 시트를 꽉 쥔 녀석의 주먹이 바들바들 떨렸다. 비명을 입 안으로 삼킬 만큼 뒤에서 이렇게 피가 나올지 예상을 전혀 못한 사람처럼 몸만 바들바들 떨어댔다. 갑자기 응어리가 탁 틔어지는 느낌과 동시에 녀석이 입은 티셔츠 안에 또 다른 티셔츠가 눈에 들어왔다. 거칠게 녀석의 몸을 다시 뒤집어 티셔츠를 벗겨 냈다. 입술을 깨물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죄책감에 일렁이는 내 표정을 본 녀석이 행여라도 내가 느끼게 될 미안함을 미리부터 선수치기 시작했다. 아프지 않은 척 애써 웃음을 보였다. 병신같이 울면서 웃었다. 그리고 벗겨진 티셔츠 안에는 3년 전 낙서하듯 꽃이 그려진 흰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입고 다녔는지 옷은 늘어질 대로 늘어났고, 울긋불긋 색칠된 꽃들은 이미 시든 것처럼 희미한 자국만 남아 있었다. 그 순간 내 머리를 쥐어뜯고 녀석을 눈에 피가 나도록 노려봤다. 이에 놀란 듯 허둥지둥 침대에 앉은 녀석이 뒤에서 피가 나오는 것도 모른 채 내 안색을 살폈다.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 심장이 없는 사람처럼 종잇장처럼 질렸다. "씨발,…도대체 나한테 왜 그래 너…." "유천아 머리 아파…? 왜…왜 그래…." 다 뽑아질 듯 머리를 잡고 있는 내 손가락을 피는 녀석의 목 사이로 반짝하고 무언가 빛이 났다. 그리고 곧바로 보인 펜던트는 3년 전과 그대로 녀석의 목에 고스란히 채워져 있었다. 그 순간 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게 화가 나고 이런 옹졸한 내가 화가 나고 미련스럽게 바보 같은 김준수한테 화가 났다.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를 우악스럽게 벗겨 냈다. 그리고 체인이 나가떨어질 정도로 거칠게 펜던트를 잡아 뜯었다. 그러자 녀석의 눈이 커질 대로 커졌다. 그리고 정말로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처음이었다. 곧바로 침대에서 빠르게 내려온 녀석이 손을 내밀고 네게 말했다. 호소 짙은 음성에는 울음이 섞여 있었다. "나갈게. 지금 나갈 테니까 목걸이 내 놔. 제발…그것만 내 놔." 아무런 미동 없이 뚝 뚝 떨어지는 피를 보며 멍하니 앉아있는 나를 뒤로한 채 녀석이 목걸이를 낚아채듯 뺏어갔다.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 작업실에서 나가려 했다. 팬티 바람 그대로 목걸이를 꾹 쥐고 현관으로 걸어나갔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그대로 도어락 문을 열고 나갔다. 그 순간 눈물이 주룩 흘렀다. 바라만 보아도 눈물이 났다. 이 눈물이 나도록 녀석을 용서하고 싶었다. 눈에 매달린 눈물을 마저 훔치며 현관에 놓여 있는 신발을 아무거나 구겨 신으며 현관문을 급하게 열었다. 그러자 목걸이를 꼭 쥔 채 현관문 앞에서 쭈그려 울고 있는 녀석이 있었다. 병신같이 소리 내어 울지도 못하면서 그저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몸도 아프고 마음도 아프고 지금 처한 상황이 아플 법도 한데 꾹 닫은 입은 역시나 열리지 않았다. 그대로 손목을 잡아끌고 들어왔다. 열이 오른 이마를 손으로 짚어보고 부들부들 떨리는 몸을 끌고 욕실로 데려갔다. 힘없이 욕조에 축 늘어진 녀석은 눈을 꼭 감았다. 금세 눈이 부어올랐고, 얼마나 세게 깨물었는지 입술에는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녀석을 옮겨놓고 근처에 있는 약국에 급하게 다녀왔다. 그새 잠이 들었는지 조금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은 녀석의 몸을 안아 올려 간단하게 몸을 씻겨 주었다. 그리고 다시 침실로 데려와 몸을 눕혔다. 여전히 부들거리는 몸은 체온을 찾아, 내게 안기려 들었고, 난 매정하게 몸을 떼며 찢겨진 애널에 조심스럽게 약을 발랐다. 움찔움찔 몸을 떨기 시작한 녀석은 역시나 내게 팔을 내밀며 안아달라고 애원했지만, 난 여전히 매정하게 팔을 뿌리치고 뒤를 살피며 약을 발라주었다. 그리고 어느새 스스로 지쳐 곤히 잠든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눈물이 다시 핑 돌았다. 울어도 울어도 끝이 없을 눈물이라고 생각했다. 야윈 모습에도 화가 나고 강한 척 꽉 닫은 입술을 열지 않아 화가 나고 이런 녀석 때문에 하루하루 미쳐가는 내가 화가 났다. 모르겠다. 나는 정말로 녀석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오랜만에 조심스럽게 녀석의 얼굴을 쓸어보았다. 이렇게 닿고 싶었는데…이렇게…이렇게…닿고 싶어서 눈물 흘렸던 시간이 술을 먹었던 시간이 얼마였는데…준수야 너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 나 좀 살자…나 이제 좀 행복해 지자…. § 목욕을 하고 서둘러 나온 추리닝 차림은 지극히 내츄럴 했다. 허리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추리닝은 폼이 커 보였고, 가슴안팍이 훤히 내다보이는 V넥은 굵은 실 모양으로 된 것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그 틈새로 바람이 스며들 것 같았다. 욕실에서 막 나온 것처럼 얼굴은 잡티 하나 없이 크림처럼 뽀얀 얼굴에 입술이 새빨갛게 도드라져 보였다. 사과처럼 붉은 뺨의 혈색에는 장난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많이 자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긴 재중은 뭘 그리도 즐거운 상상을 했는지, 사무실 옆에 쭈그리고 앉아 큭큭 거리며 숨 넘어가는 소리를 했다. 때마침 분주한 구두 소리가 고급스러운 바닥에 높이 울려 퍼졌다. 바쁜 일정이 연달아 있었는지 서류 가방과 함께 어깨에 낀 핸드폰을 종료하면서 정실장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정확히 문이 닫히자마자 갑자기 뒤에서 안겨오는 재중의 돌발 행동에 흠칫 놀란 발걸음이 되었다. 폴짝 뛰어서 등에 매달린 재중이 큭큭 거리는 웃음소리를 내며 목에 팔을 두르고 허리에 금세 발을 교차시키듯 안아왔다. 잠시 흠칫했던 동작을 뒤로한 채 다시 제 갈 길을 가는 정실장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곧바로 책상 위에 서류가방과 핸드폰을 내려놓은 정실장이 재중을 다람쥐 정도의 미니 애완견으로 취급하며 덩달아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한숨을 돌렸다. 이리저리 급하게 움직였는지 뺨은 보기 좋게 상기되어 있었다. 언제나 재중에게 정실장은 이런 모습이었다. 순수하고 막연한 기대와 열정을 가진 채 무척 상기된 얼굴. 너무도 가슴 떨리는 행복한 표정을 짓고 때로는 너무도 당당한 표정으로 여유로움이 넘실거렸고, 때로는 너무나 사랑스런 표정을 짓고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하고 있다는 설렘이 또렷하게 보였다. 마치 모든 사람이 꿈에 그리는 적도의 완벽한 낙원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아직 마르지 않은 재중의 머리카락을 살살 털어주며 다정하게 눈높이를 맞췄다. 언제나 정실장의 다정함은 꿀벌들이 꽃을 향해 날아가는 것처럼, 가지가지 꽃마다 먹음직한 꿀이 흘러 넘치게 하였다. 그 꿀은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았고, 먹은 만큼 그대로 다시 채워지기도 했다. 장난 가득한 표정으로 허공에 뜬 두 다리를 흔든 재중의 이마에 가볍게 두 손가락을 튕겼다. 아프지 않게 때렸는데 꼭 아픈 척 애교 있게 이마를 문지르며 헤헤~하고 웃는다. 하품처럼 웃음이 전염된 정실장이 가볍게 재중의 이마 위로 짧은 키스를 했다. 마치 쪽! 소리엔 명함처럼 재중을 주머니 속에 넣어 놓고, 보고 싶을 때마다 한 장씩 꺼내서 보고 싶은 정실장의 안날 난 애정이 묻어나 있었다. 눈을 마주친 정실장이 최대한 미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미안해서 어쩌지? 5분 뒤에 회의가 있는데." 정실장이 손목에 찬 시계를 힐끗 보았다. 아무래도 미룰 수 없는 회의였던 모양이다. 곧바로 재중은 짐짓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며 추리닝 주머니 속에 손가락을 넣어 꼼지락 꼼지락거리더니 정실장 코앞에 풍선 껌을 삐죽 내밀었다. 이미 입 한가득 풍선껌을 여러 개 넣어 씹고 있던 재중이 턱이 힘들어졌는지 입 안 한구석에 껌을 몰아넣고 휴전을 선언하듯 질겅거리던 동작을 멈췄다. 달짝지근한 풍선껌 향이 정실장의 심장을 자극했다. 「혀엉…이 껌 좀 사주세요.」 "정윤호씨. 이 껌 좀 사주실래요?」 「그게 얼마야?」 "얼마입니까?" 「27만 원이요.」 "아마도 27만 원?" 「그 돈으로 뭐하게?」 "그 돈으로 뭐하실 겁니까?" 「여기서 자려구요.」 "형이랑 살려구요." 「내가 그 껌. 사줄 것 같아?」 "그 껌 평생 유효합니까?" 「「따라와.」 재중은 이번에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천진난만하게 웃어버렸고, 활짝 휘어진 반달 눈을 보자마자 저절로 손이 올라가 재중의 머리를 쓰다듬은 정실장은 곧바로 재중의 볼을 양손으로 감싸며 입술을 맞닿았다. 입 한구석 몰려진 풍선껌은 때로는 정실장 입 안에 머물기도 했다가 다시 집요하게 뺏어가듯 재중이 다시 제자리에 놓기도 했다. 큭큭 거리는 웃음소리는 끊기질 않았고, 덩달아 승부욕이 자극된 정실장이 그대로 재중을 책상에 눕혔다. 헉 소리가 입 안으로 조용히 삼켜졌다. 정실장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밀치며 재중이 동그란 눈을 말똥말똥 뜨고 시간 좀 보라고 자신의 손목을 손으로 가리키며 혼을 내는 행동을 보였다. 많이 아쉬운 듯 손목의 시계를 확인한 정실장이 재중의 손목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자동반사처럼 화들짝 놀라며 정실장 책상 밑으로 술래잡기하듯 들어간 재중이 입술 위로 손을 올리며 나지막이 '쉿' 소리를 냈다. 재중의 손목을 잡아끌기도 전에 이미 사무실로 들어온 간부급 직원들이 가벼운 목례를 했다. 덩달아 가볍게 목례를 한 정실장이 다소 어색한 동작으로 서 있었다. 그런 정실장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린 직원들이 오늘 할 프레젠테이션을 꺼내며 회의 준비를 이어갔다. 그 사이 정실장 무릎을 툭 친 재중이 어서 의자에 앉으란 소리를 했다. 덩달아 의자에 앉은 정실장이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런 정실장과는 달리 다시 재미진 표정으로 두 무릎을 모으고 책상 밑에서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재중이 빵싯거렸다. 마치 놀이동산에 놀러 온 아이처럼 신나는 모험여행을 즐기는듯했다. 어디로 튈지 늘 예상되지 않은 재중은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라는 듯 책상 밑에서 정실장의 다리를 슥슥 만지기도 했고, 무릎을 손으로 튕기듯 때리기도 했다. 중간 중간 회의 목소리가 끊기는 적막한 기운이 맴돌 때면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는 정실장은 제대로 회의에 집중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배가 고파지면 제풀에 지쳐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처럼 재중이 정실장의 허벅지 사이에서 잠이 들었다. 처음엔 불쑥 의자 다리를 잡아당긴 재중이 재미를 붙여 이리저리 의자를 움직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다리에 힘을 주며 의자를 다시 제자리로 고정 시킨 정실장이 중간 중간 다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럼 또 그때는 모른 척 새침하게 두 무릎을 모으고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 정실장이 다시 회의에 조금이라도 집중하는 모습이 보이면 가차없이 허벅지 사이에 얼굴을 묻거나 허벅지를 잇새로 깨물거나 허벅지에 얼굴을 부비적, 부비적 비벼댔다. 정말로 순진하게 모르는 건지 알면서도 이런 행동을 일삼는 여우였는지 정실장은 조금 혼란스런 눈빛을 짓기도 했다. 허벅지에 매달린 얼굴은 조금 붉은 홍조기가 보였고, 위에서 밑으로 내려다보는 재중의 훤한 가슴팍은 작정하고 요염하다 못해 색기로 음탕해 보이기까지 했다. 회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풍선을 커다랗게 부풀었다가도 팍! 소리와 함께 금세 터지기도 했다. 입술 주위에 칙칙하게 묻은 껌을 혀로 끌어당기며 다시 헤실 웃는 재중은 얼음 속 타는 불꽃처럼 정실장은 안달 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새 허벅지 사이에 자리를 잡은 재중이 별안간 고개를 떨어트린 채 잠이 들었다. 의자 다리에 재중의 다리가 교차하듯 발로 감싸 안고 있었고, 정실장의 종아리 바짓단을 두 손으로 꼭 잡은 채 아슬아슬하게 정실장 허벅지 위에 얼굴을 베고 잠이 들었다. 재중의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그리고 재중이 잦게 움직일 때마다 교묘하게 정실장의 페니스를 얼굴로 툭 치듯 지나가곤 했다. 금세 끝날 회의에 마지막 집중을 보이다가도 다시 집중이 흐트러진 정실장은 이내 포기한 듯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대고 곤히 잠든 재중의 얼굴을 밉지 않게 노려봤다. 어느새 회의는 막바지에 다다랐고, 여느 때와 달리 집중을 하지 못한 채 회의 아닌 보고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단순하게 정실장의 안색을 살폈고, 준비해온 프레젠테이션을 정리하며 사무실에서 예상보다 빠르게 종종걸음으로 나갔다. 억지로 더 말하기가 괴로운 듯 이마에 손을 얹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정실장이 모든 직원이 나가자마자 얄밉게 잠든 재중을 안아 올렸다. 허겁지겁 몸이 붕 뜨자 눈을 미세하게 뜬 재중이 익숙한 체향에 버릇처럼 목에 팔을 둘렀고 허리에 다리를 둘렀다. 책상 위에 핸드폰을 챙기고 슈트를 들어 재중의 몸을 감싼 정실장이 급하게 사무실에서 나왔다. 덩달아 데스크에서 벌떡 일어선 여비서가 재중을 알아보고 눈을 크게 띄웠다. 그런 비서에게 살며시 어색한 미소를 띠며 입술 위로 손가락을 올린 정실장이 쉿. 소리를 냈다. 덩달아 다시 묵례를 하듯 제자리에 앉은 여비서는 여전히 혼란스런 표정을 하고 있었다. 때마침 재중이 잠에서 깨어났고 어느새 엘리베이터에 탑승하자마자 재중의 웃음소리가 또다시 울려 퍼졌다. 크큭…. "방법이 갈수록 늘어." "혀엉 이제 일 같은 거 하지 마. 나랑 평생 이러고 놀자." "형이 백수처럼 재중이 발목 잡고 늘어지면, 누군가 크게 희생돼서 안 돼." "응? 누구우?" "심창민은 몰라도 Park은 형이 감당 못한다." "크큭…왜에??" "약속했거든. 꼬박꼬박 밥 챙겨주겠다고." "나는 밥 안 먹어도 배부르니까, 일하지 마." "재중이 노래 부르러 나가면, 형은 그럼 뭐 해?" "음…춤 다시 추면 안 돼?" "안 돼." "왜에?" "너희들 키우는 맛에 내 인생을 걸었거든." "나도 형한테 내 인생 걸었는데." 정실장은 자기도 모르게 하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재중의 진지한 한마디에 엉덩이를 토닥이며 행복한 듯 말했다. "옳지~ 잘한다." "사랑해 형." "보고 싶다. 재중아." "응?? 형 나 안 보여??" 정실장 목에 두른 팔을 풀어 어깨에 손을 집으며 고개를 멀리 뗀 재중이 자신의 얼굴을 턱 하니 보여주며 재중이 말했다. 재중의 까만 동공 가득 의중을 모르겠다는 감정들이 어지럽게 떠돌고 있었다. 버릇처럼 비죽 나온 입술에 짧게 입맞춤을 했다. 오늘따라 까만 동공이 유난히 맑게 느껴졌다. 살짝 미소를 짓는 정실장의 얼굴은 재중을 사랑스런 여인으로 바라보았다. "이렇게 눈앞에 훤히 보이는데, 형은 지금도 재중이가 보고 싶다." "이 말 나 말구…다른 사람한테도 해주며언…형 죽구…나 죽는 거야? 응??" 곧바로 서로의 입안으로 삼켜진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지하 3층을 안내하는 목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정실장이 재중의 엉덩이를 다시 고쳐 안듯 잡아 올리며 주차된 차를 향해 아슬아슬하게 발걸음을 옮겨 나갔다. 츕츕 혀를 옭아매는 소리가 지하주차장을 에워싸고 있었다. 정신없이 정실장의 목을 둘러안은 재중이 빠르게 재촉하듯 「흐응….」 앓는 소리를 중간 중간 냈다. 스마트키로 차의 불빛이 보이자 그쪽으로 움직이는 발걸음이 조금은 조심스럽게 조금은 안날 나게 움직였다. 삐빅 소리와 함께 잠겼던 차 문이 열렸고 그와 동시에 재중을 뒷좌석에 눕혔다. 순간 「헉!」소리와 함께 눈이 동그랗게 떠진 재중의 눈빛은 '형 여…여기서?'와 같이 무언의 압력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미 재중을 뒷좌석에 눕힌 정실장은 빠르게 입술을 탐하기 시작했다. 마음마저 붉게 물든 재중은 당혹스러웠는지 정실장의 어깨를 탁! 쳤다. 하지만, 이미 스웨터 안으로 거침없는 손길이 들어왔고, 바짝 긴장감으로 굳어 있는 유두를 비트는 손길에는 재중처럼 장난기가 다소 묻어 있었다. 붉게 물든 볼을 쓰다듬으며 재중의 동공을 주시한 정실장이 가볍게 이마와 콧잔등 그리고 입술에 베이비 키스를 하며 긴장한 재중의 엉덩이를 놀리듯 톡톡 치며 말했다. "이렇게 놀랄 거면서. 다음부터 회의시간에 장난치면, 장소 안 가린다?" "씨이…." "그거 지금 아쉽다는 뜻이야? 그럼 이대로 할까?" 정실장의 예상은 이번에도 빗나갔다. 갑자기 표정이 묘하게 뒤바뀐 재중이 정실장의 목에 팔을 두르고 귓속으로 뜨거운 혀를 별안간 집어넣었다. 순간 몸이 흠칫 놀란 정실장이 바짝 긴장을 했다. 번들거리는 입술과 뜨거운 타액이 질척거리는 혀는 집요하게 정실장의 귓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리고 어느새 크큭 소리를 낸 재중이 얄미운 목소리로 귓바퀴를 아프지 않게 야금야금 깨물며 말했다. 뜨거워진 귓속만큼이나 심장이 뜨거움에 덜렁덜렁 거렸다. "형아…다음엔 꼭 여기서 하자아~?" "……어,…어어?…??" "옳지~ 잘한다." 곧바로 멍한 얼굴로 재미난 표정이 된 정실장의 엉덩이를 톡톡 치는 손길에는 여전히 사랑스런 장난기가 묻어나 있었다. 햇빛이 잎사귀를 비추면 그 따스하고 싱그러운 색이 더 없이 반짝이듯 아카시아 향기를 가득 담은 초여름의 싱그러운 바람이 손가락 사이에 흩어지듯 그들은 수많은 사람이 꿈꾸는 꿈속 같은 서로의 심장에 연인이었다. 지는 꽃도 아름다운 연인이었다. 비 오는 날에도 행복하게 세차를 할 수 있는 연인이었다. 눈앞에 보고 있어도 그리운 연인이었다. 이들의 땅에서는 언제나 싱그러운 풀과 향기로운 꽃의 향기가 피어오르고, 높은 하늘에는 한껏 달아오른 태양의 열기가 이들을 축복하듯 쏟아졌다. My Melody 20 完 My Melody w. 킵 * * * 「혹시 준수 찾아오셨습니까?」그녀는 내 음성이 떨어지기도 전에 처절하도록 슬픈 눈으로 내 팔을 붙잡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전혀 희망이 없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처럼 다짜고짜 눈물을 쏟아냈다. 그녀는 나를 한줄기 희망처럼 한번 붙잡은 팔을 놓아주지 않으며, 격렬하게 손을 비벼가며 도와달라고 무작정 매달렸다. 일단 그녀의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 작업실 주변의 커피숍으로 자리를 이동했다. 이미 축축하게 젖은 손수건을 몇 번이나 꼭 쥐는 손은 지나간 세월을 표현하듯 주름진 손에는 억척스럽고 고단했던 삶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오늘로 그녀를 본 건 정확히 두 번째였다. 예전에 녀석의 학교 앞에서 그녀를 본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녀석의 태도는 마치 길거리에서 보험 하나 들어달라고 재촉하는 거절하기도 귀찮은 판촉직원처럼 대했었다. 그 당시 녀석의 어머니쯤으로 생각한 내 예상은 판이하게 빗나갔었다. 정확하게 기억나는 얼굴은 아니었지만, 그때보다 얼굴은 몰라볼 만큼 변해 있었고, 머리에는 흰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보이기도 했다. 엄마와 다를 게 없었던 여인의 모습을 보자 잠잠했던 마음이 요동쳤던 것도 사실이었다. 손수건을 꼭 잡고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라고 몇 번이나 내게 고개를 조아리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동안의 시간들이 얼마나 그녀를 죄책감에 시달리게 했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만큼 주름진 얼굴에는 무거운 고민과 번민으로 가득했다. 한참 동안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듯 숨을 여러 번 나뉘어 쉰 그녀는 부들 거리는 손을 어렵게 들어 차가운 냉수로 바짝 말라 갈라진 입술을 축였다. 난 일단 그녀가 감정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한적한 시간이라 스무평도 안되는 커피숍에는 손님이 없었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에 위치하고 있어 아담하고 조촐한 커피숍이었지만, 조용한 대화를 나누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심하게 흔들리는 그녀의 눈빛을 보며 나도 모르게 마른 목을 축였다. 뭔가 마음을 단단하게 먹지 않으면, 이렇게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녀만큼이나 내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본능처럼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난 작업실 문 앞에서 이리저리 서성이는 그녀의 낯익은 얼굴을 보자마자 지나간 3년의 시간을 그녀를 통해서 조금은 알 수 있겠구나…싶은 희망이 생겼던 걸지도 모르겠다. 「전 아직도 큰어머니 얼굴을 보면 살이 찢겨지고 피눈물이 쏟아지고 매번 자살을 꿈꿔요.」 「준수야…흑흡….」 「이렇게 혼자 있어도 외롭지도 않고, 죽음이 두렵지도 않아요.」 「준수야…다 내 죄다. 그때 내가 널 안았어야 했는데… 널 지켜줬어야 했는데…지옥 가서도 벌을 받아야 할 죄값을 알고 나서 어미란 게 무엇인지… 가족이란 게 무엇인지… 내 남편, 내 아들 걱정만 했단다…. 그렇게 어린 네가 가장 고통스러워 한다는 걸 알면서도…흑흑…내가 지은 죄가 너무 흉악하구나….」 「그때 따라 죽지 못한 제 죄도 커요.」 「미안하다…준수야 미안하다…흑흡….」 「샤키가 죽었어요.」 「…….」 「이젠 편히 죽어도 된다고…이쯤 견뎌냈음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 「그런데 기적처럼 죽을 수 없는 이유가 또다시 생겼어요. 갑자기 살고 싶어졌어요.」 「…….」 「그런데 이렇게 큰어머니가 불쑥 나타날 때마다 자신이 없어져요. 무서워요. 그 사람도 제 암흑 같은 운명의 덫처럼 힘없이 걸려들어 하루아침에 제 곁에서 사라질까 봐…그게 전 너무 무서워요.」 「준수야…이제 두 번 다시 안 찾아오마…흑흡…손목 긋던 네가 자꾸만 눈에 밟혀서….」 「큰어머니. 제가 사랑을 하기엔 지금 제 인생은 너무 버거워요.」 「…….」 「저를 살게 만든 축복 같은 일인데, 그게 저를 또 너무 힘들게 해요.」 「…….」 「저 죽지 않아요. 이젠 못 죽어요. 제가 부탁드린 피아노 꼭 그 아이한테 전달해주세요.」 「…….」 「지금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 돼서 돌아올 거예요. 꼭 그럴 거예요.」 「…….」 「큰어머니도 이젠 부디 행복해지세요.」 입에 담을 수도 없이 참혹하게 돌아가신 부모님의 49재가 지나자마자, 준수는 발작처럼 손목을 웃으면서 긋거나, 머리에 피가 나도록 바닥에 머리를 내리찧는 행동을 보이는 등, 심한 불면증과 정서불안, 애정결핍으로 한동안 몸을 발발 떨며 죽지 못해 쓰러져 우는 나날들을 견뎌내야만 했다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어느새 그녀는 이미 모든 세속을 버리고 남은 거 하나 없이 입산하는 사람처럼 초탈한 상태로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나갔다. 하지만, 정작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가 내게 보였던 증상처럼 내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목에선 거친 모랫바람이 부르고 눈에선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소설 속이나 TV 속에 등장하는 가장 비극적인 결말처럼 준수가 견뎌낸 시간은 참혹했다. 이렇게 듣기만 했던 내 가슴도 갈기갈기 찢기는데 도대체 녀석은 어떤 가슴으로 이 시간들을 버텨냈을지 상상하는 자체가 미안했다. 그녀는 준수가 원하는 방향대로 준수의 동선을 멀리서 지켜보았다고 했다. 행여라도 홀로 손목을 긋지는 않을까? 매번 잠을 못 이루고 노심초사한 마음에 목구멍으로 밥알이 제대로 넘어갈 리 만무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녀석에게 용서를 바라지 않았다. 제 남편이 저지른, 철없는 아들이 저지른 일을 늘 고뇌하고 번뇌하며 평생을 지옥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내게 준수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그 질문에 난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피아노가 배달된 곳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난 고개를 역시나 끄덕일 수 없었다. 나는 녀석을 그 누구보다도 가장 사랑한다고 생각한 내 오만과 편견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만큼 저 홀로 이 무서운 일들을 껴안고 벼랑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녀석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녀는 피아노를 받은 사람에게 전할 말이 있다고 내게 애원하고 또 애원했다. 그녀는 준수를 기다린 게 아니라, 준수를 살리게도 한 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서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찾아왔다고 말했다. 용서도 바라지 않은 그녀는 아직도 그날의 준수를 기억하듯 그녀의 얼굴에 괴로운 표정이 어려 있었다. 다시 끅끅…. 울음 참는 소리가 입술을 비집고 나올 만큼 감정이 격해졌다. 나는 그녀의 주름진 손을 잡으며 죽어서도 힘든 시간을 이렇게 혼자 다 떠안으려 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이젠…정말로 준수 찾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유천군이 그 사람을 알게 된다면 대신 꼭 전해주세요. 이 말을 하기까지 3년의 시간이 흘렀어요. 너무 늦었을까 봐…그렇게 되면 우리 준수가 또 너무 가여워서…으흑흑…흡흑…." "……." "제게 살고 싶다고 말했어요. 눈물은 하염없이 흘리면서도 애써 웃으면서 말했던 아이예요. 이젠 죽지 못할 이유가 생겼다고 그렇게 웃는데…흑흑…." "……." 「이렇게 말없이 떠나도 저를 기다려 줄 거라고 막연한 믿음이 생기는 그런 아이예요. 그 아이 때문에 살고 싶어졌어요. 이젠 맘 놓고 죽지 못할 만큼 정말로 행복하게 살고 싶어졌어요. 저를 정말 많이 사랑해준 아이예요. 혹시라도 많은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서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서로가 많이 늙어도…. 그냥 길을 스쳐 지나가도 저는 모르는 그 아이를 한 번에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능하면 그 아이를 한 번에 알아봤으면 좋겠어요. 아니…그땐 제가 꼭 알아볼 거예요. 될 수 있으면 저를 잊지 않고, 제가 다시 건강하고 마음이 강한 사람이 돼서 돌아와도 여전히 그 자리에…제가 보이는 그 자리에…있어줬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그리고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땐 정말로…그땐 그 아이를 많이 사랑할 거예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사랑만…사랑만 할 거예요. 꼭 그럴 거예요.」 § '슬퍼서'라는 이유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그냥 펑펑 통곡하며 울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저절로 줄어드는 소리에서는 희미하게 '끅끅' 숨 넘어가는 소리만 나왔다. 난 영혼에 지배당한 꼭두각시처럼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작업실로 어떻게 걸어서 들어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떠오르지 않았다. 외투도 벗지 않은 채 그대로 작업실에 들어왔다. 그리고 곧바로 발꿈치에 힘을 주고 버티려 했으나 스르륵 다리가 풀리면서 방문에 미끄러지듯 기대어 앉았다. 녀석은 내가 준 끝없는 사랑에 힘들어 할 만큼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다. 또다시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에 대한 익숙하지 않은 상처에 겁부터 먹었다. 나를 믿었지만, 또 나를 외면하기도 했다. 그리고 녀석의 말대로 사랑만 생각할 만큼 녀석의 인생은 너무 버거웠다. 「샤키 누구한테 부탁하는 거 네가 처음이야. 우리 집에 다른 사람 부른 것도 네가 처음이야. 나대신 집에 와줬으면 하는 마음도 네가 처음이야. 다 네가 처음이야. 설명 안 하고 무턱대고 불러서 미안해. 그런데 정말 부를 사람이 없었어.」 「네가…나 대신에 우리 샤키 눈 좀 감겨주면 안 돼? 나 정말로 이건 못하겠어….」 「응. 내 까짓게 괜찮지 않으면 어떡할 거야.」 「나한테 정 같은 거 애써서 주지 않아도 돼. 노력하지 마. 난 혼자가 편해. 잘 가.」 「그럼 넌…나보다 먼저 죽지 마….」 「나 1주일 동안 잠 한숨도 못 잤어. 업어줘.」 「오늘 우리 집에 와.」 난 언제나 진지한 상황을 미꾸라지처럼 피해갔다. 복잡한 건 딱 질색이었다. 그냥저냥 잊을 만하면 들리는 비슷한 가슴 아픈 가정사에 술 한잔 기울이는 자리가 정말 식상할 정도였다. 누구에게나 아픔은 있다. 또 누구에게나 상처는 짊어지기 마련이었다. 그 아픔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 힘든 삶이 되기도 하고 아름다운 삶이 되기도 했다. 나 역시 녀석의 지나간 상처를 그쯤…그냥 남들처럼 술 한잔에 그날만큼은 전부 털어낼 수 있는 식상한 상처쯤이라고 쉽게 단언했다. 난 녀석에 대해 궁금한 점들이 무궁무진했지만, 그걸 구태여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냥 눈에 보이는 그대로 믿었고, 보이는 그대로 늘 밝은 녀석을 사랑했다. 그런데 그것은 진정한 사랑도 진실된 배려도 아니었다. 난 일단 녀석을 사랑하면서 일단 나를 무마했다. 녀석이 나를 사랑하게 되면, 지나간 모든 일을 훌훌 털어놓겠지, 내 앞에서 질질 울면서 그때 정말 힘들었다고 매달려주겠지, 너 그때 왜 그렇게 매정했느냐고 내 어깨를 치면서 투정을 부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녀석은 자신의 상처를 남들처럼 내게 옮기지 않았다. 이 상처를 핑계 삼아 내게 사랑을 갈망하지도, 어쩔 수 없이 떠나간 자신을 이해해달라고 애원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날 믿고 자신의 믿음을 믿고 저 홀로 또 다른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단순하게도 녀석이 바란 건, 여전히 그대로인 사랑도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힘들어하는 내 모습도 아니었다. 그냥 먼 훗날 우리가 다 늙어 허리가 구부러져 시력이 흐릿해지고, 발음이 새고,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늙은 할아버지가 되어서라도 그냥 그렇게 우연히 길을 스쳐 지나가도 한 번에 날 알아볼 수 있다면, 한 번에 날 믿을 수 있겠다고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가슴을 칼로 벅벅 도려낼 것처럼 심장이 너무 아팠다. 너무 아파서 정말 돌아버리겠다. 여전히 넌 내게 나쁜 놈이고, 잔인한 놈이고, 저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새끼인 건 분명한데, 여전히 넌 내게 고마운 사람이었다. 또 여전히 넌 내게 사랑이란 사실을 난 부정할 수 없었다. 「잘못 찾아오셨습니다. 전 김준수가 아닙니다.」 「… 고마워.」 「… 유천아… 끅… 너 죽은 거 아니지… 불난 거 아니지… 그렇지… 흐흡흐엉… 빠져나온 거지… 흐아아엉….」 「…죽지마아…흐아어앙…흑…유천아… 흐흡…히끅…흐아아앙….」 「이제 너도 그 차이 잘 알잖아, 넌 앞으로 지금보다도 훨씬 더 많~이 인정받는 대단한 가수가 될 거야.」 「그렇게 늘 샤키가 내겐 전부였는데. 오늘은 신기하게도 네가 먼저 떠올랐어. 근데 넌 샤키처럼 내 얼굴은 핥지 마」 「지금 나라가 어떤 꼴인데 이걸 버려어….」 「한국은 너무 오랜만이라…나 아직 지하철 타기도 무섭고, 모르는 곳 가는 것도 무섭고, 그냥…시차가 적응되지 않았는지 다른 곳엔 도저히 못 가겠어. 너 하는 일 절대 방해하지 않고 죽은 듯이 하랑이랑 있을게.」 「나갈게. 지금 나갈 테니까 목걸이 내 놔. 제발…그것만 내 놔.」 눈물로 범벅된 눈가는 많이 쓰라렸다. 난 구태여 눈물을 닦지 않았다. 닦기도 전에 다시 흘러내린 눈물은 참 나약했지만, 솔직했다. 자정이 되기 전 녀석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방문에 등을 기댄 채 방문 너머로 녀석의 동작에 귀를 기울였다. 낮에는 하랑이랑 병원에 들렸다가 산책도 좀 하고 볼 일이 있다고 좀 늦게 들어 올 테니까, 배고프면 어떡하느냐고 내 걱정부터 했다. 삐쩍 골라서 해골이 된 게 누군데 녀석은 일단 내 걱정부터 했다. 그리고 오늘도 꽉 닫힌 작업실 문을 열지도 못하는 손은 여러 번 허공에 맴돌았을 것이었다. 노크도 하지 못한 채 작업실 문 앞으로 다가온 녀석이 방문 앞에 스르륵 기대어 앉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작업을 할 때도, 혹은 내가 잠깐 잠이 들었을 때도, 녀석은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생길 때마다 이렇게 방문에 기대어 시답지 않은 소소한 일상들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어느새 그 목소리가 점차 잠잠해져 문을 열면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며 졸고 있었다. 그게 또 마음에 걸려서 심술 맞게 소리 내서 침실로 들어가곤 했었다. 그럼 또 벌떡 일어나서 내 동선을 주시했다. 방문 너머로 피곤에 지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이라도 당장 문을 열고 오랫동안 힘껏 안아주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었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너무 미안한 마음과 밤새도록 멈출 것 같지 않은 눈물 때문이었다. 이렇게 녀석은 강한 마음이 돼서 내게 와줬는데 고작 이런 사람이 돼서 울고 있다니…. 정말 내가 한심했다. "유천아, 오늘은 펜던트 체인 바꾸고 왔어. 아저씨가 용케도 오래 찼는데 안 끊어진 게 신기하대. 그래서 내가 너무 애지중지해서 안 차고 보석함에 넣어 들고 다녀서 그런다고 말했더니, 이딴 거 버리래. 으카하하…웃기지? 그런데 너 우리 하랑이한테 대체 뭘 먹여서 이렇게 뚱뚱해? 슨생님이 이렇게 계속 먹어대면 나중에 비만으로 다리가 힘들어진대. 사람처럼 자주자주 움직여야지 오래 살고, 털도 뽀송뽀송해지구 얼굴도 생기발랄해진댔어. 오늘은 그래도 좀 많이 걸어 다녔는데…아 맞다! 하랑이가 얼마나 경계심이 강한지 누가 내 옆으로 오기만 해도 월월! 하고 짖는다? 혹시 너한테도 그랬어? 진짜 우리 샤키랑 너무 똑같아. 옆에 차가 쌩쌩 지나가는 보도블록에서도 꼭 바깥쪽엔 지가 걸어. 크큭…진짜 너보다 낫다니까?" "……." "유천아…자?" "……." "자나…. 나는 아직도 네가 없으면, 잠이 안 와. 음…무서운 꿈 때문이기도 한데, 그건 아직 한국이 적응 안 돼서 그런 걸 거야. 나두…네 옆에서 정신없이 푹 자고 싶다……." "……." "잘자. 유천아…." § 잠이 들었다. 언제 잠들었는지, 언제 꿈을 꾸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었다. 잘자라는 녀석의 목소리까지는 기억이 났는데…. 그런데 갑자기 작업실에 들어온 하랑이가 '헉헉' 거리며 별안간 내 옷을 잡아당겼다. 자는 도중에 깨는 일이 없었던 하랑이는 꼬리를 밑으로 추욱 늘어트린 채, 내 옷을 물고 내 다리를 물고 전혀 하지 않았던 행동으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으르렁거리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기도 했다. 잠에서 덜 깬 난 영문도 모른 채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런데 이런 내 행동을 크게 타박이라도 하듯 하랑이가 크게 으르렁 짖기 시작했다. 순간 잠이 확 달아난 난 벌떡 일어났고, 하랑이가 내 바짓자락을 물고 어디론가 데려가는 길을 따라 억지로 움직였다. 그런데 그때 거실 한가운데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복받치는 슬픔에 발작하듯 몸을 떠는 녀석의 모습이 한가득 눈에 들어왔다. 심장이 덜컥 멎는 줄 알았다. 그대로 달려가 녀석의 얼굴을 살폈다. 나쁜 악몽이라도 꾸는 모양인지 고개를 세차게 돌리며 꾸역꾸역 입술을 깨물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놀란 난 일단 녀석의 볼을 때리기 시작했다. "…ㅇ야야!! 김준수!!!! 눈 떠 봐!! …준수야!!! 눈 좀 떠보라니까!!!" "흡흐흑…가지마아…유처나…거기 안돼…너무 뜨거워…가지마아…흐흡흑흑흑" 녀석이 허공으로 손을 저어댔다. 생생한 악몽을 꾸는지 잠꼬대를 하며 발악하듯 몸부림을 쳤다. 이리로 오라고 가지 말라고 비 같은 땀을 흘리면서 녀석은 간간이 헛소리를 내질렀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녀석의 손을 꼭 잡았다. 손안에 다른 게 잡히자마자 녀석은 거세게 내 팔을 붙잡고 안겨왔다. 식은땀과 눈물로 범벅된 얼굴과 몸은 차갑게 식어만 갔다. 무작정 녀석을 안아 올려 내 허벅지 위에 앉혔다. 그러자 잡히는 대로 내 목을 꽉 끌어안고 한참을 놓지 않았다. 내 허리를 끌어안은 발 역시 한참을 끌어안고 쉽게 경직된 힘을 풀지 않았다. 난 녀석의 등을 쓸어주고 이마에 난 식은땀을 닦아주고 수백 번이고 계속 괜찮다고 녀석을 안정시켰다. "괜찮아…준수야. 괜찮아…이제 다 괜찮아…." "흡흐흑…흐엉어엉엉…가지마아…." "응…안가. 이제 아무 데도 안 가. 안갈 거야. 네 옆에 있을게. 괜찮아…이제 괜찮아…그니까 울지마…." "흐엉엉…뜨겁자나…너무 뜨겁잖아아…." 녀석은 지독한 악몽에서 쉽게 깨어나질 못했다. 내가 녀석의 곁에 없었던 시간이 그대로 상상되자, 난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그대로 녀석을 끌어안은 채 욕실로 향했다. 녀석의 몸은 꽁꽁 언 한겨울의 송장 맨살처럼 차갑기만 한데 자꾸만 뜨겁다고 울어댔다. 욕조에 물을 받는 내내, 내 목을 끌어안고 하염없이 가지 말라는 소리만 했다. 가슴이 무너지고 말문이 막히고 억장이 무너졌다. 그냥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나약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목소리만 들어도 내 모든 게 산산조각날것만 같았는데, 이렇게 괴로워하는 녀석에게 닿은 건 온전히 내가 전부였다. 다 받아진 욕조 안으로 들어갔다. 차갑지도 그렇다고 미지근하지도 않은 물이 철렁하고 욕조 밖으로 흘러내렸다. 그대로 몸을 담근 채 녀석의 등을 토닥거렸다. 다행히 부들거림이 잦아진 녀석이 중간 중간 오래갈 여운처럼 숨 넘어가는 소리만 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녀석이 힘겹게 눈을 떴다. 그리고 믿을 수 없단 표정으로 내 동공을 바라보았다. 녀석의 눈빛이 반짝하고 빛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눈 한가득 맺힌 눈물과 붉게 물든 얼굴, 그리고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별 안 되는 혼란스런 눈빛은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난 그대로 녀석의 입술에 내 입술을 부딪쳤다. 동시에 저절로 감긴 녀석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녀석의 입술에선 눈물 맛이 났다. 아주 많이 짠 눈물이었다. 파르르 떨고 있는 뜨거운 혀를 잡아 감았다. 혀의 돌기 하나하나 정성스레 매끄럽게 쓸어내렸다. 녀석이 입을 크게 벌려 나를 재촉하듯 안아왔다. 입천장이 닿고 고른 치아가 내게 닿았다. 시간이 지나도 줄어들지 않을 뜨거움은 내 가슴을 울컥 치밀게도 하였다. 많이 아파했을 입술을 물고 빨았다. 츕츕 거리는 소리가 음란하게 욕실을 가득 메웠다. 우리는 정신 나간 놈들처럼 악마에게 영혼이 팔린 놈들처럼 서로에게 덤벼들었다. 중간 중간 녀석은 아래가 참을 수 없단 듯이 앓는 소리를 내기도 했고, 중간 중간 참지 못한 신음을 참지 않고 뱉기도 했다. 머리가 쥐 뜯기고 사방이 거울로 도배된 것처럼 서로의 아찔한 표정에 아래는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나는 이제 내게 온전히 닿은 녀석 때문에 울었고, 녀석은 믿을 수 없이 자신에게 닿은 나 때문에 울었다. 우리는 그렇게 닿은 서로의 체온을 믿지 못해 울었다. 적어도 지나간 시간이 억울해서? 서로를 원망한 시간이 아까워서? 라는 이유로 울지 않았다. 그냥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너무너무 사랑해서 울었다. 이제 이거면 되었구나…서로의 이름 하나로 영원이란 믿음 하나로 잘 버텨냈구나…잘 이겨냈구나…라는 자신에 대한 칭찬의 눈물이었다. 옷은 물과 함께 축 늘어졌다. 곧바로 그대로 녀석을 들어 올렸다. 뜨거운 신음을 내뱉으면서도 내 동공에서 눈을 쉽게 떼지 못하는 녀석은 나를 끊임없이 갈망하게 만들었다. 물로 축축해진 옷은 쉽사리 벗겨지지 않았다. 사정없이 재킷을 벗고, 손이 자꾸만 엇갈려서 여러 번 잡아당겼던 벨트를 풀어 바지를 속옷과 함께 벗었다. 녀석은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내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내가 옷을 다 벗자마자, 귀엽게도 양손을 번쩍 위로 올렸다. 동시에 녀석이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겼다. 그리고 다시 알몸이 되자마자 녀석이 뛰다시피 내 목에 팔을 둘러 안겼다. 내 배꼽에 녀석의 뜨거운 페니스가 닿고 내 입술에 녀석의 딱딱하게 솟은 유두가 닿았다. 바짝 솟은 유두를 입 한가득 물었다. 흠칫 놀란 녀석이 허리를 잠깐 비틀었다. 난 죽어서도 경험하지 못할 쾌감이라고 생각했다. 내 귓속으로 혀를 집어넣은 녀석은 내 귓바퀴를 강약 조절의 힘도 잃은 채 꽉 물기도 부드럽게 빨기도 했다. 축축한 몸을 그대로 이끌고 침대에 녀석을 눕혔다. 우리는 마치 단 1초라도 서로에게 떨어지기 싫은 사람처럼 팔을 벌리고, 다리를 벌리고, 손을 내밀고, 혀를 내밀고, 입술을 내밀고, 가장 솔직한 눈물을 내밀었다. 중간 중간 새어나오는 울음소리는 신음소리가 되기도 했고, 신음소리가 울컥 치미는 가슴으로 울음소리로 변하기도 했다. 입술을 물고 쇄골을 물고 배꼽을 간지럽혔다. 때로는 신음소리가 화가 난 음성이기도 했다. "읏, 읏항… 앗항…." "…읏…." 뜨거운 입김이 녀석의 허리를 괴롭히고 허벅지 안쪽 연한 살을 괴롭혔다. 이리저리 허리를 비트는 녀석은 손을 들어 내 얼굴을 가져가 다시 뜨거운 입맞춤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상체를 일으켜 내 허리에 앉은 녀석이 내가 해준 행동처럼 내 유두를 괴롭히듯 빨다가도 어느새 그 뜨거운 혀가 배꼽에 머물기도 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열기가 아래로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어느새 페니스까지 내려간 녀석의 입술이 별안간 내 것을 물었다. 순간 헉! 소리와 함께 내 상체가 본능적으로 들어졌다. 그런데 어느새 한쪽 손으로 내 가슴을 밀어낸 녀석이 내 것을 혀로 부드럽게 핥아 올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눈물은 흘러내렸다. 처음 한 오럴섹스로 당황한 눈빛은 부끄러운 듯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든 닿고 싶어 안날 난 사람처럼 녀석은 천천히 혀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내 것을 깊게 물었다. 어느 정도 부풀기 시작한 아래는 흰 액체가 나오려고 끔뻑끔뻑 트림을 하듯 힘들게 숨을 쉬고 있었다. 그리고 페니스에 닿은 녀석의 입술이 빨라 지기 시작했다. 작은 입 한가득 들어찬 페니스가 점차 팽창하듯 크게 부풀어 올랐다. 귀두를 괴롭히듯 끝을 깨물다가도 다시 부드럽게 혀로 옭아매는 뜨거운 혀는 여전히 내게 간절 해보였다. 녀석의 입 안이 힘겹다는 걸 눈이 훤하게 알 수 있었다. 아직도 내 페니스를 붙잡고 혀를 움직이기에 바쁜 녀석을 붙잡아 침대에 눕혔다. 그와 동시에 꽉 막혀 있던 숨이 한 번에 트이도록 아래엔 하얀 액체가 물컹하고 쏟아졌다. 빠르게 액을 손에 묻혀 녀석의 애널로 가져갔다. 얼마 전에 찢긴 애널은 아직도 힘들게 숨을 쉬고 있었다. 순간 피를 뚝뚝 흘리고 현관문을 나섰던 메마른 등이 떠올랐다. 그러자 저절로 손이 멈춰졌다. 그런데 단호한 눈빛으로 내 얼굴을 끌어안으며 다시 입맞춤을 하는 녀석은 괜찮다고 나를 재촉했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 유천아…." "아프면…아프면 말해?" "…아…하응…으응…." 어느 정도 넓혀진 애널 입구에 페니스 끝을 천천히 조금씩 밀어 넣었다. 눈을 꽉 감고 내 목을 끌어안은 녀석은 허벅지를 좀 더 벌려 내가 편안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를 넓혀주었다. 어느 정도 꽉 들어찬 페니스가 녀석의 안에서 크게 꿈틀 꿈틀거렸다. 얼굴이 크게 찌푸려진 녀석은 첫 정사처럼 많이 힘든 모양인지 내내 물고 있던 내 입술을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그 틈을 이용해 조금씩 서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덩달아 녀석이 뱉은 신음소리가 내 입안으로 파묻혔다. "흐읏…아흑!!!!!!" 허리는 점점 거칠어졌고, 뜨거운 숨은 이리저리 뱉어졌다. 녀석은 고개를 젓다가도 내 목을 끌어안다가도 다시 내 페니스를 피해 허리를 도망가듯 비틀기도 했다. 음란한 소리를 내며 격정에 몸을 떨었다. 조금 두렵고 야릇한 전율에 쉽게 대답도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린 채 몸을 움츠리기도 했다. 나는 마치 성결한 예식을 치르듯 전신 구석구석에 뜨거운 숨결을 퍼부었다. 쾌감이 전신의 세포 곳곳으로 번져가기 시작했다. 앓는 듯 우는 목소리로 신음을 흘리는 녀석의 목소리에 발가락 끝까지 짜릿해졌다. 뱃속이 조여들었고, 쾌감의 마지막 진원지를 찾아 온몸이 벼락에 맞은 것처럼 빠르게 깊숙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메마른 녀석의 허벅지가 낭창낭창 흔들리고, 온몸이 나를 따라 힘없이 흔들렸다. "유처나…읏항…흐억!!!!흐읏…아흑!!!!!!!!!!!!!!" "…으흣!!!…." 찰박, 찰박 소리엔 끝이 없었다. 내 등에 그리 길지도 않은 손톱을 세워 할퀴는 녀석의 팔은 힘없이 다시 내 목을 끌어안았다. 찰박, 찰박 끊임없이 솟구치는 샘물은 지난 시간을 위로하듯 끝없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녀석을 뜯어먹기라도 할 것처럼 자근자근 녀석의 모든 살결을 죄다 깨물었다. 내 허리를 발로 끌어안고 화끈거리는 부분을 다시 달구듯 페니스에 애널을 움직인 녀석이 내 목을 깨물고 혀를 내밀어 빨아올리기를 반복했다. 서로의 손이 닿는 곳마다 격한 눈길이 닿는 곳마다 불길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녀석이 내게 가장 솔직한 시간이기도 했다. 아프면 아프다고 등을 할퀴고, 기분이 좋으면 좋다고 허리를 움직였다. 참을 수 없이 고통이 뒤따르면 눈물을 쏟기도 했고, 너무 좋아서 죽을 듯이 나를 안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안달 난 자신을 표현했다. 누구나 진심으로 그 사람을 사랑했지만, 보기 좋게 차이기도 하고 또 그 사람 없이는 단 하루도 살지 못할 만큼 좋아했는데 말 한번 못 걸어보고 냉가슴을 앓기도 한다. 그러다가 가끔은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하기도 하면서 또는 나는 왜 제대로 된 연애 한번 못해보는 걸까? 애꿎은 술잔을 비우고 나약한 눈물을 쏟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사랑은 많다. 그렇지만, 이들에게 사랑은 하나였다. 많이 돌아서 닿았더라도 온전히 서로에게 닿은 게 전부였다. 많이 지친만큼 많이 미워하고 원망했던 순간이 힘들었어도 이렇게 늦게 돌아와도 결국은 닿았다. 결코, 붙잡아도 애원해도 제멋대로 흘러가는 시간이 적어도 이별의 이유가 되지 못했다. "…하아…." "…하아."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불안정한 숨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몇 번의 정사 끝에야 비로소 준수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여전히 그대로인 얼굴이었지만, 많이 야윈 모습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녀석은 힘에 부쳤는지 눈꺼풀을 느리게 떴다가 감았다 가를 반복했다. 팔을 쭉 내밀자 팔에 머리를 기대오는 녀석이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제대로 보지 못한 얼굴을 밤새도록 보고 싶었는데 녀석은 눈을 뜰 힘도 없어졌는지 힘들게 숨을 내쉬며 내 허리에 팔을 둘러앉았다. 녀석의 등을 토닥이고 등을 쓰러 내렸다. 허벅지를 들어 몸을 옭아매듯 가득 안기도 했다. 「흐응….」소리를 내며, 따라서 깊숙이 안긴 녀석이 이제야 무거운 입을 열었다. 많이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엔 힘이 하나도 없었지만, 진실되고 가장 솔직한 음성이었다. "…너무 미안해 유천아…." "사랑해 준수야…." "…고마워." "사랑해." "나 기다려줘서…나 믿어줘서…노래 불러줘서…이렇게 내게 와줘서…." "사랑해." "이제부터 천천히 말할 거야. 또…버텨줄 거지?" "…괜찮아…이젠 정말 괜찮아." "…너무 보고 싶었어. 그래서 너무 살고 싶었어…." "사랑해." "…미안해." 버릇처럼 녀석이 내 몸 위로 올라왔다. 가장 닿고 싶어했을 목 언저리에 코를 대고 버릇처럼 킁킁거렸다. 그리고 익숙한 체온에 불안정하게 오르락내리락 거리던 가슴이 진정이 되기 시작했다. 바닥까지 떨어진 체력에 힘겨워하며 무거운 눈꺼풀을 어쩔 수 없이 감았다. 메마른 등을 밤새도록 쓸어내렸다. 아픔이 느껴지는 등을 동이 트도록 그렇게 쓸어내리며 울었다. 중간마다 버릇처럼 깨서 '울지마….'라고 말하는 녀석의 목소리에 다시 울컥하고 눈물이 나왔다. 녀석의 이 아픔까지 내가 감히 사랑해도 될만한 사람인지 생각했다. 이렇게 평생을 죽어서도 쏟아부어도 부족할 것 같은 내 사랑을 감히 녀석에게 줘도 될만한 사람인지 다시 생각했다. 결국, 되돌아오는 답은 '김준수를 사랑하고 싶다.'뿐이었다. 난 녀석의 세상을 다 가질듯한 당당함이 좋았고, 그 당당함 속에서 보이는 수줍음과 아픔이 좋았다. 나를 쥐었다 폈다 냉정하게 밀쳤던 도도함과 차가움도 좋았고, 그 차가움 속에 보이는 여린 손길과 따뜻한 눈물이 좋았다. 강한 척 아프지 않은 척 고개를 꼿꼿이 든 얼굴이 귀여웠고, 그 강함과 반대로 유치할 정도로 순수한 감성이 좋았다. 도도함이 느껴지는 표정은 정말 사랑스러웠고, 가끔씩 무표정으로 가사를 짓는 진지함과 진중함이 좋았다. 피아노를 가르치는 의젓함과 단호함이 좋았고, 듬성듬성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몸에 밴 애교도 좋았다. 타고난 듯 천부적인 재능이 좋았고, 그럼에도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다시 노력하는 뜨거운 열정이 난 좋았다. 넌 내게 한없이 특별하지만, 무엇보다도 내 앞에선 평범해지는 김준수가 가장 좋았다. 이렇게 녀석이 내 옆에 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난 당당할 수 있었다. 헨젤과 그레텔처럼 빙글빙글 돌아서 닿았지만, 멈추지 못한 눈물처럼 다시 내게 와준 녀석을 난 너무도 사랑한다. § 그는 간편한 추리닝 차림이었다. 귀찮게 신은 슬리퍼에는 구릿빛 맨발이 반들거렸다. 팔자 걸음걸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걸음걸이에는 느긋함이 엿보였다. 다 늙은 노인네처럼 뒷짐을 지고 어슬렁어슬렁 동네에 고스톱 치러 마실을 가는 이장님처럼 보이기도 했다. 슬리퍼를 찍찍 끄는 발에서 위로 조금 올라가면 한쪽 손에는 검은색 봉다리의 손잡이를 귀찮게 잡고 있었다. 그 봉다리 안에는 라면 한 개와, 계란 한 개가 있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는 얼굴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묻어나 있었다. 그리고 봉다리, 계란, 라면, 추리닝, 슬리퍼와는 상대적으로 외모는 반듯했고 또한 몹시 출중했다. 그가 내뿜는 오오라는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다. 밟으면 터지는 지뢰처럼 모두들 그에게서 전방 10m씩 떨어져 걷고 있었다. 그들은 갑자기 가던 발길을 멈추며 저들끼리 소곤거리기도 했고, 앞서 걷는 그의 뒷모습을 동경하듯 바라보며 다시 종종걸음으로 병아리처럼 따라붙기도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번개처럼 등장한 한 청년이 겁 없이 지뢰밭에 스스로 들어갔다. 그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고 도도했고 물론 당당하기까지 했다. 마치 빚더미에 쌓인 그에게 신체 일부를 포기하란 듯 협박적으로 하얀 종이를 내민 청년은 당당하게 그에게 요구하듯 말했다. 「사인해주세요.」발걸음을 멈춘 그가 이어폰을 빼더니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방금 뭐라고 하셨쑤?」조금 내려간 뿔테 안경을 고쳐 올리던 청년이 다시 당당히 흰 종이를 내밀며 당연하단 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팬입니다. 사인하세요.」그는 곧바로 이마를 탁! 치며, 실소를 터트렸다. 굉장히 어이없다는 시츄에이션이었다. 그런데 어디서 혜성같이 등장했는지 카메라를 꺼낸 청년은 날아가는 새들도 못 날아가게 동작 그만! 을 외칠 것 같은 거대한 카메라를 들고 고민 없이 셔터 버튼을 여러 번 눌렀다. 황당한 듯 입가가 올라간 웃긴 표정과, 짙은 눈썹이 치켜 떠지면서 눈이 휘둥그레진 웃긴 표정과, 지레 놀래 스텝이 엉켜 슬리퍼가 조금 빗겨진 모습까지 전부 연달아 찍혔다. 그는 거칠게 청년의 카메라를 한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뺏으려 했다. 하지만, 그 청년의 힘은 그와 비례했을 뿐이면 했지, 절대로 뒤처지지 않았다. 즉, 누구처럼 비굴한 노예나, 나약한 짐승에 불과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이들은 서로를 노려보고 으르렁거렸다. 그는 팔을 걷어붙이고 청년에게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김철수. 너 영웅재중 팬이었잖아.」청년이 이런 그를 비웃듯 살짝 건방진 자세를 취했다. 삐딱 선 몸은 길쭉했고 빼빼 말랐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보기와 다르게 힘은 셌다. 이게 가장 중요했다. 눈높이가 얼추 비슷한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주변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영웅님은 임자가 있으셨어요. 내가 그렇게 사랑했는데….」포기한 듯 청년의 팔을 홱! 하니 내리친 그가 가던 길을 마저 걷기 시작했다. 여전히 그의 팔을 붙잡고 때로는 다리를 붙잡은 청년은 고집이 엄청났다. 「영웅님은 사인 다 해줬어요. 그니까 당신도 해.」청년은 시끄럽게 질질 끌려갔다. 하지만, 붙잡은 다리는 절대 놓아주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걷던 그의 머리 위로 온탕 기호처럼 뜨거운 열이 솟아나고 있었다. 숨소리는 점점 거칠어졌다. 이 둘을 지켜보던 팬들은 크게 벌려진 입을 쉽게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어디론가 바쁘게 전화를 거는 그의 손동작은 많이 급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통화음이 연결되자마자, 온 동네에 울려 퍼지는 쩌렁쩌렁한 음성에 잠잠했던 동네가 승산 없는 전쟁터로 변했다. "어이 정사장님!!!!!!!!!!!!!!!!? 지금 울트라캡숑 슈퍼스타 동방신기 브레인 심창민의 신변이 위험한데 어디서 뭘 하슈?" "어. 그래." "당장 개철수 좀 데려가시죠?" "어. 그래." "정사장. 뭐하십니까?" "어. 그래." 포기한 듯 그대로 통화종료 버튼을 누른 그가 발악하듯 소리를 질렀다. 「으흐하악!!!!!!!!!!!!」김철수는 지조 없는 팬이었다. 철새처럼 이리저리 저 홀로 떠돌아다녔다. 하지만, 절대 그 철새도 낯은 가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박믹키유천에게는 떠돌다 나가떨어져도 절대로 그 길로 가진 않는다고 김철수는 호언장담했다. 심창민은 김철수가 싫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련스럽게 알이 큰 뿔테 안경이 싫었다. 벌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혹시라도 장미꽃을 내밀고 사랑 고백이라도 할 것 같은 공포감에 휩싸인듯했다. 눈빛은 사정없이 흔들렸고, 그에 비례하듯 철수는 환한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주 큰 시련이었다. § "으아아앙악악!!!!!!! ㅍ피…피!!!!" 고막이 떨어지는 듯한 굉음에 놀라 한동안 아무 반응도 나타낼 수 없었다. 고막에 닿은 목소리는 거대하고 웅장하기까지 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싶은데 생각처럼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아침은 늘 눈부시고, 늘 곤욕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들리는 대사들을 곱씹어 되새김질했다. '피??' 소리만 들렸다. 순간 강시처럼 관에서 벌떡 하고 상체가 일으켜졌다. 동그랗게 떠진 눈을 하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순간 칼바람이 내 볼을 때리듯 슉슉! 나를 후리고 지나갔다. 그리고 난 그것이 칼바람이 아니라, 싸대기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아프다. 그것도 존나 아프다. 씨발, 진짜 아프다. 난 넘어지고 나서 5초 뒤에 엉엉 우는 발달이 느린 아이처럼 정확히 5초 뒤에 붉게 달아올라 부풀기 시작한 볼을 감싸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아악!!!!!!!!! 씨발 아파!!!!!!! 왜 때려!!!!!!!!!!!!!!" "이 미친 새끼야!!!!!!!!!!!!!!!!!!!!!!!!!!!!!!!!!" 어이쿠 깜짝이야. 내가 지른 소리에 반항하듯 부메랑처럼 두 배로 되돌아온 소리에 정신이 바짝 차려졌다. 녀석이 팬티 바람으로 씩씩거리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지난밤을 그대로 묘사된 녀석의 몸은 가장 아름다운 피사체처럼 붉은 꽃들이 여기저기 빈틈없이 잘도 그려졌다. 순간 흐뭇한 표정이 된 것도 모른 채 올라가는 입가를 그대로 내버려뒀다. 녀석의 한쪽 손에는 돌돌 말아진 휴지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녀석 옆에서 엄청난 충견처럼 녀석을 보호하듯 서 있는 하랑이가 헥헥 거렸다. 1주일 본 사이가 저렇게 급부상 되다니, 정말 놀랄 일이었다. 녀석이 분노하듯 휴지를 비죽 내밀더니 억울해서 이대로는 못 살겠는 표정을 했다. 옹알옹알 어멈이 바가지 긁는 소리처럼 들렸다. "아침부터 휴지는 왜 내밀어!!!" "개새끼야 너 때문에 똥꼬에서 피잖아!!!!!!!!!!!!!!!!!!!!!!!!!!!!!!!" "…어, 어?" 이 새끼는 쑥스럽게…. 히히히 "이 피 어떡할 거야!! 쪽팔려서 병원도 못 가잖아!!!!!!!!!!!!!!!!" 그대로 녀석에게 한 발짝 옮겼는데 그대로 뒤로 물러선다. 그리고 덩달아 옆에 있던 하랑이도 뒤로 물러선다. 니들 뭐냐 지금? 나 왕따 시키냐? 다시 한걸음 다가가면서 말했다. 여전히 뒷걸음치는 녀석은 결국 하랑이 뒤로 숨다시피 피했다. 그런데 하랑이가 나를 경계했다. 응? 하랑아? 너 내꺼다? 내가 니 주인이라고. "어디 봐. 피나는 거." "…ㅁ뭘!!!! 뭘 봐!! 니가!!!!!!!!" "피 난다면서 그니까 좀 보자고." "…ㅇ왜이래…!! 가카이 오치망!!!!!!!!!!!!" 당황한 입술은 발음이 귀엽게 새어나갔다. 가카이 오치망! 흐흐흐…. 왜 여기서 쇼타콤이 이해될까? "약 발라준다니까, 아 글쎄 이리 좀 오라니까?" "…ㅂ비켜!!!! ㅇ오치망!!!!!!!!! ㅈ저리강!!!!!!!!" 점점 뒷걸음치는 녀석과 점점 앞으로 돌진하는 나 사이에 있던 하랑이가 갑자기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 짖었다. 순간 경직되듯 내 발걸음이 멈췄다. 진짜 으르렁 짖었다. 아니, 하랑아? 형이야. 내가 니 주인이라고. 나 안보이니? 응? 나 박믹키유천이라고. 네 고급사료 산 장본인 나라고. 나 개 껌도 다 좋은 것만 골랐다? 너 아팠을 때 기억 안 나니? 내가 짠 눈물 그것도 정말 기억 안 나는 거야? 너 인마! 기러기 아빠들이 얼마나 외로운지 모르고 그러는 거지? 네가 비록 밴쿠버에 유학 간 애완견은 아니지만, 일단 내가 널 키우느라 좀 노력은 했거든? 내가 니 회충도 사랑했는데, 너 정말 이럴 거니? 인마 다시 생각하라고. "너 하랑이한테 뭐 먹였냐?" "뭘 먹여." "하랑이 아픈 것 같아." "니가 아파." "너도 아프잖아." "난 뒤가 아픈데, 넌 머리가 아파." "아프니까 좀 보여달라니까, 인제 와서 왜 부끄럼 타고 그래?" "…나 배고파. 볶음밥." "아프다매." "갑자기 배고파. 밥 해줘. 많이 먹을 거야. 많이 해." "너 볶음밥 잘하잖아." "씨발놈아 여태까지 나만 계속 했잖아!!!!!!!!!!!!!!!!!!!!!!!!!!!!" "아, 진짜 귀청 떨어지겠네!!!! 그게 그렇게 억울해서 어떻게 참았냐?" "복수할 거야." "뭘." "니 뒤도 뚫어주겠어." "…우리 볶음밥 많이 먹자? 양념 통닭 넣고 볶을까? 즌수야 잠깐만 기다려?" § 밥을 토할 정도로 잔뜩 먹고, 함께 양치질을 하다가 거품을 이리저리 사방으로 튀기며 다시 싸웠다. 이상하게 우린 눈만 마주치면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자고 있던 하랑이가 우리 고함에 지레 놀라 월월! 거리며 욕실로 들어왔다가, 어이가 없단 듯 꼬리를 내리고 다시 거실로 갔다. 순간 그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버럭을 멈추고 양치질을 마저 했다. 오랜만에 있는 스케줄로 작업실에서 나가려는데, 시큰둥하게 내가 나가는지도 쳐다보지도 않던 녀석이 갑자기 베란다 문을 열고 내게 손을 흔들었다. 표정은 굉장히 미묘할 정도로 무미건조했는데, 팔은 나풀나풀 잘도 흔들었다. 덩달아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나도 따라서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별안간 녀석에 베란다의 문을 끼익 열더니 간지러운 말을 했다. 귓속에 땀이 찬 것처럼 너무 간지러웠다. 확확 후펴파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유처나 잘 다녀와! 이따 보자!!!" 우리는 등만 돌아서면 여전히 소리를 지르고 싸대기 때리고, 누군가는 맞고, 샤워를 다 끝낸 몸에 다시 비누를 묻히고, 그렇게 서로를 못살게 굴다가도 이렇게 몇 초 만에 그런 일들을 싹 잊고 다정하게 굴었다. 녀석은 오늘도 내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내게 손을 흔들었을 것이다. 등을 돌리지 않아도 그건 알 수 있었다. 오랜만에 있는 스케줄이 오늘따라 더없이 반갑고 오늘따라 맑은 하늘도 더없이 행복했다. 너무 행복해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늘도 맑음이었다. § 뜨악! 재중과 난 입에 손을 틀어막고 웃음을 참지 못한 사람들처럼 얼굴이 씨벌겋게 달아올랐다. 새 앨범 발매 기념으로 열린 팬 사인회에는 발을 내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3년 만에 내는 앨범이기도 했고, 3년 만에 처음 갖는 공식적인 자리이기도 했다. 듬성듬성 오랜만에 만난 낯익은 얼굴을 보자 신이 절로 났다. 정말로 반가운 얼굴들이었다. 우리들의 행복을 빌어주는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 비루하지만, 답례를 했다. 흔드는 사람도 기쁜 듯 웃는 사람도 모두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 줄을 서고 기다렸는지, 개철수가 등장했다. 여전한 페이스와 여전한 몸매와 여전히 도도하고 건방진 말투는 매력이 넘쳤다. 그런데 유일하게 달라진 점은 심최강창민이 앞에 줄을 섰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런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미리 예고한 사람처럼 한숨을 푸욱 쉬는 창민이 처음으로 약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개철수는 여전히 당당했고 여전히 열정적이었다. 그게 때로는 심창민을 괴롭게도 만들었지만, 일단 보는 즐거움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언제나 개철수가 있는 곳은 또 다른 신세계와도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친구 하긴 싫었다. 저런 종속들로 내 질투심이 유발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치욕이었다. 씩씩하게 걸어 올라온 개철수는 뿔테 안경 대신 렌즈를 착용했다. 알이 큰 안경이 단번에 없어진 게 나는 왜 그렇게 웃긴 걸까? 세상에서 개철수가 제일 웃기다. 따지고 보면, 정말로 멀쩡하게 생겼는데 왜 저런 안경을 꼈을지 의심이 들었다. 그런데 지나간 세월을 말하듯 안경자국이 그대로인 얼굴을 보자 난데없이 웃음보가 터졌다. 이미 저세상으로 갈 듯 배를 움켜잡고 웃기 시작한 김영웅재중이 발을 동동 구르고 내 팔을 쳤다. 그럴 때마다 삑삑거리는 운동화에 시장터에 온 것처럼 정신마저 사나웠다. 곧바로 심창민에게 앨범을 내민 김철수가 당당히 말했다. 하지만, 심창민은 경악했다. 그리고 정확히 심창민, 개철수만 빼고 모두 웃었다. 개그프로그램은 따로 필요 없다. 이 둘만 있으면. "뭘 원하슈?" "김철수 사랑해. 라고 써주세요." "뭐???" "김.철.수. 사.랑.해." "후우…." 너무 쉽게 고개를 팍 숙인 창민이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한숨을 푹푹 쉬는 입가엔 불길처럼 뜨거운 화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꾹 눌러 쓰기 시작한 펜 끝에는 똥이 묻어나 아주 더럽게 사인이 되었다. 그리고 사인한 앨범을 내밀자, 받아 본 개철수가 처음으로 약간 움찔했다. 그리고 꼬리를 살랑 내리고 얌전하게 걸어 내려갔다. 당당하게 걷기의 시대는 이제 막을 내리나 싶어 아쉬운 마음에 쩝! 소리까지 났다. 개철수가 다 내려가자마자 심창민이 주먹을 쥐고 괴로워했다. 정말 괴로워했다. 우리 리더가 힘들어했다. 저런 소시민 때문에 힘들어했다. 그런데 내 아드레날린은 왜 상승하는 걸까? 순간 몰래 웃다가 심창민한테 걸렸다. 일부러 기침이 나오는 척 애를 쓰며 콜록! 콜록! 거렸다. 그리고 개철수가 꼬리를 내린 이유는 단순하게 PS에 적힌 말이 너무나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음번엔 반드시 장미꽃을 들고 와야겠다고 확신하면서 이곳을 빠져나갔다. 「to. 김철수 사랑해.  PS. 야. 좋냐?????????」 § 「형 왜 숙소에 안 들어와요?」 「뭐??? 웬 숙소? 숙소 지금 공사 중이잖아.」 「공사 끝난 지가 언제인데요. 공사 타령이십니까?」 「정실장이 공사한다고….」 「아 C 버전이었나.」 「…….」 녀석에게 작업실을 알려준 것도, 하랑이를 데리고 들어가라는 것도, 숙소는 공사 중이니 들어오지 말라는 것도 모두 C 버전에 해당되어 있었다.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 우리를 바라보는 입가는 흐뭇하게 올라가 있었다. 나 갖고 노는 거에 도가 텄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매번 당하면서도 즐기는 나 또한 잘 알고 있다. 정실장은 우리에게 언제나 새장에 갇힌 새가 왜 노래를 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날개에 상처를 달고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로 자유를 노래하는 새를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살갑지도 않은,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우리들의 꿈을 이끄는 힘에는 단호한 법칙이 존재했다. 껍질로만 이루어진 냉혹한 현실을 꼬집어서 말해주기도 했고, 나태해질 수 있는 화려함에 기쁨을 누리지 말라는 보호막을 대신 설치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우리가 부르는 노래를, 우리가 내는 화음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부러움의 대상보다 꿈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꿈이란 단순히 허상이 아니라는 듯 동경의 대상이 되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우린 그를 동경했다. 그리고 그의 꿈 끝은 우리라는 사실이 매번 지친 우리를 일으켜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꿈을 꾸는 걸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데자뷔처럼 팬 사인회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한 곳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시선을 따라 내 시선을 옮겨졌다. 강아지를 끌고 팬 사인회장 안으로 들어서는 녀석의 머리는 약간 짙은 밤색으로 비춰 보였고, 많이 짧지도 않은 길이에 앞머리를 많이 해본 모양새로 잘 올렸다. 좀 세련된 검정 뿔테 안경을 썼고, 조금 자신의 몸보다는 큰 다채로운 문양이 박힌 회색 후드 티셔츠에 손목 부분에는 손의 반 이상을 가린 검은색 별이 박힌 토시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등 뒤로는 악기 케이스를 매고 있었다. 까만 동공이 반짝하고 빛났고, 어딘가 모르게 어정쩡 걷는 걸음걸이에 으하하! 하고 웃음이 터졌다. 그와 동시에 여러 대의 카메라 셔터가 눌러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애완견과 함께 출입할 수 없습니다." "아저씨, 우리 하랑이는 애완견이 아니라, 내 가족이에요. 혹시 얘 뚱뚱한 거 안보이세요?" 등치 산만한 경호원의 모습이 꽤 답답했는지 한 손으로는 붉은색 개 줄을 다시 단단히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넓지도 않은 가슴 주변을 탁탁 치기까지 했다. 씨발, 귀엽다. 너무 귀여워서 미쳐버리겠다. 조용했던 야외는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옆에서 입술을 깨물고 눈이 반달로 휘어진 재중과 대놓고 한쪽 눈을 찡그리고 웃고 자빠진 창민이 반갑다는 듯 녀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녀석이 고운 햇살처럼 환하게 웃었다. 마른 얼굴이 많이 안쓰러웠지만, 웃는 모습 하나는 진짜 기가 차게 예뻤다. 녀석을 막는 경호원을 정실장이 대신 저지시켰다. 그리고 곧바로 당당하게 하랑이를 데리고 올라오는 모습에 환희에 찬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마치 입장하는 신부처럼 조신하게 걷지는 못했지만, 생에 가장 중요한 순간처럼 성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으캬앙, 하고 스스로 웃으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목젖이 앙증맞게 움직일 때마다 내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 앞에 선 녀석이 목에 건 펜던트를 만지작거렸다. 내 눈과 제대로 마주치자마자 우린 수줍은 얼굴로 말없이 웃었다. 그냥 몸이 베베 꼬였다. 손톱을 물어뜯고 싶어졌다. 녀석이 몇 번을 꼭 쥐고 있었을 법한 낡은 악보 한 장을 내게 내밀었다. '응? 여기에다가?' 다시 한 번 녀석의 의중을 묻듯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고개를 세차게 끄덕거렸다. 그 악보 상단에는 '넌 나의 노래 (You`re My Melody)'라는 가슴 뭉클한 타이틀이 적혀 있었다. 난 버릇처럼 목에 걸린 펜던트를 만졌다. 그리고 습관처럼 녀석을 쳐다보았다. 「넌 나의 노래. 그래서 오늘도 맑음.」 녀석이 적었을 가사에 목이 메어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대신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환하게 웃었다. 나처럼 툭 하면 터질 것 같은 녀석이 약간 찡그린 표정도 다시 환하게 웃기 시작했다. 내 노래가 녀석을 웃게 한 만큼 녀석의 멜로디가 나를 버티게 만들었다. 영원이란 힘을 믿게 만들었다. 김준수란 이름을 믿게 만들었고, 김준수 옆에 있을 박유천을 응원했다. 내 꿈을 밀어주기도 했고, 엄마를 용서하게도 만들었다. 지나간 성장통을 그리운 추억으로 만들기도 했고, 모든 멜로디에 내 이야기를 담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만큼 노래는 나를 살리게 했고, 나를 웃게 했고, 나를 울게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녀석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들었다. 드디어 닿았다. 저렇게 사랑스러운 내 연인이 내게 닿았다. 이곳엔 사랑만 있다. 이제부턴 사랑만 할래. 준수야 우리 이젠 죽도록 사랑만 하자. 내가 부른 노래만큼 네가 흥얼거린 노래만큼 죽도록 사랑만 하자. 펜을 들었다. 고개를 들었다. 새어나오는 눈물을 꾹 참으며 봄바람처럼 흩어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입을 열었다. "이름?" "…사랑해." "……" "…사랑해 유천아." 「to. 김준수.  넌 나의 노래.  사랑한다.」 - 넌 나의 노래 (You're my melody) - 눈을 감으면 들려오는 소리들 그대의 마음을 그대의 작은 생각들을 내 맘의 많은 잡음 때문에 듣지 못했었나봐 미안해 미안해 눈물의 시간이 이젠 history 걱정하지마 Because You're my melody 너를 연주할께 On&On 넌 나의 노래 내 삶의 사운드트랙 인생의 무댈 밝혀주는 너를 사랑해. 또 불러줄래 넌 나의 노래 I'm sorry란 말을 하기 싫었던 자존심 많았던 너무도 맘이 가난했던 내 영혼이 말라가고 있을 때 모든게 무너질때 내게 와줄래 슬픔의 시간도 노래처럼 꼭 끝이 있는걸 Because It's your love your love 내게 사랑을 들려주던 그댄 나의 리듬 내 삶의 선물 늘 항상 곁에서 아름다운 꿈이 되어줘 또 불러줄래 넌 나의 노래 수 없이도 많은 sad love songs 우릴 노래하는 것 같아도 이 순간 내 곁을 지켜주는 그댄 무엇보다 소중한걸요 눈을 감으면 들려오는 소리들 그대의 마음을 이젠 불러요 You're my melody 너를 연주할께 On&On 넌 나의 노래 내 삶의 사운드트랙 인생의 무댈 밝혀주는 너를 사랑해. 또 불러줄래 넌 나의 노래 It's your love your love 내게 사랑을 들려주던 그댄 나의 리듬 내 삶의 선물 늘 항상 곁에서 아름다운 꿈이 되어줘 또 불러줄래 넌 나의 노래 It's your love your love내게 사랑을 들려주던 그댄 나의 리듬 내 삶의 선물늘 항상 곁에서 아름다운 꿈이 되어줘 또 불러줄래 넌 나의 노래 My Melody w. 킵 * * * "…으으, 야아…" "쫌만 더어…." "…으으으, 야 진짜 죽을 것 같아…." "하아… 쫌만 더어 응??" "…빠…빨리, 윽…." "이씨, 이거 왜 이렇게 퍽퍽해…" "…야, 야!! 거기 건드리지 마라니까." "아… 미안, 미안!" "…야 진짜… 으으, 제발… 그만 좀 하자. …존나 황천길 보여." "…쫌만 더어~ 들어가면 된단 말이야." "……씨발놈아, 나 진짜 쌀 것 같아…." "그럼, 쫌만 싸던지." "…진짜 움직이지도 못하겠거든?" "휴지라도 가져올까? 지금 쌀래?" "…으으으, 씨발. 나 부르르 떠는 거 안 보여?" "너 얼굴 하얗게 떴어." "…야야!! 안 되겠다! 빨리빨리, 빨리! 업혀!!!!" "고작 이거였어?" "…아씨 진짜! 빨리 업히라니까!? 나 꼬추 터질 것 같아!!!!!!!!!!" "지금 나한테 화내는 거야? 이깟 일로?" "…화 아니야." "꼬츄 때문이지? 나 때문에 그런 거 아니지?" "어." 녀석은 아주 순박하게 생긴 농사꾼 타입의 소년처럼 씨익 웃었다. 하지만, 칠흑같이 검은 머리가 하얘지고, 내 사지에 모든 힘이 빠지고, 순식간에 주름살이 늘어난 기분이 들었다. 미처 중요한 아이템을 먹지 못한 게임기 스틱을 마지못해 바닥에 내려놓은 녀석이 내가 일어서자마자 폴짝 뛰어서 등에 매달렸다. 녀석의 축 늘어진 몸을 고쳐 업을 시간이 내겐 없었다. 급박한 위기 상황이 감지된 순간이었다. 축지법을 써서 순신간에 달려가야 했거늘, 자꾸만 척추가 없는 무척추 동물처럼 상체가 숙여지고 나무늘보처럼 거의 기어가다시피 발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머릿속은 하얘지고 몸은 부르르 떨리고 숨을 쉬면 큰일을 저지를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와중에도 등에 매달린 녀석은 시종일관 크큭 거리는 환희에 찬 웃음소리를 숨기지 못한 채 경박스런 말 역시 서슴지 않았다. "싼다! 싼다! 발사!!!!!" 고작 몇 걸음도 되지 않는 거리가 오늘따라 200M 전방으로 느껴졌다. 수도관이 팍 하고 터질 것 같은 불길한 기운에 숨을 억지로 참으며 목적지로 향했다. 이 박믹키유천의 파란만장 인생역전 연애사를 대체 누가 알아줄까? 녀석은 괴짜 심리학자들처럼 이상한 범위 안에서 내가 자기를 얼마만큼 사랑하는지를 실험 했다. 차라리 연쇄살인범의 사주팔자를 연구하거나, 네 살배기 아이에게 주식투자를 시키거나, 세계에서 가장 웃기는 농담을 찾아다니거나, 검은 고양이는 정말 재수가 없는지 실험해보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의 호기심이었다. 나는 별들의 왕자 티코브라헤가 왜 방광이 터져서 죽었는지 그 고통과 심정과 쪽팔림이 그대로 이해 갔다. 아무리 국왕이 준비한 만찬이었어도 오줌은 마렵다고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있는 사내가 돼야 했었다. 예나 지금이나, 만찬이란 건 지루하고 연극처럼 작위적이고 따분한 행위지만, 오줌통이 터질 것 같이 마려웠다면, 손을 번쩍 들고 '임금님! 저 오줌통이 꽉 찼습니다. 속 시원하게 오줌 좀 싸고 오겠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 당시 국왕이 김준수였다면, 티코브라헤의 운명은 다시 수정될 수 없었을 것이다. 분명 그렇게 건의를 했다가는 '넌 날 이만큼밖에 사랑하지 않아. 날 사랑한다면 더 참아! 씨발새끼야!'라고 호통을 쳤을 게 분명했다. 장미 가시에 찔려 죽은 시인도 있고, 오줌통이 터져 죽은 천문학자도 있고, 발바닥이 찢어져서 죽은 프리랜서 라이터도 있고, 어이없이 죽은 지리산 반달곰의 사례가 내게 남 일처럼 그저 구경하는 방관자가 될 수는 없었다. 가끔은 내가 입고 있는 의상이 마니악한 메이드 복장에 손에는 둥근 쟁반을 들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되기도 했었다. 시종일관 이런 나에게 녀석은 얼굴 근육이 없어 생기는 미소로 나에게 돌고래를 통하여 마음의 안정을 찾는 치료법을 알려주는 돌고래 테라피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분명히 얼굴에 근육이 있는데 무조건 씨익 웃는다. 그런데 이렇게 내가 방광이 터져 죽을 것 같은 악한 상황 속에서도 꽃이 피듯 활짝 핀 입꼬리는 마음에 썩 들지 않았다. 그런데 예쁘니까 내가 또 참는다. 다행히 자크가 있는 바지가 아니라,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내 등에 업힌 녀석이 바닥으로 꼬꾸라질 정도로 숙여진 내 상체 때문에 덩달아 아슬아슬하게 매달렸다. 그런데 녀석은 이것도 재밌는 놀이쯤으로 생각했는지 「오오~ 떨어진다! 끄악!」소리를 내며 내 목을 더 세게 조였다. 드디어 도달한 장소에 심하게 경직되어 빳빳하게 선 활을 꺼내면서 난 숙여진 상체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내 등에서 주르륵 밑으로 몸이 미끄러진 녀석이 야자수에 올라탄 추장 외동 아들마냥 내 목에 다시 팔을 두르며 저 홀로 씩씩하게 위로 매달렸다. 그와 동시에 난 꺼낸 활을 과녁을 향해 신중하게 조준하여 힘껏 쐈다. 얼마나 참혹하게 참았던지 확 터질 것 같은 오줌발이 5초 뒤에나 졸졸졸 터져 흐르기 시작했다. 맑은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는 소리와도 같았다. 팔에 소름이 돋아나면서 난 저절로 눈을 지그시 감고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한번 쏟아 나오기 시작한 시냇물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내 목에 얼굴을 들이 내민 녀석이 초를 새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치 과녁의 점수판을 계산하는 행위와도 같았다. 도도하게 솟은 물건이 점차 소심하게 수그러들기 시작했고, 다행히 터지지 않은 오줌통에 감사함을 느끼며 오늘도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신 방광에게 감사하단 메시지를 마음속으로 전했다. 마지막까지 남은 시냇물을 손을 튕겨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바지를 다시 추켜 입었다. 이제서야 눈이 떠지고 뭔가 좀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새 내 허리에 두 발을 교차시킨 녀석이 난데없이 내 귓바퀴를 깨물었다. 이 정도 강약은 이젠 그냥 귀엽다. 아직 이가 자라지도 않은 애기 정도라고 칠 수 있었다. "뭐야, 고작 그거 참았다고 위세 떤 거야?" "즌수야. 못 올라갈 나무는 사다리 놓고 가면 되고, 아는 길은 곧장 가면 되고, 버스 지나가면 택시 타고 가면 되고, 고생 끝에 병이 들면 되고, 젊어서 고생 늙어서 신경통인 것도 내가 다! 전부 다! 알겠는데. 난 너를 진짜 모르겠다?" "니가 먼저 나랑 한시도 떨어져 있기 싫다고 그랬잖아." "그래. 그건 지금도 맞아. 그런데 진짜 샴쌍둥이들이 이런 우릴 보고 뭐라고 그러겠어?" "씨발놈들." "그래. 그러니까, 적어도 우리들의 방광이 터지지 않게 화장실은 각자 가는 게 어때? 오줌 많이 참은 만큼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그런 실험은 이제 그만두는 게 어떠냐고." "너 얼굴 하얗게 질린거 재밌어 알아?" "나 사정 직전에도 얼굴 하얗게 질려. 그런쪽으로 실험을 응용해 보는게 어때?" "너 이러케 부르르~ 떠는 거 진짜 웃겨 알아?" "…그래. 안다고 치자." 비아냥거리는 어투는 또 금세 알아차리는 녀석이 다시 귓바퀴를 깨물었다. 이번엔 길게 물고 안 놔줬다. 마치 내 귓속이 벌통처럼,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는 꿀처럼 혀를 쏙 밀어 넣었다. 신혼부부와 초보 운전자들이 위험한 이유는 달리 없다. 다만, 보기만 하면 기를 쓰고 올라타려 한다는 것과 아무리 오랫동안 해도 싫증이 안 난다는 것과 기술은 많이 미약하나 힘으로 밀어붙이면 된다는 배짱과 남들이 그 시절은 참~ 좋을 때라고 말해준다는 것이었다. 부싯돌처럼 처음에는 미약하게 일어난 불꽃이 장작불이 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행여라도 불씨가 꺼졌나 하고 자세히 뒤져보면 아직 살아있는 화롯불 관계가 될 수 없다. 이 말이다. 힘껏 빨아야 불이 붙는 담뱃불도 될 수 없다. 이 말이다. 내 음침한 속내를 제대로 파악한 녀석이 장난스럽게 움직이던 혀를 쏙 빼더니 허리에 교차한 발의 뒤꿈치를 이용해 풀이 다 죽은 물건을 툭 건드렸다. 히죽 웃고 있을 눈을 만지려고 손을 불쑥 위로 올렸더니 앙칼진 고양이 소리를 내며 내 손을 찰싹 때렸다. 작은 고추도 아니고 고작 작은 손인데, 자꾸만 맵다. 근데 이게 또 중독이다. 한번 물면 멈추지 못하고 계속 문다. 근데 진짜 아파. 이건 진짜다. "네 손이 얼마나 매운지 알고나, 나 때리는 거야?" "알면 안 때리지. 그런데 이 드러운 새끼야. 너 오줌 싸고 손도 안 닦았잖아!!"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으로 털었어. 왼손은 괜찮아!!" "드러운 새끼. 말도 꺼내지망!! 빨리 다시 화장실로 이동!" "야! 내가 진짜! 너 심각하게 가벼운 것쯤은 익히 잘 알고 있는데, 그렇다고 하루 온종일 그렇게 올라타면 내 허리 남아나질 않거든요!? 애자 코스 그만해!" "드러운 새끼는 말도 꺼내치망!! 화장실로 간다 실시! 으랴!" "꼬추는 왜 자꾸 툭 쳐!! 누구 약올려?" "드러운 새끼는 말도 꺼내치마앙!! 화장실로 당장 간다!!" "아주 개가 짖지. 개가 짖어?" "월월!!" "으하하학!" "멍멍!!" "으하하학!" "월월!!" "…이제 그만 하지?" "말도 커내치망!!!!!!!!!!!!! 으하캉하항하항하학!!" 녀석이 내 곁에만 있어준다면, 앙드레김에게 검은 옷을 입히는 일도, 중 머리에 꽃핀을 꽂아주는 일도, 장가간 아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도 별로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내숭을 떨 것도 없었고, 좋게 보일 이유도 없었다. 그냥 서로 앞에선 뇌가 없는 사람처럼 경박스런 푼수처럼 주둥이를 내세우며 으하하학! 하고 미친놈들처럼 웃었다. 사랑이란, 미치지 않고서는 해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내게 김준수는 그러했다. 절대 미치지 않고서는 해내기 어려운 일. 한없이 뭉개진 케이크를 함께 먹어도 세상에서 하나뿐인 케이크처럼 좋았다. 비 오는 날 속옷까지 깊게 젖어도 그 찝찝함도 그렇게 좋았다. 심한 감기에 걸려 이마에 젖은 수건을 올려다 주는 상황이 병신처럼 더 아파도 좋을 만큼 좋았다. 늦잠을 자서 빠르게 샤워를 마친 내 몸에 다시 비누칠을 하는 간질함에 미치는 줄 알았다. 1시간 뒤면 다시 볼 것이 분명한데 테라스에서 자꾸만 손을 팔랑팔랑 흔드는 설렘이 좋았다. 욕조에서 누가 더 오랫동안 숨을 참나 내기를 하자고 먼저 덤벼놓고 내 얼굴이 푸하~! 소리와 함께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티 다 나게 그제야 욕조물에 얼굴을 박는 서투름이 깨물어 죽이고 싶을 만큼 좋았다. 분명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차갑기도 했지만, 그 차가움이 무색할 만큼 달콤함과 부드러움은 정말 미치지 않고선 해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어리석은 행동을 해도 나를 다독여주고 그 어리석음에 관대해지는 것. 김준수 앞에서 감정의 크기는 평등할 수 없었다. 최고의 동기부여는 그만큼 사랑이다. 이 말이다! § 세상에 정해진 진실은 불현듯 우리의 고정관념을 산산이 부수고, 모든 생각의 오류들을 여지없이 드러내기 마련이었다. 생김새와 다르게 늑대 새끼가 양가죽을 쓰고 순진한 양의 울음소리를 흉내내는 이 장난을 동경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순진한 양처럼 생겼어도, 실상은 오대양 육대주 어디다 갖다 놔도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는 염장질 언어소통 능력이 뛰어났다. 고요한 눈망울과 그 아래 가녀린 선을 따라 오똑한 콧날이 오늘따라 더 도도해 보였다. 밤마다 달님에게 온몸의 기를 빨대로 쪽쪽 빨아먹었는지 걷잡을 수 없는 당당한 기운이 고요한 사무실을 순식간에 발칵 뒤집었다. 당황한 여비서 목소리 두 명. "약속하고 오셨습니까?" "어머! 이러시면 안 돼요!" "이렇게 애완견 데리고 오시면 안…" 당당한 땅꼬마 목소리. "놔!! 놔!! 얘가 누구 애완견인지 알고나 잡아?!! 놔!!" 상대방을 심하게 경계한 경호원의 낮은 중저음 목소리. "누구 애완견입니까?" 다시 당당한 땅꼬마 목소리로 상황은 마무리. "말도 꺼내지망! 빡육천 꺼." "……예??" 넋 나간 경호원을 저리 밀치고 씩 웃으며 들어오는 땅꼬마. 마치 큰 이삿짐을 정리한 마냥 앙증맞은 양손을 탁탁 털며 좋아한다. 눈까지는 필요 없을 정도로 상대방이 누군지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한 정사장은 피식 낮게 웃으며 남은 서류의 사인을 마저 하기 시작했다. 녀석이 탑골공원과 파고다 공원은 다르다고 우기면 모두들 '그래. 네 말이 맞다.'라고 고개를 먼저 끄덕이게 하는 아이였다. 팔짱을 끼고 어슬렁어슬렁 사무실을 배회하며 기회를 노리는 눈빛은 꽤 진지했다. 그런 준수와 함께 어슬렁어슬렁 사무실을 배회하는 하랑이의 눈은 온종일 팔팔 거리며 돌아다닌 준수의 동행이 힘들었는지 조금 지쳐보였다. 쏟아지는 졸음에 꾸벅 고개가 꺾어지다가도 준수가 움직이면 마지못해 움직였다. 아니 움직여줬다. 단순히 애완견의 목을 채우는 저 줄의 의미가 준수에게는 효력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애완견이 주인을 끌고 다니는게 더 정확하다고 볼 수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며 기회를 살짝 노리는 눈빛을 그대로 무시하자, 금세 시들해진 준수는 푹신한 소파에 소리 나게 늘어져 앉더니 탁자를 앙칼지게 큰소리로 두 번 쳤다. 본인의 행동이 남들에겐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사채업자쯤으로 상상했겠지만, 정실장 눈앞엔 그저 소풍날 마음에 드는 옷을 사주지 않았던 엄마를 원망스럽게 째려보는 모습과도 같았다. 여전히 피식 새는 웃음은 많이도 가벼웠다. "어이~ 정사장님."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창민이 말투 배우지 말랬지." "이거 왜 이러십니까? 정사장. 우린 엄연히 일적으로 만난 사이가 맞지 않습니까? 이건 비즈니스." "뭐 일적으로 찾아오신 거라면, 그 대우는 분명히 해 드리죠." "정사장. 차는 안 내오고 뭐 합니까?" "아, 죄송합니다. 차는 어떤 걸로 드릴까요?" 답은 하나. "코코아." 하지만, 어느새 노크 소리와 함께 사무실 안쪽으로 들어온 여직원의 쟁반 위에는 비스킷과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이 놓여 있었다. 금세 쟁반 위로 눈길이 간 준수의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덩달아 바닥에 코를 박고 슬금 단잠에 빠지기 일보 직전이었던 하랑이가 후각을 자극하는 달달한 냄새에 고개를 높이 들었다. 축 가라앉은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리고, 어느새 준수 옆으로 올라와 준수의 옆구리에 머리를 끼고 애교를 부렸다. 하랑이 안에 또 다른 박유천의 영혼이 깃든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서로가 떨어져 있는 시간에도 유천은 하랑이의 영혼과 뒤바뀌어서라도 늘 준수 옆을 지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게 실제로 위화감이 없다는 게 늘 문제였다. 자연스럽게 비스킷 하나를 하랑이 입 안에 넣어주는 작은 손이 불현듯 행복해 보였다. 몇 번을 후루룩 코코아를 마시고 다시 위협적인 포스로 쟁반 위에 탁! 소리가 나도록 머그잔을 내려놓은 준수는 잊었던 지난 의뢰를 칼같이 마무리하는 프로처럼 다시 팔짱을 꼈다. 여전히 서류에 슥슥 사인을 하는 정사장을 다시 가늘게 노려보며 설득 없는 언변을 선보였다. "정사장. 우리 애한테 휴가 주는 걸로 계약 좀 합시다." "조건은." "정사장도 열흘 휴가 다녀오시죠." "김준수." "…으…응. 네에???" 도도한 콧날은 어디로 감췄는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그새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깜짝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다시 피식 낮게 웃으며 남은 서류에 사인을 마친 정사장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덩달아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하랑이를 일으켜 세우는 손길이 분주해보였다. 하지만, 이미 하랑이의 영혼을 박유천 정도로 둔갑시킨 정실장은 옷걸이에 걸어둔 블랙 슈트를 입으며 말했다. 불현듯 블랙슈트를 걸칠 때마다 영웅들의 변장처럼 호들갑 떨었던 녀석들의 모습이 생각나 피식 웃음이 다시 새어나왔다. "오늘 뭐 안 좋은 일 있었어?" 다정하게 묻자 금세 쪼르르 대답한다. "쾌변을 못했어요." "내가 누누이 말했지. 닮아가면 안 된다고." "네??" "너 박유천하고 점점 닮아가고 있어." 3초 생각하고 뱉은 말은 나름대로 단순했지만,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기에 딱 알맞았다. "싫어. 안돼!!!!!!!!" "고객님 말씀대로 저는 열흘 동안 푹 쉴 테니까요, 저번에 제가 부탁드린 곡은 꼭 제게 주시는 겁니다?" 낮춰 말하면 금세 잊었던 콧날을 다시 세운다. 영락없는 땅꼬마. "…알았네. 정사장." "두 곡이면 더 좋습니다." "아 그런데 손오공씨. 이젠 머리 안 아파? 삼장법사가 안 괴롭혀?" "그 삼장법사가 절 좋아합니다." 힉!!!! "그 대머리가?!! 그럼 막대기도 주문도 이제 필요 없겠네요!? 그런데 손오공하고 삼장법사하고 서로 좋아한다고 상상하니까, 왜 자꾸만 만화가 호러가 되지?" "정확하게 말하면, 네 뇌가 호러지." "…정사장. 나 놀려요? 나 일적으로 왔다니까요?" "놀리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건 명백한 거짓말이지만, 고객님의 기분이 불쾌하셨다면 정중히 사과드립니다." "내가 휴식 줬으니까, 영웅이 데리고 헐랭한 인생 좀 감상하세요." "그것도 계약 조건에 포함되어 있습니까?" "허!허! 참… 바위가 너무 딱딱해도 안 되고 너무 연해도 곤란합니다? 적당히 살아도 짧은 인생 만사 새옹지마! 이왕이면 물렁하게도 살아봐요! 사은품 개념으로!" "너희는 너무 물렁해. 착불 개념으로." "비즈니스! 일적으로!" "예. 고객님. 물러 터지거든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정사장. 그렇다고 홍시는 되지 말게나! 으하캉하항하항하학." "1절만 해. 그 입 좀 다물고." 블랙슈트로 완벽하게 변신한 모습에 흠칫 놀라며 하랑이 뒤로 숨는다. 하지만, 어느새 바닥에 코를 박고 대릉대릉 잠이 든 하랑이 눈치를 살펴가며 아프지 않게 하랑이를 무릎으로 툭 쳐본다. 그래도 꿈쩍도 하지 않자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하게 웃어버린다. 으하캉하항하항하학. 언제 들어도 치유되는 맑은 웃음소리인 건 분명한데 저 땅꼬마를 데리고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만들어 나갈 박유천이 아주 잠깐 안타깝단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소꿉장난 하는 땅꼬마들 기특하다. 좀 귀엽네. § 양쪽 관자놀이에 생긴 오래된 안경 자국이 어느새 사라진 청년의 얼굴에는 환한 빛이 났다. 그동안 큰 안경으로 빛을 발휘하지 못했던 인물이 훤하게 드러나자, 본인도 거울을 보며 놀라 했다. 그런데 그렇게까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랄 정도의 화려한 인물은 아니었는데 본인은 3배쯤 부풀려서 놀란 표정을 짓고 나갔다. 청년은 자신의 학과에 자부심이 짙은 학생이었다. 어딜 가든 교과과정과 걸맞은 응용력을 선보였다. 이를테면 게임상대 적수가 사용하는 아이템의 시간적 통계를 내 어느 시점이면 적수가 다시 그 아이템을 사용할지를 분간했다. 확률의 개념과 응용은 물론이거니와 수치해석에도 굉장히 능한 청년이었다. 따사로운 햇살을 온몸으로 광합성 하기 시작한 청년이 슬며시 측정된 시간이 거의 막바지에 도달한듯 시간을 체크하며 벽에 기댔던 등을 떼었다. 그리고 계속 보고 있던 비모수통계관련 두꺼운 책을 가방에 넣는 손길은 아주 여유로웠다. 청년의 예상대로 잠시 후 그가 등장했다. 그가 뽐내는 어두운 오로라에 쉽게 다가서지 못한 소녀 떼들의 부러움을 산 그 청년은 어느새 소녀 떼들의 우상이 되어 있었다. 학처럼 고고하게 고개를 뻗은 자태로 청년이 천천히 스텝을 밟기 시작하자, 소녀 떼들이 청년의 동선에 집중했다. 두 손을 모으고 가장 신성하고 순결한 의식을 행하는 순간처럼 이 현장은 고요하다 못해 단호하고 엄숙했다. 언제나 자신의 실험군 대표 상대를 한 사람으로 지정한 청년은 동창생을 만난 것처럼 손을 번쩍 들고 아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당당하게 걷기 시작했던 그의 발걸음이 슬쩍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표정을 보아선 다시 들어갈까? 이대로 냅다 뛸까? 그냥 무시할까? 여러 방향의 복합적인 감정이 한데 어우러져 지조없게 얽혀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쉽게 체념을 한 그는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여전히 평소 아껴 하던 가죽재킷의 옷매무새를 다시 재정비하는 손길은 사뭇 애틋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틈을 이용해 청년이 오토바이 뒤에 긴 다리를 이용해 손쉽게도 올라탔다. 순간 온몸에 박테리아가 느껴진 그가 전깃줄에 간염된 참새처럼 벌떡 일어나 오토바이에서 순식간에 내렸다. "뭐슈? 당신 뭡니까? 빨리 내리지 못합니까?" "비모수 통계를 계산 중입니다. 수면 잠복기와 각성 횟수와 총 수면시간. 그래서 수면 효율로 말미암아 수면 전, 심부 체온의 변화량을 따지자면 창민님은…" "야 딴 데 가서 놀아라." "내가 형이다." 힘은 분명히 대등했지만, 민증에 민감한 그는 청년의 말에 크게 움찔한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소용없는 무용지물 핸드폰을 들고 어디론가 전화를 급히 건다. 일말의 희망치고는, 마지막 히든카드 치고는, 너무 속수무책 나약한 아이템은 분명했다. 고양이 보고 반찬 가게 지켜 달라니, 그냥 헛된 희망은 품지도 마라니까. "준수형. 개철수 또 왔다니까요. 이거 저랑 말이 다르잖아요? 그때 제가 분명 아이템 넘겨드렸잖아요?" "개철수 아니야. '개' 씨 아니야!" "그럼 뭡니까?" 고민하는 정적 하나. 세뇌당한 '개'씨는 여러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개 아니었는데… 뭐였지. 천아!! 유처나! 개철수 원래 성 뭐였지?" 희미하게 들려오는 어이없는 정답 하나. "궤에에~ 춸수!!!!" "미친놈아! 말도 꺼내치망!!!!!!!" 말없이 핸드폰을 고스란히 주머니에 넣는 그는 내일 죽을 사람처럼 한숨을 크게 쉬었다. "수면은 죽어서도 충분하니, 자주 나와서 사인 좀 합시다." 석고대죄를 해도 부족할 청년은 여전히 너무 뻔뻔스러웠다. 그런데 PS에 집착하는 철새 팬 청년이 순수하게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사색이었던 그의 얼굴빛이 조금은 평온 해보였다. 곧바로 두꺼운 책 사이에 구겨지지 말라고 끼어둔 사진 한 장과 사인펜을 꺼내서 그에게 내밀었다. 행여라도 닿으면 옮기라도 할까, 엄지와 검지 끝으로 물건을 살짝 건네 받은 그는 청년이 원하는 방향대로 손쉽게 사인을 해준다. 청년은 분명히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일단 호랑이를 어르고 달래 서커스단에 취직시킬 법한 뻔뻔하고 골 때리는 생명체는 분명했다. 사진을 초이스하는 안목도 어찌나 훌륭한지 청년으로부터 한 발짝 뒤로 물러선 그는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한 발짝 다가온 청년은 세뇌교육을 의도했는지 찍힌 사진의 제목을 친절하게 설명했다. 분명히 친절은 이자까지 붙어 되돌아오기 마련이었지만, 이런 친절이라면 마이너스 통장을 당장에라도 개설하고 싶은 욕구가 치밀었다. 반갑다. 파산아! "여기가 내 젖이다. 이 사진 손가락의 위치를 통계학적으로 정리를 해보자면, 검지손가락의 X축이 엄지손가락의 Y축과…" 격하게 꿈틀거린 눈썹과 가죽 장갑을 다시 제대로 낀 그가 사인을 다 끝낸 사진을 청년의 가슴팍으로 탁 밀치듯 안겨주며 사진과 정확한 위치의 손가락을 다시 재연하며 분노를 표했다. 계를 탄 소녀떼들이 큭큭 거렸다. "그렇습니다요!!! 바로 여기가 내 젖이오!!!!!!!!!!" "님. 거기 말고 검지 1센티 밑으로." 그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오크처럼 난폭한 몬스터마냥 날뛰며 절규했다. "으시바크하아하하학!! 시발! 궤에에 춸쑤우!!!!!!!!!!" § 그는 누가 봐도 편안한 복장이었고, 누가 봐도 가장 치명적이고 무방비로 헐랭한 상태였다. 이 남자의 블랙은 늘 오만했다. 하지만 이 남자의 블랙은 섣부른 착각도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의 영역에서 제대로 벗어난 이 남자의 일탈된 공간은 블랙 보다 더욱 달콤했고, 더욱 치명적이었다. 마치 여태까지 지켜온 제도나 규범에서 벗어난 자연과 닮은 야생 상태로 새 삶을 시작한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다. 시종일관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으며, 간혹 뾰로통해 보이기도 했다. 좀 더 자세하게 얼굴을 들춰보면 조금은 허무하게 때로는 졸려움을 애써 이겨내려는 표정과도 같았다. 조금 자란 머리는 목덜미를 자연스럽게 살짝 덮고 있었다. 긴 다리만큼이나 핏이 제대로 맞춰진 곤색 바지와 단정한 캔버스화,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품새가 큰 회색 자크 후드 티셔츠 안에 흰색 티셔츠를 받쳐 입었다. 팔꿈치까지 회색 후드티 소맷단을 올린 팔 밑으로는, 안에 받쳐 입은 흰색 티셔츠 소맷단이 비죽 나와있었다. 손목에는 습관처럼 절대 풀지 않았던 실버 손목시계와 내츄럴하게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머리에는 누군가가 손수 짜주었을 법한 방울이 달린 진회색과 흰색, 베이지가 배치있게 섞인 니트 모자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품새가 큰 회색 후드티 주머니 사이로 양 손을 집어 넣은 그의 기다랗고 큰 손등에는 퍼런 핏줄이 남자답게 돋아 있었다. 귀에는 하얀색 이어폰을 끼웠지만, 표정에는 도대체 어떤 노래를 감상하고 있는지 전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표정이었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때로는 졸린 표정으로 때로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건물 기둥에 등을 기댄 체 우뚝 서 있었다. 대각선으로 어깨에 맨 은색 야구 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나지 않은 투명한 피부, 짙은 눈썹, 약간은 도톰하지만 부드러워 보이는 입술, 그리고 눈을 깜빡일 때마다 긴 속눈썹에서 바람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양쪽 주머니 사이로 끼워 놓은 손은 밖으로 빠져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인파가 많은 번잡한 건물임은 분명했으나, 자기만의 영역이 분명한 사람처럼 수시로 자신을 넋 놓고 바라보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그저 심각하게 졸리거나 심각하게 무료하거나 심각하게 삐친 표정이었다. 얼핏 장학금을 타지 못한 대학생 같아 보이기도 했고, 뭔가 큰 무대를 준비하는 가수 연습생 같아 보이기도 했다. 어느새 여기저기서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는 진득한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느릿하게 한쪽 손을 꺼내 시간을 다시 체크했다. 그리고 이런 차림새와 어울리지 않게 화난 얼굴로 주머니에서 흰 담배 하나를 꺼내 도톰한 입술 사이로 꺼내 물고는 바지 속을 뒤져 라이터를 찾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라이터를 찾는 짜증스런 표정이 서늘하게 변하자 어느새 그의 주변으로 모여든 인파들이 다시 제 갈 길을 떠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큰 여운이 남는 영화를 감상했던 사람들처럼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그의 행동을 주시했다. 손이 커서, 마저 다 들어가지 못한 손끝으로 차가운 라이터가 잡혔고, 담배를 입에 문 채 라이터를 꺼내는 동작이 귀찮은지 건성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제야 손에 잡힌 라이터를 잡아 올렸고,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등을 돌려 라이터를 키웠다. 그런데 그때 멀쩡한 담배를 홱 하니 빼앗는 그림자가 등장했다. "형. 담배 끊을 거야, 재중이 끊을 거야?" 바람을 피해 켜졌던 라이터의 불씨가 민망하게 이미 흰 담배는 그의 손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눈썹이 꿈틀거렸고 본능처럼 치켜 올라간 눈썹 그 상태로 상대방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시 시계를 바라본 그가 육아기 때 꾸벅꾸벅 졸면서도 좀처럼 푹 잠들지 못하는 아이처럼 잠투정하듯 상대방의 얼굴을 보자마자 마음 놓고 투덜거릴 작정으로 꾹 다문 입술을 처음으로 열었다. 그런데 그때 상대방이 볼 한쪽으로 밀어 넣어둔 커다란 알사탕을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쑥 꺼내 예고 없이 그의 입 안으로 새콤달짝지근한 사탕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이에 황당한 듯 입을 떡 하니 벌어진 그의 입술을 닫아주는 마무리까지 선보였다. 선글라스를 써서 얼굴의 반 이상이 가려졌지만,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한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그들의 동선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다들 긴가민가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가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멍하니 상대방을 바라보자, 그런 그의 팔을 잡아당겨 타이르듯 차가 주차된 곳으로 이동했다. 어느새 고기처럼 큰 알사탕을 우적우적 씹던 그가 툴툴거리는 소리도 못 내고 앞에서 이끄는 팔을 따라 마지못해 발걸음을 이동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우두둑 이빨이 나갈 정도로 자신의 기분을 표현한 그의 모습에 웃음이 터진 상대방의 백지장처럼 새하얀 얼굴이 곱게 피어올랐다. 그의 팔을 잡아당겨 조수석 문을 열어 주는 상대방의 느긋한 행동은 마치 세 살배기 아이를 달래는 것처럼 보였다. 여전히 우두둑 소리를 내며 남은 알사탕을 처리하느라 온 신경이 입 안으로 곤두선 그는 상대방이 열어준 차 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차분하게 좌석에 올라탔다. 그러자 눈이 반달로 휘어지면서 입술을 살짝 깨문 상대방이 운전석에 앉으며 그에게 말했다. 상대방은 마치 응석받이 어린아이를 달래듯 온화한 태도로 능글맞게 말하고 있었다. "형아 거기 서 있는데 나 진짜 미치는 줄 알았어. 그냥 먼저 가라니까 왜 기다렸어?" "…졸려서." "형이 피부과 예약도 까먹고, 오늘은 깨워주지도 않았으면서 더 자자고 늦장 부리고 말이야." "왜 자꾸만 가라 그래." "지금도 봐봐. 잠 투정하잖아. 입술 쭉 나와갖구." "…졸려서. 그런데 왜 나보고 가라 그래. 기다릴 건데." "그래서 아까 그렇게 나갔어? 내가 자꾸만 형 먼저 가라고 그래서?" "신경 쓰였어?" "당연하지. 선생님이 붙잡는 거 얼른 떼놓고 나왔어." "안 간 거 알았잖아." "응. 근데 사람들 없는 건물에서 기다리면 안 됐어?" "…사람들? 그딴 거 없었는데." "형은 보고 싶은 것만 봐?" "…그런가?" "아주 졸려 죽겠지?" "…그런가?" "다음엔 그렇게 서 있지 마." "그럼 앉아있어?" "아니이~ 다들 힐끔 쳐다보고 가잖아. 아깝게." "…그랬나? 에이 몰라, 몰라." 마무리를 하듯 마지막 사탕 알갱이를 우둑 씹은 그가 조금은 턱이 아파져 오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상대방을 얄밉게 노려봤다. 하지만, 어느새 핸들에 두 팔을 걸쳐 얼굴을 기댄채, 상대를 지그시 바라보는 얼굴에는 장난기 가득 담긴 따스한 눈길로 씨익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가만히 있기 어려운 사람처럼 손을 올려 그의 좁혀진 미간을 슥슥 문지르며 말했다. "정말 블랙슈트 안 입으면, 이렇게 청순하고 이렇게 헐랭하구나. 꼭 학생 같아. 아 예뻐. 아~ 예쁘다. 우리 형." "네가 더 예뻐." "아~ 곱다. 고와!" 얼굴에 올라간 손은 습관처럼 쉽게 내려오지 않았고, 어느새 이리저리 움직이기 바쁜 하얀 손을 붙잡으며 입술로 가져가 그가 짧게 키스했다. 정신없이 움직이는 상대방의 손을 잡아 그의 허벅지 위로 올려놓고, 아주 달짝지근한 사탕이 많이 버거웠는지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에는 음흉함이 적나라하게 들어나 있는 게 똑똑히 보였다. "재중아 너무 달아. 뭐 없어?" "그거 진짜 큰 건데. 그냥 뱉지." "너무 달다니까. 뭐 없어?" "형 표정 좀 숨기면 안 돼?" "내 의중을 제대로 알아차렸으면서도 모른 척하는 건 무슨 심보야?" "형 갈수록 능글맞아져…" 상대방의 말이 다 끝나지도 않은 채 그가 입술을 맞닿았다. 입안에 고스란히 남은 달짝지근 새콤달콤한 맛에 상대방의 눈이 저절로 감겼다. 달짝지근한 혀를 움직여 입천장과 입안 구석구석 자유자재로 배회하는 혀가 금세 따뜻해졌다. 타들어가는 목을 축이는 끈적끈적한 타액이 서로의 식도를 타고 흘러 내려갔다. 번들거리는 입술과 밀착된 상체, 본능적으로 들썩이는 허리까지. 아랫입술을 깨물다시피 물었다가도 어느새 뜨거운 입안으로 들어간 혀는 손쉽게도 상대방의 혀를 찾아 급하게 옭아매기도 했다. 고른 치열을 간질이듯 빠르게 훑다가도, 어느새 다시 엉킨 혀를 쉽게 놓아주지 않을 심보로 괴롭히듯 물었다 빨기를 반복했다. 그런 그의 혀 놀림에 다른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정신없이 그대로 따라서 움직이는 혀가 조금은 버겁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뜨거워지는 입 안과 하체에 그의 어깨를 조금씩 밀기 시작한 상대방이 급하게 마무리를 하듯 짧은 키스를 여러 번 하기 시작했다. 단정한 이마를 지나 높은 콧대를 지나 긴 눈썹을 지나 다시 부드러운 입술을 지나 날렵한 턱선을 지난 입술이 여러 번 그를 달래듯 애정이 어린 키스를 했다. 신기하게도 그제야 불꽃처럼 이리저리 타오르던 눈빛이 금방 가라앉았다. "갈수록 끊는 게 교묘해져?" "형아 졸렵다며." "…그건 아까 그랬고, 지금은 너무 달았다니까?" "어제도 온종일 잠만 잤으면서 아직도 그렇게 졸린 눈을 해? 몇 년 동안 얼마나 수면이 부족했으면 이렇게 정신없이 잠만 자는 거야? 겨울잠 자는 곰도 아니구." "왜 또 입이 삐죽 나왔어." "속상해서 그러치…." "너만 보면 형이 연체동물처럼 자꾸만 늘어진다." "알아. 그래서 좋아." "근데 이 사탕 진짜 달다." "어…어?? 눈 또 감기는 것 봐. 형 빨리 자러 가자!" 어느새 눈이 감긴 그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운전석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런 그의 고개를 사랑스럽단 표정으로 미소가 가득 담긴 상대방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기울어진 고개가 행여나 아프지 않게 다시 제대로 고정해주자, 어느새 깊은 단잠에 빠진 그가 무의식적으로 낮은 음성을 내뱉었다. "재중이 안 끊어… 담배 끊을게…." 특별함이라곤 전혀 없는 공간에서 사적인 추억과 사연이 없는 이런 낯선 공간 주차장에서 바라보는 평범한 일상은 물을 움켜잡을 수 없을 만큼 갑자기 재중의 강한 센티멘털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곤히 잠든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시 핸들 위로 팔을 괴었다. 마치 생에 1분 1초라도 이 모습을 놓치기 싫은 사람처럼 재중은 한참을 그렇게 그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평온하게 잠든 그는 어린애 같은 얼굴로 새근새근 숨을 쉬고 있었다. 길지도 않은 손톱을 물어뜯고 싶은 충동이 잔잔하게 일어났다. 분명 여유가 있는 남자는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제 앞에만 서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제 주변을 빈둥거리면, 마치 서로의 애틋한 마음과 생각이 한없이 열려서 평온한 고요함이 밀려온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은 누구나 편히 쉬면서 잠재된 생각을 정리하고, 잘못된 진리를 밝히고 답답하게 갇힌 자신을 해방시키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분명 있었다. 그만큼 현명한 사람은 빈둥거리고 휴식이 활동한 만큼 중요했다. 더불어 그 침묵은 소리만큼이나 중요했다. 그는 그저 하릴없이 빈둥거리며 재중의 영혼을 부르는 것과도 같았다. 그의 열흘 동안 주어진 달콤한 휴식은 이런 헐랭함과 아이처럼 투정하는 일상 속에서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재중과의 소소한 일상이 그에겐 지중해 해변에서의 시원한 휴가처럼, 때로는 풀벌레 소리가 나는 한적한 곳처럼, 화사한 봄기운과 꿈같은 꽃길처럼, 천 년의 축제와 동화 속 풍경처럼 잃어버린 고향과 꽃 구름처럼 그렇게 꿀보다 달콤한 휴식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깊게 잠든 기다란 속눈썹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보며 재중이 으하하. 소리 나게 웃음을 흘렸다. 행복이란 의외로 간단했다. § 이곳이 현관인지, 거실인지, 주방인지, 작업실인지, 침실인지, 드레스룸인지, 테라스인지, 내 집인지, 놀이방인지, 놀이터인지, 운동장인지, 시장터인지 내가 박유천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부자인 애인과 헤어져도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혀도 될 만큼 위자료를 준다고 해도 녀석이 여기저기 흥분해서는 이리저리 팔짝팔짝 물건을 어지럽힌 방을 매번 치운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었다. 연애 시절에 결혼만 하면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해주겠다고 큰소리치던 사내 새끼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고 지조 없는 주둥이 좀 닥치라고 전하고 싶었다. 어질러진 물건을 다시 제자리로 놓기도 전에 이미 다른 방이 전쟁터로 변했다. 그렇다고 내가 유난히 깔끔 떠는 구석이 있어서 여기저기 참견하는 타입도 아니었지만, 일단 김준수는 기본적으로 자아가 덜 성숙됐다. 지금 봐라. 저렇게 무방비하게 삼각팬티 하나 입고 미친놈처럼 팔짝팔짝 온 거실을 휘젓고 다닌다. 이런 녀석의 할리우드 액션에 큰 대결이라도 하듯 같이 반응하는 하랑이는 이미 지쳤는지 헥헥 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어릴 적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중국영화의 구룡성 처럼 이곳은 금방이라도 날려 차기 한방이면 쉽게 휘청거릴 것 같으면서도 단단한 곳처럼 느껴졌다. 청승은 늘어가고 팔자는 오그라지기 마련이라지만 내 팔자는 아닌 모양이다. 내 손은 물에 젖어 마를 날이 없었고, 크게 마음을 먹고 대청소를 결심한 내 앞치마는 풀릴 날이 없었고, 목이 터지도록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혼을 내도 그때 잠시뿐이지, 다시 이리저리 사정없이 돌아다니는 녀석은 정서불안과 발달장애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가 작업실을 비운 날에만 곡 작업에 몰두하는 녀석은 행여라도 내가 작업실에 불쑥 나타나면 하던 일도 금세 멈추고 다시 나를 괴롭히듯 방을 어지럽혔다. 마치 치밀한 준비와 고도의 수법으로 내 눈에 띄지 않는 천재적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도저히 오늘은 안 되겠다. 귀신도 빌면 듣는다지만, 내가 김준수 앞에서 그렇게 무릎이 닳도록 싹싹 빌면서도 나를 구타하고 무시하고 내 말은 귓등으로 흘려듣고 있었다. 오늘 너부터 치워야겠다. 어느새 난장판인 거실 한복판에 자리를 잡은 녀석이 멍하니 서 있는 나의 바지를 잡아당겨 바닥에 앉으라고 고갯짓을 했다. 무의식적으로 바닥에 앉자마자 내 뒤로 앉은 녀석이 두 발을 내 허리에 교차하듯 바짝 잡아당기듯 옭아맸고, 아직 눈이 찌푸려질 정도로 메마른 팔을 내 허리에 둘러 맞닿은 두 손으로 게임기 스틱을 잡았다. 제대로 터득한 편안한 자세처럼 내 어깨에 턱을 괴듯 고개를 내민 녀석이 현란한 손동작으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한번은 4시간 동안을 녀석에게 붙잡힌 채 이러고 있어야만 했다. 방광이 터질 것만 같아도, 꾸벅꾸벅 고개가 아래로 숙여져도 내 허리를 붙잡은 두 발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행여라도 내 자세가 꼬꾸라지거나, 비틀어지면 크게 타박하듯 뽀뽀를 해달라고 볼을 삐죽 내밀었다. 그럼 또 무의식중으로 그게 또 좋다고 난 뽀뽀를 하대? 내 주둥이는 어찌나 지조가 없는지. 마치 그 뽀뽀 하나로 연봉이 불쑥불쑥 올라가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연애는 분명 맹목적이다. 말 그대로 눈이 멀어서 병신이 되었다. 이 말이다. 하지만, 난 귀도 멀었다. 가끔은 이게 연애인지 김준수 앓음인지 헷갈릴 때도 있었다. 콩깍지는 깐 콩깍지든, 안 깐 콩깍지든 간에 얼마나 밀애에 열중했으면 눈에 그 큰 콩깍지가 들어가도 몰랐을까? 결론적으로 따지면 연애를 하는 모든 사람은 사실 정상적인 상태는 힘들었다. 죄다 병신이다 이 말이다. 나는 눈앞에 보이는 큰 상자를 팔을 벌려 잡았다. 이미 게임 속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주인공처럼 눈썹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녀석의 집중력을 이용해 순식간에 몸을 일으켜 일어났다. 순간 오뚝이처럼 몸이 갸우뚱거리며 스틱을 잡은 채 녀석의 뒤로 발라당 눕혀졌다. 어리둥절한 표정은 이내 싸대기 쿠데타를 불러 일으킬 만큼 불꽃이 샤방샤방 터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틈을 이용해 녀석의 몸을 들어 큰 상자 안에 손쉽게 넣었다. 그러자 이내 유난히 검은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작은 몸은 신기하게도 내 상상대로 상자 안에 넉넉하게 자리잡혔고, 자연스럽게 두 무릎이 굽혀지고 일어서려고 두 팔이 무릎을 감싸 안은 그 틈을 이용해 열린 상자 뚜껑을 닫아 대각선으로 꼼꼼하게 남은 빛까지 몰살시켰다. 그러자 이제야 상황이 인식된 녀석이 괴성을 지르며 발악했다. 어찌나 목소리가 큰지 꼭 팔려가는 돼지처럼 꽥꽥 소리를 질렀다. "뭐야!!!!! 왜 이래!!! 박유천!!!! 나한테 왜 이래!!!!!!! 이거 열어!!!!!!!!" "즌수야. 우리 이제 사람답게 좀 살자." "너만 이제 사람 되면 돼!!!!!!!! 이거 열어 개새끼야!!!!!!!" "묶는 것보다 이게 낫잖아? 청소 다 하면 열어줄게." "이 씨발새끼!!!!!!! 집착도 병이야! 날 자유롭게 풀어주란 말이야!!" "즌수야. 착각도 병이야. 힘 빼지 말고 한숨 자는 게 어때?" "야!!!!! 내가 닭보다 못해!!?? 닭한테도 죽기 전에 숨이라도 쉬라고 구녕은 뚫어주거든!!!!!!??" "너 어째 이 상황을 재밌어한다?" "말도 꺼내치망!!! 으하캉하항하항하학!!" "참 잘 놀아." 분명히 두 팔을 이용해 닫힌 상자 뚜껑을 열면 되었거늘, 녀석은 빛도 들어오지 않은 캄캄한 상자 안에서 자기를 꺼내달라느니, 자기를 사랑하는 실험치고는 너무 가혹하다느니, 자기를 짐승 취급했다느니, 이젠 집착 그만 하고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주라느니, 아주 그냥 장대한 이유는 모조라 갖다 붙이고 혼자 연극을 하며 통곡하듯 웃어댔다. 낑낑거리듯 구석으로 상자를 옮겨놓자, 이번에는 상자가 파닥파닥 거리 듯 이리저리 찔끔찔끔 자리를 저 혼자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젠 모든 인생이 다 그러려니 싶은 심정으로 나는 밀린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새를 못 참고 상자에서 뿅 하고 고개를 내민 녀석이 알을 까듯 상자에서 몸을 비집고 나오더니 이내 우당탕 소리를 내며 내 등에 폴짝하고 업혔다. 곧바로 허리를 꽉 조인 두 발과 목을 꽉 조이듯 껴안은 팔이 팔랑거렸다. 신이 난 모양이었다. 내 등에서 신명난 듯 춤을 추고 노래 부르며 흥겨움에 발광을 했던 녀석이 이제는 이리저리 저거 치워라, 요거 치워라, 저거 닦아라, 저거 버려라, 이거 묻었다, 이거 빨아라. 사령관처럼 내게 주문을 걸었다. 순간 정말 좋은 방법처럼 난 녀석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싶었다. 녀석이 좀 잤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키스하면 일어났으면 좋겠다. 다 커서 상상한 동화는 상당히 자극적이었고 음흉했지만, 지금은 일단 녀석이 얌전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건 진심이다. 그런데 정말로 내 목 언저리에 코만 킁킁대었다면 깊게 잠이 든 녀석이 오늘따라 반갑게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이리저리 손짓 발짓하며 내 등에서 춤을 춘 녀석의 몸짓이 점차 수그러들었다. 바짝 긴장한 듯 꼿꼿하게 세워진 녀석의 척추가 내 척추 선을 따라 호곡 선을 그리듯 업혀졌고, 두 팔은 허무하게도 밑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속으로 외친 주문이 마법처럼 일어나자 나는 꿈에서 깨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살금살금 침실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찌나 팔랑거리고 뛰어다녔는지 이마에 맺힌 식은땀으로 앞머리가 조금 젖어 있었다. 그 모습에 소리 내 웃고 싶어졌다. 손바닥으로 조심스럽게 이마에 송글 맺힌 땀을 닦아주고 엎드린 자세 그대도 침대에 눕혔다. 그러자 작게 옹알이를 하며 몸을 뒤척인 녀석의 등을 보모처럼 한참 동안을 쓸어내려 주자 정말로 깊게 잠들었다. 오랜만에 나한테 효도한다. § 쾌락이 커지면 그냥저냥 했던 관계도 불꽃이 타오르기 마련이었다. 때로는 상대방과 헤어졌어도 마치 자신을 비극적 결말의 주인공처럼 대치하고 낭만적인 슬픔처럼 아픔을 즐기기도 한다. 그리고 육체적인 쾌락은 본능이다. 그만큼 쾌락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얼마 없다. 처음에 찢어진 애널로 한동안 녀석이 인상을 찌푸리며 병원을 드나든 적이 있었다. 이것은 마치 띠동갑 어린 애인의 고결한 순결을 결혼하기 전까지 지켜주고 나서 드디어 결혼에 골인해서 겨우 닿은 그 한방에 애인이 임신하는 꼴이나 다름없었다. 그 10개월의 공백을 누가 보상하리? 첫 재회 후 3일 내내 서로의 살내음에 중독되어 지금 우리가 벗고 있었는지, 뭘 입고 있었는지, 뭘 먹기나 했는지 분간이 안갈 정도로 그야말로 미친 적이 있었다. 눈만 마주치면 기를 쓰고 달려들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인가 녀석이 힘에 부치는지 내 눈을 살금살금 피해 식탁 밑에서 쭈그리고 앉아 통닭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녀석과 눈이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 시선은 교태를 부릴 때 사용하는 녀석의 무기가 아니었다. 어떤 말 보다 내게 효과적이었고, 진실했다. 그런데 그때 대뜸 닭다리를 쭉 내게 내밀며 진한 시선으로 나를 지그시 바라보던 녀석이 이렇게 투정을 부리듯 말했었다. 「…이 집에서 그 냄새밖에 안 나.」 「그래서 양념 통닭 먹어?」 「넌 왜 이리로 들어와? 가까이 오지 마!」 「네가 여기서 먹으니까 그렇지.」 「넌 식탁 위에서 먹어!!」 「넌 왜 식탁 밑에서 고양이처럼 먹는 건데?」 「네가 자꾸만 달려드니까 그렇지.」 「같이 물고 빨았으면서 이러기야?」 「의사 슨생님이 당분간 자중하래.」 「그 양반이 뭐라고 그랬는데 이래?」 「항문 섹스는 위험한 거래.」 「그렇게 많이 아팠어? 왜 금세 울상이야. 그리고 또. 또 뭐래?」 「마음에 안 들어.」 「뭐가?」 「슨생님이 남자랑 섹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대. 그래서 나는 남자랑 섹스한 게 아니라, 단지 내가 사랑한 사람이 남자였던 거뿐이라고 미리 준비한 대답처럼 식상하게 말했어.」 「그랬더니?」 「얼마나 잘난 사람이냐고 묻길래. 박유천이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병원 대기실에서 네 노래가 나오잖아. 그래서 박우천이라고 뻥 쳤어.」 「그래서.」 「자꾸 화나.」 「왜?」 「진짜 박유천한테 미안해서.」 「그 우천이도, 이 유천인데?」 「…그래도.」 「그럼 다음번엔 그 병원 같이 가.」 「왜?」 「내가 그 양반한테 내가 그 박우천입니다~ 라고 소개할게.」 「우천이 뭐야. 꼭 하늘의 소 같잖아.」 「그럼, 음~메 하고 울어줘?」 「너도 다음엔 김존수라고 해도 좋아.」 「크큭… 김존수래.」 「우천 주제에. 비웃기는.」 「으하하학!」 「으캬항학!」 녀석은 언제나 내게 열병과도 같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게 피고 진다. 그럼에도, 작은 틈만 주어져도 난 예쁜 싹을 틔울 수 있었다. 가끔은 잊었던 첫사랑처럼 나는 녀석이 나 없이 잘 살면 배가 존나 아프고, 나 없이 못 살아도 존나 가슴이 아픈데 이렇게 막상 같이 살면 존나 머리가 기분 좋게 아팠다. 누구나 외로움에 익숙해지면 슬픈지도 모르고 살게 된다. 그냥 다들 이러고 사는 거겠지 하고 산다는 뜻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린 외로움에 익숙해지지 않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리고 만나는 순간 이미 이별도 동등하게 출발한다는 사실을 이제는 믿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가 진짜 인연이었다는 말을 반드시 내 생이 끝날 때 서로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그리고 쿨한사람이 되지 말고, 작고 사소한 일에도 이렇게 큰일처럼 크게 날뛰는 촌스러운 연인이 되기로 했다. 여전히 녀석의 숨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갈비뼈에 부딪힐 것처럼 세차게 뛰었다. * bgm : 몽라 - Hand In Hand 상상밴드 - 오늘은 맑음 아침을 깨워 기지개를 펴고 속삭이는 바람 내게 손 흔들어 기분 좋은 나의 하루 자 시작해 따뜻한 커피 한 잔 속의 여유 창문을 열어 햇살 마주치면 나의 볼에 키스를 해 oh beautiful 오늘 하루 꽃이 될 거야 웃음 줄 거야 오늘도 나 라랄랄랄라 내 맘속에 행복의 기억 다 적어 둘께 오늘은 맑음 나른한 오후 라디오를 켜고 사람들 얘기 음악에 곁들여 가슴으로 들려오는 oh melody 오늘 하루 별이 될 거야 꿈을 줄 거야 오늘도 나 라랄랄랄라 머릿속에 설레는 마음 다 담아둘게 오늘은 맑음 오늘 하루 랄라랄라라 기분이 좋아큰소리로 랄랄랄라 내 두 눈에 기억된 시간 바람을 타고서 오늘은 맑음오늘은 맑음 ↑ 가사가 너무 예뻐서 데려 왔습니다. ^ㅠ^ My Melody 마지막 편에 달아주신 많은 코멘트와 감상들을 읽으면서 씁쓸한 시간을 조금 더 행복하게 보냈던 것 같아요. 해주신 말씀 하나하나 고스란히 잘 전달되었습니다. 너무 고맙습니다. ㅠㅠㅠ 모든분들의 하루도 언제나 맑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넘넘x10000 감사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예쁜 소설로 또 찾아 뵙겠습니다^^